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로 지브리 다시 보기(15) - 코쿠리코 언덕에서 by eggry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 고로의 두번째 작품 '코쿠리코 언덕에서'(이하 코쿠리코)입니다.


- '게드전기'로 악명을 날린 뒤 나온 고로 감독작 '코쿠리코'. '게드전기'는 너무 큰 짐이었던 모양인지 이번에는 상당히 소박한 내용을 선정했습니다. 원작 만화가 있는데 애니화 결정은 하야오의 애정 탓입니다.


- 1963년 요코하마 항구와 언덕을 배경으로,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둔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하는 내용입니다. 주인공 메르(이름이 우미(海)라서 프랑스어로 바다인 메르)는 한국전쟁의 보급선단, LST에 참가했다 기뢰에 죽은 아버지를 두고 있으며, '코쿠리코'라는 하숙집을 어머니가 유학 간 동안 할머니 감독 하에 대신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이 LST와 한국전쟁(일본에선 조선전쟁이라고 함)의 언급 때문에 불편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의미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세계대전 세대는 지나간 뒤이고, 전후부흥기의 고생과 위험을 대표하는 정도입니다. 물론 그게 남의 전쟁에 팔아먹어 부흥을 이룬 것이지만, LST 자체가 패전과 평화헌법으로 공식적으로 참전할 수 없게 된 상황에 미국의 요구로 간접적 지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라 일본 현대사에서는 꽤 민감한 소재라고 합니다.

 당연히 미국 주도적으로 만들어진 평화헌법과 무장해제가 제일 먼저겠고, 그 와중에 인접국에서 국제전쟁이 벌어지자 일본의 조력을 어떤 형태로든 필요로 하지만 군사력을 발휘할 수는 없게 만들어 놓은 상황에서의 꼼수 같은 것들도 말이죠. 전후 일본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좋든 나쁘든 인식시키게 함과 더불어, 한국전쟁이 순전히 남의 집 전쟁만은 아니며, 무엇보다 평화헌법 하에서 일본의 직간접적 군사활동에 대해서도 논란을 촉발시키는 근간이 됩니다.

 뭐 '코쿠리코' 자체는 이 주제에 대해서 정치외교적으로 크게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전후부흥 속에 잊혀져가는 상처와 옛것이 작품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데, 메르의 아버지와 LST는 그 전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부녀지간 정도이지만, 카자마의 출생의 비밀(?), 카자마의 아버지, 그리고 나중에 나오는 두 아버지의 친구까지 나와서 옛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대로 돌아오면,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옛것을 일신하려는 운동이 동아리 건물 철거로 이어지게 됩니다. 학생들은 당연히 저항운동을 하는데, 신문도 만들고, 경영자를 찾아가기도 하고, 스스로 청소를 실시해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든가 합니다. 사실 동아리 건물 사건은 너무 단조로운 얘기라는 생각도 듭니다. 딱히 위기 같은 건 없고 젊음과 노력에 쉽사리 탄복하는 식이라서요.


- 동아리 건물 '카르티에 라탕'은 메이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로 학생들의 무계획적인 이용으로 엉망에 노후화까지 되어 철거될 위기에 처합니다. 던전과도 같은 그 모습은 오늘날에도 교토대학 기숙사 '요시다료'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2019. 11. 22.-29. 일본 칸사이 단풍 여행기 9부 - 교토대학 요시다료) 거기도 얼마나 갈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래된 기숙사, 동아리 건물, 학생 자치 같은 키워드는 학생운동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물론 거리에서 시위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순하게 거세된 것이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죠. 60년대 학생운동은 당연히 대학생이 주류였습니다만, 중고등학생들도 그런 사회분위기에 휩쓸리거나, 선망이나 모방 차원에서 학교나 지역사회에서의 운동이나 대립은 꽤 흔했다고 합니다. '빙과'에서도 당시 학생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죠.

 고등학생의 저항이라 해봐야 동아리나 학교축제 문제 정도에 그치긴 합니다만, 당시 사회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60년대 학생운동이 실패해 그 중고교생들의 선배들이 현실에 타협하게 되면서, 중고생들도 당연히 활력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야 아직도 학생회의 권력 뭐 그런 코믹한 묘사가 나오지만 실제 학생회는 학교의 괴뢰일 뿐이며, 학교축제는 학생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당근 정도로 전락하게 된 현실입니다.


- 새로운 시대를 맞아 옛 상처와 옛것에 대해 생각한다는 점에서 2011년에 나온 이 작품의 소재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것입니다. 2011년 대지진과 2020년(이젠 21년이지만) 도쿄 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말이죠. 물론 2011년 개봉작이니 당시에는 대지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 했을 겁니다. 일본의 50년대에 해당되는 건 90~2000년대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장기불황으로 힘들었다는 점에서...

 도쿄 올림픽은 어느정도 일치되는 부분입니다. 새 시대의 막을 여는 행사이기도 하지만, 새 것에 대한 생각이 너무 앞선 나머지 옛것을 잃어버리고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죠. 뭐 64년 올림픽에 비하면 20년 올림픽은 주거지 철거 등과 같은 대규모 사회변동은 일으키지 않았던데다, 당장 올림픽이 새 시대의 막을 열기나 할지 걱정해야 하기는 합니다마는.

 지금과 그때의 병렬성이란 측면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스토리텔링이 영 미적지근해서 별로 잘 풀어가지는 못 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소재와 주제의식 자체가 일본인 외에는 거의 이해 불가능할 것이라서... 그나마 사전지식이 있는 한국인들도 조선전쟁 자꾸 말해서 기분 나쁘다+남의 전쟁으로 돈 벌었다 라는 생각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으니; 그래서 해외흥행은 뭐 애초에 기대 안 한 거 같긴 합니다.


- 실제 배경이 명확해서 익숙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모토마치를 달리는 노면전차 같은 것들은 지금은 없어진 풍경입니다만, 아직도 있는 풍경들도 볼 수 있습니다. 도쿄에 갔다가 밤에 돌아올 때 야마시타 공원을 걷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금도 있는 히카와마루 호, 요코하마 마린 타워, 심지어 호텔 뉴 그랜드의 간판까지 배경에 나옵니다.

 호텔 뉴 그랜드 간판이 제일 놀랐던 거였는데 정말 지금도 똑같거든요. 다른 두 랜드마크야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요. 찾아보니 호텔 개업이 무려 1927년이라고 합니다. 그럼 그 간판이 지금도 그대로인 게 신기하진 않네요. 히카와마루 호야 개항기 정기선이었고, 요코하마 마린타워만 1961년 개업으로 가장 신문물입니다.

 그 외에 나오는 곳으로는 사쿠라기초 역이 나오는데, 당시엔 도쿄로 가려면 여기까지 나가야 했을 겁니다. 지금은 야마시타/주가카이에서 시부야, 이케부쿠로까지도 갈 수 있지만요. 언덕 위에 있고 항구가 잘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코쿠리코 장은 서양관이 많이 있는 야마테의 언덕에 있을 듯 합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공원에 지브리 최초의 무대 명판이 걸려있다고 합니다.(링크)


- 전반적으로 그냥 시대랑 소재가 다른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느낌입니다만, '귀를 기울이면'도 약간 미적지근했다고 생각하지만 '코쿠리코'는 그것보다 조금 더 밍숭맹숭합니다. 출생의 비밀도 좀 그렇고(작중 대사를 빌리자면 막장 드라마 같은;) 동아리 건물 사건도 너무 휘릭인 거 같고...

 뭐 미야자키 고로로써는 '귀를 기울이면' 열화판 정도라도 분투한 것이지 않나 싶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정도 재주는 된다면 다음번은 그럭저럭 평작은 되지 않을까 싶기도? 고로도 지브리도 하야오의 (진짜) 은퇴 후에는 장래가 불투명합니다마는.


- 아버지인 하야오와 관계는 아직도 좋다고 말하긴 어려운 듯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타협하고 보조를 맞춰가고 있는 듯 합니다. 개봉 전 다큐멘터리에서 하야오, 고로, 토시오의 미묘하고 긴장된 분위기가 작품보다 훨씬 재밌다는 얘기도 있고 실제로 그럴 듯 합니다만...

 성질 더러운 하야오도 이제 늙었고, 고로도 내놓은 자식 수준은 아니라 부자관계를 회복,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서로 있는 듯 합니다. 당장 하야오가 엄청 좋아했다는 원작 애니화를 고로가 맡는데 반대하지 않은 것만 해도. 연을 끊지라도 않는 한 혈육의 정은 어쩔 수 없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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