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로 지브리 다시 보기(14) - 바람이 분다 by eggry


 미야자키 작을 세번 건너뛰고서 간만의 미야자키 작 감상. 문제작(?) '바람이 분다'입니다.


- 제로센, 즉 제로 전투기의 개발자였던 호리코시 지로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으로 당연히 한국에서는 논란이 많았습니다. 딱히 제국주의나 침략에 대해서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양심의 가책 같은 걸 기대했다면 거기에서도 부족함을 느낄테지요. 사실 전시를 다룬 작품 대부분은 이런 포지션인데, 그냥 눈을 돌리려는 거일 수도 있고 꺼리는 거일 수도 있지만 찬양고무적이지 않은 이상은 필요 이상의 비난은 피하려 합니다. '바람이 분다'도 그정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 일본이 파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시사는 독일인 카스토프의 입을 빌려 지적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지로는 그 미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듯 하면서도, 반박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막고 싶다고 열의를 가지지도 않습니다. 지로나 동창생인 혼조에게 비행기 개발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방편일 따름입니다만, 전쟁도구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고 변명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초지일관은 놀라운 수준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결과가 좋지 않을 거란 걸 명확히 알고 있지만 거기에 반발심은 물론, 애국적 열의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남의 일, 혹은 만들어진 물건의 사용처나 결과에는 무관심한 장인과 같은 모습입니다. 사실 전쟁 중 일본인 중 일정수준 교육수준을 가진 사람들의 관점은 대개 이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미국보다 작고 뒤떨어져 있다.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한없이 희박하다. 하지만 결정하는 건 나(국민)이 아니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며, 할 일을 할 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것 자체가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인상을 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패전의 경험이 지로를 바꾸거나 깨닫게 하진 않습니다. 예상한 결과였으니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이런 다음에는 반복되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국민들이 정치활동을 해야한다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정말 그때의 현상과 모습 그대로일 뿐입니다. 특고나 독일의 모습도 그저 담담히 그려질 뿐, 여기서 뭘 생각할지는 오롯이 시청자의 몫입니다.

 '이 세상의 한 구석에'를 봤을 때도 그런 면이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아~ 끝났다 끝났어") 전시 일본 국민이라고 하면 보통 카미카제, 옥쇄 정신으로 완전히 세뇌되었다는 식으로 흔히 생각됩니다만, 실제로는 전세가 기울어가고 있다는 것과 미국을 상대로 이긴다는 건 현실성 없어 보인다는 정도는 자각이 없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왜 그만두자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가? 전쟁은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고, 일어났으니 소임은 다하자는 생각 밖에 못 하는가? 그게 일본인들이(덴노를 포함해) 세계대전의 경험에서 찾아야 할 가장 큰 질문일테지만, 이 작품들도 거기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진 않습니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서 좀 더 적극적이어봐야 지루한 좌파의 부채의식 같은 취급 받을 거라곤 생각합니다만.


- 제로센 개발자의 이야기다보니 제국주의가 논란의 화두가 된 듯 하지만 사실 작중에서는 저렇듯이 비중이 그다지 없습니다. 실제 내러티브의 절반은 기술력이 떨어지는 일본에서 전투기를 만드는 이런저런 고난이 약간 국뽕다큐 같은 식으로 그려집니다. 선진국 기술자들 어께 너머로 보고 배웠다, 패기로 이겨냈다 같은 '프로젝트X'류의 관점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식의 프로는 익숙하겠죠. 거북선 모형으로 조선 수주했다느니 같은...

 다른 절반은 지로와 나호코의 로맨스입니다. 사실 전투기 개발 이야기는 후반부에 가면 약간 툭 끊어지기 때문에, 로맨스 스토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로 가면 뭐 시한부 삶을 사는 아내의 내조 같은 느낌이 되기는 합니다. 개인적으로 로맨스 파트는 그렇게 와닿지 않았네요.


- 지로의 연인 나호코는 실존인물인 지로의 아내와 이름도, 병력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사실 로맨스 부분은 호리 타츠오의 자전적 소설 '바람이 분다'에 더 가깝습니다. 호리 타츠오의 아내도 결핵으로 요절했기에... 이름 나호코는 호리 타츠오의 다른 소설 '나오코'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의 호리코시 지로'는 '호리코시 지로'와 '호리 타츠오'를 섞어서 만든 제3의 인물입니다. 그러니 실제 제로센 개발과 호리코시에 대한 얘기를 하기에도 썩 맞지 않게 되어버립니다.


- 그럼 이 제3의 '호리코시 지로'는 누구에 가깝느냐고 하면, 뭐 미야자키 하야오 되겠습니다. 비행기가 좋아서 견딜 수 없는, 하지만 전쟁 도구로써 비행기에서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모순에 대해서 말이죠. '붉은 돼지'도 그런 식의 이야기였습니다만, 그때는 미야자키의 욕구표출에 가까웠고, 그의 모순에 대한 건 시청자의 해석이었습니다. '바람이 분다'에 와서는, 미야자키 본인도 그런 점을 의식하고 인정하기로 한 듯 합니다. 그래서 '바람이 분다'는 가장 엄밀히는 미야자키의 자전입니다.

 물론 인정한다고 해서 그게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거나 그런 식은 아닙니다. 호리코시 지로나 카프로니 백작이나 미야자키 하야오나, 그들은 선택을 했습니다. 떳떳하지만은 않고, 바라던 결과는 아니지만, 예상했던 결과입니다. 거기에 죄책감 같은 건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하고 싶은 건 원없이 했다- 라는 건 카프로니 백작이라면 할 법한 말이지만, 호리코시 지로=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런 만족감은 보이지 않습니다.

 해온 것에 달성감도 있고, 후회도 있으며, 자신의 행위가 안 좋은 결과의 일부가 되긴 했지만 자신이 전투기를 만들어서 그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기는 솔직히 어렵기는 할 것입니다. 전쟁은 자신들이 어쩔 도리 없이 일어나는 일이고, 자신이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 만들었겠지요. 그렇다고 자신의 재능이 비극을 키우거나 줄이는데 기여했다는 식으로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어차피 누군가 할 일이라면 차라리 내가-도는 아니긴 합니다. 뭐 이 작품의 전반적인 스탠스가 그런 식이기는 합니다.

 정말 비행기(애니메이션) 만드는 게 하고 싶은 일이었고, 마침 재능이 있어 역할을 맡았고, 의도와 무관하게 공과 실이 있었을 따름이라는 것이 미야자키의 자신에 대한 변호겠지요. '바람이 분다'의 일본의 흥망은 지브리의 흥망 그 자체와도 같습니다. 미야자키가 아무리 재능 있더라도 결국 지브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건 막지 못 했습니다.

 "바람이 분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는 인용은 결국 거대한 흐름에 떠밀렸을 따름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작중의 호시지로나 미야자키나,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되돌아 보거나 후회하지는 않지만... 솔직히 자기 재능을 발휘해온 일에 그러기를 기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은 합니다. 적어도 피해가 있었다는 건 인식하고 있고, 뻔뻔하게 의기양양하거나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으니 할 말은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았다- 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습니다만, 거기서 당당함도, 변명도, 부끄러움도 딱히 느끼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저 이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이었고, 이런 결과가 나왔을 뿐, 삶이란 대개 그런 것이라는 얘기겠죠. 그게 불만족스럽다면 거기엔 충분히 비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뭐 그런 무기력감에는 딱히 비판하고 싶은 의욕도 생기지 않습니다만.

 그런 면에서 보면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 대로 한 것이지만 패기와 자부심이 넘치는 "난 하고 싶은 대로 했다, 너도 하고 싶은대로 해라" 라는 메시지가 엿보였던 '신고지라'와는 꽤나 다르기는 합니다. 안노는 미야자키보다는 자기가 살아온 걸로 젊은이들을 북돋을 만 하다고 생각하는 듯 하군요.


- 작품은 대부분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물론 이건 현실, 이건 꿈이라고 분류해내기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꿈은 아무리 봐도 꿈 같이 생겼으니까요. 하지만 꿈과 현실은 자연스럽게, 징조 없이 오가며 그런 감각은 현실의 일부도 꿈 같이 느끼게 만듭니다. 사랑과 비행기에 바친 청춘이 결국 죽음과 패망으로 마무리되는 10년의 일장춘몽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런 묘한 느낌 때문에 작중에 독일과 일본을 비판하는 캐릭터로 나오는 카스토프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환상일 뿐인가? 하는 착각까지 들게 합니다. 그의 묘한 눈(그저 벽안 묘사일 뿐입니다만, 클로즈업은 드물기에 생소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풀만 줄창 퍼먹는 행동 같은 것들은 카스토프가 사실 호리코시의 양심이 형상화된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물론 그와 연루된 것을 심문하러 온 듯 특고가 나타나는 거라거나, 제3자가 끼여 대화하는 상황이 있다든가 하는 걸 보면 실존하는 게 분명하지만... 그런 기묘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게 이 작품의 꿈과 현실의 모호한 감각입니다.


- 제로센 개발은 실제로 별로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초기에 서양의 항공기술을 따라잡으려는 부분에서만 열의 있는 모습이 보이고, 실제 제로센 개발에 들어가서는 단편적으로 훅 지나가서 바로 패전의 모습이 펼쳐질 뿐입니다. 군국주의와 양심의 문제에 대해 뭐라 할 일말의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듯 한데, 애초에 그걸 다루려는 얘기가 아니라는 건 이해하지만 너무 급작스럽긴 합니다. 후반은 한 10~20분 정도 더 있어야 매끄럽다 싶네요.


- 전투기 엔진과 바람을 가르는 효과음, 그리고 초반을 압도하는 지진의 효과음은 일반적인 효과음 녹음이 아니라 사람 입으로 냈습니다. 쿠웅~ 부웅~ 부르르르르~ 같은 소리들인데, 여타 애니메이션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줍니다. 비트박스나 원주민의 가락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지진이나 전투기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인 듯한 기분도 들게 합니다. 보편적으로 수용할 만한 형식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시도였고, 작품의 몽환적 느낌을 가미하는데도 일조했습니다.


- 호리코시의 성우는 안노 히데아키가 맡은 걸로도 유명했습니다. 제작 중 둘이 일할 때 비행기 모형으로 부웅~ 하는 거 같은 짤도 나왔고요;; 연기를 잘 했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만, 호리코시란 캐릭터 자체가 너무 초지일관이기 때문에 뭐 이정도 연기로도 큰 문제는 없었다 생각합니다. 사실 나이나 외모에 비해서는 너무 젠틀한 목소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 '바람이 분다'로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의 이야기는 이제 끝났습니다. 이것은 한 노인의 옛날 얘기일 따름입니다. 여기서 뭔가 얻을 수도 있고, 감정적으로 만족스럽거나 불만스러울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미야자키가 어떤 강한 뜻을 가지고 전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들어주거나 말거나, 자기 얘기를 안 하고는 못 배겼던 것 뿐입니다.(노인의 이야기란 그런 것이죠) 그가 실제로 후대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진짜 은퇴작이 될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가 되겠지요.



덧글

  • Barde 2020/05/11 23:13 # 답글

    중간에 나오는 카스토르프는 마의 산이라는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호텔이 마의 산에서 나온 요양 호텔을 그대로 베낀 것이라서요.
  • eggry 2020/05/12 00:20 #

    마의 산 얘기 나오던 게 소설 얘기였군요. 이건 미야자키 멋대로 소설의 후속편 버전 인물을 만든 거 같네요.
  • 코끼리엘리사 2020/05/13 23:03 # 삭제 답글

    내부의 코멘트지만 안노의 연기는 (당연하겠지만) 회사에서 수정 포인트 지적하고 명령 내릴 때의 톤 그대로라 밑에서 일 했던 사람들은 무의식 적인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후문이 있더군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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