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만년 전에 사뒀던 '메트로 리덕스' 세트에 게임패스로 풀린 '메트로 엑소더스'까지 세 작품을 클리어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핑계고 원래부터 어차피 집에서 게임, 영화만 봤으니 그냥 핑계거리일 뿐이죠; 게임패스의 '메트로 엑소더스'가 내려가기 전에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세 타이틀 모두 엑박원으로 했는데 체험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메트로 리덕스 두 작품은 엑박원 초기에 나온 거라서 900p로 돌아갑니다. 원래 60프레임 게임이기도 하고 부스트모드는 작동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60프레임이 나오기는 하지만 해상도가 지금 기준으로 워낙 낮아서 많이 안습입니다. 물론 처음 나왔던 360 버전보다야 당연히 좋겠지만 말이죠. 시리즈 X가 나오면 1080p 이하인 구작들 강제 4배 해상도 해준다는데 그럼 1800p 나와서 좀 볼만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둘 생각은 없으니...
에셋 퀄리티가 전세대라는 것과, 엑박원 초기 게임이라 해상도가 낮다는 거 빼고는 시각적으로는 만족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주로 아트적인 부분이죠. 우크라이나 제작사인데, 동유럽 쪽 게임들이 기술적으로는 야심찬데 비해서 능력은 좀 문제가 있어서 발적화로 유명하긴 합니다.(PC용은 개적화를 역활용해 오히려 벤치마크용으로 꽤 활약하기도;;) 아트적으로도 사실 섬세함보다는 거친 면이 강한데, 포스트아포칼립스 배경이다보니 그런 게 자연스럽기도 했습니다.
메트로 소설은 안 봤는데 핵전쟁 후 지하철을 도시국가화 해서 생활하는 세계관도 재밌긴 합니다. 원래 모스크바 지하철은 핵전쟁 쉘터를 겸하도록 만들어졌으니 말이죠. 물론 사실성을 따지자면 그정도 어마어마한 방사능 농도에서는 지하 쉘터도 무사하기 어렵고(폭발에선 살아남게 해주더라도), 돌연변이들이 이렇게 제대로된 생물인 괴물이 되거나 하진 않겠지만, 어디까지나 상상력의 범위니까... 공산당, 제4제국, 상류부유층 같은 세력 구분도 약간 도식화되긴 했어도 흥미로웠습니다.
게임플레이는 비서구권 게임 답게 마감 면에서 조금 아쉬운 면이 있기는 합니다. 아이템 주으려면 제대로 조준을 해야한다거나 같은 것들 말이죠. 사격도 아주 쾌적하진 않은데, 애초에 자원이 넉넉하지 않다는 개념이라 큰 문제는 안 됐네요.
다만 근거리 타격 판정은 계속 불만이긴 했습니다. 달라붙어서 맞을 때 샷건이 너무 잘 빗나가더군요;; 이건 '메트로 엑소더스'까지도 그대로였습니다. 난이도는 낮게 했고 자원 출현도 스파르탄으로 해서 쾌적하게 진행했습니다. 서바이벌 버전은 게임 자체의 불친절함과 더불어 너무 힘들 거 같아서...
처음 메트로에 대해 알았을 때 약간 세미오픈월드에 불친절한 가이드, 목표 같은 걸로 고통스러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거의 콜오브듀티와 같은 레벨 구성이고요, 조금 왔다갔다 하거나 우회로의 선택지 같은 게 없진 않지만 전반적으로 일자구성이라 헤매지 않아도 됐습니다. 자유도보다는 스토리 중심 전개라 그런 것도 있긴 합니다. '메트로 2033'과 '메트로 라스트라이트'는 스토리와 목적의 방향성이 꽤 확고합니다.
하지만 내러티브 면에서는 좋은 평을 하기 힘듭니다. 분명 스토리는 매력적인 면이 있었다고 봅니다. '검은 존재들'을 중심으로 한 첫 두 작품은 단순 포스트아포칼립스 생존물이 아니라 좀 더 SF 적인 생각할 거리와 철학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게임이 이를 충분히 다루지 못 하고 있고, 엔딩을 결정하는 카르마 시스템이 기준도 설명도 제대로 되지 않아 그냥 막 하면 99% 배드엔딩이란 게 문제였습니다.(결국 둘 다 막 했더니 배드엔딩 봄)
'검은 존재들' 스토리가 좀 더 꾸준히 설명되고 카르마 시스템이 일관성을 가졌다면 결말이 와닿았을텐데, '메트로 2033'은 후반까지 거의 흔적도 없다가 그냥 핵미사일 날려버리는 인간지상주의자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배드엔딩이 '메트로 라스트 라이트'로 이어지는 엔딩이라서 덜 억울하긴 했네요.
'메트로 라스트 라이트'도 배드엔딩을 봤는데 이건 엔딩이 스토리에 큰 영향을 주는 건 아니긴 했습니다. '검은 존재들'과의 관계란 측면에서도 '메트로 2033'보다 본편 스토리에서 충실히 보여주고 있기에, 내러티브 면에서는 '라스트 라이트'의 손을 들어주고 싶네요. 원작 2033 소설도 배드엔딩 쪽이라고 하고, 리뎀션 스토리라는 점에서 '라스트 라이트'가 괜찮았습니다.
'메트로 엑소더스'는 앞 두 작품과는 다른 접근법을 합니다. 거의 선형적이던 레벨디자인이 몇몇 강제진행에 가까운 파트를 빼고는 대부분 넓은 맵에서 이뤄집니다. 물론 이것도 눈속임이긴 해서, 실제로는 순서대로 찾아가야 하고, 옵션 퀘스트 같은 것도 거의 없긴 합니다. 기껏해야 크래프팅 자원이나 장비 업그레이드 찾는 정도 외에는 넓은 맵은 '광활한 바깥 세상'의 인상을 주는 눈속임에 가깝습니다.
물론 눈속임이라곤 해도 그동안 좁아터진 지하철에만 쳐박혀 있다 바깥 세상으로 나오니 시각적 만족도가 장난 아닙니다. 게임 자체도 완전히 현세대 게임으로 나온데다, 엑박원X에 제대로 대응하기 때문에 해상도도 높습니다. 엑박 컨퍼런스에서 선보인 게임이기도 했어서 지원은 제대로 했을 겁니다. 여러 계절이 나오는데 특히 추운 풍경의 만족도가 아주 높았습니다. TV 밖으로도 얼어붙은 서늘함과 날카로움이 느껴질 정도.
게임플레이는 총알을 바로 주는 게 아니라 크래프팅으로 총기, 탄약을 관리해야 하는 점 빼고는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무기, 사격, 액션은 거의 그대로. 맵이 넓어 보인다고 해도 실제 전투나 적의 구성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메트로 바깥 세상이란 개념 때문에 직접 제조해지 살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 전작의 무기등급 금총알은 안 나옵니다. 최후의 혈전에 문자그대로 돈을 쏴서 적을 쓰러뜨리는 느낌 만큼은 이번엔 얻을 수 없었네요.
그리고 현세대용으로 비주얼 중심으로 만들다보니 리마스터인 앞 두 작품과 달리 30프레임인 게 게임을 상당히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콜옵 만큼 빠른 액션을 요구하는 게임이 아니라 플레이에 지장은 없었지만 그래픽은 딸려도 전작을 60프레임 하고 최신작을 30프레임으로 하니 갑자기 엄청 둔해지는 느낌. 프레임이 아니라도 전체적인 걸음 같은 것들도 더 둔하기는 했습니다. 뭐 1시간 쯤 지나니 익숙해졌지만요.
'메트로 엑소더스'에서 아쉬운 점은 시리즈 중에서 스토리성이 제일 약하다는 게 되겠습니다. 사실 스토리텔링이란 면만 본다면 카르마 시스템과 '검은 존재들'이 뭔지도 모르다가 그냥 배드엔딩 맞는 '메트로 2033'보다는 낫긴 한데, 스토리의 방향성이 좀 약합니다. 중간 기착지들은 허탕 치는 느낌이 강해서요. 그래도 메트로 바깥의 핵전쟁 후 세계는 세계관 확장의 가능성은 줬습니다. 계속 나올진 모르겠지만요.
'메트로 엑소더스'는 시리즈 최초로 공식 한글화 됐는데 한글화 상태는 영 좋지 않습니다. 기차의 브릿지를 '다리'라고 계속 번역하며, 전작의 중요한 존재인 '검은 존재들'이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번역된 거라거나;; 뭐 임무 이해하는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긴 한데요, 번역 상태가 많이 아쉬웠네요. 그래도 대화 번역의 수준은 '기어즈 5'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하는데, 존댓말 반말이 오락가락 하진 않았습니다.
이 시리즈를 하면서 계속 떠오른 게임은 '콜오브듀티: 블랙옵스'였습니다. 역사적 키치함 같은 부분도 있고, 메트로도 약간은 특수목적을 가진 행동을 한다는 느낌인 것도 있고요. 뭣보다 둘 다 초자연현상이랄지 환각이랄지 착각이랄지, 그런 부분이 게임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블랙옵스'에서는 세뇌였고 '메트로'에서는 '검은 존재들'의 초능력이나 방사능 오염이지만요.
여튼 저 개인으로썬 '콜오브듀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약간 크래프팅과 서바이벌, 잠입 요소가 곁들여진 정도 게임으로 플레이 했습니다. 비서구권 게임 답게 아이디어나 세계관 면에서 신선함도 있었고요. 난이도를 높게 안 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편의성 부족이나 레벨디자인 문제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요즘 게임에 쓸 신경이 부족한지라 서바이벌 난이도 같은 건 할 생각도 못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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