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2021)+돌비시네마 by eggry


 무수한 크리에이터들의 러브콜을 받아온 SF소설 '듄'의 최신 영화판이 개봉했습니다. 이번 감독은 '시카리오', '블레이드러너 2049', '컨택트'로 유명한 드니 빌뇌브. 빌뇌브 작품의 장점과 한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는 별로 우려도 기대도 없었습니다. 그것보다는 이 장편소설을 과연 이번엔 제대로 장편 시리즈화 가능할 것인가가 궁금했습니다. 사실 영상화 하기에는 아무래도 수많은 축약을 거칠 수 밖에 없기에 얼마나 매끈하게 쳐내면서도 핵심을 추려내느냐가 문제였습니다.

 SF의 거작으로 꼽히지만, 사실 '듄'은 SF보다는 중세궁정암투극에 가깝습니다. '듄'은 분명히 아시모프나 클라크보다는 셰익스피어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권력, 혈통, 생존, 명예와 같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말이죠. 흥미롭게도 셰익스피어도 마녀와 같은 존재를 즐겨 넣었습니다. 그런 초자연적인 능력과 피할 수 없는 운명과의 충돌이란 점에서 '듄'은 더없이 셰익스피어적입니다.

 그런 극히 고전적인 플롯에도 불구하고 영화화된 듄은 매우 현대적인 면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원작도 인류의 역사와 정치를 깊게 파고들어 만들어진 내용이지만, 현대적인 비주얼로 살아난 모습은 정치적으로 더없이 데자뷔를 일으킵니다. 비참하게 끝난 아프가니스탄 철수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 오늘날, 반항적 원주민이 있는 사막행성으로 제국주의 군대가 통치하러 간다는 내용은 현실세계와 분리시키기는 지극히 어렵습니다.



트위터에서 했던 뻘소리

 물론 그런 이미지를 너무 오리엔탈리즘적으로 쏠리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있어서 간신히, 매우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 이어질 비극적인 서사시가 그런 이미지를 희석 내지는 비판적으로 접근했다고 생각하게 도와줄 것 같긴 합니다. 사실 원작은 이것보다 더 원색적으로 오리엔탈리즘적이었지만, 지금은 국제적 관심과 이슈인 반면 그 시절에는 그저 멀고 이국적인 세계와 민족 정도에 불과했다는 게 당시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던 흥미로운 이유일 겁니다.

 구식 플롯과 순진한 서구인의 편견이 작품을 망치는 걸 막기 위해, 영화는 무게감을 부여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연출은 절제되었지만 무게감과 웅장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트 디자인은 종래 통용되던 이국적이고 선정적인 이미지에 비해 훨씬 금욕적이고 미니멀하게 되었는데, 그 타락했다는 하코넨 남작이 그저 살찐 수도원장 정도로 보일 정도입니다.

 영화의 상당부분이 설명충처럼 되는 건 어쩔 수 없기는 합니다. 긴 이야기의 첫 파트이고, 이후에는 좀 더 캐릭터와 이야기 그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겁니다. 세계관과 인물 소개에 시간을 들일 수 밖에 없는데, 지루하지 않게 전개 중간중간에 적당히 버무려 놨습니다. 2시간 45분짜리 영화인데, 비슷하게 길었던 '007 노타임투다이'보다는 저는 조금 덜 지루했습니다. 물론 반대로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액션은 분명히 더 적으니까요.

 고전 대작을 영상화 하는데서 오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듄'은 서장으로써 해야할 일은 충분한 수준 이상으로 해냈습니다. 이전 시도들은 세계관을 설명하는데 압도되어 중압감에 붙들렸던 게 패착이라고 생각하는데, 2021년작은 처음부터 시리즈화 프로젝트를 보장받았고, 일단 첫발을 내딛어야 그 다음이 있다는 걸 잘 이해한 것 같습니다.

 이게 과연 성공적으로 전체 영상화가 가능할까? 라고 의문이 앞섰다는 점에서 '반지의 제왕'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될 수도 있겠다" 라는 가능성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론도 좋고, 흥행도 괜찮을 거 같고, 감독도 의욕이 충만한데다 스튜디오도 대형 프로젝트로써 의지를 갖고 있으니, 이번엔 정말 될 이룰 수 있길 바랍니다.

 '반지의 제왕'도 무수한 영상화 시도에도 불구하고 풀버전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터 잭슨은 우리가 아는 그 3부작을 만들어 냈고, '듄'도 이제는 그런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창작자들의 노하우와 기술의 발전 덕분이지만, 시간의 흐름도 일조했을 듯 합니다.

 2020년대 사람들은 꼭 SF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듄'의 세계를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더라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듄'에서 기원한 SF 설정에 더 익숙해졌고, 흥미롭게도 그 아프가니스탄을 연상시키는 면도 이해에 도움을 주긴 했을 겁니다. 물론 '듄'의 이야기는 실제 아프가니스탄 같은 끔찍한 착각의 결과물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현재까지는 잘 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듄'은 제가 돌비시네마에서 시청한 첫 영화였습니다. 가까운 영통 MX에서 볼까 했지만 극장용 돌비비전이 궁금해서 굳이 코엑스까지 늦은 시간에 갔습니다. 일단 생각보다 스크린이 크지 않다는 게 첫인상이었는데, HDR의 밝기를 위해 스크린을 키우는데 한계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시트는 평소 가던 용산 아이맥스나 영통 MX보다 더 좋았습니다.

 돌비비전의 체험은 그렇게 인상깊지 못 했습니다. 사실 부분적으로는 영화의 비주얼 스타일 때문입니다. 돌비비전의 강점은 높은 컨트라스트와 광색역인데, '듄'은 대비도 낮고 저채도의 영상을 갖고 있습니다. 돌비비전을 발휘하기엔 완전히 상극으로, 그저 몇몇 조명이나 폭발 정도에서만 아 이건 SDR 영사기에선 못 보겠군- 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OLED TV의 돌비비전을 이미 겪은 입장에선 영사기의 블랙레벨의 한계는 유독 아쉬웠습니다. HBO Max도 돌비비전을 지원할 거라는데, HBO Max에 OLED TV로 보는 게 적어도 컨트라스트는 가장 좋은 시청방법일 거 같군요. 블루레이가 나오기 전까진요.

 돌비애트모스는 돌비시네마 말고도 많은데서 들을 수 있지만 만족스러웠습니다. 자잘한 효과음이나 대사는 섬세하기도 하고, 또 저음을 이용한 무게감을 남발하고 있는데 이 부분도 잘 발휘됐습니다. 상영관이 너무 크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그저 더 최신 하드웨어에 더 최근에 튜닝되어서 그런지 영통 MX에서는 이정도 음향이 안 나올 거라는 인상이었습니다. 물론 실제 관람하고 비교한 건 아니고 그냥 어렴풋한 이미지지만요.

 돌비비전의 장점을 발휘하기 힘든 비주얼 스타일이라서, 영상적으로는 레이저 아이맥스가 더 좋은 체험이 될 듯 합니다. 사운드 면에서는 저는 언제나 돌비애트모스의 섬세함과 자연스러움을 저음 폭격보다 더 중시하기는 하지만, 영화 자체가 저음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어서 아이맥스 사운드는 강렬하기는 할 겁니다. 섬세함은 좀 부족하리라 생각하지만요.

 여튼 돌비시네마에서는 '듄'보다는 '007 노타임투다이'를 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산 아이맥스도 예매와 이동의 어려움 때문에 평소 별로 고려하지 않았는데, 돌비시네마도 굳이 영통 MX를 두고 일부러 가는 일은 별로 없을 거 같습니다. 다만 용산 아이맥스보다는 예매가 훨씬 쉽기 때문에 아예 시간표 조회도 안 해보는 용산 아이맥스보다는 좀 더 갈 듯 합니다. 물론 '듄'에서는 효과가 애매했듯이, 좀 더 화사하고 화려한 영화일 경우에 말이죠.

덧글

  • 소시민 제이 2021/10/22 08:20 # 답글

    듄도 스타워즈급 스케일을 자랑 하는데 말이죠...

    옛날 듄도 한번 다시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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