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및 잡담 - 교토 눈, 코로나, 카메라, 가방, 수동렌즈 등(2020. 2. 15.) by eggry

교토 눈

 여행은 잘 다녀왔습니다. 정말 구경은 할 생각도 없이 사진만 찍어서 여행기는 없을 거 같습니다. 일단 이동 중간과정이니 먹는 거니 그런 거 신경도 안 썼고 기록도 안 남겨서 여행기 쓸 만한 기초자료도 없습니다. 그냥 촬영 장소 별로 앨범 링크하고 대표사진 몇장 올려서 찍은 과정에 대한 얘기들 위주로 할 거 같네요. 처음으로 여행기가 아니라 포토 에세이랄까 작가노트(제 입으로 말하기도 민망;) 같은 내용이 될 거 같습니다.

 교토 눈은... 한 20% 정도 성공이라 해야겠네요. 최소 목표는 키후네 신사였는데 거기는 성공했습니다. 도착한 날부터 시내엔 흔적도 없었지만(금각사도 일요일에 내리고 낮에 바로 녹았더군요) 월요일 밤에 비가 내렸는데, 북쪽 산악지대엔 눈이 추가로 내렸던 거 같습니다. 정말 다행이게도 도착 다음날 아침까지는 눈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근데 해가 뜨니까 그 산의 눈도 정말 문자그대로 녹아 내리더군요; 키후네 신사 갔으니까 쿠라마데라도 노렸는데 거기 도착할 정오 쯤에는 산골의 나무 위 눈도 다 없어졌습니다. 응달에나 간신히 남아있는 정도. 그래서 실제로 눈풍경은 키후네 신사 밖에 못 봤네요. 나중에 다른 사람들 사진이나 시간대를 보니까 오하라가 더 좋은 여건이었던 거 같은데 오하라는 뭐 기회도 없었습니다.

 버킷리스트니 뭐니 했지만 역시 교토와 기후변화를 과소평가하긴 한 거 같네요. 그래도 소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 허탕은 아닌 걸로... 남은 시간은 그냥 조금 멀어서 안 갔던 곳 가보거나 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센토 고쇼와 카츠라리큐 예약을 신청했는데 가능한 날은 마지막날 뿐이었지만 눈이 조기종료되서 신청하길 잘 했다 싶었습니다. 겨울이긴 해도 상록수가 많아서 풍경은 나쁘지 않았네요.

 여행에 늘 사진을 중시하긴 했지만, 해외를 그저 출사지로 간 건 이번이 처음인데 나쁘지 않았습니다. 교토야 워낙 가서 익숙하기도 해서 여기서 이렇게 찍고 싶다든가 하는 희망사항이 있었죠. 눈 사진은 조금 밖에 못 건졌지만 비 내리는 야사카 탑이라거나, 몇가지 기회가 있었습니다. 리스키한 시도였던데 비해서 쪽박 찬 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적긴 적더군요. 눈도 눈이지만 사람 적은 거, 싼 거 보고 갔으니까요. 3박 4일 모든 경비 다 합쳐서 60만원 들었습니다. 비행기, 숙박비가 30만이었고요. 야사카의 탑 인근에 인적이 드물어서 ND 필터도 없이 사람 없는 장노출을 찍기 용이했다거나, 아라시야마 죽림에 한낮에도 사람에 치이지 않았다거나(그래도 일정 수준은 있더군요) 확실히 영향을 느꼈습니다.



코로나19

 교토 핫딜이 된 원인이 된 코로나19입니다만, 일본 상황이 여행 출발과 막날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버렸지요. 출발할 때만 해도 크루즈 선만 빼면 한국이랑 비슷한 정도였는데 막날에 도쿄에 감염자, 카나가와에서 사망자가 나오면서 반전되어 버렸습니다. 새로운 감염자나 사망자의 동선, 추측되는 감염시기 등을 고려하면 거의 한달 정도 전에 걸렸고 또 퍼뜨리고 다녔을 거라는 얘기가 되서... 그 이후로 여러 지역에서 다수의 감염자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뭐 그 사람들도 어제오늘 걸린 사람들은 아니죠;;

 결국 눈치를 못 채고 있어서 그렇지 일본 국내에서 1월 중순부터 이미 감염자가 다수 있었다는 거고 그 사람들도 퍼뜨리고 다녔을테니 이젠 어디까지 갈지 짐작도 못 하겠습니다. 정황 상으론 조만간 크루즈 제외하고도 백자리 찍을테고, 2월 말까지 천단위도 충분히 현실적인 시나리오라 생각되네요.

 뭣보다 그냥 퍼지고 있다는 걸 그냥 모르고 지낸 시간이 너무 길어서... 일본도 이제 중국 다음 가는 에피데믹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골치아픈 건 일본이 몇 주 동안 놓치고 있는 동안 일본에서 다른 나라로도 퍼져나갔을 거라서... 중국보다 일본이 오히려 판데믹의 촉진재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네요. 동남아 쪽도 일본과 별반 다를 거 없는 여건이라(집계 잘 안 됨) 뭐 그냥 다 퍼졌다고 봐야겠습니다.

 이미 일본을 통해서 한국에도 좀 퍼졌을 가능성이 있고 저도 그 중 하나일 우려가 있죠;; 뭐 아직까지 발열이라거나 컨디션 저조 증상은 없습니다. 이미 일본 쪽으로 뚫렸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월요일 쯤이면 공식적으로 일본에 대해서도 중국에 준하는, 혹은 그 다음가는 수준의 입출국 검열이나 자진격리 권장이 나올 거 같습니다.

 이번에 가서 교토 한산하고 싸기도 하길래 벚꽃 때도 여건 좋으면 출사 가볼까 했는데 지금 상황으론 일본도 여행 자제 국가가 될 거 같아서 그냥 가는 거 자체가 어려워질테니 핫딜 같은 한가한 소리 할 때가 아니네요. 물론 여행금지는 아니지만 자진격리라든가 직장 활동이라든가 허들이 많아서 실질적으로 갈 수 없어지겠죠. 일본이 제일 심하다 뿐이지 타이완, 동남아도 역시 좋지 않은 상황이라... 국내 여행으로 눈을 돌릴 좋은 기회인지도 모르겠네요.

 이건 전적으로 개인적인 예상이지만 일본이 루프홀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 방역도 지금까진 선전하는 것 같았지만 한계에 도달할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치명성은 높지 않다고 해도 전염은 정말 잘 되는 거 같거든요. 한국도 최소 일본과 같은 상황이 될 걸 전제로 행정이든 개인 활동이든 대비를 해야할 거 같습니다. 어느 시점에서는 결국 일상생활과 타협을 할 수 밖에 없겠지요. 지금은 믿을 게 위생과 면역력 뿐인 듯 합니다.



카메라, 렌즈

 지난번엔 백팩에 16-35GM, 24-70GM, 100-400GM이란, 변형된 홀리트리니티 구성을 했는데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렌즈들이 무겁기도 하고, 렌즈 교환도 불편해서요. 이번엔 렌즈 구성을 또 새로이 도전해봤습니다. 16-35GM, 24-70GM, 아포란타 50/2, 바티스 135로 가져갔습니다. 가방은 픽디자인 메신저 13. 렌즈 구성 상 슬링보다는 조금 커야했습니다.

 사실 24-70GM은 백업이었습니다. 가이드 투어라서 제약이 심한 황궁 관람 때만 썼고 그 외에는 95% 16-35GM, 아포란타 50, 바티스 135만 썼습니다. 이 트리오 조합이 꽤 자연스럽게 연결되더군요. 광각이 필요할 땐 16-35GM, 표준은 아포란타 50, 망원은 바티스 135로 말이죠. 50에서 135는 조금 비약이 크지만 저는 85mm보다는 135mm가 제 취향에 맞아서 한두번 정도만 85mm가 아쉬웠습니다.

 이 조합에서 유일하게 신경쓰이는 건 렌즈의 컨트라스트나 색감의 일관성인데 이건 사진을 만져봐야 알 거 같습니다. 아포란타 50은 컨트라스트가 세지 않아서 16-35GM이랑 잘 어울린다고 보는데 바티스 135는 확실히 강한 편이라서 좀 튈 거 같네요. 뭐 화각 자체가 달라서 분위기가 다르니 그렇게 어색하진 않으려나?

 실제로 사진 정리를 해봐야 알겠지만 어차피 여행기도 안 쓸 거고 느긋하게 하렵니다. 지금 캡쳐원 프로에서 아포란타 50 렌즈 호환성에 문제가 있어서 아포란타 50이 들어간 프로젝트는 다 홀드 상태입니다. 어차피 지난 여행 사진이 먼저니까 업데이트 기다리고 있습니다. 페이즈원에 리포트하긴 했는데 언제 패치될진 모르겠습니다. 여행기 안 쓰니까 부담은 없네요.



가방

 영원한 난제, 가방. 교환의 편의를 위해 메신저백을 가져갔는데 확실히 다 넣으니 무겁긴 했습니다. 아포란타 50+바티스 135가 100-400GM 만큼 무겁지는 않지만, 한쪽 어께에 지기로는 더 부담스러우니까요. 뻐근하긴 했는데 의외로 백팩보다 더 힘들진 않았습니다. 오른쪽, 왼쪽 번갈아면서 하니까 백팩이라 양쪽 분산인데도 속절없이 한쪽이 더 부담스러워 아픈 것보다 대응성은 더 낫더군요. 백팩은 일단 쑤시기 시작하면 그냥 대책이 없는데 이건 다른 쪽으로 돌리기라도 되니까요.

 그래도 가방이 100% 맘에 드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게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건 둘째치고... 일단 좌우 맬 때 패딩 배치가 달라서 길이조절의 여지가 다릅니다. 왼쪽어께에 크로스로 매면 길이 조절의 자유도가 훨씬 높은데 오른어께는 어렵습니다. 그야 메신저백이니까 크로스보다는 한쪽으로 매는 걸 전제로 한 거기는 하지만서도요. 그래도 현시점에서 백팩이 아니면서 렌즈 3,4개 휴대할 수 있는 게 이거 뿐이라 별 수 없이 써야했습니다.

 최근 네번의 여행과 국내 출사들을 보면 지금 저에게 가장 필요한 건 4개의 단렌즈(바디+바디캡은 휴대)를 동시에 수납해 편하게 교체할 수 있는 숄더나 슬링백인 거 같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바티스 5종을 사용하기 가장 좋은 가방 말이죠. 아포란타 50은 여행에는 가급적 안 가져갈 생각입니다. 수동인 것도 있고 방진방적이 안 된다든가, 바티스랑 섞어서 쓰기 안 어울린다거나 하는 이유로요. 백팩은 줌렌즈 홀리 트리니티 쪽에만 쓸 생각이고요. 백팩이야 이미 2개 있는데 그 용도로는 다 문제 없습니다.

 숄더/슬링 쪽이 문제인데 지금 제일 큰 놈인 메신저13이 일단 들어가긴 합니다. 바디랑 바디캡도 들어가고요. 문제는 옆으로 넓은 방식이 아니라 깊이를 이용하는 방식이라 렌즈가 적층으로 쌓이게 됩니다. 수납은 되는데 동시에 4개가 접근이 되는 상황이 아니죠. 덮개 열고 바로 손 닿는 건 3개 뿐인 건 픽디자인 슬링 6L랑 똑같습니다. 겹쳐서라도 더 넣을 수 있는 것과 바디까지 다 넣고 다닐 수 있다는 게 차이일 뿐 실제 촬영 중에는 차이가 없는 셈이죠.

 높이 높아봐야 쓸모 없고, 옆으로 길어야겠다는 생각 하니까 지금 슬링 6L가 3개가 되니까 10L면 4개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 메신저 13보다 추가 휴대성 면에선 딸리지만(물병이라거나) 물병은 손에 들든 어쩌든 방도가 없지는 않고 순전히 카메라와 렌즈만 본다면 말이죠. 그런데 슬링 10L를 제가 그다지 안 좋아했던지라 신형이라고 나을진 모르겠네요.

 사실 인케이스 DSLR 슬링을 잠깐 썼는데 그게 4개 주르륵 배치되긴 했습니다. 스트랩도 두툼해서 착용감도 좋긴 했는데, 단지 가방이 각이 별로 안 잡히는 스타일이라 그게 불만스러워 내보냈네요. 슬링 10L냐 인케이스냐, 고민 좀 해볼까 합니다. 사실 체력만 되면 그냥 메신저 13 써도 되긴 합니다만, 운동하기 싫네요.



휴대품

 빠르게, 간소한 목적으로 다녀오는 거기도 해서 소지품도 역대 최소였습니다. 캐리어 대신 백팩에 옷가지라든가 싸갔는데 이건 사실 잘못 결정한 거 같고요; 그 가방 그대로 여행지에서 쓸 것도 아닌데 기내용 캐리어 쓰는 게 공항 가는 길이나 나오는 길이나 훨씬 편하니까요. 반나절만에 벼락치기 한 여행이라 생각이 짧았습니다.

 짐 줄이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보조배터리 없는 여행을 했습니다. 아이폰 배터리 케이스도 없이요. 지금까지 사용 상으로 절전모드로 12시간 정도 버틸 수 있다는 생각에 도전해봤습니다. 어차피 사진만 찍고 일찍 복귀할 생각이라 리스크는 별로 없었습니다. 실제로 잘 버텨주긴 했습니다. 다만 여유로울 정도는 아니라서 다음엔 배터리 케이스는 가져갈 거 같네요. 보조배터리는 필요 없겠습니다.

 로밍 할까 포켓 와이파이 할까 고민하다 숙소 인터넷이 신뢰가 안 가서 포켓 와이파이로 했습니다. 평소엔 '와이파이도시락'에서 빌렸는데, 이번에는 KT에서 빌렸습니다. 기기가 다르더군요. 안드로이드 베이스로 만든 거 같은데 무슨 10000mAh 보조배터리 쯤 되어 보이는 사이즈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직원은 8시간 쯤 갈 거라 그러더니 무슨, 12시간 외출하고 왔는데 반도 안 닳았습니다. 이제 이거 써야겠네요.

 보조배터리도 없애고 휴대품도 줄이다보니 충전기도 포트수 적은 걸로 했습니다. 지금까진 USB-A 5~6포트 충전기에 아이폰용으로 1포트 PD 충전기를 썼는데, 2+2(PD+퀵차지) 충전기에 아이폰 충전기로 했습니다. 아이폰, 애플워치, 아이패드, 카메라, 포켓와이파이 순으로요. 여행 짐 줄이기 노하우가 쌓이고 있습니다.



수동렌즈

 아직 사용횟수가 많지 않지만 끄적일 정도 사용은 해봤습니다. 블로그에는 안 올렸지만 샘플 확보 차 국내에도 조금 나가봐서 결과물의 특성은 대략 알고 있습니다. 해상력은 APO에다 기념렌즈로 자랑할 만큼 정말 좋습니다. 첫인상에서 135GM보다 좋을 거라곤 생각 안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은 철회해야겠습니다. 그정도로 좋거나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35GM이 없어서 공평한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서도요. 바티스 135랑 최소 동급 수준입니다. 컨트라스트는 약간 뉴트럴한 거 같네요. 자이스 취향이라 이건 좀 아쉽습니다.

 렌즈의 화질이라든가 하는 얘기는 좀 더 많은 사진을 찍고서 할 기회가 있겠고, 그것보다는 수동렌즈에 대한 얘기입니다. 사실 수동렌즈 경험이 전무한 것도 아니고, 접점 대응되는 렌즈도 처음은 아닌데 출사 목적이라곤 하나 해외에 가져간 건 처음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길거리 산책하며 찍는 게 아니라 분명히 달성해야 할 목적이 있는 상황에서 사용한 건 처음이란 거죠.

 일단 MF니까 당연히 시간이 더 걸립니다. 시간만 더 걸리면 다행인데, 이게 의외로 배터리를 많이 잡아먹습니다. 사실 미러리스 카메라에서 전기를 제일 많이 먹는 건 연사도 AF도 아니고 그냥 라이브뷰 켜놓는 시간이거든요; 센서와 화면이 잡아먹는 게 대부분이니 오래 켜져 있는 MF는 당연히 많이 빨아먹습니다. 소니 3세대 배터리가 길어서 2개 갖고 여행 중 떨어질까 걱정할 정돈 아니었는데 1개 다 쓰기도 드물던 상황에 해가 지기 전에 1개 다 쓰는 상황이 생긴 거 보고 확실히 체감했습니다.

 그리고 많이 쓰니깐 눈이 아픕니다. 확대 해줘도 화면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 자체가 눈 아파요. AF면 그냥 초점확인이 되나 안 되나만 보고 땡인데 이건 초점 맞았나 안 맞았나 판단해야 하니까 눈에 힘도 많이 주고요. 슬렁슬렁 찍으면 모르겠지만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촬영 매수도 많으면 눈에도 안 좋을 거 같습니다. 이정도로 헤비하게 써본 적은 처음이라 예상치 못 했던 부분이네요. 사진 하다 시력 안 좋아진다는 얘기가 실감됐습니다.

 그래도 a7R IV는 수동렌즈 쓰기에는 전보다 나아진 카메라이긴 합니다. 일단 뷰파인더 화소수가 높아진 게 큽니다. 사실 소니 카메라들은 AF 시에는 추가 해상도 저하가 있어서 뷰파인더 화소수 높은 게 별로 이득이 되지 않습니다. AF로 쓸 때는 3세대랑 별 차이 못 느껴요. 하지만 수동일 때는 해상도 저하가 없는데다 확대까지 되니까 정말 초점 맞추는데 도움이 됩니다.

 포커스 피킹은 그렇게 도움이 되진 않습니다. 써보면 알겠지만 전핀, 후핀이 상당히 쉽게 납니다. 확대만이 살 길입니다. 포커스 피킹이 믿을만 하면 확대도 안 하고, 초점 맞추려고 눈에 힘주고 초점링 돌리고 있지도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네요. 타사 포커스 피킹의 정확도가 궁금하긴 합니다. 옛날엔 포커스 피킹이 AF와 판단기준이 이론 상 동일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닙니다. 적어도 소니는 아니에요. 그래서 확대 만이 살 길입니다.

 그리고 뷰파인더 화소수가 높기는 한데, 배율은 작아서 그 부분의 한계는 있습니다. 파나소닉 S1 보면 뷰파인더가 정말 허벌창이라서 화소수도 화소수지만 그걸로 훨씬 편한 게 있습니다. 파인더만 따진다면 수동렌즈 쓰기 제일 좋은 카메라는 파나소닉 S1 시리즈나 라이카 SL2일 겁니다. 소니는 바디 소형화를 하려다보니 뷰파인더 광학계도 소형화되서 이 부분에선 어쩔 수 없이 열세입니다. 제가 바디 키우길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아니면 파나소닉에 자이스나 보이그랜더가 나오는 게 더 빠를까요?

 솔직히 확대, 포커스 피킹, 손떨림 보정 같은 온갖 기술적 혜택을 보고서도 수동렌즈 쓰는 건 상당한 수고가 드는 일인데 광학식 뷰파인더로 쓰던 사람들은 어떻게 썼나 싶긴 합니다. 저야 애초에 그렇게 쓰질 않았어서 상상도 못 하겠네요. EVF에 수동을 써보면 알게 되는 건 초점이 나가기 상당히 쉽다는 겁니다. 옛날 MF 사진들 초점이 살짝 나간 건 그냥 당연히 감내해야 할 범주였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여태껏 수동렌즈들을 써보면서 얻은 것도 많습니다. 수동초점은 수동렌즈 사용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 날 잡고 써볼 필요가 있습니다. 뭐 수동이 느려서 더 깊은 사진이 나온다느니 그런 얘길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초점을 어디에 맞출까에 대한 고찰과, 심도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직관적 이해라는 부분에서 사진이론과 사진술을 이해하는데 좋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자동초점은 한 픽셀에 초점을 골라서 맞추는 방식이 아닙니다. 아무리 작게 해도 '범위'에서 맞추죠. 그런데 그 범위에 다 초점이 맞을 순 없습니다. 과연 그 범위에서 어디에 맞추나? 보통은 더 가까운 쪽에 맞게 됩니다만... 수동으로 해보면 그 작은 범위에서도 그걸 컨트롤할 수 있다는데 걸 알게 됩니다. 이걸 이해하고 나면 AF 렌즈라도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의도한대로 아주 정확히 맞추기 위해 MF를 쓰게 되는 때가 옵니다.

 또 심도의 이해에서도 그렇습니다. 실제로 초점링을 움직이면서 초점면이 움직이는 모습, 심지어 요즘은 EVF로 확대해서 보니까 더욱 생생하게 보입니다. 조리개 개방과 조였을 때의 차이, 그리고 조였을 때도 막연히 모든 영역에서 초점이 저절로 맞지는 않는다는 것 등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게 AF에서는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요. MF를 써야할 때를 또 알게 됩니다.

 모든 AF 렌즈와 카메라가 수동초점을 지원하기 때문에 굳이 수동렌즈를 사서 경험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얘기하는 건 AF 시스템에서도 MF를 쓰는 게 더 낫고 확실한 경우들을 이해하고 숙지하는 게 좋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수동초점의 과정에서 정말 재미를 느낀다면, 아예 수동 전용렌즈를 들이는 건 그때 생각해봐도 됩니다. AF 렌즈든 수동렌즈든, 지금보다 수동초점 하기 쉬웠던 적은 인류 역사상 없습니다.(진짜로)

 당연히 수동초점의 체험 자체에서는 AF 렌즈가 수동렌즈를 따라올 수가 없습니다. 포커스-바이-와이어 시스템이 기본이 된 미러리스 카메라에서는 더더욱 말이죠.(클러치 시스템을 써도 안 됩니다) 수동 헬리코이드가 선사하는 부드러움과 직관적인 피드백은 완전 기계식 수동렌즈에서만 맛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은 AF 렌즈로 수동을 사용해보는데서 시작하세요. 수동렌즈까지 가지 않아도 사진술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겁니다.



소니 시스템과 서드파티 렌즈

 R5 얘기 자체는 따로 R5 포스팅에서 얘기했는데, 저는 이게 a7 이래 미러리스 시장에 가장 중요한 카메라가 될 걸로 생각합니다. 시장의 쉬프트라는 측면에서 말이죠. 사실 캐논이 지금까지 내놓은 렌즈+앞으로 낼 렌즈+R5의 포지션 같은 걸 생각하면 정말 미러리스 시대의 5D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소니 천하는 대략 3,4년 정도로 막을 내리겠죠.

 근데 R5의 대성공으로 캐논이 다시 리드한다고 해도 딱히 시스템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일단 제가 캐논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게 제일 큰 이유이고, 다른 시스템도 쓰기에 충분하다는 게 그 다음이죠. DSLR 때도 비 캐논 카메라들 썼으니 지금이라고 달라질 건 없습니다.

 게다가 소니가 이전과 달리 마켓 리더가 되어봤고 현재 생태계가 상당히 튼실하기 때문에 결국 캐논에게 왕좌를 뺏긴다 하더라도 여전히 사용하기엔 지장이 없습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를 간다고... 캐논 렌즈들이 좋아 보이긴 하는데 또 소니는 일찍 나와서 싸고 물건이 많다는 장점이 있기도 하죠.

 하지만 정작 저를 소니 시스템에 붙들어 두는 건 G나 G Master 렌즈가 아닙니다. 자이스나 보이그랜더 같은 서드파티죠. 소니 자이스가 아니라 자이스 바티스나 록시아, 보이그랜더의 E 마운트 전용 렌즈들 말입니다. 이종교배가 아니라요. 실제로 저는 소니 렌즈는 16-35GM과 24-70GM 두종류 빼고는 다 자이스 바티스, 보이그랜더로 갖췄습니다. 대응성을 요하는 줌렌즈는 퍼스트파티 쓰는 게 최선이라고 보지만요. 아마 망원렌즈 1개 정도로 소니 렌즈는 끝일 듯 합니다. 소니 자이스도 더 안 나오니까...

 이 부분은 타 시스템에선 그리 빨리 해소되지 않을 걸로 봅니다. 다 E 마운트가 공개 시스템이라서 가능한 거죠. 물론 공개 시스템인 와중에도 실제로는 라이선스 티어에 따라서 업데이트 경로라든가(가령 삼양은 바디가 아니라 독을 써야하죠)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마는... 어쨌든 그런 체계가 있다는 거 자체가 리버스 엔지니어링 해야하는 캐논, 니콘이랑은 상황이 다르죠.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바티스가 캐논, 니콘으로 나올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자이스는 리버스 엔지니어링 해서 렌즈를 내는 브랜드가 아니니까요. 탐론이나 시그마는 하겠지만서도... 보이그랜더야 수동이고 그건 그렇게 어렵지 않을테니 나올 거라고 보긴 합니다. 자이스 수동렌즈도 나올거고요. 풀프레임 미러리스용 수동 시리즈가 새로 나오지 않을까요?

 캐논, 니콘, L 마운트에 맞춘 미러리스 버전 밀부스가 나오지 싶습니다. 록시아에 마운트 바꾸기 하기엔 마운트 직경이 중요한 부분이라... 하지만 제 목표는 밀부스가 아니라 바티스이고 이건 마운트 라이선스 정책이 바뀌기 전엔 소니 외로는 나오기 어려워 보입니다.

 라이선스라면 L 마운트만 유일하게 세미오픈이지만 하필 맹주가 라이카라서 자이스가 허락될지 의문입니다. M이야 딱히 막을 방도가 없었지만 말이죠. 라이카가 자이스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 거 같습니다. 보이그랜더도 마찬가지고요. 만약 L 마운트로 바티스나 보이그랜더 접점 렌즈가 나온다면 저는 아주 좋을 겁니다. 그럼 서드파티 렌즈를 고려하더라도 소니 외의 선택지가 생기니까요.

 지금으로썬 L 마운트의 세 메이커의 렌즈로는 안 됩니다. 단순히 평범한 f2.8 줌렌즈나 f1.4 단렌즈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런 렌즈들은 쉽게 대안이 되지만 지금 제가 애용하는 자이스, 보이그랜더 렌즈들은 대안이 없습니다. 물론 L 마운트에만 있는 유니크한 옵션도 있긴 합니다. 라이카의 SL 35/50/75/90mm APO 렌즈가 그것이죠.

 지금 바티스 135와 보이그랜더 50/2로 2개의 APO 렌즈를 쓰고 있긴 한데, 4개의 APO AF 렌즈를 가진 시스템은 L 마운트 뿐입니다. 심지어 35mm 정도로 광각 화각대는 수동까지 포함해도 유일하죠. 물론 저 렌즈 하나가 600만원 수준인 건 안 비밀이죠. 바디를 파나소닉으로 해도 2500만원 넘게 듭니다 ㅋㅋㅋ 하지만 로또가 된다면 GFX 100보다도 바로 저 구성을 도전해볼 겁니다. 현재로썬 저의 드림 콰트로네요.



덧글

  • Barde 2020/02/16 01:29 # 답글

    대단하시네요. 교토에 사람이 없는 건 다행이기는 하지만 코로나 대응을 제대로 못 해서 참...
  • eggry 2020/02/16 22:07 #

    이번엔 코로나 특수랍시고 갔는데 이제는 그러기에는 너무 나간...
  • 룬그리져 2020/02/16 17:45 # 답글

    방역쪽에서 너무 쉽게 뚫리는거 보고 오히려 놀란상황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도 뭐 할 수 있는건 조심하는 것 밖에 없긴 한데 말이죠...
  • eggry 2020/02/16 22:06 #

    잘 씻고 잘 먹을 수 밖에...
  • teese 2020/02/17 03:20 # 답글

    워낙 따뜻한 곳이라 눈 사진 난이도는 상급+이죠. 그냥 겨울을(12,1,2) 교토에서 보낼생각까지 해봤습니다.
    가방이 참 까다롭죠. 전에도 썻지만 프로들이 대형백팩에 하네스 쓰는건 다 이유가.
    요즘 싱크탱크 백팩의 제품사진에서 가방끈 하나 늘려서 슬링처럼 쓰는걸 자주 보는거 같습니다.
    좀 더 지나면 백팩과 슬링 구조를 양립한 괜찬은게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보는중입니다.
  • eggry 2020/02/17 06:39 #

    백팩 슬링 스위칭 잘 되는 놈 있으면 좋겠네요. 교토는 정말 한달 살아보기 정도는 해야 제대로 할 듯한… 그나마도 올해처럼 유달리 따뜻하면 노답이고요.
  • teese 2020/02/17 03:25 # 답글

    일본의 방역은 매일 뉴스 갱신 될때마다 참 답이 없더군요;;
    3월말에 나가노 한바퀴 돌고 올려던것도 결국 못갈거 같습니다.
    일본이나 해외가 아니라 어디도 못갈거 같은 분위기네요. 올림픽도 역대급 적자 나올듯.
  • eggry 2020/02/17 06:40 #

    좀 있으면 국내도 못 돌아다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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