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s Technica의 아이패드 프로 A12X 칩 이야기
며칠 전 출시된 아이패드 프로와 거기에 탑재된 A12X, 이미 애플의 프레젠테이션 뿐만 아니라 수많은 리뷰와 벤치마크를 통해서 그 강력함은 입증되었습니다. A12X는 CPU 성능 면에서 애플의 휴대용 컴퓨터 중 두번째입니다. 그리고 첫번째는 과도한 발열로 스로틀링에 의해 기대만큼 성능이 안 나온다는 논란을 낳았던 인텔 8세대 코어 i9을 탑재한 최고사양 제품입니다. 물론 강력한 팬과 훨씬 더 큰 크기, 전력소모를 가지고 말이죠. 애플의 견해와 웹진의 분석 등은 앞서 올린 Arc Technica의 글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그런 얘기들을 기반으로 좀 더 개인적인 관점입니다.
현재까지 이룬 것
애플이 처음 A4 프로세서로 스스로 칩을 설계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그저 괜찮은 모바일 칩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A12, A12X에 이르러서 A 시리즈는 가장 강력한 싱글스레드 성능과 전력효율을 가진 프로세서가 되었습니다. A12는 스마트폰 프로세서임에도 인텔의 노트북용 저전력 코어 프로세서를 능가하는 벤치마크를 보이며, A12X의 경우엔 보다시피 i7 라인업을 이미 잡고 있습니다.
기존 A 시리즈가 모바일 프로세서인 덕분에 가졌던 한계라고 한다면 캐시 용량과 메모리 대역폭 같은 부분이 있겠는데, A12 세대에선 이 부분이 크게 강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 따라 소위 더 큰 작업단위를 요구하는 '프로 작업'에서 훨씬 노트북, 데스크탑에 가까운 혹은 능가하는 성능을 갖게 됐습니다. 이전 프로세서들은 전력효율과 칩 사이즈를 우선시하였고 모바일 프로세스의 특성 상 캐시 용량과 대역폭이 실제 처리장치의 쓰루풋 발목을 잡았지만, A12 시리즈에선 그 부분이 크게 해소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분명히 모바일에서는 오버킬이지만, 애플이 앞으로 노트북, 데스크탑 클래스로 스텝업 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그 테스트를 ARM 맥 출시와 더불어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기 보다는, 실수하거나 예상만큼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아이폰, 아이패드에서 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입니다. 사실 이런 선택을 함으로써 애플은 모바일 기기에 필요 이상의 성능, 그리고 비용을 부여하고 있지만 그 부분은 애플이 고가정책을 추구함으로써 어느정도 완충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직 모자란 것
CPU 쪽에서는 맥북 프로까지도 커버할 만큼 따라온 반면 GPU 족에서는 아직입니다. 애플은 엑스박스원S 급 GPU라고 자랑했지만, 그 엑스박스원 S는 엔트리 모델이며 근본적으로 2013년에 399달러였던 PS4보다도 약한 하드웨어입니다. 물론 애플의 GPU는 CPU에 비하면 이제 막 시작했을 따름입니다. 작년 아이폰8/X의 A11에서 처음 애플의 독자설계 GPU가 등장했을 뿐, 그 전에는 PowerVR이었습니다. PowerVR이 애플이 기대하는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 하게 되고 인하우스 욕심이 강해지면서 작년 독자 GPU가 등장했습니다.
첫 세대는 PowerVR의 카피판이라는 비판도 많았고 지적재산 논란, 그리고 바뀐 아키텍쳐로 인한 초기 호환성, 성능 저하 문제를 겪었습니다. A12/A12X에 이르러 2세대 GPU가 등장했으며 호환성 문제는 그동안 대부분 해결되었고 신공정과 설계로 퍼포먼스를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A11X가 없고 A12X가 나오기를 기다렸던 것에도 초기 문제를 극복한 다음 세대가 필요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모바일로써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것이며, 비록 수년이 지난 하드웨어라곤 해도 적어도 '현세대 콘솔'을 실제로 거론하고 거기에 근접한 성능을 보인 것은 애플이 처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엔비디아가 수 년 동안 테그라가 '콘솔급 그래픽'임을 자랑했지만 실제로는 전세대와 현세대 중간 정도일 뿐이었습니다.
그 자체는 기념비적인 이정표이긴 하지만, 아직은 정말 콘솔급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일단 아이패드 프로는 엑스박스원보다 5년 늦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이패드 프로는 799달러에서 시작하지만, 엑스박스원S는 할리데이 시즌에 200달러에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세월과 가격차이를 생각하면 여전히 모바일 프로세서가 콘솔을 진정으로 잡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900p~1080p 정도로 돌아가는 저가형 콘솔들보다 훨씬 높은 해상도로 돌아간다는 점을 고려해도 그래픽 퀄리티 역시 콘솔 AAA 타이틀에 전혀 미치지 못 합니다. 시연에 보인 NBA 2K19의 비교대상은 역시나 이전 아이패드 프로, 그리고 스위치였습니다. 여전히 모바일 게임의 기준으로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이 문제는 하드웨어 성능 자체보다는 아이폰/아이패드 전체도 아니고 아이패드 프로라는 극히 좁은 풀을 위해 대예산 게임을, 제한적인 조작 시스템으로 내놓을 각오가 있느냐는 프로젝트의 규모와 목표의 문제에 더 가깝긴 합니다. 정말 아이패드 프로가 공언하는 성능이라면, 이론 상으로 '레드 데드 리뎀션 2'가 나오는데 문제는 없습니다. 전혀 수지타산이 안 맞아 만드는 게 미친 짓일 뿐이죠.
그래도 과소평가할 수 없는 건, 엑스박스원S가 비록 게이밍 머신으로썬 그렇게 고성능을 달리는 하드웨어는 아닐지라도, 일반적으로 충분한 수준 이상의 성능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가령 게임 머신으로써는 로우엔드 수준일지 몰라도 단순히 여러 작업에 GPU 파워가 필요한 정도로는 이미 충분히 강력한 것입니다. 물론 애플의 '진짜' 프로급 기기들에 쓰이는 라데온 프로와 같은 수준엔 전혀 못 미치긴 합니다. 그건 정말 강력한 GPU니까요.
애플이 ARM 맥북, 혹은 아이맥을 만든다면 적어도 인텔 내장 그래픽을 쓰는 맥북 12인치, 맥북 에어, 맥북 프로 엔트리, 아이맥 저가사양 정도는 이미 커버가 가능한 상황이지만, 해당 제품군을 뒤섞어서 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아이맥 프로나 맥 프로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아이맥 고사양 정도는 커버할 수 있는 CPU/GPU 밸런스를 맞춰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성장속도로 볼 때 루머에서 떠드는 2020년까지는 충분히 현실적인 목표로 보입니다.
물론 여기엔 단순히 애플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인텔과 AMD, 엔비디아의 발전속도가 매우 더뎌졌다는 점도 한몫 할 것입니다. 가령 차세대 콘솔은 기껏해야 엑스박스원X의 2배 수준의 GPU 테라플롭을 가질 거란 보수적인 예상이 지배적입니다. 차세대 콘솔 수준일 필요는 없으므로 그때까지 필요한 성능은 현실적입니다. 맥북이나 아이맥에선 더 많은 코어, 덜 보수적인 전력 프로파일을 갖출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말이죠.
애플의 점진적이면서도 보수적인 진척
사실 공격적인 성능향상이 부각되고 있지만, 애플의 커스텀 칩 전략은 의외로 점진적인 한편으로 보수적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인상과 달리 충분히 완성되면 내놓기 보다는, 실제론 덜 준비된 상태로 나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1세대 커스텀 GPU가 그러했고, 아이폰7에서 처음 도입된 A10의 빅&&스몰코어 구성도 그렇습니다. A10이 처음 나올 때 이미 삼성이나 퀄컴은 수년에 걸쳐서 big.LITTLE을 원활히 마스터하는데 시간을 들인 뒤였고, 애플이라도 하루아침에 같은 수준을 달성할 것 같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고요.
A10은 출시 초기에 빅/리틀 코어의 스위칭 사이의 레이턴시 이슈가 있었으며 그에 따라 연속사용에서는 전작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고부하->저부하 스위칭(가령 홈 화면으로 돌아간다거나)에서는 전작에 없던 렉이 생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big.LITTLE 구성에서 특히 클러스터 마이그레이션에서 이미 익히 알려진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는 코어 수를 좀 더 밸런스있게 맞춘 A10X에서 처음 해소되었고, A11에서는 HMP를 도입하여 빅/리틀 코어를 스위칭 없이 이용하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폰의 배터리 관계 상 여전히 모든 코어를 동시에 사용하게 만들진 않았습니다.
반면 여유가 있는 A12X에선 빅 코어 수를 4개로 늘렸을 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 8코어를 모두 가동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여기서 발휘되는 성능은 실질적으론 강력한 빅코어 4개의 지배력이 강합니다. 그럼에도 의미가 있는 건 생산성 앱의 메인 부하를 쿼드 코어로 가동하면서도, 부하가 적은 백그라운드 작업 역시 쿼드 코어로 가동할 수 있어서 여유가 훨씬 커졌다는 점입니다. 현실적으로 생산성 앱에 리틀 쿼드 코어를 추가로 켜는 것이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닙니다. 게다가 그런 비대칭 쓰레드는 앱 내에서 멀티스레드 코딩하기도 어렵고요. iOS 앱은 최대 쿼드코어를 상정하고 개발되며 단지 부하가 크냐 작냐에 따라 어디 올라갈지 갈릴 뿐입니다.
이렇듯 단계적으로 진행해 왔다는 점에서는 점진적이지만, 새 기능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서 해당 기기의 기대되는 체험 혹은 홍보된 바에 크게 지장을 주진 않는다는 점에서는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12X의 GPU 성능이 정말 2배가 아니라 1.5배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이미 A10X는 가장 빠른 모바일 GPU였는데 말입니다. 물론 3D 게임이나 동영상 처리 성능이 목표보다 떨어지긴 했겠죠. 하지만 3D 게임은 최적화하면 되고, 동영상 작업은 어차피 진지하게 기대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아이패드 프로가 딱히 그 성능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계속 애플의 가장 강력한 프로세서를 탑재해 나가고 있는 이유는 역시 맥을 위한 테스트베드라고 봅니다. 만약 이번에 새로운 기법이 실패한다고 해도? 어차피 유튜브, 사파리 웹서핑에 지장이 생기지 않는 이상 아이패드 프로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기대 만큼 필요하지도 않은 성능이 안 나온 걸로 끝이죠. 하지만 맥에서 파이널컷이나 포토샵이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다면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애플은 맥에 ARM을 넣기 전에 인텔/AMD를 완전히 대신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며 중간단계를 스킵할 순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실험장이 아이패드 프로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일어날 일
2020년에 A 시리즈 프로세서가 인텔 차세대 i7의 CPU 성능과 AMD의 중간급 GPU 성능을 가지게 된다? 그건 충분히 현실적입니다. 하지만 그게 아이패드 프로 2020이 진정한 프로 기기로 거듭날 거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Arc Technica의 기사도 소프트웨어 얘기를 했습니다만, 아이패드는 iOS의 근본적 입력, 인터페이스의 한계 때문에 아무리 강력한 성능을 줘도 진정한 프로 기기가 될 일은 없다고 봅니다. 펜을 이용한 작업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이미 출시 후 USB-C 포트의 활용성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iOS 13에서 큰 개선이 있을 거라는 얘기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패드 프로가 성능만 좋다고 노트북, 데스크탑을 대체할 순 없습니다. 결국 노트북과 데스크탑이라는 '폼팩터' 자체는 거기서 이뤄져야 합니다.
더 현실적인 미래는 이미 블룸버그를 통해서 동네방네 떠들어진 ARM 맥입니다. 2020년이란 타겟이 루머에서 엄격하게 제시된 건 이번이 처음인데, 2년 쯤 전에 ARM 맥 루머가 처음 떠돌기 시작할 때 2020 정도를 목표로 봤습니다. 현재 진척상황으로 볼 때 2020년은 매우 현실적인 타겟으로 보입니다. CPU, GPU 성능 모두 필요한 수준을 달성할 것이며, 아이패드 프로 등을 통해서 진척상황은 충분히 테스트 될 것입니다.
맥에 더욱 유리한 부분은 아이패드 프로의 발목이기도 한 소프트웨어입니다. 이미 여러번 아키텍쳐 이전을 경험한 맥에서 아키텍쳐 이전에 의한 진통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애플은 어느 때보다도 잘 대비하고 있으며, 거기엔 단순히 스위프트 등과 같은 개발환경 뿐만 아니라 아이패드 프로의 기여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이패드 프로가 아무리 동영상 인코딩을 맥북보다 빨리 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론 인터페이스와 확장성의 한계로 맥북 대신에 동영상 편집을 쓸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패드 프로의 하드웨어에서 빠르게 돌아가는 앱은 계속 개발될 것입니다. 특히 어도비가 좋은 예시죠. 체험을 통일시키기 위해 모바일을 고려한 새로 디자인된 라이트룸, 포토샵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아직 구 버전에는 기능적으로 못 미치는 게 많지만 결국엔 갖춰질 것입니다.
그 말은 2020년 시점에서 ARM에 맞춰 개발된 프로급 앱들이 이미 충분히 성숙해 있을 거란 점입니다. 유일한 문제는 iOS의 인터페이스와 확장성이죠. 그리고 그 문제는 맥이 ARM을 채택하고, 아주 간단하게 iOS 프로 앱들을 이식하게 되면 바로 해결되는 일입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iOS에서 맥으로 인터페이스를 수정하는 편이 iOS가 데스크탑 OS가 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입니다. 아이패드 프로가 맥에 버금가는 생산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OS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지만 아이폰과 공유하는 한 너무 달라질 순 없습니다. 그랬다간 애플은 3개의 OS를 가지게 되고 말 겁니다. 그러니 더 현실적인 선택은 그냥 iOS 앱들이 맥에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간단한 수정을 거친 후이든 아니면 크롬북처럼 그냥 구동하는 거든지 말이죠.
그 때가 되면 아이패드 프로의 존재가치에 의문이 생길 겁니다. 그렇게 자랑하던 생산성은 펜을 제외하고는 맥북이 훨씬 더 편할테니까요. 물론 맥북은 키보드를 분리할 수 없다든가, 펜이 안 된다든가 하는 이유로 둘은 공존할 수 있습니다. 애플의 특성 상 갑자기 맥북을 2-in-1으로 바꿀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애플의 전략은 언제나 서로 조금씩 모자라게 함으로써 최대한 많은 하드웨어를 사게 만드는 거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아이패드 프로의 생산성 마케팅은 치명타를 받을 겁니다. 완전히 같은 앱을 구동하고, 같은 성능을 가진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인터페이스, 확장성의 한계가 더 크게 와닿을테니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부분은 맥이 ARM으로 완전히 이전해서 아이패드 프로가 테스트베드로써의 필요가 없어졌을 때입니다. 그땐 아이패드는 더 강력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어쩌면 '프로' 라인업이 사라지고, 아이패드는 아이폰보다 조금 더 강력해진 정도의 프로세서만 달고 나오던 수년 전으로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그정도로도 펜을 쓰는덴 아무 문제 없을테니까요. 혹은 고가전략을 위해 프로 브랜딩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향상속도, 혹은 ARM 맥 만큼 강력한 프로세서는 얻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신형 아이패드 프로가 i7 맥북 프로 만큼 빠르다고 해도 훨씬 저렴한 건 제한적인 활용성 덕분이니, 반대로 같은 아키텍쳐일 땐 더 낮은 등급의 하드웨어를 받는 게 서열 상 맞겠죠.
한편 당장 보이는 맥 외의 활용 방안으론 역시 뉴럴엔진과 머신러닝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애플 무인차와도 연관 있을 것입니다. 이건 또 증강현실 기술과도 연관이 깊죠. 증강현실의 핵심은 외부 세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데서 시작하는데 무인차의 핵심기술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거기 그래픽을 띄우면 증강현실이고 그냥 데이터만 이용하면 무인차 센서가 되는 거죠. 물론 애플 무인차는 아직은 먼 얘기이긴 합니다만, 스스로 원하는 칩을 만드는 능력이 도움이 될 건 분명합니다.
애플만의 길?
애플 커스텀 칩의 괄목한 성장과 대비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침체상태에 있는 PC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경쟁사의 모바일 하드웨어입니다. 엔비디아는 그동안 떠들었던 '콘솔급 그래픽'의 진정한 이정표를 애플에게 뺏겼으며, CPU 쪽에서는 애플과 같은 유연성과 성능을 보여주지 못 하고 있습니다. 퀄컴과 삼성은 스마트폰에 안주하였고 타블렛은 그저 저렴한 대화면 미디어 머신일 뿐이라 애플처럼 불필요하게 강한 프로세서를 넣지 않습니다.
단순히 퀄컴, 삼성이 능력이 없다기보다는 강력한 ARM 프로세서의 활용처를 못 찾는다는 게 더 맞는 말일 겁니다. 물론 퀄컴은 몰라도 적어도 삼성보다는 독자 아키텍쳐 설계력에서는 우위에 있는 건 분명하긴 하지만, 그게 성능이 떨어지는 것의 일부일 수는 있어도 전부는 아닙니다. 퀄컴은 애플처럼 모두 인하우스로 처리하고 있고 여력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문제는 쓸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나마 퀄컴 쪽이 삼성보다 조금 더 적극적인 건 윈도우 타블렛/노트북을 고려한 스냅드래곤 1000의 존재입니다. 아직 공개되진 않았지만 퀄컴에서 처음으로 스마트폰 클래스에서 벗어난 칩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다른 플레이어는 영역이 다소 다르지만 콘솔 게임기 제조사들입니다. 포터블에선 원래 ARM이 지배적이었고, 닌텐도 스위치를 통해 부분적으로 거치형으로 들어왔지만 아직 제대로된 고성능 거치형 하드웨어가 ARM으로 나오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고려사항이 아닌 것도 아닙니다. 애플이 보여주듯 잘 설계된 커스텀 하드웨어는 성능, 전력소모, 칩 사이즈를 모두 잡을 수 있으며 이건 콘솔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단지 여태까지는 ARM이 그정도까지 오지 못 했을 뿐이죠. 2013년에 이번 세대가 출시될 땐 말입니다.
아쉽게도 2020년에도 아이맥을 만들 정도는 되도 차세대 콘솔을 만들 정도엔 도달하지 못 할 겁니다. 혹은 적어도 도박을 감수할 정도는 아닙니다. 결국 차세대는 호환성을 위해 AMD x64 아키텍쳐가 거의 확실하죠. 하지만 그 다음은? 소니나 MS가 계속 ARM을 고려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성능만 충분하면 호환성 대책도 존재하고요. 올인원 데스크탑을 만들 수 있게 된다면, 그 다음엔 콘솔도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경우에도 두 회사가 애플처럼 완전히 스스로 칩 설계를 할 걸로 보진 않습니다. 역시 ARM 라이선스를 가진 AMD 쪽에서 만들게 되겠죠.
소니야 콘솔 밖에 없다고 해도 MS에겐 자사의 여러 플랫폼이 ARM으로 진척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각 공급자가 다른 점은 문제입니다. 윈도우 쪽에서는 퀄컴이 주요 파트너이고, 콘솔 쪽에서는 AMD가 주요 파트너죠. 퀄컴이 갑자기 콘솔급 칩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반대로 AMD 역시 훌륭한 모바일 프로세서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은 아니죠. 그리고 x86이나 x64를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드웨어 파트너와 관계가 중요한 MS로썬 애플처럼 모두 수직계열화 할 수는 없죠. 안드로이드 진영도 지지부진한 성능 향상에도 버티고 있으니 성능이 전부는 아니지만 무작정 벌어지게 놔둘 순 없긴 합니다. 물론 애플식 방법론의 치명적인 약점은 테스트 수준인 지금이면 몰라도 본궤도에 올랐을 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면 지금의 인텔 같은 상황이 되면서 남 탓도 못 하게 된다는 거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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