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로 지브리 다시 보기(2) - 추억은 방울방울 by eggry


 '라퓨타'에 이어 '추억은 방울방울'입니다. 현재 올라온 거 중에 미야자키 아닌 거 고르다보니 자연스럽게 저쪽으로 가게 되더군요. 물론 '게드 전기'도 빼고...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지브리 2번째 작품으로, '반딧불의 묘' 다음으로 맡았습니다.('반딧불의 묘'는 판권이 딴데 넘어가서 이번 지브리 계약에 들어가지 못 했다는군요. 물론 미국에 안 되는 것도 같은 이유.)


- 사실 지브리 하면 미야자키식 동화 같은 세계나 이야기가 너무 강하게 박혀있기도 하고, 타카하타 작품들은 대개 별로 편하지 않은 내용들입니다. 특히 타카하타 하면 '반딧불의 묘'로 기억되다 보니 '반딧불의 묘'에 대한 관점으로 호오가 생기기도 하죠. 뭐 '반딧불의 묘'는 그렇게 취급 당하기엔 억울한 면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하기로 하고...

어쨌든 타카하타 작품의 특징이라면 냉혹한 사실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말 그냥 시트콤일 뿐인 '이웃집 야마다 군'을 제외하면 겉보기엔 동화같은 설정인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조차도 냉엄한 현실에 마주할 뿐이니까요. '추억은 방울방울'은 사실적이긴 하지만, 얼핏 보기에는 딱히 비극적이거나 쓸쓸한 것처럼 보이진 않긴 합니다. 실제로 뭐, 결말 자체는 밝으니까요.


- 하지만 저는 지브리 작품 중에서 공감되면서도 고통스럽다는 점에서는 단연 '추억은 방울방울'를 꼽겠습니다. 이번이 세번째인가 보는 걸텐데, 마지막 봤던 때(한 2,3년 전인가)보단 좀 나아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전 '추억은 방울방울'이라기보단 '트라우마는 방울방울'이라고 농담 삼아 부릅니다. 그만큼 여기서 묘사되는 소위 추억이라는 소학교 5학년 시절 타에코의 기억들은 저에겐 정말 송곳으로 쑤시는 것 같은 것들입니다.

아이들의 생각 없는, 심지어 악의조차 없지만 비수를 찌르는 행동과 말들이 우선 제일 충격적이었습니다. 특히 남자애들이 여자애 놀리거나 괴롭히는 건 낯이 달아오를 정도입니다. 그런데 정말 아이들은 저렇죠. 심지어 나도 저랬을 겁니다. 타에코의 기억 중에는 자기가 당하는 쪽인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죄책감에 대한 것도 있죠. 그러고도 아이들은 대부분(전부는 아니죠) 대수롭지 않은 일로 딛고 일어나거나, 혹은 잊고 어른이 됩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자니, 그 기억을 되살리고, 제가 겪은 것과 한 것에 대해 지금의 머리로 평가하는 게 가장 충격적이고 견디기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설사 그때는 어렸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그리고 혹여 저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가 이런 경험을 고스란히 할 것과, 무엇보다 남에게 상처주는 행위를 할지도 모르는 것, 그걸 어떻게 최소화하거나 고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했습니다. 뭐 지금으로선 그 걱정은 그다지 할 필요가 없을 거 같지만요.


-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주변을 둘러싼 어른들은 한없이 자애롭진 않고, 성인군자도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보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형제입니다. 솔직히 부모든 누나든 타에코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타에코의 관점에서 보기에, 타에코에 이입해서 보기에는 비수를 꽂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납니다.

이것 또한 저의 기억들과도 연결되는 것이죠. 부모님은 좋은 사람이지만, 성인군자는 아니었습니다. 타에코의 투정에 인내심이 시험받다 마침내 사소한 이유로 폭발해 빰을 때린 아버지의 모습에서, 제가 겪은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당시 기준으론 오히려 평균 이상으로 관용적이었다고 봅니다), 저도 예상도 못 한 충격이라 할 정도의 반응을 감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생각나는 거 자체가 좋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인 상황이나 이유는 기억 속에 희미해졌지만, 그때의 억울함, 서러움이란 감정은 20년이 흘러도 사라진 게 아니더군요.

타에코가 뺨을 맞는 순간 그 순간의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남과 동시에, 부모님에 대한 미움, 두려움도 같이 살아났습니다. 이성적으로 부모가 성인군자가 아니라는 것과, 그저 인간적 한계일 뿐이었단 걸 이성적으로 지금 납득한다 해도, 그 감정을 극복하고 솔직하게 대하기는 쉽지 않아 지더군요.


- 타에코가 꾸중 듣는 이유 중 하나가 수학인데, 저도 수학으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저는 회초리를 맞으면서 구구단을 외웠죠. 큰 잘못을 했을 때 외(그 중에는 고3 수험 때 스트레스 때문에 깽판을 친 것도 있지만)에 맞은 경우는 그때 뿐이지만,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맞고 울면서 구구단 외운다는 사실은 납득은 안 됩니다. 누그러지긴 했지만 이 일은 아직도 아버지를 선뜻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어렵게 만든 경험이었습니다. 참고로 타에코는 수학 적성이 아니지만 저는 수학을 잘 하는 편입니다. 그저 구구단 선행학습이 빠르지 않다는 이유에서였죠.


- 소학교 5학년과 성인의 타에코는 대충 쇼와 후기, 더 정확히는 고도성장기 중후반(6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중반)에 걸쳐 있습니다. 풍경과 사회 분위기들은 오늘날 보기에는 일본에서도 생경하겠지만, 한국에서는 더 그렇겠죠. 80년대생으로써, 그리고 일본보다 약간 시차를 가진 사회흐름을 가진 나라로써(타에코는 중산층이고 저는 서민층이기에 거기서 오는 추가적인 시차도 있습니다), 저는 타에코가 겪은 시대의 끝자락에 태어났고, 어린 시절의 사회풍토와 경제적 수준, 분위기는 작품의 시대상을 이해하기에 완전히 동떨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아마 신세대들은 훨씬 시대상을 흡수하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본인이 아니니 모르겠지만요.


- 작중 연출들은 미야자키 작품들처럼 환상적이지도 호화스럽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소소한 연출, 장면의 배치, 삽입되는 노래라거나 대중매체의 모습 같은 것들은 기교적인 면에서 교과서적이라도 해도 될 정도로 충실함과 적절함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전에 타카하타 작품에서는 그다지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시대상이란 부분을 보다보니 그런 게 더 잘 보이더군요. 중간중간 노래들이나, 학교에서 사건들이 일어날 때와 교실에 걸린 서예 문구를 보세요.


- 타에코가 결혼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요즘 여성은 일도 하고 결혼 안 하는 것도 흔하다고 말합니다. 이때는 이미 고도성장기에 OL이 보편화된 시기라 결혼도 옛날처럼 당연한 게 아니게 되긴 했지만, 사실 이 얘기는 시간흐름이 빠른 서양부터 봐도 뭐 한 300년 정도는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같은 상황이긴 하죠.

훨씬 덜해졌을 뿐 오늘날조차도 결혼하지 않을 때 질문과 압력을 받지 않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는데, 어쨌든 타에코가 그런데 눈돌릴 틈이 없는 건 사실 소학교 5학년의 매듭지어지지 않은 기억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긴 합니다. 마침 그 기억들이 떠올라서 토시오에게 선뜻 마음을 열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는 하지만, 27살까지 연애, 결혼 생각이 없고 시골 농활 같은 취미에 전념하는 이유(일본 기준으론 지금도 이정도면 슬슬 기운다고 하는 때죠)가 되지는 않는다고 할까.

마찬가지로 연애, 결혼 생각이 없고 취미생활에 몰두하는 저와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되네요. 저의 경우엔 제 경험들이 분명히 그런 방향으로 행동하는데 동기부여를 했고 의식하고 있으니 말이죠. 타에코는 의식적으로 기피한 건 아니라 할 수 있으니, 타에코와 같은 식으로 결말에 도달하지도 않겠지요. 가끔은 지금에라도 바뀔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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