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그랜더 APO-LANTHAR 50mm f2 구입 by eggry


 이전에 보이그랜더 렌즈 중 유일하게 소개한 적 있는 APO-LANTHAR 50mm f2(이하 아포란타50)를 샀습니다. 12월 발매된 렌즈이고 전세계 출시에 맞춰 국내도 예약판매에 들어갔으나 제가 카드결제일 맞춰서 사려고 미루던 사이에 출시일 전에 품절되어 버리더군요; 이번이 두번째 입고인데 이번 건 이틀 지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뭐 그때도 한 5일 정도는 갔지만요.

 원래 니치인 보이그랜더지만 보이그랜더 브랜드 상으로도 다소 이질적인 컨셉의 렌즈이기 때문에 얼마나 팔릴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인터뷰에선 "성능에 비해 접근성 좋게 저렴하게 책정했다" 라고 하기도 했지만 말이죠. 그래도 출시 후 재입고에 한달 반 정도 걸린 거 보면 어느정도 인기는 있나봅니다.

 물론 신렌즈 초기수요 치고는 특별할 구석은 없고 지금 이정도면 오히려 앞으로는 널널할 거라는 생각이지만요. 문제는 국내 수입처가 떨어지는 족족 들여오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때를 놓치면 사기 어렵다는 것; 그래서 가격 떨어지기 기다리기보단 그냥 신품으로 할부 구매 했습니다. 수량이 진짜 십자리수로 보이기 때문에 중고도 기대하기 어려울 거 같고요. 중고 팔려면 엄청 후려쳐야 할 거 같아서 진짜 안고 갈 각오로 샀습니다.

 제 첫 신품 수동렌즈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딱 이 렌즈를 기다렸던 건 아닙니다. 슬슬 가볍게 들고다닐 '현대적인' 수동렌즈 1개 정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이긴 했습니다. 40~50mm 대 렌즈들을 생각해뒀는데 기존 후보는 이미 써본 적 있던 록시아 35나 록시아 50이었죠. 아마 가장 무난하게라면 저 2개를 샀을 듯 합니다. 록시아 50은 화질도 괜찮지만 손맛이 아주 좋고, 록시아 35는 현대적 기준으로 광학적으로 약점이 많지만 독특한 맛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 새로 관심이 갔던 건 라이카 APO-Summicron 50mm f2 입니다만, 천만원 수준 가격이니까 현실성은 없었죠. 어디까지나 크기나 성능에 있어서 그런 류의 방향을 추구하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드리미 보케~ 같은 게 아니라 말이죠. 이후 바티스 135mm를 소유하게 되면서 APO 렌즈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습니다. 그러다 마침 라이카 아포크론을 의식하기라도 한 듯 보이그랜더에서 아포란타50이 발표됐지요.

 재밌게도 보이그랜더는 고성능보단 감성 노선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고려하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현대적으로 설계된 녹턴들은 정말 감성만으로 쓸 렌즈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f1.2~f1.4에서 현대식 렌즈들처럼 칼같은 해상력을 추구하는 방향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전 f2~f2.8 정도에서만 좋으면 되서 이게 완전히 벗어나는 건 아니지만, 보이그랜더란 브랜드를 소유해본 적이 없으니 선뜻 손이 안 갔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선 테크아트 어댑터로 VM 버전을 AF로 쓰는 게 더 보편적으로 퍼져있다보니 E 마운트 버전과 VM 버전의 주의분산도 있었습니다.

 아포란타50은 그동안 샤프니스보다는 렌더링으로 알려진 보이그랜더 브랜드이긴 해도 자이스 프리미엄 렌즈를 만들고 있는 코시나에서 기념판에 아예 해상력 중시로 낸다고 하니 도전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나온 아포란타 라인업들의 평가가 아주 좋기도 했고요. 표준대로 나온다니 매크로들보다 쓰기도 편하다 생각했습니다. 50mm APO 렌즈란 점에서 사실 라이카 아포크론의 대리만족 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죠. 애초에 M 마운트의 저가 대안으로써 출발한 보이그랜더이니 평판이 올랐다고 해도 틀린 말도 아닙니다.

 여튼 이하 언박싱입니다. 박스는 매우 단촐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습니다. 뒷면 디자인도 똑같고 검은색, 회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를 당황하게 만든 개봉 후의 모습. 종이 책자가 있긴 한데... 그냥 E 마운트 보이그랜더 렌즈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EXIF 기록 대응, 초점 자동확대 등)만 언급되어 있지 이 렌즈에 대한 내용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게 끝입니다. 네, 렌즈 매뉴얼이 없어요. 품질보증서도, 사양서도 없습니다. 솔직히 삼양 수동렌즈에도 저질 인쇄판으로라도 들어있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네요;;



 스티로폼 속에 렌즈가 있습니다. 그냥 쌩 흰 스티로폼이란 점도 약간 충격이긴 하네요. 한 80~90년대 렌즈 포장에서나 생각할 법한 구성입니다. 이 회사가 자이스 수동렌즈도 만들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패키징 측면에서 보고 배운거나 경험이 없지 않을텐데 보이그랜더는 정말 원시적이군요. 그래도 비닐포장은 되어 있습니다.



 구성품은 (당연히) 렌즈 본체와 렌즈 뒷캡, 앞캡, 그리고 후드와 후드용 캡입니다.



 추운 밖에서 들여놓고 빨리 열다보니 좀 차갑네요. 표면 응결도 있고... 마감은 좋긴 한데 록시아의 어머~ 소리가 나올 거 같은 예쁜 모습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클래식 렌즈처럼 탱크 같냐고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분명히 절삭이든 조립 퀄리티든 좋긴 한데 감탄이 나오거나 하지는 않네요. 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습니다. 모든 레터링은 음각에 도색되어 있어 오래 갈 거 같습니다.

 손맛 측면에서 제일 먼저 기대에 못 미쳤던 건 초점링입니다. 분명 객관적으로 이정도면 상급일테지만, 자이스 록시아나 평판 높은 클래식 렌즈에서 맛보던 수준의 것은 아닙니다. 그냥 윤활유가 조금 덜 쳐져서 그런지도... 초점링은 레트로 스타일인데 그렇다고 아주 일명 '해바라기' 초점링 같은 수준은 아닙니다. 이 스타일도 제가 좋아하는 쪽은 아닌데, 이건 보이그랜더 고유 스타일이라 뭐라 할 순 없네요. 일단 초점링 면에서는 록시아가 더 마음에 드네요.



 무한대에서 가장 짧고 최단거리에서 가장 깁니다. 이런 수동렌즈가 보통 그렇듯 전체 렌즈군이 움직이는 스타일이라 경통은 당연히 나올 걸 예상했는데, 이정도로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록시아는 조금 앞이 튀어나오나 정도였는데 거의 1:2 매크로렌즈인가? 할 정도였네요. 원래 작아서 그렇게 커지지는 않지만... 미적으로 마이너스 요소 1개 추가.



 조리개링은 렌즈 앞쪽에 있는 스타일인데, 라이카 스타일이지만 저는 뒤쪽에 있는 자이스 스타일이 더 좋습니다. 조리개링은 클릭/디클릭 전환이 가능합니다. 조리개링보다 더 앞에 있는 링을 눌러서 180도 돌리면, 조리개링 눈금에 흰 점 대신 노란 직선으로 바뀌는데, 이 상태가 디클릭 모드입니다. 동영상에서 좋겠지요. 록시아와 달리 렌즈 분리나 전용 툴이 필요없는 건 진화이긴 합니다.

 다만 전환 매커니즘 자체는 메뉴얼이 없어서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고 산 사람은 디클릭이 가능한지도 모르고 있을 듯 합니다. 사양서도 메뉴얼도 없으니;; 조작법도 눌러서 돌리는 방식인데 모르면 한참 헤맬 거 같고요. 전 당기고 돌려야 할 거 같은 인상을 받아서 당기려 했는데 안 되고 그냥도 안 되고... 누르니 되더군요. 뭐 영상을 안 찍어서 저에겐 필요 없을 거 같습니다.



 후드. 금속제이고 후드용 캡이 추가로 따라옵니다.



 후드 채결방식은 필터 스레드에 나사식이라서 필터를 쓰고 끼우면 저런 모양이 되어버립니다; 그나마 필터의 측면 인쇄가 안 보여서 덜하긴 한데 아주 예쁜 모양은 아니죠. 옛날 렌즈 중에선 오늘날처럼 바요넷 후드가 아니라 필터에 바로 채결되는 방식이 흔합니다만, 그게 옛날 렌즈에 순정후드 쓰는 사람이 별로 없는 이유기도 하죠. 추해서... 이 녀석은 수직원형이라 밥그릇 후드는 아니라 덜하긴 한데 그래도 이상적인 모양은 아니네요.



 접점이 있어 렌즈 정보도 자동으로 기록되고, 초점 자동확대 기능에도 대응합니다. 수동 위주로 쓰는 사람들은 직접 확대하길 더 좋아한단 것 같지만요. 저도 한때는 확대 끄고 포커스피킹으로 쓰려고 했는데 포커스피킹 신뢰도가 그렇게 높진 않아서 전핀 후핀이 곧잘 나길래 이젠 그냥 확대로 쓰고 있습니다. 자동확대보단 렌즈정보와 손떨림 보정의 편의성을 위해서 씁니다. 이 렌즈는 VM 버전이 없기 때문에 어댑터로 할까 E 버전을 할까 고민할 필요가 없었기도 합니다.



 렌즈 앞쪽. 초점거리, 조리개, 보이그랜더, 그리고 아포란타가 적혀 있습니다.



 12매 조리개를 갖고 있는데, 조리개 모양도 이 렌즈의 특이한 점입니다. 일단 최대개방 원형인 건 당연하지만, 조금 조이면 이런 모양이 됩니다. 각진 것도 아니고, 뭔가 꽃 같은 모양이라고 해야하나요? f2.5에서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f2.8이 되면 다시 완전한 원형이 됩니다.



 거기서 다시 조이면 역시나 꽃이랄지 톱니랄지 같은 모양이 되고요.



 f5.6에서는 일반적인 조여서 각진 모양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최소인 f16에선 다시 원형이 됩니다. 뭐 심도도 깊은데다 회절 등의 이유로 원형조리개를 노리고 이 값을 쓸 일은 없지만요.



 실제 보케의 모습. 위부터 f2, f2.8, f4입니다. f2에서는 당연히 원형인데 보다시피 주변부 레몬효과가 눈에 띕니다. 하지만 f2.8에서는 보케는 작아졌지만 거의 같은 거리(방향은 다르지만)의 노란 보케 역시 찌그러지지 않고 거의 원형인 걸 알 수 있습니다.

 왜 약간 조인 f2.8에서 다시 원형조리개가 되도록 했는가는 아마도 전 프레임에 걸쳐서 둥근 보케를 구현할 수 있는 지점이기 때문일 겁니다. f2에서 주변부는 구경이 크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레몬 모양이 될 거고요. 마지막으로 f4에서는 완전히 각진 보케가 되기 전의 약간 톱니보케 같은 모양이 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f2.5에서도 비슷하고요.

 조리개값에 따라 단순히 더 각져진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여러 형태가 번갈아가며 나오는 건 꽤나 기묘한 특성입니다. 뭐 중간의 다른 모양들은 의도적으로 쓰기는 좀 복잡하고, 개방 고해상력을 내세우는 렌즈다보니 그냥 f2으로 쓰거나 최고의 해상력과 보케 밸런스를 위해 f2.8로 쓰거나로 압축될 듯 합니다. 물론 팬포커스나 풍경의 해상력 극대화는 다른 얘기지만 그땐 보케가 상관 없으니까요.

 보케의 연삭흔은 아주 말끔하진 않지만 크게 눈에 띄진 않습니다. 비구면렌즈 2개를 포함해 총 10매의 렌즈 중 7개가 특수렌즈인데, 가공정밀도는 좋은 것 같습니다. 어차피 f1.8도 안 되는 렌즈라서 보케에 큰 기대하는 사람은 없겠지만서도요. 저도 그다지 이런 빛망울의 크기나 아름다움을 기대하고 산 렌즈는 아닙니다. 초점면과 나간 영역의 전환 느낌 같은 것이 더 중요하겠죠. 그건 실전에 가봐야 할 듯.



 장착샷과 초점조작에 따른 경통 길이 변화. 매크로가 아닌 렌즈로썬 조금 많이 나오는 편입니다. 해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싶군요.



 후드 장착샷. 필터 레터링이 눈에 띄지 않는다면 그렇게 나쁘진 않습니다. 그래도 조금 길기는 하네요. 후드 장착 전에는 소니 55.8ZA보다 1cm 짧고 장착하면 1cm 정도 길 듯 합니다. 물론 경통길이 변화가 있어서 후드 없어도 최대길이로는 비슷할 거 같네요. 후드는 안 쓰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들고 다녀보고 생각해보죠.



 간단한 근거리 테스트. 접사배율은 0.15배로 표준렌즈로는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수치입니다. 소니 55.8ZA랑 거의 같지만 그래도 그쪽은 55mm다보니 최단거리가 50cm이고 이쪽은 0.45cm라 5cm 이득이 있습니다. 5cm가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고 싶은 상황에선 적잖은 차이를 만들죠. 매크로 렌즈가 아니니 이정도면 됐습니다. 0.2배 정도면 더 좋겠지만요.

 크롭 한 해상력은 일단 만족합니다. 초기 리뷰 중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장 선명한 E 마운트 렌즈" 인지는 모르겠고요. 아마 표준렌즈에서 이정도면 가장 선명할 거 같긴 한데, 삼각대 대고 제대로 찍은 것도 아니라서 정확한 비교는 안 됩니다. 그냥 이정도면 실제론 막상 별로더라-는 절대 아닐 거라고 체감할 정도일 뿐이네요.

 사실 이 렌즈가 135GM이나 400GM, 600GM보다 선명할 거란 생각은 안 듭니다. 그리고 APO라고 해도 이 사이즈, 이 가격의 렌즈가 오투스 급일 수도 없고요. 제가 써온 고화질 렌즈들이 소위 AF 되는 오투스 타령을 해오던 렌즈들이다보니(실상은 둘째 치고) 기존에 못 보던 수준의 퀄리티가 나올 걸로 기대하진 않습니다.

 한파도 누그러들었으니 내일부터 조금 찍으러 돌아다녀볼까 합니다. 과연 수동의 귀찮음을 극복하고 완전히 수용할 수 있을까요? 가격 생각하면 그래야만 합니다만.



덧글

  • teese 2020/02/08 17:50 # 답글

    클래식 랜즈의 로망 아포란타군요.
    마크가 3색링에서 점3개로 바뀐게 살짝 불만이랄까요... ㅎ
  • eggry 2020/02/08 18:55 #

    새 마크가 별로 평판이 좋진 않더군요. 전 클래식에 딱히 애착이 없어서 그러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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