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 2. 10.-13. 교토 사진 여행기 6부 - 아다시노넨부츠지
여행 막날. 저녁 비행기 타려면 해 지기 전에 떠나야하니 일정을 빠듯하게 잡을 순 없습니다. 원래 3박 4일 일정 중 첫날은 저녁 도착이라 일정 없음, 나머지 이틀 계획, 막날은 혹시나를 위한 스페어로 놔둔 건데 눈이 금방 사라져서 계획은 다 허튼 게 되어서 막날은 시간이 남게 됐습니다.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 가볼 만한 곳 생각하다가 황궁이 생각났네요.
요즘은 교토 고쇼는 거의 상시개장 중입니다. 물론 가이드 투어는 추가적으로 더 들어가는 곳이 있고 예약제지만요. 그래서 제일 만만한 교토 고쇼를 중심으로, 별궁 중 두군데 정도 노려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교토 고쇼에서 가까운 센토 고쇼가 1순위로 꼽혔고, 카츠라리큐와 슈가쿠인리큐 중에서 골라야 하는데 동선도 그렇고 볼거리도 그렇고 카츠라리큐로 기울었네요.
투명성 없이 선발하기로 유명한 황궁 관람이지만 시기는 좋았습니다. 일단 겨울이라 정원이 중요한 이런 곳에 관람객이 적고, 코로나19가 막 퍼지기 시작하던 상황이라 관광객도 많이 줄었죠. 예약이 전달 1일에 처음 가능해지는데, 이전에 4월 갔을 때는 정말 순식간에 쫑나더랍디다. 그런데 이때는 다음날 시간대도 비어 있는 게 있을 정도.
숫자가 있으니 신청하면 무조건 되겠지? 그런 방심은 금물입니다. 투명성 없는 신원정보 기준 판단에다, 심지어 선착순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날 신청한 사람 중에서 궁내청이 괜찮다고 생각한 사람만 다음날 발표되는 식입니다. 국적, 직업, 나이, 여권번호 등등 꽤 자세한 내용을 넣어야 하는데, 그 덕분에 한국인, 중국인을 차별한다는 의심도 적잔히 있습니다만 투명성이 없고 시차가 있는 발표 방식이니 그냥 경쟁이 심했나보다-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저는 지난번이나 이번에나 여러 시간대에 응모했고 이번엔 각 장소에 하나의 시간대만 당첨됐습니다. 이건 17년 4월 때하곤 조금 다른데, 그때는 중복 당첨이 되서 취소하기도 했거든요. 이번이 그때보다 여유로운 상황인 걸 생각하면 궁내청에서 전체 궁궐 관람 응모를 취합해서 중복 개인정보에 따라 자동으로 1회만 뽑히도록 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너무 가까우면 이동이 불가능할까 걱정이었는데 그렇진 않았네요. 어쨌든 시작은 센토 고쇼입니다.



아침의 교토 교엔. 사람이 정말 없습니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신사 구경이나 하기로. 교토 교엔 안에 위치한 고토히라 신사입니다. 지금은 교토 고쇼와 센토 고쇼 정도로만 궁궐 영역이 좁혀지고, 나머지는 민간에 공개된 공원(황실의 정원이란 의미의 교엔)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교토 교엔 전체가 당연히 황실의 영역으로 범인은 쉽사리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외궁 같은 거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영역에 있는 신사이니 뭔가 거창한 게 있을까 싶지만 그런 건 없습니다.










사람 하나 없는 경내. 지붕에 떨어진 꽃봉오리와 무대에 올려져 있는 나무껍질 덩어리가 기억에 남네요.


다시 나와서 걸어 갑니다. 조선 궁궐로 치면 정전에 해당하는, 교토 고쇼에서 가장 큰 건물 '시신덴(紫宸殿)'이 정면으로 보이는 대로. 과거에는 이 길에서 다양한 행차나 행사가 이곳에서 이뤄졌겠지요. 재밌는 점은 시신덴이 교토 고쇼의 중심 축에 위치한 건물이 아니라는 것. 원래는 조선의 정전처럼 부지 중심축에 위치한 다이고쿠덴이라는, 의식을 중시한 건물이 따로 있었습니다.
수많은 화재, 자연재해, 전란을 겪으면서 결국 다이고쿠덴은 쇄락하고, 본래는 덴노의 사적인 거주공간(내궁)이었던 시신덴이 의식의 주 장소로 떠오르게 됩니다. 카마쿠라 시대에 내궁이 전소된 뒤 내궁 전체가 재건되는 대신 시신덴만 재건되고, 황궁의 중심 건물이 되었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1855년에 재건된 것. 천도 전에는 즉위식도 시신덴에서 이뤄졌습니다. 지금은 덴노도 도쿄로 가고, 정문(켄레이몬(建礼門)이라고 함)은 정말 황실가라도 방문하지 않는 한 이용되지 않습니다. 관광객용 출입문은 서쪽에 있는 기슈몬이죠.
어쨌든 시신덴은 세계는 물론 일본 기준으로도 최대의 건축물 같은데 낄 정도로 크지 않습니다만(당장 교토에만 해도 히가시혼간지가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죠. 나라의 토다이지 대불전도 있고...) 드넓은 공원 부지와 대로 끝에 위치한 궁궐은 기록과 무관하게 보는 이들에게 부와 권세를 느끼게 합니다. 옛날에는 더했겠죠.

이쪽은 센토 고쇼의 외벽. 모퉁이 돌아 가면 입구가 있습니다.(북쪽)

신분 확인 등을 거쳐서 대기실에서 주의사항 등 안내를 받는 중. 응? 그런데 가이드가? 왠지 익숙한 얼굴이라 했더니 3년 전에 슈가쿠인리큐에서 봤던 사람이네요.(2017. 3. 29 ~ 4. 8. 간사이 여행기 14부 - 교토 황궁 관람 4탄 슈가쿠인리큐) 한곳에 고정이 아니라 로테이션 하나봅니다.

가이드 따라 들어갑니다.



센토 고쇼는 과거 상황이나 친왕, 덴노의 어머니 등이 거주하던 곳이지만 소실된 뒤로 대부분의 건물이 복원되지 않았습니다. 거주할 수 있는 건물은 제일 처음 나오는 이게 유일한데, 현재는 황족이 교토를 방문할 때나 국빈이 방문할 때 숙소로 이용됩니다. 당연히 안은 볼 수 없음.

닫힌 서쪽 문과 나무.

가이드 따라 들어갑니다.

아까 본 곳은 마차나 자동차(현대의 경우)가 들어오기 위한 대문이나 로비 같은 곳이고, 실제 거주공간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고쇼에서 보이는 양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무 2개 심어져 있는 것까지.


나무에 의미가 있겠지만... 기억도 안 나고 귀찮아서 찾아 보지도 않았습니다. 일단 봄이 되면 예쁠 거라는 생각만 듬. 그래도 막 피는 중이네요.

촉촉하게 젖은 소나무.










본래라면 대충 황가의 1인자(섭정 격 상황), 2인자(정말 쉬는 상황), 3인자(친왕) 등등이 머물던 곳이니 만큼 상당한 공간이었을 센토 고쇼지만 소실된 뒤 정말 최소한의 건물과 정원만 복원됐기 때문에, 실상 대부분의 땅은 그냥 연못을 중심으로 한 공원입니다. 뭐 도쿄로 다 이사간 지금은 더 커질 일은 더욱 없겠죠. 현대에 황태자용으로 쓰였던 아카사카 토구고쇼(동궁어소)가 조만간 아키히토 상황의 거처로 바뀌게 되면 센토 고쇼라는 이름 자체가 그쪽으로 넘어갈 예정입니다. 그럼 여기 이름은 어떻게? 그건 저도 모릅니다.



중간중간 물이 빠져있어 뭔가 했더니 연못 바닥을 대청소 중이라서 물을 빼고 있다고 합니다. 제일 큰 연못은 아직 채워져 있지만 작은 연못들은 물을 빼서 바닥이 드러나 있습니다.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또 날이면 날마다 볼 수 있는 모습도 아니죠. 귀한 구경 한 셈 치기로... 어차피 겨울이라 정원이 딱히 멋지지도 않습니다.

콸콸콸... 여긴 청소 끝난 곳에 물을 채우고 있다네요. 연못 채우려면 이정도론 며칠은 걸리겠죠. 예전에는 연못 물로 지하수를 썼다고 합니다만, 지금은 비와호에서 소수로를 통해서 끌여다 오는 물을 쓰고 있습니다. 교토의 생명줄이 된 비와호.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신사.

목조 다리. 관람로 전체에 자갈을 깔아놨는데 다리 위에도 깔려 있습니다. 참고로 다리 이름이 土橋, 흙다리입니다.

궁궐의 정원이라기엔 다소 경악스러운 벌목 된 나무 밑둥이. 정원 정비의 일환인 듯 한데 파내지 않고 저렇게 잘라버리면 미관 상 안 좋지 않은지.

돌로 된 야츠하시. 등나무가 있지만 겨울이라 썰렁...





연못가에 깔려 있는 어마어마한 돌무지. 이름도 무려 스하마(洲浜, 퇴적해변)입니다. 비슷한 크기의 둥글고 납짝한 돌이 엄청나게 있는데, 견본이 된 돌과 비슷한 돌을 가져오면 쌀 한되를 준다고 했더니 이렇게 모였다고 합니다. 뭐랄까, 중국이나 일본의 권력가와 연관된 일화들은 정말 천하를 호령하고 군림한다는 말이 어울리는 얘기들이 많다 싶습니다. 물론 그런 허무맹랑한 거대한 일화는 백성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거겠지만요.




야츠하시. 겨울이라 등나무 잎은 하나도 없지만 이끼는 멋지네요. 초여름에 등나무와 이끼가 같이 있으면 정말 환상적일 듯.

돌다리.

센토 고쇼의 정원에 그나마 있는 건물은, 당연히 정원이니 찻집입니다. 정확히는 차정(茶亭, 챠테이)라는 건데, 사실 이정도 규모와 벽이면 날씨 괜찮을 때 기거하기에는 충분한 수준인 듯 싶습니다. 물론 정말 지붕과 기둥만 있는 수준의 정자도 있습니다.

챠테이 앞에는 동그란 돌에 구멍이 뚫려 있는, 기묘한 석등이 있습니다. 사실 이 석등은 통칭 조선등롱(朝鮮灯篭)으로, 임진왜란의 악명 높은 원쑤 가토 기요마사가 전리품으로 바친 거라고 합니다.


센토 고쇼의 특이한 유적지(?)인 봉분. 일단 묘지인 건 확실하다는데, 궁궐 한가운데라는 미묘한 위치 문제도 있고 해서 연구는 되지 않는 듯 합니다. 위치도 기묘하지만 흙더미를 돌로 둘러놓는 건 한반도식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사람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이런 양식이 보편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묘지에 돌 둘러서 벽 만드는 게(흙무덤이 안 허물어지려면 사실 당연한 선택이죠) 인류보편적이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만.


다른 신사. 이것도 기원과 정체가 불분명하다는군요. 그렇다고 허물지도 않고 놔두는 건 신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외 때문인지...


묶인 돌. 다른 정원에서도 종종 보는데 들어가지 말라는 표식입니다.

연못을 한바퀴 돌아서 거의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출발지점 근처에서 봤던 보트가 있는데, 마침 하얀 새가 있어서 그림을 만들어 줬네요.

여긴 흙벽으로 된 찻집. 관람 종점입니다.

이걸로 센토 고쇼 관람은 끝. 카츠라리큐 가기에는 애매하게 시간이 남으니, 일반공개인 교토 고쇼도 조금 보고 가기로 합니다.






궁궐이라곤 하지만 교엔 구역은 교토 중심에 위치한 공원이라 할 수 있는데, 사람이 이리도 없습니다. 겨울+코로나 공포+비가 겹치면서 아주 그냥...

교엔에서 이동 중인 궁내청 순찰차. 궁내청은 일본 경찰청/경시청과 별도의 치안 체계와 인력을 갖고 있습니다. '황궁경찰'이라고 하며, 단순 경비 수준에서 요인 경호원까지...

소방차가 따로 소방대가 아니라 황궁경찰 소속인 게 재밌음. 빨간색보다 흰색이 많은 것도...

교토 고쇼 입구. 일반공개로, 동시 입장 인원 수만 컨트롤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별로 안 많아서 당연히 대기 없이 들어감. 번호표는 걸고 다녀야 합니다.


소나무와 나무껍질 지붕.


이건 좀 최근에 복원된 듯한 색이군요.




교토 고쇼의 중핵 건물 시신덴.


작년 즉위식에 쓰인 옥좌(타키미쿠라와 미쵸다이)의 사진. 봄엔가는 일반 공개도 할 예정이라는 듯 하던데...(이미 지나갔습니다만) 이제 덴노도 황태자도 도쿄에 있지만, 타키미쿠라는 교토 고쇼에 있으며 즉위식 때 교토로 오는 대신에 타키미쿠라가 도쿄로 이송됩니다. 교토에서 즉위식을 한 마지막 덴노는 쇼와(아키히토)입니다.

문 크구먼...



















앗!! 잠깐 해 났다! 정원 엄청 찍었습니다. 교토 교소 관람은 이걸로 끝인데, 갑자기 허겁지겁 움직여야 했던 이유가 배차간격의 착각으로 카츠라리큐에 간신히 갈 수 있을 수준의 시간이었기 때문에...
다음 편이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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