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 - 신카이 마코토야, 어른이 돼라 by eggry


 '너의 이름은'의 예상 밖의 흥행으로 기대가 높아진 신카이 마코토가 다음 작품에선 어떻게 그걸 감당할 것인가- 그게 차기작의 가장 큰 궁금증이었지만 실상은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신카이 본인이 인터뷰에서 스스로 밝혔 듯, "하고 싶은대로 밀고 나가겠다"고 했기 때문이죠. 물론 부담감이 아예 없었다곤 할 수 없을 것이고, 그건 무수한 PPL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실패해서는 안 되는 위치가 되었고, 상업적으로 실패하진 않았지만 역시 '너의 이름은'에는 미치지 못 했습니다.

 '날씨의 아이'는 정말 평범하게 괜찮은 판타지물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설정은 재미있고 정말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처럼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잘나가지 않아도 괜찮은 소년소녀 얘기가 될 수도 있었죠. 그런데 신카이의 오기는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 않았습니다. 작 중에서 가장 저항해야 할 개념은 "이제 어른이 돼라" 라는 한마디로 대표됩니다.

 하지만 그 어른들은 치사하고, 비겁하고, 대의 같은 이름을 내세워 희생에서 눈을 돌리려 합니다.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겠죠. "어른이 돼라"는 대사는 가장 추한 어른의 모습과 함께합니다. 어른들은 다 믿을 수 없고 추해서, 아이들은 저항합니다. 이런 어른과 세상에 대한 적개심은 도를 넘어서며, 아동보호소가 사악한 위협처럼 여겨지는 시점에선 헛웃음이 나올 뿐입니다.

 그건 좋습니다만, 그렇다고 아이들이 충분히 안티테제로써 성립하고 있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만만찮은 결과가 뒤따르더라도, 비난 받더라도 자신들의 감정에 솔직하고 하고 싶은대로 하고 싶다고 합니다만, 실상 치르는 대가는 거의 없습니다. 분명 만만찮은 결과가 뒤따랐지만 그 대가는 자신들이 아니라 누군지 모를 불특정 다수가 치렀을 뿐이고, 양심의 가책도, 안고 가야 할 상처도 없습니다.

 신카이의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인터뷰와 더불어 이런 태도는 대단히 무책임합니다. 자신에게 솔직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건 좋습니다. 허나 소신엔 댓가가 따르기 마련이고, 그걸 감수해서라도 하겠다는데 의미가 있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런 댓가도 짐도 없이 그저 어영부영 넘어가고 결말에 도달할 따름입니다. 그럼 "그래도 좋아!" 라는 각오에 대체 어떤 무게감이 있단 말입니까. 아이는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요? 그게 흉한 어른과 뭐가 다릅니까.

 "어른이 돼라"는 말은 세카이계 에로계 감성을 가진 신카이 마코토가 듣고 싶지 않은 얘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대사입니다만, 신카이 본인도 하고 싶은대로 한다고 하지만 실상 정말 제대로 부딧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수용하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넘어갈 뿐이잖습니까. 어른이 돼라는 말을 이겨 보이고 싶다면, 그건 꼴사나운 어른이 아니라 좋은 어른이 되도록 하는 것이지 이대로이고 싶다고 고집부리는 게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무신경 문제. 사실 '너의 이름은'에서도 우리 이야기, 정확히는 내가 보고 즐기고 싶은 쪽으로 좋은 얘기만 하겠다는 비판은 있긴 했습니다. 토호쿠대지진과 혜성충돌의 연결은 대단히 나이브하고 겉핥기이자 멀리 안전한 곳에 떨어진 사람의 편한 예쁜 그림 취급 당했다고 말이죠. 혜성충돌보다 훨씬 현실적인 수해를 그저 '보이 미츠 걸'의 소재로써 써먹은 건 그보다 더 나이브해 보입니다. 개봉시점에서야 억울할 수 있지만 그 후의 기록적 수해를 보노라면, 애초에 좀 더 공감하고 신경썼더라면 억울할 일도 없었겠지요.

 휴, 신카이 마코토는 어른이 돼라는 말을 스스로 제대로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중적 히트작을 만들고 싶으면 대중성에 맞게,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든지, 아니면 본래의 마니악하고 키치한 코드를 파고 들어서 그걸 팔든지 말입니다. 성매매, 성희롱 드립을 습관처럼 쳐대면서도 어른이 되기는 싫다고 하는 건 너무 유치한 것 아닙니까. 모범적인 어른이 되든지, 아니면 정말 어리다고 봐줄 만한 짓을 하든지 둘 중 하나면 좋겠군요.

ps.나이에 대한 그 대사는 의역이 원어보다 3배 정도 빻게 되어버렸네요. 황당...
ps2.카메오 등장은 솔직히 반갑다기보단 참 억지로도 넣었구나 라는 생각만.

덧글

  • virustotal 2019/10/29 23:48 # 답글

    이양반 영화보면 정말로 우울해지죠 이번에도 갬성뽕 말고는 우울해져 오는 영화니

    내용이 뭔소리인지도 모르고

    https://namu.wiki/w/구름의%20저편%2C%20약속의%20장소


    이것도 그러더니 참.
  • 라마르 2019/11/03 11:46 # 삭제

    구름 저편은 초기작이라 좀 투박해서 그렇지 뭔소린지 모를작품은 아니에요
  • ㅇㅇ 2019/10/30 12:34 # 삭제 답글

    어른이 돼라가 맞는 맞춤법입니다
  • eggry 2019/10/30 15:20 #

    아이고 민망해라 ㅎㅎㅎ 수정 수정
  • 라마르 2019/11/03 11:48 # 삭제 답글

    사실 너의 이름은 만들고 그부담감으로 썩 기대는 안했지만 이건 정말 나몰라라급으로 막나가버려서 ...
  • rgc83 2019/11/05 11:04 # 답글

    대충 요약하자면 작품의 사회적 영향력 같은 걸 신경 쓰지 않은 제작자 사이드의 책임감 결여...가 해당 작품의 문제라고 보면 되려나요? 어찌 보면 이러한 제작자의 작품에 대한 책임감의 존재 여부라는 부분도 일종의 PC이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물론 엄밀하게는 PC와는 좀 핀트가 다른 부분이긴 하지만요.
    (그래도 일본인 제작자 입장에선 싫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건 PC나 이쪽이나 둘 다 비슷하긴 할 듯. 특히 신카이 같은 부류의 어느 정도 예술성을 추구하는 창작자라면 표현의 자유 같은 철학적 논제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의식하고 있을 거니 자기 작품이 사회에 줄 영향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란 비판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여겨져서 더욱 껄끄럽게 느껴지겠죠. 창작자 입장에선 취향 문제를 떠나서 사상적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니.)

    그러고 보니 작품에 대한 책임감 결여 문제라고 하니까 묘하게 조커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일단 이글루스 반응을 봐도 조커에 호평을 준 분들은 시국의 아이에 대해서도 대체적으로 호평을 주고, 반대로 조커를 비판하시는 분들은 시국의 아이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시더라고요. 그런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올 정도로 메세지성 면에서 조커와 비슷한 부분이 있긴 한가 보네요?
    (그러고 보니 생각해 보면 조커 쪽은 작품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 책임감이 있냐는 비판에 대해 제작자 사이드에서 직접 불쾌함을 표시하기도 했었고 말이죠. 이런 류의 비판이 껄끄러운 건 일본이나 서양이나 비슷한 듯?)
  • ㅇㅇ 2019/11/05 20:19 # 삭제 답글

    확실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을 사람은 아니라는 걸 이젠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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