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2) - 게임 개발 by eggry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1) - FF7의 기원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2) - 게임 개발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3) - 해외 출시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4) - FF7 출시 그 후 (1)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5) - FF7 출시 그 후(2)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6) - 에필로그

Final Fantasy 7: The Game


 닌텐도를 떠나기로 결정한 뒤, 스퀘어는 FF7을 플레이스테이션에서 현실로 만들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대규모 3D 기술 및 아트 스탭을 채용하고, 수백개의 실리콘 그래픽스 워크스테이션을 사들였다. 이런 재정적 지원이 큰 차이를 만들었으며, 스퀘어가 초기 3D 게임 개발에서 경쟁자들을 앞지르게 해줬다.

 한편 스퀘어는 핵심 자원을 게임의 아트, 음악, 그리고 플롯에 투자하면서 폴리곤 캐릭터와 CG 컷씬으로 스토리를 전달할 최고의 방법을 실험하고 있었다. 서양시장에서 판매와 마케팅을 위한 사무실도 열어서 아직 시리즈가 번창하지 못 했던 지역에서 게임을 홍보하려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퀘어는 게임 제작과 홍보에 조금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수년에 걸쳐 스퀘어의 본사는 여러 지역으로 옮겨다녔다. 파이널판타지7을 시작한 직후,
메구로 구의 아르코 타워로 옮겼다. 이곳에서 FF7 제작에 필요한 늘어난 직원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파이널판타지7 개발에 큰 돈을 들인 스퀘어

마루야마 요시히로: FF7은 대단히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실제 개발은 1년 조금 넘는 정도였죠. 당시에는 대단히 이례적이었습니다... 개발 사이클을 단축시키기 위해, 스퀘어는 기술에 크게 투자했습니다. 팀은 3,40명에서 갑자기 15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케이스 보에스키: 그들은 FF7 하나에 150명을 투입했고 당시엔 큰 숫자였죠. 당시 보통 게임은 20명 정도가 개발했습니다.

[일부는 팀 인원을 다르게 기억한다. 이 인터뷰에서 키타세 요시노리는 FF6의 개발팀이 60명 정도라고 말했다. 1997년, 일본잡지 패미통은 스퀘어가 FF7 개발에 200명을 투입했다고 보도했다. FF6의 크레딧은 65명의 이름이 올라있으며, 그 중 16명은 스페셜 땡스였다. FF7의 크레딧은 350명 이상이 나오며, 200명 이상이 아웃소싱 업체나 국외 사무소였다.]

야나기하라 준이치: 저와 하시모토 씨, 카지타니 씨 셋은 친구였습니다. 우리는 전세계로 인재를 구하러 다녀야했죠.

카지타니 신이치로: 저는 채용 담당이었습니다. 그렇게 힘들진 않았습니다. 92년에서 93년 정도에 우리는 이미 업계를 예상하고 3D 그래픽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거든요. 당시 닛케이 CG라든가 픽셀이라는 잡지가 있었고, 우리는 이를 통해 100명 정도를 찾았습니다. 우린 그들을 만나러 다녔죠. 한번은 스카이워커 랜치에 들르기도 했습니다. 조지 루카스 본인과 대면하진 못 했지만 그를 멀찍이 볼 수 있었죠. 당시 루카스필름에는 겨우 10명 정도의 일본인만 있었는데, 우리는 그들 모두와 인터뷰 했습니다.

카와이 히로시: 리크루트 인 저팬 이라는 회사를 아시나요? 상당히 큰 회사입니다. 여러 종류의 잡지를 내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구인전문 잡지였죠. 구인광고랑 비슷하지만 조금 더 사치스러운 방법이었습니다. 그들이 인사담당을 인터뷰해서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을 수록해주는 겁니다. 기업들은 거기 수록되는데만도 경쟁을 해야 했죠. 스퀘어가 한부를 저에게 보내줬는데, 아마 MIT의 일본인 중 하나였기 때문일 겁니다.

카지타니 신이치로: 스퀘어는 언제나 한가지 일에 100% 몰입한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세가가 1만 달러치 기계를 살 때, 스퀘어는 10만 달러치를 사들였죠.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를 채용할 때도,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10만 달러치 기계를 돌릴 사람이 필요해."

카와이 히로시: 대단히 개발자 친화적인 환경이었습니다...우리가 해낼 수 있었던 건 회사가 물질적으로 지원해줬기 때문이죠.

아마노 요시타카: 예산이 커지고, 스케일이 커지는 걸 느꼈습니다. 더이상 내수전용이 아닌 것 같았죠. 세계로 나가는 무언가, 더 글로벌한 것, 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봉급이 늘지는 않았습니다만.

카와이 히로시: 우리 개발환경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대단한 지원이 있었고 그래서 우린 최대속도로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게임 디자이너가 자기 책상에 SGI 워크스테이션이 있었어요. PC도 한대씩 있었고요. 스퀘어는 인프라에 많은 돈을 들였습니다. 그리고 하시모토 씨는 최고의 3D 아티스트를 채용할 만큼 돈이 많았을 겁니다.

하시모토 카즈유키: 당시 워크스테이션은 대당 7만 달러였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시그래프 데모를 만들려고 4대를 주문했죠. 우리는 작은 고객이었습니다. 파이널판타지7을 만들기로 한 뒤, 우리는 200대를 주문했습니다. SGI의 반응은 놀라서 "이게 뭐야?!" 였죠.

타케치 토모유키: 우리는 4000만 달러(2017년 가치로 약 6100만 달러)를 게임 개발비로 썼습니다. 그 중 1000만 달러가 컴퓨터 구입비였을 겁니다.

카지타니 신이치로: 당시 저는 시스템 관리부장이었기에, 제가 그 모든 장비를 구입하고 관리했습니다. (2년에 걸쳐) 저는 실리콘 그래픽스에 3800만 달러의 수표를 끊어줬습니다. 200대 이상의 인디고2 데스크탑과 오닉스, 챌린지 렌더링 서버 등등을 샀죠.

FF7 개발 중, 우리는 200에서 250대의 인디고2를 대당 7만 달러에 샀습니다. 오닉스 서버는 100만 달러 정도였죠. 챌린지 서버는 50만 달러 정도였고요. 그래서 저희는 1700만 달러의 SGI 장비를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도 있었죠. 우리는 200만엔 정도 하는 알리아스를 250카피 샀고, 도합 400만 달러 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인건비를 제외하고 저희는 2100만 달러 정도를 그래픽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투자했습니다. 90% 정도는 FF7을 위해서였지만, 다른 프로젝트에도 썼죠.

지금까지 저를 놀라개 하는 점 하나는 플레이스테이션 개발킷도 개당 2만 달러나 되는데, 그것들이 복도에 박스 단위로 쌓여있어서 아무나 그걸 들고갈 수 있었다는 겁니다. SGI 기계들도 널려있었고, 어떤 외부인이라도 들어와서 집어갈 수 있었죠. 사실상 보안이 없었습니다.


PS용 파이널판타지7을 위해 스퀘어는 자원을 쏟아부었다. 잡지로 프로그래머를 채용하고
(위의 잡지는 몇년 뒤의 것이다) 그들만의 아트, 음악 등의 방법론을 개발했다.


게임 개발로 빠르게 옮겨간 스퀘어

1996년 초, FF7 팀은 필요한 장비와 인력을 거의 다 갖고 있었으며, 게임 완성까지 1년도 남지 않았었다. 이런 짧은 개발 사이클에도 스퀘어는 FF7의 비주얼이 초기 3D 게임의 최첨단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 말은 스탭들도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툴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것부터 하드웨어를 배우고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까지, 팀은 많은 걸 배웠다.

치바 히로키(스퀘어 저팬, 이벤트 플래너): 시리즈 첫 3D 게임이었기 때문에 모든 게 새로웠고 모든 게 도전이었습니다.

요시나리 타츠야: 2D에서 3D로 넘어가는 건 지각변동이었습니다. 제가 아직 학생일 때 저는 기술적인 부분을 별로 공부하지 않았으며 그냥 게임을 만들 생각만 했습니다...그러다가 갑자기 3D 그래픽에 뛰어들게 되자 저는 거의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죠. 학교에서 수학을 더 공부하지 않은 것에 스스로 화가 났습니다.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당시 저 같은 기분이었을 겁니다.

하시모토 카즈유키: 주된 어려움은 게임 내의 에셋과 적은 메모리 공간이었습니다. 시그래프 테크데모는 하이엔드 SGI 워크스테이션을 사용했습니다. 256MB의 메모리에 256MB의 텍스쳐 메모리가 추가로 있었죠. 96년엔 엄청난 기계였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1의 메모리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2MB입니다. 전체 메모리가 겨우 2MB이며 텍스쳐 메모리는 그 중 500Kb였습니다. 정말 작았죠. 그리고 모션 데이터도 문제였습니다. 애니메이션 데이터는 너무 커서 어떻게 축소시킬지 고민해야 했습니다.

카와이 히로시: 어떤 3D 애니메이션 데이터가 어떤 레벨에서 필요한지 효율적으로 판별해야 했습니다. 쓸데없이 많이 로딩하지 않게 해야했거든요. 모든 FF7 캐릭터를 동시에 필드맵에 등장시키면서도 60프레임을 유지하기 위해 캐릭터를 어느정도로 만들어야 하는지 계산하는 과제를 맡은 게 기억납니다. 소니가 수치를 제공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스스로 최적화를 달성해야 했죠. 소니의 초기 개발툴은 그들이 정한 API대로만 만들도록 해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드웨어 성능을 더 뽑아내야 하는 지점에 도달하게 됐죠. 실제 우리 개발자 중 한명이 그들이 코드를 해체해서 하드웨어에 직접 명령을 내려 최적화하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초기에 소니는 하드웨어에 직접 억세스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그럼 향후 하드웨어를 개량하면서도 완전히 동일한 기능을 갖도록 유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그들이 결국 손을 들었고, 우리의 자체 API를 다듬어서 모든 PS 개발자들도 쓸 수 있게 해줬습니다.

하시모토 카즈유키: 리드 프로그래머 나리타 씨가 3D 표면에서 캐릭터를 걷게 만들려고 애쓰는 걸 본 기억이 납니다. 그가 문제를 해결했을 때 우리 모두가 기뻐했죠.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경험이었어요.

카와이 히로시: 제가 기억하는 가장 큰 사건은, 아마 FF7이 처음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동영상과 리얼타임 3D를 합성시킨 것이었습니다. 오프닝 컷씬이 열차를 줌인 하면서 거기서 클라우드가 점프해 나오던 걸 기억하시나요? 동영상이 끝나기 전에 아직 두 경비병이 플랫폼에 서있으며, 그건 리얼타임이었습니다. 모든 게 이론 상으로는 잘될 거 같았습니다. 하지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PS는-퍼포먼스를 향상시키기 위해- 하이엔드 SGI와 같은 정확도(Z 버퍼)를 희생했습니다. 그래서 SGI 워크스테이션에서 돌아가는 걸 근사적인 수치로 뽑아내서 옮겨야 했죠. 초기엔 카메라는 그저 줌인만 됐습니다. 아직 동영상이 완성되지 않아서 간단한 3D 배경만 있었죠. 하지만 3D 캐릭터와 동영상이 싱크가 맞는 건 정말 멋졌습니다.

프랭크 홈(에이도스, 협력 프로듀서): FF7은 너무 아름다워서, 시대를 앞서갔습니다...그렇게 2D와 3D 아트를 조화시켜 낸 것이 없었으며 CGI에서 게임으로 전환되는 것도 없었죠.. 저에겐 그저 놀라웠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도 체험을 망치지 않았습니다. 그게 FF7의 아름다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몰입되는 것 말이죠.

사카키바라 모토노리: 매일 우리는 조금씩 발전해나갔고, 결과물에 감화되었습니다. 프로젝트는 겨우 1년이었지만, 에너지는 매우 높았습니다. 이전엔 그런 팀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요시나리 타츠야: FF7의 성공요인 중 하나는 모두가 대단히 열성적이었다는 겁니다. 24시간 동안 게임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모두 동기부여가 되어 있었고 즐겼기 때문에 아무도 번아웃되지 않았습니다. 스퀘어가 기술과 인력에 많은 수고를 들였지만, 동기부여도 분명히 큰 요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젊었고 오랫동안 일할 수 있었죠.

저는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FF7에 대해 생각하며 보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FF7에 대해 생각하다가 출근하고, 밤 늦게까지 모두와 게임을 만들다가 열차를 타고 퇴근하면서도 FF7을 생각하고, 목욕 하면서도, 잠들러 가면서도 그랬죠. 그리고 다음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어진 걸 완수하려고 일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고싶었죠.


2015년 중반 2개월 동안, 도쿄의 국립신미술관에서 "일본의 만화, 아니메, 게임" 이라는 전시가 있었다.
여기에 클라우드의 검과 와이어프레임 아트가 전시되었다.


점점 큰 역할을 맡게 된 아티스트 노무라 테츠야

 스퀘어는 기술을 확보했지만 또한 첫 대형 3D 프로젝트로써 FF7에 어떤 아트스타일을 추구할지도 정해야 했다.

 게임의 전반적인 모습은 아트 디렉터 나오라 유스케가 맡았다. 하지만 캐릭터 디자이너 노무라 테츠야는 3D에 잘 어울리는 뾰족머리를 가진 클라우드 같은 캐릭터들을 통해 팬 사이에 스타로 떠올랐다. FF7의 캐릭터는 2D 파이널판타지의 기존 SD에서 벗어남으로써 서양 팬들의 입맛에 더 맞게 되었다고들 한다.

 FF7 개발 중 노무라는 그저 그림만 그리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 전체의 창의적 부분에 지분을 가지게 된다. 그는 사카구치, 키타세와 더불어 게임의 스토리와 전체 디자인에 기여하였다.

 FF7 출시 후 노무라는 킹덤하츠 프랜차이즈를 이끌었고, 스퀘어의 가장 유명한 직원이 되었다.


스퀘어의 가장 오랜 캐릭터 디자이너로써, 노무라 테츠야는 FF4의 테스터로써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와 처음 일하게 됐으며 그 후 여러 형태로 시리즈에 기여했다. 그는 또한 스퀘어의 다른 게임에도 참여했으며 특히 킹덤하츠 프랜차이즈의 탄생과 개발을 관장한 걸로 유명하다. 2014년, FF15의 디렉터로 수년 간 작업하다 스퀘어는 분명한 이유 없이 그를 교체했다. 그 이후 그는 킹덤하츠3를 제작하고 있으며,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와 다른 아트,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우에마츠 노부오: 노무라 씨는 FF7 이전부터 이 시리즈에 오래 일해왔지만, 그의 아트는 플레이스테이션 시대에 와서야 스크린에 더 잘 표현될 수 있어서 진정 살아났다고 생각합니다. 파이널판타지 시리즈가 PS로 옮긴 게 그에겐 매우 좋은 일이었습니다.

사카키바라 모토노리: 노무라 씨는 훌륭한 2D 아티스트였지만 그의 캐릭터는 3D일 때 더 잘 살아났습니다. 그는 FF7 캐릭터에 무수한 시간을 들였고, 그게 FF7 캐릭터가 태어난 큰 비결이라고 봅니다.

노무라 테츠야: 저는 FF5부터 시리즈에 참여했습니다. FF5와 FF6 때부터 저는 언제나 키타세 씨에게 제 계획과 아이디어를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FF7에서 저는 약간 리더적인 역할이 되었고, 제가 게임에 원하는 것을 더 분명히 제안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카키바라 모토노리: 노무라 씨는 미쳤습니다.(웃음) 그의 기준은 대단히 높습니다. 예를 들어 언제나 캐릭터의 눈, 모양이나 크기, 눈꺼풀의 두께 같은데 신경을 썼죠. 눈의 작은 곡선 하나에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한번도 그가 간단히 제 작업물을 승인해준 적이 없었던 거 같네요.

노무라 테츠야: 전 다소 변덕스럽기 때문에 한가지 일에 몰입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닙니다. 가령 드로잉을 치면 저는 한번에 한가지만 그리지 않습니다. 서너개를 그리면서 왔다갔다 하죠. 혹은 게임의 디자인에 대한 문서를 만들다가도 기분이 바뀌면 갑자기 드로잉을 시작합니다. 드로잉을 해야할 때 기분전환을 하고 싶으면 다른 일을 하면서 리프레시 합니다. 그게 제가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법이죠. 하지만 마감이 있다면 당연히 급한 걸 우선시 합니다.

카와이 히로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섯부를지도 모르지만, 저는 FF7 때까진 그저 아티스트로 보였습니다. 7 때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FF8 때는 분명 무언가 바뀌었습니다. 노무라 씨는 그때 즈음 상당히 다른 사람이 되었는데, 아마도 FF7과 FF8에서 얻은 명성이 그를 사카구치 씨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그와는 싸울 엄두도 못 냈어요.

노무라 테츠야: 스퀘어에서 시작할 때와 지금 사이에 회사 내의 제 입지는 상당히 바뀌었습니다. 제가 입사했을 때 저는 서열 밑바닥에 있었고, 지금은 핵심 의사결정을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런 직위에선 당연히 뭔가 바뀔 수 밖에 없지만 제 입장은 언제나 사물을 플레이어의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제 역할이 플레이어의 관점을 살피는 것이라 봅니다. 그리고 그 측면에서는 저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생각합니다.



노무라 테츠야는 FF7 개발의 많은 면에 기여했지만 팬은 그를 캐릭터 디자이너로서 기억할 것이다.
그는 주인공 클라우드(왼쪽)이나 악당 세피로스(오른쪽)을 포함한 캐릭터 캐스팅을 맡았다.




아티스트 아마노 요시타카의 협업


스퀘어 직원이었던 적이 없는 가장 유명한 파이널판타지 팀 멤버일 아마노 요시타카는 60년대 마하고고 같은 애니메이션의 일러스트 작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80년대에 프리랜서가 된 뒤 혼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의 탄생부터 함께했으며, 초기 홍보아트 대부분을 담당했음에도 스퀘어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프로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오늘날 아마노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 중 하나이며, 그의 작품은 수십만엔 대에 판매된다. 여전히 그는 FF나 다른 게임 업무에 참여하고 있다.

 80년대 첫 파이널판타지를 시작으로, 프랜차이즈의 가장 개성적인 부분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토 아마노 요시타카의 홍보 및 컨셉 아트웍이었다. 이 게임들과 다른 창조물들이 그를 예술계의 셀러브리티로 만들었다.

 파이널판타지 게임의 박스아트나 마케팅에 등장하면서, 아마노는 각 게임의 캐릭터를 맡았고, 게임업계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환상적인 스타일로 묘사되었다.

 "제가 FF 프랜차이즈에 가미해준 것은 제가 게임 개발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아트에 더 큰 자유도를 주었죠. 꼭 게임에서 구현되도록 그려야 한다고 구애되지 않았습니다."

 초기 파이널판타지 작품들에서 아마노는 픽셀아트에 기반해서 캐릭터들이 회화라면 어떻게 그려질까 역으로 그려내었다. 파이널판타지7에서 그는 스퀘어 캐릭터디자이너 노무라 테츠야의 컨셉아트를 기반으로 몇점의 그림을 그렸다. 스퀘어가 노무라의 샘플을 전해주면, 아마노가 재해석 하는 것이었다.

 "아마노는 저희 급여 수준을 완전히 뛰어넘습니다." FF7 개발 중 노무라는 그를 단 한번 만났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쉽사리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노가 노무라의 작업물을 출발점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는 그림을 그리기 전 캐릭터가 어떻게 생겨야 하는가에 대한 설정 같은데 구애되지 않을 수 있었다. 즉각적으로 작업에 들어갔고, 노무라의 어떤 조언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노무라 씨와 저는 별로 접점이 없습니다." 아마노가 말했다. "하지만 제가 할 일이 그렇겐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죠."(웃음)

 아마노에게 그의 작품에 대해 얘기하자, 그는 각 게임의 디테일에 덜 집중하고 캐릭터의 느낌에 더 집중한다고 말한다. 그는 캐릭터가 게임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 대신 그는 게임업계를 고차원적 관점에서 신기술을 대중에게 전하는 훌륭한 방법으로 보았다.

 아마노의 그림은 그를 FF 시리즈의 필수불가결한 일부로 만들었다. 오늘날조차 그는 새 FF 프로젝트에 간간히 참여한다. FF15 벽지 같은 것 말이다.(그리고 스퀘어는 그걸 트레일러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60대인 아마노는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요구하는 클라이언트 의뢰를 덜 받아들인다고 하면서, 그런 일에 따라오는 제약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갤러리에 자신의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으며, 은퇴할 생각은 아직 없다고 한다.

 "예술가로써, 저는 아직도 신인처럼 느낍니다. 아직 해야할 게 많이 남아있습니다. 앞으로 오랫동안 계속 해나갈 것입니다."



폴리곤이 FF 시리즈의 오랜 일러스트레이터 아마노 요시타카를 방문했을 때, 그는 자신의 아카이브를 파해쳐서 90년대 중반 자신이 한 FF7 작업물들을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몇달 뒤, 아마노는 한 갤러리에서 각 파이널판타지가 나올 때마다 그렸던 그의 대표작을 통해 30년을 돌아보는 셀렉션을 전시하였다. 우리는 이 갤러리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작곡가 우에마츠 노부오가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다

 파이널판타지 초기부터 우에마츠 노부오는 시리즈의 작곡가로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패미컴, 슈퍼패미컴에서는 원시적인 하드웨어로 알아들을 수 있는 멜로디를 구현하는 게 일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에서 그는 갑자기 제약이 훨씬 줄어들게 됐다. 그는 더 큰 파일을 만들 수 있었고, 소리를 동시에 재생할 수 있게 되었다.

 "게임 음향은 프로그래머와 디테일하게 작업해야 하는 일이지만 아무도 그걸 제대로 알아보지 못 했습니다." 우에마츠가 말했다.

 FF7에서 그는 영화 사운드트랙 같은 방법으로 음악에 접근했다. 게임을 정의하는 하나의 멜로디에 집착하는 대신 게임의 3D 비주얼을 너무 압도하지 않는 여러 곡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저는 너무 강하게 기억되지 않는 멜로디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에마츠에 따르면 FF7의 작곡은 CD의 특성 때문에 또다른 도전을 낳았다고 한다.


스퀘어의 초기 직원 중 하나인 우에마츠 노부오는 초기 파이널판타지 게임으로 명성을 얻었고 시리즈에 20년 이상 참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점 덜 참여하게 되었다. FF7은 그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만든 첫 게임으로, 더 많은 자유를 주었지만 로딩시간 때문에 자유를 마음껏 활용하길 망설였다. 2004년, 우에마츠는 스퀘어를 떠나 프리랜서가 되었으며, 그 후 사카구치 히로노부의 미스트워커의 여러 타이틀에 참여하였다. 그는 독립 앨범도 내었고 근래에는 모바일 RPG 그랑블루 판타지에도 참여했다.

우에마츠 노부오: 제가 FF5를 작업하던 때 이미 차세대 하드웨어에 대한 루머가 있었지만 저는 어떤게 나올지 짐작도 못 했습니다. 게임이 CD롬이 될 거라는 애기를 들었고, 처음 든 생각은 이랬죠. "오 좋았어, 이제 가수를 채용해서 보컬송을 넣을 수 있겠군." FF7에서 그런 시도를 했고 용량이 충분했음에도 보컬송은 각 씬의 로딩을 길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음악만을 위해 다른 걸 희생할 수 없었어요. 게임은 게이머가 플레이함에 따라 시작되고 멈추는 것이니까요. 보컬송을 의해 로딩을 희생할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컬송을 포기하고 게임을 켜자마자 바로 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런 부분에 저는 특별히 관심을 기울였죠.

로딩에 신경썼던 탓에 음질은 실제로 가능한 것만큼 좋지 못 했습니다. 그리고 게임이 출시됐을 때 저는 FF7의 음질과 당시의 다른 게임을 비교했고, 다른 게임들이 상당히 좋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 게임은 사운드를 로딩하기 위해 게임이 중간중간 로딩하려고 멈추어야 했고, 그건 제가 원하던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의 작품과 제 음질을 비교해본 뒤 이렇게 생각했죠. "그래도 조금은 느슨하게 해도 될 거 같아. 게임플레이를 조금 해치더라도 다음에는 더 고음질로 가봐야지." 그래서 FF8에선 그렇게 했죠...

제가 부러워했던 그 타이틀이 뭐였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수호전 시리즈 였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FF7보다 먼저 나온 거였습니다. 로딩이 매우 많았기에 저는 게임이 너무 많이 멈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음질은 정말 좋았죠. 그게 저에게 다른 방법을 생각하게 해준 방아쇠였습니다.

요시나리 타츠야: CD의 로딩타임은 고통스러웠습니다. 음악 만이 아니라 게임 모든 면에서요. 우리는 로딩시간을 가능한 줄일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우린 사실 다음에 나올 걸 사전로딩 하는데 상당히 노력을 기울였죠...모든 곳에서 로딩시간을 줄여내야 했습니다.



전 스퀘어 작곡가 우에마츠 노부오는 2017년에도 파이널판타지 콘서트에서 팬들이 좋아하는 '편익의 천사'를 포함해 연주하고 있다.


[필자 주: FF7을 작업하면서 우에마츠는 "편익의 천사" 라는 곡을 작곡할 때 실험적인 방법을 택했다. 이 곡은 그의 가장 인기있는 곡이 되었는데, 그는 단지 이 곡을 쓸 때의 목표가 타성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고 한다.]

우에마츠 노부오: FF6에서 저는 보스전 음악을 만드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노력을 기울인 만큼 좋은 결과가 나왔고 평판도 좋았죠.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좋아, 이제 기존 방법으론 내가 FF6에서 한 걸 넘을 수 없을거야." 그래서 평범한 선율이나 클래식 트랙은 성취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꺼내 들었지만, 그냥 듣는 것만으론 아무 도움이 안 됐습니다. 하지만 계속 앉아서 듣고 있으니 거창한 클래식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저는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사무실로 가서 제 머리 속에 떠오르는 한두 악구를 녹음했죠. 아침에 출근한 것처럼 사무실로 가서 떠오르는 대로 녹음했습니다. 그러기를 2주 정도 했네요. 2주가 지나자 저는 랜덤으로 만들어진 악구를 한가득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걸 퍼즐조각인 양 서로 배치하면서 제대로된 트랙이 되도록 만들었죠. 저에겐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이었습니다...이 방식을 쓴 건 그때가 유일합니다. 거의 도박이었죠. 대단한 곡이 나올 수도 있었고, 끔찍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용할 수 있는 음원이 대폭 늘었기 때문에 저에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게 제 커리어의 전환점인지도 모릅니다. 더이상 구속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알렉산더 O. 스미스(스퀘어 US 및 일본의 현지화 전문가): 저는 우에마츠 씨의 FF7 음악 작곡법에서 변화보다는-물론 분명 변화도 있습니다만- 일관성을 더 느꼈습니다. 방법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우에마츠 씨의 곡은 우에마츠 씨의 곡이었고, 편안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그의 곡을 좋아했고, 특히 FF라면 더 그렇습니다. 시리즈에 정말 중요하죠.

요시나리 타츠야: 저는 우에마츠 씨의 음악의 열렬한 팬입니다. 제가 FF7을 만드는 동안, 우에마츠 씨는 작곡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곡이 완성되는대로 보내주었죠. 저는 그가 보내준 노래를 듣기 위해 제 컴퓨터에 재생 프로그램을 짰습니다.

아마노 요시타카: 음악가로써 우에마츠 씨에게 큰 존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위대한 작곡가입니다. 멜로디를 들으면 바로 그의 작품이란 걸 알고, 파이널판타지란 걸 알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쓰는 음악 교과서에도 그의 곡이 나옵니다. 게임 작곡가가 주류음악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게 대단합니다.





메인 캐릭터 중 하나를 죽이다

 1997년 초, 스퀘어는 FF7의 일본어 버전을 마무리 하였다. 팀은 사카구치의 아이디어를 업계 최고의 비주얼과 산더미 같은 컨텐츠로 바꾸어 놓았으며, 플레이스테이션을 콘솔로써 크게 신장시켰다.

 하지만 팀에겐 한가지 비밀이 있었다. 바로 스포일러였다. 1번 디스크의 끝무렵, 악당 세피로스가 메인 캐릭터 중 하나인 에어리스 게인스보로를 등 뒤에서 찔러 살해하는 것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많은 이들이 그 컷씬이 각진 캐릭터와 제한된 애니메이션으로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원시적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게임산업이 만들어낸 가장 감정이 충만한 장면으로 여겨졌으며, 팬들을 수년 동안 강타하였다. 심지어 몇몇 플레이어들은 울기도 했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에, 노지마 카즈시게는 많은 스퀘어의 대작의 스토리를 썼고, FF7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성장기 동안 그는 자신이 파이널판타지보다 경쟁자인 드래곤퀘스트의 팬이었다고 말하면서, DQ2,3가 "일본 RPG의 정수" 라고 칭했다. 그렇다고 드래곤퀘스트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는 뜻은 아니라고 한다. "전 DQ는 할 수 없습니다. DQ를 너무 높이 사기 때문에요. 스퀘어와 에닉스가 합병될 때 DQ의 창시자 호리이 유지 씨를 만난 적이 있는데, 저는 터질 것 같았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죠. 심오한 경험이었습니다." 노지마는 2003년 스퀘어를 떠나 프리랜서가 되었지만, 그 후에도 스퀘어에닉스와 정기적으로 일하고 있다. 2017년 현재 그는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의 스토리를 쓰고 있다.

노무라 테츠야: 몇년 동안 사람들이 저에게 와서 "당신이 에어리스를 죽였어요?!" 라고 말했다는 걸 알고 있나요?

키타세 요시노리: 내 탓이란 거야?(웃음)

노무라 테츠야: 좋습니다, 제가 에어리스를 죽이긴 했죠. 하지만 제가 키타세 씨를 막지 않았다면 게임 후반에 플레이어가 선택한 세명 빼곤 전부 죽도록 만들려고 했잖아요!

키타세 요시노리: 아냐! 내가 그렇게 짰다고? 정말?

노무라 테츠야: 미드가르에 낙하산으로 뛰어드는 씬이요. 거기서 다 죽이려고 했잖아요!

키타세 요시노리: 진짜? 잠깐, 기억이 날 것도...

노무라 테츠야: 이제 기억 나나요? 키타세 씨와 (각본가) 노지마 씨는 거기에 대단히 흥분해있었죠. 제가 "안돼!" 라고 하면서 당신들을 막았어요. 마지막에 선택하는 세명 외에는 다 죽이려고 했잖아요.

노지마 카즈시게(스퀘어 저팬의 시나리오 라이터): 확실히 내가 시나리오 작가였으니 내가 에어리스가 죽는 장면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 결정은 메인 스탭들과 함께 논의해서 내린 거였어요. 우린 스토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노무라 테츠야: FF7의 테마는 "생명"이었고, 우리는 에어리스를 희생함으로써 그 테마에 무게와 깊이를 주려고 했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적절한 비극이지만, 그 후 다른 캐릭터들까지 죽이는 건 에어리스의 죽음을 퇴색시키는 짓이었죠.

노지마 카즈시게: 당시엔 시나리오를 중간에 수정하기 훨씬 쉬웠죠. 그래서 매일 이야기를 이랬다 저랬다 바꿨습니다.

노무라 테츠야: 에어리스를 죽이기로 결정하고 한참 뒤, 그리고 개발이 어느정도 진척된 뒤 저는 우에마츠 씨에게 찾아가곤 했습니다. 그냥 잡다한 얘기를 하려고요. 어느날 개발 막바지에 저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죠. "에어리스를 죽이기로 한 게 옳은 일이었다고 생각하세요?"

키타세 요시노리: 그래서?

노무라 테츠야: 그는 그렇다고 말했죠.

키타세 요시노리: 너무 간결한데!

노무라 테츠야: 그걸 듣고 저는 마음이 좀 놓였어요.

우에마츠 노부오: FF7을 플레이할 때, 나는 에어리스가 그렇게 일찍 죽는다는데 놀랐어요. 모두가 그가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 중 하나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죽어버린 거죠. 아마 그게 모두가 그녀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네요.

노무라 테츠야: 비디오 게임에서 캐릭터가 죽을 때 아무도 그게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게임 캐릭터일 뿐이니까요. 게임을 리셋하든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되살릴 수 있으니까요. 저는 거기서 캐릭터들의 생명에 무게감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생명"이 FF7의 테마였기 때문에, 저는 한 캐릭터를 영원히 죽여서 돌아오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죽음이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중요한 캐릭터여야 했죠. 그래서 우리는 히로인을 죽임으로써 플레이어들이 테마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하려 했습니다.

우에마츠 노부오: 에어리스의 죽음 장면에 나오는 곡을 작곡할 때, 저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선 별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녀는 정말 죄없이 순수했지만 비극적인 삶을 살았죠...이게 중요한 사운드트랙이 될 거란 걸 직감했습니다.

이 장면이 사람들을 울릴 거란 걸 알았더라면 아마 전혀 다른 곡을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더 울게 만들 곡을 만들었겠죠. 하지만 저는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선율로 만들었고, 일반적으로 비극적인 장면에 나오는 노래는 아니었죠. 그게 더 효과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부족할 때 사람들은 상상력으로 채우게 되어있죠. 그래서 해당 트랙이 100% 장면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그 사이를 머리에서 채워넣는거죠.

노무라 테츠야: 사람들이 울게 만드는 게 그 장면의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상실의 아픔과 느낌을 더 잘 이해하길 바랬던 거죠.



FF7의 출시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났음에도, 스퀘어에닉스는 여전히 스포일러를 우려해 미디어가 에어리스의 죽음 장면을 개재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우린 그럴 생각이 없지만, 굳이 보고싶다면 여기서 보라.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1) - FF7의 기원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2) - 게임 개발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3) - 해외 출시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4) - FF7 출시 그 후 (1)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5) - FF7 출시 그 후(2)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6) - 에필로그



핑백

  • eggry.lab :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1) - FF7의 기원 2017-01-25 13:27:42 #

    ...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2) - 게임 개발</a>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3) - 해외 출시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4) - FF7 출시 그 후 (1)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5) - FF7 출시 그 후(2)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6) - 에필로그 스퀘어의 업계혁신적인 롤플레잉 게임의 탄생과 그 영향을 당시 그 사람들로부터 들어본다. 오늘날, 그곳은 요코하마 히요시 구 ... more

  • eggry.lab :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3) - 해외 출시 2017-01-25 13:28:13 #

    ...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2) - 게임 개발</a>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3) - 해외 출시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4) - FF7 출시 그 후 (1)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5) - FF7 출시 그 후(2)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6) - 에필로그 서양 시장을 쫒는 스퀘어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의 연이은 성공을 생각하면 일본의 스퀘어 간부들은 FF7이 일본에서 잘 팔릴지에 대해선 별 ... more

  • eggry.lab :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4) - FF7 출시 그 후 (1) 2017-01-25 13:28:31 #

    ...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2) - 게임 개발</a>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3) - 해외 출시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4) - FF7 출시 그 후 (1)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5) - FF7 출시 그 후(2)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6) - 에필로그 Final Fantasy 7: The Aftermath 파이널판타지7의 출시 다음 시기 동안 스퀘어는 자원을 이리저리 뒤섞었다. 일부 ... more

  • eggry.lab :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5) - FF7 출시 그 후(2) 2017-01-25 13:28:44 #

    ...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2) - 게임 개발</a>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3) - 해외 출시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4) - FF7 출시 그 후 (1)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5) - FF7 출시 그 후(2)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6) - 에필로그 스퀘어가 파이널판타지 영화를 만들다 90년대 중반 하이엔드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를 채용하면서, 사카키바라 모토노리가 입사했다. 처음엔 Fin ... more

  • eggry.lab :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6) - 에필로그 2017-01-25 14:05:02 #

    ...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2) - 게임 개발</a>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3) - 해외 출시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4) - FF7 출시 그 후 (1)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5) - FF7 출시 그 후(2)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6) - 에필로그 Final Fantasy 7: Epilogue 스퀘어에닉스가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를 만들기로 하다 FF7의 출시로부터 20년이 ... more

  • eggry.lab : 500 Years Later - FF7 개발비화 무크지 2018-11-06 15:51:16 #

    ... 다시 비닐에 싸서 책꽂이에 꽂아놔야 겠네요. 이전에 번역한 기사는 아래 링크를 참조.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1) - FF7의 기원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2) - 게임 개발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3) - 해외 출시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토리 (4) - FF7 출시 그 후 (1) 파이널판타지7: 오럴 히스 ... more

덧글

  • FAZZ 2017/01/25 16:36 # 답글

    어우 당시의 꿈의 장비인 실리콘 그래픽스 워크스테이션, 인디고, 앨리어스 등등 사는데 돈을 퍼부운 것이 진짜 놀랍네요. 더 놀라운 것은 저 비싼 장비들을 위한 보안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었다니 ㅎㄷㄷ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Adsense Wide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4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메모장

Adsense Squ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