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 전) by eggry


고종의 길, 조선저축은행 중역사택

 '고종의 길'이 덕수궁 방문하기로 한 동기긴 했는데 당연히 덕수궁이 볼 거린 훨씬 많지요. 덕수궁 수문장 교대는 몇 번 봤는데 정작 덕수궁 안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덕수궁도 가보기로. '고종의 길'이 사실 덕수궁 밖이란 점 때문에 입장했다가 양해를 구하고 바로 나오는 삽질을 하긴 했지만, 구경 다 하고 덕수궁으로 왔습니다. 정문인 대한문 앞은 조용한 편입니다. 요 근래 대한문 앞엔 쌍용 정리해고 시위와 애국보수 시위대가 둘 다 자리 잡아서 잡음이 많습니다만, 주말이 아니라 그런지 그나마 별 일은 없었습니다.




 대한문을 들어가자 마자 제일 먼저 보이는 건 공사장 울타리입니다. 광명문 이전 공사를 하고 있다는군요. 18년 12월 29일, 그러니까 올해가 끝나기 이틀 전에 완료될 예정입니다.



 울타리에 투명창이 있어서 들여다 볼 순 있지만 아직은 터만 파놓은 수준입니다.



 대한문에서 들어가 우측으로 가면 나오는 저수지. 안내도엔 이름도 뭣도 없습니다. 가이드 투어를 하면 뭐 좀 얘기해 주려나요.



 중화문...이 아니라 중화문 옆에 있는 뭔가 반개방형 장소. 벤치가 설치되어 휴게소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게 원래 이렇게 반쪽짜리 건물로 생겼던 건지 아니면 남은 부분만 활용하다 보니 이런 모양새가 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경복궁이나 창덕궁 같은 좀 더 멀쩡한 궁궐의 경우를 보면 중문에서 시작해 정전을 둘러싸는 벽이 있어야 하는데, 덕수궁은 정전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이 건물에 대한 설명은 안내 팜플렛에 없더군요.



 정전으로 이어지는 관문인 중화문. 중화전으로 이어지는 문이라 중화문이라는, 다른 궁에 비해 이해하기 쉬운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좌우에 담벼락이 없어서 뭔가 휑한 느낌입니다. 덕수궁은 임금용 궁궐이 아니라 대비나 대군 같은 왕족을 위한 별궁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임금을 위해 지어진 경복궁이나, 경복궁 역할을 이어받은 창덕궁과는 달리 훨씬 작기도 하지만 역시나 일제시대에 많이 훼손된 곳이기도 해서 정확한 사료 없이는 뭐가 원래부터고 뭐가 바뀌어서 그런 건지 알기 어렵네요.



 해가 저물어 가는 덕수궁 중화문의 모습.



 중화문에선 당연히 정전인 중화전이 보입니다.



 중화전. 품계석이 세워져 있지만 원래 임금의 격에 맞는 궁이 아니기 때문에 좀 좁습니다. 품계석 만으로 중화문과 중화전 사이가 다 채워질 정도.



 중화전으로 오르는 길의 석조장식들. 상태가 너무 좋아 보이는 게 아마도 복원인 것 같습니다.



 중화전. 덕수궁에 애초부터 있던 건물은 아니며, 조선 말기에 고종이 덕수궁을 궁궐로 쓰면서 세웠습니다. 다른 정전들처럼 2층 건물이었지만 1904년 화재로 소실된 뒤 단층으로 복원됐습니다. 덕분에 좀 위세가 많이 딸립니다. 경내 다른 건물보다 약간 큰 정도이니... 물론 이땐 전통식 정전보단 이미 서양식 건축에 더 관심이 기울어 있었을 거 같긴 합니다.



 조선 임금의 정전 답게 천장엔 쌍용조각이 있습니다. 왕이 가는 곳엔 다 따라가는 일월오봉도도 당연히... 진품은 보수작업 중이라서 복제품을 놔뒀다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석어전. 현재 덕수궁의 유일한 2층 건물로, 중화전과 같은 때 화재로 소실됐다가 재건됐습니다. 원래 건물은 왕실사의 복잡한 내력을 갖고 있는 곳으로 임진왜란 후 경복궁, 창덕궁 등이 모두 소실된 상황에서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가 기거했으며 임종을 맞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후 광해군이 인목왕후를 유폐시키기도 하고, 인조반정으로 축출된 뒤 심문 당한 곳이라고도.



 석어전은 대청이 칠해져 있지 않은 게 특징입니다. 원조 건물도 이랬는지 모르겠지만 뒤 실질적으로 정전의 대용이었던 즉조당에 비헤서는 격이 낮은 거 같긴 합니다.



 석어전 옆쪽, 중화전에서 바로 뒤쪽에는 준명당(좌)와 즉조당(우)이 있습니다. 1층 건물이라 석어전에 비해 임팩트는 적은데 실제로는 더 중요한 건물이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창덕궁이 완전히 재건되어 옮기기 전까지 덕수궁의 정전이나 마찬가지였던 건물로, 광해군, 인조 역시 이곳에서 즉위했다고. 고종도 덕수궁으로 온 뒤 이곳을 이용했지만 정전으로 쓰기엔 너무 초라했던지 중화전을 지었습니다. 별 흥미가 없었던지 건물 전체 사진은 아예 안 찍었군요;



 즉조당과 석어전의 비교되는 처마.



 즉조당 앞의 잔디밭과 석조엔 까치가 많았습니다.



 즉조당 뒤쪽에는 굴뚝이 있습니다. 다른 궁궐들도 뒷마당에 이렇게 굴뚝이 나 있습니다.



 조선식 지붕에 서양식 외관을 두르고 있는 하이브리드(?) 건물 정관헌. 약간 구석진 곳에 있는데 용도는 어진을 보관하는 곳이라고. 덕수궁으로 밀려나면서 가지고 왔나봅니다. 난간도 서양식으로 보이지만 거기 그려진 사물들은 전통예술에서 그려지는 것들입니다.



 소나무와 사슴, 박쥐 등 전통 조각.



 꽃병과 박쥐 등.



 어진은 이제 이곳에 없는데 지금은 좀 특이한 용도로 쓰이고 있습니다. 일종의 휴게소라고 할까요? 6시까지만 되서 제가 갈 땐 이미 늦어서 접었지만 실내화를 신고 올라가서 의자와 테이블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합니다.



 외관과 마찬가지로 인테리어도 서양식이 받아 들여졌습니다.



 덕수궁의 가장 핵심건물, 석조전. 고대 서양 미술양식을 따다 만든 근대건축물로, 대한제국의 선포와 맞물려 근대화의 희망을 그대로 보여주는 건물입니다. 규모는 차원이 다르지만 서구식으로 개혁한다고 서양식 궁궐을 만든 오스만 제국의 돌마바흐체 궁전도 생각나고 그렇습니다.



 고대 그리스 양식이라곤 하나 그건 미적인 부분일 뿐 실제 건축은 근대식입니다. 내부도 그렇고요. 내부 개방은 사전예약제인데 전 그냥 훌쩍 와서 보지도 못 하고... 어차피 시간도 일반 개장시간인 6시 이전에 다 끝이긴 합니다. 여름이라 연장개장 하지만 정관헌이나 이런 곳처럼 별도 시간이 있는 곳은 다 6시에 끝입니다.



 석조전 1지하층은 일반관람 가능하다고 했지만 역시 문은 닫혀 있었습니다. 헛걸음 했어...



 석조전 분수에서 본 중화전과 석조전. 석조전 분수는 원래 거북이였다고 하는데 한일합병 후 미술관으로 개장할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지금 형태로 바뀌었다고.



 해질녘의 중화전. 다른 궁궐에 비하면 벤치도 많은 편이고, 전체적으로 공원 느낌이 나는데 사실 일본제국부터 덕수궁을 공원화 하려 했습니다. 지금 다시 옮기고 있는 광명문도 공원화 계획의 일환으로 공터를 만들려고 치워졌다고 하고. 지금 남아있는 공원적 느낌은 그때의 흔적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시대의 것인진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궁궐 자체가 처음부터 좀 그런 느낌이었을지도 모르겠고요.



 석조전 서관. 혹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조선 왕가 폐위 후 이미 미술관으로 전용되었던 석조전의 확장건물로 건설됐습니다. 이 건물을 건설한 건 이씨 왕가도 아니고 일본제국이었다는 것. 당시 미술관은 "이왕가 미술관"으로 불렸는데, 조선왕조인 이씨 왕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일본제국의 속국이 된 마당에 "이왕가"라는 표현이 어색할 수도 있지만 일본의 군주는 왕보다 위인 황제, 덴노이기 때문에 신하로 왕이 있는 게 이상한 건 아니죠. 실제로 서양 식민지에서도 군주로써는 폐위 되거나 유명무실해졌어도 여전히 왕족으로 불리며 최소한 귀족 대접을 받곤 했습니다. 이왕가 역시 황위에서 폐위되고 감시 당했지만 적어도 물질적으로는 귀족 대접을 받았죠.

 그런데 일본제국이라지만 본국의 다이묘가 변화한 화족은 공작, 백작, 자작 등 서양식 작위를 받았고 '왕'은 없었기에 재미있게도 식민지인 조선의 왕가가 처음으로 제국의 신하인 왕이 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화족에 대응되는 새로운 분류인 왕공족도 만들었습니다. 왕공족에 해당하는 건 이왕가 뿐으로, 만주국은 괴뢰국으로 표면 상 일본제국 휘하가 아니라서 청황가는 해당이 안 됩니다. 물론 이왕가가 화족보다 나은 대접을 받았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지만 말이죠.

 사실 같은 한자라도 다른 뜻을 가진다든가, 국가체제의 차이도 있기에 각 지역을 '쿠니(國)'라고 불렀던 점까지 생각하면 다이묘가 사실 왕에 해당하고 그들을 거느린다고 일본제국이 되었던 거라서 왕 위의 황제라는 개념은 별 의미는 없습니다. 그래도 말장난으로만 본다면 "왕을 신하로 거스린 왕 중의 왕 황제" 라는 정의는 적어도 조선합병 후에나 충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공족이라는 분류가 따로 생긴 점을 포함해 조선은 전쟁 중 점령(중국, 동남아시아)이나 괴뢰정권(만주국 등), 심지어는 영토의 할양(타이완, 지금은 본토와 별개 국가지만 당시엔 홍콩, 마카오 같은 케이스.)이 아니라 단일 주권국 전체를 병합하고 왕족을 신하로 둔 유일한 케이스입니다. 내선일체 같은 정책들이 내세우는 구호와 달리 차별적이고 지배적이었긴 하지만, 적어도 정말 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제법 진심이었던 것이죠. 2차 세계대전 후 세계질서가 조금만 다르게 굴러갔다면 다른 식민지는 다 잃어도 조선 만큼은 일본 영토로 남아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섬뜩한...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연합국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진 못 했어도 죽어라 활동해서 존재가 인식된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죠.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립박물관들과 마찬가지로 사진촬영이 됩니다. 플래시 사용은 금지지만요. 석조전 서관의 지오메트리를 묘사한 크리스탈 블럭 모형.



 석조전 및 서관의 설계와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석조전보단 서관 쪽 자료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아무래도 석조전 쪽은 조선 자료가 많이 유실되었지만 서관은 일본인이 만들면서 자료를 많이 남기고 보존된 것도 있습니다. 석조전 자료 중에선 아래의 블루프린트가 두드러지는데, Imperial Palace, Seoul이라고 타이틀이 박혀 있습니다. 뒤집혀져 있지만요.



 벽에는 현대식 디스플레이로 도면 확대를 띄워놨습니다. 전시관 맨 끝에는 터치스크린으로 주요 도면을 직접 확대 축소하면서 볼 수도 있습니다. 해상도는 꽤 높아서 자잘한 한자들까지도 충분히 읽을 수 있더군요.



 석조전 서관 관련 자료들. 대부분 일본의 것입니다. 이왕가미술관 가이드. 30년대에 경성의 관광지화와 왕궁 공원화를 했다고 하는군요.



 당시의 석조전 분수대 사진. 사용 중인 궁궐이 아니라 관광객들이 있는 모습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경성 관광지화의 흔적인 안내책자들. 30년대에 일본인이나 서양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경성은 제국 내에서 꽤 중요한 도시로(주로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자리 잡으면서 노면전차나 버스는 물론, 지하철 건설 등의 계획도 추진되었습니다. 그건 분명히 물질적 발전이고 그런 제국 하의 번영적 모습은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으로 여겨지지만, 식민지배의 그림자는 절대 지울 수 없겠죠. 다이쇼, 빅토리아, 벨 에포크 등에 대한 낭만주의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석조전 서관의 8대 미 중 하나라고 하는 나선계단. 8개 다 찾진 못 했습니다. 3개 정도 봤나? 나머진 사진도 없습니다.



 이왕가 미술관 개관 당시의 사진이 프로젝션되고 있었습니다. 건물 자체는 지금과 별반 다르진 않지만 인테리어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중앙홀의 불상과 종도 8대 미 중 하나였다고 하는데... 뭐 지금은 없습니다.



 지금 덕수궁관에서 하고 있는 전시 명은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 전'입니다. 이왕가 미술관 개관 80주년을 기념하여, 당시 식민지배적 이유로 배제되었던 조선인들의 근대미술을 전시한다는 것이 전시의 컨셉입니다. 이왕가 미술관은 근대 이전의 조선(왕조가 아니라 민족으로써) 미술과 일본 근대 미술을 대조시켜 전시하여 조선의 후진성을 강조하려는 시도를 했는데, 80년이 지나 일본 근대미술에 상응하는 조선 근대미술이 드디어 걸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조선? 일본제국? 한국? 뭐라고 국적을 칭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시대지만 어쨌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한국인 미술입니다. 이런 골치아픔 때문에 보통은 주어 빼고 그냥 '근대 미술'이라고만 적어놓는 모양입니다. 나라는 망했지만 쇄국이 끝나고 신문물이 쏟아지며 교류가 생기면서 예술적으로는 대단한 변혁기이기도 했을 겁니다. 양반 자재라고 해도 중국 유학조차도 쉬운 게 아니던 시절에서 평민이 일본이나 서양에 유학을 가고-전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온갖 세계의 예술과 새로운 도구, 소재들을 접할 수 있었던 시절. 그럼에도 결국 2등 시민, 혹은 난민과도 같은 신세였던 처지.



 '할아버지와 손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입니다. 유화로 떡지 듯이 만들었는데, 가까이서 보면 반복적인 텍스쳐 패턴에 의해 윤곽을 알기 어렵지만 떨어져서 보면 모습이 보이게 됩니다. 다가갔다 떨어졌다 한참 봤습니다.



 20세기 초의 병풍화. 조선식에서 완전히 일탈해 서양화로 간 것은 아니지만, 소재, 도구, 기교의 발달과 더불어 일본이나 중국 화풍의 영향도 있는 듯 싶습니다. 역시 단순히 예술품의 정교함 수준 자체는 시대가 나중으로 갈 수록 뛰어날 수 밖에 없긴 합니다.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여러 관 중 하나이지만 한때는 본원이기도 했던 덕수궁관이라 근현대미술 전시나 보존에 관련된 자료들도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처음엔 경복궁 부지 내의 조선총독부 건물에서 개관했지만, 실질적으로 자체 컬렉션과 건물을 보유하게 된 건 석조전으로 왔을 때입니다. 석조전 서관이 이왕가 미술관으로 쓰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건물의 용도적 측면에서도 이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컬러 슬라이드 필름에 보존된 미술품들의 모습. 지금은 다 초고화소 디지털 카메라로 아카이브 되고 있겠지만 당시엔 이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좀 삐뚤게 찍힌 사진들도 있군요 ㅎㅎ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있었던 전시들의 도록 모음. 공간 문제로 저는 박물관, 미술관에 가도 도록은 사모으지 않고 있습니다. 좀 뼈저리긴 하지만 감당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습니다.



 전통 조선풍, 근대풍, 서양풍 등 다양한 화풍들.



 말 상.



 산수화.



 점점 나중 시대로 가서 완전히 현대적인 그림들로 마무리 됩니다. 조선 말기부터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까지 오게 되는 것.



 루트를 따라가다 보면 사방이 전시품 프로젝션이 날아다니는 방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서 계속 전진하면 미술관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퇴장하게 되는 동선 배치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석조전 본관과 서관을 연결하는 통로로 나와 석조전 계단으로 다시 땅으로 내려갔습니다.



 해가 저물어서 하늘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석조전 서관... 일본제국의 우월성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지어지고 일본 건축가가 설계했지만 석조전과 조화를 해치지 않고 아름답게 만들어진 건물입니다.



 밤의 중화전.



 조명이 들어온 준명당. 낮 사진은 없고 이게 유일한 건물 전체 사진입니다. 심지어 더 중요한 즉조당은 아예 없음; 워낙 수수해 보였나봅니다. 준명당은 즉조당의 부속건물로 고종이 덕수궁으로 온 뒤 응접용으로 증설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덜 꾸며놨지만 2층이란 구조 때문인지 아무리 봐도 즉조당보단 석어전이 더 땡깁니다. 혹은 새 단청으로 칠해지지 않고 오래된 나무가 그대로 보여서인지도요. 일본 사적지들도 그렇지만 전 칠 안 된 낡은 나무를 더 좋아합니다.



 덕수궁 관람은 여기까지. '고종의 길' 보려다가 덕수궁, 거기에 안에 미술관 있다길래 미술관까지 보게 됐는데 만족스러운 도미노였습니다. 덕수궁은 아무래도 원래 작은 궁궐이고 아직 복원이 한창인 상황이라 3대 궁궐 만큼 볼거린 없었습니다. 대신 근대사가 얽힌 미묘한 감상이나 미술관은 다른 궁궐엔 없는 맛이었습니다. 석조전 가이드 투어를 위해 다시 올지 어떨진 모르겠습니다. 미술관에 새 전시가 하면 그때 맞춰서 오지 싶네요.



덧글

  • 나이브스 2018/08/11 03:54 # 답글

    야간 덕수궁이라 좋은 풍경이네요.
  • 이요 2018/09/04 15:32 # 답글

    덕수궁을 해진 뒤에도 들어갈 수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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