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스 디스타곤 28/2, 소니 바디에서 어댑터를 가린다 by eggry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열성적인 자이스 팬이며, 홀리트리니티 줌렌즈 3개를 제외하고 모든 단렌즈를 자이스와 보이그랜더로만 갖고 있습니다. 록시아 시리즈를 전부 모았지만 록시아 시리즈의 화각에 약간 틈이 있는 관계로, 그 공백을 다른 시리즈의 렌즈로 채워보려고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전통적인 화각 중 록시아에서 빠지는 건 15mm와 28mm인데, 15mm는 제가 초광각 단렌즈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 스킵한다고 쳐도, 28mm는 채우고 싶었습니다. 물론 록시아에 25mm와 35mm가 있어서, 28mm까지 끼워서 쓰기는 너무 촘촘하긴 합니다. 록시아와 함께 쓴다기보다는 비어있는 28mm 화각을 좀 체험해보고 싶었습니다.

 더군다나 28mm는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와 가장 가까운 화각 아닙니까! 굳이 다른 단렌즈랑 바리바리 싸들고 광범위한 화각을 커버하려는 목적이 아니더라도, 원렌즈 바디캡 출사로써도 실용성은 있을 터입니다. 그래서 자이스에서 28mm 렌즈들을 찾아보긴 하였으나...

 자이스에서 28mm는 흥미롭게도 현행 렌즈는 오투스 뿐입니다. 거대한데다 어댑터 달면 흉측하기까지 한 오투스는 당연히 고려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현행 라인업인 밀버스에는 28mm가 없습니다. 자이스 클래식에는 디스타곤 28mm F2가 있었지만, 밀버스 이후 대거 단종될 때 밀버스 대체품 없이 단종되어버렸습니다.(현재 클래식은 50.4와 85.4만 생산됩니다)



 그러니 구형 렌즈를 쓸 수 밖에 없는데, 자이스 클래식을 구해보든가, 아니면 콘탁스 시절로 넘어가야 했습니다. 그 결과가 위 사진의 세 렌즈입니다. C/Y 디스타곤 28mm F2.8, G 비오곤 28mm F2.8, 그리고 디스타곤 28mm F2 ZE입니다. 세개의 다른 마운트, 다른 시대의 렌즈들입니다. 이 중 비오곤은 얼마전 화질개선 DIY에서 선보인 바 있습니다. C/Y 28/2는 관심이 낮았으나 비교흥미로 구했습니다.

 가장 관심있던 건 역시 디스타곤 28/2입니다. 자이스 클래식이지만 C/Y 시대까지 혈통이 거슬러 올라갑니다. C/Y 디스타곤 28/2는 일명 "헐리우드" 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시네렌즈의 설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설 때문입니다. 거의 기정사실화된 평판에도 불구하고 이 렌즈가 정말 자이스 시네렌즈와 같은 설계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28mm가 슈퍼35 판형에서 표준화각이라는 점, 당시 스틸렌즈 답지 않게 포커스 브리딩이 적다는 점, 그리고 시네렌즈와 유사성을 가진 몇가지 묘사특성이 근거일 따름입니다. 또 당시엔 매우 드물었던 플로팅 포커스 구조를 갖고 있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C/Y 28/2는 닉네임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비쌉니다. 구형인 AEG 버전도 이베이에서 150에서 200만(!)에 달하며, 더 최근인 MMG 버전은 거의 400만에 매물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C/Y 버전보다는 조금이라도 기술적 향상이 있을 자이스 클래식 버전으로 관심이 갔습니다. 정확히는 자이스 클래식이란 이름은 밀버스가 등장한 이후의 이름이니 그냥 자이스긴 합니다만, 어쨌든 디스타곤 28/2는 자이스 클래식으로도 출시됐습니다. 리뉴얼되어 렌즈군 수가 약간 변경되었지만 그림을 보면 전체적인 설계는 거의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플로팅 포커스도 그대로 유지되어 짧은 최단거리와 좋은 근거리 화질을 가집니다.

 자이스 클래식은 여러 마운트로 나왔지만 거의 니콘용인 ZF 혹은 ZF.2 버전과 캐논용 ZE 버전이 99%입니다. ZE 버전의 특징은 전자식 조리개라 조리개링이 없고, 바디 제어로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다른 수동렌즈와 혼합해 쓰기에는 체험의 일관성 면에서 마이너스라 보통은 ZF를 택할테지만, 접점을 통한 손떨방 초점거리 자동입력과 EXIF 기록이 탐났습니다.

 그것만 본다면 ZF.2 버전을 구하면 될 일이지만, ZF.2를 쓰기 위해선 접점 어댑터가 필요한데 캐논에 비해 니콘 접점 어댑터는 종류도 적거니와 비싸니 말입니다. 또 시중 매물이 거의 없는 상황에 남대문 샵의 매물 중에서 골라야 했는데 유달리 싸게 나온 ZE 버전을 발견해서 가격경쟁력도 있었습니다.

 어댑터는 당연히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시그마 MC-11을 생각했습니다. 시그마 렌즈 외에는 렌즈정보가 정확하진 않지만 그래도 캐논 렌즈들이 대체로는 작동되기 때문에 ZE 렌즈도 잘 될 걸로 봤습니다. 포럼에서 오투스 쓴다는 분을 통해 작동여부에 대한 확인도 있었고요. 그렇게 28/2 ZE와 MC-11로 자이스 28mm가 시작됐으나... 당장은 몰랐지만 좀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증상을 보게 됩니다.

 단적으로 말해 무한대가 안 맞는 겁니다. 초점링을 돌리다 보면 점점 원거리로 가기는 하는데, 무한대에 도착하기 전에 멈춰버립니다. 그 결과 무한대와 그에 가까운 원거리가 초점이 안 맞습니다. 한마디로 풍경 사용이 불가능한 겁니다. 물론 주된 활용은 상면만곡수차와 근거리 촬영을 활용한 보케 표현이긴 했지만, 광각렌즈가 퐁경을 못 찍으면 말이 안 되죠.

 이건 어댑터 길이가 정치수보다 약간 길어서 발생하는 증상입니다. 사실 무한대 초점 문제는 싸구려 무접점 어댑터에서 왕왕 생기는 일이지만, 시그마에서 만든 거에 그런 일이 생길줄은 상상도 못 했죠. 캐논용 렌즈를 무수히 만든 시그마가 EF 마운트의 치수를 틀리게 설정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뭐가 문제인지는 밑에 이론을 좀 풀어보겠습니다.

 렌즈 문제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서(콘탁스 만큼은 아니지만 제 개체도 10년은 넘었습니다) 지인의 캐논 5D Mark III로 테스트 해봤으며, 무한대를 찍을 뿐만 아니라 약간 넘어가기까지 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수동렌즈의 정상적인 작동 모습이죠. 무한대에서 안 멈추고 약간 넘어가는 건 마운트나 어댑터에 공차 오류가 있어도 극복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어댑터가 문제라는 결론을 굳힌 뒤, 그럼 다른 어댑터를 구해봐야 하는데 문제는 모든 어댑터가 "우리는 정확하다" 라고 하는 마당이니 어느게 짧은 어댑터인지 알 방도가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무접점 어댑터로 많은 신세를 진 K&F 콘셉트의 제품(Mark IV)을 구했는데, 수동렌즈 쓰긴 하지만 접점을 쓰려니 AF 어댑터라 이것도 15만 쯤 하는 고가입니다.

 허탕 치면 심각한 돈낭비인데, 다행히도 성공적이었습니다. 다만 캐논 바디에서 테스트한 것과 달리 무한대를 넘어가는 모습까진 보여주지 않았고, 무한대에서 멈추는 것처럼 보인다- 정도였습니다. 오버슛 하질 않으니 정말 무한대에 도달했는지는 확신은 없지만 이정도면 맞았다고 할 만한 해상력을 보여줬기에 아예 초점이 나간 게 명확한 MC-11과는 달리 사용 가능한 레벨이었습니다.

 어째서 같은 공식 치수를 이용해 만든 어댑터인데 이런 일이 생길까. 사실 상당히 많은 경우의 수가 있는데 이 중 여러개가 동시에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1) 마운트나 어댑터의 오차. 어댑터의 오차는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무한대 불가의 원인입니다. 공식 치수대로 만든다고 했지만 정확도가 떨어진다든지, 아니면 은색 링의 두께가 문제라든지 등의 형태로 곧잘 발생합니다. 보통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이게 제일 가능성 높은데, 문제는 시그마 정도에서 왜 이런 일이 생겼나-입니다만...

 이는 애초에 MC-11이 시그마 렌즈를 전제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듯 합니다. 시그마 AF 렌즈들은 다 무한대를 넉넉히 넘기기 때문에(핀교정 등을 고려해서) 마운트나 어댑터의 오차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습니다. MC-11은 그래서 허용오차 범위 내에서 긴 쪽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K&F의 경우에는 짧은 쪽인 건데 이게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시그마보다는 더 타사 렌즈를 염두해 두기는 했겠지만, 자이스 등에서 만드는 수동렌즈까지 생각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K&F는 무접점 EF 어댑터도 만들고 있고(조리개 조절을 못 하니 패스했지만) 무한대 초점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웠습니다. 같은 회사라 같은 치수, 같은 공정, 유사한 오차범위로 만들어져서 문제의 여지가 적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직접 테스트 해보진 못 했지만 이로 미루어볼 때 역시나 시그마와 달리 캐논/시그마/기타 회사들까지 고려해 어댑터를 만드는 메타본즈 등도 K&F처럼 무한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거라고 추정합니다. 특히나 메타본즈는 동영상 촬영을 위한 수동렌즈 장착도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에 무한대 문제를 유독 더 신경썼지 않을까 합니다. 단지 메타본즈 어댑터는 너무 비싸다는 게 고려대상이 아니었던 이유입니다.

2) 렌즈의 무한대가 너무 타이트하게 만들어짐.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 캐논 바디에서 무한대를 넘어갔고 엄청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자이스/코시나인지라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길 여지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다만 캐논 바디에서 테스트할 때도 무한대를 정말 정말 조금만 넘어갔기 때문에, 마운트나 어댑터의 오차에 대응할 여유가 부족한 건 사실입니다.

3) 플로팅 포커스 구조. 플로팅 포커스는 오차에 민감해서 약간의 치수 차이에도 큰 차이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것도 주 원인일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4) 센서 스택의 차이. 캐논과 소니는 센서 스택 차이가 있어, 캐논용 광각렌즈를 소니에 쓰면 화질저하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28mm가 이정도로 증상이 나타날 정도로 광각은 아니지만 마이너한 영향은 있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소니의 센서스택은 구형 렌즈의 상면만곡수차를 더 심하게 만든다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5) 바디 손떨림 보정. 캐논 EF에는 없었던 바디 손떨림 보정이 소니는 물론 이제 캐논, 니콘에도 표준입니다. 5축 손떨림 보정은 센서가 앞뒤로도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실제로 수평 쉬프트는 안 하고 요/피치 보정용이지만) 센서가 고정된 바디에 비해 센서와 마운트의 거리가 아주 엄격하진 않습니다. 이는 무한대 초점을 넉넉히 넘어가게 렌즈를 만듬으로써 극복 가능하지만, 말했듯이 자이스 ZE는 무한대가 상당히 타이트하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인 추측은 1이 가장 큰 원인으로, 2, 3, 4, 5가 적은 비중으로 영향은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뭐 3, 4, 5의 문제는 모든 렌즈에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은 이를 완화할 렌즈의 여유 부족(2)과 근본적인 치수 문제(1)이 99.9%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처음엔 캐논용을 산 게 잘못인가 싶기도 했는데, ZF 버전을 가진 유저분도 어댑터 문제를 겪었는 얘길 들었습니다.(그분도 K&F 어댑터로 해결) 이런 걸 보면 디스타곤 28/2 자체의 호환성 문제가 확실히 있는 거 같긴 합니다. 디스타곤 28/2의 경우만 보면 MC-11이 자이스 ZE와 궁합이 안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또 해외포럼에서 21/25/50/85 등을 문제 없이 쓴다는 얘기도 있어 디스타곤 28/2의 특성(상면만곡수차와 센서 스택의 궁합)도 연관이 있어 보이긴 합니다.

 제가 광학 전문가도 아니고 실험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니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에 그칠테고, 그저 문제없이 찍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걸로 만족합니다. 사실 이 렌즈가 상당히 매력있거든요. 제가 가진 렌즈 중 광학적으로 가장 불완전한 렌즈일텐데(저는 상면만곡수차를 싫어합니다. 이 렌즈만 빼고.), 그만큼 재미있는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록시아나 밀버스 버전도 없으니 해결책을 못 찾으면 완전히 포기해야 했을테니깐요.

ps.MC-11 대비 추가 보너스는 렌즈 정보가 제대로 기록된다는 거네요. MC-11은 소니 렌즈로 속이는 형태를 취하다보니 A마운트용 DT 28mm 렌즈로 기록되는데, K&F는 제대로 자이스 ZE로 기록합니다. EXIF 후작업의 수고를 덜었습니다.



덧글

  • swanpark 2022/08/19 23:05 # 답글

    그 zf.2 유저 입니다. zf.2는 15부터 100까지 있는데 니콘 af어댑터인 enf-e1 pro에서도 무한대가 안맞고 다른 어댑터들도 그랬습니다 ㅜㅜ
  • eggry 2022/08/20 06:20 #

    허허, 자이스 클래식들 무한대가 너무 타이트하게 만들어진 거 같네요.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Adsense Wide



2019 대표이글루_IT

2017 대표이글루_it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4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메모장

Adsense Squ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