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 by eggry


 국내 선행상영회 관람에 따라 재관람 후 개정하였습니다.(2017. 1. 1.)

 토호 시네마 난바점에서 2회 관람했습니다. 3박 4일 간 일본여행을 갔는데 사실 오사카엔 관광명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생각해서(전 문화유적지를 좋아합니다.) 거의 쇼핑관광으로 갔습니다. 그러니 시간은 비교적 남는 편이라 '신 고지라'와 '너의 이름은'도 보고 왔네요. 난바점에선 가장 큰 스크린2에서 상영하는 걸 보면 확실히 작금 최고의 히트작임을 실감했습니다.

 시놉시스는 다들 알고 계시듯 자고 일어나면 서로 몸이 바뀌는 이상현상을 체험한 남녀 고교생의 이야기입니다. 단순 러브코메디는 아니고 미스터리 요소와 트릭이 섞인, 굳이 말하자면 '시간을 달리는 소녀' 같은 류의 물건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작화질에 감성 소스를 끼얹은 정도? 호소다 마모루가 이런 쪽에서는 선배라고 할 수 있는데, 늑대아이 이후 괴물의 아이에서 다소 삐그덕거린 모습을 보인 상황에 신카이가 대신 크게 성공한 게 좀 신기하긴 합니다.

 '너의 이름은'은 여태까지의 신카이 마코토 작품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가 있습니다. 코드적으론 좀 더 신화적, 더 직설적으로는 신토적인 면모를 갖고 있습니다. 그 신화적 요소로 지나치게 이질적인 느낌으로 만들지 않고, 현실과 자연스럽게 조화되게 만든 솜씨는 확실히 일품입니다. 이 은근함과 꼼꼼함 측면에선 신카이 작품 중 역대 최고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공을 들인 티가 납니다. 이런 점은 재감상 후 보게 되는 복선이나 편집의 교묘함에서 재차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와 큰 상관 없는 부분들도 역대 최고라고 할 정도의 디테일에 감탄하게 됩니다.

 사실 작중의 몸바꾸기와 그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은 가끔은 일관성도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초자연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한다는 게 우스운 일일 수도 있고, 신비주의적으로 풀어나가려는 게 잘못된 건 아닙니다. 이 작품이 추구하는 방향이 감성 드리븐이기도 하고요. 그렇긴 해도 간혹 드러나는 일관성 문제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과하게 유도되었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작품의 최대 반전이 성립되는 이유가 주인공들이 무신경 내지는 멍청해서[...]라든가 말이죠.

 이 위험한 지점들에 대해서는 마치 인셉션에서 꿈을 눈치채이면 NPC들에게 칼빵 맞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다만 칼빵을 맞는 건 관객입니다. 분명 미세한 기묘함, 불일치를 상당수 관객이 느낄테지만, 작품의 노골적인 시선돌리기에 잘 끌려서 인지하지 못 한다면 이야기는 큰 탈 없이 전달되고 무난히 넘어갑니다. 하지만 한번 인지하게 되면 무작정 무시하긴 쉽지 않습니다. 인셉션에 이런 대사가 나오죠. "코끼리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뭐가 생각나죠?" "코끼리"

 이 적당히 넘어가는 부분은 작품의 짜임새에 가장 치명타를 주는 점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신비적인 이유를 갖다댔다고 하더라도 '이것도 가능한가?' '왜 이건 이런데 저건 다르지?' 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의문이 가장 강하게 피어나는 때가 최대의 반전이나 클라이막스 장면이라는 점에서, 사실 '너의 이름은'은 심각한 '킥'에 빠질 리스크도 분명히 있었습니다.(인셉션에 대해 얘기하고 나니 인셉션의 꿈에 대한 고찰이 상당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너의 이름은'에는 호소력이 있으며, 완전하지 않지만 효과적으로 커버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감정의 격류로 몰아쳐서 잡생각을 못 하게 만드는 신카이의 스타일이 확실히 빛을 발합니다. 그는 최선을 다해 당신이 코끼리를 생각하지 못 하도록 할 겁니다. 그래도 희생자가 없을 순 없겠지만요. 감성적인 부분에서도 성장(?)이 느껴지는 것은 이전에는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는 허무함과 씁쓸함의 승객에 불과했다면, 이번에는 오히려 시청자가 어서 밀어서 다음을 보여달라고 바라게 만드는 점 일까요?

 전작들이 신카이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본다면, '너의 이름은'은 적어도 플롯적으로는 외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는 유해졌다거나, 성장했다고도 볼 것이고, 누군가는 대중성과의 타협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여전히 신카이 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이겠죠. 사실 관객을 일부러 괴롭히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던 전작들이 저는 더 개성적이고 인상깊다고 생각합니다. '너의 이름은'은 상대적으로 무난하고 부드럽죠. 그래서 저는 '너의 이름은'이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하긴 했지만 가장 신카이 적이라고 꼽진 않을 겁니다. 사실 반대에 가깝죠.

 하지만 그동안 괴롭힘(?) 당한 탓인지 달콤함이 마냥 싫지는 않습니다. 묵직하게 쿵쿵거리는 BGM이 나오는 후반부 씬에서 또 송곳으로 찔리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 저만은 아닐 겁니다. 신카이 작품들을 꾸준히 봐온 분들이라면 분명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나긴 조교(?!)에서 온 굴종의 열매[...]일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히 열매는 달았습니다.

ps.일부 번역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만, 일본문화에 아주 익숙하거나 영화 보고 인터넷 검색해보길 기대하는 게 아니라면 괜찮은 편이라고 봅니다. 늬앙스를 조금 다르게 하고 싶은 대사들도 몇개 있긴 했지만, 뭐 그거야 역자분의 스타일이실테니. 그래도 빠져나가가 힘든 건 '화재'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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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ggry.lab : 2016. 9. 20.~9. 23. 오사카 여행기 1부 - 아이폰 구입, 카이유칸, 야키니쿠 2016-12-15 16:19:47 #

    ... 괜찮은 편으로 부위별로 이것저것 많이도 먹었네요. 결국 제일 좋았던 건 로스 스테이크였지만... 생고기 만세, 스테이크 만세. 저녁 먹고선 인근 극장에 '너의 이름은'과 '신고지라'를 보고 왔습니다. 평소엔 영화관은 전혀 생각 없는데 이번엔 관광일정 자체가 별로 계획이 없다보니 화재작이라고 보고 왔네요. 감상은 따로 이미 ... more

덧글

  • 니킬 2016/09/24 23:51 # 답글

    배경음악과 함께 주인공들이 '너의 이름은!', '이름은!!'하는 장면을 보고있다보면, 기억이 없어진다는걸 아는 녀석들이 다른 걸로 시간 보내기 전에 우선 가장 먼저 서로의 이름부터 휴대폰 말고 다른데 써놓을 생각을 안 하는걸까 하는 의문이 들긴 하더군요.(특히 남주는 기억을 떠올려서 마을 풍경까지 그리는 녀석이...;;;)
  • eggry 2017/01/01 16:33 #

    노골적으로 선택적인 느낌이 없진 않죠 ㅎㅎ 뭐 기억이 서서히, 중요한 순으로 사라진다고 치더라도 너무 시의적절하게 없어지는 듯한 부분도 있고요.
  • 2017/01/01 17:2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eggry 2017/01/01 17:30 #

    I KNOW THAT FEEL BRO ㅋㅋㅋ
  • 안스 2017/01/01 18:06 # 삭제 답글

    아... 아주 공감 가는 내용이네요
  • 나르사스 2017/01/26 09:58 # 답글

    화재는 정말 빠져나갈 구멍이 없죠.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헷갈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아나운서들이 극히 드물지만 실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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