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 -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논란 by eggry


※ 스포일러 다량 있음

 트위터에서도 한번 얘기한 적 있는데 그건 왕따 소재라는데 국한된 얘기였고... 사실 이 만화는 너무 많은 소재와 코드를 뒤섞어 놓았기 때문에 그 중에서 '어느게 제일 먼저 보이느냐'가 인상과 평가를 결정짓게 된다고 봅니다. 많은 분들이 소학생 시절의 발단 때문에 장애와 왕따 문제에 집중하게 되는데, 사실 그건 이야기 전체로 보면 전제에 가까운 내용이고 실제로 더 비중을 두는 건 정작 둘의 현재극복 쪽입니다. 그런데 당연히 왕따와 용서 문제가 훨씬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라 문제입니다.

 쇼야가 상황이 역전되어 왕따 당하게 되는 것, 그에 따라오는 자기혐오 및 대인적 문제가 메인이지 사실 소학교 시절의 왕따 문제는 대전제 수준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왕따는 프롤로그에 지나지 않고, 쇼코의 장애 역시 왜 그런 일이 있었나에 대한 바탕일 뿐 장애극복 같은 내용도 아닙니다. 선천적 장애로 소통에 문제를 겪고 안으로 파고 드는 습관이 든 쇼코와 후천사회적으로 고립된 처지로 몇년을 지내 온 쇼야의 문제는 사실 과거(왕따)의 극복이라기보다는 자기자신의 극복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왕따 문제가 먼저 나온 마당에 그건 일단 재쳐두고, 다른 얘기를 하는 건 사실 무리인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되어버렸다보니, 이 작품을 왕따/장애 문제로 보게 된다면 전혀 뭔가 하려 하지 않으니 잘못된 걸로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소학교 때야 몰라서 그렇다 쳐도 폭발하고 전학가더니 나이 먹고 만나서 쇼코가 왜 그렇게 온건한가-부터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거죠. 왕따의 트라우마라는 건 상대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고 해도 쉽게 해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왕따 가해자와 태연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편하게(혹은 안일하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잠깐 본론에서 빠져서, 왕따 문제로 본다면 쇼야가 확고한 뉘우침이 있다는 것, 그리고 잘 풀려가는 순간마다 '이래도 되나' 라고 고민하거나 '그렇게 잘 될 리가 없지' 같은 상황이 나오는 점은 가상하다고 말해줄 정도의 노력(작가의)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런 사람은 현실에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기 때문에 왕따의 트라우마를 따지고 들면 별 수 없는 건 변함 없지만 말이죠. 어떤 분은 이런 거라도 나와서 자기도 당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게 해주는 효과라도 있길 바란다는데...자기가 당하기 전엔 몰라요. 창작이라고 웃어넘기겠죠. 그런 계몽적인 관점이라면 오히려 왕따를 그저 과거지사 취급한다는 점에서 독이라고 봅니다.)

 이 부분은 소재적으로 너무 이것저것 뒤섞이는 바람에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작가가 일단 잘못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상황을 만들기 위해 왕따와 장애를 장치로 썼지만, 문제는 그 장치가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에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보게 만들어 버린다는 거죠. 그게 손가락을 보는 사람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손가락이 태양 만하다보니... 너무 뻔하게 잘못될 수 있는 부분이었어서 창작자 쪽의 책임이 더 크다고 봅니다.

 뭐 왕따와 장애의 강렬함이 없었다면 단편의 인상도 약했을 것이고 장편 버전이 등장하기 어려웠을 거라고는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단편이 목적이었던지라 그 뒷이야기가 붙으면서(물론 어느정도의 구상은 이미 했더라도) 혼란이 오게 된 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물론 작가는 쇼코의 기본적인 태도가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멋쩍게 웃는 것과 자기혐오에 지배되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건 인터뷰를 보고서나의 이야기이고 작중에서 그게 제대로 전달되었다곤 보지 않습니다.

 어찌되었든 의도한 이야기는 둘의 피해와 가해가 아니라, 둘의 사회성 회복으로 가는데 그걸 또 훌륭히 해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분명 과거 친구들을 만난다든가, 새 친구를 사귄다든가 하는 식으로 진전을 이루기는 합니다. 그리고 친구관계가 파국을 맞는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이제 그게 잘 극복되면 되는데... 클라이막스는 친구들을 배제하고 상처입은 두 짐승의 핥아주기로 갑자기 축소되어 버립니다. 그 이후 친구들과 회포를 풀긴 하지만 뒷풀이나 여담에 가까운 정도로 그리 의미가 있는 건 아닙니다.

 거기다 둘의 연애감정까지 섞이면서 메시지의 혼란은 더 가중됩니다. 왕따 문제와 엮여서 피해자랑 가해자가 연애한다고? 같은 얘기가 나오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게 의도는 절대 아니지만 창작자로썬 분명히 주의했어야 하는 부분이고 만화에서 남자여자 붙여놓으면 그렇게 끌고가고 싶은 생각이 들기야 하겠지만(해피엔딩적 측면에서도) 사실 없는 쪽이 더 나았을 거라 봅니다. 그래도 다 끝난 게 아니라 앞으로도 힘내서 살아가야 한다고 한 마무리는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죠.

(첨언2. 그렇게 큰 비중은 아니지만 일본 특유의 향토적 감각도 한국적 관점에서 볼 때 이해도를 저해시킬 수 있는 요인이긴 한 듯 합니다. 소학교 시절 학급우들과 같은 학교거나 가까운 학교에 있는 경우가 많고, 또 길거리에서도 그렇게 드물지 않게 마주치는 기회가 있다든가... 결과적으로 그런 여건이 나쁜 소문이 퍼지기 쉽게 한다거나,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만듬으로써 문제를 고착시키는 부분에서는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심지어 앞으로도 해쳐나가야 한다는 결말도 성인식에서 동창생을 보는 것으로 묘사되니... 사실 왕따 문제라고 보면 가장 손쉬운 해결책인 다른 지역으로 전학가서 볼 일 없이 새출발 한다- 일텐데 가능성의 하나로도 취급되지 않는 게 기이할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단순히 좋다거나 별로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복잡(나쁘게 말하면 뒤죽박죽)이기 때문에, 평가 같은 식의 표현으로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뭘 하려고 했는진 알겠고 나름 애쓰거나 가상한 면도 있긴 한데, 의도한 바를 그렇게 잘 이뤄내지는 못했다고 해야겠습니다. 메시지의 혼란이나 그걸 부추기는 문제적 소재의 선정에 대해서는 작가가 책임을 면하기는 힘들겠죠. 그래도 어려운 시도를(부분적으론 자기 발을 쏘긴 했지만) 했다는 점은 높게 사고, 그 혼란에 가까운 복잡성이 생각해보는 면도 있었기 때문에 읽는 것 자체는 즐겼습니다. 남에게 권하기야 심히 꺼려지지만 말이죠.

 마지막으로 애니메이션입니다만, 제목은 저리 해놓고 정작 맨 마지막에, 비교적 간략하게 다루려 합니다. 일단 원작이 저런 상태이기 때문에, 그리고 권수가 어느정도 되다보니 2시간 짜리 극장용으로썬 시간이 부족했던 건 분명합니다. 상당한 생략과 단순화가 필연적인데, 그 부분에서 그다지 잘하진 못한 거 같네요. 소학교 시절만 해도 그렇게 적은 양은 아닌데 그것보다 더 많은 고등학생 시절까지, 순차적 전개가 아니라 플래시백을 활용해 애쓰곤 있지만, 원작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좀 빠르고 비약이 있습니다.

 원작 볼 때는 잘 풀린다->아 그렇겐 안 되나->잘 풀린다 반복 아닌가 하는 부분이 좀 있었는데, 막상 애니를 보니 그냥 분량늘리기용으로 허투로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분명 큰 틀에서 제자리걸음인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도 차근히 쌓아하는 것들이 있었더라는 거죠. 자잘한 에피소드들은 아예 빠진 것들도 있고, 진행을 빠르게 하려고 연출이 바뀐 부분들도 있는데 시간 상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극장용이 잘못된 포맷 선택이었나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뭐 TV판이거나 해서 시간이 더 길었다고 해도 원작의 한계 때문에 조용할 리야 없었겠지만서도.

 왕따와 장애라는 소재가 시선을 앗아가는 바람에 정작 본 주제로 주의를 충분히 끌지 못 하는 건 원작의 원죄인데, 애니 쪽은 생략과 단순화가 좀 더 낙관적인, 낭만적인 방향 쪽으로 기울다보니 이 부분에서의 불편함은 사실 원작보다 더 합니다. 오해를 유발할 여지도 더 많은 듯 싶고... 원작에서도 다소 비약적인 전개였던 클라이막스와 피날레는 애니에서는 더 가볍고 밝은데다 좀 급하게 흘러가는지라 더 허전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원작에 비해 소학교 때의 인상이 지워지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기도 한지라, 더 논란을 벗어나기 힘들 거 같더군요. '원작에 적대적이지 않은 사람' 정도나 볼만한 듯 싶습니다.



덧글

  • 푸하핫 2017/05/12 23:39 # 답글

    애니메이션은 좀 특별한 러브스토리에 다소 민감한 주제의식을 잘 끼얹기만 한 작품.
    그걸 맛있게 요리했냐고 하면 글쎄올시다인 듯........
  • NRPU 2017/05/13 14:10 # 답글

    니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일단 이것저것 버무려봤어...인듯ㅡㅡ
  • ColoR 2017/05/13 20:53 # 답글

    아무래도 쓰신 감상을 보아하니 제대로 된 이해를 위해선 원작쪽을 독파할 필요성이 있어 보이네요. 주연 두명의 이야기로는 개인적으론 애니메이션 자체로도 자기극복을 통한 완결성을 띈다고 봅니다만 역시 주변인물들이라던가가 뒷맛이 영 좋게 남지 않는 걸림돌이 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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