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퍼킨이 복각한다던 듀크 컨트롤러, 배송대행지로 구입한 게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듀크는 오리지널 엑스박스용의 초기 컨트롤러로, 한국이나 일본 지역에 출시될 때는 S 컨트롤러로 바뀌었던데다 북미도 결국 교체되어서 그렇게 흔하진 않았습니다. 전 운 좋게 구엑박을 살 때 듀크 컨트롤러가 끼워진 매물을 산 덕분에 써볼 수 있었죠. 듀크와 S 컨트롤러의 호오는 좀 엎치락 뒤치락 했습니다. 스틱이나 진동은 S가 더 좋았지만 다른 부분들은 듀크가 더 맘에 든다든가 하는 식이었죠. 360 컨트롤러가 나오면서 양쪽의 좋은 점을 한군데 모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엑박원 컨트롤러에선 더 나아졌습니다. 그리고 엘리트 컨트롤러도 나왔죠.
사실 오늘날 듀크 컨트롤러는 엑박원, 윈도우 호환이라고 하더라도 실용성은 별로 없습니다. 그 생김새는 좋아한다 하더라도 지난 16년 동안 많은 개선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스틱의 감도나 저항감 같은 부분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발전했죠. 또 구엑박의 페이스 버튼들은 그렇게 평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연타에 적합하지 않은 형태와 입력감이었죠. 복각판은 그런 부분들도 대부분 그대로 재현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적으로 고퀄리티 패드는 절대 아닙니다. 게다가 무선도 아니고... 무선 아닌 건 좀 뼈저리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그저 동양인 손에 안 맞게 크다고만 하던 듀크지만 저에게는 그래도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헤일로를 처음 플레이한 게 이 컨트롤러였고, 또 크기가 큰데 비해선 그립감도 좋은 편이었습니다. 사실 S 컨트롤러의 그립은 크기는 작아서 손에는 잘 들어와도 파지는 좀 애매했습니다. 360 쯤 가야 크기도 그립감도 둘 다 잡았죠. 그래서 전 구엑박 게임은 거의 다 듀크로 했습니다. 버튼 배치도 듀크가 S보다 더 나았고요. 다만 진동은 아무래도 작은 S가 더 나았죠.
어쨌든 이 물건은 실용성을 생각하고 산 건 아닙니다. 추억의 박제라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겠죠. 최신 사양으로 바뀌어서 일단은 쓸 수는 있습니다마는... 무한정 생산되진 않을 예정이고 가격도 69달러로 비싼 편입니다. 게다가 미국 외에는 판매하지 않아서 배대지 쓰느라 더 비싸졌죠. 그래도 추억을 소장하는 가격으론 나쁘지 않습니다.

박스 뒷면. 박스 퀄은 그렇게 좋진 않습니다. 배송 충격으로 찌그러진 자국이...;;

박스를 열면 바로 컨트롤러가 보입니다. 주요 구엑박 및 현역 엑스박스 인사들에의 스페셜 땡스 카드와 퀵 가이드가 있습니다. 뭐 케이블 꽂아서 엑박이나 PC에 꽂는 게 끝이긴 합니다. 스페셜 땡스에는 전에 번역한 바 있는 듀크 기사에 언급된 이름들이 다수 나옵니다.(듀크: 그렇게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엑스박스 컨트롤러, 그리고 복각) 그리고 현역 보스인 필 스펜서도.

보호 필름도 벗겨내고 추억의 그 자태를 다시 한번... 예나 지금이나 우아하거나 예쁘진 않습니다만 매력이 있습니다. 엄지용 홀 크기도 다른 좌우 스틱,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인 페이스 버튼, 물결모양의 십자키(이상하게도 엑박의 십자키 입력 정확도는 엑박원이 나오기 전까지 듀크가 제일 좋았습니다;;), 그리고 블랙/화이트 버튼. 스타트, 메뉴 버튼은 엑박원 모양으로 프린팅이 바뀌었습니다. 이건 엑박원 패드니까요.

아랫면. 프린팅이 MS가 아니라 하이퍼킨인 거 빼고 특이한 건 없습니다.

가장 크게 변화한 전면부. 확장슬롯이 사라지고, 케이블은 마이크로 USB 분리형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오리지널에 없던 범퍼 버튼을 추가해야 했기에 양 옆에 달기는 했는데...좀 많이 곤란한 위치라고 해야겠네요.

기기에 연결하고 기동한 모습. 케이블은 양키 아니랄까봐 2.7미터나 됩니다. 꺼져있을 땐 가운데 엑박 로고가 없습니다. 디스플레이로 구현되는 거라서 말이죠. 이 거대한 원형 역시 오리지널과 달리 홈버튼으로 작동합니다. 홈버튼을 누를 때마다 구엑박의 방사능 물씬 풍기는 부팅 애니메이션이 재생됩니다. 사실 이거에 뽕이 차서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엑스박스 기동! 기동할 때만이 아니라 그냥 누를 때마다 나오기 때문에 메뉴 이용할 때도 나옵니다. 보고 싶으면 언제든 누르면 됩니다.
실사용 테스트로는 기어즈 오브 워3를 했는데, 엑박원 게임이 아니라 360 게임을 한 이유는 그나마 조금 더 옛날 게 더 맞지 않겠나 싶어서... 뭐 결론은 짐작한 대로 별로입니다. 사실 기어워는 범퍼로 재장전하기 때문에 범퍼 버튼이 엄청나게 중요한 게임인데 이 위치로는 도저히 원활하지가 않네요. 대책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블랙/화이트 버튼이 범퍼와 매칭되기 때문에 이걸로 재장전해도 되긴 합니다. 계속 이 패드로 할 맘으로 적응한다면 말이죠. 구엑박 게임이라면야 이상한 위치의 범퍼를 쓸 필요가 없으니 플레이 감각이 오리지널에 매우 근접하지 싶습니다. 구엑박 겜도 하위호환이 좀 되고 있는데 딱히 다시 하고픈 건 없는 게 문제지만요.
듀크를 잡아보고 가장 와닿았던 건 지난 16년 간의 발전이었습니다. 듀크는 당시에는 크기 빼곤 훌륭한 컨트롤러였지만, 오늘날 컨트롤러에 비하면 세월은 어쩔 수 없습니다. 스틱 감도와 퀄리티는 알게 모르게 향상되어 왔고, 당시엔 최고의 스틱이었던 듀크의 스틱도 지금은 싸구려틱한 느낌입니다. 다행히도 트리거는 그렇게 나쁘지 않지만... 적어도 입력계는 모든 면에서 향상되어 왔습니다. 게다가 최근에 쓰던 게 엘리트 컨트롤러인지라 품질 차이는 더욱 와닿네요.
그립감의 발전도 실감했습니다. 저는 듀크가 S보다 손에 맞았지만, 360보다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엑박원 컨트롤러는 그립감이 더 좋아졌죠. 엑박원 기준으로는 듀크는 그저 크고 불편한 컨트롤러일 뿐입니다. 컨트롤러가 별로 바뀐 게 없다고들 곧잘 말하지만 사실 우리는 정말 먼 길을 걸어온 겁니다. 엑박 패드 기준으로만 3세대나 지났으니까요. 거기에 엘리트 컨트롤러도 있습니다. 제품의 의의는 충족해서 만족하지만 아마 실제로 쓸 일은 심심해서 이상한 짓 해보고픈 때 빼곤 없을 듯 합니다. 고이 모셔둬야죠. 피규어 장식장 더 커지면 장식장에 넣을까 생각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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