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 - 드디어 찾은 DC WAY by eggry


 '원더우먼'에 대한 얘기는 '원더우먼'만 얘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DCEU는 그동안 상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내용이나 평론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고, 어디까지나 요행적인 흥행에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필살기'저스티스 리그'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여태까지 도전자들은 모두 좋은 평판을 남기지 못 했고 이번 도전자인 '원더우먼'은 그만큼 적지 않은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맡는 게 원더우먼이라니?

 오늘날 원더우먼은 오랜 해석과 역사를 통해서 발전하기는 했지만(그렇긴 해도 태생 때문에 UN 여권 홍보대사 선정은 여전히 논란을 낳았습니다.) 그 태생은 다분히 여성상품화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마존의 여전사라는 설정이나 패션은 과연 고전적 아메리칸 코믹스의 틀을 넘어서 실사에서 제대로 융화될 수 있을지 의심이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DC의 메이저 히어로들 중에서 프랜차이즈의 평판이라는 큰 무게를 짊어지는데 적절하기로는 뒤에서 두번째라고 여겨도 그리 틀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첫번째는 그...녹색의...어흠.

 원더우먼의 특성과 상황을 생각할 때 사람들이 우려를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좋은 소식은 그게 기우였다는 것이죠. 원더우먼은 그 이질적인 특징 덕분에 유니버스 놀이와는 가장 연관이 적은 형태로 독립 영화를 갖게 됐습니다. 시기적으로 여태껏 나온 DCEU 중 가장 먼저이기 때문에 오히려 개별작으로써는 더 자유로운 입장입니다. 그리고 최근 히어로 영화들의 문제점과 제 리뷰를 보아온 분들이라면 이걸 좋은 출발로 여긴다는 것도 이미 아실 겁니다.

 '원더우먼'의 초반부, 데미스키나라는 별천지와 거기서 나와서 시골뜨기의 도시기행처럼 진행되는 파트는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다이애나의 철없음과 세상물정 모름은 이 단계에서는 약간 고리타분한 유머센스 정도로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원더우먼의 패션과 무기는 당연히 1차세계대전이란 배경에 그렇게 잘 어울리진 않습니다. '퍼스트 어벤저'와의 비교는 흥미로운데, 그쪽은 캡틴 아메리카를 상대적으로 '그럴싸하게' 묘사하려고 한 반면 하이드라는 우스꽝스러운 나치 변종 같은 식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원더우먼의 패션 때문에 원더우먼 쪽이 이질감 자체는 더 심하다고 봐야죠.

 하지만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가고, 다이애나가 본격적으로 갈등과 마주하게 되면서 앞서의 다소 어색하고 장난스럽던 부분들은 온데간데 없어집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개그하다가 신파극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그 앞부분의 천진한 모습들이 전체 이야기에서는 아주 큰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초반에는 간과되는 듯 하지만 후반부에 더욱 명확해지는 것은 바로 다이애나가 신이라는 것입니다. 그건 단순히 초인적인 힘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나 사명 같은 정체성적인 부분까지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신적 존재와 인간의 관계야 말로 DC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코드라고 생각합니다.

 마블과 DC 히어로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물론 마블에도 아예 '우주적 존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적 존재는 있습니다. '어벤저스'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처럼 아예 그런 존재들과 싸우는 경우도 존재하죠. 토르는 대놓고 신입니다. 하지만 마블 세계에서 이런 신적 존재는 일상적으론 그다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특이한 케이스(토르는 다른 히어로와 그리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혹은 특별 보스급 정도로 취급되죠.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캡틴아메리카 등은 어디까지나 인간입니다. 그냥 특별한 인간일 뿐이죠. 그래서 인간으로써의 갈등이 핵심이 됩니다.

 하지만 DC의 가장 대표적인 히어로들, 슈퍼맨, 원더우먼, 아쿠아맨[...] 등은 인간이 아닙니다. 혹은 인간적 범주를 넘어선 힘을 내죠.(그린...그린...) 인간 속에 숨어있는 신적 존재들이죠. 물론 또다른 대표 히어로인 배트맨은 엄연히 인간이지만 마블이 그렇듯 예외는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든 인간에게 실망하고, 폭군이 될 수 있습니다. 인저스티스처럼 말이죠. 그런 신적 존재가 어째서 하찮고 불완전한 인간들을 도와야 하는가-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인간을 사랑하고 지킬 수 밖에 없는가가 DC 히어로들을 관통하는 코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타락을 막고 희망을 주는 소시민들이 있습니다. 스티브나 알프레드, 지미 같은 이들 말입니다. 아 근데 지미는 죽어버렸죠 젠장.

 사실 그런 코드 자체는 '맨오브스틸'이나 '배트맨 v 슈퍼맨'에서도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맨오브스틸'은 어디까지나 싸우기 바빠서 일단 고민은 나중으로 미루는 것으로 끝났고, 결론을 내는 책임을 받은 '배트맨 v 슈퍼맨' 역시 이 부분을 잘 다뤄내진 못 했습니다. 유심히 살펴봐야 그런 의도가 있기는 했다는 걸 깨닫는 정도죠. '정의(저스티스)의 시작' 이라는 부제는 분명히 그런 의도가 있었음을 시사하지만 내용은 단순히 슈퍼맨과 배트맨의 내적 선함이 발휘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재밌게도 여기서도 원더우먼은 염세적인 태도를 가지면서도 사람들을 돕는다는 본능에 결국 지고 마는 모습을 보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신적 존재의 갈등과 인간과의 관계라는 부분은 '원더우먼'에서 아주 잘 다뤄지고 있습니다. 다이애나는 애초에 신화의 세계에서 나온 존재이며, 궁극적으로 대놓고 신이라고 불립니다. '배트맨 v 슈퍼맨'에서 숭배적 의미로 슈퍼맨이 신 취급 당하는 것과 달리 본연 그대로 신인 것입니다. 다이애나는 인간과 닮았지만 인간이 아니며, 인간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인간세상을 잘 알지도 못 합니다.

 다소 우스꽝스럽게 그려졌던 인간세상 탐험은 후반에 신화적 면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다이애나의 세계관이 파괴되어 혼란에 빠지면서 극명한 대비를 이루게 됩니다. 다이애나가 고뇌를 극복해내고 거듭나는 과정은 매우 진지하고 호소력 있습니다. 그리고 다이애나의 혼란은 바로 앞서의 추호도 의심이 없던 밝고 확고하던 세계관 묘사가 있었기에 더 빛을 발하게 됩니다. 후반부 갈등과 극복은 대단히 강렬하고 카타르시스 있어서, 저도 모르게 흥분하고 씰룩거리면서 웃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또 재미있는 점은 1차세계대전이 배경인 점입니다. 1차세계대전은 여러 의미에서 세계의 종말이었습니다.(다분히 유럽적 관점이긴 하지만) 2차세계대전은 더 큰 전쟁이었지만, 궁극적으로 1차세계대전의 후일담일 뿐이었고 1차세계대전이 가져온 세계와 가치의 종말에는 미치지 못 했습니다. '원더우먼'에서 종종 언급되는 것이 가치(Value가 아니라 Deserve로 표현하지만)인데, 가치있다고 믿었던 것이 존립의 위기를 맞는다는 점에서 메타적으로 1차세계대전은 매우 적절한 선정이었습니다. 분명 이걸 논할 분이 제 주변에 두세명은 있습니다.

 다만 영화의 기교적인 부분에서는 아직 아쉬움이 많이 보입니다. 원더우먼은 영웅의 탄생 정도가 아니라 태생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꽤나 긴 내용을 담게 되는데 그 덕분에 너무 많은 게 들어가서 집중력이 좀 떨어집니다. 파트 간의 분위기와 테마 전환도 큰 편이지만 그 전환도 썩 매끄럽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영화 길이 자체가 길게 만들어져야 했냐 하면 그건 또 아니라서, 사실 밀도 자체는 그리 높지 않아 전체적으로 늘어지는 감이 있습니다. 액션이야... 뭐 원더우먼의 무기와 전투가 별로 화려할 구석은 없긴 하지만 그래도 훌륭하다고 하긴 힘드네요. 슬로우모션도 너무 많고...몇몇 맘에 드는 연출도 있긴 하지만요.

 오락성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마블은 물론 '배트맨 v 슈퍼맨'과 비교해도 아마 좋게 보긴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나온 총 4개의 DCEU 영화 중, 별로 히어로에 의미를 두지 않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제외하면 세번째에 와서야, 그것도 상대적으로 기대를 덜 받는 원더우먼이란 캐릭터에 와서야 DC 히어로가 어떤 이들이며, 어떤 이야기를 해야하는지 깨달았다는데 의의를 두려 합니다. 왓챠 평점은 '윈터솔져'보다 0.5점 낮게 줬습니다만, 솔직히 개인적 만족감으로는 윈터솔져와 동급, 아니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동안 너무 답답하고 갈증을 느껴서 더 그런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물론 '원더우먼'은 독립성이 강한 영화이며, '저스티스 리그' 역시 이렇게 될 거라고는 사실 기대하지 않는 쪽이 나을 겁니다. '어벤저스'가 무색무취의 블록버스터였던 것처럼, 히어로 모아놓고 쌈박질에 집중하면 이야기가 사실 잘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긴 해도 '원더우먼'이 왜 좋은 평가를 받는지 DC와 워너가 이해하고, 앞으로 잘 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은 갖게 됐습니다. 배트맨이나 슈퍼맨이 '원더우먼' 정도로 나온다면 좋아서 견딜 수가 없을 겁니다.



덧글

  • 나이브스 2017/05/31 22:38 # 답글

    마블은 코믹을

    DC는 진정성을 밀고 간다면

    이윽고 두개의 산맥이 대립하게 될 것이죠.

    가오겔2보다 원더 우먼이 재미 있는 건 역시 마블이 갖지 못한

    DC만의 무기를 찾은 결과란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만 간다면 좋지만...

    다음 저스티스 리그는...
  • 동굴아저씨 2017/05/31 22:58 # 답글

    우려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 정도면 뚜껑을 까봐야 알겠군요.
    언제 보러가지(...)
  • Ryuki 2017/06/01 00:06 # 답글

    제 경우는 영화를 보고 스토리 전개나 연출이 너무 올드한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요.
    (물론 영상미야 배트맨vs슈퍼맨도 그랬듯 만족스러웠습니다만...)

    물론 제 성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영화를 보면서 DC 캐릭터에 대한 팬심이 없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호불호가 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좀 들었습니다.

    DC는 마블과 다른 매력이 있다! 라는 것을 팬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라이트하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커서일까요...
  • eggry 2017/06/01 08:06 #

    흥행적으로는 확실히 어려움이 있어 보입니다. 사실 수스쿼보다 더 팔릴지도 좀 의문스러운데... DC의 무거운 감각이 양날의 검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액션쇼로 만들자니 아직 그쪽에서 마블보다 솜씨가 딸리는 것도 한계긴 하네요.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 2017/06/01 07:29 # 삭제 답글

    리뷰 중간쯤에 말씀하신 양사의 캐릭터 비교글은, 영화와 코믹스가 좀 구분없이 섞여있는거 같아요. dc, 마블영화 캐릭터인지, 코믹스 캐릭터인지... 실사영화와 원작코믹스간의 캐릭터해석과 표현에는 여러모로 간극이 좀 있다고 보는데요..
  • 차범근 2017/06/01 09:11 # 삭제 답글

    당신은 세계를 구해줘.
  • 13월 2017/06/02 16:39 # 삭제 답글

    역시 계란소년님 DC충이었어....어떻게 MCU의 갓작 퍼스트 어벤져보다 원더우먼이 더 뛰어나다고 극찬할수있죠...실망입니다.
    영화적 재미와 액션, 스피디한 전개 등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퍼스트 어벤져와 달리 원더우먼은 괜히 진지해보이려다가 지루하기만 하고 전개는 늘어지기만 합니다. 또 액션씬은 노골적으로 퍼스트 어벤져를 흉내내려다가 슬로모션 남발로 완전히 망했죠.

  • alainprost 2017/06/04 10:44 # 삭제 답글

    이제는 너무 지겨운 독일 페러다임과 인간은 선한면도 존재한다는 식의 노골적 대사들에 지쳐쓰러지게 해주는 영화였어요ㅠ
  • 행인1 2017/06/04 11:53 # 답글

    왜 1차대전일까 생각해보았는데 2차대전이 배경이었면 아마 퍼스트 어벤저랑 주구장창 비교되었을테니 차라리 나은걸지도 모르겠습니다.
  • alainprost 2017/06/05 22:39 # 삭제

    역사적으로 1차대전이 가장 명분 없는 무쓸모 전쟁 중 하나라 그런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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