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gry.lab : 2019. 11. 22.-29. 일본 칸사이 단풍 여행기 5부

배 시간이 그리 남지 않았는데 식당이 없는 건 아니지만 들를 시간도 없기에... 편의점 신세를 집니다.

일본 소비세 법이 바뀌었는데, 업종에 따라 분리되다 보니 편의점 테이크아웃은 8%, 먹고 가면 10% 라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죠. 초기엔 이거 때문에 먹고 가나 가져가나 물어보고 세금 적용하고 했다는데, 테이크아웃 하고 먹고 간다고 더 받을 수도 없는 게 웃긴 현실. 그래서 이제 슬슬 다들 포기한 건지, 아니면 그냥 여기만 무관심한 건지 그냥 8%로 계산하더군요. 그러고 앉아서 먹었으니 저는 탈세범이 되었습니다.

비와호 일주선의 노래 자료관. 비와호 페리에 대한 노래들이 꽤 있다고 하는군요. 그걸 기념하는 박물관입니다. 무료라지만 시간도 없고 노래에 관심도 없고... 페리의 낭만 뭐 그런 내용들이지 싶습니다.

오미이마즈 항 안내. 사실 두드러지게 나와있는 건 페리용 잔교 정도 뿐입니다. 어선들도 있긴 한데 그렇게 항구 모양을 갖추고 있진 않은 듯.

매표소와 선착장. 작은 사무실에서 매표합니다. 초라해 보이지만 카드 결제도 됩니다.

치쿠부시마 페리 표. 치쿠부시마의 관광거리인 호곤지와 츠쿠부스마 신사(치쿠부시마 신사라고도 하는데 미묘하게 비슷한 이름)가 그려져 있습니다. 좁디 좁은 섬에 절과 신사가 세트인 걸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지만 이것도 원래는 불교와 신토 양쪽에서 숭배되는 변재천(벤자이텐)을 모시던 게 신불분리로 쪼개진 경우입니다.

치쿠부시마 페리는 당연히 들어가면 나와야 해서 기본 왕복으로 끊습니다. 편도 구매도 가능하지만 그래봐야 섬 나오려면 결국 사야하니... 오미이마즈<->치쿠부시마, 나가하마<->치쿠부시마 편이 있고, 오미이마즈<->치쿠부시마<->나가하마도 되는데 재밌게도 이게 보통 왕복표보다 더 쌉니다. 별도 페리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나올 때 반대쪽 편 배를 타고 오는 겁니다. 참고로 돌아오는 편은 꼭 바로 다음 배를 탈 필요는 없습니다. 느긋하게 구경하고 싶다면 넘기고 그 다음에 타도 됩니다.

늦가을의 썰렁한 항구.

페리가 왔습니다.

페리 크기는 칸몬해협 때랑 비스무리한데 다른 점은 상판으로 나오는 사람이 적다는 거네요. 시간이 훨씬 길기도 하고 별로 볼 게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스크린과 스피커로 선내 방송이 나오는데 이거 내용이 꽤 쏠쏠합니다. 치쿠부시마의 지리적, 역사적 얘기부터 비와 호와 시가 현의 자연이나 역사에 대한 얘기까지... 항행시간이 한 30분 되는데 같은 내용 반복도 아니고 계속 새로운 게 나오더군요. 물론 문제는 일본어 온리라는 거지만요;;

부두 떠나는 중.

시원... 칸몬해협보다 더 바다 같이 넓은 비와 호. 물론 바다내음이 안 나서 비위는 덜 상합니다.

저기 조금 두드러지게 보이는 게 치쿠부시마. 나머지는 그냥 호수를 둘러싼 능선들입니다. 비와 호엔 섬이 둘 있는데(엄밀히는 치쿠부시마 옆에 암석이 한덩이 더 있지만), 하나는 치쿠부시마이고, 하나는 남쪽 오미하치만 시에 속한 오키시마입니다. 오키시마는 제대로된 유인섬으로 학교도 있습니다. 치쿠부시마는 절과 신사 직원 외에는 관광객들만 있죠.

날씨가 별로 좋지 않은데 이 미묘하게 구름 낀 느낌에 물안개가 합쳐져서 호수 주변 풍경은 나름 운치있네요. 물론 쨍한 게 더 멋지겠지만...

치쿠부시마에 다 갑니다. 한자로 죽생섬이지만 별로 대나무는 없습니다. 부두를 터놓은 쪽을 제외하면 다 절벽이라 상륙은 부두로만 가능합니다.

거친 절벽으로 둘러싸인 치쿠부시마. 개척 전에는 원래 항구 쪽도 여건이 좋지는 않았을텐데... 지금은 뭐 콘크리트 부두가 되서 편하게 들어갑니다.

항구 도착.

내렸습니다. 배가 한척 더 있는데 나가하마 왕복편은 아닌 거 같고... 비상용?

시설 일부가 공사 중이네요. 아쉽습니다.

배 삯을 냈지만 입장료는 따로 필요합니다! 입장료 안 사면 정말 항구의 상점만 볼 수 있음. 절과 신사 공통입니다.

츠쿠부수마 신사의 토리이.

테미즈야. 귀엽네요. 이건 구석에 있는 좀 작은 거고 지붕 있는 보통 테미즈야도 있습니다.

석조 토리이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면 신사, 계속 올라가면 절로 가게 됩니다.

호곤지 본당으로 가는 길의 자잘한 절간들. 절 이름은 호곤지지만 변재천을 숭배하기 때문에 벤텐도(변천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치쿠부시마는 일본의 3대 벤텐도라는군요. 다른 둘은 에노시마와 이쓰쿠시마 신사입니다. 이쓰쿠시마는 아직 못 갔는데 유명한 바다에 있는 토리이가 지금 보수공사 중이라 언제쯤 갈 일이 있을지. 히로시마에 크게 볼 거리가 없기도 하고요.

호곤지 본당. 정사각형에 가까운 느낌?

본당 밖 한쪽에는 부동명왕상이 있습니다. 치쿠부시마는 아주 옛날 원시신앙 시절부터 신앙의 장소였다는데, 부동명왕을 숭상하는 것 같은 것도 결국 그런 긴 신앙의 역사의 일부겠지요. 거대한 비와호에 위치한 작은 섬은 고대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모양입니다. 신토, 불교 양쪽으로 신성한 장소로써 숭배되었고 당연히 뒤섞이기까지 했습니다. 근처에 배가 대량으로 침몰된 듯한 해저유적이 있는데 그것도 종교의식의 일환으로 배를 가라앉힌 걸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신토의 신화 관점에서는 치쿠부시마가 형성된 얘기가 있습니다. 비와 호 동쪽을 보면 시가 지역의 높은 산으로 이부키야마와 카나쿠소다케가 있습니다. 신화에 따르면 두 산의 신이 서로 높다면서 기싸움을 했는데, 화가 난 이부키야마의 신아 카니쿠소다케의 목을 베어버렸고, 그 머리가 떨어진 게 치쿠부시마라고 합니다.

측정 상으로 이부키야마는 1377m로 현재 인근 최고봉이고, 카니쿠소다케는 1317m로 2위입니다. 하지만 치쿠부시마의 고도가 거의 200m이기 때문에 치쿠부시마가 카니쿠소다케의 머리라면, 원래는 카니쿠소다케가 더 높았다- 뭐 그런 신화입니다. 자기보다 크다는 걸 알자 화가 나서 잘라버린 신이라니... 카니쿠소다케의 신은 츠쿠부수마 신사에 모셔져 있습니다.

비와 호 인근에 세력권을 형성한(동쪽 기후, 나고야 지역이 원래 근거지이고 오미 지역은 가신이 된 아케치 미츠히데의 영토) 오다 노부나가도 이 신사를 참배한 적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호곤인의 본당 안쪽. 달마 인형이 엄청 많네요.

사방에 널린 붉은 변재천 깃발.

본당 옆에 작은 사당이 있는데 뭔진 모르겠음. 지도에도 안 나옵니다.

테미즈야와 3층 목탑.

3층 목탑. 별 건 없네요.

나무에 뭐라고 되어 있는데 기억 안 남.

추가 입장료를 내야 하는 보물전이 있습니다. 시간도 빠듯하고 그렇게 볼만할 거 같지 않아서 패스.

지붕과 단풍.

서국 삼십번 관세음당? 중간 한자 하나 모르겠네요. 여튼 건물 하나 있긴 했습니다.

호곤지에서 내려가면 신사 쪽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중간에 관세음상 하나.

공사 중인 건물은 다리에 지붕을 얹은 구조로 성이나 절의 출입구가 되는 카라몬...인데 카라몬이 이어야 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원래 이곳에 있던 건물도 아닙니다. 종교에 흥미가 아니라 전체적인 일본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건물이 역사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건물일 겁니다. 이 카라몬은 바로 토요토미 히데요시 시절의 오사카 성에 있던 것입니다.

이게 여기까지 도달하게 된 이력은 꽤 복잡합니다. 당연히 히데요시의 오사카 성은 히데요리 대에 토쿠가와 막부의 공격으로 패할 때 파괴되었습니다. 이후 재건된 성은 히데요시가 좋아하던 검은색+금색도 아니고 모양도 바뀌었지요. 지금의 콘크리트 오사카 성 천수각은 맨 윗층만 빼고 마지막 목조건축 때의 것을 재건한 것인데, 천수각의 미학적인 면은 나고야 성이나 에도 성에 가깝습니다. 그도 그럴 게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이묘들의 재산을 거덜낼 목적으로 재건한 것이고 당연히 자기의 미학적으로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카라몬은 '오사카 전투'의 전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히데요시 사후, 이 문은 교토 히가시야마에 히데요시를 모시려고 만든 토요쿠니 신사(주요 관광지로 쉽게 나옵니다)의 문으로 설치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 그대로 있었어도 토요토미 가문의 멸망 후 토요쿠니 신사도 축소되는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겠죠.

카라몬은 토요토미 가문의 멸망 전에 한번 더 이축을 경험합니다. 대화재로 손실된 변천당을 히데요리가 히데요시의 가신이었던 시즈가타케의 칠본창 중 한명인 카타기리 카츠모토에게 명하여 그때 이 카라몬을 이축하게 됩니다. 당시 재건된 건물 중에는 츠쿠부수마 신사의 본전도 있다고 하는데, 이 본전도 히데요시가 전성기 때 지냈던 후시미 성의 건물을 이축했다고 전해집니다.

어쨌든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영화가 담긴 당시의 오사카 성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게 바로 이 카라몬입니다만... 지금은 공사중이라 외관이 다 덮혀서 볼 수가 없습니다. 카라몬은 지금은 호곤지와 츠쿠부시마 신사의 사이를 연결해주는 중간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엄연히는 여기까지도 불당의 일부로써 안에 불상이 안치되어 있고 그렇습니다. 성문이 불당이 되었다는 게 기묘하지만.

완전 현대 복원이 아니라 이어져 내려오는 건축물 중에는 아마 이것이랑 코다이지의 불당 하나 정도만 남아있을 듯 합니다. 비록 검은색+금색의 외관은 볼 수 없었지만 세단계 그라데이션으로 칠해진 빨간색, 녹색, 파란색의 도색은 코다이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츠쿠부수마 신사의 배전. 본전이 후시미 성에서 왔다지만 그건 확실한 기록은 아니고 전승에 가깝다는 듯. 원래 신사의 기원은 신화에 나왔던 카나쿠소다케의 신이었지만 불교의 도입 후에는 변재천이 주신입니다. 그렇다고 쫒겨나진 않았음. 하지만 원래 주인이 세들어 사는 신세가 되다니...

이 신사의 소원빌기 법은 접시에다 소원 적어서 던지는 것.

사람들이 던진 접시가 수북히 쌓여서 조개무덤을 연상시킬 정도. 토리이 안쪽의 말사를 보면 원래 땅 높이가 얼마였을지 짐작이 됩니다.

소원접시 던지는 사람들. 작긴 하지만 모양 상 프리스비 던지는 거랑 비슷한 느낌일 거 같네요. 아니면 물수제비나...

볼 거 다 봤고 항구로 돌아옵니다. 대충 섬 한바퀴 도는 루트. 사실 신사 배전에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건물 하나 더 있는데 별로 볼 거 없을 거 같고 배 시간도 다가와서...

작은 배들. 아직 페리는 안 왔네요.

출구로 나온 뒤 돌아본 입구의 매표기.

시간 애매하게 남아서 폰 충전도 하고, 간식거리 둘러보다가 두부 밀크 아이스크림 발견. 두부 아이스크림이라? 호기심이 동합니다.

뭐 이렇게 생겼는데요. 먹어보면...정말 두부 맛이 납니다. 식감은 젤라또랑 비슷하고. 어떻게 두부맛 나는지 약간 신기하기도 한데 두부맛 답게 그렇게 달달하진 않아서 초딩입맛에 맞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재밌는 맛이었음.

배 탈 때가 됐습니다.

배 타고 떠나며... 츠쿠부시마 신사의 배전과 접시 던지던 토리이가 보입니다. 가까이선 안 보이던 본전도 뒤에 보이는군요. 섬은 남쪽의 항구와 절/신사 빼고는 완전 미개척 상태로 자연이 풍요로워야 할...겁니다만, 섬 북쪽에 가마우지가 대량으로 채류하면서 똥폭격(!)으로 나무들이 고사하고 수질오염이 일어나고 있다는 황당한 얘기가;; 그래서 좀 잡고 몰아내고 있다고 합니다.

멀어지는 치쿠부시마.

비와 호 북쪽의 능선.

나가하마 돔. 크네요.

나가하마 항 도착. 나가하마도 너무나 항구도시의 표본 같은 이름이죠.

나가하마는 이미 시간이 늦어서... 히코네가 더 우선순위라서 그냥 스쳐지나갔습니다. 나가하마 역으로 가는 길. 나가하마 성이 있는데 그냥 콘크리트 천수만 복원해서 공원으로 만든 곳입니다. 길거리에 작은 박물관 같은 게 많은데 볼 시간 없음.

무단주차(?) 해놓은 차에게 사이렌 울리면서 방송으로 차 빼십시오 차 빼! 하던 경찰. 이런 모습은 여태 처음 봤네요.

나가하마 역에서 이제 JR 호쿠리쿠 본선을 타고 남하합니다.

히코네 역 도착. 히코네 초대 번주였던 이이 니오마사. 토쿠가와 이에야스 사천왕 중 한명으로 본래 출신영지는 하마마츠지만 뭐 중세 다이묘들이 다 그렇듯 주인님이 주는대로 옮겨가서 살았습니다.

히코네 성의 지도. 하지만 이미 시간 상 들어갈 수 없다는 게 분명합니다. 문 닫을 시간이 거의 다 됐거든요.

그렇다고 그냥 숙소로 가긴 억울한데... 히코네 성의 정원인 겐큐엔이 라이트업을 한답니다. 이거라도 보고 가야겠네요.

석양이...진다...

히코네 성의 입구. 뒤늦게 온 사람들이 저처럼 허탕 치고 있습니다. 엄밀히는 아직 문 닫을 때까지 15분 남았지만 그정도면 거의 천수각까지 달리기 해야 나올 수 있는 수준이래서...

성벽의 나무가 멋지네요.

정말 붉은 석양.

해가 저무는 히코네 성.

밥 먹고 겐큐엔이나 보기로 했습니다. 히코네 성 앞 오미야게 겸 우동집.

히코네의 아이콘 히코냥.

키츠네(유부) 우동. 차도 나오고 다과도 나왔네요. 손님이 별로 없는 상황에 심심한지 주인장이 마구 말을 걸었습니다. 방금 찍은 노을 사진 보여주면서 10분 더 빨리 왔으면 좋았을 거라든가(가게에 걸린 히코네 성 사진은 아무래도 직접 찍은 거인 듯)... 한국인이란 거 아니까 고추양념을 주는데 너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뿌리길 바라는 거 같아서 뿌려 먹었습니다. 근데 일본 우동에 매콤한 조미료는 별로 안 어울리는 듯;

확실히 어둠이 내렸네요. 이제 겐큐엔으로 갑니다.

6시 개장인데 5시 40분에 줄이 이미 이런... 뭐 입장은 금방 되더군요.

후루룩 들어갑니다.

겐큐엔 입장. 상당히 넓습니다. 저수지를 중심으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히코네 성 입구에선 나무에 가려 안 보이던 천수도 여기서는 잘 보이네요. 원래 천수라는 게 망루 역할이긴 하지만 상당히 높은 곳에 있습니다.

다방.

다리.

연못에 비치는 정원.

히코네 성의 천수각. 히코네 성은 전근대의 천수각이 그대로 남아있는 다섯 성 중 하나로, 국보에 속합니다. 이누야마, 히코네, 히메지, 마츠모토, 마츠에 성이 그 다섯인데, 마츠모토는 조만간 갈 거 같고 마츠에만 남는군요. 시마네는 정말 갈 일이 없을 거 같아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