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mm가 어떻게 '표준'이 되었는가 by eggry


How the 50-mm Lens Became ‘Normal’(The Atlantic)

 종종 50mm는 인간의 시야에 가장 근접한 광학계라고 일컬어지지만, 이는 상대적인 것이다.

 렌즈는 둥글게 생긴 유리의 형태에서 17세기에 렌틸 콩의 라틴어 명칭, Lens Culinaris에서 따다 붙여졌다. 프랑스 어로 렌즈를 뜻하는 다른 단어는 Objectif인데, 이는 진실과 공평함을 내포하고 있다. 'Objectif'는 17세기부터 망원경이나 현미경 같은 과학 도구의 광학 유리를 가리키는데 쓰이긴 했지만, 사진 광학을 지칭하는 말로 초기에 쓰인 것은 쥘 베른의 1874년작 "신비의 섬"에서였다. 남태평양에 표류하게 된 미국인들이 지평선 너머의 사진을 찍는 장면이 나온다. 조난자 중 한명인 허버트는 사진판에서 작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엔 그게 렌즈의 결함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사진에 찍힌 것이 수평선 너머의 배라는 것을 알게 된다. 불행히도 허버트와 다른 조난자들은 그 배가 자신들을 구하러 오는 게 아니라 해적선이라는 걸 알게 된다. 렌즈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지만, 닿을 수 없는 목표라는 것 또한 알려준다.

 50mm라는 렌즈는 종종 Objectif 중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취급되곤 한다. 인간의 시야와 가장 근접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렌즈 제조사 자이스는 플라나 50mm 렌즈를 "인간의 눈과 동일하다"고 표기하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50mm 렌즈로 평범한 매일의 경험을 묘사하였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일본의 일상을 주로 담은 오즈 야스히로는 거의 50mm만 사용하였다. 프랑스 휴머니스트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도 그러했다. 50mm의 인기의 비결은 인간들의 공통된 시각과 이해를 약속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표준 시야"라는 개념과 50mm 렌즈가 그걸 재현해낸다는 것은 그냥 정해진 게 아니다. 50mm가 인간의 시야와 가장 비슷하다는 것은 사실 렌즈와 눈 사이의 광학적 유사성 보다는 초기 렌즈 생산 역사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세기, 쥘 베른이 한창 소설을 쓰고 있던 시절 인식에 대한 급증한 과학적 연구는 결과적이로 시력에 대한 의심을 낳았다. 색상, 움직임, 시야, 빛에 대한 조사는 인식과 현실 사이의 안정적인 관계에 도전하였다. 표현의 지배적 양식이던 르네상스 적 관점은 더이상 시각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일치되지 않았다. 인상파, 입체파, 자연주의 예술가의 등장은 눈이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것에 대한 불신이 반영된 것이었다. 이런 불안감 중 상당부분은 과학적 실험에서의 객관성에 대한 증가하는 요구 때문에 촉발되었다. 그 전까지 관찰의 습관, 기법, 실천이란 전문적 훈련과 매일의 반복 단련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었다. 사진 기록은 등장한 순간부터 객관성의 강력한 수단이었지만, 객관적 인식이란 것은 측정에 대한 신뢰에 기반하는 것이었다.

 50mm와 인간의 눈의 유사성에 대한 논쟁의 대부분은 과학계의 정량 측정에서 기여한 것이다. 한편으로 50mm 렌즈는 질감, 깊이, 그리고 원근법에서 맨눈과 거의 같은 면을 띄었다. 다른 한편 50mm는 인간의 시야각과 대충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렌즈는 원근법이나 시야각으로 기준되는 것이 아니라, 초점거리라는 것으로 분류된다. 초점거리란 렌즈의 중심과 상이 맺히는 표면 사이의 거리를 의미한다.

 사진과 렌즈는 엄밀함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언제나 그랬던 건 아니다. 베른의 캐릭터 허버트가 사진판의 점에 대해서 의아해 했던 것처럼, 19세기 물리학자들은 결함이 있는 렌즈와 제대로 된 렌즈를 만들어내는 차이점을 이해하기 힘들어 했다. 초기 렌즈 제작은 장인 수공예였다. 광학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만들어졌으며, 품질은 광학기술자 개개인의 직감에 의존하였다. 다른 엄밀한 측정법보다 시야 그 자체와 비교해보는 것은 렌즈의 생산과 용도라는 면과 맞아 떨어져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사진 렌즈의 대량생산과 표준화는 주로 독일 광학기기 제작자 칼 자이스가 선도하였으며, 그의 이름을 딴 회사는 오늘날에도 렌즈를 만들고 있다. 자이스는 1846년에 작은 현미경 회사로 시작하였다. 현미경의 근간이 되는 물리학이 아직 이론에만 남아있을 뿐 제대로 이용되지 않는다는데 좌절한 자이스는 과학적 이론에 근거하여 렌즈 생산을 분리되고 반복 가능한 작업으로 쪼개어서 현미경을 만들어냈다. 이 방법 덕분에 자이스는 정밀한 렌즈를 일괸되게 생산할 수 있는 첫 회사가 되었다. 현미경을 위해 만들어낸 새로운 렌즈들은 또한 망원경, 영사기, 쌍안경, 그리고 사진 렌즈로 사업을 확장하게 하였다.

 비록 물리학자들이 렌즈가 세상을 묘사하는 원리에 대한 더 명확한 이해를 위해 이론들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프로와 대중의 상상력 속에 렌즈와 시야의 신뢰할 만한 측정에 대한 강한 연결고리를 주입한 것은 자이스의 광고였다. 자이스는 자신들의 과학용 렌즈들을 박람회, 무역전시회, 그리고 카탈로그에 홍보하였다. 자이스의 광고는 종종 제조과정에서의 과학 원리를 강조하였으며, 유리 소재, 정재, 그리고 테스트의 중요성을 세심히 설명하였다. 자이스의 기계들이 영국, 프랑스의 경쟁자들이 만든 것보다 꼭 더 좋았던 건 아니지만, 자이스의 광고는 렌즈 품질의 표준화라는 신념을 만들어 냈다.

 표준화는 헐리우드 영화 제작에도 필수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에디슨 키네토그래프의 개발자 W.K.L. 딕슨은 1889년 35mm 필름을 영화의 표준 표맷을 확립시켰다. 헐리우드가 1910년 스튜디오 시스템을 만들어 가면서, 표준화는 영화 제작에 있어 다양한 기술진들을 조화키는데 점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사진 렌즈는 처음엔 렌즈가 커버할 수 있는 사진판의 크기와 렌즈의 넓이로 측정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점거리가 점점 더 많이 이용되었다. 렌즈의 넓이에서 초점거리로의 전환은 헐리우드가 요구하던 정확성과 맞아 떨어진 것이다. 필름과 렌즈의 일관된 거리 유지가 렌즈의 넓이보다 더 중요했다. 애초에 렌즈의 넓이는 같은 초점거리에서도 천차만별이기도 했다. 저마다 다른 렌즈에서 실제로 중요한 건 영화 산업의 핵심, 셀룰로이드 필름과의 거리였다.

 35mm 영화 제작에서 시네마 카메라에 쓰이던 35mm 셀룰로이드 프레임을 대각선으로 채우기 위해선 25mm가 적당한 초점거리였다. 일부 스틸 사진가들이 이 영화 표준을 받아들였다. 1911년 자이스를 떠나 광학회사 라이츠로 이직한 오스카르 바르낙은 영화 필름과 렌즈를 실험하였다. 바르낙은 당시의 크고 무거운 카메라들보다 작고 가벼워 들고 다니기 쉬운 "난쟁이 카메라"를 만들고 싶어했다. 1912년에서 1913년 사이, 바르낙은 이 장치를 프로토타입 35mm 사진 카메라, "우르 라이카"로 발전시켰다. 결국 우르 라이카는 라이카 I 35mm 카메라가 되어 1925년 출시되었으며, 카르티에-브레송과 같은 프로나 아마추어들 사이에 재빠르게 퍼졌다.

 라이카 카메라는 35mm 필름을 썼지만, 필름과 다른 방향으로 릴 되었기 때문에 한장에 거의 2배의 공간이 노출되었다. 영화에선 25mm가 표준이던 것이 사진에서는 50mm가 표준이 되었는데, 50mm가 35mm 네거티브 필름의 프레임을 온전히, 선명하게 채울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렌즈였기 때문이다. 라이카 I은 고정식 50mm 렌즈로 출시되었으며, 1932년 나온 라이카 II는 교환식 렌즈를 도입했지만 내장 뷰파인더는 50mm 렌즈를 고려해 만들어졌다. 1960년대와 70년대엔 SLR 카메라에서 줌 렌즈가 보편화 되었지만, 펜탁스 K1000이나 캐논 AE-1 같은 렌즈들은 여전히 50mm를 번들로 주거나 주력으로 광고하였다. 50mm는 아마추어와 초심자들로 하여금 대단한 기술적 지식 없이 가장 빈번하게 이용되는 일상 사진을 선명히 담을 수 있게 해주었다.

 무엇이 "표준" 렌즈인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어갔다. 오늘날, 35mm 필름 대신 디지털 센서로 주로 사진을 찍게 되면서 50mm와 표준 시야의 관계도 이상적인 물리적 연관성보다는 좀 더 관념적인 것이 되었다. 디지털 카메라의 센서는 대체로 필름 카메라와 다른 경우가 많으므로, 초점거리도 다르게 계산되어야 한다. 디지털 크롭 센서의 사이즈 때문에 DSLR에서 50mm와 같은 관점을 얻기 위한 렌즈는 35mm인 경우가 많다. 더 큰 6x6cm 네거티브를 쓰는 롤라이플렉스나 핫셀블라드 같은 중형 카메라들은 80mm가 "표준" 시야각을 제공한다. 다른 극단적인 예로, 아이폰 X의 카메라는 4mm 렌즈이다.(아이폰 사진의 EXIF 데이터를 보면 35mm 필름 기준으로 환산할 때 28mm에 해당하는 초점거리이다). 50mm 렌즈는 35mm 필름에서 왜곡을 최소화하고 해상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최적화된 설계였지만, 현대 센서는 더이상 렌즈와 센서의 특정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는다.

 50mm가 인간의 시야와 가장 유사하다는 기술적 근거는 그와 짝을 맞출 셀룰로이드 필름 혹은 디지털 센서의 크기가 바뀌면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50mm의 신화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다. 부분적으론 렌즈 제조의 역사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관찰의 기술을 둘러싼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불안감, 상상 때문이기도 하다. 표준적인 관점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 그리고 그 기구가 표준 시각을 재현해준다는 믿음은 안도되는 것이다.

 오늘날 50mm 렌즈의 존재는 객관성과 상대성 사이에 발버둥치는 인간을 대변하고 있다. 은유적인 표현으로 사람들은 비판적 렌즈, 문화적 렌즈, 정치적 렌즈, 역사적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본다. 물건을 줌 인 하고 아웃 하고, 프레임하고, 렌즈를 바꾸고, 초점을 맞춘다. 이런 은유는 사람들이 여러 관점에 적응하여 세상을 보고 생각하는지를 강조해준다.

 50mm는 어쩌면 개개인이 다른 이의 시야를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불안감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올바른 조건 하에서 50mm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 세상을 보는 것과 비슷한 관점을 그려내준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여전히 상대적인 것이다. 기계적으로, 표준이란 것은 렌즈가 장착되는 장치에 달렸다. 은유적으로는 사람들의 일상을 형성하는 사회적, 감정적, 경제적 조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인식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게 옳은지도 모르겠다. 그보다는 우리의 서로 다른 렌즈가 기계, 사람, 그리고 인식에 대해 더 나은 이해로 이끌어 줄 것이다.



덧글

  • Pt 2018/05/26 02:22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읍니다. 그런데, 포서드 50마는 표준렌즈입니까..?
  • eggry 2018/05/26 02:23 #

    인물렌즈입니다
  • eggry 2018/05/26 02:26 #

    연락처 날려 먹은 듯. 알려주시오.
  • dhunter 2018/05/27 14:12 # 삭제 답글

    예전부터 왜 50이 표준인가. 가장 싸고 가볍게 만들어지는걸 보면 제조 쪽에 비밀이 있지 않나 막연히 추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글루스 알리미 2018/07/09 08:35 # 답글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의 소중한 포스팅이 7월 7일부터 줌(http://zum.com) 메인의 [허브줌 테크] 영역에 게재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게재된 회원님의 포스팅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Adsense Wide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4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메모장

Adsense Squ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