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 11호의 통제불능에 빠진 컴퓨터 by eggry


Apollo 11: Mission Out of Control(WIRED)

 1969년 7월 20일 정오가 조금 지난 때, 아폴로 11호가 달의 표면 70마일 위를 공전하고 있을 때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달착륙선을 사령선에서 분리해 하강하려 하고 있었다. 사령선의 창 밖으로 마이클 콜린스는 착륙선이 회전한 뒤 내려가는 걸 보고 있었다. 착륙선의 좁아터진 실내에서 올드린과 암스트롱은 작은 삼각형 창문을 통해 달의 표면을 볼 수 있었다. 팔꿈치 높이에 달린 콘솔은 그들의 접근 최종단계를 지시해줄 장치를 위한 것이었다: 아폴로의 유도 컴퓨터 말이다.

 대부분의 여정에서 아폴로 11호 승무원들은 조종사라기 보단 승객이었다. 우주선은 임무관제팀의 IBM 메인프레임이 보내오는 좌표에 의존해 알아서 스스로 가고 있었다. 대형 냉동고 크기 만한 장치는 1969년 당시 사람들이 '컴퓨터'란 단어를 들으면 떠올리는 것이었다. 최근엔 "미니 컴퓨터"라고 불리는 것이 등장했는데, 이건 가정용 냉장고 크기 만했다. 아폴로의 유도 컴퓨터-사령선과 착륙선에 각각 탑재된-는 그것보다도 훨씬 작았다. 겨우 70파운드(약 31.8Kg) 밖에 안 되는 이것은 여태 인류가 만든 것 중 가장 정교한 기계장치였다.

 비대한 진공관 대신, 아폴로의 컴퓨터는 칩이라고 불리는 얇은 실리콘 층을 이용하였다. 각 칩은 한 쌍의 로직 게이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게이트는 세가지 입력을 받아들이는 간단한 스위치였으며, "On" 외의 입력에는 "Off"로 출력하게 만들어졌다. 5600개 가량의 이 원시적인 집적회로들이 연달아 이어져 컴퓨터의 두뇌가 되는 디지털 수로를 형성했다. 컴퓨터는 단단한 금속 컨테이너에 들어가 비행사들 뒤에 설치되었고, 그들의 앞에 있는 콘솔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 칩들은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의 기술 스타트업인 페어차일드 세미컨덕터가 설계하였다. 1960년대 초, 컴퓨터 산업은 분산되어 있었고 동부의 벨 연구소나 MIT 같은 거대 연구소들과 더불어 서부에는 페어차일드 같은 신흥주자들이 있었다. 아폴로 프로그램은 이 갓난 회사에 수십만개의 부품을 주문함으로써 페어차일드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소형화에 대한 요구를 따르던 중, 페어차일드의 R&D 보스였던 고든 무어는 매년 집적회로의 집적률이 2배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창안했다. NASA는 실리콘의 응용을 개척하였으며, 우주비행사들 등 뒤에 달린 컴퓨터는 무어의 법칙의 증명이었다.

 컴퓨터 콘솔은 전자레인지의 버튼과 비슷하게 생긴 숫자 키패드와 으스스한 녹색 빛을 뒤에서 비춰 표시해주는 작은 스크린이 있었다. 올드린은 그가 암기한 두자리 숫자 명령을 입력함으로써 컴퓨터를 작동시켰고, 세개의 작은 화면은 다시 올드린이 해석해야 할 다섯 숫자의 답변을 내놓았다.

 비행사들이 하강의 첫 단계를 시작함에 따라, 엔진이 점화되고 컴퓨터가 착륙선을 달표면 50,000피트 안쪽 타원 궤도로 진입시켰다. 거기서 올드린은 새 프로그램을 작동시켰다. 착륙선은 궤도에서 이탈해 달착륙 코스를 시작하였다.

 이후 3분 동안, 크레이터로 뒤덮힌 달 지형이 점점 가까워졌다. 46,000피트가 되자 암스트롱은 착룩선을 회전시켜서 착륙 레이더를 지표면을 향하게 하고, 비행사들은 지구 방향을 보게 되었다. 달의 중력이 균일하지 못 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응해야만 했고, 비행사들은 새로운 측정치가 계속 필요했다. 창 밖의 공허를 보면서, 올드린은 착륙선의 계산된 위치와 레이더에 나오는 실제 값을 비교하는 명령을 입력했다.

 그의 이어폰에 갑자기 경고음이 들렸다. 올드린은 황급하게 5-9라는 숫자를 입력했다. 이는 "알람을 표시하라"는 명령이었다. 콘솔은 "1202"라는 에러를 보여주었다. 몇 달에 걸친 시뮬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올드린은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몰랐다. 암스트롱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으며, 임무관제팀에 확인을 요청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스트레스가 묻어났지만, 두 남자는 곧이어 이 나쁜 일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달 표면을 향해 화살처럼 돌진하고 있는 이 중대한 상황에 아폴로의 유도 컴퓨터가 먹통이 된 것이다.

 달 착륙 몇 년 전, 매사추세츠 캠브리지에 있는 MIT의 기기연구소의 컴퓨터 과학자 할 라닝(J. Halcombe "Hal" Laning Jr.)은 달로 사람을 보낼 운영체제를 설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에겐 여태와 다른 희귀한 제약이 붙여졌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아폴로의 OS는 입력에서 출력까지 눈에 띄는 지연이 없어야 했다. 그리고 착륙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인적 실수든 결함이든 거의 모든 경우의 문제를 극복해 복구할 수 있어야 했다.

 라닝의 동료들은 그에 대해 경의를 담아 말하곤 했다. 그의 사무실은 에어컨이 갖춰진 2개의 거대한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위치한 방 근처에 있었다. 컴퓨터 실은 건물 1층을 거의 다 차지할 정도였다. 그곳에서 그는 컴퓨터들을 자애로운 부모처럼 돌보았다. 이 컴퓨터들과 상호작용하는 프로그래머들은 책상 크기의 제어판을 이용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들은 라닝을 만나러 홀을 달려갔다. 컴퓨터 코드는 모니터에 표시되지 않았으며-사실 당시엔 모니터란 게 없었다- 대신 '리스팅'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종이 뭉치를 인쇄해 뱉어내었다. 프로그래머들은 펜으로 여기저기 표시해서 구분했다. 라닝의 사무실은 이 리스팅으로 넘쳐날 지경이었고, 방문객들이 앉을 자리를 찾기 힘들 지경이었다.

 라닝은 이전에도 컴퓨팅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적이 있었다. 1950년대, 그는 막 완성된 MIT의 첫 디지털 컴퓨터에서 프로그래밍을 했다. 프로그래밍에 복잡한 수학적 기법이 요구되었기에, 그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조지" 라고 불리는 조수를 고안해냈다. 이 장치는 고등 대수공식을 컴퓨터가 이해하는 것으로 변환해주었다. 이 초기 컴파일러는 포트란의 개발에 영감을 주었고, 포트란은 오늘날 쓰이는 대부분의 주요 프로그래밍 언어의 모태가 되었다.

 아폴로 프로젝트를 담당하면서 라닝은 다시 한번 해냈다. 참고할 과거 사례가 없는 상황에 직감에서 우러내어, 그는 아폴로의 OS에서 돌아갈 프로그램은 각각 우선순위 번호를 가지도록 결정했다. 유도나 제어 같은 역할이 낮은 숫자를 가져서 백그라운드에서 지속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런 작업들조차 더 우선순위가 높은 업무를 위해 중단될 수 있었다. 가령 비행사의 데이터 요구 같은 것 말이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은 하나의 중앙처리장치에서 작동하는 가상의 병렬 프로세서였다.

 프로토타입 초안을 잡은 뒤, '선생'은 그의 연구실로 돌아가 버렸다. 라닝의 수제자 찰스 문츠가 실제 프로그래밍의 대부분을 담당했다. 라닝의 계획에서 한가지 우려점은 우선순위 높은 작업의 간섭이 CPU를 방해하는 것이었다. 너무 공을 많이 던진 저글러처럼 말이다. 문츠는 재시작 보호라는 대책을 고안했다. 감당할 수 없는 수의 작업이 프로세서로 보내진다면, 보호 프로그램이 특정 데이터를 메모리에다 집어넣게 된다. 그리고 프로세서 대기열은 리셋되며 컴퓨터도 즉시 재시작된 뒤 보호된 작업을 재개하며 나머지는 버리는 것이다.

 문츠의 팀이 설계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자, OS는 메인프레임에서 실제로 만들어졌고, 자세한 설명과 함께 인쇄되어 방산업체 레이시온의 시설로 보내져 관리되었다. 코드를 기계가 읽을 수 있는 2진수로 변환하는 작업은 일종의 베틀 같은 것으로 구리선을 자기 코어을 엮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직공은 여자였으며, 진척과정은 비트 단위로 관리되었다: 자기 코어를 통과하는 배선은 1, 우회하는 것은 0이었다.

 마무리된 와이어 묶음은 로프라고 불렸다. OS를 담고 있는 모든 로프가 마무리되자, 이는 컴퓨터에 연결된 뒤 막대한 테스트를 실시하였다. 에러 1202는 프로세서가 과부하 되었으며, 라닝과 문츠의 대책이 강제로 재시동 시켰다는 뜻이었다. 아폴로 11호의 발사 몇 달 전에 컴퓨터 과학자들은 시뮬레이션에서 무수한 재시작을 일부러 일으켜 보았다. OS는 한번도 중요한 데이터를 보존하는데 실패한 적이 없었다.



사령선에서 촬영된 달착륙선. 안에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역사적인 착륙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우주선의 컴퓨터가 먹통이 되어버렸다. 암스트롱은 훗날 "컴퓨터가 살아날 거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이런 내용은 모르고 있었다. 컴퓨터 콘솔 위에 달린 착륙선의 제어판에는 "중단(ABORT)" 라고 표시된 원형 버튼이 있었다. 이게 눌리게 되면 우주선은 둘로 분리되며, 상부 모듈은 궤도로 내팽개쳐지고 아래쪽은 달에 쳐박히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은 컴퓨터 에러 시나리오 훈련을 받긴 했다. 캐에프 캐너베럴의 시뮬레이터에서 콘솔 연습을 너무 열심히 한 덕에 키의 버튼들이 거의 다 지워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비행사들이 다 암기하지 못 한 몇가지 에러도 있었다. 어떤 에러는 "고(Go)" 명령으로 무시할 수 있지만, 어떤 에러는 "중단"해야 했다. 결정은 휴스턴에게 달렸다.

 임무관제실이 암스트롱의 긴장에 찬 정보 요청을 들었을 때, 잘 연습된 일련의 장면이 연출되었다. 비행 감독관인 진 크란츠가 유도 담당자인 스티브 베일스에게 결정을 내리게 하였다. 베일스는 임무전문가 잭 가만과 가만이 컴파일한 에러 표를 도와주는 러셀 라슨에게 말을 돌렸다. 가만과 라슨은 에러 1202가 컴퓨터가 먹통이 되기 전에 항행 데이터를 저장하려는 의미라는 걸 알았다. 이 시나리오는 '고'였다.

 하지만 컴퓨터가 계속 예측 불허로 행동한다면? 컴퓨터는 우주선의 유도와 항행 시스템과 더불어 암스트롱의 스티어링과 조작들도 보조하였다. 특정 고도-100피트 가량- 아래에서는 중단 버튼은 쓸모가 없어지며, 그때는 컴퓨터가 오작동 하더라도 암스트롱은 착륙할 수 박에 없게 된다. 암스트롱에겐 실수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경착륙 시 비행사들은 죽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심하지 않다면 비행사들은 살아남을지도 모르지만, 대신 달 표면에 표류하게 될 것이다. 이 악몽 시나리오가 일어난다면 임무관제실은 암스트롱과 올드린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둘이 질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통신을 끊게 된다. 사령선의 마이클 콜린스는 홀로 지구로 돌아오는 긴 여정을 해야 할 것이다.

 달 착륙에 성공하는 경우를 상상해본다. 성공하지 못 하는 경우를 상상해본다. 의회 위원회에 왜 두 비행사가 죽었는지 설명해야 할 것이다. 24세의 잭 가만은 고 사인을 내렸다. 라슨은 너무 겁에 질려 입을 때는 대신에 그냥 엄지를 올렸다. 베일스가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 "그건 디버깅 알람이었습니다." 베일스가 최근 나에게 말해주었다. "절대 비행 중에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죠." 베일스 앞에는 컴퓨터의 진단 신호를 보여주는 모니터가 있었다. 에러에도 컴퓨터는 잘 작동하는 것 같았다. 그는 "고"라고 말했다. 휴스턴이 암스트롱에게 답변을 줄 즈음엔 거의 30초가 지난 뒤였다.

 암스트롱은 착륙 코스 진행을 재개했다. 아폴로 10호는 착륙후보지를 탐문하였고, 암스트롱은 그때 찍어온 사진과 지형지물을 공부하는데 무수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초기 탄도가 약간 길었다는 걸 눈치챘지만, 그가 대처하기 전에 올드린이 고도 데이터를 먼저 컴퓨터에 넣어버렸다. 이전처럼 올드린에게 다시 알람이 들렸다. 컴퓨터가 다시 먹통이 되었다.

 MIT에선 10여명의 사람들이 임무관제실과 연결된 직통선 앞에 모여 있었다. 그 중 하나는 26세의 돈 에일스였다. 그의 동료 앨런 클럼프와 함께 그들은 착륙선의 마지막 하강 소프트웨어를 프로그래밍 하였다. 첫번째 재기동은 에일스에게 경종을 울렸다. 두번째에 그는 겁에 질렸다. 이건 하나의 오작동이 아니라 상당한 오작동이 발생한다는 뜻이며, 임무관제실은 그 댓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이 단계에서 유도 프로그램은 컴퓨터의 처리성능 87% 가량을 소모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올드린이 사용하는 3% 정도였다. 그 둘 외에 뭔가 알 수 없는 프로그램이 남은 10% 혹은 그 이상을 훔쳐가고 있었으며, 프로세싱 대기열을 과부하 시켜서 재기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착륙의 다음 단계는 여전히 컴퓨터가 중대한 과정이었으며, 이때는 올드린의 입력도 없는데도 먹통이 되었다. "뭔가 무시무시한 일이 우리 컴퓨터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우린 그게 뭔지 모르고 앞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몰랐습니다." 에일스가 그의 회고록에 당시를 이렇게 묘사했다.

 임무관제실이 두번째 고 명령을 내리자 에일스는 불안한 눈으로 동료들을 쳐다보았다. 에일스는 지휘권 밖에 있었지만, 그가 휴스턴의 누구보다 이 컴퓨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컴퓨터가 계속 재시작 한다면,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 표면에 가까워질 수록 심각성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에일스는 이 공포스런 순간에 수 년 동안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는 결론을 내렸다: 그라면 이 시나리오에선 중단했을 것이다.



버즈 올드린, 1969년 7월 20일 달착륙선에서. 사진은 닐 암스트롱이 찍었다.

 이후 3분 동안 착룩션은 20,000피트 가량을 하강하였다. 달의 황량한 지표면을 흝고 지나가면서, 암스트롱은 달 표면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었다.(아폴로 입안자들은 태양이 바위 그림자를 길게 만드는 시간대로 착륙시간을 골랐다.) 컴퓨터는 자동적으로 다음 하강 단계로 진입하였으며, 곧바로 재부팅이 발생했고 임무관제실은 다시 고 명령을 내렸다. 달 표면이 2,000피트도 안 남은 지점에서, 컴퓨터는 사상 최악의 문제를 일으켰다.

 알람이 울려퍼진 뒤, 착륙선의 화면이 죽어버렸다. 10초 동안, 콘솔엔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았다. 고도도, 에러도, 그저 3개의 빈 검은 화면이었다. 암스트롱의 심박수가 분당 150회가 넘게 급등하였다. 단거리 달리기와 같은 수준이었다. 달표면이 창 밖을 스쳐 지나가는 때 그는 지구와 다른 세계에 누구보다 가까이 다가간 인간이었지만, 마치 주의산만한 운전자처럼 그의 관심은 컴퓨터에 집중되어 있었다. 마침내 콘솔이 되살아났다. 임무관제실이 확인해주었다: 또다른 1202 에러였다. "컴퓨터가 살아날 거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았었다." 암스트롱이 훗날 말했다.

 알람은 진정되었지만, 몇 초 뒤 컴퓨터가 다시 재기동 되었으며, 디스플레이가 다시 죽었다. 이번엔 지표면에서 겨우 800피트 정도 위였다. 4분 동안 다섯번 먹통이 된 것이지만, 휴스턴은 계속 고 명령을 내렸다. 관제요원들은 우주선 벽에 달려있는 상자에 거의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다. "중단도 안전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점점 중단이 유효하지 않게 되었죠." 베일스가 말했다.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습니다. 1,000피트 아래로 간다면 암스트롱이 어떻게든 해낼 거라고 말이죠."

 임무관제실은 조용해졌다. 그들이 더 말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암스트롱은 수칙을 따르면서 스틱으로 부분 수동조작을 하고 있었다. 이 단계가 되자 프로세싱 부하가 줄어들었으며, 에러는 더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에러에 주의가 산만해진 탓에 암스트롱은 예정된 착륙지점을 몇 마일 벗어나게 되었다. 그가 아폴로 10호의 사진을 암기하려 보낸 시간들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제 암스트롱은 자기 눈으로 착륙지점을 찾아야 했다.

 고요의 바다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장소였다. 지표면이 가까워지자 달은 거의 사격훈련 대상이라도 된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암스트롱은 지표면과 거의 평행하게 착륙선을 비행시키고 있었고, 커다란 크레이터를 지나 착륙에 부적합한 자갈밭을 통과한 뒤 고운 가루가 덮힌 평지를 찾아냈다. 올드린이 컴퓨터에 착륙의 까다로운 마지막 단계에 필요한 데이터를 입력했다. 만약 또 먹통이 된다면 어떻게 될진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암스트롱은 한국전쟁에서 격추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대기권 상층부에서 비행기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그는 제미니 8호를 과격한 무중력 회전에서 구해내었다. 이제 암스트롱은 오작동 하는 우주선으로 외계천체에 착륙하려 하고 있었다.

 마지막 컴퓨터 재기동이 있은지 40초 가량 뒤, 그는 우주선의 전진 모멘텀을 늦추었다. 그리고 다리를 지표면으로 향하게 하였다. 엔진이 연기를 일으키면서 육안으로 볼 수 없게 되자 올드린은 콘솔에 표시되는 값을 계속 읊었다. 거의 연료가 바닥나자, 착륙선은 슬로우모션으로 떨어지면서 지표면에 키스했다. 월진 입자가 잠시 날아올라 태양을 가렸다가 달의 미약한 중력에 다시 가라앉았다.

 지구에서 컴퓨터 과학자들은 무엇이 프로세서를 과부하 시킨 건지 분석하느라 분주했다. 올드린과 암스트롱이 달에서 산책하고 있었지만, 컴퓨터가 계속 문제를 일으킨다면 돌아오기 힘들 수도 있다. 비행사들이 귀환선을 타고 날아오를 때까지 13시간 가량이 있었다.

 MIT 팀은 겨우 2,3시간 남겨두고 에러의 원인을 밝혀냈다. 잠재적인 임무중단을 고려해서 올드린은 우주선의 랑데부 레이더를 켜놓았던 것이다. 이 시스템은 우주선 위를 향하며 콜린스가 탄 사령선을 추적할 수 있었다. 하강할 때 랑데부 레이더 다이얼이 잘못된 설정으로 되어 있었다. 원래라면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설계 결함 때문에 일정 간격으로 레이더 시스템이 컴퓨터에 불필요한 요청폭격을 했다. 에러 중 최악의 종류였다: 변덕스럽고, 매우 위험하며, 재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폴로 11호의 랑데부 레이더 시스템이 이 희귀한 에러를 발동시켰으며, 착륙 중 가장 위험한 순간에 컴퓨터 자원의 13%가 하늘을 향하고 있는 안테나에 빼앗긴 것이다. 다행히도 프로그래머들은 랑데부 레이더가 중요도가 낮다고 결정했고, 덕분에 재기동마다 일시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 그 대신 컴퓨터는 항행, 유도, 제어 같은 중요한 작업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폴로 프로그래머들은 이 기능을 모든 프로그램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놓았으며, 심지어 디스플레이 표시보다도 우선하였다. 컴퓨터가 재기동하며 레지스터를 비울 때, 우주선이 어디로 가야할지 알려주는 귀중한 항행 데이터를 보존하는데 성공했다. 썩지 않는 로프에 새겨진 라닝과 문츠의 대책이 달착륙을 구했다.

 달을 떠나기 전 임무관제실의 명령에 따라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랑데부 레이더의 노브를 옳은 위치에 두고, 만일을 위해 전원을 차단했다. 이 임기응변의 대처를 한 뒤 그들은 달 궤도로 날아올랐다. 착륙선의 하부와 달 표면에 세워둔 성조기를 뒤흔들며. 둘은 콜린스와 합류했으며, 3일 뒤 태평양에 착륙했다. 그들의 귀환과 더불어 아폴로 프로그램은 영광으로 가득했다. 올드린은 화성탐사의 홍보대사가 되었다. 암스트롱은 신시내티로 이사했다. 콜린스는 회고록에서 달착륙 임무가 얼마나 위험천만했는지 털어놓았다. "그들이 달에서 돌아올 수 없거나 착륙하다 충돌했다면, 저는 함께 자살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귀환을 준비하는 걸 지켜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저는 즉시 지구로 돌아올 것이지만, 평생 꼬리표를 달고 살겠죠. 그건 알고 있었습니다."

 은둔자 할 라닝은 우주비행을 정복한 뒤 3D 모델링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가 고안한 OS는 아폴로에서 해군의 F-8 제트기로도 이식되어 컴퓨터 유도 비행 시스템의 실용성을 증명하였다. 아폴로의 끝없는 실리콘 칩 소형화 요구를 지켜본 고든 무어는 페어차일드를 떠나 인텔을 창립했다. 1971년, 일렉트릭 뉴스의 기자 돈 회플러는 페어차일드의 흔적에서 탄생한 베이에리어 기업들을 조사하는 연재기사를 썼다. 제목은 "실리콘 밸리, 미국"이었다.

 마지막으로 돈 에일스. 그는 자기에게 권한만 있었다면 임무를 중단시켰을 거라고 했다. 나는 지난 4월 그를 만나서 50년의 회고를 물어보았다. 임무관제실이 옳은 결정을 내린 걸까? "MIT에 있던 우리의 관점에선 컴퓨터에 뭔가 우리가 모르는 것이 소프트웨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많이 안 건지도 모르지요! NASA 사람들은 겉모습만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면에선 그게 그들에게 더 쉬운 일이 되었죠. 그들이 옳은 결정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 "어쨌든, 달착륙은 성공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잘한 게 틀림 없죠."

 에일스는 그러고 한가지 더 지적했다. "달착륙은 인간이 처음으로 컴퓨터가 조종하는 탈 것에 탄 것이었습니다." 달로의 하강이라는 가장 중요한 단계에, 컴퓨터는 4분 동안 5번의 예상치 못 한 재기동을 겪었지만, 작동안정성이란 측면에서는 프로그래머들이 기대한 것보다 더 잘 해내었다. 아폴로는 6번 더 발사되었지만, 대중의 관심은 시들어갔다. 아폴로 프로그램의 진정한 유산은 달표면이 아니라 실리콘에 새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올드린과 암스트롱은 영광을 낚았지만, 착륙선 뒤에 놓여진 금속 상자 안에 담겨진 것은 현대문명의 청사진이었다.



덧글

  • 2019/06/29 20:4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6/29 20:4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9/06/29 21:0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존다리안 2019/06/29 21:22 # 답글

    HAL 9000
  • 블링블링한 바다표범 2019/06/30 00:28 # 답글

    올려주시는 고퀄 번역들 매번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영어 공부 어떻게 하셨는지 간단하게라도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 eggry 2019/06/30 17:06 #

    영어공부는 학교에서 쓰는 문법교재 이후 인터넷 기사나 유튜브로 제 관심사인 분야의 기사를 계속 보는 것으로(물론 그때그때 사전 찾아가며) 하고 있습니다. 공부라기보다는 취미를 즐기기 위한 수단으로 접근하는 게 더 재밌고 쉽다고 생각합니다.
  • 블링블링한 바다표범 2019/06/30 23:23 #

    조언 감사드립니다. 저도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로는 유튜브나 외국 기사, 기타 글들 읽는 중인데 어째 영어 실력이 오히려 퇴화해가는 중이라 고민이네요. 특히 관심있는 분야만 보다보니 쓰는 어휘가 제한되어서 오히려 어휘력이 퇴화하는 느낌이라.. 이것저것 다양하게 읽어보도록 해야하려나요 ㅠㅠ
  • eggry 2019/07/01 07:41 #

    그럴 땐 좀 더 보편적인 시사뉴스나 칼럼이 균형에 도움이 되는 듯 합니다.
  • novrain 2019/06/30 10:25 # 답글

    책으로만 공부했던(지금은 책에도 없던) 자기 코어가 나오네요.
    예상치 못한 태스크에서 우선 순위 처리가 아폴로 11호 프로젝트를 살렸네요.
    50년 전이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시스템이 대부분이라, 글을 읽어도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었는지 이해하기는 힘들것 같습니다.
    내용을 이해한다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알수 있지만요.
    (제가 현장에 있었으면 사색이 되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 eggry 2019/06/30 17:04 #

    사실 오늘날엔 왜 컴퓨터가 저런 식으로 먹통이 되나 이해시키기 어렵죠. 컴퓨터 공학을 공부해도 진공관->트랜지스터->집적회로로 워프하는데 그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의 사이에 위치한 과도기적 존재이기도 하고... 하여튼 고객센터도 못 부르는 이역만리에서 먹통되는데도 실수하지 않았다는 게 얼마나 잘 훈련되었나 증명하지 않나 싶습니다.
  • 채널 2nd™ 2019/07/14 13:51 #

    시뮬레이터 버튼이 다 닳아서 지워질 정도로 열심히(?) -- 역시 이런 것을 보면 어마 어마한 훈련만이 실전에서 목숨을 담보해 줄 수 있다는 '진리'를 새삼 깨우치게 합니다.
  • RuBisCO 2019/07/04 13:49 # 답글

    저 당시엔 겨우 저정도 연산량만으로도 뻗는 기계였던게 현재에는 어떻게 되었나 생각하면 참 발전이 무시무시하기는 합니다.
  • 채널 2nd™ 2019/07/14 14:05 # 답글

    >> 1,000 피트 아래로 간다면 암스트롱이 어떻게든 해낼 거라고
    역시 양키들의 긍정적인 생각은 --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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