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5) - FF7 출시 그 후(2) by eggry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1) - FF7의 기원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2) - 게임 개발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3) - 해외 출시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4) - FF7 출시 그 후 (1)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5) - FF7 출시 그 후(2)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6) - 에필로그

스퀘어가 파이널판타지 영화를 만들다


90년대 중반 하이엔드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를 채용하면서, 사카키바라 모토노리가 입사했다. 처음엔 Final Fantasy 6: The Interactive CG Game 테크데모를, 그 후에는 파이널판타지7의 컷씬을 담당했다. 그는 스퀘어의 영화 "파이널판타지: 스피릿 위딘"의 조감독을 하기도 했으며, 그 후 "스피릿 위딘"을 작업했던 1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CG 애니메이션 회사 스피리트 애니메이션을 설립했다. 2017년 지금도 그는 전직 스퀘어 수석 부사장 야나기하라 준이치와 함께 스피리트 애니메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파이널판타지7의 뒤를 따른 것 중 많은 이들이 가장 야심차다고 말할 것은 1997년 하와이 호눌룰루에 스튜디오를 설립한 것이다.

 스퀘어는 전세계에 여러 스튜디오를 갖고 있었지만, 하와이 스튜디오는 게임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영화도 만들었던 것이다. 스퀘어가 FF7을 만들면서 CG 자산을 끌어올리자, 사카구치는 CG 기술을 더 밀어붙일 잠재력을 보았다.

 그 발상의 첫 결과물인 "파이널판타지: 스피릿 위딘"은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와 별 연관이 없는 대예산 영화였다. 영화는 2001년 개봉하였다.

하시모토 카즈유키: FF7이 끝나가면서, 사카구치 씨는 제 사무실을 방문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FF7에 동영상이 정말 많군. 이걸로 영화도 만들 수 있겠어." 저는 이렇게 말했죠. "진심이세요?"

타케치 토모유키: FF7의 성공 후 바뀐 게 두가지 있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세운 두가지 목표였죠. 하나는 우리가 장차 5에서 10년 후 게임에서 그래픽이 더 중요해질 걸 알았기에 거기에 더 투자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우리가 파이널판타지 영화를 만들기로 한 이유였죠. 또다른 하나는 네트워크 기능이 중요해질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파이널판타지 온라인(파이널판타지11)을 만들었죠.

하시모토 카즈유키: 사카구치 씨가 저를 스퀘어에 채용했을 때, 저는 그에게 스퀘어가 그저 세가나 남코와 경쟁하려고 하는 거라면 관심 없다고 했습니다. 스퀘어가 진정 디즈니 같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들과 경쟁할 생각이라면, 그럼 흥미 있다고 했죠.

이와사키 준: 사카구치 씨의 꿈이었습니다. 첫 3D 그래픽 영화를 만드는 것 말이죠.

타케치 토모유키: 어떤 면에서 사카구치 씨는 FF7의 성공 후 정말 많은 걸 할 자유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스퀘어는 그의 회사는 아니었죠. 스퀘어는 야심찬 회사였고,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회사로써 디즈티보다 더 커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린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아,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뭐지? 그 정의가 뭐야?" 그렇게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우린 그냥 게임만 만드는 회사가 아냐. 그러니 영화도 만들어보자고!"

하시모토 카즈유키: FF7을 마무리 한 직후, 사카구치 씨가 저에게 영화 프로덕션 스튜디오를 하와이에 설립하자고 했습니다. 스퀘어 직원 대부분은 출시 후 한달 휴가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저는 그렇지 못 했습니다.(웃음) 저는 영화 프로젝트 작업을 해야했습니다. 하와이 스튜디오에 매우 초기부터 참여했습니다. 사무실 확보부터 임대가 끝날 때까지 말이죠. 그러니 처음부터 끝까지라고 해야겠죠. 대략 5년 정도, 1997년부터 2002년까지였습니다.

카지타니 신이치로: 사카구치 씨는 하와이로 떠나서 호눌룰루에 스튜디오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일본의 스퀘어 게임과는 연을 끊었죠. 영화 제작에 완전히 몰입했습니다.

사카키바라 모토노리: 공식적인 하와이 스튜디오의 목적은 일보노가 미국의 아티스트들을 연결시켜준다는 의미였습니다. 하와이가 두 나라의 중간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실제로는 사가쿠치 씨가 하와이를 좋아해서였습니다.

[필자 주: 영화는 개봉 후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실패를 맞았다. 평론모음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서 비평가 점수는 44%, 관객 점수는 48%이다. 팀원들은 이 평판이 세가지 요인 때문이라고 본다: 스토리가 서양 관객들에게 매력적이지 못 했으며, 캐릭터들이 현실적이긴 했지만 유명인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9/11 테러 즈음에 개봉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부는 제작과정에서의 불화가 원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시애틀의 전직 변호사인 야나기하라 준이치는 90년대에 스퀘어가 세고스이 사무실을 여는 것을 도왔다. 그는 레드몬드의 첫 스퀘어 본부를 설립했고, 그 다음엔 LA로 옮기는 일을 했다. 마지막으로 호눌룰루의 영화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야나기하라는 2002년 문 닫는 날까지 호눌룰루 스튜디오에 남아 법적인 문제를 마무리 했다. 그 후 동료들과 함께 독립 CG 애니메이션 회사 스피리트 애니메이션을 설립했으며 "팩맨 앤 더 고스틀리 어드벤쳐" 등을 제작하였다.

하시모토 카즈유키: 우린 영화제작을 어떻게 할지 먼저 결정해야 했습니다. 게임제작은 소규모 공장이지만 영화제작은 대형 공장이죠. 쉽지 않았습니다.(웃음) 픽사를 아시나요? 그들은 영화제작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데만 10년을 들였습니다. 스퀘어는 2년 만에 해냈죠.

야나기하라 준이치: 영화를 처음 만들 때면 언제나 학습곡선이 있습니다.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가 "개발 지옥" 이라고 불리는 시점이 오죠.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너무 많은 인풋이 들어와서 지연되는 단계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스토리를 달성하지 못 했습니다.

하시모토 카즈유키: 일본 게임업계에서 일할 땐 밤 늦게까지 일합니다. 미국이나 다른 많은 나라에서는 개인의 삶을 더 우선시 하죠. 외국에선 야근을 별로 하지 않습니다. 늦어도 7시나 8시면 집에 가죠. 모든 게 달랐습니다.

카와이 히로시: 검증과 균형감이 부족했습니다. 게임을 만든다면 사카구치 씨는 뭐가 되고 안 되는지 감각 면에서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일 겁니다. 하지만 다른 메체에서는...실질적으로 아무도 분명한 목표제시와 건설적 비판을 하지 못한 게 패인인 것 같습니다.

알렉산더 O. 스미스: 영화는...완전한 재앙이었습니다. 저는 한 파티에서 변호사와 얘기했었는데, 그녀는 영화제작과 관련해 업무를 보고 있었죠. 세제혜택이 많은데도 하나도 챙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와이 출신 10%를 채용하면 큰 감세혜택이 있어요." 라고 말하면 "우린 우리 팀만으로 합니다." 같은 식이었거든요. 그게 사카구치 씨의 방식이라곤 생각친 않습니다. 그는 "아니, 우린 순수성을 고집할 거야. 이건 우리 팀이라고." 라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생각이란 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몰려온 탓에 기능장애가생겨서 어떤 사건이 생기더라도 아무도 듣지 못 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게 그런 조직구조일 때 생기는 문제입니다. 가족적인 조직 말이죠. 사업이라기보단 가족인 것처럼 운영되는 일본회사의 풍토병입니다. 그러니 가족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겁니다. 놓쳐버린 기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돈을 많이 아낄 수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죠. 간단한 절세 혜택만 받았다면 수백만 달러는 쉽게 아꼈을 겁니다. 그냥 현지 청소부를 고용하는 것만으로도 되는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마루야마 요시히로: FF7의 성공이 사카구치 씨의 스타일을 약간 부정적으로 바꿔놓은 것 같습니다.(웃음) 그는 사내에서 모든 걸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파이널판타지 영화에 더욱 많은 돈을 쏟아붓게 만들었고, 더 큰 실패로 만들었죠. 영화를 만들면서 그는 약간 이성을 잃었습니다. 영화의 초기 예산은 4000만 달러였고, 결국 1억 5천만 달러로 마무리 되었죠. 사카구치 씨가 채용한 인원으로 계산을 해보았는데, 사실 간단한 계산으로도 애초에 4000만 달러로는 불가능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시작해버렸죠. 회사는 계속 돈을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카와이 히로시: 일본에는 "그건 남의 돈이야."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의 돈을 쓸 때는 "네 것이 아니니 잘 쓰도록 해." 라고 하죠. 하지만 "내것도 아닌데 막 써버리지." 라는 말도 있습니다.

야나기하라 준이치: 스퀘어가 모든 예산을 댔습니다. 자체 충당이었죠. 이걸 조금만 연구하고 분석해본다면 기사거리를 몇개는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영화 프로젝트 후 스퀘어는 재정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았죠.

타케치 토모유키: FF7에서 우리가 번 돈으로 우린 이렇게 결정했습니다. "좋아, 절반은 미래에 투자하고 절반은 저축해두자고." 다행히도 이덕분에 영화가 망했어도 우린 경영위기로까지 가진 않았습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에서는 성공아리곤 할 수 없었죠. 하지만 일본 게임회사가 2000년에 CG로 영화를 만든 건 대단한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결국 칭찬받을 것이라고 봐요.


두 버전의 "파이널판타지: 스피릿 위딘" DVD 출시 외에도 스퀘어는 작가 스티븐 켄트 및
공략집 출판사 브래디 게임즈와 함께 영화의 기술, 디자인, 대본을 다루는 책을 출판했다.


사카구치가 스퀘어를 떠나고, 회사는 변하기 시작하다

 "스피릿 위딘"의 실패 후, 스퀘어는 다른 문제에 시달렸다: 다음 대작인 파이널판타지10에 지연된 것이다. 게임업계에 연기는 흔한 일이었으며, 스퀘어는 다른 작은 프로젝트들이 많이 있었기에 계속 나아갈 수 있었지만 두개의 큰 재정적 후퇴가 너무 근시일에 일어난 탓에 스퀘어를 힘든 여건으로 몰아넣었다.

 결국 사카구치와 타케치는 스퀘어를 떠나야 했다.

 최고위 창작자와 비즈니스 인사의 사임 후 스퀘어는 많은 이들에게 다른 회사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타케치 토모유키: 2001 회계년은 3월에 끝났으며 스퀘어 사상 처음으로 적자였습니다. 영화가 주된 이유였죠. 하지만 파이널판타지10이 다음해로 연기된 것도 큰 요인이었습니다. 누군가 적자의 책임을 져야 했고, 제가 사임해서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사카구치 씨도 이러더군요. "당신 혼자 그만두는 건 공정하지 않아. 나도 책임을 지고 그만두겠어." 그렇게 사카구치 씨도 스퀘어를 떠났습니다.

사카구치 히로노부: 제가 회사를 그만둔데는 아주 많은 이유가 있었죠.(웃음) 하지만 정리하자면...제 공식 직함은 수석 부사장이었고 그 말은 제가 관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있었다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저는 책상에 놓인 서류뭉치를 검토하고 승인해야 했습니다. 노동법 개정이 있다면 저는 교육을 받고 직원들에게 변경안을 알려줘야 했죠. 이런 류의 일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저는 창작에 다시 관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스트레스가 점점 저에게 차오르고 있었죠. 저는 스퀘어를 정말 사랑했으며, 제 직위를 고맙게 여겼지만 저에게 맞지 않았습니다. 그게 스퀘어를 그만둔 주된 이유입니다.

노무라 테츠야: 저에게 둘의 사임은 "어? 뭐가 일어난 거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웃음) 나이에서 보다시피 세대차는 있었습니다. 사카구치 씨 세대, 그리고 키타세 씨 세대, 그 맡으로는 저같은 젊은이들이었죠. 연상과는 그다지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습니다. 그가 그만뒀다는 얘기를 듣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가 아마 마지막으로 알았던 사람일 거에요. 그날 기억으로는 출근해보니 모두가 침울한 표정이더군요.

알렉산더 O. 스미스: 개인적으로는 "오, 한 시대가 끝났군."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다시 얘기하기 싫지만 제가 특별히 많이 참여했던 부분인지라, 결국 모든 건 영화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렇게 잘못된 일이란 생각은 안 들었죠. 분명 사카구치 씨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었죠.

하시모토 카즈유키: 사카구치 씨가 떠났을 때 저도 스퀘어를 그만뒀습니다. 저는 도쿄에도 직함이 있었기 때문에 호눌룰루 스튜디오가 폐쇄된 뒤 일본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죠. 하지만 회사가 많이 바뀌었다고 느꼈습니다.

노무라 테츠야: 이런 식으로 말해선 안 되겠지만 으음 뭐라고 해야할까요? 삼국지 같았습니다. 왕이 죽고, 내전이 벌어져서 모두가 싸우기 시작하는 거죠.


2012년, 스퀘어에닉스 본사는 신주쿠로 옮겼으며 지금도 이곳에 있다.

키타세 요시노리: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당시 사카구치 씨는 스퀘어에서 독특한 입지였습니다. 그는 수석부사장인 동시에 이사였고, 게임개발자이기도 했죠. 오늘날 스퀘어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많은 게 바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노무라 테츠야: 사카구치 씨는 스퀘어에서 정말 많은 걸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제는 여러 사람이 그 일을 나눠갖게 되었죠.

키타세 요시노리: 그가 떠나자 단일화된 비전도 변화되었습니다. 노무라 씨 말대로 사카구치 씨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역할을 맡게 되면서 더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들어왔죠.

카와이 히로시: 사카구치 씨처럼 회사에서 막대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자, 개발자와 아티스트, 디자이너 사이에 아무도 그처럼 중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특히 스퀘어에선- 분쟁을 피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되죠. 불행히도 많은 이들이 각자 해결하려는 방식은 엔드유저의 관점에선 좋은 게 아니었습니다.

하시모토 카즈유키: 특히 FF7 시기에 사카구치 씨는 모든 큰 결정을 다 내렸습니다. 그게 모두가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죠.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사카구치 씨가 떠난 뒤, 아무도 그같은 책임을 지지 않았고 모든 결정이 기나긴 시간을 들여 무수한 결제를 거쳐야 했습니다. 스퀘어는 더이상 빨리 움직이지 못 했습니다. "대기업 병"에 걸린 거죠.

카지타니 신이치로: 사카구치 씨가 결정하면 그냥 그대로 실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떠나자 여러 사람이 그 역할을 해야했죠. 좀 더 위원회 같은 식이 되었으며 시간이 더 많이 걸렸습니다.

마루야마 요시히로: 스퀘어소프트의 경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한 극단에서 반대쪽으로 가버렸죠. 그 전엔 비용을 통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비용억제가 큰 화두가 되었습니다.

사카키바라 모토노리: 스퀘어는 창의성보다는 비용에 더 신경쓰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인터뷰를 시작에 저는 스퀘어가 매우 창의적인 곳이었다고 언급했습니다. 창의성이 최우선이라고요. 맞죠? 하지만 영화 프로젝트 후, 스퀘어는 방향성을 바꾸었습니다. 특히 사카구치 씨가 떠난 뒤에요.

야나기하라 준이치: 1995년에서 2001년 사이에 모든 게 밀집되어 일어났습니다. 너무 빠르게, 급격하게 돌아갔죠.

알렉산더 O. 스미스: 가족기업에서 비즈니스 우선으로 전환이었습니다. 모든 게 계층화 되었고 부서 간의 단절이 더 심해졌죠. 우린 끝도 없는 보고서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이번 분기엔 뭘 하지?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같은 것들요. 상당한 문화적 격변이었습니다.

타케치 토모유키: 제가 스퀘어를 떠났을 때, 이미 많은 게 바뀌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스퀘어를 떠난 게 슬펐습니다. 하지만 스퀘어가 더 커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점은 행복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면 결실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떠난 뒤에 스퀘어가 잘 되어서 기쁩니다.


스퀘어가 파이널판타지7 자체를 시리즈로 만들다


파이널판타지7의 출시 후, 와다 요이치가 스퀘어를 경영하게 되었다. 팀의 일부는 형식적 절차를 중시하고 파이널판타지 스핀오프를 양산하는 그의 접근법을 싫어했다. 에닉스와의 합병이나 타이토, 에이도스 인수도 그러했다. 하지만 와다는 2013년까지 직위를 지켰고, 스퀘어가 투자한 클라우드 게이밍 팀 '신라 테크놀러지'를 설립하기 위해 경영자 자리에서 내려왔다. 와다는 이사회 의장으로써 전보다 적은 직무를 갖고 스퀘어에 2년간 더 있었다. 그 후 스퀘어를 떠나 신라에 중점을 두었지만 2016년 폐쇄되었다. 신라의 폐쇄 이후 와다는 여러 게임기업에 자문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대 초, 타케치와 사카구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스퀘어를 떠난 뒤 신임 사장 와다 요이치가 경영권을 잡으면서 스퀘어는 내부 뿐만 아니라 겉으로도 바뀌기 시작했다. 주 생산품인 파이널판타지도 몇년마다 나오는 시리즈에서 여러 가지를 가진 프랜차이즈로 변모했고, 스핀오프 출시가 점점 빈번해졌다.

 2003년, 이 스핀오프 중 하나는 스퀘어가 "컴필레이션 오브 파이널판타지7" 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새로운 CG 영화 "파이널판타지7: 어드벤트 칠드런"과 3개의 FF7 스핀오프 게임이 그것이었다. 일부는 스퀘어가 FF7이라는 말을 너무 채찍질해서 뽑아내려 한다고 보았다. 다른 이들은 이 접근법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좋아했다.

카와이 히로시: 사카구치 씨가 떠난 뒤 다른 관점에서 게임제작 비즈니스를 보는 사람이 들어오는 게 중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 게임개발 자체만이 아니라 출시와 세일즈까지 고려하는 사람 말이죠.

와다 요이치: 제가 2000년 스퀘어에 입사했을 때, 저는 게임업계가 더 크고 더 다각화될 거라고 전망했으며, 거기에 대응하려면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2000년 이전의 스퀘어의 목표와 2000년 이후 스퀘어의 목표는 좀 달랐지요...

파이널판타지 프랜차이즈의 독특한 점 한가지는 시리즈 넘버를 가진 게임에서 보통은 주인공은 같고 시리즈 작품 간의 테마도 연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파이널판타지는 매번 다르게 만들어졌죠. 그때문에 우리는 전체 FF 시리즈 밑에 하부 시리즈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거기서 FF7 게임 시리즈가 탄생하게 되었고, FF10도 스핀오프를 가지게 됐죠.

이와사키 준: 스퀘어가 파이널판타지를 낭비하고 있어서 저는 실망했습니다. 제가 회사를 떠난 뒤 미국 게이머 사이에서 파이널판타지에 대한 충성도가 저하되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알렉산더 O. 스미스: 캐사카우 브랜드를 이용해 돈을 버는 것과 브랜드를 해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는 게 옳았을까요? 그 부분에서 스퀘어가 잘 하진 못 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스퀘어가 "좋아, 50명이 있어. 나머지는 전부 2년 동안 휴가를 갔고, 이 50명이 파이널판타지 게임을 하나 만들거야" 같은 식이었다면 저는 매우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들이 어떻게 해낼까요? 그랬다면 정말 쿨했겠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대차대조표가 모든 걸 결정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을 몰아넣게 되죠. "우린 물건을 내놓아아해."

우에마츠 노부오: 개인적으로 저는 시리즈의 각 게임이 세심하게 다뤄졌으면 합니다. 그래서 한 작품에서 스핀오프나 속편이 줄줄이 나오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회사의 관점에서 세일즈나 금전적인 부분은 이해합니다.



2005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3 발표에서, 스퀘어에닉스는 파이널판타지7이 PS3에서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는 테크데모를 내놓았다. 덕분에 스퀘어가 완전한 리메이크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게 되었다. 팀원들에 따르면 당시에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 대신 소니가 스퀘어에닉스에 이 행사를 위해 FF7 데모를 요구했다고 한다. FF7 데모든지 아니면 신작을 말이다. 팀은 한달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익숙한 FF7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와다 요이치: 스핀오프를 내놓은데 금전적 이유가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제가 2000년 입사했을 때 스퀘어는 거의 파산하려 하고 있었죠. 그리고 에닉스와 합병 직전, FF10-2가 우리의 수익을 개선해주었습니다. 스퀘어 역사상 가장 좋은 실적이었죠. 그래서 우리는 협상에 더 강하게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객의 관점에서, 파이널판타지는 훌륭한 스토리와 탄탄한 캐릭터가 중요했고, 사람들은 캐릭터의 배경과 앞으로 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죠. 그런 외전적인 것에 대한 요구가 많았기 때문에 어찌ㅏ보면 우리는 그에 응하려고 했던 것 뿐입니다...

제가 확실히 하려 했던 것은 각 스핀오프가 같은 창작자의 물건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FF7의 스핀오프라고 치면 저는 키타세 씨와 노무라 씨를 핵심 크리에이터로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게임이 되어버릴테니까요.

노무라 테츠야: 처음에 우리는 FF7 스핀오프를 겨우 4개만 하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공식적으로 그걸 "컴필레이션 오브 파이널판타지7" 이라고 불렀고, 그 4개로 끝날 것이었죠. 그렇게 함으로써 시장을 과포화시키지 않으려 했습니다.

카와이 히로시: 유저의 기대치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관건이었다고 봅니다. 많은 스핀오프들이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걸 만드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는데 충분히 벌지 못 했어. 하지만 저기 빈 구석이 있으니 이걸 파보자고."

프랭크 홈: 스핀오프들이 품질 면에서 균일성이 있었다면-그들 중 일부는 훌륭했지만 나머지는 그냥 평범했습니다- 그건 좋은 일이었겠지만 또한 사람들은 만족할 줄 몰랐을 겁니다. 그럼 더욱 더 많은 파이널판타지를 원하게 됐겠죠. 사실 지금도 사람들은 파이널판타지를 더 내놓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파이널판타지7의 출시로부터 거의 10년 뒤, 스퀘어는 FF7 자체를 프랜차이즈로 만들어서
스핀오프와 책, 잡지, 기념품, 심지어 영화까지 만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다시 모인 스퀘어 스탭들


MIT 대학원생 카와이 히로시는 원래 번역가로 스퀘어에 면접을 봐서 일단 들어가고 다른 걸 해보자고 생각했다. 스퀘어는 그를 게임 디자이너로 채용하였는데, 그가 실제로 하고싶었던 것-프로그래밍-으로 재빠르게 옮겨갔으며, 닌텐도64와 플레이스테이션 초기 하드웨어를 실험했고 "Final Fantasy 6: The Interactive CG Game" 테크데모를 만드는 걸 도왔다. 그는 FF7에선 프로그래머로 일했으며, 이후 FF9에선 리드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2000년대 초, 그는 스퀘어를 떠나 마이크로소프트로 가서 프로듀서이자 리드 프로그래머로 '로스트 오디세이'를 포함한 여러 타이틀을 만들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프로그래밍 스튜디오인 In Control 을 설립하여 게임계 밖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스퀘어가 2000년대 초 변모하고 있는 동안, 사카구치, 타케치, 하시모토만 스퀘어를 떠난 건 아니었다. 수백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에서 그런 인력 이동은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팀원들이 마이크로소프트가 새로이 설립한 도쿄 스튜디오에서 두번째로 다시 모여서, 일본에서 엑스박스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MS는 스퀘어의 스가로 타카유키를 채용했는데, 그는 요시나리를 데려왔고, 또 요시나리는 카와이를 데려와 꼬리를 무는 채용이 되었다. 다른 여러 전 스퀘어 직원들도 들어오면서-마루야마는 2003년 마이크로소프트 저팬의 매니징 디렉터가 되었다- 마치 MS에서 작은 재결합을 이룬 것 같다고도 했다.

요시나리 타츠야: 스퀘어에서 MS로 팀을 재구축 하겠다는 의도가 있었거나, 새로운 스퀘어를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와 스가로 씨, 그리고 FF9에 참여했던 후쿠가와 다이스케와 야스이 소이치로가 한꺼번에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스퀘어에서 온 다른 사람들도 있었죠.

카와이 히로시: 개인적으로 저는 애플계입니다. 제가 PC를 하다 죽은 모습은 절대 보지 못 할 겁니다. 애플과 함께 자랐고,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MS로 안 간다"는 타입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퀘어에서 그다지 흥미로운 가능성이 없던 상황에서 MS는 새출발의 기회를 주었고, 또 MS의 대량생산 소프트웨어 전문가들과 함께 저는 뭔가 다른 걸 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직했죠.

저는 사카구치 씨에게 이직에 대해 말했고(제가 스퀘어를 떠나기로 했을 때 그는 아직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번만 날 떠날 수 있네. 한번은 용서하지. 하지만 두번은 안돼." 그게 그의 방침이었을 겁니다.

요시나리 타츠야: 스퀘어와 MS는 사실상 모든 게 달랐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을 고르라면 MS엔 초기에 사카구치 씨 같은 사람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리더십의 아우라를 지니고 모두를 끌고 가는 강력한 리더 말이죠.

카와이 히로시: 오리지널 엑스박스를 위해 MS는 일본만을 위한 게임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초기에는 3개의 팀이 있었죠. 그 중 둘은 망했죠. 저희 팀은 제가 손을 들고 "제가 책임자가 되겠습니다" 라고 하기 전까진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출시하게 된 타이틀은 '마가타마' 였습니다. 마가타마는 미국엔 출시되지 않았죠. 핵앤슬래시 게임으로 특별한 점이 없었지만 어쨌든 완성해서 출하했고, 당시에는 그게 목표였습니다.

당시 MS 저팬에선 상상할 수 있겠지만 사기가 저하되어 있었습니다. 프로젝트 셋 중 둘이 완성되지 못 했죠. 그 팀들은 해산됐습니다. 일본 개발자들이 본사로 보낸 피드백도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듀크 컨트롤러(역자 주: 초기 엑스박스에 포함된 미국인에게 적합한 큰 컨트롤러)가 나왔을 땐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MS 본사를 의혹의 눈초리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마루야마 씨가 들어와서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걱정 말게, 내가 정치적인 문제는 다 처리할테니."

마루야마 요시히로: 저는 엑스박스 초기부터 MS 간부 로비 바흐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어느날 저에게 접촉해서 엑스박스 일본 사업부의 매니징 디렉터를 찾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일본에서 엑스박스는 대단한 도전이었기 때문에 저는 다소 걱정됐습니다. 하지만 MS가 일본을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전폭지원할 거라고 했고, 그래서 일을 받아들였죠.

[필자 주: MS에 합류하면서 마루야마의 첫 임무는 스퀘어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카구치에게 연락하는 것이었다. 사카구치는 그때 미스트워커라는 독립 스튜디오를 서립했고, 소규모 제작진으로 대형 프로젝트 보다는 소규모 게임을 만들고 있었다. 마루야마는 미스트워커-그리고 다른 필요한 스탭들-과 계약해 엑스박스360으로 FF7의 성공을 재현할 신작 롤플레잉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블루 드래곤과 로스트 오디세이였다.]


학생이었던 요시나리 타츠야는 초기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의 팬이었고, 자신의 롤플레잉 게임을 만들어 스퀘어에 보내기도 했다. 스퀘어의 누군가가 그걸 마음에 들어해서 일자리를 주었고, 1995년 그는 슈퍼패미컴용 보드게임의 프로그래머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 FF7 팀에 합류한 그는 모터사이클 추격씬이나 롤러코스터 미니게임 같은 걸 만들었으며, 이후 액션 RPG 패러사이트 이브와 파이널판타지9에 참여했다. 그 후 MS로 이직하여 RPG 로스트 오디세이 등의 타이틀을 도왔다. 수년 후 그는 MS를 떠나 인터넷 기업 라쿠텐의 네트워크 업무를 하게 됐다.

마루야마 요시히로: 사카구치 씨는 그때 이미 독립해 있었는데,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파이널판타지 영화가 망해서였죠. 그래서 저는 그를 다시 불러들이고 싶었습니다.

카와이 히로시: 당시 MS에서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저는 MS가 사카구치 씨의 수준에 걸맞는 게임을 만들 재정을 지원할 몇 안 되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시나리 타츠야: 좋은 의미에서 충격이었죠. 마루야마 씨, 카와이 씨, 그리고 사카구치 씨를 모아서 로스트 오디세이를 만들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스퀘어에서 MS로 이직한 뒤, 저는 사카구치 씨와 다시는 일할 수 없으리라 생극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 사람, 그리고 다른 이들과 신작을 하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죠.

마루야마 요시히로: 제가 사카구치 씨에게 연락해서 카와이 씨가 우리와 같이 있다고 했습니다. 카와이 씨 덕분에 사카구치 씨가 우리와 일하기로 결정했죠.

카와이 히로시: 마루야마 씨가 저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사카구치 씨를 데려와서 360 게임 프로젝트를 할 거야." 그래서 우리는 함께 사카구치 씨에게 가서 설득했습니다. 일본적 관점에선 전통적인 건 아니었지만 순수 개발적 관점에서 볼 때 MS에는 자산이 있다고요. MS에겐 MS의 강점이 있었습니다. 단지 그들을 이해하고 함께 일하면 되는 거였죠. 불행히도 그 '함께' 부분이 나중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마루야마 요시히로: 저는 로스트 오디세이와 블루 드래곤을 런칭에 맞추고 싶었지만 프로젝트가 지연되어 실현할 수 없었습니다.

카와이 히로시: 사카구치 씨가 합류하고 우리는 매우 작은 팀으로 (훗날 로스트 오디세이가 될) 프로토타입을 작업했습니다. 우리는 MS 저팬에서 내부적으로 만든 엔진을 사용하려 했는데, 그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게 드러났죠.

요시나리 타츠야: 로스트 오디세이는 정말 힘든 프로젝트였습니다. 그 모든 신기술을 이용해-그리고 제한된 인력으로- 훌륭한 하이엔드 그래픽을 만들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우린 언리얼 엔진을 쓰고 있었는데, 언리얼 엔진 자체도 아직 개발 중이었죠. 게임과 엔진이 동시에 개발되고 있다 보니, 양쪽에 버그가 넘쳐났습니다. 엔진이 업데이트 되면 게임이 돌아가지 않아서 해결책을 찾아야 했죠. 엔진이 게임을 따라오길 기다려야 했습니다. 대단히 많은 일을 해야했고, 그래픽이 좋아보이게 만들기 힘들었습니다.

카와이 히로시: 언리얼 엔진은 그래픽 측면에서는 대단히 강력하고 훌륭합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에게 제공될 때는 사실상 알파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에픽의 태도도 - 비하하는 의미는 아닙니다만 이런 얘기도 있었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쓰지 마십시오." 에픽 개발자들은 대단히 직설적이었습니다. "언리얼 엔진은 이러이러한 걸 위해 만들어졌고, 거기에 맞는다면 매우 훌륭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체 엔진을 쓰세요. 문서가 필요하면 소스 코드를 읽어보세요. 도움이 필요하면 영어로 요청하세요."...

조금씩이나마 진척되어 가는 가운데, 우리는 인사채용 문제를 겪게 되었습니다. MS는 채용기법에서 독특한 점이 있었는데, 설사 예산이 1억 달러라고 하더라도 예산과는 완전히 독립된 정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산이 어마어마하더라도 정원이 2명 밖에 안 된다면 그 이상은 불가능했습니다. 인원을 늘리려면 다른 팀과 거래를 해야했죠. 그래도 인력난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마루야마 요시히로: MS 직원을 이용하는 건 오버헤드가 너무 비싸서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우린 별개 법인을 만들 수 밖에 없었죠. 순전히 개발자 채용만을 위한 페이퍼 컴퍼니였습니다.

카와이 히로시: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MS 내부 인력만으론 더이상 감당이 안 되어 별개 회사를 차려야 되는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를 설립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고, 우리는 '스폰서'가 필요했죠. 그렇게 찾아낸 것이 캐비아였는데, 우리 팀을 맡아주었고 자매팀 같은 관계가 되었죠. 그래도 이직자를 구하기는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새 회사를 세우고도-당시엔 이름이 NewCo였는데 나중엔 feelplus로 바뀌었다- 우리는 개발자를 모으지 못 했습니다. 그 와중에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당시 파칭코 회사 아루제의 자회사로 노틸러스라는 RPG를 만드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게임개발팀을 유지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관심있는 사람 있으면 얘기하세요" 라는 분위기였죠. 그들은 완전한 개발팀을 갖추고 있었고, 또 RPG를 만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죠. "노틸러스 팀을 지금의 MS 팀과 합쳐서 인력을 2배로 만들면 좋지 않을까?"

불행히도 인수는 잘 되지 않았는데, 그건 노틸러스 쪽의 잘못이었습니다. 그리고 개발팀은 냉담하게 버려졌죠. 개발자들은 실질적으로 길거리로 쫒겨난 거싱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바로 주워담았기 때문에 실제로 길거리에 나앉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겪은 일이 MS 때문이라고 의심하였습니다. 그리고 노틸러스 출신은 언리얼 엔진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이런 식이었죠. "서드파티 코드는 믿을 수 없다. 뭐가 들었을지 모른다. 커스텀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싫어, 싫어, 싫어. 그래서 우린 노틸러스 출신 10명과 MS 출신 10명이 있었지만, 서로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필자 주: 여러 정치적 문제가 생기고, 직무변경을 거치면서 결국 feelplus 개발팀으로 가게 된 카와이는 퇴사하게 되었다.]

카와이 히로시: 신체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제 일과 사이클은 아침에 출근한 뒤 직장에서 잤다가, 다음날 막차까지 일하다가 돌아오는 식이었죠. 이틀에 한번만 집에 들어갔습니다. 저희가 도쿄 게임쇼에 데모를 내놓으려 하던 시점에서, 제 몸과 다른 것들이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죠. "TGS 데모는 완성할 겁니다. 그때까지는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

요시나리 타츠야: 두 팀과 다른 조직구조 때문에 대단히 힘든 업무환경이었습니다. 경영 계통이 분명하지 않아서 누가 누구에게 보고해야 하는지, 누가 보스인지 등이 불분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스퀘어에서 제 상관이었던 카와이 씨가 feelplus로 가고 나자, 제 경력 상 처음으로 그가 제 상관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상당히 이상한 기분이었는데, 제 상관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상관이 아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와 함께 일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실제 제 상관은 따로 있었지만 그는 직무에 맞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그를 진심으로 상관이라 여겼던 적은 없습니다. 두 별개의 팀과 별개의 조직구조에서 생기는 공백과 명확하지 않은 보고 계통 때문에 일하기 힘들었습니다.

카와이 히로시: 로스트 오디세이 개발 중, 사카구치 씨와는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그의 업무방식 때문 만이 아니라 또한 MS의 문화 때문이었죠. 게임을 출시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개발자들이 주도적으로 개발해가도록 하는 게 중요한 것이었지만, 출시일을 맞춰야 한다고 너무 말했던 게 부작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 MS의 관리직으로써 그렇게 해야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일본 게임은 거의 독재자 같은 디렉터가 저 위에서 창의적 결정 뿐만 아니라 인사문제라든가 모든 결정을 관장하는 방식이었는데, 충돌이 많이 생겼습니다. MS는 그런 식이 아니었거든요.

제가 퇴사하기로 했을 때 저는 사카구치 씨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이메일을 받았죠. "로스트 오디세이가 출하되었다네. 만나서 한잔 하면서 얘기 좀 하자고." 제 생각엔 그가 저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불편을 해소하고 싶었던지도 모르죠. 당시 저는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에 술자리를 거절했습니다.



미스트워커의 블루 드래곤과 로스트 오디세이는 엑스박스360의 롤플래잉 공백을 채워주었고,
열성팬도 생겼지만 파이널판타지 같이 새로운 프랜차이즈가 될 정도로 성공하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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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2) - 게임 개발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3) - 해외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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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ㅈㅈㅈㅈㅈ 2017/01/25 14:43 # 삭제 답글

    으 파판 무비... 지금 보면 인게임 렌더링 컷씬보다 안 좋지만 그래도 선구자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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