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바타 리마스터(4K HDR HFR 3D) - 업데이트된 왕년의 비주얼 쇼크
'아바타' 리마스터의 개봉은 어디까지나 '아바타: 물의 길'(이하 '물의 길')을 위한 예행연습 겸 마케팅이었던 만큼 본목적이라 할 수 있는 '물의 길'도 보고 왔습니다. 상영관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안성 스타필드 메가박스의 돌비 시네마관. 현재는 돌비 시네마 상영관들만 4K HDR HFR 3D(헥헥헥) 사양을 완전히 구현할 수 있습니다. 용산 아이맥스는 4K가 가능한 사양이지만 HFR을 위해서 2K로 다운되었다고 하니 2K HFR 3D 까지만 되는 셈입니다.
물론 용산 아이맥스엔 최강의 스펙 - 압도적인 스크린 크기가 존재하긴 하지만요. 다만 영화가 와이드스크린인데다 용산 아이맥스의 스크린은 1.43:1 비율은 '덩케르크'를 비롯한 필름 아이맥스 작품에서만 발휘되기 때문에 큰 스크린의 거의 절반 밖에 사용하지 못 하긴 할 겁니다. 그래도 돌비 시네마 관보다는 옆으로 더 넓긴 할 겁니다. 돌비 시네마는 밝기를 확보하기 위해서인지 스크린 크기는 대형화되던 MX관들보다도 작다보니...
어쨌든 예매도 힘들고 사양도 좀 빠지는 아이맥스보다는 당연히 돌비 시네마를 택했습니다. 돌비 시네마에서 가능한 모든 스펙을 때려 박은 유일한 영화라(오디오 포함) 더욱 아이맥스보단 돌비 시네마 벤치마크 같은 느낌이 들긴 합니다. 개인적으로 3D 다음으로 중요한 사양이 4K HFR이라고 생각해서(HDR은 상대적으로 부차적) 2K인 게 아이맥스 상영관들의 약점이 될 듯 합니다. 해상력에서는 돌비 시네마의 승리라고 해야겠죠.
내용으로 들어가서, 나비족의 몸으로 되살아난 쿼리치 대령과 부하들은 인류의 판도라 이주를 위해 나비족을 꺾으려 하고, 저항운동에 지도력을 발휘하는 설리와 네이트리를 제거하려 합니다. 숲의 나비족이 더이상 희생당하는 걸 막기 위해 설리와 가족들은 바다의 나비족들이 살고 있는 군도로 숨어들어 새로운 관습에 적응해 가지만, 쿼리치 대령은 결국 설리를 찾아내고 둘은 사투를 벌이는데...
뭐 시놉시스가 이정도인데 영화가 3시간이 넘다보니 1시간 정도 내용을 말해버린 거 같네요. 다만 이건 가장 대표적인 인물만의 얘기이고, 서브 캐릭터와 서브 플롯이 많아서 긴 시간 동안 늘어지거나 하진 않습니다. 메인스토리 자체는 아바타 1편에서 거의 나아가지 못한 원주민 이상화의 전형이긴 합니다. 1편이 아마존 모티브라면 2편은 아예 폴리네시안 모티브입니다.(마오리족 춤도 나옴) 그럼 3편은 사막 부시맨이라도 될런지?
제임스 카메론은 오랜 환경운동가이고 그게 아바타 시리즈를 만들려는 동기부여라고 하긴 합니다만, 가상의 캐릭터로 이상화된 부족과 이상화된 지구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게 아바타의 제일 큰 결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도와 별개로 이런 모티브 자체도 모욕적일 수도 있고, 현실의 한계에 비추어 오히려 비난의 근거(너희는 그냥 충분히 기계문명화되지 않은 것 뿐이지 나비족처럼 진정으로 자연과 융화되거나 선량하지 않잖아?)로도 쓰이기 충분하다는 게 말이죠.
그런 점에서 영화의 배경과 테마는 1편에서 전혀 발전하지 못 한 게 분명합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고 가공의 인물들의 스토리 자체만 본다면 단조로운 대립구도였던 1편에 비해서 설리와 쿼리치의 인물상은 좀 더 복잡한 얘기의 여지를 남기긴 했습니다.
여지를 둔 정도라는 건 어디까지나 삼부작(일지 오부작일지 모르겠지만)의 틀에서 두번째 작품의 징검다리로써 한계이기 때문에 이게 후속편에서 활용하려고 한 건지는 아직 모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임스 카메론 정도 되는 사람이니 그렇지 않다면 실망스럽겠죠. 어쨌든 아바타 시리즈는 여전히 인류는 한없이 강하고, 설리의 방법은 시간끌기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납득할 만하게, 스펙타클하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숙제를 계속 안고 갑니다.
뭐 그런 약간의 양념과 후속편에서는 과연 1,2편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정할 만한 대단원을 이룰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 반 우려 반을 제외하면 내용은 정말 건질 게 없습니다. 그나마 계속 서브 플롯을 던져줘서 엄청난 러닝타임에 비해서 지루할 틈은 없습니다. 근래의 3시간 전후 영화 중에서 내적으로는 제일 부실한 거 같은데 집중력 유지에서는 제일 나았던 거 같습니다. 내적 깊이는 둘째 치더라도 프로덕션에 있어서는 역시나 거장은 거장이라는 거겠죠.
기술적인 면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1편에서 한계를 보였던 가변 프레임이 더 나아졌을까를 중점적으로 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전체가 48프레임으로 만들어졌어야 했습니다. 뭐 익숙함을 위해서 드라마가 중시되는 장면에선 24프레임을 했다느니 하는데, 솔직히 24프레임이 되는 씬들은 그냥 더 열등해 보일 뿐입니다. 자연스럽거나 '시네마틱' 하다기 보다는 그냥 프레임드랍 되고 잔상이 심해 보인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게다가 카메론에 따르면 '물의 길'의 48프레임은 기존 영화의 48프레임과 다르게 48프레임에서도 '시네마틱'한 느낌을 가지도록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프레임보간 리마스터였던 1편과 비교해서 48프레임 씬의 "TV 시연대 스러움"도 덜했습니다. '물의 길'은 단연 역대 HFR 영화 중 가장 덜 이질적인 영화이며, 24프레임 씬들은 익숙함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전체를 48프레임으로 만들 돈이 없어서라는 감상입니다.
전작을 만들 당시 또 없었던 기술은 HDR인데, 바다 풍경은 비교적 푸른색 집중적이라 오히려 1편처럼 형광물체들이 많이 나와서 강조되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햇빛과 수면을 디테일을 잃지 않고 동시에 살려내는 자연스러움에 집중한 듯 합니다. 일부 밝기가 강조되는 씬이 있기는 한데, 영화 전체에 빛을 발할 정도 비중은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으론 바다민족의 녹색끼가 도는 피부가 와이드 컬러의 덕을 약간 보지 않았나 싶기는 합니다만...
클라이막스에선 해가 진 상태에서 조명과 폭발이 넘쳐나는 액션씬이 나오는데, 사실 이정도는 SDR에서도 충분히 컨트라스트가 인상적이었을 거라서 HDR 덕을 얼마나 보고 있는지는 가늠하기 힘듭니다. 햇살이 나오는 장면 말고 HDR 덕을 톡톡히 봤다고 생각한 장면은 의외의 여건에서 나왔는데, 조명이 꺼지면서 어둠에 휩싸였을 때 암부 디테일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지만, 아마 시간은 5초도 안 되었을 거 같습니다. 불이 없는 밤 장면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네요. 기술적으로 대단할 뿐 시각적으로 그리 아름답진 않겠지만요.
내적으론 1편보다 2% 정도 발전한 수준이고, 시각기술로는 여전히 업계 최첨단이긴 합니다만 문제는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거겠죠. 아바타 시절에는 3D가 아니더라도 거의 전 장면을 CG로 만드는 것과 판도라라는 세계 자체가 신기한 체험이었지만, 오늘날엔 CG 떡칠에 너무 익숙해져서 아무리 퀄리티가 좋아도 옛날 같은 임팩트는 없습니다.
물론 '물의 길'은 여전히 최고 수준의 CG 기술(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를 사용한 영화이긴 합니다만, 1편이 비교할 대상이 없는 체험이었다면 이번엔 가장 좋기는 하지만 조금 더 좋을 뿐이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그 좁아진 격차를 체감하려면 돌비 시네마 상영관이어야 하는데, 1편 당시의 3D 상영관에 비해 최적의 상영관이 매우 부족한 현실이죠.
HDR은 커녕 4K도 HFR도 모두 입수하지 못 하고 2K 3D로만 보는 인구가 대부분일텐데, 과연 그런 관객들의 만족도가 최적의 환경에서 기술적인 면을 꼼꼼히 따져 본 저 같은 사람 만큼 되겠느냐는 거죠. 대다수의 감상은 "그냥 1편보다 CG 더 좋아졌네" 정도 수준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역대 최대의 예산을 들여서 터무니없이 높은 손익분기점이 되었다는 비즈니스 모델은 1편 같은 투자 대비 실적은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사실 1편의 기록조차 도달하지 못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이고... 적자를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정도라면 카메론의 원안과 달리 삼부작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입니다.
뭐 2편과 거의 동시제작인 3편인지라 기술적으로는 3편은 더 임팩트가 없을 거 같긴 하지만, 3편을 위해 아이디어를 아껴뒀으리라 믿으면서 3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과연 동일 기술로 만들어진 3편이 2편 대비 더 비주얼 임팩트를 줄 수 있을 것인지(이건 아트로만 이룩할 수 있는 승리겠죠), 그리고 아바타 시리즈의 영원한 숙제를 해소할 수 있을지. 동시 제작인데 아직 거의 2년 더 기다려야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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