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오브워(2018) -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는 성장의 첫걸음 by eggry


 넘쳐나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폭력으로 유명한 갓오브워 시리즈가 정말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메이저 넘버링 기준으론 "갓오브워3"가 2010년이니 무려 8년이 되었죠. 물론 포터블용이라든가 있었고 해서 실제론 그것보다 짧지만 제작사에서 ㅂ락힌 제작기간도 무려 5년입니다. 그리고 5년은 기다릴 만한 값어치는 있었습니다.

 "갓오브워(2018)"(이하 갓오브워)의 변화는 대단히 커보입니다. 고정 3인칭 시점에서 자유 3인칭으로 바뀌었고, 도끼는 사격무기 마냥 던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플레이 해본다면, 갓오브워의 본질적인 면은 생각 외로 그대로 많이 남아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라진 것 같던 혼돈의 블레이드는 나중에 다시 돌아오며, 익숙한 쑤그린 전투자세를 만나게 됩니다. 시점이 바뀐데다 적 수가 줄어들고 다크소울 라이트가 된 것 같은 전투도, 막상 해보면 근본이 달라진 건 아니란 걸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회피와 방어는 여전히 비슷하며, 단지 좀 더 다양한 파생액션이 가능해졌을 따름입니다. 리바이어선(도끼)와 혼돈의 블레이드, 그리고 맨주먹의 커맨드 액션도 페이스버튼이 범퍼와 트리거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작에서도 무기는 혼돈의 블레이드 만이 아니기도 했죠. 전작들에 비해 적은 수의 적을 조금 더 오랜 시간을 들여서 싸우긴 하지만, "갓오브워"의 액션의 본질은 놀라울 정도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크게 바뀌었다고 느낀 부분은 맨주먹이라는 제0의 무기와 점프의 부재 정도였습니다.

 물론 "갓오브워"의 전투는 전작들의 속도전 중심보다는 신중함 위주로 더 바뀐 건 사실입니다. 난이도를 올리면 더욱 그렇습니다. 리바이어던 도끼를 던지는 행위는 전작에는 없던 정밀조준 액션이기도 합니다. 또 적재적시에 아트레우스를 잘 이용해야 하는 전술적 면모도 있습니다. 전투는 화려한 그래픽과 연출에 비해선 시원함보다는 신중함 위주이기는 하지만, 점차 늘어나는 무기와 스킬을 적의 상성과 취향에 맞춰서 이용하는 재미는 확실합니다.

 전투가 갓오브워의 본질 그대로인 만큼, 캠페인 구성도 크게 바뀌진 않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똥개훈련 진행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오히려 전작들보다 더 심하게 "이 산이 아닌가벼" "사실은 XX가 필요하다네" 같은 식으로 빙빙 돌아갑니다. 전작에서는 그나마 거의 일직선이었다면 이번엔 세미오픈월드라 할 구성이라서 이동의 피로함까지 더해져서 캠페인 구성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실제로 게임은 스토리를 포함해서 캠페인에서 성취하는 일들 조차도 거의 다른 게임의 프롤로그라고 해도 될 정도로 진전이 없습니다. 멀리 돌아갈 뿐이죠.

 레벨 디자인은 이번 작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부분일 겁니다. 고전적인 일직선 구성이었던 전작에 비해 이번에는 좀 더 넓고 빈번하게 오가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오픈월드라고 하기에는 미묘하게 제한이 심하고, 가장 비슷한 예를 들자면 아마 "툼레이더"(리부트) 시리즈가 되지 싶네요. 굵직한 지역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 말이죠. 수집이라든가 숨겨진 요소 같은 것들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다만 툼레이더에 비해 둔한 움직임과 이동의 제약 때문에 이런 구성은 결코 편하지 않습니다. 차원의 문을 이용한 순간이동도 각 문 사이의 제한적인 이동만 가능해서 대부분의 포인트로 이동 가능한 일반 오픈월드 게임과는 다릅니다. 사실 이런 이동의 부자연스러움은 퍼즐 구성의 일부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긴 한데, 편하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엔드게임 공략은 나중에 울화통 터지지 않기 위해선 공략을 보고 한번에 확실하게 해치워야 고통스럽지 않을 겁니다. 저는 캠페인이 지루하고 지친다는 점과 이런 레벨 디자인과 컨텐츠 구성 때문에 엔드게임 컨텐츠는 아예 시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노멀로 엔딩 보고 끝입니다.

 레벨 디자인과 더불어 큰 변화가 체감되는 건 성장 계열입니다. 사실 스킬 언락은 전작에도 있긴 했습니다. 이번작에는 RPG를 연상시키는 장비 구입과 강화가 더해져서 상당히 복잡해졌습니다. 사실 이 장비와 스탯 시스템은 개인적으로 옳은 방향인지 좀 햇갈립니다. 스탯 수치들은 막상 실감하기 쉽지 않습니다. 물론 적에게도 레벨이 있기 때문에 레벨에 안 맞는 현저하게 강한 적을 만남으로써 더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건 실감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없습니다. 결국 장비와 레벨 시스템은 성장 요소라기 보다는 공략 가능한 컨텐츠의 단계를 풀어준다는 정도의 의미입니다.

 이 장비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부분은 갓오브워의 본질과는 반대되는 상당히 이질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 갓오브워의 성장요소는 새로운 스킬과 체력, 마력의 향상 정도로 국한되었습니다. 그 외의 것은 플레이어가 더 잘 해냄으로써 커버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갓오브워"에서는 장비 요소가 추가됨으로써 수집 노가다라는 개념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전 이게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은 안 듭니다. 앞서 말했듯 순전히 접근 가능한 지역과 컨텐츠를 제한하기 위한 역할과 궁극의 장비 노가다란 점 외에는 의미가 없거든요. 속편에선 사라졌으면 하는 요소이지만...상업적 성공 때문에 그럴 거 같진 않습니다.

 게임 그 자체는 그렇다 치고, 내러티브 면에서는 그렇게까지 인상적이진 않았습니다. 처음 공개됐을 땐 우수에 젖은 크레이토스와 아들과의 관계 등 때문에 "라스트 오브 어스"화 되는 건가 했는데 사실 별로 라오어 스럽진 않습니다. 많은 문제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상당히 일방적이고 설명적이라는 점입니다. 아트레우스는 중간의 짧은 반항기를 빼고는 크레이토스에게 매우 순종적입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크레이토스가 혼자서 속앓이 합니다. 크레이토스는 아트레우스를 신경써서 과거를 숨기고 얘기하길 꺼리지만, 아트레우스는 어떨까요? 아트레우스의 관점은 상당히 평면적입니다. 신이란 걸 알게 되서 우쭐거리는 걸 뺀다면요.

 결국 크레이토스의 부자문제는 크레이토스의 일방적인 고백으로 적당히 일단락 됩니다. 아트레우스는 별다른 갈등도 뭣도 겪지 않습니다. 물론 이 게임은 크레이토스가 주인공인 게임이긴 하지만, 굳이 부자 스토리를 만든데 비해선 너무 싱겁습니다. 더 나아가자면 크레이토스가 갓오브워3 까지는 그냥 복수귀였던 주제에 왜 갑자기 이렇게 후회막심하게 되었는가- 인데 이건 게임에선 전혀 설명이 안 됩니다. 코믹스라든가 뭔가 있는 거 같지만 밖으로 빼낸 건 좋은 얘기는 못 하겠습니다. 물론 크레이토스는 가족을 끔찍히 아끼던 성격이었긴 합니다만, 새출발에 대한 얘기는 좀 더 필요했습니다.

 이렇듯 크레이토스와 아트레우스의 이야기도 상당히 얄팍하지만, 세계관을 둘러싼 이야기 쪽은 캠페인과 마찬가지로 진전은 매우 적습니다. 사실 완전히 바뀐 무대에서의 새출발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비밀 밝히기와 세계관 파악하기에 들이는 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사별한 가족의 재를 유언에 따라 뿌리러 간다는 점에서 "파크라이 4"가 생각나는데, 실제로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구성입니다. 그저 목적지에 도달하려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빙빙 돌아가고 휘말릴 뿐인 거죠. "파크라이 4"가 "갓오브워"보다 나은 게 있다면, 돌아가지 않고 매우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루트가 있다는 거라고 하겠습니다. 어디까지나 농담이지만 그만큼 "갓오브워"의 돌아가는 구성과 알맹이 없음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솔직히 세간에서의 호들갑에 비하면 '갓겜' 같은 생각은 전혀 안 듭니다. 그냥 툼레이더 리부트 했을 때 정도의 신선함과 만족도였습니다.(참고로 전 툼레이더 리부트가 언차티드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분명히 높게 평가할 수 있는 건 산타모니카가 갓오브워를 요즘에 걸맞게 재창조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고 그 성과는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갓오브워 3"는 출시 당시에도 이미 낡은 게임이었습니다. PS3 그래픽을 가진 PS2 게임이었죠. 내용도 대부분 무의미한 복수극, 학살 뿐이었습니다. 마지막에 크레이토스의 인간적 면모를 포함시키긴 했지만요. 낙후된 시스템을 현대적으로 바꾸면서도 갓오브워의 본질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는 건 훌륭한 업적입니다. 캠페인과 스토리는 속 빈 강정이지만, 재발명은 끝냈으니 이제는 내용을 채워넣는데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겠죠. 다음작은 5년은 걸리지 않겠죠. 다른 부분들도 성장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ps.기술으로 매우 흥미로운 게임이기도 합니다. 현존 최고의 체커보드 렌더링 4K라고 하는데, 확실히 컷씬이나 정적인 장면에서의 이미지 퀄리티는 네이티브 4K에 버금갈 정도입니다. 계단현상도 거의 완벽히 잡았고요. 게다가 모든 컷씬이 실시간입니다. 다만 움직일 때는 분명히 한계가 보입니다. 그래도 PS4 고유의 ID 버퍼를 잘 이용한 덕인지 동적해상도는 떨어져도 고스팅은 매우 잘 억제되어 있습니다. 다만 퍼포먼스 모드는 사실상 45프레임 모드라고 봐야해서 별로 메리트가 없었습니다. 더 부드럽긴 하지만 일관성이 없어서요. 저는 화질모드로 했습니다. HDR 효과는 약간 기대에 못 미칩니다. 미술적으론 아주 대단해 보일 때도 있다가 그냥 기름칠만 해놓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가 좀 오락가락 합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볼 때 PS4 프로의 성능을 생각하면 알파효과 해상도가 낮은 것 외에는 매우 훌륭합니다.



덧글

  • 로리 2018/05/14 19:39 # 답글

    ID 버퍼의 퀄리티는 아직 실제 본 일이 없어서 정말 궁금하긴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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