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3) - 해외 출시 by eggry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1) - FF7의 기원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2) - 게임 개발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3) - 해외 출시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4) - FF7 출시 그 후 (1)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5) - FF7 출시 그 후(2)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6) - 에필로그

서양 시장을 쫒는 스퀘어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의 연이은 성공을 생각하면 일본의 스퀘어 간부들은 FF7이 일본에서 잘 팔릴지에 대해선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러했고, 첫 주에 200만장 이상을 팔면서 결국 400만장을 넘기게 되었다.

 북미와 유럽은 다른 이야기였다. 당시 일본에서 개발된 RPG 게임은 서양에서 컬트적으로 여겨졌고, FF 시리즈는 소규모의 충성팬 이상으로 확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FF7의 서양 출시가 다가오면서, 스퀘어는 워싱턴에 있던 기존 세일즈 및 마케팅 사무소를 폐쇄하고 캘리포니아 코스타메사에 새 사무실을 열면서 게임업계 신인 두명을 채용함으로써 스퀘어와 FF 시리즈는 서양에서 새출발을 하려고 했다.


90년대 초, 마루야마 요시히로는 일본 게임계에 발이 넓은 일본 경영 구루 오오마에 켄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1994년 어느날, 오오마에가 마루야마를 닌텐도 전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에게 소개해 주었으며, 야마우치는 그를 스퀘어의 간부들에게 소개하였다. 1년 뒤, 스퀘어는 미국본부를 운영하기 위해 마루야마를 채용하였다. 캘리포니아 코스타 메사 사무실의 수장으로써, 그는 FF7의 서양 출시를 관할했고 미국, 유럽, 한국에 PC 버전을 출시하는 계약도 맺었다. 2003년 마루야마는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의 일본지부를 담당하게 됐다. 최근 그는 에이전트로 일하면서 유명 작가이자 감독이 ㄴ마츠노 야스미와 독립스튜디오 플레이덱을 이어주는 등의 일을 하고 있다.

마루야마 요시히로: 당시 스퀘어소프트의 수익 95% 이상이 일본 시장에서 나왔습니다. 나머지 5%는 주로 미국이었지만, 아마 1,2% 정도는 유럽이었을 겁니다. 어쨌든 절대다수는 일본에서 나왔죠. 그래서 스퀘어는 일본 밖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싶어했습니다. 그게 제가 채용된 이유였죠.

이와사키 준: 제가 도쿄의 광고업체에 있던 시절부터 저는 FF7의 홍보 프로듀서 하시모토 신지 씨를 알았습니다. 어느날 그가 저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직에 관심 없습니까?" 그래서 무슨 얘긴가 물었죠. "파이널판타지7이란 큰 프로젝트가 있는데, 전세계에 팔고 싶습니다." 그러고선 그는 미국시장에 마케팅을 할 사람을 찾는다더군요. 제가 말했죠. "뭐요? 미국시장?" 저는 영어를 잘 못 했거든요.(웃음) 하지만 이러더군요. "상관없어요. 관심 있으면 연락 줘요."

마루야마 요시히로: 스퀘어소프트에서의 첫 일은 사무실을 워싱턴 주 레드몬드에서 캘리포니아로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이와사키 준: 적절한 타이밍이었는데, 스퀘어도 닌텐도에서 소니로 옮겼으니까요. 스퀘어가 시애틀에 있었던 건 닌텐도가 가까워서였습니다. 하지만 사카구치 씨는 시애틀 사무실을 폐쇄했고 직원들을 모두 해고했죠.

마루야마 요시히로: 사카구치 씨는 (초기에 스퀘어 LA 이후 스퀘어 USA) 마리나 델 레이에 개발 스튜디오를 열던 중이었고, 우리는 멀지 않은 코스타 메사에 퍼블리싱 사무실을 차렸습니다.

이와사키 준: 소니가 가깝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가 보통은 타당한 선택이었을겁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LA에 있었고, 소니의 미국 본사에도 서드파티로써 작은 사무실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마케팅을 담당했지만 소니에 예산이나 배급과 관련된 것들을 요청했죠.


파이널판타지7의 서양 마케팅 보스로써, 이와사키 준은 소니 및 광고업체들과 밀접히 일하면서 대중에게 익숙치 않은 롤플레잉 게임을 홍보했다. FF7의 출시 후, 그는 스퀘어의 미국지부 사장이 되었으며, 2004년에는 당시 스퀘어에닉스 CEO인 와다 요이치와의 불일치로 퇴사했다. 이와사키는 그의 주된 후회는 드래곤퀘스트7의 서양 마케팅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파이널판타지와 드래곤퀘스트의 대결구도로 홍보하려고 했는데, 두 게임이 너무나 달랐으며 스퀘어와 에닉스가 합병됐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스퀘어를 떠난 뒤 이와사키는 XSEED라는 일본게임을 서양에 출시하는 작은 퍼블리셔를 만들었다. 2012년, 그는 일본 모바일 히트작인 퍼즐&드래곤을 만든 겅호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의 미국지사에 들어갔다.

타케치 토모유키: FF6는 일본 밖에서는 별로 잘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FF7을 해외에 출시하면서 저는 뭔가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뭔가 다르게 해야했죠. 그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일본 밖에서 FF7을 차별화시킬 방법이 뭐가 있을까?"

소니는 세계 전체에 잘 알려진 브랜드였고, 그래서 저는 소니 브랜드로 출시하는 것이 훌륭한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일본 RPG는 일본 밖에선 수요가 적었습니다. 사람들은 일본 RPG를 대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그래서 저는 소니 브랜드를 이용해 평판을 개선해보려 했습니다.

마루야마 요시히로: 아마 플레이스테이션 3주기 쯤 되었을 겁니다. 소니는 여전히 미국에서 세가, 닌텐도와의 경쟁으로 고전하고 있었죠. 세가, 닌텐도와 비교해 소니는 퍼스트파티 포트폴리오가 취약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FF7을 PS로 내기로 결정하자, 소니는 스퀘어 타이틀의 북미 및 유럽 배급권을 강하게 원했죠.

이와사키 준: 요시히로 씨와 저는 별로 경험이 없었습니다. 소니는 스퀘어에게 파이널판타지를 얻기 위해 공격적이었고, 사카구치 씨와 다른 모두는 이게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타케치 토모유키: 소니는 FF7을 정말 자기 브랜드로 내고 싶어 안달이었습니다. 너무 간절해서 소니는 스퀘어가 직접 퍼블리싱 했을 때와 거의 같은 수익을 받는 아주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해주었죠.

히고 쿄코: 미국에서 소니는 6 타이틀 배급권을 땄습니다. 그래서 스퀘어소프트에서 나오는 첫 6 타이틀은 SCEA와 SCEE가 배급하게 되었죠.

타케치 토모유키: 소니는 또한 해외에서 공동홍보와 마케팅도 동의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만큼 많은 돈을 썼고, 결국 거대한 마케팅 캠페인이 되었죠.

마루야마 요시히로: 소니의 철학은 하드웨어를 마케팅하는 게 아니라, 모든 예산이 타이틀 홍보로 가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파이널판타지와 다른 타이틀의 배급권을 소니에게 주자, 소니는 미국에서 FF 프랜차이즈 홍보에 엄청난 돈을 들였습니다. 그들이 워낙 돈을 많이 써서 우리에겐 좋은 일이었습니다. TV, 인쇄물, 온갖 곳에 광고가 나갔죠. 광고비가 천만 달러 단위는 됐을 겁니다. 당시엔 엄청난 돈이었죠.

타케치 토모유키: 북미시장에서만 우리는 2000만 달러를 마케팅에 썼습니다. 유럽까지 포함하면 3000만 쯤 될 겁니다. 일본까지 치면 4000만 쯤 될지도요.



이 기사를 위해 전 소니 수석 프로덕트 매니저인 데이빗 밤버거가 그의 아카이브를 발굴해 FF7의 미국 마케팅 캠페인의 내부문서와 컨셉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문서를 스캔해 PDF로 만들어 올려두었으며, FF7의 매출 분석이 포함된 파이널판타지 택틱스의 마케팅 계획도 올려놓았다.



마케팅 문서와 더불어 밤베거는 소니가 메뉴얼 아트웍을 만들 때의 몇가지 컨셉을 보여주었다. 여기 2개, 다음 페이지에서 2가지를 볼 수 있다.



FF7의 미국 출시에 앞서, 소니와 스퀘어는 게임의 커버아트를 무수히 바꾸었으며, 스퀘어 US의 마케팅 부사장 이와사키 준은 프로듀서 사카구치 히로노부에게 최종 승인을 받기 위해 종종 도쿄로 출장가곤 했다.



FF7의 미국판 표지를 위해 지금은 오리진 스튜디오로 알려진 악시옴이라는 회사와 일했다. 밤베거와 소니의 다른 이들은 스퀘어의 초기 타이틀 사이에 공통된 룩을 가져서 플레이어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하려고 했다. 밤베거는 "아라비아의 로랜스" 이미지를 보았고, 하얀 배경의 고채도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는 악시옴에 이 아이디어를 통과시켰고 스퀘어의 다섯 타이틀에 이런 방식이 쓰였다.



FF7의 미국 TV 광고는 광고 에이전시 TBWA 치엇 데이가 초기에 일련의 컨셉 스토리보드를 제출했으며 여기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게임이 너무 아름다워서 시청자의 TV가 폭발한다든가, 그래픽이 너무 훌륭해서 나비가 스크린 밖으로 나오려는 등의 아이디어가 있다. 밤베거는 각각 장점이 있지만 게임 스토리를 충분히 전하지는 못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밤베거는 슈퍼닌텐도의 FF5와 FF6의 녹화된 영상과 FF7 초기 버전의 에어리스의 죽음 장면을 가져다가 보여주면서 이 게임에서 스토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에이전시가 만든 최종 아이디어는 게임 전체의 무비 트레일러를 뒤섞여 보여주며 스토리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FF7의 미국 잡지 광고를 위해 소니는 또다시 TBWA 치엇 데이와 함께 스토리, 스타일, 그래픽에 초점을 둔 비슷한 메시지를 팔려고 했다. 밤베거는 FF7의 영화같은 스토리를 강조하는 와이드 이미지의 샘플 4개를 만들었고, 그 중 소니의 승인을 받은 것이 이것이다.



FF7 인쇄 광고에서 소니의 목표 중 하나는 아트웍 위에 어떤 글자도 올리지 않고 깔끔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광고 제작진은 마케팅 문구를 페이지 거의 밑에 넣어야 했다.



2017년, TBWA 치엇 데이는 디즈니, 넷플릭스, 개토레이,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 등 세계적인 회사들과 일하고 있다.



밤베거는 미국 마케팅 예산이 1000만 달러였다고 말하며, 대부분이 매니아를 위한 인쇄광고보다는 TV 광고에 들었다고 한다. 대중층에 어필하고 싶어하는 소니의 바람 때문이었다. 이 비용에는 게임의 커버 디자인이나 소매상을 위한 마케팅 소품 등이 포함되어 있다.



토이저러스 같은 소매상을 즐겁게 하기 위해 , 소니와 스퀘어는 T셔츠 같은 매장특전을 준비했다. 베스트바이는 여기 보이는 전화카드를 주었다.



국제적 히트작이 된 파이널판타지7

 FF7의 마케팅에 수천만 달러를 쏟아부었음에도, 스퀘어의 일부는 전작의 실적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FF7이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일본 RPG는 서양에서 먹혀든 적이 없었고, 서양에서 인기있는 액션게임에 비해 느린 템포 때문에 영원히 그러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와사키, 마루야마와 스퀘어 US의 세일즈&마케팅 팀은 이 도전을 받아들였다.


혼다 법무부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히고 쿄코는 곧 스퀘어 US의 마케팅 어시스턴트로 일하는 한편 QA 번역가로도 일하게 된다. FF7 프로젝트에서 그녀의 일은 캘리포니아 사무실에서 초과근무를 하면서 번역을 하고 발견한 버그를 도쿄 개발팀에 보내는 것이었다. 2004년 그녀는 스퀘어를 떠나 소수의 전 스퀘어 동료들과 스타트업 퍼블리셔 XSEED에 합류했다. 2006년 프리랜서가 되어 컨설턴트, 통역가, 그리고 일본의 많은 게임 회사들에 비즈니스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이와사키 준: 제가 스퀘어에 들어왔을 때 사카구치 씨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의 임무는 FF7을 100만장 파는 것일세." 미국에서 말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스퀘어는 미국에서 100만장을 판 적이 없었거든요. 100만장은 마법의 숫자였죠.

타케치 토모유키: 파이널판타지가 닌텐도로 나올 때, 시리즈는 일본 밖에선 별 인기가 없었습니다. FF6은 미국에서 겨우 40만장 파는데 그쳤죠.

FF7의 경우 저는 일본에서 250~300만을 팔 것은 매우 자신했기에 그렇게 큰 리스크는 아니라고 안심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세계에선 어떨지 생각했고 그건 위험할 수도 있었죠. 시간이 지나고 저는 미국에 소니 브랜드로 출시한다는 계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제서 저는 "잘하면 일본 밖에서도 100만장을 팔 수 있겠는데!" 라고 생각할 수 있었죠.

세스 루이지(SCEA의 협력 프로듀서): 정말 많은 부분이 "어떻게 일본 RPG를 북미로 가져와서 트리플 A 급이란 걸 보여줄 수 있을까?" 라는 문제였습니다. 당시 일본 RPG 일을 해본 바로, 북미에선 이를 매우 니치라고 보았거든요. 사람들은 일본 RPG가 3만이나 5만 이상 팔 수 있다고 생각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FF7에서 우리의 목표는 그걸 바꾸는 것이었죠. 대작으로 홍보하기 위해선 올바른 광고가 받ㅊ줘야 했고, 북미 시장에서 잘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밀어주어 관심을 받게 해야 했습니다.

데이빗 밤베거(SCEA의 수석 프로덕트 매니저): 우리의 만트라는 "아기를 떨어트리지 말자" 였습니다.

히고 쿄코: 사무실에 떠돌던 소문은 우리가 FF7을 성공시키지 못 하면 지사 문을 닫을 거라는 거였죠. 그래서 어떤 점에서는 "좋아, 우리 일자리가 달려있어" 라고 각오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최소 6 타이틀은 내기로 되어있었지만요.(웃음)

가장 큰 과제는 비주얼은 호소력이 있지만, 만약 FF 시리즈에 익숙하지 않은데 타이틀 넘버가 7이나 된다는 거였죠.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비주얼은 훌륭했고, 반드시 해봐야 할 최고의 게임인지도 모르지만 그 모든 건 다음 문제였습니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건 "이걸 어떻게 전달할까? 같은 거였죠.


마케팅 일을 하면서 데이빗 밤베거는 게임업계의 큰 손들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EA부터 유비소프트, 에이도스까지. 소니에 있는 동안 그는 FF7의 북미 출시를 담당했고, 스퀘어의 미국 사무실과 패키징, 광고, 관련상품 등을 협력했다. 2009년 그는 샌프란시스코 외곽에 있는 세가에 입사했다.

이와사키 준: 우리는 소니에게 RPG란 단어를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사람들은 롤플레잉 게임이 너무 길고 반복적이며 기다리는 게 많다고 생각했거든요. 마케팅 측면에선 안 좋은 말이었죠.

크리스 안셀(SCEE의 프로덕트 매니저): 대부분의 유럽 PS 게이머들도 턴방식으로 보이는 FF7을 보고 "이게 뭐야? 왜이리 느려?" 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꾸준히 이렇게 강조해야 했죠. "잘 보세요, 이건 리얼타임처럼 빨리 움직여야 하고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걸 받아들여야 해요. 기회를 주고 시스템에 적응해보세요."

히고 쿄코: 할리데이에 출시된 당시 게임 중에서 FF7이 가장 아름답고 전달력 있는 게임이었다는데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겁니다. 그렇지만 잡지에 인쇄된 정지화면만으론 게임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전달하기 충분치 않아요. TV 광고를 택해야 하는 건 거의 당연한 거였습니다. 그리고 소니는 이미 광고를 만들고 있었죠.

이와사키 준: 소니가 PR이나 다른 일들을 해줬습니다. 하지만 창작적인 면에서 우리는 광고를 승인할 권한이 있었죠. 그래서 저는 광고 샘플을 언제나 사카구치 씨에게 보내서 점검하게 했습니다. 게임 캐릭터들은 그의 자식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앤드류 하우스는 언제나 이에 불평했죠.(웃음)

데이빗 밤베거: 우리에겐 3달의 기간이 있었습니다. 9월에 출시하면 12월에 추가수주를 받을 수 있고, 다음 분기 쯤엔 실적이 나오는 거죠. 그렇게 퍼레이드가 지나갔습니다.

히고 쿄코: 제 기억으로 당시 매주 프리오더 수주량 보고를 받았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수치는 계속 올라가고 있었죠. 그러다 광고가 나가기 시작했고, 모든게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저는 상점에 가보았는데, 가게를 보러 간 게 아니라 마케팅 디스플레이를 보러 간 거였습니다. 일렉트로닉스 부띠끄에 커다란 클라우드 판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QA 테스터 상당수가 UCI 대학생이었습니다. UCI가 우리 사무실에서 10~15분 거리에 있었거든요. 주방이나 식당에 가면 그들이 학교의 친구들이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게임에 대해 얘기하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작은 소중한 순간이었죠.

그보다 큰 순간은 FF7이 출시되고 커버 스토리들이 쏟아져 나올 때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잡지 표지를 우리가 차지했는지 기억 안 나지만, 적어도 PSM과 EGM은 확실합니다. 대부분의 잡지가 우리를 커버로 쓰고 싶어했습니다. 그러고 우리는 사무실에 표지들을 액자에 넣어 걸어놓기 시작했죠. 그리고 첫 주 판매량, 둘째주 판매량, 숫자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FF7이 그 해 가장 빨리 백만장에 도달하는 타이틀이 될 거라는얘길 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죠. 겨우 3달 만에 목표치를 해냈습니다.

이와사키 준: 앤드류 하우스가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한 게 기억납니다. "100만장을 출하했어." 그리고 저는 타케치 씨에게 제일 먼저 연락했죠. 그리곤 이렇게 말했습니다. "100만장 해냈어요!" 그리고 그는 이러더군요. "오, 잘 됐네."(웃음)

데이빗 밤베거: 소니 부사장 필 해리슨과 20달러 내기를 했는데, 저는 3월까지 100만장이 팔린다는데 걸었죠. 제가 졌습니다.

타케치 토모유키: 우리가 미국에서 100만장을 팔았다는 걸 알았을 때, 우린 모두 롯폰기로 가서 파티를 했습니다. 판매량이 일본 밖에서 계속 성장하는 게 너무 기뻤죠. 기본적으로 우리는 많은 CG를 넣은 게임을 만들고, 이미 나온 것과 다르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FF7에 많은 투자를 했고, 또 소니와 협력했습니다. 그리고 FF7의 성공 덕분에 우리는 더 많은 타이틀을 내놓을 수 있게 됐죠.



FF7이 서양에서 100만장을 넘겼다는 소식을 듣고
스퀘어 저팬 직원 일동이 도쿄 롯폰기의 바에서 축하파티를 벌였다.

히고 쿄코: FF7은 97년 9월 7일에 출시되었고, 12월 첫째주에 출근하는데 이와사키 씨와 마루야마 씨가 모두를 불러모아서 100만장을 찍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앤드류 하우스가 샴페인 몇 병을 보내줬죠. 이와사키 씨는 집을 나오기 전에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오는 길에 술을 몇병 사왔습니다. 그날은 사무실에서 가장 즐거운 날이었죠. 그렇게 열심히, 오랫동안 일한 끝에 할리데이 직전의 그 순간이 우리의 가장 자부심 넘치고 행복한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와사키 준: 나중에 쿄코 씨와 팀원들이 저에게 명패를 주었죠. 그때 울어서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웃음)

히고 쿄코: 저는 절대 개발팀의 일원이라곤 할 수 없지만 100만장 판매는 자신감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뭔가 성취했다는 것, 수많은 사람과 이 대단한 게임을 만들었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해외시장을 돌파해냄으로써 서양 팬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말이죠.

타케치 토모유키: 북미에서 300만, 유럽에서 200만을 팔았으니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이제야 세계적인 시리즈가 된 거죠.


스퀘어가 미국에서 FF7을 100만장 판매한 뒤, 스퀘어 직원들이 마켙이 부사장 이와사키 준에게 축하 명패를 만들어 주었다. 수년 뒤, 그는 스퀘어의 액션 RPG 킹덤하츠가 같은 기록을 세웠을 때 비슷한 것을 받았다.



FF7 출시의 일환으로, 스퀘어는 팀원에게 이런 자켓을 100개 만들어 주었다. 일부는 거의 20년이 된 지금도 갖고 있다.


이번 기사를 위해 전 스퀘어 마케터인 히고 쿄코가 1997년 스퀘어 US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파이널판타지7이 일으킨 논란

 FF7의 서양 출시는 대체적으로 성공적이었지만, 논란이 없지는 않았다. 그 중 하나는 흑인과 게이 캐릭터에 대한 묘사였다.

1997년, 플레이어들은 2017년처럼 불평을 떠들 수 있는 소셜 미디어가 없었지만 그래도 일부 팬들은 게임의 주역 중 한명인 바렛이 흑인 스테레오타입으로 묘사된 것이나, 클라우드가 공중목욕탕을 갔더니 게이 스테레오타입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가득 차 있는 것에 혐오감을 표했다.

 불평 중 일부는 게임의 컨텐츠에 대한 것이었는데, 가령 바렛의 캐릭터 디자인이 덩치 크고 터프한 화난 흑인이라는 점 같은 것이었다. 다른 것은 영어 현지화에 대한 것이었다.


90년대 후반 대학원생으로써 알렉산더 O. 스미스는 FF7을 플레이하면서 시리즈의 영문화에 한몫 할 기회를 보았다. 그래서 그는 현지화 팀에 일을 구해서 스퀘어에 합류했고, FF8을 작업하게 되었다. 스미스는 하와이의 일본 방송국의 소프오페라 자막을 만드는 등 현지화 경험이 있었으며, 스퀘어의 가장 인기있는 영문작가가 되었다. 2002년 그는 스퀘어를 떠나 작은 번역회사 카지야 프로덕션을 창업하였으며, 많은 스퀘어와 스퀘어에닉스 게임에 참여하였다. 2017년 그는 카지야 프로덕션이 스퀘어에닉스의 FF12 리마스터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케이스 보에스키: 바렛 사건이 있었죠. 바렛의 언어, 그가 에보닉스(흑인식 영어)를 쓰는 것 때문에 말이죠.

알렉산더 O. 스미스: 미리 알아챘으면 좋았겠지만 당시엔 전혀 의식하지 못 했습니다. "얘는 왜이리 미스터T(흑인 레슬러) 같아?" 라고 했죠. 그게 저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기억합니다.

노지마 카즈시게: 자세히 얘기하고 싶진 않지만 흑인과 게이 스테레오타입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게임에 대한 반응으로 배우게 되었죠. 특히 인종주의적인 점은 시나리오를 짜면서 전혀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누군가 비판을 하기 전까지는 내가 뭘 쓰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죠.

노무라 테츠야: 바렛에 대한 불평을 들었습니다. 뭐가 문젠지 물어보았죠. 제 생각엔 현지화와 번역이 적절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경험 덕분에 우리는 현지화에 훨씬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당시 우리에겐 그렇게 엄격한 컨트롤이 없었습니다. 그저 번역가가 최선이라 생각하는대로 하도록 놔두었죠. 하지만 그렇게 놔두면 우리가 원본에 의도하지 않았던 묘사가 입혀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 이후 우리는 원본에 가능한 가깝게 현지화 하도록 번역팀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와사키 준: 그 전에는 일본의 개발팀은 현지화에 전혀 신경쓰지 않았어요. 하지만 FF7 이후 많은 팀들이 문화, 현지화 문제에 대해 문의해왔죠.

[필자 주: 게임의 논쟁적 요소 외에 FF7의 현지화는 팬들에게 몇가지 웃음거리를 주었다. 가령 "This guy are sick" 같은 대사들은 온라인에서 유명세를 떨쳤다. 팀원들은 이런 문제들을 제한된 현지화 자원 때문이라고 말한다. 당시 스퀘어 미국 사무실에서 게임 전체의 텍스트를 한사람이 다 쳐넣었던 것이다.]

크리스 안셀: 번역은 언제나 언어 순수주의자를 만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잖아요." 라는 얘기 말이죠. 그리고 특정 대사들은 분명 더 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게 애들 동화책 수준의 번역품질을 기대하는 것 같아요.(웃음) 몇가지 피드백이 특별히 기억나는군요. "이건 이 언어에서 더 나은 표현이 있어요." "전 일본어를 알아서 이해하겠는데, 컨셉을 놓쳤군요." 분명 그런 부분이 있긴 했지만 완벽하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알렉산더 O. 스미스: 정말 정말 나쁜 번역들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FF7은 전혀 그런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본 문제점은 대사 사이의 매끄러움의 부족함이었습니다. 가끔은 맥락이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지금 다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됐습니다. 번역에 겨우 한달 밖에 없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히고 쿄코: 작은 현지화 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없이는 우리가 달성했던 것들이 현실이 되지 못 했을 겁니다.

알렉산더 O. 스미스: FF8 번역을 하면서, 제가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이것이었습니다. "우린 8보다 번역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일거야." 사실 7에는 시간이란 게 사실상 없었습니다.

그게 당시 스퀘어의 현실이었죠. 지금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개발팀과 현지화팀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엔 현지화라는 부서도 없었어요. 우린 공식적으로 다른 업무를 하는 곳이었고, 뭐였더라? IT 부서인지 뭔지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1바이트 문자 대화를 다룰 줄 아는 프로그래머 한명 빼고는 현지화와는 아무 상관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게임샤크를 이용해 FF8을 해킹해 대본을 뽑아내고 있었어요. 아무도 대본파일을 주지 않았거든요. "아, 대본 파일이 필요해요?" 개발팀은 그런 게 필요하다는 걸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는 당시에는 흔했습니다.



파이널판타지의 두 메인 캐릭터, 클라우드(좌)와 바렛(우)는 게임 발매 후 논쟁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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