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2019) by eggry


 문제작(?) '조커'입니다. 공식적으로 DCEU와 무관한, 그리고 앞으로 혹시 나올지도 모를 배트맨이나 조커가 나올지도 모를 영화와도 상관 없는 그냥 독립작...입니다만 사람들이 솔직히 그렇게 생각해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걸 그냥 '다른 세계관이거든'이라고 퉁치는 건 창작자들의 의도에 놀아나는 짓이라고 생각해서 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볼 생각은 없습니다.

 사실 영화 자체는 사람들이 예고편 보거나 커뮤니티에서 상상 풀던 거랑은 좀 다른 결과물입니다. 예고편하고 영화의 템포나 굴러가는 방식 조차도 꽤 다릅니다. 예고편이란 게 짧은 시간에 강렬하게 보여주려다 보니 그런 거겠지만, 실상 영화는 상당히 슬로우 템포이고 격정적이기 보다는 고요한 수면 밑의 소용돌이 같습니다. 가장 폭발하는 부분조차도 의외로 부드러운 느낌이 납니다.

 그러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아니 오히려 긴장과 불편함을 끊임없이 주입시킨다는 게 이 영화의 제작자와 연기자가 얼마나 뛰어난 테크니션인가 깨닫게 합니다. 소품과 구도, 카메라워크, 연기는 흠잡을데가 없습니다. 당사자들이 정말 톱노치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술적으로 이 영화에서 불만스러웠던 건 딱 한 장면 뿐인데, TV 쇼에 나왔을 때 TV 화면(당시 브라운관 화면) 묘사가 아닌데도 초점이 나가 소프트하게 나오는 샷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샷을 생각하면 의도라 생각하진 않는데 재촬영하기엔 연기가 도저히 나오지 않았던 건지...

 그런 테크니션적 면모를 제외하고 영화가 전하는 내용 자체를 보자면 솔직히 기대보다 맹탕이라 실망했습니다. 솔직히 배경 상황이니 조커란 인물이 겪는 사건이니 뭐니 고담과 조커가 아니라도 아무 상관 없는 내용이고요, 그 내용 자체도 시대가 시대라서 감회가 새로울진 모르겠지만 그냥 늘 보던 그런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떠나지 않게 잡아두는 재주는 대단한데... 보고 나서 뭔가 새로이 남는단 생각은 안 듭니다. 전반적으로 오리지널리티보단 따라하기와 오마쥬의 총집결이란 인상을 더 강하게 받습니다.

 스토리 자체야 원래 뻔하기는 합니다. 광대짓 하던 아서가 좌절하고 미쳐서 슈퍼빌런 조커가 된다는 건데, 중요한 건 과정이겠죠. 사실 영화로써 조커의 기원적 얘기는 이게 처음입니다만, 이전 조커들에 간략하게나마 그려지거나 추측할 근거가 없었던 건 아니니 비교하자면 이전 조커들이 생명과 정신을 망치로 두들기는 형태로써 재련되었다면 이번 조커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서서히 조져집니다.

 영화 개봉 전에 '다크나이트 라이즈' 때 조커를 자칭하는 범죄자의 총기난사 사건도 있었고, 이번에도 장난이든 뭐든 범행예고나 우려가 있었지요. 커뮤니티 상에서도 인셀 미화니 자극이니 하는 얘기들이 오랫동안 있었는데, 사실 영화 내용은 그런 소동들이 약간 우스꽝스럽게 보일 정도로 밍밍합니다. 심지어 조커는 별로 천재범죄자도 아닙니다.

 어수룩한 광대 시절은 물론이거니와 나쁜 놈이 되기로 작심한 뒤에도 어설픈 면모는 안 사라집니다. 이번 글에는 보통 올리는 포스터가 아니라 영화 컷을 올렸는데 저거 그냥 촬영 중에 도촬된 작붕샷 아닙니다. 걍 원래 저래요. 예고편에도 나온 계단 댄스 장면 말인데 이게 보통 악당 미화 장면이었다면 거사를 치른 뒤 그게 리플레이 되는 장면과 교차되는 식으로 연출될텐데, 영화에선 그냥 혼자 삘받아서 추다가 경찰 나타나서 허겁지겁 도망갑니다. 그게 위 사진입니다.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모든 장면에서 원하는대로 흘러가는(마지막만 빼고) 신적인 존재인 반면 이 조커는 중간중간 계속 허접쓰레기 같은 면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게 조커가 위험한 사람들의 아이돌이 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겠습니다만, 사실 그게 충분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우스꽝스럽다고 했죠? 우스꽝스럽습니다. 그런데 영화 내내 계속 나옵니다. "뭐가 우스운데?" 그러고 보통 안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참말로, 조커가 아무리 인간쓰레기라고 시시때때로 보여봤자 스스로 인간쓰레기로 불리길 꺼리지 않는, 아니 오히려 '어차피 난 쓰레기니까'라며 면죄부라도 되는 것처럼 놓아버리는 인간들이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때에 이걸론 전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영화가 생각보다 그렇게 호도적이지 않다고 해도 그냥 웃을 일은 아닙니다. 두고볼 일이지만 어차피 인터넷이 전혀 상관 없는 개구리를 알트라이트 아이콘으로 만들거나, 꺼라위키에서 망작으로 기정사실화 해버리는 일이 벌어지는 때에 이러고도 충분히 '다크나이트'의 조커로 탈바꿈하는 마법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까지 만든 사람 책임이라고 하긴 당연히 좀 그래야 하는데 말이지요... 사실 영화의 내용 대부분이나 이런 잠재적 우려는 모두 표현의 자유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허용되는 것입니다만, 이 영화가 그런 자격을 충분히 갖췄는가, 아니 그것보단 충분히 노력했는가는 의문이 남습니다. 말했듯이 조커여야 할 이유가 하등 없는 영화라 이 말입니다.

 요약하자면 "지루하게 다뤄진 평범한 이야기를 뛰어난 기교로 치장하고 조커라는 유명 캐릭터 스킨을 입힌 영화"가 되겠습니다. 뭐 뒷부분만 빼면 그냥 평범한 웰메이드 영화가 됐을테지만 이게 뭐 나이 먹은 로버트 드 니로가 나오는 택시드라이버 2[...] 같은 거였다면 솔직히 별 말 안 했을 겁니다.(덧붙이자면 택시드라이버는 약간 억울한 영화지만, 역시 대중의 수용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 제목은 조커이고, DC와 배트맨, 조커의 거대한 유산에 올라타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러니까 제 가장 큰 불만은 표현의 자유와 예술을 면피로 내세우면서도 책임감은 결여되어 있다는 겁니다. 영화 제작자들의 유능함을 볼 때, 그리고 인터뷰에서 보이는 지적 수준을 볼 때 문제의 소지를 이해하지 못 했다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만 모른 척 하는 건 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강행하기로 한 것인데, 거기에 표현의 자유와 예술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실상은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도 아니고 아주 상업적인 조커란 캐릭터로 흥행에 덕을 보고 있습니다. 조커란 제목과 개봉 전의 논란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조차도 돈이 될 거라고 다 이해하고 있을테지요. 적어도 면죄부를 원한다면 거대 프랜차이즈에 편승이라도 하지 말았어야지요. 조커로 이야기를 만들기로 한 시점에서 설사 다른 제목이었다면 그러려니 넘어갈 내용이라도 변명일 뿐입니다.

 차라리 노골적으로 자극적인 내용에 상업적인 티를 팍팍 냈다면 욕은 했어도 솔직하다곤 납득했을 겁니다. 하지만 유능한 사람들이 딱히 새롭지 않은 것을 거대 프랜차이즈의 틀을 씌워 돈을 벌 기회로써 선택한 걸 표현의 자유와 예술을 방패로 결백한 척 하려는 건 참 꼴불견입니다.



덧글

  • blackace 2019/10/04 08:32 # 답글

    딴사람 블로그 들어온줄알았네
  • ㅈㄹㅅ드 2019/10/04 13:39 # 삭제 답글

    오바하지 마쇼
  • ㅇㅆㄷㄴㄱ 2019/10/04 13:41 # 삭제 답글

    영화가 구리면 구리다 좋으면 좋다지 무슨 프랜차이즈랑 허무맹랑한 도덕론타령이여
  • RuBisCO 2019/10/04 15:11 # 답글

    아니 조커여야 할 이유가 없다니 이건 좀 충격적인 이야긴데요.
    DC코믹스의 개성 중 하나가 한 세계관과 캐릭터를 빌미로 오만가지 자유로운 표현이 나온다는건데 그걸 부정하시면;;;
  • eggry 2019/10/04 15:16 #

    그거랑 이건 애초에 다른 얘기인데요. 배트맨으로 탐정 얘기 해도 되는 게 그 이야기가 꼭 배트맨이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건 아니죠. 충분한 이유를 가져야 하는데 이건 정말 조커여야 할 이유가 없어요. 뭐 하다못해 유니버스 캐릭터 설정용도 아니잖아요?
  • ㅁㄴㅇㄹ 2019/10/12 04:34 # 삭제

    '그냥 잘팔리는 영화를 만들고싶어서 흥행 보증수표 조커를 갇다쓴거 아니냐' 같은 말 아닐까요? 영화에서 보여준 별다른 시도도 없고 '미쳐가는 주인공' 플롯도 고전영화에서 많이 한 색다를 것 없는 플롯인데 '제작진이 편하게 가고 싶었다'는거 말고 조커영화가 나올 이유가 없지 않냐는거지요
  • kakakakaka 2019/10/04 17:09 # 삭제 답글

    뭐 수많은 햄릿 영화가 굳이 햄릿이라는 이름을 달 필요는 없어도 그 조건에 대한 재해석이듯 이 영화 역시 그렇게 봐야 하지 않나 싶은... 텍스트들을 좀 뜯어보면 조커의 속성들을 나열해 놓고 의도적으로 안티테제를 구성하려고 하는데(특히 다크 나이트에서 서술된 속성들) 표면적인 영화의 형태는 다소 관습적인 플롯들을 활용하는 것 때문에 기만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다른 해석들을 불러일으킬 만한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택시 드라이버가 인정받는 건 그야말로 낭비되는 씬이 없다는 것인데 이 영화가 가져온 플롯들은 그만큼 정교하지를 않아서(특히 부모와 관련된 서사는 좀 더 정교해야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중간중간에 잘 드러나지 않는 미묘한 텍스트나 복선 같은 것들이 잘 전달되지 않고 낭비되는 느낌이 강한 것 같아요. 보고 나서 집에서 장면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니 관람시의 약간 뜨악했던 첫 인상이 달라진달까.

    다만 완성도와는 별개로 특별히 무임승차라고 할 만한 건 아닌 것 같아요.
  • eggry 2019/10/09 12:35 #

    조커 브랜드로 관심을 벌고 돈도 벌었으니 덕을 못 봤다고는 하기 어렵지 싶습니다.
  • kakakakaka 2019/10/11 23:45 # 삭제

    제 얘긴 주인장 시각과는 달리 조커 영화로 충분한 연관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 ㅇㅇ 2019/10/09 12:32 # 삭제 답글

    조커로 각성하는 장면의 느낌이 굉장히 다크나이트 조커랑 비슷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이 그 조커다 아니다 해석을 모호하게 하는 연출을 의도적으로 한 게 느껴져서 이런 얘기를 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감독의 농간이 아닌가 싶네요 ;;
  • eggry 2019/10/09 12:36 #

    해석의 여지가 재미거리라면 재미거리고 농간이라면 농간이죠. 조커의 정체성 말고 영화 전반적으로 그런 게 있습니다. 미쳐서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해주는 얘기라서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증언이 불완전한 근거로 비쳐지니까요. 공식적인 건 아니고 그냥 인터뷰의 아님 말고~ 식이긴 하지만 이 조커가 그 조커(꼭 다크나이트가 아니라 범죄의 화신인 슈퍼빌런)가 아니라 거기에 영감을 준 하나의 사건일 수 있다는 식으로 넌지시 얘기하더군요. 사실 우리가 아는 조커라기엔 너무 능력이 떨어지죠;;
  • ㅇㅇ 2019/10/18 15:55 # 삭제

    그렇죠, 다크나이트만 생각해도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거의 뭐 카오스 신이 지상에 강림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배트맨과 고든 아조씨를 갖고 노니까요.
  • ㅇㅇ 2019/10/10 23:51 # 삭제 답글

    감정이입해서 이상한 리뷰글 쓰는 분들 많던데 그 와중에 가장 정상적인 리뷰네요
  • ㅁㄴㅇㄹ 2019/10/12 03:59 # 삭제 답글

    맞아요 보기 전에는 인셀 미화라는 의견이 그럴법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까 사회적인 반영/메세지가 강한 작품은 아닌 것 같더라구요. 아서가 조커가된것도 사회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이유였고, (하층민이어서 미친게 아니라 아서여서 미친것) 영화가 70년대 뉴욕의 사회상을 담고있긴 하지만 그것도 단순한 배경설정으로 써먹는게 전부인 것 같고 말이죠. 영화를 둘러싼 사회적인 잡음(?) 은 컸지만 정작 영화 자체는 '하층민의 분노' 나 '억압받는 사람의 울분' 같은 사회적 논의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요
  • 영원제타 2019/10/13 21:09 # 답글

    이 영화를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줄거리를 읽고 가졌던 의문이
    바로 이게 왜 '조커'여야 하는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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