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크: 그렇게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엑스박스 컨트롤러, 그리고 복각 by eggry


The story of the Duke, the Xbox pad that existed because it had to(Engadget)

 미움 받으면서도 사랑 받기도 했던 컨트롤러가 돌아온다.

 데니스 차우드하리는 마이크로소프트 캠퍼스에 계약직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게임패드는 만져본 적도 없었다. 엑스박스 팀에 합류한 첫 여성이었던 차우하드리는 명망 높은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학교에서 인체공학과 산업디자인을 공부했지만, 조이스틱에 대한 경험은 전무했다. 그런데 그 점이 엑스박스의 짐 스튜어트가 그녀의 합류에 그토록 기대를 건 이유이기도 했다: 그녀의 아이디어는 게임패드는 이래야 한다는 선입견에 좌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00년 초, MS는 엑스박스를 만들어 게이밍 업계에 진출하려 하고 있었다. 2001년 11월, 오리지널 엑스박스는 북미에 "듀크" 컨트롤러와 함께 출시되었으며, 이 컨트롤러는 당시 기준으로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거대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비대한 게임패드는 버려졌고 더 작은 모델로 대체되었지만, 듀크는 그 후 나온 모든 컨트롤러에 영향을 주었다.

 차우드하리는 백지부터 시작하는 대신 엑스박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호레이스 루크의 컨셉 스케치에서 시작해야 했다. 스케치는 이미 상부의 승인을 받은 상태였으며, 납품업체는 초기 드로잉을 기반으로 회로판을 제작한 상태였다. 형태와 인체공학을 먼저 연구하고 거기에 들어갈 내부부품을 구상하는 대신, 차우하드리는 역순으로 작업해야 했다.

 그녀는 나무와 비슷한 소재인 렌쉐이프(RenShape)를 이용해 조각을 만들었다. 여태껏 나온 모든 엑스박스 게임패드에서 차우드하리의 유산을 볼 수 있다. A,B,X,Y 페이스버튼 레이아웃과 스타일은 오늘날에도 남아있다. 하지만 조이스틱의 위치야말로 차우드하리의 디자인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일 것이다. 듀얼쇼크가 컨트롤러 아래쪽에 2개의 스틱을 평행하게 놓은 반면, 듀크는 오프셋을 두고 만들어졌으며 왼쪽은 오른쪽보다 대략 2인치 정도 높은 위치에 자리잡았다.

 엑스박스 아키텍트 셰이머스 블래클리와 J 앨러드(후속작 엑스박스360의 "아버지"), 그리고 지금은 전 남편인 롭 와이엇과 대화하고 나서야 차우하드리는 그녀가 상대해야 할 과업을 알게 되었다: 회로판은 이미 제작된 상태였고, 웃길 정도로 거대했던 것이다.

 큰 회로판은 두가지 악영향이 있었다. 일단, 제조비가 더 들었다. 그리고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하였다. 회로판의 사진을 보면서 유명한 하드웨어 해커 벤 헥은 2000년 당시 조차 "간단하게" 1/3 정도 크기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회로판이 지나치게 큰 데에 대한 벤 헥의 이론은 메모리카드와 엑스박스 라이브 헤드셋(이것도 차우하드리가 설계했다.)을 연결할 확장슬롯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우린 벽을 상대하고 있었어요." 차우하드리가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곤 껍데기를 최대한 인체공학적으로 편하게 만드는 것 뿐이었죠. 그렇게 거대하다면, 최소한 손에는 편해야 할테니까요." 그런 이유 때문에 듀크의 아날로그 스틱은 평행선에 놓이는 대신 비대칭으로 배치되었다.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놓이도록 말이다.

 블래클리에 따르면, 스틱의 위치에 대한 결정은 개발에 참여한 "토니호크 프로 스케이터" 플레이어가 스틱 위치가 다른 것이 더 재미있다고 응답한 결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번지의 "헤일로: 전쟁의 서막"이 런칭 타이틀이었던 것과 맞물려 엑스박스의 스틱 위치는 콘솔패드에서 FPS가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하는데도 도움이 됐다. 당시엔 패드로 FPS 한다는 걸 모두 비웃었지만 말이다.

 차우하드리는업무시간 대부분을 전자 엔지니어와 버튼 레이아웃과 배치, 그리고 1mm라도 크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보냈다. 블래클리는 매일 그녀의 사무실로 찾아와 새 프로토타입의 진척상황을 확인했다. 매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컨트롤러가 그래도 크다. 그녀의 첫 반응은 결코 바뀌지 않았다. 차우하드리는 그의 손에서 패드가 어떻게 느껴지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리고 셰이머스는 이렇게 말했죠. '좋기는 한데, 그래도 커'". 그녀가 회상했다. "그게 크다는 건 비밀도 아니었어요." 최종 제품은 플레이스테이션의 듀어쇼크보다 거의 3배나 컸다.

 어느 시점에서 디자인팀은 듀얼쇼크에 회로판을 공급하던 마츠이 사와 접촉하게 되었다. 소니의 게임패드가 그렇게 작았던 이유 중 하나는 보드가 둘로 분리되어 있고 리본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별개의 회로판이 겹쳐져 있었고 더 단정한 디자인을 가능케 했다. 차우하드리가 미츠이 사에 엑스박스에도 비슷한 회로판을 만들어줄 수 있나 물었을 때 단박에 거절당했다. 아마도 일본의 국수주의적 문화 때문일 것이다. "거절은 이런 의미였죠. '소니는 일본 회사이고, 미츠이도 일본 회사이다. 엑스박스는 미국 회사이며, 설사 돈을 낸다고 해도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이죠."



 MS는 게이머의 콘솔에 대한 요구와 희망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자랑하길 좋아했다. 그게 듀얼쇼크가 선 길이가 2m인 반면 엑스박스는 2.7m였던 이유기도 했다. 하지만 테스터들의 관점이 설계의 모든 부분에 반영되어서는 안 되었다. "게이머들에게 콘솔을 설계하게 한다면 그들은 조명탄과 기관총이 들어간 걸 만들어낼 겁니다." 블래클리가 말했다. 그는 이 말이 게이머를 폄하하는 건 아니라고 재빨리 덧붙였다. 자신을 게이머로 여기고 있었으며, 그래서 게이머의 심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당시 게이머 누구도 고속인터넷과 하드디스크가 들어가고, 게임을 하면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OS가 탑재된 기계를 달라고 적이 없습니다." 블래클리가 말했다. 같은 부분이 쉬운 게임개발 툴에도 적용되었다. "이 모든 것들, 만질 수 없는 것들은 게이머를 인터뷰 하는 것에선 얻을 수 없는 것들이죠."

 하지만 MS는 거실에 대해 그토록 연구했으면서도 어째선지 게임패드가 경쟁기종에 비해 얼마나 큰지라든가, 미국 밖에서 콘솔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눈치치재 못 한 것 같다. 미국 중심의 테스팅은 듀크의 사이즈에 대한 가장 큰 변호였다. 매번 블래클리의 팀이 패드 크기에 불평할 때마다, 다른 이들은 사람들이 큰 패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반론했으며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소비자 테스트에선 뭐든지 증명할 수 있죠." 블래클리가 말했다.

 MS 재팬은 다른 입장이었다. 미국 게이머들은 듀크에 대해 호오가 갈리는 정도였지만, 동양 테스터와 개발자들은 전적으로 경멸했다. 출시가 다가오면서, 차우하드리와 그녀의 팀은 일본에 테스트를 하러 가게 되었다. 여행 전, 차우드리는 MS 재팬이 컨트롤러가 대폭 개편되지 않는다면 게임 개발을 하지 말라고 동양 제작사들에게 압력을 넣고 있다는 얘길 듣게 되었다. "일본 지사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어쩔 수 없어요. 개발자들에게 이대론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테스팅에는 맹점이 있었다. 미국인들은 게이머들과 직접적으로 얘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테스터들이 미국인을 직접 상대하게 된다면 그들은 "일본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대신 엑스박스 팀은 CCTV로 회견을 보아야 했다.

 본사 팀이 직접 얘기할 수 없었으므로 테스트는 당연히 일본어로 진행되었으며, 팀은 일본 직원의 통역에 의존해야 했다. 힌트가 있다면 이 통역가는 이미 차우하드리에게 컨트롤러가 싫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산업 디자이너로써, 차우하드리는 테스터들이 버튼이 좀 더 모여있으면 좋겠다거나, 모양이 조금 달랐으면 좋겠다는 류의 반응을 원했다. 그 대신 그녀가 들은 대답은 듀크에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는 대답이었다. 별로 도움이 되는 의견은 아니었다. 차우하드리는 이 출장을 길고 긴 "Lost in Translation"으로 묘사했다. 테스터의 몇분에 걸친 의견은 "아, 마음에 안 든데요. 너무 크다는군요."로 일축되었다.

 차우하드리는 통역가가 피드백을 제대로 번역해 주었다고 믿었을까? "물론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정말 요점 없는 일이었어요." 테스팅의 결과와 무관하게 하드웨어는 생산에 들어갔으며, 조금 더 늦는 일본 출시에 맞춰서 컨트롤러를 즉시 재설계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블래클리의 일본 개발자들과의 만남도 비슷했다. 듀크의 이미지가 잡지와 온라인에 뜨기 시작하자, 게임 제작사들은 일본의 작은 거실에서 게이머들보고 파이널판타지와 드래곤퀘스트 차기작을 하려면 이 거대한 콘솔과 게임패드가 필요하다고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겁을 했다." 개발자들 사이에서 전반적인 우려는 이런 게임기로 게임을 내봐야 아무도 사지 않을 것이며 평판만 나빠질 거라는 것이었다. "일본 개발자들 사이에 듀크에 반대하는 서명운동까지 있었습니다. 거기엔 정말 유명한 사람들도 끼여있었죠." 블래클리가 떠올렸다.



 2001년 11월 15일, 엑스박스는 북미에 출시되었으며, 차우하드리의 듀크가 동봉되었다. 3개월 뒤, 엑스박스는 MS의 정직원 산업 디자이너가 만든 매끈한 컨트롤러 "S"와 함께 일본에 출시되었다. 일단 컨트롤러 S가 나오자,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래 더 작은 걸 원하게 되었으며, MS는 결국 모든 지역에서 작은 컨트롤러를 기본으로 바꾸었다.

 차우하드리가 요구했던 2분할 회로판 덕분에 컨트롤러 S는 순식간에 듀크의 2/3 크기로 줄어들었다. 다른 변경점은 블랙&화이트 버튼이 듀크의 A,B,X,Y 오른쪽 위 대신에 이상할 저도로 먼 위치로 옮겨졌다는 것과 백&스타트 버튼 위치가 서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게임패드는 또한 사이드와인더 컨트롤러에서 넘어온 듯한 듀크의 물결치고 흐물거리는 D 패드 대신 전통적인 십자 형식의 D 패드를 갖게 되었다.

 "MS 디자이너는 이렇게 쉽게 말했죠. '봤지? 내가 말했잖아. 우리가 직접 했다면 처음부터 제대로 했을 거라고.'" 차우하드리가 말했다. "그들은 자신의 설계가 지지받는데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어요. MS가 컨트롤러를 디자인할 수 있고, 내 디자인은 단종되었다고 말이죠."

 당시 차우하드리는 듀크의 유산이 "수치스럽다"고 생각했다. MS는 그녀의 창조물을 곧바로 버스 밑으로 던져버렸고, 듀크는 컨트롤러 S가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졌다. "우리가 정말 만족하지 못 하는 물건을 출시해야 했다는 게 수치스러웠습니다. 좀 더 들여봤더라면, 다른 회로판을 달라고 더 강하게 요구했더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발매를 조금 더 연기했더라면 하고 말이죠." 그녀의 목소리에선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차우하드리는 출시 후 엑스박스 팀에는 별로 즐겁거나 축하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차우하드리는 그녀의 작업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그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이력서의 흑역사로써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 커리어 전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작업일 겁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차우하드리는 자신의 디자인 회사의 고객들이 특히 듀크에 대해 열광한다고 말했다.

 오늘날까지, 블래클리는 차우하드리의 재능에 대해 그저 찬사할 뿐이라고 한다. "그녀는 대단한 일을 해냈습니다. 사람들이 이 맨하탄 크기의 컨트롤러를 사랑하도록 만들어 냈어요."



 크리스 갈리찌에게 듀크는 몇가지 다른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언제나 엑스박스 라이브가 떠오릅니다." 갈리찌가 말했다. 갈리찌는 이번에 듀크를 부활시키려는 액세서리 메이커 "하이퍼킨"의 프로덕트 매니저이자 R&D 보스이다. 그에게 듀크는 본질적으로 온라인 게이밍의 첫 경험과 직결되며, 듀크의 거대한 크기가 오리지널 넥스박스를 그토록 기억에 남게 만들었다. 갈리찌는 만약 엑스박스가 작은 컨트롤러로 출시되었다면, 그렇게 인상깊지 않았을 거라고 상상했다. 듀크를 처음 봤을 때, 젤리빈 같은 반투명한 버튼들과 가운데 위치한 거대한 엑스박스 로고에 매료되었다.

 "저는 이렇게 반응했죠. '와우! 이렇게 큰 컨트롤러라면 분명 매우 강력할거야!'" 그가 회상했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알게 되었죠. 그렇게 클 이유가 없었다는 걸요. 디자이너 차우하드리는 그저 그녀에게 주어진 걸로 해내야 했던 것 뿐이었습니다." 갈리찌는 당시에 컨트롤러가 괜찮은 정도였다고 생각했고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그는 듀크를 너무 좋아해서 어댑터를 이용해 PS4에 듀얼쇼크4 대신 쓸 정도이다.

 갈리찌는 2,3년 전 처음으로 MS에 듀크의 복각을 의뢰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처음 제안한 건 엑스박스 원용 컨트롤러가 아니라 오리지널 엑스박스용의 복각이었다. 하이퍼킨은 클래식 콘솔의 레트로 상품에 특화되어 있으며, 갈리찌는 엑스박스가 고전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그래도 하고 싶어했다.

 MS는 갈리찌의 제안을 거절했다. 갈리찌는 만약 하이퍼킨이 라이선스 파트너가 되려고 한다면, 엑스박스 원용 주변기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들었다. 빨리감기를 해서 2017년 초로 가면, 갈리찌는 엑스박스의 라이선싱 디렉터 갈리온 블랭크에게 전화를 받았다. 블랭크는 프로젝트가 "무산된 줄" 알았다고 말하면서, 아직도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상관에게 확인도 안 하고, 나는 그렇다고 말했죠." 갈리찌가 말했다.

 MS와 초기 미팅 후, 갈리찌는 블래클리를 만나게 되었다. 블래클리가 "신의있는 노력"이라고 묘사한 과정을 통해, 세 관계자는 레드몬드에서 오리지널 엑스박스 로고, 부팅 애니메이션, 그리고 듀크의 산업 디자인 라이선스에 대해 서명했다.

 갈리찌와 블래클리는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몇분 거리에 살고 있었으며, 2017년 내내 듀크를 부활시키는 비밀작업을 해왔다. 갈리찌에 따르면 2017년 2월부터 6월까지 MS가 침묵을 지켰기 때문에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고 하지만, 그와 블래클리는 작업을 계속했다. 6월 E3 전의 주말에, 갈리찌와 한 직원은 발코니에서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MS가 E3에서 엑스박스 원에서 오리지널 엑스박스 하위호환을 발표하면서 컨트롤러도 발표할 것이라고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패드 발표는 없었다.

 그렇다고 MS가 듀크의 복각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사실 MS의 관심은 삼성과 작업할 때에 비해 훨씬 열성적이었다. E3가 끝난 뒤 일은 가쁘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MS는 진척상황에 대한 보고를 더 자주 요구했으며, 매주 새 렌더링 모델을 요구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

 비록 듀크 복각판이 서드파티에 의해 만들어지긴 해도, 라이선싱 협약 때문에 MS가 모든 면을 최종승인해야 했기 때문에 MS 내부 디자인팀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제는 엑스박스 원용 컨트롤러이기 때문에 표준패드와 같이 기능해야 했고, 숄더 버튼이 어떻게 배치되어야 하는가 등을 궁리해야 했다. "테스팅 샘플을 얼마나 많이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갈리찌가 말했다. 한번은 전체 디자인에 대해 논할 때 MS 쪽에서 무게에 대해 불평을 하기도 했다. 오리지널 듀크는 425g으로 측정되었지만, 하이퍼킨의 복각판은 419g이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을 때, 블래클리는 갈리찌에게 목업이 얼마나 정확한지 판별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블래클리는 갈리찌에게 음식 쟁반을 무릎에 올려놓으라고 했다. 만약 듀크 복각판이 같은 느낌을 준다면, 하이퍼킨이 해낸 것이다. 끝까지 갈리찌는 블래클리가 하이퍼킨의 사무실로 들어왔을 때 어떤 기준으로 평판할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는 패드를 꽂지도, 게임을 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무릎에 올려놓았죠." 갈리찌가 말했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게 내가 알고 싶던 전부입니다.'" 갈리찌는 의아했지만, 블래클리가 괜찮다고 한다면 그도 만족스러웠다.

 첫 6개월 동안, 갈리찌는 듀크 복각판이 무선이 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작업했다. MS는 2005년 엑스박스360 출시부터 무선으로 컨트롤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어떤 서드파티 컨트롤러도 MS 고유의 무선기술을 이용하지 못 하기 때문에, 듀크도 예외가 아니라고 했다.

 하이퍼킨은 또한 확장슬롯을 USB 허브로 재활용하는 아이디어도 제안했지만 역시 거절되었다. 하지만 블랙&화이트 페이스 버튼은 그대로 남아있었으며, 만약 숄더 버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대안으로 쓸 수 있다. 오리지널 컨트롤러의 엉성하고 끔찍한 D 패드도 그대로 남아있있다. 그리고 케이블을 고정시키는 대신 마이크로 USB 케이블을 통해 엑스박스 원이나 PC와 연결된다.

 레드불 캔 크기의 보석같던 오리지널 패드의 로고 자리에 OLED 스크린이 들어선 것이 새 듀크의 가장 두드러지는 점이다. 블래클리는 듀크 복각판이 다른 서드파티 컨트롤러와 차별화되는 킬러 피쳐를 원했다. 패드에 디스플레이를 넣는 건 2001년부터 그의 영원한 바람이었다. 부분적으로는 세가 드림캐스트의 LCD가 들어간 메모리카드인 비주얼메모리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갈리지는 싸구려 중국 MP3 플레이어의 LCD 스크린을 이용해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으며, 갈리찌는 집에 굴러다니는 OLED 스크린을 챙겨왔다.

 MS가 디스플레이 내장을 승인하게 만들기 위해, 블래클리는 트위터에 자신의 작업물을 보여주는 악명 높은 비디오를 올렸다. 비디오는 헤드라인을 차지했으며, 엑스박스 보스 필 스펜서로 하여금 그날 밤 블래클리에게 직접 연락하게 만들 정도로 인상을 주었다. "저는 MS가 디스플레이 탑재를 허락하게 하려고 언플을 했던 거죠." 블래클리가 말했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오리지널 엑스박스의 기동 애니메이션이 나오면서 그 유산에 찬사를 바친다.



 이 일련의 모습이야 말로 오늘날 듀크의 유산을 정의하는 것이라고 차우하드리가 말했다. 한때 듀크는 "수치(Shame)"이었지만, 이제는 "셰이머스(Seamus)"가 되었다.

 "듀크를 부활시켜서 그 노스탤지어를 살려도 괜찮은 사람은 한명 뿐이에요. 셰이머스 블래클리가 그 사람이죠."

 듀크를 개선하는 건 쉬운 일이다. 애초에 MS는 지난 16년 동안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개선시키는 게 이번 일의 목적이 아니다. 하이퍼킨의 숄더 버튼의 위치와 느낌이 좋은 선택인지는 자신이 없지만, 블래클리는 전체적으로 만족한다고 말한다.

 "완벽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말했다. "이 작업이 완벽한 엑스박스 컨트롤러를 만드는 건 아니니까요. 이건 2018년을 위한 완벽한 듀크 만들기입니다."

핑백

  • eggry.lab : 엑박원용 하이퍼킨 듀크 컨트롤러 2018-05-14 18:35:44 #

    ... . 뭐 케이블 꽂아서 엑박이나 PC에 꽂는 게 끝이긴 합니다. 스페셜 땡스에는 전에 번역한 바 있는 듀크 기사에 언급된 이름들이 다수 나옵니다.(듀크: 그렇게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엑스박스 컨트롤러, 그리고 복각) 그리고 현역 보스인 필 스펜서도. 보호 필름도 벗겨내고 추억의 그 자태를 다시 한번... 예나 지금이나 우아하거나 예쁘진 않 ... more

덧글

  • 존다리안 2018/04/27 13:05 # 답글

    덩치가 커서 손 작은 사람에게 불편해 보이는 대신 FPS용으로는 편했다는 장점이 있었지요.
    이제는 추억이네요.
  • 로리 2018/04/27 14:51 # 답글

    "게이머들에게 콘솔을 설계하게 한다면 그들은 조명탄과 기관총이 들어간 걸 만들어낼 겁니다."

    이 말에 너무 웃었습니다. 그런데 부정할 수가 없는 ^^;
  • 이지리트 2018/04/28 02:13 # 답글

    이걸 사고 싶은데 국내엔 언제 들어올지...
    지금 엑박패드보다 듀크패드가 더 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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