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데드 리뎀션 2 - 게임의 문법에 반하다 by eggry


 제가 락스타 게임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레드 데드 리뎀션'의 속편, '레드 데드 리뎀션 2'(이하 레데리 2)를 끝낸...지는 사실 조금 됐습니다만, 이래저래 늘어졌습니다. 플레이 중간에 여행이다 뭐다로 맥이 끊어졌는데, 확실히 할 얘기가 많은 게임입니다.

 '레데리 2'는 '레데리'의 속편이지만 시간대는 과거로, 1편의 주인공인 존 마스턴이 아직 약간 얼치기 같은 갱스터 동료로 나오는 시절이 됩니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1편에서 마스턴이 찾아내서 해치워야 하는 전 갱 보스 더치가 아직 한창의 모습으로 나오고, 플레이어블로는 그 더치 갱단의 행동대장격이라 할 수 있는 아서 모건이 됩니다. 1편에서 배드애즈~ 느낌을 풀풀 풍기던 존 마스턴이 여기서는 아서에 비하면 쩌리인데다, 아서의 포스와 실력이 워낙 세다보니(덩치부터 다릅니다) 1편의 멋지구리하던 존이 정말 초라하게 느껴지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레데리 2'가 출시되었을 때 초기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시스템적으로 많은 불만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소한 행위를 일일이 버튼 눌러서 해야하고, 그나마도 거의 다 애니메이션을 동반하니 말입니다. 상점에서 3D 책자 페이지를 넘기면서 봐야 한다든가, 요즘 흔한 크래프팅 시스템에서도 굽거나 제작하는 애니메이션이 일일이 다 나오고 심지어 한번에 한개만 제작할 수 있어 고기 몇십개 굽다가는 정말 날이 밝아버립니다. 주기적으로 밥을 먹어주지 않으면 전체 능력도 저하되며, 날씨에 부적절한 옷을 입으면 역시 패널티가 있습니다.(하지만 별로 크진 않습니다.) 오픈월드 게임임에도 순간이동 시스템이 없다는 점도 지적 받았죠. 플레이 타임의 절반은 말 타고 이동하는 시간일 겁니다. 그래서 사실 플레이 타임에 비해선 실제로 한 것들, 특히 메인 캠페인은 그렇게까지 분량이 많진 않습니다.

 이런 사소한 것까지 애니메이션이 들어가고 일일이 해야하는 시스템은 사실 게임의 문법에는 다소 반하는 것입니다. 상점 카탈로그 보기나 크래프팅 하는 장면이 게임플레이에서 유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죠. 핵심 플레이를 하기 위한 부수작업일 뿐이고, 그래서 대부분의 게임은 그냥 텍스트 메뉴에서 숫자 틱틱 건드려서 처리하는 식으로 해버립니다. 옷은 보통 전적으로 코스메틱 혹은 진짜 기능성(잠입이라거나 무장이라거나)을 위한 것들이라든가 말이죠. 버튼을 눌러서 결과를 얻는다, 불필요한 과정은 생략한다 같은 것은 게임에서 쾌적성을 위해 미덕으로 여겨지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레데리 2'는 이걸 정면으로 거부하죠.

 덕분에 '레데리 2'는 분명히 불편한 게임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단순히 피드백이 부족했다든가 하는 식의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시스템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말 타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건 1도 마찬가지인데, 1이라고 순간이동에 대한 요구가 없었던 게 아니고, 2에 기대하는 바가 없었던 것도 아닐 겁니다. 최소한의 배려로 시네마틱 이동을 도입했는데, 이것도 불의의 기습이나 말이 충돌하는 일이 생길 수 있고 시간은 똑같이 잡아먹죠. 락스타는 GTA도 그렇고 생략을 피하려는 입장을 갖고 있는데, 그게 '레데리 2'의 배경과 기술 발전에 따라 극대화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레데리 2'의 불편함이 단순히 역량 부족이 아니라 의도라고 생각하는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사격을 꼽겠습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무기는 서부극 답게 리피터와 리볼버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리피터나 리볼버는 매 사격마다 탄피를 빼고 다음 탄으로 넘어가는 조작을 해줘야 했죠. 리볼버의 경우 싱글액션이라고 하면 되겠네요. 리피터를 쓸 때는 실제 한번 사격 후의 트리거 당김은 발사가 아니라 레버로 다음 탄 장전 조작입니다. 그러므로 조준하고 다음발이라고 당기면 사실은 총알이 나가지 않고, 한번 더 당겨서야 나가게 되죠. 이건 분명 게임의 문법론으로썬 불편하기만 하고 별로 납득 안 가는 것입니다. 발사 후 그냥 캐릭터가 장전 조작을 하면 될텐데- 하고 말이죠. FPS의 볼트액션조차도 장전은 자동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리볼버의 경우엔 이 차이가 분명히 의미를 갖습니다. 리볼버의 조작은 전체 조작과 더불어 약간 흥미롭습니다. 게임은 무장을 들고 내린다는 개념이 있습니다. 무장을 들면 그것만으로 상대방의 태도는 적대적이거나 경계심을 가지게 됩니다. 반면 홀스터에 든 상태로 바로 트리거를 당기면 퀵드로우로 즉석 사격을 하게 됩니다. 경계심 같은 거 없이 기습사격으로 우위를 점하게 되죠. 물론 선제공격이니 상대가 악당이 아니라면 보통 나쁜 평판을 낳게 됩니다만. 리볼버의 경우엔 정조준에 의한 싱글액션 사격과, 퀵드로우에 의한 연속적인 사격이 별개로 존재합니다. 또한 단순 조준도 상호작용에 늬앙스를 가집니다. 그리고 이 미묘한 늬앙스와 조작의 차이가 다른 총기에도 크든 작든 모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출시 초기에 많은 비판을 받은 것 중 하나가 조작 버튼이 계속 바뀐다는 거였는데, 사실 그 원흉의 상당부분은 이 무기 파지라는 개념과 맞물려 있습니다. 무기를 뽑아들면 당연히 조작은 어느정도 공격성 위주로 변모하게 됩니다. 반면 무기를 넣었을 때 조작은 온건한 상호작용 위주로 되면서, 단 두 버튼, 퀵드로우와 주먹질 만이 적극적 공격으로 남습니다. 그냥 버튼 하나 눌러서 상호작용 하는데 익숙한 플레이어들은 쉽사리 마을 사람들한테 말 걸려다가 때려서 수배 당합니다만, 이 룰을 터득하는덴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정의와 악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미묘한 늬앙스로 생사가 갈리게 되는 서부극의 줄타기라는 묘미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철학이 모든 사람에게 납득되는 건 아니고, 옳은 방향 같은 거라곤 더욱 생각치 않습니다. 전 게임은 게임으로써의 플레이밸류를 위한 단순화를 지지하고 있고, '레데리 2'는 그 측면에서는 제가 칭찬하고 싶은 방향은 아닙니다. 수많은 애니메이션과 조작 실수의 가능성 또한 거기서 생겨나는 묘미엔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고 불편함만 있을 수도 있죠. 실제로 조작에 대해서야 최소한의 근거가 있다 치지만 크래프팅을 비롯한 애니메이션 상당수는 그냥 모든 과정을 생략하지 않겠단 고집 외에 실용적 의미는 없습니다. 뭐 그건 락스타 나름대로의 고집스런 일관성 정도로 그냥 넘어가려 합니다. 분명 짜증나는 요소이지만, 참을 만 합니다.

 게임 시스템 적으로 추가요소들이 이것저것 있긴 하지만 게임의 진행 자체는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사실 더 섬세한 세계나 몇 가지 세부 시스템들을 제외하면 1편과는 본질적으로 같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투 메카닉부터 거의 그대로기도 하고요. 그런데 시스템을 진취적 방향으로 발전시킬 생각은 원래 없었던 듯 합니다. 그냥 1에서 기술적 문제로 구현하지 못 했던 것들을 돈과 시간과 기술이 됨에 따라 이제서 하고 싶은 대로 했달까요?

 그러니 1의 불편함 그대로인 건 당연하지만, 당시에도 불편했던 1인지라 지금은 속 터진단 반응도 이상한 건 아니죠. 뭐 락스타는 네임밸류와 다른 재미로 그건 충분히 극복될 거라고 강행한 것 같은데, 락스타 정도 되니까 할 수 있는 사치긴 합니다. 동의하진 않아도 가끔 트렌드를 거스르는 것도 그 나름의 재미는 있습니다. 고민 없이 추천하는 AAA 게임으로써는 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요.



 그 '하고 싶은 걸 다 해본다' 라는 관점에서 오픈월드와 그래픽은 대단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사람과 건물이 드문드문 있는 한산한 곳이긴 하지만 이 게임보다 황무지나 숲이 자연스럽고 멋진 게임은 여태껏 없었습니다. 시간변화와 날씨 같은 것들도 대단히 자연스럽습니다. 다양성도 대단해서 선명한 밤, 뭔가 자욱한 밤, 안개 낀 아침, 폭풍우 치는 날, 가랑비 내리는 날 등 매우 다양한 환경을 접할 수 있는데 어떤 것도 단순히 멋지려고 강조하는 대신 자연스러운 한폭의 컨셉아트 같은 느낌을 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덕분에 1편 같은 과장된 듯한 시뻘건 노을은 보기 어렵습니다만...

 '레데리 2'의 그래픽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를 했더니 이 게임도 오픈월드 중 둘째 가라면 서러울 그래픽인데 네, 아주 격차가 큰 2위더군요. 바위의 각짐, 수풀이 박힌 모양 같은 것들까지 '레데리 2'는 악명 높은 크런치 얘기가 일일이 다 손으로 풀 박느라고 그랬나 납득이 된 반면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는 맵 생성기로 대충대충 만든 것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물론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는 '레데리 2'와 장르도 배경도 다르고 더 복잡한 세계기는 하지요. 그런 걸 감안해도 '레데리 2'는 대단하긴 합니다. 이런 비주얼로 엑스박스원X에서 네이티브 4K가 되는 것도 대단하고요. 유일한 불만은 HDR이 아직도 안 고쳐졌다는 거네요.



 속편이 발표됐을 때, 그리고 프리퀄이란 걸 알게 됐을 때부터 스토리에 대한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레데리 2'의 내러티브는 별로 훌륭하지도 않고, 스토리텔링이 발목을 잡은 탓에 그나마도 매끈하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말하고 싶던 스토리는 나쁘지 않았다고 봅니다. 시대에 뒤쳐진, 하지만 어느정도 호소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캐릭터 더치(2편의 완전 한물 간 광인과는 다릅니다)와 그의 오른팔인 아서는 사립탐정기업 핑커튼에게 쫒겨다니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게임의 전체 방향은 여기 저기 도망다니며 사고치며 점점 궁지에 몰린다는 것 뿐입니다. 몇 번 도망치냐의 문제일 뿐이라서, 게임이 어느 정도 진행됐나, 종착역에 다가가나 하는 감은 잘 오지 않습니다. 그걸 짐작할 수 있는 건 더치와 갱단들이 점점 회의적인 태도가 되어간다는 것 뿐이죠. 플레이어의 행동과 결정이 조직이나 게임의 향방에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실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게임의 결말은 프리퀄일 때부터 어느정도 정해져 있었으며, 그걸 억지로 피하거나 돌리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결말이 뻔하다고 한다면, 결국 과정의 문제입니다만 말한대로 실제로 접하는 과정은 그냥 사고 치고 도망 치고의 연속일 뿐입니다. 궁지에 몰리면서 더치는 점점 잔악해지고 이기적으로 되어 가는데, 사실 상황에 따른 캐릭터의 변모나 호소력이라고 한다면 아서보다는 더치가 더 적절한 화자입니다. 문제는 게임 대부분이 사고 치고 도망 치는 거다보니 더치란 캐릭터의 매력을 전달하기 쉽지 않습니다. 공백을 스스로 매꾸거나 찾아 먹지 않는 이상은 그냥 "계획이 있어!" 만 외치는 쓰레기로 보일 뿐이죠. 서부시대의 끝에 놓여진 몽상가적 면모는 분명 더 매력적일 수 있었습니다만, 퀘스트와 시네마틱 구성은 그냥 고집불통에 사고뭉치 형님 이상으로 느끼기 어렵게 만듭니다.

 이 스토리텔링 문제는 사실 아서에게도 해당됩니다. 더치가 더 좋은 화자라고 하더라도 1편에서 더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그에게 좋은 결말...이라기보다는 '리뎀션'이 있으리라곤 기대할 수 없습니다. 결국 '리뎀션'은 플레이어 캐릭터인 아서의 역할인데, 아서의 문제점은 상당부분 그냥 시다 이상을 하지 못 한다는 거죠. 게임 절반 이상을 더치가 하는 짓이 무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의는 달지 않습니다. 게임으로써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역할에 비중을 두었다면 아마 여기서 뭔가 바꿀 수 있는 점에 주안점을 뒀겠지만, '레데리 2'와 락스타의 노선은 개입의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므로... 주어진 대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아서는 종국에 더치 보다는 동료들의 생존을 우선시 하는 선택을 합니다만, 그런 아서의 변모 과정이 만족스럽게 그려지지 않은 게 '레데리 2'의 스토리의 최대결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서의 이야기 대부분은 퀘스트나 시네마틱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퀘스트는 시다짓일 뿐이고, 시네마틱은 더치가 시키는대로 할 뿐이죠. 아서의 진짜 생각은 아서의 수첩과 독백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분명 아서는 초반부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게 실질적인 행동, 정확히는 그냥 캠페인 진행의 변화가 되겠는데 그 동인이 되는 가장 큰 동기부여는 좀 허망합니다.

 후반부에는 갑자기 전반부에 무뢰한 행동을 할 때 접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자신이 저지른 짓의 결과를 보게 되고 죄값을 치루고 싶어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물론 중간중간의 독백과 더치의 폭주로 아서에게 고민이 있었다는 것은 맞지만, 스포일러 성인 그 결정적인 사건 이후 갑작스레 속죄의 냄새를 풍기는 퀘스트가 쏟아집니다. 다분히 작위적이죠. 전반엔 나쁜 짓 하고 후반엔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니 말이죠. 이 게임은 퀘스트와 시네마틱을 통해서 변화를 잘 전달하지 못 합니다. 그게 '레데리 2'의 가장 큰 결점입니다. 퀘스트들은 잘 연결되지 않고 드문드문 떨어진 별개의 사건들이거나, 잠시 공백을 두고 점프하게 됩니다. 기승전결이 아니라 기승결 정도려나요?

 사실 락스타가 내러티브에 강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긴 합니다. 이런 문제는 '레데리 2'에서만 발생한 게 아니고, GTA 시리즈 모두가 퀘스트 상당수가 내러티브엔 별 의미가 없는 시다질이거나, 비약하는 것이었습니다. '레데리' 역시 퀘스트 구성 자체에서는 마찬가지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나았던 것은 '레데리 2'와 달리 옛 동료였던 갱스터 소탕을 돕는다는 명백한 진행방향이 있어서 캠페인에서 진척이란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점점 물리적 목표에 다가간다는 것 말이죠. 그리고 존의 사정은 엄연히 과거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언급되는 것으로 퍼즐 맞추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것이 모여서 폭발한 것이 '레데리'의 클라이막스가 진정 올타임그레이트가 될 수 있었던 거죠.



 '레데리 2'에선 같은 락스타의 약점이라고 하더라도 여건이 더 안 좋았습니다. 프리퀄이라 생기는 정해진 결말이라는 한계, 더치 라는 캐릭터에 더 의미를 둔 대신에 비중이 약해져 버린 아서의 역할 등 말이죠. 실제로 중요한 건 갱스터나 전체 캠페인의 진척이 아니라(그건 어차피 막다른 골목이라고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아서라는 개인의 심정과 변화인데, 그게 정작 캠페인 자체에서는 제대로 묘사되지 못 한 겁니다. 몇몇 독백이나 대사로 어림짐작 할 뿐이죠. 아서의 노트는 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만, 당연히 최선으로 여겨지지도 않고 충분하지도 않습니다.

 내러티브에 있어 캐릭터 혹은 플레이어의 개입 얘길 했는데, 여기서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게 평판 시스템입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레데리 2'에는 악한 행동을 하느냐 어차피 나쁜 짓이긴 하지만 조금 자비롭냐에 따라 평판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퀘스트는 초반엔 깡패짓 하고, 후반엔 빚갚기를 합니다. 전반에 깡패짓 하면서 아무리 자비로운 선택을 해봐야, 후반부에 결국 죄책감 느끼는 건 그대로란 얘기입니다. 반대로 초반에 피도 눈물도 없이 플레이하더라도 후반에는 속죄합니다. 그 시스템은 그냥 수배 시스템 같은 거야! 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당연히 부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이 평판 시스템은 1에서도 그냥 GTA 수배 시스템의 변형일 뿐이었긴 합니다만, 2에서는 핵심 캐릭터의 선택과 변화라는 점이 중심이 되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었는데 실질적으론 결말은 똑같고 얼마나 죄값을 가차없이 치르느냐 그래도 마지막 양심을 존중은 해주느냐 차이일 뿐입니다. 1으로 이어지지 않는 배드엔딩이나 제3의 엔딩을 감수하더라도 제대로된 멀티 엔딩이나 분기를 제공했다면 더 만족스러웠을 겁니다. 그 대신 락스타는 실질적인 엔딩은 정해놓고, 플레이어의 선택은 거기에 영향 없는 사소한 변주 정도로만 넣었습니다. 뭘 해도 결말이야 정해져 있으니 그정도도 필요 없다는 걸까요?

 이 문제는 비단 ‘레데리 2’ 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사실 락스타 게임 전반에 자리하는 특징이기도 하죠. 락스타 게임 하면 GTA 덕분에 자유도로 마구 범죄를 지르는, 폭력게임의 표본과도 같이 미디어에 묘사되곤 합니다만 실제 락스타 게임은 의외로 제약이 강한 편입니다. 퀘스트는 아무리 사소해도 의도하지 않은 일탈로 빈번히 실패하게 됩니다. 길거리 행인에게 난동을 부리고 학살을 저지를 수도 있지만, 그 결과는 결국 체포나 사살입니다. 게임 진행 상에 그런 난동은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수배 등으로 불편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난동은 그냥 이런 짓도 가능하구나- 하는 유튜브 클립 수준 이상의 가치가 없습니다. 행인 패는 것이나 갈취하는 건 보상은 극히 적은 반면 성가시게 만들 여지는 훨씬 큽니다.

 퀘스트와 메인 스토리 역시 마찬가지로, 플레이어 쪽이 정말 극악무도한 짓을 하는 경우는 없으며(아예 가치기준이 완전히 인외인 트레버 같은 경우도 있지만 그래서 보편적인 악인과는 조금 다릅니다) 상대들도 어느정도 악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결말도 권선징악까진 아니라도 업보나 씁쓸함을 담고 있죠. 미디어에선 마치 폭력게임의 대명사인 것처럼 묘사되고, 늘 범죄를 주제로 삼고 있긴 하지만 실제 캠페인은 놀랄 정도로 극악무도한 악행은 저지르지 않고, 순수 악이라고 할 정도의 악인을 주역으로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개인적으론 락스타가 행동의 자유를 가진 게임에서 범죄를 유쾌하고 보상 받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대단히 경각심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전반적으로 락스타는 더치나 아서가 보여줄 수 있었던 가능성의 대충 반 정도 밖에 전달하지 못 했습니다. 충격적일 정도로 길고 의외였던 에필로그로 보자면, 락스타의 방식은 게임을 플레이 하는 과정에서 삶과 기분을 느끼라는 것인 듯 합니다. 저야 에필로그 자체도 불필요하게 시간과 스트레스를 잡아먹는 방식 탓에 "차라리 컷씬으로 해" 라는 게임문법론자긴 합니다만, 락스타의 의도는 짐작은 갔습니다. 게임 플레이 중 일어나는 일들과 사소한 대사, 수첩 같은 것들로 아서의 심경을 이해 하듯이, 에필로그의 하품 나올 것 같이 지루한 일상생활에서 결국 1편으로 이어지게 될 이야기의 안타까움과 무게감을 느끼란 거겠죠.



 게임의 경험을 통해서 느끼라는 입장은 아이러니하게도 게임 전체의 또다른 노선, 모든 걸 일일이 그린다는 방향과는 신기할 정도로 모순됩니다. 그러니까 '레데리 2'는 고기 굽는 장면이나 카탈로그 넘기는 장면은 일일이 애니메이션 넣어야 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스토리 전달은 굳이 컷씬이나 머리에 확 들어오는 대사나 이벤트로 그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건데... 솔직히 납득은 안 갑니다. 정작 에필로그에서도 가장 전달력이 강했던 건 일상생활이 아니라 컷씬이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결국 저에게 '레데리 2'에서 제일 와닿았던 건 어마어마한 정밀도의 오픈월드와 그래픽도, 짜증나면서도 정교한 상호작용도, 뭔가 와닿을 듯 와닿지 않는 내러티브도 아니라 "거의 무한대의 돈과 시간과 기술, 그리고 평판을 주면 이런 것도 대중에게 팔 수 있구나" 라는 감탄이었네요. 기술적 대단함과 더불어 다분히 호오가 갈릴 것 같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노선까지 말입니다. 사실 그 트렌드에 반하는, 게임으로써 직관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고서도 천만 클래스로 팔아 먹을 수 있다는 건 존중까진 몰라도 대단한 건 인정해야겠습니다.

 곧잘 올해 GOTY 먹을 만한 충격적인 게임은 없고 다 그냥 적당히 잘 만든 것 뿐이다- 라고 말했지만, 동의하는 방향은 아니라도 적어도 편하게 가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저는 '레데리 2'를 GOTY로 꼽겠습니다. 암, '갓 오브 워' 같은 것보다는 훨씬 자격이 있지요.





덧글

  • 은이 2019/01/22 09:37 # 답글

    막상 해 보면 이래 저래 불편한 듯 한데,
    '아 못해먹겠다' 하고 던지기 전에 적응할 정도로 미묘하게 잘 조절 해 놓은 듯한 시스템인거 같습니다
    저도 한참 하다가 방치한 상태인데... 왠지 엔딩을 보고 싶지 않은 아쉬움 같은게 있어요
    아서에게 묘하게 정이 가서 그럴려나요 ㅎㅎ
  • eggry 2019/01/22 11:52 #

    언젠간 깨실테지만 한가지 조언하자면 슬슬 끝이 보인다고 좀만 하면 엔딩 보고 잘 수 있겠네! 라고 생각하지는 말라는 게 되겠네요. 에필로그가 왠만한 본편 1 챕터 정도 되는 분량이라 이제 끝이겠네-하고 밤 늦게까지 하다 결국 새벽까지 못 깨고 자야 했습니다.
  • 소시민 제이 2019/01/22 10:04 # 답글

    앵그리 죠도 2018 최고의 게임 1위로 꼽았습죠.

    하지만 GTA도 버거운 저한테는.....
  • eggry 2019/01/22 11:53 #

    편하게 할 수 있는 게임은 절대 아닌데 그래서 오히려 무난한 수작보다는 흥미로웠네네요. 하지만 GTA가 버겁다면 이 게임은 정말 부담스러울 겁니다.
  • 로그온티어 2019/01/22 11:07 # 답글

    되게 많이 생각하게 되네요. 이게 고티가 되면 앞으로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분기가 갈릴 것 같아서요. 물론 이번엔 그래픽의 발전이고, 다음엔 이 그래픽에서 시스템과 디자인적 발전이 올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관객들이 그래픽과 묘사에 환호한다고 그쪽으로만 흐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디자인을 통한 암시적 연출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주기가 많이 늘었기도 하고. 근데 또 블록버스터 하면 디자인보단 규모가 먼저 떠오릅니다. 어떻게 아름답게 화려하게, 더 풍부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느냐가 중해진단 말이죠. 그래서 가끔 팔짱끼고 아냐 그래픽만 좋아선 게임이 아냐라며 말해도, 근데 또 게임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그래픽과 연출은 빼놓을 수 없는 이슈였고.
  • eggry 2019/01/22 11:51 #

    레데리 2가 게임계 전체에 어떤 영향을 줄 거라는 기대 혹은 우려는 별로 없습니다. 남들은 엄두도 못 내는 규모의 프로젝트여야 가능한 결과물이고, 그 결과물이 게임계 트렌드에 안티테제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방향이 다른 거지 실속이 없다거나 한 건 아니거든요. 보여주기 트렌드는 딱히 레데리 2가 아니더라도 언제나의 요구와 추구이기도 하고...
  • 라마르 2019/01/22 15:37 # 삭제 답글

    언제나 외길로 걸작을내주는 락스타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세기의 걸작
  • 봉학생군 2019/01/22 15:59 # 답글

    리얼리티를 너무 추구하다 보니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긴 하더군요. 그러한 점들은 좀 거슬렸습니다. 말 내릴시에 무기 장비 장착이나 아이템 하나씩만 줍기라던가. 머 노잼인건 아니었지만.
  • eggry 2019/01/22 16:17 #

    무기 장착은 업데이트 되고 나서는 달리는 중 안장에 꽂아 넣어도 내릴 때 자동으로 등짝에 들어가더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원성이 자자했나봅니다. 아이템은 줍기는...무념
  • 공공의적 2019/01/23 10:39 # 답글

    상당히 많은 부분이 공감하는 리뷰입니다. 다만, 마지막에 대해서 제 의견을 굳이 달아봅니다. 감정적으로는 저도 18년 GOTY 는 레데리2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갬성이랄까... 하지만 본문에도 거론하신 '게임'이 주는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결국 갓옵워가 가져가지 않을까 싶은. 포스팅을 인상깊게 읽어서 굳이 뻘소리 달고 갑니다. 잘 봤습니다.
  • eggry 2019/01/23 21:36 #

    물론 누가 게임 추천해달라고 하면 일반적으론 갓옵워를 추천하는 게 훨씬 안전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단지 상이랑 재미는 다르다고 할까요...?
  • ㅇㅇ 2019/02/03 11:59 # 삭제 답글

    상이랑 재미는 다르고, 레데리2는 애초에 그 어느 부분으로써도 좋은 게임이란 타이틀은 받기 힘듭니다. 리뷰도 보니 대충 스토리텔링 좀 깔짝대다가 총 방아쇠 당기는 거 극찬하고 끝나는 느낌인데, 그만큼 칭찬할 게 전혀 없는, 오히려 드라마에 더 가까운 작품이지요. 갓 오브 워가 좋은 게임이란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게임이긴 합니다.
  • ㅇㅇ 2019/02/12 17:56 # 삭제

    레데리2는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인생의 일부이기 때문이죠 그저게임이 아닌 누군가의 인생의 일부분이 될수있는 문화산업의 정점이자 미래라고 할수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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