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 세조, 국립고궁박물관 by eggry


 경복궁 옆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전을 보고 왔습니다. 입구에서부터 리히텐슈타인 전의 배너가 펄럭이고 있습니다. 거기에 소규모 특별전을 한 세조 정도 보고 왔네요. 고궁박물관은 상설전은 물론 특별전도 입장료 무료이기 때문에 가성비는 실질적으로 무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설전은 이전에 방문한 것이 있기에 그 글을 봐주시기 바랍니다.(국립고궁박물관을 가다) 평소처럼 고화질 전체 앨범은 플리커에 올렸습니다.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국립고궁박물관 Royal Tresures of Liechtenstein Exhibition(flickr)

 사실 이 전시의 취지는 공화주의자(!)로써는 약간 신경쓰이는 구석이 있습니다. 왕가나 왕국의 보물을 전시하는 건 흔한 일입니다만, 그게 전시되는 장소가 중앙박물관 같은 곳이 아니라 고궁박물관이다? 고궁과 고궁박물관이 한민족이나 한반도 왕가 전체가 아니라, 전적으로 조선시대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과 그에 따라 조선 말기, 대한제국의 색이 진하게 풍기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왕정이 폐지된 나라에서 마치 왕가 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것과 같은 냄새가 풍긴다는 것이 말이지요.

 특히나 리히텐슈타인 자체가 유럽 대륙에서 거의 마지막 남은 왕가 주도의 국가에 낭만주의 색채를 생각하면...(같은 입헌군주국이라고 해도 국가의 토지와 재산 상당수를 왕가가 보유하고 국고를 부담하기 까지 하는 건 리히텐슈타인 정도입니다) 물론 고궁박물관이나 문화재재단은 이씨 왕가와는 연관 없는 곳이지만 고궁박물관은 전부터 대한제국 긍정론이 좀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음, 개운하지는 않습니다. 뭐 이씨 왕가가 되돌아 올 일은 없으니 딱히 걱정은 하지 않고 미술품을 즐기기로 하겠습니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우측 벽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유리창 처리된 그림에 백색 벽. 전시관은 총 네곳으로 나뉘어지며 2층부터 1층 지하 1층까지 내려가는 식으로 됩니다.



 1층 첫 전시관의 시작.



 화려한 궁궐의 인테리어 사진과 더불어 공국과 왕가에 대한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 인근의 귀족가문으로 출발한 리히텐슈타인 가는(왕가와 국가 명이 같습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로부터 공국 지위를 인정받고 체코, 오스트리아에 여러 영지를 가졌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붕괴와 2차 세계대전 등으로 영지를 점차 잃게 되고 오늘날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국경지대의 마지막 영토 만을 보전하고 있습니다.



 첫 리히텐슈타인 공이 된 카를 1세.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12세기에 처음 기록에 등장한다고 하나 지방 귀족가문에서 발돋움해 공국의 지위를 얻은 건 16세기 카를 1세 대에 와서입니다.



 근세 초기의 여러 문서들. 제국 내 귀족들 간의 영토계약이나, 황제로부터 작위나 영토를 하사 받는 류의 문서들입니다.



 계약서에 두루말이용 끈 끝에 메달리온. 주로 밀랍으로 만들어진 듯?



 아직 공국의 지위를 얻기 전 지방 귀족이던 시절의 성. 중세 후기의 리히텐슈타인 성으로 지금은 오른쪽 황색 성곽이 훼손된 상태로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족보.



 리히텐슈타인은 카톨릭의 수호자인 신성로마제국에 속해있음에도 국제분쟁에서 상황에 따라 신교 편에 서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황제가 딱히 응징하거나 하진 않았다는데 뭐 신성로마제국 자체가 제대로 통제되는 제국이 아니었으니... 여튼 그러다가 카톨릭아로 재개종 하면서 교황에게 편지도 받고 했다고 합니다. 중세 후기~근세의 종교관은 참으로 미묘합니다.



 리히텐슈타인 왕관을 세부적으로 다룬 도면. 지금 왕관은 행방불명이라고 합니다.



 어느 대공비의 귀족 혈통이 어떻게 이어지나에 대한 그림. 가문 문장을 줄줄이 타고 내려옵니다.



 리히텐슈타인의 가문기. 왕가의 색상인 붉은색과 황금색(색이 바랬습니다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갈라진 모양임에도 실제로는 바탕천이 있어서 네모난 모양인 게 재밌습니다.



 여러 대공들의 초상화. 근세 특유의 뽀글머리 가발을 쓰고 있습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군림했던 요한 2세. 초상화 크기도 크고 약간 특별대우 되는 느낌인데, 리히텐슈타인을 입헌군주제로 개정한 군주여서 그런가봅니다.



 다양한 무늬의 돌을 얇게 저며다가 붙여서 만드는 피에트라 두라 기법으로 만들어진 그림. 피에트라 두라 기법은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유달리 좋아했다고 하며, 많은 가구나 예술품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페르디난트 2세 황제가 막시밀리안을 대공으로 임명한 문서. 제국 내 여러 영지를 갖고 있던 과거에는 대공의 칭호와 더불어 대공국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축소된 영토에 지위도 그냥 공(후작)입니다.



 빈 인근의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초기 영토.



 이전 시대의 것들보다 화려하고 정밀한 메달리온.



 공국과 왕가의 부유함을 나타내는 많은 전시품이 있으나 그 중 가장 두드러지면서 어이없는 것이라면 역시 이 크리스탈 잔이 되겠습니다. 약간 흑색을 띠는 수정을 통째로 깎아서 만든 잔으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지를 생각+부를 갖고 있었나 학을 때게 합니다.



 왕가의 무기고. 근세의 장비들이 소량 전시되어 있습니다.



 고딕 풍의 플레이트 아머.



 전쟁사에서 리히텐슈타인의 특징이라면 신성로마제국의 속국이었던 만큼 프랑스, 독일 연방국들과의 싸움 뿐만 아니라 오스만 제국과 직접 싸울 입장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스만 제국의 오스트리아 침공을 도와 막아낸 승전을 기록한 상아 조각.



 화려하게 세공된 투구.



 폴액스들. 화려한 세공으로 봐서 의장용의 의미가 큰 듯 합니다.



 근세의 중대한 군사적 발전 중 하나인 화약무기. 미니어쳐 대포를 만들어서 신무기 개발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거북이 등딱지를 이용해 만든 방패. 금으로 만든 메달이 가장자리에 박혀있고, 가운데는 항해의 신을 묘사한 그림이 있습니다. 근세로 접어들면서 기독교 색체 일색에서 벗어나 그리스로마 신화의 재발견이 이루어 집니다.



 근세 리히텐슈타인이 배출한 최고의 전쟁 영웅으로 꼽히는 요제프 벤첼 1세. 신성로마제국 군대의 지휘관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전쟁사와 관련된 전시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 신성로마제국을 위협했던 오스만과의 싸움입니다. 쉽사리 정벌된 발칸 국가들이나 강 건너 불구경 했던 다른 대륙 대국들과 달리 오스트리아는 오스만과 제대로 싸워서 막아내야 하는 입장에 놓였습니다. 전쟁 상황이 아니더라도 이교도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점에서 긴장감이 있을 수 밖에 없었으나(프랑스는 오스트리아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기도 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이국의 문화에 대한 흥미 또한 증가했다고 합니다.

 근세 후기로 접어들면서 오스만 제국의 기독교 권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사그라들고 조심스럽게 통상이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이교도와 이민족에 대한 두려움도 이국적 호기심으로 바뀌었으며 미술품을 수입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들을 묘소하는 그림도 꽤나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가 나폴레옹의 프랑스에게 패배한 뒤 협상을 중재하는 리히텐슈타인 후작.



 물론 나폴레옹은 결국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연합에 패배하게 됩니다. 나폴레옹 제국 격퇴에 리히텐슈타인도 한 몫 했다는 기록화.



 중앙유럽 여기저기 영토가 있었던 만큼 궁궐도 많았던 리히텐슈타인. 대부분은 현지 정부에 몰수되었거나 파괴되었습니다.



 궁궐의 문에 붙여졌다고 하는 화려한 금장식.



 저택을 묘사한 그림 중 하나. 왕가가 후원하는 공공 미술관을 시도했다고 하며 그 흔적을 왼쪽 아래에 미술품을 옮기고 있는 일꾼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금도금된 등잔.



 프로이센의 승리로 독일 연방(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을 멸망시킨 후 나폴레옹 패퇴 뒤 오스트리아 주도로 새로이 재건된 연방)이 해체되기 전까지 리히텐슈타인은 오스트리아의 충복으로 빈에도 저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림은 빈에 머물 당시 이용했다고 하는 저택으로, 통칭 '도시궁전'으로 불립니다.



 화려한 근세 가구들.



 피에트라 두라 기법으로 장식된 가구들.



 금도금된 화려한 조각이 놓인 시계가 달린 수납장.



 이 수납장은 성경과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일화들을 복잡하게 그려넣었습니다.



 왕세자의 초상화. 근세의 복장이란...



 왕실 남성의 연미복. 공식행사에선 군복을 입는 게 관례였으나 군직이 없는 사람은 프랑스식 왕가 의상을 입었다고.



 오스트리아 황제가 영주들에게 하사한 연회용 복장. 황실 행사에서 착용했으며, 대공 요한 1세가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리히텐슈타인 대공들이 받은 여러 훈장들. 리히텐슈타인은 공식적으론 신성로마/오스트리아 황제의 심복이었지만 느슨한 지배체계였던 라이히의 특성 때문인지 타국과 전쟁에서 중재 입장에 나서거나 하기도 했다고. 대부분은 군사외교적 성과로 오스트리아 황가에게 하사받은 것이지만 중재의 감사로 러시아 황가에게 받은 것도 있습니다. 마지막 것이 러시아에게 받은 것.



 대공비들의 초상화. 첫 초상화는 청조하면서 사실주의적으로 그려졌지만 두번째는 신고전주의에 기반해 여신 풍으로 그려졌습니다.



 화려한 벽걸이 장식. 은세공, 금도금으로 만들어졌는데 단순히 장식일 뿐만 아니라 기능역할도 가지기 위해서 날짜를 표시하는 기계장치가 달려 있습니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여러 궁궐들. 맨 처음의 파두츠 성(오늘날 리히텐슈타인 영지)를 제외한 모든 성은 지금은 소유권을 잃었습니다. 대공이 된 후 근세에 지어진 것들은 소유권은 잃었지만 대부분 문화재로써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리히텐슈타인의 여러 박물관에 대한 소개도 있습니다. 갈 일이 있을런지...



 귀족 문화라고 하면 역시 도자기. 초기엔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되었지만 나중엔 직접 만들게 됩니다.



 일본과 중국에서 수입된 도자기. 재밌게도 처음은 일제, 두번째는 중국제인데, 일본식 문양이 서양에서 인기를 끌자 중국 장인들이 흉내내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서양에서 도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된 시기에도 동양 도자기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여전해서 구한말에 왜 조선이 도자기를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 일본 문헌도 있었던 듯...



 이건 일본에서 수입된 도자기에 보호를 위해 금박 장식을 덧댄 것입니다.



 귀족의 사냥문화가 보편적이었던지라 도자기에도 사냥개 그림이.



 이 도자기들은 유럽제이지만 수입품의 유행을 따라서 동양풍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푸른색 바탕에 흰색의 신고전주의 부조가 덧붙여진 영국 도자기.



 뭐 유럽의 근세 도자기라고 하면 역시 이런 사실주의적 그림이 들어간 거겠죠.



 고대 그리스의 항아리를 흉내낸 것도 있습니다.



 왕가의 사치스러운 식기들. 아이스크림 용기와 유리잔 보관대.



 근세의 모범적인 귀족 식탁과 식기를 재현한 전시. 귀족 식사는 프랑스 식 기반이었는데, 원래 프랑스 식은 한번에 요리가 나오고 덜어다 먹는 식이었는데 러시아의 프랑스 출신 궁중요리사가 낮은 러시아의 기온 등을 고려해서 한번에 내지 않고 요리를 그때그때 바로 내어다가 순서대로 먹는 서비스 식을 고안해냅니다. 이것이 결국 서유럽 쪽에도 재도입되면서 오늘날 프랑스 코스요리의 정석이 되었습니다만... 이런 유래 때문에 귀족식 코스 요리가 프랑스가 원조냐 러시아가 원조냐 하는 쓸데없는 입씨름도 한다고.

 여기 있는 식기들은 그냥 단순히 당시 보편적인 식기가 아니라 나폴레옹이 주문한 '로마 은도금' 식기세트 중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촛대와 포크, 나이프 등의 식기가 그것으로 나폴레옹 전쟁 후 전리품으로 챙겨졌나봅니다.[...]



 주체할 수 없는 부로 미쳐 날뛰는 근세 후기의 귀족 식기들.



 사냥의 성인 에우스타키우스. 사냥을 하다가 사슴 뿔에 십자가상이 달려있는 걸 발견하고 예수 목소리를 들은 뒤 개종했다고 전해집니다.



 화려한 상아 몸통을 가진 석궁.



 사냥용 칼들. 즉석 해체용 칼도 갖고 다녔습니다.



 전장에서 화기가 이미 일찍부터 통용되고 있었던 반면 귀족 사냥에서는 요란하고 야만적이라는 이유로 도입이 늦은 편이라고 합니다.



 왕가의 사냥에 대한 기록사진. 그러니까 사진이 생길 때까지 했다는... 뭐 아마 지금도 하고 있겠지만요.



 말은 사냥은 물론 전쟁에도 중요한 도구였기에 왕가는 말의 육성에 큰 공을 들였습니다. 말 다루는 법에 대한 책을 쓴 왕자라거나, 여러 미술품에서 나타나는 말의 중요성을 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파르마에 입성할 당시 요제프 벤첼 1세가 사용했다는 왕가의 문장이 박힌 마구. 화려하게 수놓았습니다.



 왕실의 미술품. 기독교나 그리스 로마 신화 기반의 것이 많습니다. 성모와 아기 예수.



 세례자 요한의 목이 담긴 접시. 아무리 성경의 일화라고 하지만 근세까지 이런 거 만들었다는 게 좀 섬찟하기도 합니다.



 로마 초기의 유명한 일화인 '사비니 여인의 약탈'을 묘사한 그림. 맨 위에는 사비니의 여인, 중간은 로마 남자, 맨 밑은 발버둥치는 사비니의 남자입니다. 이 구도는 최근 기동전사 건담의 비주얼에 쓰여서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네요. 전혀 안 맞잖아 😂😂😂



 역시 '사비니 여인의 약탈'을 그려넣은 상아로된 잔입니다만, 너무 복잡해서 누가 누군지 잘 분간이 안 됩니다. 엄청나기는 하네요.



 대공녀의 흉상.



 위풍당당하게 그려진 아기.



 초반에 본 크리스탈 잔이 미친 부의 광기라고 한다면 이쪽은 훨씬 덜 우람하지마 정교하고 화려한 크리스탈+금도금 잔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일화를 그린 조각상들.



 아들을 희생하라는 여호와의 시험에 든 아브라함과 아들을 재물로 바치려는 순간 나타난 천사. 아브라함 표정이 음... "아니 정말 이러깁니까?" 같은 느낌이군요 😂😂😂



 황소로 변신해 여자 꼬시는 제우스... 에휴 제우스 ㅋㅋㅋ



 아까 초상화로도 보았던 요제프 벤첼 1세의 흉상.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빈의 궁전에 덧칠된 상태로 놓여져 있는 걸 리히텐슈타인 왕실 컬렉션 관장이 발견해서 찾아 왔다고 합니다. 눈썰미가 대단하네요. 직무가 직무니 당연하지만...



 귀족 여인들의 교양도구, 바느질이나 그림 도구 등을 한군데 모은 가방. 다만 실용적으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그냥 선물용으로써 의미가 강하다고.



 학자들에게 둘러싸인 아기 예수.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따온 유대 여인 유디트. 옆의 노파 표정이 "무서운 요즘 것들" 이라고 하는 듯...



 사도 요한. 너무 미청년으로 그려놨네요.



 검은 모자를 쓴 남자. 이 그림은 저도 여기저기서 많이 봤는데... 가문 문장이 커튼에 가려져 있어서 정확히 누굴 그린 건지는 불명이라고 하는군요.



 마지막으로 거대한 사슴의 머리 뼈.

 리히텐슈타인 전시는 여기까지입니다. 정리해보니 생각보다 분량이 꽤 되네요. 무료입장인데 비하면 전시품의 질은 왠만한 유료전시 싸다구 치는 수준인지라 강력 추천입니다. 2월 10일 까지로 한달 남짓 남았으므로 기간이 그리 길지 않으니 한번 시간 내어 가보시길 권합니다.


 이하는 고궁박물관의 소규모 특별전인 세조입니다. 사실 세조라고 해도 세조에 대해 특별히 많이 다루는 건 아니고, 어진의 초본 그림을 중심으로 약간 엉성한 전시였습니다.



 세조... 조카와 사육신을 죽인 비정한 임금으로 유명하죠. 그러나 사후 주어진 '세조'라는 이름은 태조에 버금가는, 나라를 다시 세운 임금이란 뜻으로 세조가 국가제도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 받습니다. 또한 예술에 조예가 있는 임금이기도 합니다.



 메인이 어진인지라 어진에 색칠하기 체험이 있습니다.



 세종의 아들로 태어난 세조. 세종의 왕자들의 태실은 경북 성주군에 모여 있습니다.



 세종의 차남 세종으로 기록된 왕실 기록. 장남인 문종이 단명하면서 문종의 아들이자 세조의 조카인 단종이 즉위했으나 반정을 일으켜 유배 보내고 사육신 등 저항하는 신하들을 숙청했습니다.



 단종의 유배지를 그린 지도.



 석판 본뜨기. 기본적으로 음각이기 때문에 검은 바탕에 흰 글씨가 됩니다. 박물관을 열심히 다녀도 본뜬 문서는 그렇게 자주 보이진 않더군요.



 세조는 글쓰기를 잘 했다고 유명하지만, 또 불교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국시를 유교로 내세우고 불교를 탄압하며 시작한 조선왕조지만 세조는 중국에서 온 번역본에 직접 한글번역을 붙일 정도였다고.



 이번 전시의 중심은 세조 어진 초본입니다. 어진이야 당연히 세조 사후에 만들어졌지만 왜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손상과 노후화가 있었고, 모사품만 남게 되었는데 일제시대에 이왕직에서 재모사를 결정합니다. 김은호가 세조 어진의 초안을 그린 뒤 이를 비단에 옮겨서 새 어진이 탄생합니다. 여기 전시된 것은 그 처음 배껴 그린 초안입니다. 초안은 이렇게 있지만 완성된 어진 자체는 54년 용두산 화재 때 소실되어 없습니다.



 세조의 무덤 광릉과 그와 관련된 유물들. 광릉은 세조를 떠받드는 후대 왕들이 자주 찾았다고 하며 왕이 직접 쓴 문장들이 바쳐졌다고 합니다.

 전시는 이정도. 전시실 하나 써서 간소하게 치러진 거라 내용은 그다지 없군요. 상설전 중에서 세조의 병풍 글씨가 있는데 글씨가 상당히 좋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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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개 느지막히 하는 전시 감상!!! 이번에는 2월 10일까지 하는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입니다. 좀 더 정확한 사진과 의견은eggry님의 포스트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세조, 국립고궁박물관에 제대로 실려 있으니 참고하시고...제 포스트야 언제나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이야기 뿐이니까요! 테헷! 어찌되었든....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 more

덧글

  • 진냥 2019/01/06 00:20 # 답글

    오오!!! 가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기대감이 더욱 커지는군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했던 '왕이 사랑한 보물'전도 그렇고, 왕가 세간살이의 근사함이나 호화로움은 과연 마음을 울리지만 저도 마찬가지로 공화주의자인지 울컥울컥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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