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와 파랑새 - 야마다 나오코와 재패니메이션 착즙의 정점 by eggry


 '리즈와 파랑새'는 '울려라! 유포니엄' 시리즈의 제2부, 쿠미코 일행 기준으론 2학년에 해당하는 내용 중 절반을 별도 극장판화 한 것입니다. 나머지 절반인 쿠미코 쪽과 전국대회 중심의 얘기는 내년 봄 '맹세의 피날레'라는 제목으로 나올 예정이고, '리즈와 파랑새'에서는 TV판 2기에서 적당히 봉합하고 넘어갔던 노조미와 미조레의 얘기를 3학년 마지막 여름을 보내면서 마무리 짓습니다. 제가 소설 2악장까지는 못 봤기 때문에 그것과 차이까진 얘기 못 하겠고 그런 얘기는 트위터에 몇분들이 열심히 후셋타로 적어놨습니다. 알아서 찾아 보세요<-

 야마다 나오코 감독에 '목소리의 형태' 제작진, 그리고 테마를 볼 때 사실 전 크게 기대하지 않았고 실제 감상도 그랬습니다. 물론 일본여행 갈 때 기회가 있으면 보려고 할 정도이긴 했는데, 그건 '울려라! 유포니엄'의 한 조각으로서지 이 작품 자체에는 기대작 같은 건 아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게 TV판 2기에서 노조미&미조레의 이야기가 저는 대단히 싫었거든요. 광적인 집착, 의존 관계란 부분도 그렇고 전국대회로 가는 상황에서 전체 이야기 흐름에서도 안 좋았습니다. 2기는 사실 전국대회와 아스카에 집중했었어야 했지요.

 어쨌든 거기서 어물쩡 잠시 봉합해놨던 얘기를 원작은 물론 애니에서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다시 꺼냈습니다. 뭐 이미 벌어지고 성립된 관계가 싫은 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 전제 안에서는 그냥저냥 괜찮은 얘기여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적어도 '목소리의 형태'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발상 자체의 거부감을 극복할 수 없었던 쪽은 아니었습니다. 다소 일방적인, 종속적이라고 해도 될 관계(친구 관계는 동등한 경우가 오히려 드물고, 애정이라도 마찬가지지요.)와 재능, 진로를 둘러싼 갈등감 같은 건 청춘 드라마로서도 충분히 평범하고 좋은 소재이죠.

 재미있는 건 원작/TV판과는 약간 달라진 인물관계 설정과 묘사입니다. 사실 제가 노조미&미조레 관계에서 학을 땐 것은 노조미는 그냥 붙임성 좋은 바보고[...] 미조레는 일방적으로 병적인 집착을 하는 거였는데, '리즈와 파랑새' 내에서만 본다면 미조레는 유일한 친구와 애정의 대상인데 그냥 감정적으로 서투른 정도이고, 노조미는 미묘한 호감과 우월/열등감이 뒤섞인 캐릭터가 됐습니다.

 TV판이 거의 미조레의 얘기였다면, 사실 극장판은 노조미의 얘기에 가깝...다고 느낍니다. 결국 실제로 관계 변화를 못 박는 것도 미조레 쪽이 아니라 노조미 쪽의 인식과 결정이기도 합니다. 사실 TV 판의 기억이 아니었다면 훨씬 덜 거부감 느겼을 거라곤 생각은 합니다. 연속으로 보느냐 독립작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인데, 본 걸 지울 수는 없는지라 저의 경우엔 뭐 일단 처음부터 개운할 순 없었습니다.

 TV판을 못 본 이를 위해 간접적으로 관계를 묘사해주는 초반은 그냥 짝사랑과 문어발 정도의 관계로 보였을 겁니다만, 전 원작과 TV판을 재차 떠올린 탓에 뭐 좋은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본작 자체의 테마로 초점이 넘어가는 중반부는 꽤 괜찮았습니다. 동화, 노래와 번갈아 가는 감정 묘사는 사실 아주 매끄럽진 않았고 좀 과하게 늘어지면서 감성놀이 하는 면이 있었지만, 이정도까진 괜찮았습니다. 항마력이 부족하다면 이것도 좀 힘드시겠지만...

 사소한 제스쳐나 늬앙스, 시선의 움직임 같은 섬세함은 확실히 야마다 나오코의 장기입니다. 그 부분에서는 아마 역대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정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운드도 시리즈 다른 작품의 단순히 음악이 괜찮다 정도를 넘어서 표현의 수단으로써 잘 이용되고 있습니다. 정작 합주 자체는 대회도 없고 한번의 인상적인 연습 뿐이기 때문에 OST라도 사지 않는 한은 전체 곡은 들을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자잘한 효과음 같은 것들은 TV판이나 그 편집판인 이전 극장판들에선 볼 수 없었던 디테일을 갖고 있고 표현력에 꽤 기여하고 있습니다. 본편의 완전 신작 극장판은 '맹세의 피날레'인데 여기서도 이런 사운드를 기대해 볼 수 있을런지...?

 중반부가 잔잔하고 느린 템포로 흘러간 것은 좋았던 반면 마무리가 다소 똑부러지지 못 하고 은은하게 정리하는 건 좀 별로였습니다. 갈등 해소는 아무래도 똑 부러지는 게 훨씬 와닿거니와 좋은 쪽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물며 해피엔딩을 추구한다고 한다면 더더욱...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너무 섬세하고 부드럽게 가는데 그게 언제나 좋은 건 아닙니다. 그에 대비되는 파장이나 격정도 필요한 것이죠. 뭐 전제의 문제부터 따지고 든다면 중반부를 높게 사고 싶기 때문에 수작 정도로 생각합니다.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그냥 하나의 작품 안에서 국한시켜 볼 때의 이야기이고, 사실 저는 이 둘의 관계나 묘사 자체가 재패니메이션에서 제가 상당히 꺼려하며 바뀌기를 바라는 부분이기 때문에 작품 자체에 호감을 가지기는 역시나 어려워 보입니다. '목소리의 형태' 만큼은 아닙니다만, 이번 작품도 병적인 관계에 대한 대상화나 페티시즘적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전 그게 금기여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만(실제로 있을 수도 있는 일이며, 그게 악이라거나 교정해야 할 대상 같은 관점 역시 지양해야 할테고요) 그걸 예쁘고 아름답게 치장하기만 하는 것은 혐오하는 것 만큼 좋지 않은 일입니다.

 뭐든지 모에화하고 페티시즘화 한다는 것이 일본 서브컬쳐의 강점일 때도 있지만 요즘은 거기서 문제의식의 부재나 자신의 망상에 몰입하는 동인뇌적인 시선의 섬뜩함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들고 있거든요. 뭐 그걸 죄악시 하고 싶지는 않다는 점에서 그냥 창작 당사자에 대한 아쉬움 정도의 얘기이긴 하지만, 일본 서브컬쳐 전반에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자제심이나 숙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독립작으로써 본다면 그 점에서 조금은 궁리를 했다고 생각하는 건 원작/TV판과 관계를 다르게 묘사한 부분이 되겠죠. TV판 쪽에서 질색한 사람들은 '리즈와 파랑새'에서 변주를 줬다곤 해도 엄연히 그 과거의 연속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거기서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반대로 '리즈와 파랑새'만 본 사람들은 훨씬 덜 부담스럽게 받아 들이지 싶고요. 본 게 다르기 때문에 제 얘기 자체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시청자의 출발점 차이와 작품의 정체성이 뭐냐의 문제도 있고 해서 '리즈와 파랑새'를 비난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야마다 나오코가 계속 이런 페티시즘 노선을 지향하고 있고, 앞으로 딱히 달라질 거 같진 않다고 생각해서 언젠가 선을 넘어버리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목소리의 형태'에서 이미 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원해선지 뭔진 몰라도 이런 소재랑 자꾸 연관되고 있긴 하군요.

 여튼 '리즈와 파랑새'에 대한 제 감상은 좀 복잡합니다. 완성도로써는 수작 정도, 전제는 마음에 들지 않으나 풀어가는 방식은 그럭저럭,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아마 결코 좋아하진 않을- 정도가 되겠네요. 애증 같은 건 아닙니다. 작품의 로우 콘트라스트적인 면모 만큼이나 제 감상도 딱히 애정도 혐오도 없거든요.

 블루레이가 예약 중인데, 솔직히 별로 구매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산다면 그냥 콜렉션 채우기의 의미 정도입니다. 어디까지나 저는 '울려라! 유포니엄'의 본 스토리 쪽의 팬이고, 그쪽 관점에서는 오히려 TV판 2기에서 실패했던 두가지 이야기의 공존을 따로 떼어 놓음으로써 '맹세의 피날레'가 좀 더 정리되고 집중력 있을테니 감사해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ps.동화 파트는 연기도 좀 불만족스럽고, 시퀸스도 좀 더 짧았어야 했지 싶습니다. 사실 90분 짜리 러닝타임에 비해선 이야기 자체가 상당히 짧기 때문에 동화 뿐만 아니라 전체가 좀 쓸데없이 롱 시퀸스화 된 게 많습니다. 그게 더 가라앉게 만드는 점이기도 하겠죠.


스포일러 포함 후기는 다음 글 참조. '리즈와 파랑새' 두번째 얘기, 내용(스포일러 포함) 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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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8/10/09 21:2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ㅇㅇ 2018/10/09 22:10 # 삭제 답글

    동화 부분을 연기자에게 대부분 맡긴 건 '목소리의 형태' 때 있었던 마케팅의 일종이라고 보지만 이번에는 (공간을 분리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많이 보였죠. 악곡에 맞추려고 했었는지 늘어지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정이나 움직임, 장소, 대사에 하나 하나 신경쓴 흔적이 있어서 (주제의 호불호를 제외하고) 더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었네요. 특히 초반 등교 씬은 몇 마디 대사와 움직임, 소리만으로 본편을 보지 않은 사람에게 두 사람의 관계를 적절하게 보여준 것 같아서 인상적이였습니다.
  • eggry 2018/10/11 18:31 #

    연출 쪽으로는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조금 더 짧았으면 좋았겠지만요. 그런 점에서 보면 볼 수록 보인다- 라는 메리트도 있기는 한데, 역시 전 그냥 한번에 왠만한 건 다 눈에 들어오고 나머지는 트리비아 정도인 쪽이 균형맞다 싶네요. 그렇다고 심한 건 아니고 딱 경계선 정도인 듯.
  • eeeeee 2018/10/11 18:26 # 삭제 답글

    모에하지 않으면 안 팔리는 건 기본이고 사방팔방에서 욕을 들어먹기 십상이라... 물론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쪽에서 선도해주면 좋겠지만 일단 모에는 기본속성으로 넣고 다른 영역에서 변주하는 식으로 상업성과 테마의 균형을 맞추는 게 요즈음의 아니메에서 볼 수 있는 마지노선이 아닌가 싶습니다.
  • eggry 2018/10/13 02:42 #

    모에화...랑은 약간 다르다고 보지만 의도와 방법론은 비스무리하기 때문에 일단 편의상 모에화로 친다면, 꼭 이런 식이어야 한다고 생각되지 않는거죠. 왜 아니메 업계에선 전혀 의식하지 못 하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크리피한 형태로 될까? 이런 궁금증이 생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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