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낙 큰 무빙이라 루머로 왠만한 건 다 유출되어 있지만 폭스바겐 그룹의 F1 프로젝트가 드디어 처음 공식 발표됐습니다. 신기하게도 첫 발표는 주역으로 여겨지는 포르쉐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곁다리로 여겨졌던 아우디입니다. 아우디는 2026년부터 F1 팀에 파워유닛을 공급하는 형태로 참여할 예정입니다.
아우디의 참가 형태는 아직 공표되지 않았으며, 올해 말까지 팀을 발표할 거라고 합니다. 현재 드러난 루머로는 이미 자우버 지분을 일정량 획득했다고 합니다. 자우버는 현재 알파로메오 스폰서로 알파의 탈을 쓰고 있는데 이게 그냥 아우디로 바뀌는 거라고 보면 쉽게 이해가 될 듯 합니다. 물론 알파는 파워유닛도 페라리제라 진짜 이름만 올려놓은 거지만 아우디는 적어도 진짜 아우디 파워니 좀 더 나은 모양이 되겠습니다.
자우버는 언제나 자기 이름을 내지 않고 팀을 운영해주는 경우가 많았고, 이번에도 그런 형태가 될 듯 합니다. 본래 90년대 초 메르세데스 워크스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자우버가 정작 메르세데스랑은 파토나고 BMW에 이어 아우디까지, 경쟁 브랜드가 써먹는데서 역사의 아이러니도 느껴집니다. 물론 역사를 되돌아본다면, 메르세데스는 맥라렌/브런 루트를 탄 게 현명한 거긴 했지요.
아우디 역시 레이싱팀은 직접 운영하기보다는 중견팀과 파트너십 형태로 브랜딩만 해서 나온 경우가 많았습니다. 르망의 수많은 우승도 요스트 레이싱과 일궈낸 것이죠. 다만 F1에서도 이런 분업방식이 성공적일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일단 내구레이스에서는 아우디는 거의 차량만 만들고 레이스는 요스트가 하는 식이긴 했습니다. F1에선 섀시와 레이싱은 자우버, 파워유닛은 아우디가 되겠지요.
데이터 수집과 보험을 위해선 커스터머 팀도 있어야 하는데 현재 참전 메이커가 워낙 많아 제로섬 게임인 상태입니다. 알핀 역시 단일공급인 게 마이너스 요인 중 하나라고 보는데, 아우디는 적어도 1개의 커스터머 팀은 확보하려고 할 듯 합니다. 레드불/알파타우리는 포르쉐로 갈 게 확정적인지라 남는 건 기존 메르세데스/페라리 팀 중에서 뺏어와야 합니다.
페라리 쪽의 경우 알파가 아우디가 되어서 잃는 상황에 하스까지 잃을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페라리-하스 파트너는 파워유닛 이상의 것(풍동 임대 등)이기도 하고요. 메르세데스는 커스터머가 많아서 이 중에서 하나를 떼어오는 걸 목표로 할 듯 합니다.
로드카 커넥션까지 생각하면 애스턴마틴이 메르세데스와 결별할 가능성은 제로고, 맥라렌도 좀 낮죠.(맥라렌과는 몇달 전 협상이 날아갔다는 루머가...) 가능성 가장 높은 건 윌리엄스가 될 겁니다. 윌리엄스도 BMW 파트너였단 점에서 아우디는 어째 BMW의 유산들을 주워먹는 형태가 될 거 같네요.
이번 참가 발표에서 놀라웠던 건 파워유닛 개발을 포르쉐와 독자적으로 한다는 거였습니다. 비용효율적으로 당연히 그룹 휘하에서 공동개발되고 브랜딩/팀만 따로 가져가는 게 현명한데 어떻게 이런 파격적인 결정을 했나 잘 모르겠네요. 사실 파워유닛을 공유한다고 해도 두 브랜드 중 한 브랜드는 져야한다는 점에서 약간 이해하기 힘든 더블 엔트리라 생각했는데 돈까지 중복해서 들인다니 논리를 잘 모르겠습니다.
경쟁력 측면에서 아우디의 불리함 또한 확고하긴 합니다. 레드불/알파타우리와 파트너 할 걸로 여겨지는 포르쉐에 비해 파트너의 격이 많이 떨어지죠. 물론 우승 기록도 있는 팀이라곤 하지만 그 1승을 제외하고는 그저그런 중위권 팀인 게 사실입니다. 반면 레드불은 챔피언 팀이고요. 이것만 해도 그룹 내에서 포르쉐와 아우디의 위치를 보여주는 거 같아서 측은합니다.
예산제한 규정도 아우디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파워유닛 개발이야 F1 시즌 참가 전이니까 이론 상 무제한의 자원이 투입 가능하겠지만, 섀시와 레이싱 팀 쪽은 예산제한 때문에 중위권 팀은 상위권으로 올라가기 더욱 힘들어지는 게 현실입니다. 톱팀은 이미 수십년 동안 쌓아놓은 자산과 노하우가 있지만 중위권은 그것조차 부족하니까 같은 돈 써도 당연히 톱팀이 더 유리합니다. 그 점에서 레드불-포르쉐가 자우버-아우디보다 훨씬 전망이 좋을 수 밖에요.
또 F1에서 과거지사는 별 의미 없다곤 하지만, F1과 인연이 없는 아우디의 이력도 여기선 도움이 안 될 겁니다. 아우디가 그랑프리 레이싱을 했던 건 F1이 생기기도 전인 2차세계대전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반면 메르세데스, 포르쉐는 모두 전쟁 후 F1 경험이 있고 나름 실적도 있죠. 포르쉐의 팀으로써 실적은 별로이긴 합니다만, 맥라렌-태그 시절의 실적은 나름 자랑할 만 하죠.
뭐 터보 시대에 혼다 천하였다고 해도 현실은 몇년 동안 시궁창이었던 것처럼 과거의 성공이 오늘날의 성공을 담보하진 않지만, 모터스포츠에서 아우디는 확실히 스프린트 오픈휠 레이싱과는 인연이 없긴 합니다. 파트너의 역할이 중요할텐데 자우버도 오래되긴 했지만 톱팀이었던 적은 없으니...
솔직히 여러모로 별 납득이 안 가는 프로젝트인데, 포르쉐까지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폭스바겐 수뇌부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두 브랜드에 돈을 탕진하기로 한 건지 제 이해능력의 밖입니다. 포르쉐만 참가하면 레드불 파트너라면 그나마 납득이 가는데 아우디로 주의가 분산되는데다 아우디 프로젝트의 설득력마저 의문표이니...
F1에 참가하기로 하는 건 거의 늘 나쁜 결정이고(웃음) 거기다 이런 형태는 더 나빠 보입니다. 메르세데스/페라리는 얼른 포르쉐/아우디 엉덩이를 걷어찰 때를 기다리고 있을 거 같네요. 레드불-포르쉐라도 이기면 다행인데 둘 다 말아먹으면 희대의 병맛 의사결정이 될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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