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다와 거상(2018) - 13년 만의 클리어 by eggry


 게임 자체에 대해서는 이제선 달리 평가할 필요도 없겠죠. 그래서 이번 글은 딱히 리뷰라기 보다는 그냥 후기 내지는 정리되지 않은 술회 정도가 되겠습니다.

 "완다와 거상"을 처음 해본 건 지인이 용산에 들러서 PS2 게임과 컴포넌트 케이블을 샀던 때였습니다. 지인 집에 놀러갔는데 자기는 경황이 약간 없고 게임 어떤지 저보고 먼저 해보라고 해서 시작했죠. 아마도 세번짼가 네번째 거상 쯤까지 상대해봤을 겁니다. 저는 이코를 플레이하지 않았고(너무 비폭력적임!) "완다와 거상"이 첫 우에다 후미토 게임이었습니다. 첫 인상이 대단히 마음에 들었음에도(그렇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정작 저는 완다와 거상을 사지 않았습니다.

 때는 2005년, Xbox 360이 출시되었고 저의 흥미는 PS2에서 차세대기로 넘어갔습니다. 대학 기숙사 생활을 하던 입장에서 게임기를 2대 두는 것도 아무래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 PS2 말기에 나온 "완다와 거상"은 다시 제 손에 들어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두번째로 관심을 가지게 된 건 PS3로 리마스터가 나왔을 때지만, 저는 PS3를 매우 짧은 기간만 갖고 있었고 대부분 언차티드와 라스트 오브 어스, 그란투리스모5를 할 만큼 하고 난 뒤 팔아버렸습니다.

 PS4 시대에 접어들어 PS4가 콘솔전쟁에서 승리한 것도 있고 직장인이 되어 경제적 여유가 생긴 것도 있어서 엑박원X가 나온 지금은 멀티플랫폼 게임은 여전히 엑박용을 더 사긴 하지만 PS4 프로는 제 TV 밑에 여엇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런 상황에 "완다와 거상" 리메이크가 나온다고 하니(공식 타이틀은 리마스터리 메이크니 없습니다. 그냥 "완다와 거상". 그래서 제목엔 2018이라고 했습니다. 이하 구분이 필요할 땐 편의상 오리지널/리메이크로 칭합니다.) 바로 예약구매를 했습니다.




 출시일 직후 여행을 가야해서 좀 미루다가 "고스트리콘: 와일드랜드"까지 클리어 한 뒤에야 해보게 됐습니다. 초반부 밖에 해보지 않았던데다 사실 인터넷 시대임에도 사람들의 추억담만 들었지 게임 자체에 대해선 들은 게 없습니다. 도르민이 누구인가, 거상은 몇이나 있는가- 그런 것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죠. 게임의 볼륨은 그렇게 크지 않았고, 반복 플레이와 타임어택을 요구하는 시스템이 왜 존재하는지도 13년 만에 클리어 하고서 이해하게 됐습니다.

 "완다와 거상"의 기술적 임팩트는 13년이 지난 지금, 단순히 에셋을 향상시켰을 뿐인데도 여전히 와닿습니다. "움직이는 플랫폼"이라는 거상이란 개념은, 오늘날 움직이는 플랫폼 자체는 전혀 드물지 않은 게 되었음에도 그 강렬함이란 점에서는 여전히 비할 데가 없습니다. 거상의 숫자는 많지도 적지도 않다고 느낍니다. 이건 게임 볼륨이 크지 않다는 것과는 상반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어차피 악력으로 달라붙기와 칼 찌르기라는 단순하기 그지 없는 공략법을 생각할 때 거상 숫자가 많아 봐야 별 의미 없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실제로 기획했던 것보다 적은 수의 거상만 등장했고 플레이타임은 초행이라도 10시간 넘기기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이정도면 됐습니다. 만약 더 많았다면 아마 꽤 지루한 게임이 되었겠죠. 그런 징조는 완성된 게임에서도 이미 보입니다. 일부 거상은 외형만 좀 다를 뿐 사실상 같은 공략법과 패턴을 갖고 있으며, 이건 기술적 문제로 선보이지 못한 다른 거상들 대신 그나마 구현 가능했던 게 복제된 케이스겠죠.

 사실 "라스트 가디언"으로 곤혹을 치르기 전까진 그렇게 부각되진 않았지만 팀이코의 기술력은 엔지니어링 측면에서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닙니다. 그러니 "움직이는 플랫폼"이라는 당시로썬 까다로운 과제를 안고 상당수 거상이 실현하기 어려워서 포기된 건 신기한 일은 아닙니다. 뭐 숫자는 최종적인 수준과 같다고 하더라도 좀 더 다양한 '타입'의 거상이 나왔으면 싶긴 하지만, 당시로썬 최종적으로 구현된 것만 해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긴 했습니다. 특히나 이후 드러난 팀이코의 밑천을 생각하면 적당히 잘 타협했다고 해도 되겠죠.



 "완다와 거상"은 별로 이야기를 해주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거의 상상의 영역이죠. 종국에는 거상이 무엇인가, 완다와 소녀의 운명 같은 것들이 나오긴 합니다만, 플롯은 모든 거상을 물리치기 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습니다. 오프닝과 엔딩 사이에 남는 것은 거상을 물리쳐 소녀를 구하려는 완다의 집념과, 그 거상과 악전고투 하는 플레이어 뿐입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런 구성은 심각한 내러티브의 부재라고 비판당할테지만, 팀이코의 게임은 언제나 내러티브보다는 분위기와 흐름에 녹아드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완다와 거상"에서 내러티브의 부재는 별로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이 분위기와 흐름에 집중하는 부분은 게임플레이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라서, 대부분의 거상은 찾기 특별히 어렵지도 않고 공략법 자체도 단순합니다. 난이도가 올라가면서 생기는 차이는 악력이 더 많이 필요해지고,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것과 약점이 한군데 더 늘어나거나 말거나 하는 정도입니다. 근본적으로 게임은 끈기가 있다면 난이도와 무관하게 클리어해낼 수 있고, 게임오버는 특수한 경우를 빼면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게임에서 가장 경이로운 순간은 거상에 올라타서 떨쳐내려는 거상에게 달라붙어 버티는 부분일 겁니다. 그리고 거대한 거상이 플랫폼으로써 가지는 박력이고 말이죠. 실제로 이 부분에서 가장 임팩트를 주는 거상들은 육상에서 발을 달고 다니는 거상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거상과 수중 거상이었습니다. 이들이 조금 더 많았으면 싶지만 원작부터 기술적인 한계가 있었겠죠. 상대적으로 평범한 거상들 사이에서 초대형 비행 거상의 임팩트는 확실히 두드러지긴 합니다.



 리메이크 부분으로 가자면, 이식과 리마스터의 스페셜리스트[...] 블루포인트가 다시금 힘써주었습니다. 블루포인트는 타이탄폴의 Xbox 360 버전 제작 등으로 제법 최적화 부분에서 이름을 날렸고, 또 이코/완다와 거상 PS3 리마스터의 제작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순전히 해상도를 올리거나 저성능 기종에 맞추는 수준이 아니라 스스로 직접 에셋을 제작해낸 것은 "완다와 거상" 리메이크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PS3 리마스터 때 일부 배경 텍스쳐를 업그레이드 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전체 모델과 텍스쳐는 거의 그대로였죠.

 "완다와 거상"처럼 아트적으로 독특한 게임의 에셋을 전부 바꾸는 것은 대단한 리스크가 따르는 일입니다. 폴리곤과 텍스쳐 해상도를 올리면서 원작의 느낌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완다와 거성"의 또다른 특징은 당시 PS2의 성능과 기술력 한계가 아트적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 부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색상수가 적다든가 전체 감마가 너무 떠보인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죠.

 "완다와 거상" 리메이크는 이미 "역대 최고의 리메이크"라고 부르는 곳도 있는 모양이지만, 단순히 아트스타일을 해치지 않고 에셋을 업그레이드 한 것만이 아니라 당시에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되었던 점들도 향상시키긴 했습니다. 일단 리메이크는 원작보다 전체적으로 조금 더 어둡습니다. 그리고 콘트라스트도 좀 더 강합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보통 게임들보다는 더 떠있고 물이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원작의 스타일을 너무 고치진 않았습니다.



 에셋 면에서 텍스처와 모델은 확실히 향상됐지만, 그렇다고 현세대 AAA급 수준은 아닙니다. 사실 원작의 정보량이 한계가 있는 시점에서 그걸 더 디테일하고 고해상도로 만든다고 해도 완전히 요즘 것 같을 순 없습니다. 그래도 기술의 발전에 따라 현격히 나아진 표현도 있습니다. 물이나 수풀 표현 같은 게 그렇겠고, 거상의 경우엔 털이 당시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품질로 나왔습니다. 사실 털의 경우엔 현세대 기준으로도 꽤나 괜찮은 수준입니다. 정말 쓰다듬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죠.



 기술적인 면에서 기본 PS4에서는 1080p 30fps, PS4 프로에서는 1440p 30fps(시네마틱)과 1080p 60fps(퍼포먼스)를 제공합니다. 원작이 퍼포먼스 면에서 꽤나 끔찍했음을 생각할 때 리메이크의 가장 큰 성과는 사실 향상된 에셋이 아니라 퍼포먼스라고 해야할지도 모릅니다. PS3 리마스터도 부드럽게 돌아가긴 했지만 PS4 리메이크는 더 나은 품질과 퍼포먼스를 동시에 보장합니다.

 다만 PS4 프로의 두가지 옵션에 대한 제 경험은 전적으로 긍정적이진 않습니다. 일단 시네마틱 모드는 1440p라는, 4K에 크게 못 미치는 해상도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더 나은 해상감을 제공합니다. 안티알리아싱으론 TAA가 적용되었는데 계단을 꽤 훌륭하게 잡아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퍼포먼스 모드의 품질은 좀 의아합니다. 분명히 약간 드랍이 있긴 해도 60프레임을 대체적으로 유지해주기는 합니다. 하지만 해상도는... 사실 1080p가 맞는지 좀 의아할 정도로 부드럽게 보였습니다. 1440p와 번갈아가면서 봐서 더 심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벌써 제 눈이 4K TV의 화질에 적응되어 간사해져 가고 있는 것인지?

 원작은 원래 30프레임 게임이었고, 사실 게임 대부분 텅텅 빈 곳에서도 30프레임을 유지하지 못 했기 때문에 30프레임만 잘 지켜준다고 해도 원작보다는 더 나은 체험입니다. 거기에 에셋과 해상도 향상까지 생각하면 이 게임에선 시네마틱 모드가 더 우위를 가진다고 봅니다. 물론 타임어택 모드 등에서야 더 높은 프레임이 조금이나마 실수를 방지해주고 더 쾌적한 플레이를 선사하긴 하겠죠. 저의 경우엔 1440p의 품질이 프레임보다는 더 우선이었습니다. 어쨌든 FPS도 아니고 원래 인풋렉이 꽤 느린 게임이니 말이죠. 물론 60프레임으로 찰랑거리는 거상의 털은 정말 감미롭긴 했습니다.

 어쨌든 리메이크가 나와준 덕분에 영영 못 깨는 건가 했던 "완다와 거상"도 13년 만에 클리어 했습니다. 사실 이 게임은 처음 플레이 한 시점에서 이미 제 기억에 평생 남기 충분한 수준이었고, 이번에 10개가 넘는 거상을 처음 만나게 됐지만 그게 게임에 대한 기억을 더 강하게 만들거나 좋게 만들진 않았습니다. 어쨌든 "완다와 거상"은 반복적인 게임이고, 조리있기 보다는 인상으로써 호소하는 게임이니까요. 거상을 더 많이 상대한다는 게 게임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해주진 않았습니다. 아마도 거상 중에서 절반 정도는 없어도 될 거 같습니다.

 그렇다고 2005년의 제 경험이 평가절하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것으로 충분했다는 것일 뿐이죠. 반복 플레이의 혜택이 있긴 하지만 하진 않을 겁니다. 저에겐 이미 2005년에 볼 것 다 본 것이었고, 거상을 잘 잡는다는 것은 게임의 의도와도 별로 연관 없습니다. 게임은 보통 향상심과 성취욕을 내세우는데 그 부분에서도 "완다와 거상"은 특이하긴 합니다. 억지로 넣긴 했지만 타임어택 모드는 사실 "완다와 거상"의 철학을 이율배반하는 것입니다.

 물론 2005년의 반도 안 한 플레이로 충분했다고 해도 리메이크 덕분에 기술의 발전은 물론이거니와, 더 쾌적하게 플레이할 수 있게된 건 사실이고 그건 고맙게 생각합니다. 풀프라이스로 내놓지 않은 것도 게임의 한계를 생각할 때 잘 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단순히 리메이크라서가 아니라, 게임이 선사하는 체험이 볼륨과는 그다지 연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가치를 떨어트리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정량적 측정에서는 밀릴 수 밖에 없겠지요. 한번은 꼭 해볼 만한, 하지만 오래, 다시 할 필요는 없는 게임이 "완다와 거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덧글

  • 나르사스 2018/03/08 22:03 # 답글

    아누비스 리마스터를 볼티지가 망친 이후, 블루포인트가 다시 맡아서 아예 엔진까지 다시 만들어 이식한 적이 있습니다. 참 대단한 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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