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로 지브리 다시 보기(10)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by eggry


 잠시 여유가 없어 쉬었던 지브리 재감상. 이번엔 지브리와 미야자키의 대표작 중의 대표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하 '센과 치히로')입니다.


- 여러모로 대표작 중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흥행이 압도적입니다. '너의 이름은'이 나오기 전까지 일본 흥행 1위. 한국에서도 일본문화개방 후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의 실시간 히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브리와 미야자키에 대해서는 이전까지는 해적판으로나 간신히 전해지다가 문화개방 후 구작들이 어찌어찌 개봉되긴 했는데, 그다지 주목받지 못 했죠. 뭐 그때 명작이라고 구구절절 전해져오던 영화들도 뒤늦게 들어왔을 때 흥행은 다 그렇고 그랬더랩니다.

그 이후 '센과 치히로'가 신작으로 거의 실시간(1년 차이입니다만, 일본 극장 애니로썬 이정도면 실시간이죠;)으로 걸린 작품이었습니다. 흥행도 준수한 수준. 물론 한국에선 '너의 이름은'이 터무니없는 3백만 클래스 흥행을 해버려서 압도적으로 앞섰습니다마는... 그런데 일본 영화 세계흥행 집계에서는 중국빨로 '센과 치히로'가 결국 이겼습니다.


-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작품을 꺼린다거나 애척이 생기지 않는 기점이 이 '센과 치히로'입니다. 약간 의외일 수도 있는데, '모노노케히메'와 '센과 치히로' 사이에 변한 것, 그리고 그 이후 작품들을 보면 스타일이 확 바뀝니다. '모노노케히메'까지는 훨씬 직설적인 비유였다면 '센과 치히로'부터는 은유에 가까워집니다. '모노노케히메'는 겉과 속이 거의 같습니다. 해석적인 여지도 그다지 없죠.

반면 '센과 치히로'부터는 그렇지 않습니다. 표층적인 서사와 사건들과 별개의 해석이나 메시지가 수면 밑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이중구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냥 이해하기 어려워서기도 하죠. 그래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것보다는 '센과 치히로'는 훨씬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표면적인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개연성과 몰입도가 있기 때문이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솔직히 뭐 하는 건지 따라가기 조차 힘들지만요.

미야자키 작품의 시기를 나누자면 나우시카~키키까지가 전기, 붉은 돼지~모노노케히메가 중기, 센과 치히로 이후가 후기 정도로 스타일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사실 센과 치히로는 약간 과도기적인 면도 있지만 그림풍이 크게 전환된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치히로가 미형이 아니라는 얘기가 있었던 거 같은데요, 사실 애 얼굴은 원래 이목구비가 덜 잡혀서 이렇게 생겼어요.


- 워낙 오래되고 유명한 작품이다보니 해석은 많이 나와 있습니다. 확실하게 공식적인 건 치히로의 부모가 돼지가 된 것은 버블경제의 문란함을 의미하는 것이죠. 차가 아우디 A4라는 것, 버블 붕괴 후의 유원지에 대한 얘기 등 바탕은 충분합니다. 그런데 치히로의 부모는 버블 붕괴에 그다지 타격을 받진 않은 모양입니다. 주인도 없는데 먹으면서 돈은 얼마든지 낼 수 있으니 걱정 없다고 하는 등 말이죠. 카오나시도 황금만능주의의 타락을 나타내는 캐릭터입니다.


- 유바바는 이름을 앗아감으로써 계약 대상이 자신을 상실하고 수족에 전락하도록 만듭니다. 이름은 본질을 의미하는 것이고, 본질은 몰아치는 세파 속에서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반복되는 흐름 속에 떠내려가게 됩니다.

시작과 끝을 보면 치히로는 단순히 겁 많은 아이에서 유바바와 직접 마주할 정도로 대범해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 원래 내면에 존재하던 것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유바바의 온천에서 완전히 자신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거의 인간 같은 린과 달팽이 요괴처럼 된 더 나이먹고 상급인 듯한 여직원들을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개구리들도 원래는 인간 남자였겠지요.


- 유바바의 온천장은 타이완의 지우펀에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정확히는 온천장 앞 거리가 되겠지만... '센과 치히로'의 세계관은 꽤나 복합적입니다. 온천거리의 풍경은 확실히 중화풍이지만(랜턴, 유람선 등), 종업원이나 신들은 일본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런가 하면 유바바/제니바 마녀 자매는 서양적이죠. 그러면서 제니바는 일본식 종이 요술을 부리죠. 그런 걸 뒤섞어 만들어낸 게 미야자키의 재주겠죠.


-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벼랑 위의 포뇨'에서는 확실히 흔적이 사라지게 되지만 '센과 치히로'에서는 아직 '모노노케히메'에서 활용하려고 했던 아이디어들이 남은 것 같은 면이 간간히 보입니다. 신화적인 배경이라거나, 강의 신인 하쿠라거나 같은 것들 말이죠.


- 홈 씨어터 보급의 중흥기였기도 해서, DVD 출시를 둘러싼 얘기도 많았습니다. 역시 가장 유명했던 건 색온도 문제였죠. 너무 누렇고 불그스름하게 나왔던 겁니다. 그 이유가 일본 영상계가 NHK를 중심으로 9500K를 사실상 표준 색온도로 취급해왔다는 것이었죠.(일본 영화 BD 및 방송의 색온도는 6500K가 아니다?)

참고로 블루레이에서는 해결되었다는 듯 합니다. 넷플릭스에서도 문제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게 넷플릭스는 서양 매체이고, 또 영상규격에 대해서 상당히 까다로운 기준을 갖고 있기(심지어 넷플릭스 공인 캠코더 목록까지 있습니다)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확실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겁니다. DVD 때야 한국 쪽은 주는대로 받아 쓸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겠지만요.



덧글

  • 城島勝 2020/04/04 11:24 # 답글

    (일본 및 동일 마스터를 받아 오소링한 한국)지브리 극장판 DVD의 컬러 문제는 미야자키 감독이 6500K 색온도에 맞춘 컬러 트랜스퍼보다 소위 (자신의)감성색을 강하게 민 게 원인이라는데, 미국쪽 DVD 발매 시엔 출시사가 입김이 더 셌는지 6500K 기준 색온도로 조정해서 발매하는 바람에 말도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러던 게 BD 시기에 와서는 그 일본 역시, 첫 타였던 나우시카 BD(2010년 발매)부터 전부 6500K에 맞춰 내놓은 게 아이러니하다면 아이러니하기도 하네요. 하기는 2000년 초엔 9300-9500K를 소위 '형광등 아래에서 보기에 최적인 색온도'라며 밀던 NHK가 지금은 일본에서 (거의 유일하게)6500K를 지키는 방송사인 걸 생각하면 마냥 웃기도 좀 그렇긴 하고.^^;
  • eggry 2020/04/04 11:56 #

    그 NHK도 8K 표준을 푸시하다보니 별 수 없는 것인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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