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행궁야사(2017. 10. 3.) by eggry


 10월 1~3일 동안 하루 2회 씩 진행되었던 수원화성 행궁야사에 다녀왔습니다. 마지막 날인 오늘의 1회차인 저녁 7시였습니다. 사실 이 행사의 정확한 내용은 모르는 상태로 갔습니다. 얼마 전 정조 능행차 행사 때 부스에서 팜플렛을 받고 바로 인터파크 예약을 하긴 했지만 말이죠. 일반적인 사적지 야간개장과는 약간 다른 성격의 행사라는 건 이름만 봐도 알 수 있었고, 그런 야간개장은 달빛동행이라는 별도 행사가 11월 열리기 때문에 역시 그것과도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행궁야사가 구체적으로 무슨 컨셉인가 하면, 행궁을 배경으로 이곳 저곳 다니면서 정조의 이야기를 연극식으로 풀어주는 꽤나 신선한 시도였습니다. 거기에 완전 묵직한 사극식도 아니고, 제4의 벽을 넘어서는 관객과의 인터랙션도 다소 포함된 흥미로운 시도였습니다. 어쨌든 시작은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로 갔으나, 닫혀있고 안내소도 없었습니다. 다만 궁궐행사 특유의 초롱등을 든 직원이 있어서 물어보니 이쪽이 아니라 북서쪽에 위치한 화랑전에서 입장한다고 하더군요.




 오늘 행궁은 곳곳에 행궁야사 및 11월에 있을 달빛동행을 홍보하는 포스터와 함께 '행궁야사' 라는 글이 적힌 보자기(?)로 싸인 사각등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디자인 센스라고 할까, 궁궐 행사를 자주 가는 입장에서 전통적이면서도 모던한 센스에 가끔 감탄할 때가 있습니다. 아직은 행사 전체의 세련됨이랄까, 소규모 사전 예약자만 된다든가 해서 외국 관광객 상대는 거의 못 하지만 노하우가 축적되어 좀 더 상시 행사가 가능해진다면- 이라는 기대를 가지면서 베타테스트(?)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의 입장은 행궁 북서쪽에 위치한 화령전에서. 지도에서 행궁 부지를 보면 뭔가 넝마조각처럼 되어있는데, 한국 궁궐들이 대개 그렇듯 조선시대나 그 전의 손실, 일제시대, 전쟁까지 거치면서 완전한 규모로 남아있는 건 별로 없습니다. 화령전도 행궁 본궁 쪽과 뒷길로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약간 동떨어져 있는데, 그 사이에 있는 구간은 현재 발굴 및 복원 진행 중입니다. 그 구역에 있던 건물이 바로 신풍초등학교로, 지금은 폐교된 뒤 철거까지 진행되고 발굴 및 복원터가 되어 있습니다.



 달빛동행은 경쟁률이 높은데다 늦게 알아서 예약 실패... 중고나라 전매표라도 찾아봐야 할 신세입니다. 행궁야사는 정조의 이야기, 달빛동행은 화성 야간개장에 가까운 내용입니다.



 화령전 문이 개방되고 행사가 시작됩니다. 화령전 중심에 위치한 건물인 운한각. 운한각엔 정조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뭔가 퍼포먼스를 하려는 듯 배우(?)들이 기다리고 있군요.



 가야금 소리와 함께 춤사위를 봅니다. 별다른 나레이션이나 곡조가 있는 건 아니네요.



 동떨어져 있는 화령전을 제외하고 행궁의 가장 북쪽이라고 할 수 있는 낙담현. 낙담현과 화령전 사이는 현재 비어 있는데 복원 대상으로 신풍초등학교가 있던 구간은 특히 발굴작업 중이라 출입금지구역입니다. 일반적으로 행궁 관람을 온다고 하면 이 낙담현 앞에 뭔가 휑하게 트여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복원이 안 되서 그렇습니다.



 낙담현 서쪽 언덕 위에 위치한 미로한정. 이곳은 평소에는 드나들 수 없는 구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조가 올라서서 앞으로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서막을 엽니다.



 미로한정 쪽에서 나무 사이로 내려다본 신풍루. 이쪽 각도에서 보는 건 처음인데 그건 평소에 올 수가 없기 때문에...



 미로한정의 피리 부는 여인. 정조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음;



 여기까지는 화성행궁의 시설에 대한 안내를 음성 가이드 받으면서 왔는데, 갑자기 가이드를 가져갑니다. 그리고 이제 본행사가 시작된다고 하느데 사전지식이 없는 상태였어서 뭔지 전혀 몰랐죠. 정체는 바로 행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정조의 이야기를 그린 연극이었습니다.



 화성과 행궁을 건설하기 위해 정약용 등 신하들과 담소를 나누는 한창 때의 정조로 시작. 한창 일을 하던 중 갑자기 어린 왕자-바로 어린 정조 자신-이 나타나서 아바마마를 구해달라고 정조에게 애타게 조릅니다. 정조가 어린 자신을 따라 사도세자의 죽음을 시작으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인 셈. 시공간을 넘나드는 구성은 공식 행사로써는 꽤나 파격적인 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꼬맹이 정조는 잠시 카메라 만지느라 못 찍음; 아역이 연기를 아주 잘 하더군요.



 사도세자에게 자결을 명하는 영조. 신하들은 소론, 노론으로 갈려서 영조를 달래기도 하고 그들을 호통치기도 하는데, 사도세자가 당쟁으로 죽음으로 몰렸다는 설은 근거가 약하다고 여겨지고 있긴 합니다. 다만 사도세자에 죽음을 명했을 때 신하들이 갈라졌던 것은 맞고 그것을 그린다고 해야겠죠.



 혜경궁 홍씨와 영조에게 사도세자를 용서해달라고 비는 어린 정조. 하지만 결국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은 혜경궁 홍씨와 아비를 죽게 만든 영조 때문에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뒤주에 사도세자를 몰아넣은 영조. 자기 손으로 직접 넣은 건 아니지만 극적 연출을 위해 영조가 직접 몰아다 넣고 못을 박는 것처럼 그렸습니다. 역사적 사실보다는 사도세자를 자기 손으로 죽음으로 몰아넣는 비정함과 가슴아픔을 극적으로 그려내는 장면.



 결국 죽게 된 사도세자와 어린 정조, 그런 자신을 보듬어주는 정조. 정조의 평생 치유되지 않을 상처입니다.



 세자 사후 영조가 세자를 사도세자로 명하며, 영조의 대리청정을 거쳐 결국 정조로 즉위하게 되는 나레이션과 함께 퇴장.



 대리청정을 끝내고 정식으로 즉위해 왕이 된 정조. 즉위하자 마자 한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는 선언은 그의 상처와 한을 잘 나타냅니다.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를 외치는 어린 정조와 정조. 과연 그의 한이 왕이 되어 하고픈 바를 하는 것으로 풀어질 것인가...



 수원 천도와 관련된 신하들의 반발과 회유에 관한 이야기. 왕이 되었다곤 하나 맘대로 쉽게 될 턱이 없습니다.



 잘생김. 관객 상대로 애드립 질문타임도 있었는데, 남북통일에 대해선 "문재인과 김정은을 만나서 얘기해본다" 라던가 그런 식으로 얘기했고, 사도세자가 살아 돌아 온다면 못 다한 효를 다할 것이라고. 애드립이긴 하지만 재미있었네요.



 다과 타임. 따뜻한 차와 함께(뭔지 기억 안 남;) 한과를 먹었습니다. 정조랑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는데 뻘쭘한 혼남이라서 감히 들이대지 못 함.



 마지막 챕터인 혜경궁 홍씨의 환갑 잔치.



 신하와 정조가 혜경궁 홍씨에게 예를 올립니다. 정조는 효자로써 유명하긴 했지만 이 극에서 홍씨와 정조의 태도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골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처럼 그려집니다. 그래도 효심이 앞서는 정조이고, 기쁜 날이니 만큼 과거는 잊고 오늘은 모자지간으로써 역할을 다하고 싶다며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극은 끝나게 됩니다.



 나레이션 뒤 꼬마 정조의 퇴장으로 행사는 끝나게 됩니다. 아버지를 죽음에서 구하지 못한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정쟁을 일으킨 신하들. 정조의 진정한 생각이 무엇이었는지는 원하던 바를 다 이루지 못 하고 세상을 뜨면서 사람들의 추측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보통 이런 역사행사는 단순 보여주기 식이 많은데, 현대적 기법을 차용한 것이라든가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씁쓸한) 마무리는 인상적이었습니다.



덧글

  • 로오나 2017/10/04 08:59 # 답글

    오, 야간 사진들 잘 나왔군요. 똑딱이로는 도달할 수 없는 퀄리티...
  • 네비아찌 2017/10/04 09:53 # 답글

    행사 자체는 참 좋아보이는데 줄거리에 이덕일 역사관이 아직도 남아있네요ㅠㅠ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대목도 사실 그 뒤를 보면 '하지만 지금은 법적으로 큰아버지 효장세자의 아들이니 사도세자를 빙자해 할아버지의 결정을 비난하지 말라' 하는 내용인데 이덕일이 본문은 다 잘라먹고 마치 노론에 선전포고 하는 식으로 왜곡했지요.
  • eggry 2017/10/04 09:57 #

    네 효장세자와 할아버지 얘기가 빠졌죠. 아직 잘 퍼지지 않는 듯 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Adsense Wide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4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메모장

Adsense Squ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