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 - 대단한가? 그렇다. 좋아하는가? 그건 다른 문제다. by eggry


(영통 메가박스 MX관 관람)

 익히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스타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의 재능은 높이 사지만 그 스타일이 저에게 썩 맞지 않습니다. 물론 그의 모든 필모그래피를 평작 이상이라곤 생각하지만 놀란이 현대 영화를 대표할 벤치마크적 존재인가 하면 솔직히 그 반대에 가깝다고 봅니다. 필름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라든가, 짜임새 있는 맥락보다는 흐름에 맡기는 스타일 같은 것들이 인기는 있을지언정 대표적이라고는 할 수 없고, 광적인 팬들에는 언제든지 NO 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놀란의 차기작이 '덩케르크'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이번엔 또 어떤 수작(?)을 부리려나 하는 생각부터 했습니다. 덩케르크 전투, 정확히는 영화에서 그려지는 탈출작전은 전사적으로 극적이고 큰 사건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미시적으로는 그리 건질 거리가 없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 중 하나는 독일군이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완전히 핀치로 몰아넣었음에도 진격을 멈추어 시간을 허비하고, 해변까진 결국 도달하지 못 했기에 기적적인 탈출이 가능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탈출 자체는 역사적으로 극적이었으나 전투 면에선 그렇게 극적이지 않았다는 얘기죠.

 놀란이 물량전 액션 블록버스터를 만들 거라고도 기대 안 했기 때문에 '덩케르크'는 평범한 전쟁영화가 되진 않을 거라고는 미루어 짐작했습니다. 그의 스타일로 미루어볼 때 인간 드라마에 더 가까울테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영화는 탈출하려는 두 병사, 전투기 편대, 그리고 구하러 가는 어선 한척의 세 그룹으로 진행됩니다. 각 그룹의 진행은 시간순을 따르지 않으며, 이런 비순차적인 편집에서 그의 데뷔작인 '메멘토'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필모그래피가 제법 쌓인 지금에 되돌아보면 사실 의외로 자주 쓰지 않는 편집입니다만, '덩케르크'에선 솜씨가 전혀 녹슬지 않았음을 과시합니다.

 세 그룹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덩케르크의 상징적인 존재들을 대표하긴 합니다만, 초점을 소그룹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썰렁해보이긴 합니다. 놀란이 물량 블록버스터에 질색한다는 거야 알지만, 사실 덩케르크 탈출의 스케일로 볼 때는 덩케르크 전체가 썰렁해보이게 게 만든 건 실책이라 해야겠습니다. 실제론 수백대의 전투기와 선박이 참여했지만 영화에선 그 넓은 해협과 하늘에 한두척, 서너대 정도가 전부라거나 거의 마지막까지 어선은 한척만 보인다든가 말이죠. 물론 '덩케르크'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므로, 실제 그림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여주려고 애써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징적인 세 개체의 묘사에 집중함으로써 긴장과 감정을 고조시키는 건 놀란의 스타일에 적절한 방식이고 실제로 '덩케르크는 이렇게 썰렁하지 않은데' 라는 제 머리의 외침에도 가슴은 감성의 파도를 그럭저럭 잘 타고 흘러갔습니다. 재미있게도 '덩케르크'는 놀란 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드라이하고 절제되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물리적으로 스케일이 작아보이는 것도 사실성 면에서는 부적절할지라도 물량의 웅장함으로 영화의 기조를 흔드는 걸 막습니다. 그런 절제가 신파극 대신 더 묵직한 깊이를 선사했다는 점에서 적어도 '인터스텔라'보다는 저에게는 더 높게 받아들여집니다.

 '덩케르크'는 절제되었지만 여전히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성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스타일이고, 이것이 맞지 않는다면 그저 그럴 것이며 맞다면...음 괜찮을 것입니다. 절제하는 면모를 보이는 반면 놀란 영화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질 정도로 감성적 영화인데, 그건 '덩케르크'에 서사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사건과 체험, 감정은 있지만 기승전결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영화로써 성립한다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고, 훌륭한 기교를 보면 평론가들이 왜 그렇게 높은 평점을 줬는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게 될지는 다른 문제일 듯 합니다.

 이런 이질적인 밸런스가 과연 다른 놀란 영화만큼 대중층에 잘 먹혀들지는 모르겠습니다. 흥행적으로는 그래서 사실 의문부호가 먼저 앞섭니다. 영화 보고 즐거운 것보다는 놀란이 신나게 재주 부리는 거 보고 '허허 그래 너 잘났다' 라는 생각이 드는 쪽이랄까요? '레버넌트'와 좀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저에게도 흥미로운 영화이자 체험이기는 했지만, 말초적으로 재미있었다거나, 감동적이라거나, 보고 싶어진다거나 하는 쪽과는 거리가 멀다고 해야겠습니다. 영국인들이라면야 영뽕에 차서 단체관람 후 펍에서 뒷풀이까지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하지만 좋아하게 되든, 싫어하게 되든 '덩케르크'는 직접 보고서 판단할 만한 가치는 있습니다.

ps.적당한 좌석을 못 잡아서 완전판 화면비로 볼 수 있는 용산 아이맥스가 아니라 영통 MX에서 봤지만, 지금으로썬 화면비가 이 영화에 그리 큰 의미를 가질 거라는 생각이 안 듭니다. 별로 기술적인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물론 직접 판단하기 위해 추후 관람 예정이긴 합니다만 전국에 한곳 뿐인 곳으로 힘들게 가서 볼 가치가 있을 거 같진 않네요.



덧글

  • 봉학생군 2017/07/20 13:26 # 답글

    놀란까 놀란빠 둘다 흡족하리라 봅니다. 서로 원하고 부족했던 점들을 각각 다 채워주니는 감동니뮤ㅠㅠ
  • eggry 2017/07/20 13:44 #

    하하 그럴리가요
  • alainprost 2017/07/22 16:58 # 삭제 답글

    전쟁 영화에 논리는....
  • eggry 2017/07/22 17:06 #

    앞뒤가 맞느냐는 의미의 논리라서 전쟁영화라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애초에 전쟁영화는 영화지 전쟁이 아닙니다.
  • alainprost 2017/07/23 17:41 # 삭제

    그렇죠 영화라는 것을 크게 보면 맞는 말인데 그 논리적이지 않다는게 어느 부분에 해당되는지 모르겠네요
    집어서 지적해봐야 그냥 개연성 정도이지
  • eggry 2017/07/23 18:25 #

    그냥 논리 자체가 없는 영화라는 얘기지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한 얘기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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