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논 EOS R5가 발표된 후 화두는 발열입니다. 8K30 되면 뭐하냐, 23도에서 20분 밖에 못 하면 무용지물 아니냐. 4K도 제한 있다며? 등등... 발열 얘기 자체는 제품 발표 및 평가에서 이미 언급했는데, 필요 이상으로 과열(!)되는 듯 해서 발열 문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저는 제품을 비판한다고 하면 두가지 이유로 비난합니다. 1) 그 포지셔닝(가격, 용도)에 미달되는 사양을 선보였을 경우 2) 제조사가 문제에 대해서 숨겼기 때문에 소비자가 부적절한 구매를 하게 만들 경우. 1번의 경우엔 이 제품의 포지셔닝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리긴 했지만, 제가 받아들이는 한은 아쉽되 문제되는 범주가 아닙니다. 2번의 경우엔 확실히 해당되지 않습니다.



위 이미지는 EOSHD의 기사에서 나온 것입니다. 현재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원문(Canon EOS R5 has serious overheating issues – in both 4K and 8K, Updated with latest timings: The impact of Canon EOS R5 overheating limits on filmmaking)이기도 하고, 테스트 했다는 사람들의 약식 후기는 있지만 정리된 자료(통제된 테스트 영상이나 차트화 등)은 현재로썬 이정도인 듯 합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이 자료가 캐논이 직접 제공한 공식 테스트 자료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캐논은 적어도 이걸 유저들 손에 들어가고 나서나 알 수 있도록 숨겨두지는 않았습니다. EOSHD 기사에선 딜러에게 제공된 자료라고 하는데, 딜러 제공이라고 딜러만 보는 완전 비공개는 아닙니다. 오히려 브로셔 샘플에 가깝겠죠. 캐논 일본 홈페이지(링크)에는 동일한 양식과 문구의 표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다만 녹화시간 제약은 있지만 쿨타임 시간은 없습니다.
그리고 언어 페이지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캐논 미국 홈페이지는 일본과 다른 디자인을 갖고 있는데(상당히 낡은 옛날 서양식 홈페이지입니다; 일본 쪽이 차라리 글로벌 스탠다드), 거기에는 발열 관련 기술이 없습니다. 그런데 홈페이지 기술 자체가 너무 약식으로 되어 있기도 합니다. 한국 홈페이지는 주석 형태로 8K에 20분이라는 제약 정도만 적혀 있습니다.
EOSHD가 받은 자료도 캐논 공식이고, 일본 홈페이지에 적어도 부분적으로 동일한 자료가 개재되어 있습니다. 캐논이 테스트를 했고 자료를 만들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고, 딜러 손에 들어간 홍보자료인 이상 브로셔든 어디든 나타날 것입니다. 유감스러운 점을 찾자면 각 언어 별로 홈페이지 디자인과 기술 내용에 차이가 있어서 고르게 공개되어 있지 않다는 정도이군요. 캐논 코리아의 특설페이지는 기술자료를 찾기에 정말 끔찍하고, 미국 페이지는 너무 낡은데다 정보량이 적습니다.
홈페이지의 차이에 의한 걸 제외한다면, 캐논이 이 정보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사실 충분히 정리된 외부 테스트가 없는 상황이고, 현재 모든 논의가 저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그것만으로 정보 교류는 충분히 되었다고 봐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모든 국가의 제품페이지 대문에 걸려있다면 더 좋겠지만... 적어도 의도적으로 숨겼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 '제조사의 자료'라는 측면은 타사와 비교하면 오히려 없는 경우가 더 많은 내용입니다. 소니가 2,3년 전만 해도 동영상 발열로 곤욕을 치르고 못 써먹겠다는 얘기를 들었던 걸 기억하시는지요. a6300이 특히 유명했는데, 그때 소니는 발열에 의한 녹화시간 실험 자료 같은 건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발열에 의해 제한될 수도 있다고 할 뿐이었고, 어느정도인지는 실제로 제품을 쓰고서야 몸으로 배워야 했죠. 지금 기종들은 그때보다 발열억제가 좋아 30분 안에 끊기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a6300이 그렇게 오래된 얘기도 아닙니다. 제 a7R II도 가을에 발열문제로 20분 정도로 녹화가 중단된 적이 있습니다.
1번 주제로 돌아가서, 포지셔닝 문제가 R5를 둘러싸고 가장 말이 많게 만드는 이유라 생각됩니다. 주관성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부분이죠. 실망하거나 화내는 사람들은 이 카메라가 당연히 파나소닉 S1H 수준은 아니라도 S1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했지 싶습니다. 동영상에 강력한 하이브리드 카메라로써 말이죠. 여기에는 캐논의 책임도 부분적으로 있습니다. 발표 전 티징은 8K30과 4K60/120 동영상을 크게 강조하였죠. 동영상에 대한 기대가 높았음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캐논이 속인 것 또한 아닙니다. 프로캠이나 시네캠의 대용이 될 거라고 하지도 않았고, 발열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8K30, 4K60/120이 된다고 했고 RAW, 12비트, 10비트 출력이 된다고 했을 뿐이죠. "발열문제를 어련히 잡았거니" 라는 건 넘겨 짚는 생각입니다. 굳이 혐의를 두자면 마케팅 문구의 사실여부보다는 동영상 언급이 더 많았기 때문에 소비자의 기대 포지셔닝이 엇나갔다는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제 발표도 되었고, 발열과 관련된 공식 자료도 있는 상황에선 기대와 다른 제품이거니 슬쩍 실망하고 넘어갈 수준 이상의 문제는 아니지 싶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R5/R6는 어디까지나 a7/a7R 포지션의 제품입니다. 그저 지금 나온 소니 및 타사 기종보다 더 높은 옵션의 동영상을 제공한다는 것 뿐이죠.(마찬가지로 R5는 플래그십 프레스 카메라가 아니며, 전자셔터 20연사에서 젤로가 생기는 게 a9 시리즈와 비교해 치명적인 결함이 되지 않습니다) 동영상 특화 기종이 아니라 최대 50:50 정도의 하이브리드 기종으로 본다면 자료 공개까지 고려하면 충분히 허용범위 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니도 이전에 이정도 문제는 있었는데 하이브리드로썬 문제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하이브리드라고 해도 기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최신 소니, 파나소닉 카메라는 발열이나 녹화시간 제약이 훨씬 덜합니다. 없는 건 아니지만 현장에 제약을 일으킬 정도는 안 됩니다. R5보다 운신의 폭이 넓다는 건 엄연히 사실이며 더 많은 조건에서 조금 더 신뢰할 수 있게 이용하게 해줍니다. 하지만 이 카메라들조차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동영상 기종은 아닙니다. 거기에 해당되는 기종들은 훨씬 비싼 카메라들이 따로 있죠.
소니 a7 III가 동영상 분야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건 그 가격대에 촬영 제약이 비교적 적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발열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않지만, 특별히 고온만 아니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8비트라거나 RAW가 안 된다거나 하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한편 캐논 R5는 a7 III보다 훨씬 화려한 동영상 사양을 갖고 있습니다. 8K30 RAW, 4K60/120, 10비트 로그 출력 등등 말이죠. 그 대신 R5는 발열문제로 장시간, 혹은 연이은 촬영에 쓰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둘다 하이브리드 카메라의 스펙트럼 안에 무난하게 들어갑니다. 양극단일지라도 말이죠.
사실 더 온전한 비교는 a7R III일 것입니다. 화소수가 동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죠. a7R III의 동영상이 어떻냐 하면, 픽셀비닝으로 4K24/30을 풀프레임 화각으로 지원하고, 슈퍼샘플링은 1.5배 크롭으로 지원합니다. R5는? 놀랍게도(?) R5도 픽셀비닝 4K30을 풀프레임 화각으로 무제한(연속 30분 제한을 빼면) 지원합니다. 슈퍼샘플링(8.2K 오버샘플링)은 30분으로 무난한 수준이고요. 그러니까 그 수많은 제약들은 어디까지나 a7R III에서 지원되지 않는 더 높은 사양의 처리에서만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참고로 a7R IV는 동영상에 쓰기 a7R III보다 더 안 좋은 사양이므로 자세히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실제로 고화소 카메라에서 픽셀비닝 4K30 이상을 지원하려 하는 경우엔(경우가 많지는 않으나) 어김없이 제약이 걸렸습니다. 4K 풀픽셀리드 슈퍼샘플링을 지원하는 카메라는 프레임을 막론하고 R5 이전에 하나도 없었으며, 4K60이 되는 카메라는 파나소닉 S1R 뿐이으며, 그마저도 15분 제약이 있었습니다. 이 화소수에 픽셀비닝 4K30이라는 베이스라인을 기준으로 본다면 R5는 전혀 덜하지도 않으며, 그저 제약이 심한 추가 선택지를 더 주었을 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또 캐논의 마케팅을 굳이 문제삼자면, 타사의 경우엔 고화소 카메라를 동영상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저화소 기종과 같이 내면서 고화소 기종은 스틸 중심, 저화소 기종은 동영상을 더 많이 쓸 수 있는 하이브리드 카메라로 포지셔닝했죠. 캐논의 경우엔 R5를 홍보하면서 '스틸 중심 고화소'라는 부분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R5가 다소 과하게 동영상이 강조된 반면 R6은 타사의 저화소 기종에 비하면 그다지 동영상 강조를 받지 않았죠.
참고로 R6의 동영상도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같은 테스트 조건(23도)에서 4K60은 논크롭 30분, 크롭 35분이며 4K30에서는 40/55분입니다. RAW가 안 된다든가 하지만, 10비트 로그가 되며, HDMI 출력도 됩니다. 더운 조건이 아니면 얼추 30분 촬영은 되기 때문에 2400만급(R6는 2000만 화소긴 하지만) 하이브리드 카메라로써 준수한 사양입니다. 애초에 풀프레임 4K60이 되는 2500달러 카메라라는 것부터 현재 경쟁자가 없습니다.
지금의 논란이 대부분 광고가 만든 기대치와 실제 제품 포지션의 괴리에서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대치라는 게 지켜지지 못할 약속이나 거짓말 같은 건 또 아니었습니다. 그저 집중적으로 동영상을 홍보한 만큼 동영상이 대단할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냥 물리법칙과 현재 업계 수준의 한계를 넘는 기적을 보여주지 못 했을 뿐입니다. 기대치에 의한 실망은 거기에 그쳐야지, R5/R6가 딱히 실패작으로 낙인 찍혀야 될 역량적 문제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한계는 현재 업계 전체의 한계에 가깝기 때문에 R5/R6의 포지셔닝에서 간단하게 넘어서거나 바보로 보이게 만들 기종이 경쟁사에서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R5의 실망 때문에 a7S III에 대한 기대가 많으나, 팬 없는 4K60/120이 가능하다면 그건 극히 저화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루머로는 그대로 1200만 화소라고 하죠)
a7R V가 새 프로세서만으로 16비트 RAW와 슈퍼샘플링 8K30 동영상이 언락 가능할 거라 했지만, 이걸 지원하는 새 프로세서(지금의 3배 이상의 성능이 필요합니다)는 캐논과 마찬가지로 발열 문제를 유발하여 역시 제한을 키울 거라 생각합니다. a7 IV는 풀프레임 4K60이 될 수도 있지만, 역시 발열문제는 3세대보다는 악화될 것입니다. 물론 그게 R6 정도라면 고화소 기종들 만큼 지장을 주지는 않겠지만 말이죠. R6가 별 문제가 안 되는 것처럼요.
동영상에서 캐논이 못 한 걸 소니, 파나소닉 등은 동등 조건에서 가볍게 해낼 거라고 기대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컨슈머, 하이브리드 카메라 업계에서 팬보이들이 치고박고 있지만 실상 프로캠, 시네캠 업계에서 이들의 기술력 차이는 그렇게 나지도 않고 가격과 접근성의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합니다. 그들의 기술력의 정수가 거기서 거기라면 그보다 싸고 깎아내어 만들어낸 제품에서 기술력 차이가 크게 벌어질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저 제조사들이 그 포지셔닝에 원한 만큼, 목표한 만큼 나올 뿐입니다.
그리고 현재 R5와 R6의 화소수, 가격대에 동등한 동영상 사양을 제공하는 카메라는 없다는 게 현실이며, 타사가 같은 시도를 한다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가 예상될 뿐입니다. a7S III는 분명히 R5보다 더 안정적인 동영상 카메라일 것입니다. 대신 4500만 화소 스틸샷은 찍지 못 하겠죠. 또 S1H 만큼의 동영상 해상력도 얻지 못 할 것입니다. 이 바닥은 완벽한 트레이드오프의 게임입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저는 캐논 R5를 살 생각이 없으며, 캐논이란 브랜드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제가 캐논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악마적일 만큼 영리해서이지, 멍청하거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캐논은 분명히 지적받을 수 있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경쟁자들이 같은 문제를 쉽게 극복하지 못 할 거란 걸 알기 때문에 R5/R6를 이렇게 내놓은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흥분이 가라앉으면 R5/R6는 적당히 합리적인 카메라라고 인정받게 될 겁니다.
일단 저는 제품을 비판한다고 하면 두가지 이유로 비난합니다. 1) 그 포지셔닝(가격, 용도)에 미달되는 사양을 선보였을 경우 2) 제조사가 문제에 대해서 숨겼기 때문에 소비자가 부적절한 구매를 하게 만들 경우. 1번의 경우엔 이 제품의 포지셔닝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리긴 했지만, 제가 받아들이는 한은 아쉽되 문제되는 범주가 아닙니다. 2번의 경우엔 확실히 해당되지 않습니다.



위 이미지는 EOSHD의 기사에서 나온 것입니다. 현재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원문(Canon EOS R5 has serious overheating issues – in both 4K and 8K, Updated with latest timings: The impact of Canon EOS R5 overheating limits on filmmaking)이기도 하고, 테스트 했다는 사람들의 약식 후기는 있지만 정리된 자료(통제된 테스트 영상이나 차트화 등)은 현재로썬 이정도인 듯 합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이 자료가 캐논이 직접 제공한 공식 테스트 자료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캐논은 적어도 이걸 유저들 손에 들어가고 나서나 알 수 있도록 숨겨두지는 않았습니다. EOSHD 기사에선 딜러에게 제공된 자료라고 하는데, 딜러 제공이라고 딜러만 보는 완전 비공개는 아닙니다. 오히려 브로셔 샘플에 가깝겠죠. 캐논 일본 홈페이지(링크)에는 동일한 양식과 문구의 표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다만 녹화시간 제약은 있지만 쿨타임 시간은 없습니다.
그리고 언어 페이지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캐논 미국 홈페이지는 일본과 다른 디자인을 갖고 있는데(상당히 낡은 옛날 서양식 홈페이지입니다; 일본 쪽이 차라리 글로벌 스탠다드), 거기에는 발열 관련 기술이 없습니다. 그런데 홈페이지 기술 자체가 너무 약식으로 되어 있기도 합니다. 한국 홈페이지는 주석 형태로 8K에 20분이라는 제약 정도만 적혀 있습니다.
EOSHD가 받은 자료도 캐논 공식이고, 일본 홈페이지에 적어도 부분적으로 동일한 자료가 개재되어 있습니다. 캐논이 테스트를 했고 자료를 만들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고, 딜러 손에 들어간 홍보자료인 이상 브로셔든 어디든 나타날 것입니다. 유감스러운 점을 찾자면 각 언어 별로 홈페이지 디자인과 기술 내용에 차이가 있어서 고르게 공개되어 있지 않다는 정도이군요. 캐논 코리아의 특설페이지는 기술자료를 찾기에 정말 끔찍하고, 미국 페이지는 너무 낡은데다 정보량이 적습니다.
홈페이지의 차이에 의한 걸 제외한다면, 캐논이 이 정보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사실 충분히 정리된 외부 테스트가 없는 상황이고, 현재 모든 논의가 저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그것만으로 정보 교류는 충분히 되었다고 봐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모든 국가의 제품페이지 대문에 걸려있다면 더 좋겠지만... 적어도 의도적으로 숨겼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 '제조사의 자료'라는 측면은 타사와 비교하면 오히려 없는 경우가 더 많은 내용입니다. 소니가 2,3년 전만 해도 동영상 발열로 곤욕을 치르고 못 써먹겠다는 얘기를 들었던 걸 기억하시는지요. a6300이 특히 유명했는데, 그때 소니는 발열에 의한 녹화시간 실험 자료 같은 건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발열에 의해 제한될 수도 있다고 할 뿐이었고, 어느정도인지는 실제로 제품을 쓰고서야 몸으로 배워야 했죠. 지금 기종들은 그때보다 발열억제가 좋아 30분 안에 끊기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a6300이 그렇게 오래된 얘기도 아닙니다. 제 a7R II도 가을에 발열문제로 20분 정도로 녹화가 중단된 적이 있습니다.
1번 주제로 돌아가서, 포지셔닝 문제가 R5를 둘러싸고 가장 말이 많게 만드는 이유라 생각됩니다. 주관성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부분이죠. 실망하거나 화내는 사람들은 이 카메라가 당연히 파나소닉 S1H 수준은 아니라도 S1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했지 싶습니다. 동영상에 강력한 하이브리드 카메라로써 말이죠. 여기에는 캐논의 책임도 부분적으로 있습니다. 발표 전 티징은 8K30과 4K60/120 동영상을 크게 강조하였죠. 동영상에 대한 기대가 높았음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캐논이 속인 것 또한 아닙니다. 프로캠이나 시네캠의 대용이 될 거라고 하지도 않았고, 발열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8K30, 4K60/120이 된다고 했고 RAW, 12비트, 10비트 출력이 된다고 했을 뿐이죠. "발열문제를 어련히 잡았거니" 라는 건 넘겨 짚는 생각입니다. 굳이 혐의를 두자면 마케팅 문구의 사실여부보다는 동영상 언급이 더 많았기 때문에 소비자의 기대 포지셔닝이 엇나갔다는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제 발표도 되었고, 발열과 관련된 공식 자료도 있는 상황에선 기대와 다른 제품이거니 슬쩍 실망하고 넘어갈 수준 이상의 문제는 아니지 싶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R5/R6는 어디까지나 a7/a7R 포지션의 제품입니다. 그저 지금 나온 소니 및 타사 기종보다 더 높은 옵션의 동영상을 제공한다는 것 뿐이죠.(마찬가지로 R5는 플래그십 프레스 카메라가 아니며, 전자셔터 20연사에서 젤로가 생기는 게 a9 시리즈와 비교해 치명적인 결함이 되지 않습니다) 동영상 특화 기종이 아니라 최대 50:50 정도의 하이브리드 기종으로 본다면 자료 공개까지 고려하면 충분히 허용범위 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니도 이전에 이정도 문제는 있었는데 하이브리드로썬 문제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하이브리드라고 해도 기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최신 소니, 파나소닉 카메라는 발열이나 녹화시간 제약이 훨씬 덜합니다. 없는 건 아니지만 현장에 제약을 일으킬 정도는 안 됩니다. R5보다 운신의 폭이 넓다는 건 엄연히 사실이며 더 많은 조건에서 조금 더 신뢰할 수 있게 이용하게 해줍니다. 하지만 이 카메라들조차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동영상 기종은 아닙니다. 거기에 해당되는 기종들은 훨씬 비싼 카메라들이 따로 있죠.
소니 a7 III가 동영상 분야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건 그 가격대에 촬영 제약이 비교적 적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발열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않지만, 특별히 고온만 아니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8비트라거나 RAW가 안 된다거나 하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한편 캐논 R5는 a7 III보다 훨씬 화려한 동영상 사양을 갖고 있습니다. 8K30 RAW, 4K60/120, 10비트 로그 출력 등등 말이죠. 그 대신 R5는 발열문제로 장시간, 혹은 연이은 촬영에 쓰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둘다 하이브리드 카메라의 스펙트럼 안에 무난하게 들어갑니다. 양극단일지라도 말이죠.
사실 더 온전한 비교는 a7R III일 것입니다. 화소수가 동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죠. a7R III의 동영상이 어떻냐 하면, 픽셀비닝으로 4K24/30을 풀프레임 화각으로 지원하고, 슈퍼샘플링은 1.5배 크롭으로 지원합니다. R5는? 놀랍게도(?) R5도 픽셀비닝 4K30을 풀프레임 화각으로 무제한(연속 30분 제한을 빼면) 지원합니다. 슈퍼샘플링(8.2K 오버샘플링)은 30분으로 무난한 수준이고요. 그러니까 그 수많은 제약들은 어디까지나 a7R III에서 지원되지 않는 더 높은 사양의 처리에서만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참고로 a7R IV는 동영상에 쓰기 a7R III보다 더 안 좋은 사양이므로 자세히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실제로 고화소 카메라에서 픽셀비닝 4K30 이상을 지원하려 하는 경우엔(경우가 많지는 않으나) 어김없이 제약이 걸렸습니다. 4K 풀픽셀리드 슈퍼샘플링을 지원하는 카메라는 프레임을 막론하고 R5 이전에 하나도 없었으며, 4K60이 되는 카메라는 파나소닉 S1R 뿐이으며, 그마저도 15분 제약이 있었습니다. 이 화소수에 픽셀비닝 4K30이라는 베이스라인을 기준으로 본다면 R5는 전혀 덜하지도 않으며, 그저 제약이 심한 추가 선택지를 더 주었을 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또 캐논의 마케팅을 굳이 문제삼자면, 타사의 경우엔 고화소 카메라를 동영상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저화소 기종과 같이 내면서 고화소 기종은 스틸 중심, 저화소 기종은 동영상을 더 많이 쓸 수 있는 하이브리드 카메라로 포지셔닝했죠. 캐논의 경우엔 R5를 홍보하면서 '스틸 중심 고화소'라는 부분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R5가 다소 과하게 동영상이 강조된 반면 R6은 타사의 저화소 기종에 비하면 그다지 동영상 강조를 받지 않았죠.
참고로 R6의 동영상도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같은 테스트 조건(23도)에서 4K60은 논크롭 30분, 크롭 35분이며 4K30에서는 40/55분입니다. RAW가 안 된다든가 하지만, 10비트 로그가 되며, HDMI 출력도 됩니다. 더운 조건이 아니면 얼추 30분 촬영은 되기 때문에 2400만급(R6는 2000만 화소긴 하지만) 하이브리드 카메라로써 준수한 사양입니다. 애초에 풀프레임 4K60이 되는 2500달러 카메라라는 것부터 현재 경쟁자가 없습니다.
지금의 논란이 대부분 광고가 만든 기대치와 실제 제품 포지션의 괴리에서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대치라는 게 지켜지지 못할 약속이나 거짓말 같은 건 또 아니었습니다. 그저 집중적으로 동영상을 홍보한 만큼 동영상이 대단할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냥 물리법칙과 현재 업계 수준의 한계를 넘는 기적을 보여주지 못 했을 뿐입니다. 기대치에 의한 실망은 거기에 그쳐야지, R5/R6가 딱히 실패작으로 낙인 찍혀야 될 역량적 문제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한계는 현재 업계 전체의 한계에 가깝기 때문에 R5/R6의 포지셔닝에서 간단하게 넘어서거나 바보로 보이게 만들 기종이 경쟁사에서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R5의 실망 때문에 a7S III에 대한 기대가 많으나, 팬 없는 4K60/120이 가능하다면 그건 극히 저화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루머로는 그대로 1200만 화소라고 하죠)
a7R V가 새 프로세서만으로 16비트 RAW와 슈퍼샘플링 8K30 동영상이 언락 가능할 거라 했지만, 이걸 지원하는 새 프로세서(지금의 3배 이상의 성능이 필요합니다)는 캐논과 마찬가지로 발열 문제를 유발하여 역시 제한을 키울 거라 생각합니다. a7 IV는 풀프레임 4K60이 될 수도 있지만, 역시 발열문제는 3세대보다는 악화될 것입니다. 물론 그게 R6 정도라면 고화소 기종들 만큼 지장을 주지는 않겠지만 말이죠. R6가 별 문제가 안 되는 것처럼요.
동영상에서 캐논이 못 한 걸 소니, 파나소닉 등은 동등 조건에서 가볍게 해낼 거라고 기대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컨슈머, 하이브리드 카메라 업계에서 팬보이들이 치고박고 있지만 실상 프로캠, 시네캠 업계에서 이들의 기술력 차이는 그렇게 나지도 않고 가격과 접근성의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합니다. 그들의 기술력의 정수가 거기서 거기라면 그보다 싸고 깎아내어 만들어낸 제품에서 기술력 차이가 크게 벌어질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저 제조사들이 그 포지셔닝에 원한 만큼, 목표한 만큼 나올 뿐입니다.
그리고 현재 R5와 R6의 화소수, 가격대에 동등한 동영상 사양을 제공하는 카메라는 없다는 게 현실이며, 타사가 같은 시도를 한다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가 예상될 뿐입니다. a7S III는 분명히 R5보다 더 안정적인 동영상 카메라일 것입니다. 대신 4500만 화소 스틸샷은 찍지 못 하겠죠. 또 S1H 만큼의 동영상 해상력도 얻지 못 할 것입니다. 이 바닥은 완벽한 트레이드오프의 게임입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저는 캐논 R5를 살 생각이 없으며, 캐논이란 브랜드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제가 캐논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악마적일 만큼 영리해서이지, 멍청하거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캐논은 분명히 지적받을 수 있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경쟁자들이 같은 문제를 쉽게 극복하지 못 할 거란 걸 알기 때문에 R5/R6를 이렇게 내놓은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흥분이 가라앉으면 R5/R6는 적당히 합리적인 카메라라고 인정받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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