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서 빛으로? 기관 투자자의 비트코인 유입, SEC의 리플 고소 by eggry


※ 이 글은 전적으로 가상자산 시장의 동향에 대한 흥미본위의 분석으로 쓰여진 글입니다.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1년에 한번 쓸까 말까 하는 크립토 이야기. 연말에 방콕해서 게임, 넷플릭스 하는데 집중력도 좀 떨어지고 해서 오랜만에 주제를 꺼내봅니다. 마지막으로 쓴 게 무려 18년 말이니까 2년 됐군요.

 한국에서는 최근 특금법 제정으로 가상자산으로 명칭이 공식적으로 정해졌습니다만, 가상자산이란 용어는 응용보다는 자산적인데 비중을 둔 용어라 생각해 조금 더 넓은 의미를 가진 크립토를 통용하려 합니다. 유틸리티 토큰을 포함한다는 의미로 칭하는 것입니다만, 물론 현재 실용화된 유틸리티 토큰은 없다고 봐도 무방한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기관 투자자의 비트코인 유입

 올 한해는 비트코인의 자산으로써의 의미, 더 노골적으로는 가격 지지와 수요의 가능성을 확인했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극적인 사건은 역시 3월 중순, 주식시장이 폭락할 때 무려 50% 이상 하락했던 사건이 되겠죠. 비트멕스가 먹통이 되었고 사람들은 엄청난 손해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한 해가 끝나가는 지금은 당시 최저점인 3500달러의 7배 가량인 25000달러 지점에 도달해 있습니다. 물론 거래소마다 당시 저점의 차이는 있고 워낙 순간적이었던 것도 있지만, 5000달러 가격은 며칠 정도 지속되었으므로 대충 5배 정도는 적정한 Lowest to Highest라고 할 수 있겠죠.

 전통시장의 폭락이 증폭된 듯한 폭락을 보았음에도, 가격회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주역 중 하나가 올해 중반에 비트코인 투자를 천명한 폴 튜더 존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외에도 스탠리 드러켄밀러, 라울 팔 등 거물투자자들이 비트코인 투자를 시인했습니다.

 또다른 주역은 본래 데이터분석 소프트웨어를 만들던 마이크로스트래티지가 비트코인 매수를 공격적으로 한 것인데, 사실 전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별로 믿음직스러운 회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CEO인 마이클 세일러도 그렇고... 원래 본업이 투자, 투기가 아닌데 회사 현금보유를 비트코인으로 바꾸겠다는 식의 결정을 하는 회사는 적어도 정상적인 경영의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죠.

 실제로 마이클 세일러의 경영능력이 영 별로였으며, 실적부진에 주주들이 불만스러운 가운데 충동적인 도박성 결정을 내린 게 어쩌다 운이 맞아 떨어진 거라는 견해가 타당하다 생각합니다. 어쨌든 기관의 매수형태 중 하나이고, 상승압력으로 작용한 건 사실입니다만, 아직은 기업들이 자산 포트폴리오 편성에 비트코인을 포함하리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 형태의 기관 투자가 들어오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직접 매니저들을 굴리는 거물 투자자들, 헷지 펀드, 그리고 별로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공적 경로의 비트코인 수요가 '그레이스케일 트러스트'를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레이스케일은 흔히 오해하는 것과 달리 자의적으로 코인을 매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레이스케일은 신탁이며, 코인과 위탁을 포함해 패키징한 상품으로 파는 것이죠. 실질적으로 창구가 제한적인(신탁은 단순히 증시 앱에서 거래할 수 없습니다) 펀드에 가깝습니다. 즉 그레이스케일의 수요는 그냥 개인일 수도 있고, 기업일 수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그레이스케일 경영이나 투자방침의 결과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마이크로스트래티지 같은 모험주의적인 행태보다는 더 실질적인 시장 참여라고 볼 수도 있지만요. 그레이스케일의 매수세는 좀 더 순수한 다방면에서의 시장유입을 의미합니다. 물론 저로써는 과연 직접 매수하는 대신 수십%나 되는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메리트가 무엇인가 의문스럽긴 합니다. 프라이빗 월릿을 이용하기 위한 기술지식이나 보안 우려가 없고, 약간 더 안전하기는 하겠지만요.

 공적인 경로로 비트코인 수요가 늘어난 것은 충격적인 가격하락에도 방어 및 회복을 해낸 것,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부양책, 양적완화 때문에 현금의 가치가 하락하고 유동성이 증가한 것, 전통적인 헷지 자산인 금은이 증시 대비 만족스러운 실적을 내지 못 한 점 등 여럿 있겠습니다.

 어쨌든 비트코인은 아직까지 큰 변동성을 가진 자산입니다. 위로든 아래로든 말이죠. 하지만 12년 동안의 폭락과 폭등의 역사 속에서 0로 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더 널리 퍼진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거물 참여자들의 등장으로 가격 지지는 더 탄탄해지겠죠.

 그렇다고 비트코인의 변동성이 어디 갈 거라고 기대하진 마십시오, 광기의 펌핑과 더불어 20%, 30%의 하락은 여전히 찾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초기 기관 투자자들은 장기투자 여력이 있으며, 변동성을 이겨내고 장기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이것이 개미들을 꼬시기 위한 블러핑일까요? 아니면 비트코인이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전조일까요?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겠죠. 저 개인적으로는 17년부터 비트코인을 관찰해왔고, 소액 투자 및 트레이딩도 하고 있습니다. 수익에 대한 것보다는 이 새로운 실험을 목격하고 참여하는데 더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한편 비트코인의 수용 확대와 반대의 사건도 최근 일어났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리플 사를 고소한 것입니다.


SEC, 리플을 고소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리플 CEO는 SEC가 자신들을 고소하려 하고 있으며, 맞서 싸울 거라는 트윗을 올립니다. 물론 그 트윗은 자신들만이 아니라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전체 크립토를 위협하려는 것이라거나, '중국이 컨트롤하는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미국산 XRP' 등의 선동적인 표현이 들어가 있어 크립토스피어의 비난과 조롱을 받았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SEC는 리플을 고소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며, 장문의 고소장을 공개합니다. 고소장은 너무 길기 때문에 파이낸셜 타임즈의 요약 및 해석 기사를 보는 게 낫습니다. Ripple: The SEC filing highlights(FT.com)

 리플이 XRP(보통 토큰도 리플로 통칭됩니다만, 이 글에선 회사명 리플과 토큰 XRP로 공식명을 따르겠습니다)를 발행한지 8년이나 됐는데 뭐 하다 이제서 하느냐는 불만들도 보입니다만, 고소장 내용을 보면 이 모든 게 그냥 오랜 증거 수집기간이었을 뿐이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 고소내용이 전부 사실은 아닐 수 있고, 혐의로 주장하기에는 애매한 것들도 있겠지만 말이죠.

 일단 XRP는 당초부터 유가증권 혐의가 강했습니다. SEC의 고소장에도 이미 발행 전에 자문 변호사들이 2차례에 걸쳐 경고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고소장의 대부분은 증권법을 우회, 무시하는 리플의 행태와 XRP를 팔고 배포하기 위해, 심지어 시세를 조작하려고 온갖 술수를 다 쓴 리플의 이력입니다.

 논점을 정리하자면, SEC는 리플이 실제 실용성이 없는 XRP의 '장래의 사용성'을 내세워서 유틸리티 토큰으로 포장해왔으나, 실제 이를 발행, 매매, 매매금을 이용한 형태는 증권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리플의 운영자금 대부분은 약간의 초기 직접투자 이후로 모두 XRP 매도에서 나왔습니다.

 물론 리플이 오랫동안 반박해온 것과 같이, XRP 토큰에는 정식 증권과 같은 계약이 없습니다. 주주로써의 권리도, 금리도 명시되어 있지 않죠. 표면적으로 XRP는 그저 매매자들이 자유의지로 거래한 것이며, 장래의 실용화 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격상승의 가능성을 보고 매매한 것입니다.

 하지만 계약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여전히 책임을 물을 수 있긴 합니다. SEC가 XRP가 화폐로써 불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리플이 오랫동안 강조한 그 송금 네트워크에서의 실용성이란 부분이 실제로 구현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리플은 브로커를 통해 XRP를 매매하면서 장래의 실용성, 가격상승 등을 간접적으로 홍보하였기 때문에 구두계약이라고 볼 수 있다고도 합니다.

 리플이 XRP로 자금을 확보한 형태는 분명히 증권의 그것입니다만, 정작 구매한 자들에게 계약에 의한 권리가 없는 건 사실이기는 합니다. 구두계약이나 암묵적 계약이란 개념이 실제로 법정에서 통용될지도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증권법에서 중요한 건 기업이 증권법을 회피하면서 유사증권을 발휘해 자금을 확보하는 걸 막는 것입니다.

 XRP가 증권의 조건을 100% 충족시키지 않은 것은 우회시도의 결과일 뿐, 그게 증권법에서 피해갈 수 있는 이유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또한 그 관점에서 본다면 증권의 형식을 취했으나, 보유자들에게 증권의 권리는 부여해주지 못 한 사기행위로 몰릴 수도 있습니다. 사실 피라미드, 다단계의 전형적인 형태이기도 하죠. 결국 미승인 증권과 사기혐의 둘 사이에 끼여버리는 상황입니다.

 SEC의 고소장은 물론 고소장일 뿐, 실제 판결이 없다면 주장에 불과합니다. 사실에 근거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아직 리플과 XRP에 대한 법적 강제력은 없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을 불러오기는 충분했습니다.

 이미 SEC 이슈로 XRP 포지션을 정리했다고 공지한 헷지펀드가 나왔으며, 중소거래소들이 XRP 거래를 정지하더니, 어제는 대형 거래소인 비트스탬프가 미국 고객을 상대로 XRP 거래와 입금을 중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물론 거래 정지는 곧 상폐는 아닙니다. 하지만 몇개월 안에 합의에 도달하지 못 한다면 법정공방이 수년이 걸릴 수도 있는 이상, 실질적인 상폐나 마찬가지입니다.

 비트스탬프의 적극적인 대응에 이어, 미국 최대의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에서도 XRP가 정지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무엇보다 코인베이스는 IPO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SEC를 상대로 증권법 상 문제가 제기된 토큰을 계속 취급할 수는 없겠죠. 코인베이스는 입장의 민감함을 생각하면 아예 거래정지가 아니라 상장폐지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최악의 결과, 그러니까 SEC가 승소하고 XRP가 증권으로 확정된다고 하더라도 리플과 XRP가 완전히 망해버리는 건 아닙니다. SEC는 미국 기관이라 당연히 미국 내에서만 영향력이 있습니다. 물론 일부 국가들은 SEC의 가이드를 참조해서 따르기는 하지만요. 그래서 리플이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긴다거나 하는 얘기도 나오는 것이죠.

 리플은 본사를 옮길 수도 있고, XRP는 미국에서 퇴출되지만 해외에선 여전히 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없는 코인의 성장 가능성은 누가 봐도 제한적이죠. XRP가 허용되는 나라에서도 그렇게들 생각할 겁니다. 기적적인 역전극이 없다면 시총 2위까지 도달했던 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기억이 되겠죠.

 승소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고, 타협안도 적절히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리플은 그동안 XRP로 너무 많은 돈을 벌었고, 너무 많은 사람이 매매했습니다. 이걸 소급적으로 적용해 벌금이나 배상안을 낸다는 건 기업으로써 치명적일 것입니다. 증권으로 인정받는다고 증권거래소에 상장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건 벌금을 내고, 정식 IPO 절차를 거친 뒤에나 할 수 있는 얘기죠.

 그리고 증권이라면 당연히 크립토 거래소에서는 상장폐지 되어야 합니다. 증권거래소로 승인받지 않았기 때문이죠. 어쨌든 증권으로 낙인찍히는 건 어떤 형태로든 리플과 XRP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입니다. 리플은 물론 XRP가 유틸리티 토큰이라는 점을 강조하려 할 것입니다.

 문제는 거래소나 지갑 사이의 사적인 송금 외에 어떤 실사용 사례도 없다는 것이겠죠. 리플의 다른 송금, 네트워크 기술들은 실제로 XRP 없이도 작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은행 파트너들도 XRP는 실제로 받아들이지 않았죠. 반면 리플이 XRP를 자금확보에 이용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칩니다.


미국 주도의 크립토 신세계 질서

 리플에게 더 여건이 어려운 건 이것이 중대한 본보기란 것입니다. 크립토 코인 형태로 증권법을 우회해 자금확보를 하는 시도는 단순히 크립토에 대한 탄압이 아닙니다. 증권시장의 질서와 규율의 재확인이죠. 정권이 바뀌면서 SEC 의장이 반 크립토에서 친 크립토로 바뀐다고 하는데, 그게 리플 소송을 뒤엎을 가능성이 낮은 이유기도 합니다.

 SEC는 크립토를 신장하거나 탄압하기 위해 있는 곳이 아닙니다. 증권법과 증권시장을 지켜내기 위해 있는 곳입니다. 이건 불변의 진리이며 크립토에 대한 스탠스 같은 게 아닙니다. 애초에 크립토에 대한 탄압으로 일반화 하려고 해도, 가장 큰 크립토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같은 혐의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사실 그런 점에서 이 모든 퍼즐은 2020년 이후의 미국 크립토 시장의 교통정리를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8년 동안 내버려 두다가 왜 하필 지금이냐- 라는 질문에 물론 증거 확보를 얘기하긴 했지만 시기적으로도 이보다 더 놔둘 수는 없게 된 것이죠. 그 이유 중 하나는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매입하기 시작한 기관 자금들입니다.

 이 기관 자금들이 XRP에까지 손을 대기 시작하면, 회색지대인 상황에서 문제를 종결짓기 어려워지게 됩니다. 문제가 어디까지나 리플과 소규모 투자자들 중심일 때 종결지어야 하는 것이죠. 이건 XRP 하나만의 문제도 아니고, 17년의 붐 이래로 대부분의 알트코인은 정도만 다르지 기업 법인과 중앙발행 형식을 취해왔습니다. 그러니 상당수 알트코인에 대한 판례 만들기도 겸합니다.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매입한 것은 SEC에 의해 증권 혐의를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확실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에 따라 그레이스케일 트러스트와 같은 거의 펀드에 가까운 신탁 상품도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헷지펀드는 이미 사적으로 하고 있었고, CME의 선물거래나 옵션거래도 존재하는 등, 사실상 ETF 외의 모든 전통시장 금융상품이 마련된 상황입니다.

 그동안 기관투자자들이 덜 들어왔던 건 어디까지나 비트코인 그 자체에 대한 신뢰 부족이지, 창구가 없어서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런 무수한 창구의 존재부터가 비트코인은 모든 금융규제에서 승인되어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진 별로 활성화되지 않아서 회색지대를 남겨뒀지만, 큰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규칙을 확실히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정책 대로라면 XRP를 시작으로, 중앙발행식 토큰들의 전통시장 데뷔는 원천 차단될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증권혐의로 크립토 거래소에서도 상장폐지될 것입니다. 결국 미국에서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라이트코인, 비트코인 캐시만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크립토로 남게 될 것입니다.

 최근 크립토 구매 서비스를 시작한 페이팔이 딱 이 네가지만 지원한 것을 아시나요? 페이팔이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걸 이미 알았거나, 적어도 예상했다는 증거라는 건 말할 것도 없겠죠. 전통 금융체계에 소속된 기관으로써 그들이 취급할 수 있는, 그리고 취급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은 크립토는 법적으로 따져보면 애초에 뻔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방향은 결국 비트코인(과 그 동생들)을 실질적으로 월스트리트의 투기자산으로 묶어두는 것입니다. 사이퍼펑크 운동까지 갈 것도 없이, 극단적인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들은 비트코인이 그저 금융상품으로 전락하는데는 혐오감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덩치가 커지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는 맥시멀리스트도 있습니다.

 어쨌든 월스트리트와 규제기구의 도움 없이는 크립토는 빛의 영역으로 나갈 수는 없습니다. 비트코인 창시의 무정부주의 정신은 훼손되겠지만, 그걸 신경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결국 비트코인을 하는 사람 대부분이 기대하는 건 투자수익입니다.

 그리고 제도권에 편승하는 것은 투자수익을 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법정화폐의 종말 같은 걸 진지하게 생각하고 비트코인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냥 자산방어 정도일 뿐이죠. 새 SEC 의장이 친 크립토인 건 어디까지나 비트코인, 이더리움 상품을 내기 쉽게 만들어줄 뿐(정말 친 크립토라면 바이든 임기 중에 ETF가 승인될 듯 하군요), 중앙발행식 알트코인과는 상관 없는 일일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궁극적으로 미국인들이 대부분의 알트코인을 포기하게 하고, 대신 4개의 탈중앙 코인으로만 집중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시총 측면에서 이 빅4(사실 BCH는 여기 들어가기 좀 뭐합니다만;)의 규모는 미국시장의 선택과 집중에 힘입어 범접할 수 없는 규모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군소 알트코인들이 사라지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SEC의 공세가 계속된다면 미국에선 자리잡을 수 없을테죠. 그리고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돈이 많은 나라입니다. 미국의 자금 없이 크립토 헤게모니, 뭐 정확히는 시총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중국? 중국 정부는 탈중앙은 물론 사기업이 과다한 영향력을 가지는 것도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중국에 기대할 디지털 금융 혁신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뿐입니다. 심지어 CBDC는 흔히 얘기하는 크립토와는 다른, 통화정책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저는 미국이 규제하는 동안 중국이 혁신을 차지할 거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CBDC를 준비하고 있지 않은 선진국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며, 디지털 위안은 여전히 중국과 위안의 한계에 제약을 받을 것입니다. 게다가 CDBC의 발행은 중앙은행->시중은행->시장이라는 오랜 법정화폐 공급 흐름을 뒤흔들어 중앙은행이 너무 많은 걸 직접 하려다 망칠지도 모른다는 우려 역시 있습니다. 디지털 달러는 디지털 위안에 대응하는데 전혀 급할 게 없습니다.

 물론 미국과 중국 밖에서 크립토에서 예상치 못한 혁신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미국, 중국이 조이는 상황에서 과연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들이라고 그냥 놔둘까 싶긴 하지만요. 저는 결국 대부분의 주요국가에서 지금의 회색지대는 자취를 감출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조세회피처 같은 곳들은 크립토에도 생기겠지요. 하지만 그곳들이 21세기 금융의 중심부가 될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덧글

  • 2020/12/27 23:20 # 삭제 답글

    고견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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