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2021 러시아 GP 결승 by eggry


 간만에 정말 보고 자길 잘했다 생각한 경기였네요. 물론 안 보고 자길 잘했다고 생각한 건 아예 취소되어버린 벨기에 GP ㅎㅎ

 어제 예선부터 비가 오락가락 하면서 변화무쌍한 노면 때문에 꽤 재미가 있었습니다. Q3에서 뒤늦게 말라가는 노면에 슬릭 타이어로 갈아타서 두번째 트라이를 하는 게 관건이었는데 당연히 한번 뿐인 트라이에 이제 막 낀 슬릭이라 적응도 같은데 문제가 많았습니다.

 충격적이게도 그 적응에 실패했던 게 해밀턴이었습니다. 피트 엔트리에서 충돌해 프론트윙을 손상시키고, 슬릭으로 갈아꼈는데 트라이 할 시간은 윙 교체 후에도 충분했지만 타이어 웜업을 제대로 하지 못 해서 허우적거리다가 결국 스핀한 채로 기록도 못 세우고 마쳤습니다. 노리스, 사인츠, 러셀이라는 놀라운 예선 순위였고, 어려운 조건에 젊은 피들의 잠재력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결승도 만만찮게 흥미진진했습니다. 소치 올림픽 파크의 긴 스타트 라인은 런칭으로 점프하는데 최적의 여건을 제공해주지만 사실 이변은 그렇게 많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게 맨 앞에 있는 게 가장 성능 좋은 차들인지라 그게 스타트에서 현저하게 뒤집히긴 힘든 거죠. 이번엔 예선 순위가 좀 뒤섞였기 때문에 직선을 활용해 순위를 뒤집는 모습이 좀 나왔습니다. 1위를 빼앗은 사인츠가 가장 부각되었지만 르클레르 등 대단한 기세를 보여준 드라이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리스의 페이스는 예선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인츠를 첫 스틴트 내내 놓치지 않았고 결국 트랙에서 공격으로 순위를 되찾았습니다. 러셀은 유감스럽게도 재빠르게 순위를 잃었지만, 윌리엄스 성능 상 어쩌겠습니까. 여튼 페라리보다 맥라렌이 빠른 건 몬자에 이어서 확고해져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도 사인츠는 크게 순위를 잃지는 않으면서 경기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순위를 별로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챔피언십 선두인 해밀턴과 맥스의 예선이 망했기 때문입니다. 해밀턴은 Q3를 망쳤고, 맥스는 몬자에서 해밀턴과의 사고로 그리드 패널티를 받자 아예 파워유닛 교체로 최후방 출발 패널티를 받기로 해서 예선에 제대로 참가하지도 않았습니다. 맥라렌과 페라리가 3위를 다투는 상황에 원투가 사라지니 살 판이 난 게지요.

 경기는 후반으로 흘러가, 노리스가 여전히 선두에 끝내 올라온 해밀턴의 승부가 됐습니다. 남은 시간으로 볼 때 해밀턴이 확연히 유리해 보였지만, 그걸 뒤흔든 게 경기 최후반에 내리기 시작한 비였습니다. 비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었기에 선두는 쉽사리 인터로 갈아탈 수 없었습니다. 금방 그친다면 순위를 잃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 와중에 신기한 모습으로는 알론소가 페이스가 점점 좋아지면서 심지어 맥스 베르스타펜(아무리 수많은 추월을 하며 올라왔다지만)을 추월해 P3까지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잃을 게 없는 중하위권은 인터로 도박을 걸었습니다. 슬릭으로 버티기 점점 힘들어지는 가운데, 노리스와 해밀턴 모두 피트월의 피트인 지시를 미루고 있었지만 결국 먼저 들어간 건 해밀턴이었습니다. 피트인 만큼 시간을 잃은 해밀턴은 노리스가 비로 급격히 페이스를 잃거나 스핀하기를 바래야 했습니다.

 처음엔 비가 그정도로 나빠질지 미지수였지만, 결국 비가 심해지면서 해밀턴은 노리스가 코스아웃 할 동안 쉽사리 1위를 차지합니다. 노리스는 그 후에도 아직 버티기로 순위를 방어할까 잠시 생각했던 것 같지만 거의 속도를 낼 수 없는 지경이 되면서 뒤늦게 타이어를 갈아 끼웁니다. 우승 후보에서 7위로 떨어진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드라이 상태로 지속되었다 하더라도 해밀턴이 우승할 가능성이 더 높았던 경기이지만, 날씨 변화가 해밀턴에게 더 쉽게 해줬습니다. 피터지게 싸우는 선두권인 입장에서 겨우 3랩 정도 남기고 타이어 바꾸기는 왠만큼 머리를 식히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최초의 피트인 콜을 두 드라이버 모두 연기했지만, 결국 먼저 머리를 식힌 건 메르세데스와 해밀턴이었습니다.

 노리스의 스피드는 맥라렌의 성능을 생각하면 정말 훌륭했지만, 결국 이 콜이 팀/드라이버 모두 아직 격의 차이가 있다는 걸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 됐습니다. 마침 해밀턴은 100승 기록을 세우게 됐는데 압도적인 우승 같은 건 아니었지만 챔피언의 격을 보여줘서 대기록에 걸맞는 훌륭한 경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노리스에겐 아쉽지만, 오늘은 메르세데스와 해밀턴이 더 잘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맥스는 알론소와도 엎치락 뒤치락 하더니 인터로 빨리 갈아탄 덕분에 결국 2위까지 올라왔습니다. 알론소도 인터로 빨리 갈아탔다면 포디엄도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3위까지 올라갔다는 점이 타이어 교체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자충수로 작용한 거 같습니다. 이미 우승 가능성에서 멀어진 사인츠도 적절히 피트인해서 3위를 차지함으로써, 결국 예선의 돌풍 톱3 중 사인츠만 출발 순위에 어울리는 결승 성적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해밀턴의 우승이 손쉬워 보이는 상황에 맥스는 최후미, 해밀턴으로썬 포인트를 최대한 벌릴 기회였지만 정작 결과는 1,2위로 최소한의 포인트 차이로 끝났습니다. 레드불 머신이 성능이 조금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탈리아나 러시아 같은 난장판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여전히 맥스가 더 유리하다곤 생각합니다. WCC에선 메르세데스가 조금 더 여유가 있지만 페레즈보다는 보타스가 얼마나 해주느냐에 달린 거 같네요.



덧글

  • hukusi 2021/09/27 19:44 # 답글

    저는 드라이버가 냉정한 판단을 세우기 힘든 시점에서 맥라렌 피트월이 강하게 명령했어야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또한 결과론일지도 모르죠.. 노리스는 포디움은 했어야하는 경기인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알론소도 마찬가지로..

    맥스는 빠른 판단으로 2위까지 안착해서 생각하던 최상의 시나리오가 되었네요. 이번에 상당한 포인트격차를 감수했을텐데 레드불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을수 없겠습니다.

    루키의 첫승이냐 베테랑의 역사상 첫 100승이냐의 싸움이었는데, 너무 흥미진진하게봤지만 원숙미의 차이로 예상외로 싱겁게 끝나버려서 아쉽기도하네요 ㅎ
  • eggry 2021/09/28 18:31 #

    맥라렌의 책임이 더 크긴 하죠. 마지막 인터 로또는 해밀턴/노리스 정도를 빼고는 그냥 팔자려니...
  • dhunter 2021/09/28 15:43 # 삭제 답글

    놀랍게도 드라이버 챔피언십 3위가 보타스이긴 하더군요. 이적 확정된 뒤로 엄청 태업한다는 이미지인데 그래도 본전은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 eggry 2021/09/28 18:30 #

    페레즈가 할 땐 더 잘 하는데 말아먹기도 잘해서 그런 거 같습니다. 그리보면 이상적인 넘버2 같지만...
  • ㅇㅇ 2021/09/29 21:04 # 삭제 답글

    사인츠의 활약이 최근 두드러지네요. 잠깐 있다 갈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말뚝을 박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 eggry 2021/10/03 22:27 #

    르클레르가 있는 한 챔프 되긴 어렵겠지만 바리켈로는 안 될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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