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로 지브리 다시 보기(1) - 천공의 성 라퓨타 by eggry


 지나간 작품 감상기는 잘 안 쓰는 편인데, 넷플릭스에서 지브리 작품 전체(사실 방영 예정표에 '반딧불의 묘'가 빠져 있는 걸로 나와서 전체는 아닌 듯 합니다. 총 22개 중에서 21개네요. 엄밀히 말하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지브리 창립 전에 만들어진 거라 갯수 자체는 21개가 맞지만...)를 다시 볼 겸 글이라도 써보려고 합니다. 어차피 워낙 고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본 거라서 일반적인 평론은 할 필요가 없는 거 같고요, 그냥 단답 수준의 짤막짤막한 문단 단위의 잡상 모음 정도로 할 생각입니다.

 원래 순서대로라면 제일 처음 작품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되야겠지만, 넷플릭스 순서가 뒤죽박죽이라 그냥 보는 대로 쓸 생각입니다. 1차로 풀린 것 중 제일 이른 게 '천공의 성 라퓨타'(이하 라퓨타)라서 '라퓨타'로 시작. 1차 중에서 가장 최근 건 '게드 전기'인데 이건 가급적 마지막에 보도록 하겠습니다.

- 요즘 보면 플롯이랄 게 거의 없는... 사실상 시놉시스랑 피날레만 있는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초고대문명의 유산을 가진 소녀가 쫒기다가 소년과 만나고 라퓨타를 결국 찾게 되는데, 인간의 탐욕 속에 붕괴되고 만다는 아주 고전적인 동화 같은 얘기입니다. 사실 그래서 플롯 상으로는 그렇게 얘기할 구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나우시카'에서도 나타났고 이후에도 계속되는 미야자키의 코드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일단 소녀 취향은 안 좋은 거라고 해야겠죠;;


- 막강한 기술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던 라퓨타 제국이 무너지고 폐허가 된 경위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쉽게 짐작할 수 있죠. 오만과 욕심에 의한 싸움과 파괴 때문에 라퓨타의 왕족은 영광을 버리고 땅에 내려와 라퓨타를 묻어두기로 한 것이죠. 실제 라퓨타는 인간들이 당도하기 전에는 매우 평화로운 곳처럼 묘사됩니다.

단순히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반영이라기보단, 그보다 좀 더 보편적인 문명과 기술, 정복욕 같은 것에 대한 얘기라고 봅니다. 라퓨타의 힘을 이용하려는 무스카 대령을 물리치는 형태도 결국 힘을 파괴함으로써 저지하는 것입니다. 미야자키의 답은 힘이 있는 한 탐욕과 실수는 반복될 터이니, 의식 있는 자의 손에 의한 존엄한 안식 내지는 안락사인 것 같군요.

기술에 대한 관점은 로봇으로 대표됩니다. 파괴적인 살상력을 가진 한편, 인간이 사라진 곳에서 평화로이 정원을 관리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용하기 나름이라는 기술의 양면성처럼 보이지만, 여기서도 인간에 대한 불신은 강하게 드러납니다. 선한 이조차도 통제하지 못 할 거라는 불신 말이죠. 시타가 아무리 애걸하더라도 로봇은 파괴행위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게 단순히 옳은 주문으로 명령하지 않아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 '라퓨타'는 놀라울 만큼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와 유사한 설정과 시놉시스를 가진 걸로도 유명합니다. 본래 NHK와 미야자키가 해저탐험을 소재로 한 기획을 준비하다가 결국 성립하지 못 하고 미야자키가 지브리를 설립하고 만든 게 '라퓨타'이고, NHK가 그 기획을 마저 완성하려고 가이낙스를 기용해서 진행한 게 '나디아'이기 때문에 이상할 건 없지만 그래도 너무 비슷하긴 합니다.

사실 '라퓨타'가 4년이나 앞섰기 때문에 그럼에도 유사한 부분을 바꾸려 하지 않은 건 전적으로 NHK와 가이낙스의 의사라고 봐도 될 겁니다. 그게 안노의 미야자키에 대한 복잡한 감정(당시에는 거의 부딧치다 박차고 나온 제자 같은 느낌이었으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거의 비슷한 설정인 덕에 오히려 둘의 차이가 미야자키와 안노의 차이를 보여주는 듯도 합니다. 미야자키에게 라퓨타의 과거나 로봇의 원리 같은 것들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고, 바깥 세상도 전적으로 가공된 근세~근대의 혼합된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미야자키에겐 탱크나 비행기의 외형이나 움직임은 중요하지만, 그 설정의 내적 배경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반면 '나디아'에서 네오 아틀란티스나 노틸러스 호의 설정 같은 것들은 상당히 비중있게 다뤄집니다. 세상도 벨에포크 시대의 서구 국가들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죠. 특촬물 오타쿠 출신으로써 울트라맨 같은데선 과학특수대나 외계인 설정 같은 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에 투신한 뒤에도 이런 출신성분 부분은 그다지 바뀌지 않는다고 해야겠죠.

악당 측면에서 가고일이 더 인상적인 컬트적 외형에 연출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 더 사악하고 음험한 건 무스카 쪽이죠. 멀쩡하게 생긴 외모에 그 짧은 시간, 단순한 플롯에 그정도 인상을 남긴 건 대단합니다. 웃으면서 시타를 쫒아 사냥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싸이코 살인마 그 자체입니다.


- 할머니 캐릭터나 소녀 집착 같은 건 여전한데 그야 태초의 나우시카부터 그랬으니까... 그렇다고 소녀가 그냥 공주님은 아니고 당찬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여자는~ 남자는~ " 같은 대사도 밥 먹듯이 나오고 해서 그냥 시대의 벽과 일본의 벽[...]을 넘어선 건 아닌 거라 해야겠죠. 솔직히 이정도 소녀 캐릭터면 요즘의 마마[...]이 비하면 한참 양반이지만서도요.


- 지브리 창립작품이기 때문에 이후 아직 지브리가 대성하기 전임에도 꽤 힘을 들인 면모들이 보입니다. 설정과 플롯은 심플하지만 애니메이션 측면에서 만큼은 타협하지 않는 면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중간중간 들어가는 풀 애니메이션 동화라든가, 미야자키 특유의 사소한 동작들 같은 부분은 지금도 귀감이 될 만 합니다. 행동을 멈칫하게 하는 세부 동작 같은 것들은 관찰력 얘기로 많이 언급될 거 같은데, 최근작 중에서는 '영상연에 손을 대지마!' 4화의 학생회가 기억에 남는군요. 연기도 재밌었습니다. 영상연 보세요.


- 멸망의 주문 바루스를 함께 외치는 사랑의 힘과 용기는 일견 단조로워보이는 내용에서도 강렬합니다. 그런데 바루스를 외쳐도 그냥 비행석이 치고 올라가면서 좀 부서졌을 뿐이지 라퓨타가 산산조각나는 건 아니고 그냥 아주 높이 올라가는 것 뿐이죠;; 라퓨타는 훗날 더 발달된 기술을 손에 넣은 인류가 다시 당도하여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될까요? 또 한번 극복해 냈지만 영원히 극복해낸 것은 아니라는 점은 희망적인 엔딩과 노래 속에서도 생각을 남깁니다.



덧글

  • DVA 2020/02/03 20:39 # 삭제 답글

    주인공이 돈받고 소녀를 팔아넘기는 장면은 어릴때 너무 쇼크였어요
    주인공은 전적으로 선하고 정의로운게 진리라고 생각했는데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Adsense Wide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4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메모장

Adsense Squ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