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gry.lab : 2019. 11. 22.-29. 일본 칸사이 단풍 여행기 3부 - 마키노 메타세콰이어, 사이쿄지, 히요시 타이샤

NINJA!!

제가 가려는 방향 열차가 와서 타고 북상합니다. '오쓰쿄' 역에서 출발해서 '마키노' 역까지 북상. 올라가다 보니 비와 호와 가까워져서 호수도 보이고 그렇습니다. 정말 크군요.

하지만 마키노 역까지 가는 노선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배차 간격이 빈번한 건 '오미이마즈' 역까지만 가는데, 어차피 갈아타야 할 거 시간표 보니 '신아사히' 역에도 정차한다고 해서 그냥 미리 내렸습니다. 앞서 타는 게 자리도 좋을 거 같아서... 날이 추워진다고 좌석에 쿠션을 해놨네요.

열차 시간도 좀 남아서 역 밖으로 잠깐 내려왔습니다. 패스권이니까 화장실 등의 이유로 개찰도 마구 합니다. 역 앞에 동상이 있는데, 무슨 장수의 동상인가 했더니 그런 건 아니고(3명이나 되니) 이름이 "욱일승천약진의 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뭔가 제국주의 냄새가 날 거 같은 이름인데, 또 동상의 모습들은 그냥 전근대의 여러 계층을 묘사한 듯한 느낌이고...

내력을 검색해보니 이건 행정구역 통합과 새로운 지명, 그리고 거기에서 앞날의 성공을 기원한 의식에서 기인한다고 합니다. 이곳 이름이 신아사히죠? 한자는 아침해를 가리키는 그 아사히(朝日)의 약자인 욱(旭)인데, 1955년에 촌 통합 때 새 이름을 신아사히로, 그리고 앞날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이런 동상을 세웠다고 합니다. 지금은 행정구역이 다시 통합되어서 타카시마 시에 소속되어 있습니다만.

가장 큰 동상이 야부사메(일본 신토의 기마 활쏘기 의식)인 이유는 가까운 곳에 있는 오라히코 신사에서 열리는 큰 축제에서 야부사메가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뭐 여튼 욱일 하면 욱일기랑 일본제국이 먼저 생각나지만 이쪽은 좀 더 토속신앙적인, 해돋이의 신성성 같은데서 나온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욱일기도 거기서 나와서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된 거지만 말이죠. 좋은 건 나쁜 놈들도 가져다 써서 이미지를 나쁘게 만드는 것이지요;;

신아사히 역. 한적한 지방의 작은 역이지만 이 노선(코세이 선) 자체가 대부분 농토를 지나가는 탓인지 고가형태로 되어 있어서 역도 높습니다.

플랫폼으로 올라가는 계단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플랫폼 난간에 기대서 기다리면서... "풍차와 물의 고장" 이라고 되어 있는데, 타카시마 시는 물과 바람이 자랑거리라고 합니다. 풍차...는 풍력발전이든 재래식이든 딱히 본 게 없습니다만, 물의 경우엔 이 신아사히의 경우 마을 전체를 가로지르는 수로가 집집마다 흘러 들어가서 그곳에서 바로 쌀을 행군다든가 하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습니다. 수량과 수질이 좋은 동네에서 전근대부터 이용되던 방법인데, 역에서 그리 멀지는 않지만 열차시간을 고려해서 가볼 순 없었습니다.

이번 여행에 주의해야 했던 게 승차 위치. 같은 열차라도 중간에 분리되서 앞 차량만 더 멀리 가버린다거나 해서... 번호, 삼각형/동그라미를 방송을 잘 듣고 섭니다.

반대 방향 신쾌속. 내 열차는 언제쯤...

타고 가는 중. 맨 앞 차입니다.

목적지에 따라 분리되는 지점에 도착.(이마이마즈) 그 잠깐 서 있는 동안에도 직원이 들어와서 광고를 갈고 있군요.

조금 더 기다려서 '마키노' 역 도착. '신아사히' 역과 비교해도 참으로 작은 역이네요.

출발점인 '오쓰쿄'에서 거의 1시간 반 걸렸습니다. 시내 내지는 인접지 위주로 다니다보니 감이 무뎌졌는데 사실 거리로 치면 평택에서 서울 가는 수준 거리라서... 보통은 거점도시 위주로 인근 옆도시 정도 갔는데 여기도 옆도시긴 하지만 현을 가로지르는 급이라 다르네요. 이게 예상 밖이라 이동에 시간을 많이 먹어서 이번 여행에서 못 가본 곳들도 좀 됐습니다. 시골이라 배차간격도 별로고...계획은 언제나 여유롭게!

이제 버스를 타고 메타세콰이어 길이 있는 마키노 피크랜드(위치)로 갑니다. 셔틀버스가 있긴 한데 지방 아니랄까봐 IC 카드 안 됩니다. 동전이 마구 증식합니다. 안그래도 이번엔 동전지갑을 안 가져와서 더 난장판.

메타세콰이어 길 거의 다 와 가는데... 사실 생각했던 거랑은 좀 다르달까; 산책로일 줄 알았는데 자동차도로 좌우로 쭉 난 거더군요. 그 말은 성수기에 자동차가 미어 터진다는...

앗 원숭이다! 의외로 여기저기 있군요. 그러고보니 교토 권에도 요즘 원숭이 나타난다는 간판이 절에 있더군요.

도착! 기념비도 있네요. '마키노 고원의 메타세콰이어 나무'

뭐 대충 이런 곳인데... 낙엽 쌓인 산책길이면 분위기 좋았을텐데 차도라서 좀 그렇고 더군다나 차가 엄청 많이 밀려서 난감하군요.

일단 밥도 못 먹었으니 요기거리나 찾아서... 마키노 피크랜드는 Pic-Land인데 마키노 고원(Peak)를 가리키는 거 같진 않고 그럼 Picnic의 줄임말인지. 아무리 찾아봐도 뭐의 줄임말인지 확인할 방도는 안 나오더군요; 여튼 뭐시기 랜드긴 해도 입장료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중심건물 몇개를 두고 약간 느슨한 감각의 교외 레저 용지인 듯 합니다. 아무래도 이런 개념이 서양 목가적이다보니 서양식 나무 건물에 파는 음식도 약간 그런 게 있고요.

뭐 이렇게 수공예 마켓 같은 것도 열리고 있습니다.

식당 입구의 메타세콰이어 카페트.

본래 뷔페(바이킹) 식당인 듯 하지만 점심시간을 지난 상태라 뷔페는 안 되고 테이크아웃 덮밥류만 됩니다. 카레 라이스랑... 갈비(!) 덮밥, 고로케 했네요.

테이블 아무데나 앉아서 까서 먹습니다. 카레는 엄청 진했고, 갈비 덮밥은 갈비가 조금 질겼네요. 뭐 밖에서 먹는 테이크아웃 음식이니 별로 기대는 안 했습니다.

푸드코트 테이블 가까운데 간이 무대가 있고 성악가가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건 '이웃집 토토로' 부를 때. 애들이 너무 신나하던...

도로 상황이 명절 고속도로 급이라서 길 가운데 서서 대칭샷 같은 거 찍기는 어렵고 프레이밍을 조금 잘라내는 식으로 좀 찍어 봐야겠습니다.

메타세콰이어와 산. 지도를 보면 아카사카야마려나. 교토와 비와호 사이의 산은 그냥 산맥으로 쭉 이어져 있어서 굳이 구분하는 의미가 없지만...

이른 노을을 받는 나무들.

뭐 이런 성수기 명소는 당연하다는 듯 자동차/바이크 매니아들도 단체 주행을 하러 옵니다. 그런데 바이크 뒤에 무언가...?

로,로터스 세븐!

사람 많아서 찍기도 어렵고 구도도 생각나는 게 더 없어서, 얼른 탈출하기로 합니다. 버스 배차간격이 별로니까 빠른 탈출이 현명. 버스는 순환이라서 양방향으로 되는데 타고 온 것과 반대쪽은 배차가 훨씬 적어서 1시간은 기다려야 하더군요. 대신 이쪽은 역으로 돌아가는데 30분 정도 걸림.

창 밖을 스쳐 지나가는 일본의 전원 풍경.

'마키노' 역에 돌아왔습니다만, 다음 열차가 1시간 뒤! 아 여기 시골이지...

결국 같은 버스 타고 온 사람들 전부 역 광장의 벤치니 뭐니에 눌러 앉아서 시간 죽이기 합니다. 전 폰 배터리 충전하면서 잠깐 선잠이나...

열차 기다리는 동안 해가 집니다. 원래 오늘은 메타세콰이어 보고 비와호 밸리를 갈까 했는데 영업시간 상 절대 안 되겠더군요. 메타세콰이어 숲의 실패를 생각하면 비와 호 밸리를 갔어야했나 싶기도 하고요. 결국 이번 여행에서 비와 호의 전경은 전혀 못 봤으니...

열차 타고 남하합니다. 해는 이제 확실히 기울었고... 이대로 그냥 숙소로 돌아갈까? 하다가 오쓰에 라이트업 하는 곳이 생각나서 들러보기로 합니다. 목적지는 히요시 타이샤.

정류장 조회해보고 후딱 내렸습니다. 캄캄...

'히에이잔사카모토' 역입니다. 교토 쪽 히에이잔의 반대방향인데, 이쪽도 케이블카가 있어서 엔랴쿠지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오늘 목적지는 거기가 아니지만...

이 지역의 라이트업은 세군데, 히요시 타이사, 사이쿄지, 그리고 구 치쿠린인 정원 세군데가 있었는데, 시간 상으로 제일 먼저 끝날 거 같고 제일 먼 사이쿄지를 첫번째 목적지로 택했습니다. 문제는 여기 가는 대중교통이 없어서 택시를 타야했던; 그렇게 많이 나오진 않았습니다.

사이쿄지(西教寺, 위치). 천태진성종 총본산이라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아케치 미츠히데와 연고가 있다는 걸 더 내세우고 싶은 듯 하군요; 그러고보니 내년 NHK 대하 드라마는 미츠히데가 주인공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불멸의 인기를 자랑하는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한 걸 어떤 식으로 각색할지. 여튼 이 오미 지역은 본래 아케치 미츠히데의 연고지라서 단순히 붐에 편승한 건 아닙니다.

오... 참배로 단풍과 라이트업이 아주 멋집니다. 문제는 LED 조명 색이 계속 바뀌어서 색 내기가 지랄맞음+삼각대 너무 낮은 걸 가져왔더니 쭈그려서 세팅하느라 무릎 부서질 거 같음.

참배로 따라 올라가며...

중간에 계단에서.

중요한 보수작업에 사용한 뒤 남은 듯한 거목의 밑둥이.

경내 풍경. 입장료도 없는데 아주 좋네요. 다만 사이쿄지는 네개의 정원이 있다고 하는데 정원은 야간개장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냥 참배로와 본당 앞마당 정도네요. 돈도 안 받고 관리자도 딱히 안 보이니 이정도면 감지덕지지만요.

본당. 들어갈 순 없습니다.

본당 주변 좀 더 둘러본 뒤 내려갑니다. 삼각대 세팅하고 장노출 찍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서 다른 곳 문 닫게 생겼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잠깐 옆으로 빠진 건물의 문.

문으로 비와 호가 비쳐 보여서 아주 좋은 촬영 스팟인 듯 합니다만 시간이 없단다...

라이트업 된 참배로 너머로 뵝는 컴컴한 비와 호 정도만 찍고 갑니다.

이제 히요시 타이샤를 가는데 내리막길이고 갈 때는 역에서 출발했지만 여긴 택시가 보이지도 않아서 그냥 걸어서 갑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국도길 가려니까 차 지나가는데 무섭더군요. 비와호 하나는 잘 보입디다.

허겁지겁 걸어서 히요시 타이샤(日吉大社, 위치)에 도착. 원래 인근에 있는 구 치쿠린인 정원을 먼저 가려고 했는데 입구를 못 찾아서... 나중에 알고 보니 블럭 반대편에 입구가 있다더군요; 헤매다가 그냥 히요시 타이샤를 먼저 가기로 했습니다.

히요시 타이샤 참배로 주변의 풍경. 육각정도 있고, 사무실 건물로 보이는 것도 있고, 돌정원도 있습니다. 이끼로 덮힌 돌다리가 제일 인상적이었네요.

히요시 타이샤의 양식적으로 가장 개성적인 부분이라면 산노(산왕 山王) 토리이 되겠습니다. 오징어 머리가 생각나는 삼각꼴이 보통 토리이 위에 얹혀있습니다. '산노'라는 명칭에서 볼 수 있듯 이는 산을 상징하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히에이잔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신불습합의 대표적인 사례로, 히에이잔이라는 산악신과 천태종이 합쳐서 숭배된 것인데, 그래서 히요시 타이샤도 본래는 엔랴쿠지의 영향 하에 있었습니다.

메이지 시대 신불분리, 폐불훼석이 선언된 뒤 최초로 손이 닿은 곳이 이 히요시 타이샤라고 합니다. 엔랴쿠지가 일본 불교의 가장 큰 존재였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어쨌든 그에 따라 신사에서 불교의 흔적을 제거하고 재단을 분리하는 과정이 일어났는데, 엔랴쿠지에서 열쇠를 넘기기를 거부한 바람에 인부를 동원해 강제로 불상 등을 끌어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상과 종의 금속류는 녹여서 동전이나 대포가 되었다고. 이 사건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폐불훼석이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사실 메이지의 폐불훼석은 국가정책적인 것이기도 했지만, 히요시 타이샤에서 그게 폭발적으로, 다소 폭력적인 형태로 이뤄진 건 엔랴쿠지와 히요시 타이샤의 미묘한 권력관계 때문이라고 합니다. 천태종이 도교의 영향을 받아 히에이잔을 지주신으로 모시게 되었는데, 이것이 산노 신앙과 융합되게 됩니다. 엔랴쿠지의 막강한 영향력 덕분에 히요시 타이샤의 신관 임명권을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신사 측은 에도 초기에도 분리를 시도한 적이 있는데, 엔랴쿠지가 막부를 불러들여 재판이 열리고 신사가 패배하게 되었다고.

이 사건으로 히요시 타이샤는 엔랴쿠지의 지배에 더 강하게 놓이게 되어서, 각종 행사에도 엄격하게 통제되었다고. 하지만 메이지 시대가 오고 불교를 몰아내고 신토를 내세우려는 움직임에 맞춰 히요시 타이샤가 과거의 응어리를 내세워 다시 반기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분리하는 것만이라면 불상을 다 엔랴쿠지로 보내버린다든가 하면 되는 것이지만... 그런데 이런 과거에도 불구하고 히요시 타이샤에는 아직 본래 안치되어 있던 21개의 불상 반 이상이 남아 있습니다;;

결국 폐불훼석은 엄격한 신앙의 분리라거나 재정립이라기 보다는, 불교와 신토를 경영적 측면에서 분리시키고 신토를 국가의 이념으로 세우려는 것이지 주목적이었다는 것이죠. 초기의 열풍이 지나가고 국가신토 운동도 패전으로 퇴색된 뒤에는 애초에 신도들이 별로 둘을 구분하려 하지 않고 가깝고 편한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에 다시 회귀하려는 경향이 나타났고, 지금은 여전히 절이나 신사나 자기들 옛날에 하던대로 절에도 신사식 참배가 있고, 신사에도 불상이 있고 그런 상황입니다.

참배로의 등불들. 그나저나 여기도 원숭이가 산에서 내려오나보군요.

히요시 타이샤는 동본궁과 서본궁으로 나뉘어져 있고 이쪽은 서본궁의 산몬입니다. 동본궁 쪽은 오늘 라이트업의 대상이 아니더군요. 으흠.

무대.

히요시 타이샤의 상징은 원숭이인 듯.

본전. 특이하게 보통 배전이 본전 앞을 가로막고 있고, 벽이나 통로로 본전은 지붕 정도나 간신히 보이게 해놓는데, 여긴 걍 뻥 뚫려서 보입니다. 본전을 지키는 코마이누 두마리도 보이네요.

지도의 안내를 따라 동본궁 쪽으로 향했습니다. 행사 대상 제외라서 불은 정말 최소한도만 켜져 있더군요. 사람도 없습니다.

심지어 산몬은 막아놔서 들어갈 수도 없고... 근데 뭐 분위기를 보니 보수공사 중인 모양입니다.

히요시 타이샤는 됐고 이제 정원이 예쁘다는 구 치쿠린인을 다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시계 상으로는 아직 30분 정도 시간이 남았으니까... 직접 지도로 할 땐 놓쳤지만 히요시 타이샤의 교통안내를 하는 분에게 물어서 입구가 반대방향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도착을 했는데... 뭔가 딱히 인적이 없는 느낌? 그리고 문에 뭔가가...?

오늘 관람 종료라고 합니다. 분명 8시 반까지라고 했는데 실제 입장은 8시까지만 한 모양입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정보도 없었는데! 애초에 공식 홈페이지에 야간개장 한다는 내용도 없고 그냥 사카모토 지역 묶어서 라이트업 행사 하는 안내에서 찾은 거였습니다만. 여튼 여기는 허탕입니다. 이제 숙소로 돌아갈 수 밖에...

터벅터벅 걸어서 JR '히에이잔사카모토' 역으로 돌아갑니다. 중간에 케이한의 노면전차 '사카모토히에이잔구치' 역이 보이네요. 이걸 타고 오쓰로 갈 수도 있기는 한데... 저녁을 교토역에서 먹기로 해서 JR로 갔습니다. 패스라서 중간거리 이동 정도는 걍 스스럼 없이 타고 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