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0부 - 여행 개요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1부 - 도쿄 도착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2부 - 패트레이버 30주년 전, 아후리 라멘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3부 -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시부야 스카이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4부 - 츠키지 시장, 츠키지 혼간지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5부 - 카와사키 다이시, 울려라! 유포니엄 정기 연주회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6부 - 에치고유자와 도착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7부 - 유자와 고원, 새쫒기 행사, 온천료칸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8부 - 카루이자와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9부 - 마츠모토 도착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10부 - 마츠모토 성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11부 - 마츠모토 시립 박물관, 카이치 학교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12부 - 지고쿠다니 원숭이 공원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13부(끝) - 나가노 젠코지, 귀국
마츠모토 성과 통합권인 마츠모토 시립 박물관. 성 공원 한켠에 위치해 있습니다.

박물관 내용은 전반적으로 마츠모토 지역의 역사에 대한 것...입니다만, 기술사, 문화사 중심입니다. 그러니까 전국시대에 에도시대에 무슨무슨 다이묘가~ 그런 류의 얘기나 전쟁 얘기는 별로 없고요, 석기시대부터 근대까지 이 지역의 발전상 위주라고 할까요. 그래서 시작도 이렇습니다. 조몬 시대 사람들이 만든 도구들.

연표. 어째서 왼쪽에서 오른쪽이 아니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가는진 모르겠지만... 석기유물로 볼 때 구석기 시대부터는 사람이 있었고 이후 조몬 시대, 야요이 시대, 고분 시대 등 일본사 고유의 시기를 거쳐서 옵니다.

조몬 시대의 석기. 꽤나 요란하네요.

쌀의 품종 개량. 원래는 보라색(검은색?) 원시품종이었는데 점점 백미로 바뀌어 갑니다.


근데 유물이 부족한지 갑자기 철시+불교 수용으로 점프 합니다.


엽전 만드는 법과 유물. 일본 자체 화폐도 있지만 중국 화폐도 대량 유통되어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쇼군이나 거대 다이묘들만이 엄격히 통제되는 장인 공방을 통해 화폐를 주조했습니다.

에도 시대 전성기의 마츠모토 성과 시내 모습.


역대 마츠모토 번주. 에도 초기에는 2대를 넘기기 못 했지만 미즈노와 토다 가문은 오래 통치했습니다.

불교 사료들. 그리 많진 않습니다.


성에서 나온 여러 기와들. 가문들 문양을 볼 수 있습니다.

토다 가의 사이하이(采配), 지휘봉. 토다 가는 메이지 유신까지 살아남았기 때문에 이런 것도 남을 수 있었군요. 먼지털이 같이 생겼습니다만.

도시계획 문서. 해자가 세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높으신 분의 외투.


갑옷과 칼, 활.

베개라고 합니다. 나무 목침에다가 쿠션을 달았네요. 오른쪽의 금속판을 두른 통은 여행 시 부적을 휴대하는 케이스라고 합니다.

높은 분의 가마. 일본 가마 보면 대체 저 시절 사람들은 얼마나 작았나 싶은...

여행 시 짐을 넣었다고 하는 상자. 토쿠가와 가의 문장과 토다 가의 문장이 동시에 박혀 있습니다. 토다 가는 쇼군가에 마츠다이라의 이름을 받았습니다.

중세 보병의 갑주. 하지만 관통상을 당한 듯 보이는군요.

과녁판. 총포의 시험에 쓰였습니다.

마츠모토 번에서 대형 화약무기를 실험한 것 중 하나로, 실험 후 저렇게 박제(?)해서 기념했다고 합니다.

꼬챙이처럼 생긴 건 평화기의 치안용 무기라고.

중세의 금속 거울.

메이지 신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방 행정은 크게 격변합니다. 대정봉환을 통해 설립된 신정부는 엄격히는 에도 막부를 교체한 것 뿐이기에, 지방정권은 여전히 번주, 다이묘들의 손에 있었습니다. 대정봉환 후 약 1년 반 뒤에 판적봉환(다이묘들이 영지를 덴노에게 반납함)을 거쳐서 다이묘의 영지는 모두 신정부의 관할이 되었지만, 다이묘들은 여전히 '번 지사'라는 명칭으로 지방 행정을 지배했습니다. 재밌게도 흔히 중세~에도 시대에 번주 라는 명칭을 곧잘 쓰지만, 공식적으로 행정구역을 번으로 성문화한 건 이것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나마도 공식적으로 번은 2년 뒤 사라지게 됩니다.
이 시기에 막부 직할령이 바뀐 부, 현과 다이묘의 번이 그대로 소유자와 이름만 바뀐 번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세금과 지방 정부의 권한 등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정부는 폐번치현으로 행정구역 개편을 하고, 번 지사로 남아있던 다이묘들은 통치권을 잃고 도쿄로 상경해 신정부의 감시 하에 놓입니다. 이후 이들은 화족으로 작위를 받고 참의원의 전신인 제국의회 귀족원의 주요 세력이 됩니다.
한편 최초의 폐번치현도 그냥 번을 현으로 바꾸고, 번 지사를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로 바꾼 것 뿐이라 행정구역 상으론 문제가 많았습니다. 애초에 다이묘들의 지위나 포상을 위해 구분된 것이니 말이죠. 최초 302개에 달하던 현은 계속 축소되어 오늘날의 43개 현까지 정리됩니다. 이 과정에서 같은 현이다가 반으로 쪼개져서 다른 현에 각각 통합되거나 하기도 했습니다. 뭐 43개 현은 19세기가 끝날 때에는 거의 정리되었기 때문에 혼란기는 거의 19세기 후반에 국한된 얘기이긴 합니다.
위 사진의 맨 왼쪽은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첫 현령(당시엔 마츠모토 현이 따로 있었음), 그리고 두번째는 마츠모토 초대 시장입니다. 위는 메이지 덴노가 행차했을 때를 묘사한 그림이라는군요.

마츠모토 성의 보존에 대한 기술. 두 사진이 마츠모토 성 천수각을 보존하는데 공헌한 두 사람입니다. 이치카와 료조(왼쪽)는 마츠모토 지역의 유지였습니다. 폐성 명령이 내려진 뒤 성은 정부 소유지로 바뀌었고, 민간에 경매로 매각되었으며 군사적으로 가치있는 시설(천수각, 망루, 성벽)은 철거될 예정이었습니다. 이치카와 료조는 마츠모토 주민과 함께 마츠모토 성을 보존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고, 시 정부가 성을 사들이고 천수각을 보존하게 됩니다.
한편 메이지 시대에 천수각은 자꾸 기울어져 갔습니다. 구조적 문제 때문이었지만, 사람들은 에도 시대에 민란을 일으켰다가 처형당한 타다 카스케의 저주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교장이었던 코바야시 우나리(오른쪽)이 성금 운동을 벌였으며, 그 덕분에 메이지 대보수를 거쳐 안정화 되었다고 합니다.


근대의 생활상 전시. 나무 금고 뭔가 멋지네요. 두번째는 증기기관을 이용한 펌프인데, 소방대에서 썼다고 합니다.




여기부터는 대륙인들에겐 좀 음침해지는 제국주의의 그림자. 만주국 프로파간다 포스터, 아이들용 탱크 장난감, 그리고 군복과 편지 같은 것들. 흑백사진에 보면 마츠모토 성에 병사들이 잔뜩 모여있는데, 이 시기에 성 부지는 대부분 육군 주둔지로 쓰였습니다. 마지막의 파란 전구는 등화관제용으로 하늘에서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전구.


여기는 전후 부흥기의 경제와 문화.

근대의 일반적인 이 지역 주거의 재현. 추운 동네다보니 코타츠와 이불은 필수이지만 산업혁명의 이기인 시계, 전화기, 미싱, 거울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여기부터는 마츠모토 지역의 전통 신앙과 공예에 대한 전시입니다. 저렇게 대나무를 가늘게 갈라내어서 만든 공예를 신에게 바친 사케 병 위에다가 꽂아놓았다는군요. 위에 있는 건 집에 모셔두는 미니 신사 같은 것이고요. 미니 불단을 갖다두는 건 일본에서는 보편적인 신앙표현인데, 한반도에서는 그와 비슷한 전승이나 사료적 증거는 없습니다. 일본의 미니 불단과 비슷한 고려시대 유물이 있기는 한데, 그게 어떻게 쓰였느냐가 불명이라 개개인이 집에 두고 쓴 건지, 절에서 쓴 건지 알 수 없다는... 뭐 인접 문화권의 양상을 보면 한반도에서도 그렇게 했을 거 같기는 하지만요.

한달 늦은 히나마츠리. 보통 히나마츠리라고 하면 봄맞이 축제로써 3월 3일에 이뤄집니다만, 4월 3일에 이뤄지는 지역들이 있습니다. 옆 동네인 타카야마도 4월 3일인데... 저는 그냥 단순히 더 추운 지역이니까 봄맞이도 늦게~ 라고 생각했지만 한달 시차의 이유는 달력의 변화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군요.
메이지 때 양력 전면사용으로 전환하게 될 때 약 한달의 차이가 났는데, 그대로 기존 3월 3일을 유지한 지역과, 당시 음력(일본에선 구력이라고 부름) 3월 3일에 해당하는 양력인 4월 3일로 정한 지역이 나오게 됐습니다. 마츠모토는 춥기 때문에 3월 3일은 이르므로 4월 3일 쪽을 택했다고 합니다. 타카야마도 같은 이유겠죠.


히나마츠리는 히나 인형을 만들어서 순산과 봄을 기원하는 건데, 마츠모토 지역에서는 오시에비나(押絵雛, 押絵びな)라는 히나 인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보통 인형이 아니라 종이를 겹겹이 덧대어서 2.5D랄지 엠보싱이랄지 그런 형태로 만드는 것이라는군요.


물론 보통 히나 인형도 만듭니다.





꽤 요란한 전시가 나왔습니다. '아메시장의 보물선'이라는 건데, 아메시장은 우에스기 겐신이 타케다 신겐에게 소금을 보내 인의를 보였다는 유명한 일화에서 기원한 것으로, 마츠모토에 소금이 도착한 것을 축하하던 것이 시작이라고. 그 축제에서 행진에 쓰이던 장식가마 같은 겁니다. 그런데 왜 소금 축제인데 사탕(아메)인지는 모르겠네요.
어쨌든 이 보물선은 칠복신을 태우고 있는데, 일곱 중에서 호테이 상은 박물관에 들어올 때부터 분실된 상태였다고 하는군요. 그나저나 칠복신이라지만 이렇게 배 타고 있으니까 그냥 초능력을 가진 일곱 대해적 같은데요. 원피스 칠무해가 이거 배낀 거 아닐까요?





마츠모토의 칠석 인형. 칠석(칠월칠석) 하면 일본에선 대나무가지에 소원을 매다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여기는 처마 밑에 인형을 달아놓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칠석이라지만 히나마츠리가 밀린 것처럼 8월 7일에 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통 외가에서 첫 아이를 축하하며 보내줬다는군요.

근데 처마 밑에 저렇게 사람을 걸어놓으면 말이죠... 밤에 가다 보면 무서울 거 같습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 '추상오단장'에도 지역 풍습에 저렇게 인형을 걸어놓는 게 있는데 그게 목메어 죽은 아내를 연상시켜 꺼린다 그런 얘기가 있었던 걸로...

이런 저런 신토 행사에 대한 것들.


집 문턱에 작은 재단에 인형을 모시는 게 흔하다고 합니다. 마츠모토처럼 고대~중세에 변두리라 할 수 있는 지역들은 오늘날까지도 이런 풍습들이 많이 남는 듯.

이건...네 그거겠죠;;

이렿게 작은 부조비석에다 금실 두르는 것도 있다고.

짚단으로 만든 말.2월 8일, 12월 8일은 한해 농사의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고 하며, 이 짚으로 만든 말은 흉년신이 마을에 들어오지 못 하게 해달라는 기원이라고 합니다.










개인 콜렉션 특별전이라고 합니다. 에도 시대의 빗과 비녀. 수공업과 상업이 발달해서 그런지 저때도 명품 브랜드가 있었다는군요.



박물관 관람 마치고 인근 다른 사적지 조금 보러 갑니다. 마츠모토 성 동쪽 측에 있는 니노마루 터. 그냥 터만 놔두고 복원은 안 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메이지가 행차했다고 합니다. 아까 그림도 있었으니... 근데 정말 메이지는 안 간 데가 있는지 궁금;;

석양이...진다... 조금 일찍 나올 걸 그랬네요. 겨울인데다 산간지대 분지라서 일찍 집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고산지대 함 찍었습니다.


목적지는 구 카이치 학교. 근대 서양식 표지판이 있네요. 근데 니노마루는 왜 다 녹슬어서 바스라지려 하는지;; 카이치 학교는 뭐 얼마 전 국보가 됐다니까 표지판도 새로 달았나봅니다.


가다보면 꽤 큰 현대식 학교가 나오는데, 여긴 마츠모토 시립 카이치 소학교입니다. 카이치 학교의 뒤를 이은 것인데, 엄연히 운영 중인 학교이고 애들이 있으니 들어가거나 수상한 짓 하면 안 됩니다. 교정의 전망대가 눈에 띄는데 이건 구 카이치 학교에서 모티브를 딴 듯 합니다.


구 카이치 학교. 메이지 시대에 지어진 소학교로써, 원래는 폐불훼석 때 스님들을 쫒아내고 이곳에 있던 사찰 건물을 이용해 출발했다고 합니다. 문화재가 된 건물은 그보다 나중에 지어진 신교사로, 1876년부터 1963년까지 90년동안 이용되었습니다.
현지 목수들이 요코하마, 고베 같은 개항도시나 도쿄, 오사카 같은 대도시를 탐방하여 서양건축을 연구하고 건설한 것으로, 아직 지방까지 깊숙히 들어오지 않은 오리지널 서양 문물을 재해석, 수용한 것이 건축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그래서 기본 구조는 서양식이지만 정문의 지붕 장식은 동양풍이라거나 하는 면이 남아있습니다. 물론 근대교육현장으로써의 의미도 있어 이 둘을 합쳐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근데 4시 반에 입장 종료라서 못 들어가고 밖에서만 봤습니다. 20분만 먼저 왔으면 그래도 5시까지 내부 관람은 가능한데... 뭐 안쪽은 평범한 개화기 학교 구성인 듯 합니다.

정원에 놓여있는 기념사진 패널인데 소학교라서 소학생이 그렸다는 컨셉인 것인지... 개화기 학교라 이수일과 심순애 스타일입니다. 여자가 더 높은 건 이 나이대에는 여자가 보통 더 커서인 걸까요? 어른용이 아니라 아이용이라면 그럴 수도.

카이치 학교와 마츠모토 성 사이 쯤에 마츠모토 신사라는 곳이 있습니다. 도시 이름이 붙은 신사라서 뭔가 좀 있겠거니 가봅니다.

왕복차선 중간에 신주가 있습니다.







관광객도 별로 없고 고즈넉하네요. 테미즈야에 수건을 걸어놨지만 아마 요즘 시국에는 없겠지요; 실존인물을 모시는데, 마츠다이라 가의 요절한 사람이라거나 토다 가의 조상이라거나 뭐 대충 마츠모토 번주의 인물 몇명 모아놓은 곳입니다. 마츠모토 성의 전신인 후카시 성의 축성자까지 포함해서 전후에 마츠모토 신사가 되었다고.

신사 옆에도 우물이 있습니다. 일본 100대 명수 중 하나에 해당한다는 마츠모토 신사 앞 우물이라고. 외부로도 나와서 마시거나 씻거나 자유롭게 쓸 수 있습니다. 물은 정말 풍성한 듯...

명수 씩이나 되다보니 신사의 제사에 쓰이는 신수도 이 우물에서 나오는 모양입니다. 물론 제사용은 일반인은 펄 수는 없게 되어 있음.

해가 어느정도 기울고, 조명도 들어오니 마츠모토 성의 밤 풍경이 아주 좋게 잡혔습니다.





국보 천수각과 해자.


성 앞에 있던 마츠모토 테마리 조형물도 불이 들어왔습니다. 조형물은 붉고 누런 색이고 성은 흰색, 하늘은 푸른색이라 화이트밸런스 맞추기가 어려웠는데... 마스킹 기능과 캡쳐원의 컬러 에디터를 이용해서 양립시켜 봤네요. 사진기술의 이해자로써는 자연스러운 모습은 아닙니다만 결과물은 그럴싸하지 싶습니다.



늦어서 인적도 드문 성 주변 공원.

텅 빈 밤거리를 걸어 옵니다. 지방 대표도시로 꼽힐 만한 마츠모토지만 인구 수는 24만으로, 한국의 목포 정도 밖에 안 됩니다.

어느 식당의 신슈 소바를 모티브로 한 장식. 신슈 소바 먹기는 해야지요. 근데 신슈 하면 마츠모토보단 나가노가 중심지이기에 거기 가서 먹을 생각입니다.




만만하게 봤다 생각보다 추운 밤날씨에 어디 들어가서 먹을까 서성이다가, 패밀리 레스토랑 가스토를 갔습니다. 사이제리야는 좀 갔는데 가스토는 처음이네요. 스프, 리조또, 백반을 시켰는데 리조또에 당연히 밥이 들어있다는 걸 간과해서 리조또에 백반 추가해서 먹는 쌀밥에 미친 놈이 되어버렸습니다. 맛은 그냥저냥.

숙소가 있는 마츠모토 역 앞까지 걸어오며 오늘 일정은 끝. 꼬마전구 조명이 요란하네요. 내일은 나가노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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