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코로나에 아직도 코로나 후유증이 남아 있는 상태라 간략하게만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여름 휴가가 끝나고 페라리/르클레르에겐 전황을 뒤바꿀 중요한 타이밍입니다만, 결과는 그 기대에 부응하긴 커녕 그 반대만 보여준 것 같습니다.
이번주는 시즌 후반 대비 및 추월이 용이한 트랙 특성을 활용하기 위해 많은 드라이버들이 파워유닛을 일부러 교체하여 패널티를 받으며 새 파워유닛을 확보했습니다. 챔피언십 경쟁자인 맥스와 르클레르도 거기에 해당됐는데 다른 드라이버들도 여럿 합류해서 출발지점은 각각 14위, 15위였습니다. 최후미는 아니지만 어차피 맨 뒤 다섯순위 정도는 첫랩에 커버할테니 추월전의 본편부터 시작되는 정도일 따름이었습니다.
여기서 둘이 얼마나 잘 돌파해 가느냐, 르클레르가 맥스를 중간에 잡아내 앞서갈 수 있느냐였는데 뭐 결과적으로 본다면 싱겁게도 맥스의 완승이었습니다. 첫 랩에 무려 8위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하고 그 이후에도 거의 한 랩에 한 순위씩 올리면서 상위권까지 올라갔고, 상위권을 상대로도 페이스 우위가 워낙 확고해서 사인츠고 알론소고 메르세데스고 그냥 보내주는 수준이었습니다.
레드불 페이스가 워낙 좋아서 페레즈도 사인츠와 메르세데스를 쉽사리 떼어놓을 정도였습니다. 맥스는 그것보다 더 빨랐으니 뭐 그냥 언터처블이었습니다. 1위에 올라간 뒤에는 전혀 위협당하지 않고 크루즈해서 경기를 마쳤습니다. 맥스가 데뷔한 이래 가장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경기일텐데, 14위에서 출발해 우승이라는 기록도 이것보다 뒤에서 출발해 우승한 건 슈마허의 16위(95년 벨기에)와 존 왓슨의 17위(82년 디트로이트) 뿐으로, 역사적인 레이스의 반열에 들 수 있을 듯 합니다.
페라리/르클레르로썬 사실 맥스와 대결에서는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타이어 마모가 문제였다고 하는데 고속트랙이라서라고 하기엔 이전에 고속트랙이 없었던 것도 아니라서 스파에 한정된 문제인지 아니면 최근 업그레이드의 부작용인지 모르겠습니다. 브레이크 덕트에 맥스의 바이저 필름이 들어간 건 그 와중에 그냥 정말 운이 없었다고 밖에 할 수 없는데, 마침 맥스의 것이라서 마리오카트스러운 농담을 떠올리게 하긴 했습니다.
패스티스트랩을 찍으려고 했다가 피트레인 과속으로 5초 패널티를 먹는 바람에 패스티스트랩 포인트는 커녕 순위까지 하나 잃는 꼴이 되고 말았는데 이것조차도 사실 순전히 운이 없었던 것으로 페라리나 르클레르가 잘못된 선택을 했던 건 아니긴 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론 그냥 남아있는 게 더 포인트를 얻었겠지만, 센서 오류로 과속이 생길 줄은 아무도 몰랐을테니깐요. 뭐 그것까지도 전부 최근 페라리의 신뢰성 문제의 일부입니다마는...
메르세데스는 한동안 페라리/레드불 투톱 체제에 조금 근접하는가 싶더니 스파 예선에선 완전히 엉망이었는데 오죽하면 듀오 모두 알론소보다 예선이 느릴 정도였습니다. 결승은 그렇지 않아서 갑자기 다시 3위의 성능을 내기 시작했는데, 타이어 온도 문제인지 뭔지...
스파 치고는 사고도 리타이어도 적은 경기였는데 그 중 하나인 해밀턴은 첫 랩에 알론소와 접촉하면서 차량이 아주 크게 떠올랐다 떨어졌는데, 일단 계속 달리는 듯 했지만 머지 않아 트랙에 멈춰서고 리타이어 했습니다. 알론소와 접촉은 아주 초보적인 휠투휠 에러여서 전적으로 해밀턴 잘못이긴 했는데, 그래선지 해밀턴도 선뜻 실수를 인정했습니다.
다만 알론소는 경기 중 무전으로 "이 친구는 앞에서 달려서 이기는 것 밖에 할 줄 모른다" 라고 했는데, 아무리 경기 중 열받은 상황이라고 해도 해밀턴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불공평한 폄하였다 생각합니다. 경쟁자 사이라도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할텐데 이번은 좀 너무 나갔다 싶네요.
르클레르보다 앞선 5위는 알핀의 성능으론 진짜 맥시멈 오브 맥시멈이라 생각하고, 오히려 해밀턴의 리타이어(+르클레르의 불운) 덕분에 운 없었으면 7위였을 게 5위로 끝났다고 보이므로 결과만 본다면 오히려 해밀턴에게 감사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이번엔 꽤 반향이 심해서 그랬던지 알론소도 보기 드물게 사과를 했습니다.
올해 페라리나 레드불 한쪽이 앞서서 트랙에서 경쟁이 없었던 게 처음은 아니지만, 시즌 중 이정도로 말도 안 되는 격차를 보여준 건 처음인데 그게 또 레드불이 앞인 경우라서 페라리와 르클레르의 챔피언십은 점점 먹구름만 끼여가는 거 같습니다. 레드불의 압도적 원투 덕분에 WCC가 더 벌어졌음은 물론 르클레르는 WDC 2위까지 페레즈에게 내줬습니다.
솔직히 여름휴가가 끝난 타이밍엔 페라리가 저런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남은 경기를 거의 다 이길 수 있다는 전망을 보여줘야 하는데 현실은 레드불 따라가지도 못 할까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일단 스파랑 특성이 유사한 홈경기 몬자가 제일 걱정인데 티포시들에겐 긍정적으로 시작했던 한해가 어느 순간 여느때와 다름없는 악몽으로 변하고 있군요.
스파에 이어 백투백으로 잔드보르트에서 네덜란드 GP가 열리는데, 맥스 상승가도에 홈경기라 분위기는 엄청날 거 같습니다. 오렌지색 연막으로 트랙이 안 보이는 수준이지 않을까 싶은데, 좀 더 보통 트랙인 여기서도 같은 페이스 격차가 보여진다면 올해 페라리와 르클레르의 가능성은 끝났다고 봐야할 듯 싶습니다.
태그 : F1
덧글
유리한 포지션을 잡고 휠투휠 접촉이 일어나도 상대방만 손해보는 묘기를 잘 부리는 해밀턴인데, 접촉하면 본인만 손해인 포지션에서 그냥 갖다박아버리는 골때리는 행동은 놀랐습니다. 덕분에 러셀을 따라잡기는 더 어려워졌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