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참 게임 하느라 미뤄뒀던 지브리 보기 다시 하는 중입니다. 이번엔 '귀를 기울이면'
- 미야자키 하야오도, 타카하타 이사오도, 그렇다고 완전 신진주자도 아닌 콘도 요시후미의 유일한 지브리 감독작입니다. 감독은 요시후미였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프로듀서였고 프로듀서의 권한을 아득히 뛰어넘는 존재감과 간섭 때문에 힘들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 감독에선 일선에서 물러나서 마사후미나 안도 마사시 등에게 맡기려 했고 그 대표적 사례 중 하나입니다.
미야자키의 그림자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단 감독은 다른 사람이기에 미야자키 스타일이라고 하긴 그런... 뭔가 어정쩡한 위치입니다. 미야자키는 주로 인물이나 배경설정 같은 부분에서 간섭을 많이 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요시후미가 시즈쿠가 치마를 받치면서 앉는 장면을 그리자 "순진한 소녀가 남자의 눈을 의식해 치마를 가리겠냐!" 같은 소리를 한 것;;
- '바다가 들린다'의 청춘이야기 인기를 의식해서 미야자키가 의욕을 불태웠다고 전해집니다만, 사실 거기에 갖다대기엔 좀 미적지근한 것도 있고, 기껏해야 중학생이기 때문에... 중학생 커플이 장래 약속까지 한다는 게 젊은 층에게 로맨스로 얼마나 먹힐까 의문스럽긴 합니다. 그것보다는 장래의 고민 같은 얘기가 더 와닿는 거였을 듯 하네요. 그리고 일단 세이지가 밥맛이야.(남자가 보기엔)
-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고양이 문을 따라 지구옥까지 다다르는 장면입니다. 이때 모자 쓴 패션도 좋고요. 같이 노래하는 장면이라든가도 좋지만... 제일 싫어하는 장면은 아마 시즈쿠가 집필한 '귀를 기울이면' 소설의 상상 영상이려나. 남작이 처음 움직이는 모습으로 나왔습니다만, 시즈쿠의 작가 실력에 의심이 들기 충분한... '고양이의 보은'도 시즈쿠가 쓴 소설이란 설정이라는데 장래가 걱정이군요.
- 내용에 별 감흥이 없어서 그런지 디테일만 좀 열심히 보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시즈쿠의 집인 아파트 단지(일본에선 보통 그냥 단지)의 묘사입니다. 한국에선 아파트가 보편적이고 쾌적한 주거형태가 되었지만 일본에서 단지는 고도성장기의 찍어내기식 주거형으로 오늘날에는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고(그래서 낡은 것만 주로 있고), 대신 단일동으로 된 맨션 중심으로 고급 주거지가 확립되었습니다.
여튼 배경인 90년대 중반이면 그때는 이미 건설 때의 신선함은 사라지고 좁고 불편한 주거형태 정도의 이미지로만 있을텐데, 시즈쿠네가 그렇게 돈이 많진 않아서 자매도 이층침대 쓰고 집은 집더미로 좁아 터지고 그렇습니다. 집 풍경 말고 길거리 모습도 꽤 그때 당시를 잘 참조한 느낌. 신기하게도 많은 브랜드가 그대로 노출됩니다. 케이오 전철, 코카콜라 등...
- 의외로 사운드가 꽤 눈에 띄었습니다. 스코어보다는 효과음 쪽으로요. 슬라이딩 문의 삐걱거림 같은 소리가 정말 실제로 녹음한 것 같습니다.
- 지구옥, 바론, 문 등 몇몇 캐릭터나 장면은 기억에 남지만 전체 작품으로써는 그다지 인상이 남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고양이의 보은'처럼 너무 유치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까진 안 들지만 청춘 얘기 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갈등이 적지 않았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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