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연히 안 보고 넘어갈 수 없는 영화, '포드 V 페라리'가 개봉했습니다. 사실 영화 제목은 약간은 호도적입니다. 포드와 페라리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제목은 거대한 두 회사의 자존심 싸움 느낌이지만 실제론 그보다 작은, 캐롤 쉘비와 켄 마일스 두 남자의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물론 이 싸움의 주역인 두 황제, 헨리 포드 2세와 엔초 페라리는 발단을 제공하기 때문에 어느정도 비중을 선사받기는 합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불 같은 성격에 통제되지 않는 켄 마일스와, 그와 어떻게든 결과를 내보려고 타협 혹은 우격다짐을 하는 캐롤 쉘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두 인물의 존재감을 너무 키우려다보니 르망 24시간이라는 레이스의 감각 자체도 크게 왜곡되었습니다. 가령 원래 두 드라이버(지금은 3명입니다만)가 교대하게 되는 내구레이스의 기본 전제조차 오랫동안 억눌려 있다가-데이토나는 마치 혼자 하는 것처럼 그려집니다- 전체 레이스가 어느정도 그려지는 마지막 르망에 가서야 켄의 파트너, 대니 흄의 존재가 간신히 드러납니다. 그것도 그냥 교대하는 엑스트라 정도로 말이죠. 레이스 팬으로써는 드라이버조차 팀으로 보조를 맞춰야 하는 내구레이스의 근본 정신을 훼손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레이스 라이벌들조차도 무미건조한 터미네이터 같은 느낌으로 그려지며, 사고나 고장으로 리타이어 한 뒤 방방 뛰면서 성질 부리는 모습 정도로만 그려집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서 페라리는 제목과 달리 엔초가 만들어낸 발단 외에는 거의 존재감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목은 꽤나 낚시처럼 느껴집니다. 페라리 만이 아니라 둘의 걸림돌이 되는 포드 쪽 인물들 같은 쪽도 너무 단조로운 악역으로만 그려집니다. 대립과 갈등에서 존중이 부족한 게 극복을 질 낮게 만드는 점이 유감스럽습니다.
개성파에 말을 잘 안 듣는 켄이 마음에 안 드는 포드 중역 리오 비비에게 괴롭힘 당하고 사보타지 당한다는 이야기를 너무 강하게 쓰려다보니 심지어 역사왜곡까지 꽤나 강렬하게 했습니다. 켄 마일스는 엄연히 포드의 첫 르망 참전(여러 형식으로 참가한 6대의 GT가 모두 리타이어 했던)부터 드라이브 했으나, 영화에선 비비의 사보타지로로 제명된 것으로 그려집니다. 마지막 그랜드 피니시와 순위를 둘러싼 논란 또한 약간 악의적으로 그려집니다.
드라마성을 중시한다고 해도 이런 과장이나 왜곡은 조금 과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실제 르망 24시간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그냥 스포츠 드라마로써 접근한다면 플롯은 그렇게 나쁘진 않습니다. 단지... 알고 있는 만큼 좀 견디기 곤란할 따름입니다. 물론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영화가 아니기는 하지만, '그랑프리'보다는 '러쉬'에 가까운 것만은 분명합니다.
레이스 액션과 비주얼은 사실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지만, 원채 드문 레이스 영화의 틀 내에서도 만족스러운 모습입니다. 특히 등장 차량의 묘사와 선명한 모습, 사운드는 상당히 좋습니다. 켄이 처음 포드 GT를 마주하게 되는 프로토타입 차량은 굿우드에서 실물을 보기도 해서 더 감개무량했습니다. 다만 데이토나가 야간 조명과 오벌의 글로리어스! 함이 느껴진 반면 르망은 트랙을 가늠할 수 있는 원거리 조망샷이 거의 안 나오고 클로즈업만 나와서 트랙에 대한 감각을 거의 느낄 수 없었습니다. 던롭 코너 정도나 눈에 띄고...
전반적으로 '러쉬'보다 시청각적으론 낫지만, 레이싱 팬으로써는 아무래도 역사왜곡이나 사실성을 무시하고 보기는 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제목이 좀 낚시인 점도 그렇고요.(티포시의 울분) 역시 레이스 영화에서 '그랑프리'의 아성은 영원히 철옹성으로 남을 거 같습니다. 아, 스티브 맥퀸의 '르망'도 물론이고요. 스티브 맥퀸이 쉘비에게 코브라 사는 드립이 나오는데 실제 뭔가 이력이 있는 건지 그냥 썰렁한 농담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ps.마지막 설명에 왜 2016년에 50주년으로 다시 우승한 내용이 안 나왔나는 좀 의문이군요.
덧글
저는 레이스카가 나오는 장면들이 매우 만족스러워서 나름 재밌게 본 것 같습니다. 아이맥스로 보니 참 끝내주던... 전반적안 구성은 대중영화니 어쩔수 없는 한계로 봐야겠죠. 애초애 맷 데이먼이 인터뷰에서 말하길, 처음 각본을 읽었을 때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출연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는군요.
아폴로 11 처럼 고화질 기록물이 있으면 그걸로 아이맥스 다큐나 만들어주면 참 좋을텐데, 아폴로 11은 나사 아카이브에 들어있던 필름을 꺼내서 만든거였단걸 생각해보면, 아마 60년대 르망 24시를 그렇게 기록한 필름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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