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로 지브리 다시 보기(17) - 마루 밑 아리에티 by eggry


 미야자키 하야오 작을 봤으니 다음은 논 미야자키 하야오로... '마루 밑 아리에티' 입니다.


- 80년대 후반부터 고령인 미야자키/타카하타의 승계를 위해 신진 감독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계속 됐는데, 의외로 계속 외부 인사들에게 기회가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와중에 콘도 마사후미는 요절해버렸고... 현재 지브리 출신 중에서 그나마 이정도 자리 올라와서 계속 남아있는 건 '마루 밑 아리에티'의 감독을 맡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정도입니다.


- 요네바야시는 애니메이터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의 부모가 신들의 음식을 먹는 장면입니다. 사실 감독은 제작, 각본, 연출 등에서 올라오는 경향이 강한 걸 생각하면 애니메이터로써 감독으로 올라간 건 지브리라는 이름의 무게감을 생각하면 의외의 일이긴 합니다. 그 때문인지 각본이나 내러티브에선 조금 약한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 '마루 밑 아리에티'는 오래된 영국 판타지소설 The Borrowers를 원작으로 하는 것으로, 원작이 오래된 만큼 미야자키 하야오도 토에이 시절에 애니메이션화를 건의한 적이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21세기가 되서 다시 꺼내지게 됐습니다. 원작 이름도 그렇고 애니메이션의 일본 원제(借りぐらし)도 물건 빌리는 소인을 나타내는 의미입니다.

 숨어 사는 소인이라는 아이디어는 여러모로 굴리기 편한 것으로, 가볍게 아이들용 판타지로 하기도 좋고 진지한 메타포로 쓰기에도 좋고... 원작 소설은 안 봤는데 2차세계대전 공습기의 런던 시민들의 경험을 은유한 것이라고 하는군요. 애니메이션에서는 '멸종 위기에 처한 소인족'이라는 개념이 계속 등장하는데 이게 아이누 같은 소수민족 문제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이야기는 비교적 단촐해서, 이제 막 생필품 샐비지를 시작하는 호기심 왕성한 아리에티와 몸이 약해서 할머니댁(아리에티가 있는 집)으로 요양을 온 소년 쇼우의 우정이 메인입니다. 물론 소인족의 몰락 얘기 같은 것도 있지만... 쇼우는 심장이 안 좋아서 오래 살지 못 할 걸로 여겨지고 있어 생의 활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며 굳센 아리에티를 만나면서 살고자 하는 의지도 얻고, 아리에티를 도와주기도 하는 내용.


- 시골 배경인 것처럼 보이지만 배경은 타마 시로 보입니다. 실제로 집은 숲에 둘러싸여 있지만 진입로를 조금 나가면 도심이 보이는 곳으로, 교외 별장 정도 위치입니다. 지브리 애니에서 매우 자주 등장하는 지명, 지역인데 실제 지명은 도쿄도 타마(多摩) 시이지만 변형된 형태로 나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대놓고 실제 타마 시인 건 타마 뉴타운 건설계획을 배경으로 한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이나 '귀를 기울이면'입니다만, 그 외에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부모님의 차 번호도 타마로 되어 있습니다. 마 쪽 한자가 약자로 변형되어 있습니다만, 그 약자가 魔의 약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중의적 의미를 가진 거라는 해석이 있습니다.(링크) 또 새로 이사가는 집이 타마 시라고도 합니다.

 쇼우와 아리에티가 사는 서양식 건물은 메이지 시대 건축물로 아오모리에 있는 걸 모델로 했다고 합니다.


- 키가 10cm 정도 밖에 안 되는 소인들이 인간 물건을 훔쳐다 쓰는 거라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옷핀을 칼날처럼 쓴다든가... 사실 실제로는 단순히 크기 작은 비슷한 것만으로 같은 용도로 쓰기에는 문제가 많지만 판타지 소설이고 만화니까. 그래도 실제 인간이랑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사실 작은데요~ 하는 수준은 아닙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찻잔 따르는 장면인데, 물방울 크기엔 한계가 있어서 실제 주전자와 찻잔처럼 주르륵 거리며 나올 수가 없죠. 대신 한방울이 차 한잔 분량입니다.


- 러닝타임도 94분 정도로 짧은 편이고, 내용도 크게 기복이 있는 식은 아닙니다. 호기심을 보이는 쇼우와 조심스러운 아리에티 만이라면 얼렁뚱땅 넘어 갔을 이야기를 소인을 잡으려는 하녀 할머니 덕분에 그나마 30분 정도는 늘었다고 해도 될 이야기. 무난한 이야기이지만 너무 무난하고 인상이 옅다는 게 단점인 듯.


- 요네바야시는 이후 '추억의 마니'를 마지막으로 지브리를 떠납니다. 사실 이때는 지브리 자체가 거의 해체 수순을 밟고 있던 시기기도 하고... 독립한 뒤에는 역시 지브리 출신인 니시무리 요시아키와 함께 '스튜디오 포녹'을 만들고, '메리와 마녀의 꽃'을 제작합니다. 흥행이나 평은 그냥 저냥 정도? 원래 지브리 작화를 맡던 인물이다보니 그림체라든가 지브리 향취가 많이 풍기긴 합니다. 내용은 미야자키 하야오에 비하면 좀 약하지만요.

 요네바야시가 지브리를 그만두게 되었던 황폐기를 거쳐서 정작 지브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진짜 진짜 은퇴작이 될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와 고로의 TV 애니메이션 '아야와 마녀'로 다시 제작진을 채용하고 진행 중입니다. 감독 격 제작자는 미야자키 부자만 남은 상황인데다 하야오가 정말 은퇴하면 고로 밖에 안 남기 때문에 지브리가 다시 부활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회광반조 정도겠습니다만. 요네바야시가 걸출한 감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정도 인물이 두세명 정도 더 있어야 스튜디오로써 지속 가능하지 않나 합니다. 뭐 지브리는 거의 끝이라고 봐야죠.

 지브리 출신들 중에서 독립해서 뚜렷한 결과를 낸 사례가 별로 없는 것도 안타까운 부분이긴 합니다. 지브리랑 엮이기라도 한 사람 중에선 호소다 마모루가 그나마 성공적인가요? 중박 이상을 못 내고 있습니다만... 결국 지브리 이름으로든 독립해서든 지브리 후계 후보는 거의 다 죽거나 존재감이 옅어지고 정작 당초 관계도 안 좋았던 아들인 고로가 제일 꾸준히(평이나 실적이 좀 그렇긴 해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마지막에 남는 건 혈육인가 싶고 그렇습니다. 고로에게 엄청나게 매몰찼던 하야오도 결국 죽을 날이 다가오고 제 자식이란 생각에 좀 누그러진 거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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