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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의 문단속 - 여전히 제자리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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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이 개봉했습니다. 돌비시네마에서 보긴 했는데 4K나 HDR에서 재미 볼 구석은 사실상 없으니 그냥 사운드가 너무 나쁘지 않은 상영관 정도면 될 거 같습니다. MX관 정도면 충분히 차고 넘칠 듯.

 지진을 일으키는 악령(?) 미미즈가 뛰쳐 나오는 문을 닫아 지진을 막는 '토지시'인 청년 무나카타 소타와 우연히 미미즈의 봉인을 풀어버려 소타와 함께 여정을 하게 된 여고생 이와토 스즈메가 봉인을 지켜내기 위해 일본을 일주하는 내용- 정도가 시놉시스 되겠습니다. 이번에도 재난을 테마로 했는데, '너의 이름은'에다 '날씨의 아이'까지 해서 재난 3부작으로 칭해야 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소타와 스즈메가 열도를 따라 열리는 재난의 문을 닫으려 돌아다니는 과정이 로드무비 스타일이었던 거였네요. 여러 지역과 사람을 만나는데 쾌활하게 그려지고 재미도 있습니다. 재난을 달고 다니는 고양이신 '다이진'을 쫒아 다니는 부분도 적당히 코믹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정적인 면이 많았던 이전작들에 비해 역동적인 액션이나 카메라워크에 꽤 비중을 두었는데 그런 움직임 측면도 호사스럽긴 했습니다. 군데군데 적지 않은 발전점들이 있지만 그래도 가장 와닿는 건 유머를 빙자한 스케베짓을 이번엔 하지 않는다는 정도겠네요. 섹슈얼한 면은 오히려 절제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없습니다.

 적당히 괜찮은 배경설정에 캐릭터도 괜찮긴 하지만 최종 결과물은 조금 미덥잖다는 게 제 감상입니다. 일단 가장 큰 단점은 곱씹을 시간 없이 휙휙 급전환되서 넘어가는 부분인데, 이게 결국엔 미미즈를 둘러싼 오랜 싸움이나 토지시, 고양이신에 대한 부분들을 미흡한 상태로 놔두는데도 일조합니다. 전반적으로 그냥 기세로 밀어 붙이는 스타일인데 힘도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네요.

 물론 그런 제작스킬적인 부분보다 더 유감스러운 건 재난을 다루는 관점 되겠습니다. '너의 이름은'에서는 집단기억의 모호한 이미지 정도였고, '날씨의 아이'도 상상의 영역 정도였지만 이번에는 아예 직접적으로 3.11 동일본대지진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워낙 큰 사건이고 하니 당연히 신중할 수 밖에 없는데 신카이 마코토에게는 좀 역부족이었다는 생각이네요.

 일단 재난을 일으키는 악령적 존재나 그걸 막는 사명을 가진 사람 같은 것까진 판타지요소로써 괜찮지만, 그럼 어쩔 수 없이 일어났던 지진들은 마치 토지시들의 역부족인 것처럼 되서 좀 갸우뚱해집니다. 거기다 뒷문이 시간이 지나면 결국 열리는 이유가 사람들의 기억이 흐릿해지면서 봉인이 약해지기 때문이라는데, 인재라면 모를까 자연재해에 이런 관념은 좀 문제가 있습니다.

 스즈메가 보통 아이들과 달리 미미즈가 보이고 토지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어릴적에 재난에 휘말리고 뒷세계로 가본 경험 때문이라는데, 사실 이것도 꽤 얼렁뚱땅이긴 합니다. 그게 그렇게 쉽게 일어날 일은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일본이란 나라에선 그렇게까지 드문 일도 아닐 거란 말이죠. 스즈메는 캐릭터의 설득력을 위해 더욱 독보적인 존재였어야 했습니다.

 '날씨의 아이'와 견주어 보면 또 생기는 의문은 신카이 마코토에게 있어 자연을 거역하는 인간의 대가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날씨의 아이'에선 날씨가 인간에 대한 벌인데, 그걸 억지로 누르는 것이 히나를 희생시키는 것이었죠. '너의 이름은'에서도 무녀의 삶은 희생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토지시는 별달리 대가를 치르지 않습니다.

 그런 비대칭적인 조건은 자연재해를 상대하기엔 너무 편리한 얘기인 것 같고, 토지시라는 일의 무게감에서 희생이 빠지니 순전히 해야할 일을 못 해서 보통사람들에게 해가 끼친 것처럼 되어버립니다. 토지시는 토지시대로 각오와 희생이 있어야 실패에 책임을 섯불리 탓하진 못 할텐데요.

 토지시들이 아무리 해도 미미즈를 막는덴 한계가 있다든가 하는 뒷사정이 있을 듯 하지만 관객에게 설득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죠. 물론 소타의 할아버지나 고양이신에게서 아주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라는 암시는 있지만 매우 미미한 늬앙스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총체적으로 세계관의 디테일이나 설득력이 부실한 게 내러티브도 힘이 빠지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입니다.

 급전환하는 템포나 토대쌓기 부족이나 다 시간의 문제이기는 해서, 러닝타임이 빠듯했던 게 근본적 원인이 아닌가 싶긴 합니다. 아무리 요즘 3시간이 보편화된 영화계라고 해도 재패니메이션 극장판으로써 122분은 거의 맥시멈이었다고 생각하고, 그럼 쳐내더라도 좀 더 집중력을 높혀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한데 또 쳐낼 구석도 별로 안 보이긴 합니다. 로드무비 파트 쪽이 시간을 잡아먹는다면 잡아먹는데, 그게 제일 괜찮은 부분이었고... 내용과 시간의 싸움에 실패한 거라면 신카이 감독의 탓이긴 하겠죠.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대작이라서 나름 기대하긴 했습니다. 신카이에 회의적인 편인데 과연 이번엔 좀 놀래켜줄까? 뭐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전체적인 마감이나 (국제적) 보편성은 좋지만 내적으로 딱히 두드러지는 면은 없다는 게 결론이라 아쉽긴 합니다. 분명 나아지는 점은 있는데 정말 중요한 부분에선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듯 해서 신카이에게 주어진 시간도 아주 많지는 않다고 보입니다. 과연 다음작품에선 유의미한 진일보를 할 수 있을 것인지...

ps.저는 신카이가 비평을 수용해 변모할 각오만 있다면 러브스토리를 그럴싸하게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본인이 전력으로 그런 방향을 피하고 싶어하는 거 같군요. 마치 퍼리 충동을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호소다 마모루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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