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4) - FF7 출시 그 후 (1) by eggry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1) - FF7의 기원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2) - 게임 개발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3) - 해외 출시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4) - FF7 출시 그 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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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l Fantasy 7: The Aftermath


 파이널판타지7의 출시 다음 시기 동안 스퀘어는 자원을 이리저리 뒤섞었다. 일부는 후속작 파이널판타지8 작업을 했다. 나머지는 다른 여러 타이틀에 참여했다. 일부는 서양 퍼블리셔 일렉트로닉 아츠와 새로운 배급 파트너십을 채결하는 일을 했다. 그러고도 남는 사람들은 하와이에서 새 스튜디오를 열어서 훗날 스퀘어를 골이아프게 만들 문제를 만들었다.

 FF7의 전세계 성공의 파도를 타고 스퀘어에 변화가 충만하던 시기였다.


PC판 파이널판타지7을 만들다

 FF7의 출시 후 찾아온 작은 프로젝트는 FF7의 PC판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 버전이 출시되기도 전부터, 스퀘어 US의 한 작은 그룹이 PC 버전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스퀘어는 PS를 갖고있지 않은 미국과 유럽의 플레이어들에게 접근하고 싶었고, 소니와의 퍼블리싱 계약은 PC판 개발을 금지하고 있진 않았다. 그래서 스퀘어는 툼레이더의 퍼블리셔인 에이도스와 PC판 계약을 맺었다.

 스퀘어의 많은 이들은 이를 실험이라고 생각했는데, 회사가 많은 돈을 들인 FF7에서 추가적인 수입을 뽑아내려고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실험은 스퀘어 US의 보스인 마루야마 요시히로와 에이도스 사장 보에스키 케이스의 전화 한통에서 시작되었다.

케이스 보에스키: E3로부터 2주 전 저는 요시히로 씨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전에 그를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요시히로 씨는 전화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마루야마 요시히로입니다. E3에서 당신과 미팅을 하고 싶습니다. 파이널판타지7의 배급에 관해서 말이죠." 저는 그때 사무실에 있었는데 폰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죠. "파이널판타지7이요? 진담입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죠. "물론이죠." 그래서 저는 말했죠. "좋습니다, 내일 봅시다." 저는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랜지 카운티로 날아가 그를 만났는데, 일이 어떻게 될지 상상도 못 했지만 상당한 부담이 있었습니다.


1996년, 엘레인 디 이오리오는 스퀘어의 코스타 메사 사무소의 13번째 직원이었으며, 수석 부사장 마루야마 요시히로 밑에서 일했다. 4년 간 그녀는 SCEA나 SCEE와의 비즈니스 문제를 담당했고, 공략가이드 출판사인 브래디게임즈와도 일했다. 그녀는 또한 에이도스와 FF7 PC판 제작, 마케팅, 배급 계약을 하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PC판 출시 이후에도 2년 간 다른 게임들을 다루었다. 스퀘어를 떠난 뒤 그녀는 블리자드와 레드5 등에서 사업개발 역할을 맡았다.

마루야마 요시히로: 미국과 유럽의 많은 퍼블리셔들이 우리가 FF7으로 뭘 하는지 몰랐습니다. 한 퍼블리셔가 아시아 지사를 담당하는 누군가와 저를 연결시켜주려 하긴 했습니다. 그 회사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웃음)

케이스 보에스키: 제가 가보니 저 뿐이더군요. EA는 오지 않았습니다. 거의 아무도 오지 않았죠. E3에서 그들과 미팅 한 건 두어명 정도였지만 얘기가 진척된 건 나 뿐이었죠. 저는 그를 오렌지 카운티에서 만났습니다. 그가 보여준 건 없었습니다. 그저 얘기만 했죠. 우리는 그에게 관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E3에서 몇명을 더 만났습니다. 그 해 E3는 애틀란타에서 열렸습니다. E3 후 6개월 동안 그는 모든 에이도스 사무실을 들렀습니다. 사장인 저보다도 많이 들렀죠. 함부르크, 프랑스, 모든 에이도스 지사를 들렀어요.

엘레인 디 이오리오(스퀘어 US의 사업개발 매니저): 제가 알기로는 그건 일종의 실험이었습니다. 스퀘어는 PC판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미국에 팀을 만들어서 PC 포팅을 해보려는 거였죠. 그래서 우리는 퍼블리셔를 찾아야 했습니다.

마루야마 요시히로: 툼레이더의 큰 성공 덕분에 당시 에이도스는 대단히 흥미진진한 회사였습니다. 그리고 마케팅을 훌륭히 해냈죠.



에이도스와 주된 연락책이었던 프랭크 홈은 FF7 PC 이식 개발을 감독했으며, 스퀘어의 코스타 메사 팀과 밀접히 일했다. PC 버전이 지연되자 그는 실질적으로 스퀘어 개발진와 에이도스 간부의 중간연락자가 되었다. 홈은 2001년 에이도스를 떠난 뒤 9년 동안 유비소프트 프로듀서로 일하다 2010년 세가 오브 아메리카로 이직했다.

프랭크 홈: 우리는 몇몇 부분에서 같이 일해야 했습니다. 각자 해야 하는 것들도 있었고요. 하지만 상품이 언제나 1순위였습니다.

엘레인 디 이오리오: 에이도스는 대단한 회사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그들은 우리가 필요한 모든 걸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스퀘어, FF7을 이해했습니다.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더 날렵하고 민첩했죠. 큰 회사였다면 방향성을 잃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케이스 보에스키: 1996년 11월 데이브 콕스, 폴 볼드윈, 마이크 맥거비, 서튼 트로우트가 툼레이더를 출시했고 우리는 EA 다음가는 세계 2위의 퍼블리셔가 됐습니다. 그정도로 직원들은 훌륭했죠.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툼레이더는 대단한 게임이었지만 대단한 게임도 마케팅 없이는 팔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FF7은 애매하고 위험했습니다. 우린 이렇게 생각했죠. 애시당초 누가 PC에서 파이널판타지 같은 턴방식 RPG를 즐기고 싶어 할까? 그리고 그 턴방식 RPG가 콘솔로 나오고 1년 뒤 누가 하려고 할까?

엘레인 디 이오리오: PC 버전 출시는 큰 리스크였지만 또한 실험이기도 했습니다. 스퀘어가 콘솔에서처럼 초대박을 내길 기대했다고 생각친 않습니다. 그저 PC 버전을 시도해보고 어떻게 되는가 보려고 했던 거죠.

프랭크 홈: 에이도스의 모든 프로듀서들이 FF7의 팬이었고, PC판을 전적으로 지지했습니다. 특히 제가 말이죠. 저는 매우 흥분했고 행복했습니다. "어떻게든 이걸 이뤄내고 말겠어" 라고 말이죠.

케이스 보에스키: 마루야마 씨는 180만 달러를 원했습니다. 툼레이더의 제작비가 90만 달러였다는 걸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당시에는 한 타이틀에는 상당한 돈이었고, PC 기준으로는 큰 돈이었습니다. 저는 마이크 맥거비를 만났습니다. 맥거비는 유럽을 담당하고 있었죠. 저는 미국이었고요. 우리는 CFO였던 롭 스탄넷의 사무실로 가서 마이크가 롭의 책상에서 종이 몇개를 집어들고는 180만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걸 지켜보더니 이렇게 말했죠. "좋아, 그럼 10만장 정도 팔면 되겠군." 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생각해 롭?" 이라고 물었죠. 이렇게 답했습니다. "할 수 잇을 거 같아. 해보자고. 결정을 미루지 말고." 그렇게 결정이 났습니다. 그린라이트였고 우리는 FF7을 물었죠.

그 180만 달러는 최소보증금이었습니다. 로열티 이외의 선금이었죠. 우리는 장당 로열티 계약도 맺었는데, 금액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군요. 어쨌든 그런 큰 선금을 주면서 우린 이렇게 호언장담했죠: "우린 이걸 많이 팔 거야. 돌아와서 더 많은 돈을 당신들에게 내놓을테니 돌려줄 생각일랑 말라고." 그래서 우리는 180만 달러를 최소보증금으로 수표를 써주었고, PC 배급권을 얻었습니다...

첫 만남으로부터 반년 뒤 계약이 이뤄졌는데, 일본 회사로썬 기록적인 속도였죠.

프랭크 홈: 우리 회사에선 상당히 유명 타이틀이었습니다. 툼레이더와 동급이었죠. 그렇게 큰 건수였습니다.

윌리엄 첸(스퀘어 US의 리드 프로그래머): 우리는 PC 포팅 작업에 15에서 20명 정도가 있었으며, 도쿄에서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마루야마 요시히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큰 일이었습니다. PC의 특성 때문에 우린 어떤 CPU나 그래픽카드에서 돌아가야 할지 결정하기 힘들었습니다. 기술수준을 미세조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프랭크 홈: 개발 측면에서 큰 리스크였으며 이식팀은 할 일이 많았습니다. 거의, 제 생각엔 80% 정도의 코드는 다시 작성됐을 겁니다. 그들은 PS로 대단히 커스텀된 게임을 만들었고 그걸 풀어다가 PC에서 돌아가도록 다시 짜야 했죠. 이식이 지연되고 있었기 때문에 스퀘어에 숙직했던 적도 있습니다.

케이스 보에스키: 대단히 복잡한 이식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엔진이 5종류였던 거 같습니다.

윌리엄 첸: 스퀘어는 PS 버전에서 파트별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코드를 짰기 때문에 스타일이나 엔진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이걸 작은 팀이 PC에 통합해서 옮기는 건 상당한 과업이었죠. 하지만 전반적으로 개발이 예상보다는 잘 됐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게임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잘 팔렸죠.

케이스 보에스키: 우리는 10만 장을 예상했지만, 거기에 100만 장이 더 팔렸습니다.

마루야마 요시히로: 제 기억으론 북미에서 200만, 유럽에서 200만, 한국에서 10만이었습니다.

프랭크 홈: 풀프라이스로 팔린 것만 거의 100만 쯤일 거에요. 수치에 편차가 큰 건 여러 바리에이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인판이라든가 말이죠.

케이스 보에스키: 요시히로 씨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제가 맨날 로열티 농담을 했기 때문에 받아들인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스퀘어에 처음 보낸 수표는 200만 달러였습니다. 그 말은 첫 분기에, 우리는 선금 180만 달러를 넘어섰고 거기에 로열티로 200만을 더 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린 정말로 해낸 거였죠. 요시히로 씨는 수표를 반송했었습니다. 제 책상으로 반송되어 있길래 그에게 전화를 걸었죠. "왜 이러는 겁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계약에 로열티를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수표는 받을 수 없습니다." 전 이렇게 말했죠. "요시히로 씨, 당신은 미국 회사랑 거래하고 있어요. 수표를 받으세요. 명세서는 요청해도 되지만, 수표는 반송하지 말아요."

FF7 PC판 건이 스퀘어와 에이도스를 거의 합병시킬 뻔 했다는 게 웃깁니다. 우리가 보기에 두 회사의 게임 제작 철학은 대단히 비슷했습니다. 어느쪽도 지적재산을 라이선스하진 않았죠. 둘 다 매우 고품질 게임, 캐릭터 중심의 게임에 초점을 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유럽과 미국이 있었고 스퀘어는 일본이 있었죠. E3에서의 첫 미팅 후 다음 E3 미팅, 홀딩그룹의 CEO 미팅, 회장 미팅 등등, 우린 크고 작은 식사를 갖고 98년엔 정말 합병할 뻔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서로의 길을 가기로 했죠.

웃긴 사건이 있었는데, 2년 전 스퀘어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PC 버전을 재출시 하려고 한다더군요. 그들은 저에게 골드마스터가 어딨는지 아냐고 물었습니다.(웃음) 저는 1999년에 에이도스를 그만뒀어요. 제가 골드마스터로 뭘 하겠습니까? "아 있잖아요, 그거 제 책상 서랍에 있을 겁니다. 제가 갖고 나온 큰 박스 아시죠? 제가 골드마스터랑 다른 것들을 다 갖고 왔다니까요. 제가 갖다드릴게요." 알고보니 스퀘어는 그걸 잃어버렸던 거죠.

프랭크 홈: 제 생각엔 스퀘어가 코드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모바일과 PS4로 이식한 것은 우리가 작업했던 PC 버전이었거든요.


90년대 게임 퍼블리셔는 특별한 패키지 박스를 만들어 진열대에서 두드러지게 만들곤 했다.
FF7을 위해 에이도스는 사다리꼴 박스를 만들었다.



스퀘어와 EA의 협력

 FF7 PC판으로 돈을 벌기는 했지만 스퀘어의 빵과 버터는 여전히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이었다. 그리고 1998년 소니와 맺었던 6 타이틀 배급 계약이 끝나면서, 스퀘어 US의 배급 계획-PC와 콘솔 양쪽-은 스퀘어의 다음 대작 파이널판타지8을 포함하게 되었다.

 스퀘어 US의 일부는 직접 배급하고 싶어했고, 일부는 에이도스와 계속 협력하자고 했다. 스퀘어 저팬의 간부진은 다른 생각이 있었다. 일렉트로닉 아츠와 배급계약을 맺는 것이었다.

 둘은 함께 스퀘어 EA와 EA 스퀘어라는 합자회사를 설립했고, 전자는 스퀘어 게임을 미국에, 후자는 EA 게임을 일본에 출시하게 되었다.

이와사키 준: 소니 계약, 실질적으로 퍼스트 파티였던 배급 계약이 끝난 뒤 우리는 스스로 퍼블리셔가 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본사에서 EA와 합자회사를 만들라고 명령했습니다. 힘든 때였죠.

마루야마 요시히로: EA는 우리에게 매우 강하게 나왔습니다. 그들은 파이널판타지8의 PC 버전의 권리를 원했죠. EA는 PC판 권리를 대단히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PC판 FF7의 권리는 에이도스에 있었고, 에이도스는 훌륭히 해냈습니다. 그래서 에이도스에게 권리를 주는 게 옳게 느껴졌지만, 우린 합자회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죠. 그래서...

[필자 주: 결국 FF8 PC판을 유럽에선 에이도스, 미국에선 스퀘어 EA가 맡게 되었다.]


일렉트로닉 아츠가 스퀘어 EA를 만들 때 눈여겨둔 게임 파이널판타지8은 여러 플랫폼에서 800만장 이상 팔렸다.

타케치 토모유키: 우리가 FF7을 처음으로 일본 밖에에 출시됐을 때, 소니의 큰 도움이 있었기에 우리는 일본 밖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강한 배급망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직접 할지, 누군가와 파트너를 맺을지 고민하고 있었죠. 그러다 미야모토 씨가 제안하더군요. "EA와 일본 바깥 배급 파트너를 맺는 게 어떨까요?" 그래서 우리는 EA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이와사키 준: 왜 간부진이 그때 스퀘어 EA를 세우기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치적인 문제가 있었겠지요.

케이스 보에스키: 제 추측은 일본회사들이 협상을 할 때, 역사적으로 그들은 "유명세"를 중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EA는 유명한 회사였고 에이도스는 아니었죠.

프랭크 홈: 우린 신흥 퍼블리셔였고 잘 알려진 이름이나 안정적인 퍼블리셔가 아니었죠. EA는 그러했고요. 스퀘어 사장은 이렇게 결정했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인 협력을 한다면 신흥기업보단 좀 더 기반이 있는 회사와 해야겠어." 비록 스퀘어 미국 지사는 우리를 아주 좋아했지만 말이죠.

렉스 이시바시(EA의 사업개발 부사장): 일렉트로닉 아츠는 더 실적이 많았고, 게임 판매만이 아니라 인수나 파트너 같은 부분에서도 에이도스보다 이력이 있었죠. 그래서 EA가 재정적으로 훨씬 안전한 옵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모든 것의 스파크 플러그는 파이널판타지7의 성공이었죠.

존 리치티엘로(EA의 회장 겸 CEO): FF7의 성공이 우리가 스퀘어와 딜을 원한 이유였습니다. 파이널판타지의 배급에 대해 논하면서 시작되어 합자회사까지 갔죠. 제 말은 같은 방에 다른 현명한 사람과 같이 있고 각자 생각이 있다면, 얘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양자에 득이 되는 결론이 나오기 마련이란 겁니다. 스퀘어는 세계적인 야심이 있었고, 전통적인 배급 계약으로 통제권을 잃고 싶어하지 않았죠. 그래서 우린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했습니다.

렉스 이시바시: 2개의 합자회사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합자회사는 스퀘어가 EA를 돕기 위한 것, 그리고 북미의 합자회사는 EA가 스퀘어를 돕기 위한 것이었죠. 분명 더 큰 기회는 파이널판타지와 다른 스퀘어 게임의 서양 배급을 맡은 EA 쪽에 있었습니다. EA 게임이 진정 일본에서 먹혀들지는 사소한 문제였죠.

존 리치티엘로: 서양 쪽 배급이 훨씬 잘 되었던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EA는 일본에 먹혀들 만한 컨텐츠를 별로 만들지 않았고, 문화적으로 그리고 실제로 어떤 서양 퍼블리셔도 일본 시장을 노리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당시에는 일본에서 사양 타이틀이 5만 장을 넘긴다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에서 EA 게임은 큰 기대를 안 했어요. 하지만 일본 시장은 이 계약에서 언제나 사소한 문제였죠. 두 회사가 상호교환적이라고 생각하기 위한 표면적인 것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서양에 파이널판타지를 배급하고 마케팅하는 게 본체였죠.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상당히 잘 됐습니다.

렉스 이시바시: 완전히 순탄한 항해는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스퀘어는-그리고 미국 지사는- 대단히 일본적인 회사였죠. 이건 존경을 담는 의미에서 하는 말입니다. 마츠시타나 혼다 같은 공룡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새로운 부류의 일본 기업들은 대단히 공격적이었습니다. 창작물을 만드는 일본 기업들이 스퀘어처럼 서양에 진출한 적은 없었습니다. 적어도 규모적인 면에선 말이죠. 고질라라든가 그런 존재라고 할 수 있었죠. 강력하지만 고귀함을 느끼게 한달까요? 쿠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로 말하자면 그의 작품 90%가 서양에 수출되었지만 정작 그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긴 얘기긴 하지만, 일본에서 성공적인 일본 기업은 많았지만 닌텐도를 제외한다면 스퀘어가 파이널판타지로 한 것처럼 진출해온 비재벌 회사는 별로 없었습니다.

존 리치티엘로: 스퀘어 EA의 단점이 있었다면 그건 보통 퍼블리싱 계약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였다는 것이죠.

카지타니 신이치로: 매 분기마다 우리는 이사회를 열었으며, EA CEO 래리 프롭스트나 존 리치티엘로와 만났습니다. 하지만 우린 진정으로 마주보지 못 했고, 견해차가 컸죠. 그래서 논쟁도 많았습니다.

이와사키 준: 존 리치티엘로와 일했었었죠. 우리는 분기마다 이사회를 열었는데, 언제든 싸움판이됐습니다. 그가 절 싫어했는지도요.(웃음)

존 리치티엘로: 충돌은 사소한 것에서 나왔습니다. 가령 스퀘어 측 수석 협상가는 EA였다면 하급 매니저였을 겁니다. 그정도로 젊고 경험이 없었습니다. 이와사키 씨든 누구든 그 시점에선 그랬습니다. 그도 상당히 젊었지만 좋은 사람이었죠. 그가 잘못한 건 없습니다. 스퀘어는 언제나 많은 판매량과 큰 개런티를 원했고, EA 세일즈 부서는 보수적으로 접근해서 시장이 돌아가는 걸 보기를 원했죠. 실적을 책임지는 사람과 전망을 세우는 사람 사이의 자연스러운 충돌이었습니다. 분명 충돌이 있기는 했었죠. 실제 전쟁터에서도 머리 30피트 위는 평화롭고 조화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참호 속이나, 혹은 아이들의 책상 밑에서는 발싸움이 벌어지고 있게 마련이죠. 하지만 그 이상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렉스 이시바시: 두 강력하고 창의적이며 자기중심적인 회사가 자신들의 성공작을 가지고 합자회사를 세운다고 하면, 당연히 불일치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특히 문화적 차이가 있을 땐 말이죠. 우리는 이사회마다 통역가가 필요했던 회사를 말하는 겁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초기 협상 중 우리는 서드파티 통역가에게 맡기려고 했었습니다. 무라야마 요시히로 씨의 영어가 제 일본어보다 낫긴 했지만, 그래도 통역가의 뉘앙스를 조절해줘야 했습니다. "그건 썩 좋지 않아요" 라는 말을 문맥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부적절한 정보나 커뮤니케이션을 낳게 됩니다.

마루야마 요시히로: 스퀘어는 플레이스테이션에 집중한 반면 EA는 멀티플랫폼 회사였습니다. 그들은 닌텐도나 세가로도 내고 있었고, PC 게임도 내고 있었죠. 그래서 그들이 여러 플랫폼으로 마케팅을 분산시켰기에 PS로만 파는 우리와는 다소 접근법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이런 대화가 오간 적도 있습니다. 왜 한 기종으로만 게임을 내냐고 말이죠.(웃음) 우리는 EA에게 일본 게임시장은 "승자독식" 이라고 했습니다. 이전엔 닌텐도였죠. 이제는 플레이스테이션이 승자이니 우리는 세가나 닌텐도로 게임을 낼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보다 2배는 더 큰 시장이었습니다. 그래서 EA는 일본의 특수성은 이해하면서도 미국을 위해 다른 콘솔로도 내주기를 원했죠. 물론 스퀘어는 완강히 거부했고요.

카지타니 신이치로: 가장 큰 문제는 EA와 스퀘어가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해 혼란스러워 했다는 겁니다. 당시 EA는 일본 RPG가 미국에서 팔릴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어요. 마찬가지로 스퀘어도 EA 게임이 현지화만 한다고 일본에서 팔릴 거라고 생각치 않았죠.

이와사키 준: 저는 스퀘어 EA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5년 뒤 EA와의 계약이 끝나자 우리는 미국에 직접 배급했죠. 그렇게 하자마자 이전보다 더 큰 수익을 올렸습니다.

존 리치티엘로: 영원히 지속될 일은 애초에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괜찮게 돌아갔어요. 서로에게 안 좋은 감정이 생겼는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파트너십은 작동했습니다. EA는 매출과 수익을 냈고, 스퀘어도 매출과 수익을 냈죠. 스퀘어 브랜드는 서양에 더 잘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도 스퀘어와 연락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매우 긍정적인 관계입니다.



스퀘어 EA를 통해 나온 것들은 킹덤하츠 같은 대히트작부터
바운서 같은 실망스런 작품, 하드코어 팬을 가진 제노기어스까지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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