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턴 v 니코: 메르세데스가 키운 괴물 by eggry


 메르세데스 듀오가 같은 팀에서 시즌을 보낸지도 올해로 4년차, 불알친구로 카트까지 함께 하며 성장해온 두 드라이버의 관계는 지금보다 더 냉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스페인에서의 참극 이후 오스트리아에서 또한번 두 드라이버가 충돌함에 따라 메르세데스로선 더이상 라이벌 관계를 좌시할 수 없는 입장이 됐습니다.

 과거 한번 홍역을 치른 레드불의 경우 두 드라이버가 치열하게 배틀을 할 만한 상황 자체는 거의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대개는 베텔이 더 우위에 있었고, 웨버가 우위에 있을 때는 또 베텔이 웨버에 그다지 다가가지 못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드물게 한쪽이 다른 쪽을 따라잡는 상황이 있어왔고, 레드불은 대체로 순위를 고수하라는 팀오더를 내렸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팀오더를 어기는 건 주로 베텔이었죠.

 메르세데스의 경우엔 상황이 훨씬 더 복잡합니다. 문제를 가중시키는 점은 메르세데스가 팀오더를 내리지 않고 드라이버가 레이스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토토 볼프의 방침 때문입니다. 게다가 니코와 해밀턴은 베텔과 웨버보다 훨씬 더 비슷한 페이스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겉보기에는 세번의 큰 충돌만이 두드러지지만,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레이스라고 둘의 관계가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사실 그 숨어있는 줄다리기가 더 중요한 부분입니다.

 메르세데스 듀오의 3대 사고라고 하면 2014년 벨기에, 2016년 스페인, 2016년 오스트리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사고 모두 상당한 충돌과 머신 손상이 있었고, 경미한 경우 한 드라이버가 손상으로 순위를 잃는 정도였지만, 심한 경우엔 더블 리타이어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다른 팀에게 포인트를 상납해준 건 기본이죠.

 둘의 충돌은 해밀턴이 메르세데스와 계약했을 때부터, 그리고 세간의 예상과 달리 니코가 해밀턴에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는다는 게 확실해진 때부터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오로지 이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의 문제였고, 메르세데스는 이를 잘 다루지 못 했습니다. 레드불보다 더 까다로운 케이스이지만, 레드불보다도 잘 하지 못 했습니다.

 토토 볼프는 오스트리아에서의 사고에 분개하면서, 2014년 바레인 그랑프리의 배틀을 언급하며 그런 식의 싸움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바레인 그랑프리가 그저 사고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마치 환상의 휠투휠처럼 여겨지지만, 이 바레인 그랑프리 조차 두 드라이버의 고조되는 긴장감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바레인의 휠투힐에서 해밀턴은 3번에 걸쳐 니코에게 양보를 강요하는 기동을 했습니다. 두번 니코를 트랙 밖으로 밀쳐냈으며, 한번은 니코의 앞을 가로지름으로써 니코의 추월을 막았습니다. 이 세번 모두 해밀턴의 공격적인 기동에 니코가 충돌을 회피하는 식으로 간신히 참사를 피했습니다. 바레인은 79년 디종의 빌르너브 v 아르누어 같은 순수한 꿈의 배틀이 아니었습니다. 둘이 방호벽에서 경기를 마치지 않은 건 순전히 팀메이트이고 니코가 피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바레인에서의 패배 후, 니코는 해밀턴의 저돌적인 전술에 대책을 찾아야 했습니다. 니코는 이후 더 공격적이고 과감하게 대응하기로 했고, 그게 잘못된 게 바로 2014년 벨기에였습니다. 벨기에에서 니코는 자신의 무모한 밀어붙이기에 해밀턴이 마찬가지로 회피로 대응하리라 기대했지만 그러지 않았고, 결과는 해밀턴의 리타이어와 니코의 프론트윙 손상이었습니다.

 사실 메르세데스는 이미 바레인에서 한 드라이버가 다른 드라이버를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 엄중히 대응했어야 했습니다. 그걸 방조한 결과, 머신을 무기로 이용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해밀턴은 이를 더욱 남용했고, 니코는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결론을 더 굳히게 만들었습니다. 벨기에 사고 후 니코는 메르세데스에 벌금을 내야했고, 이 사건으로 기가 꺾인 니코는 거의 1년 가량 해밀턴에게 밀리면서 상대적으로 충돌 없는 조용한 시기를 보냅니다.

 하지만 둘의 긴장은 2015년 시즌이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다시 시작됩니다. 해밀턴의 챔피언십 우세가 확고해진 시점에서, 니코는 뒤늦게 기세를 되찾습니다. 타이틀 배틀의 부담이 사라진 것이 니코의 짐을 덜어준 것인지 무엇인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해밀턴과 메르세데스의 더블 타이틀이 확정적이란 점이 적어도 니코가 팀킬을 우려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 건 맞습니다.

 하지만 아직 타이틀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니코가 다시 해밀턴과 비슷한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문제는 발생합니다. 일본에서 니코는 폴이었지만 느린 스타트 후 첫 코너에서 해밀턴과 싸우게 됐습니다. 해밀턴은 또다시 슬그머니 니코를 코너 바깥으로 밀어붙였고, 니코는 순위를 잃어야 했습니다. 이때 해밀턴은 "코너 바깥에 있을 땐 그런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라고 코멘트 했습니다.



 2경기 후, 미국에서 니코는 다시 한번 해밀턴과 첫 코너에서 싸우는 입장이 됐습니다. 역시 충돌 없이 끝났지만 해밀턴은 또다시 니코를 코너 밖으로 몰아냈고, 이번에 해밀턴의 주장은 젖은 노면 때문에 그립이 부족해서라는 것이었지만, 니코는 해밀턴이 자신을 의도적으로 밀어내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니코는 벨기에에서 실패했던 해밀턴에의 맞불놓기 전략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16년 호주에서 그 복수극을 실천합니다. 첫 코너에서 니코는 해밀턴을 코너 바깥으로 몰아붙였으며(가벼운 접촉을 동반하며) 메르세데스 팀메이트가 된 이후 처음으로 휠투휠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캐나다에서 반대 상황이 되었을 때, 해밀턴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스킬을 발휘해 니코를 턴1에서 밀어냅니다.

 두 드라이버의 위험천만한 담력 테스트-네가 비켜-는 팀의 방조 하에 계속되었고, 스페인에서 극한에 다다릅니다. 메르세데스 역사상 가장 끔찍한 결과를 낳았던 스페인에서의 더블 리타이어도 근본적으로 같은 식입니다. 니코는 잘못된 엔진 세팅으로 속도를 잃고 있었고, 해밀턴이 이를 추월하려는 과정에 니코가 과격하게 블럭하는 과정에서 둘은 충돌했습니다. 스튜어드는 사고라고 판단했고, 볼프는 이번에도 편을 들길 거부했습니다.

 지난 2년 간, 분명 해밀턴이 니코와 휠투휠 상황에서 더 본능적 직관을, 그리고 더 과감한 모습을 보여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니코는 해밀턴의 저돌성에 물러서는 대신, 자신도 만만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14년 벨기에에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을 되찾은 뒤 올 시즌에는 그 수위를 더 높이고 있습니다.

 15년을 시즌 초반의 슬럼프로 날린 뒤, 올해는 초반의 승기를 잡았으며 이번에야 말로 타이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충돌도 니코에게 안 좋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14년 벨기에에선 팀의 비난을 받고 한동안 주눅이 들었지만, 이제 니코는 그런 것에 기죽을 필요 없다고 자신을 다잡은 듯 합니다. 어차피 병신이 될 거라면 이긴 병신이 되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16년에 그리 큰 시차를 두지 않고 벌어진 두번의 사고는, 해밀턴에게도 니코가 사고가 나는 한이 있더라도 더이상 피하지 않겠다는 걸 확실히 각인시켜줬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니코가 본 손해가 오스트리아에서 2위였어야 할 게 4위가 된 거라면(스페인은 더블 리타이어이므로 둘 간의 득실은 없음.), 6포인트는 "메시지를 전하는(to prove a point)"-14년 벨기에에서 그렇게 행동한 이유에 대한 니코의 해명- 댓가로는 매우 값싼 것입니다. 여전히 직관력에 따른 휠투휠에선 니코가 한수 아래라 하더라도, 적어도 해밀턴은 이제 니코가 사고를 막기 위해 피해줄거라곤 기대할 순 없습니다.

 팀 보스 토토도 상황이 이제 좌시할 수만은 없다는 걸 깨달은 듯 합니다. 그는 다음 그랑프리 이전에 팀오더에 대한 방침을 결정할 것이라고 합니다. 해밀턴은 반대하지만, 니코는 찬성합니다. 그리고 이 또한 니코에게 있어 실보다는 득이 더 큽니다. 일반적으로 (순위유지) 팀오더가 나올 법한 상황에선 니코가 앞서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말입니다. 반대의 경우가 드문 건 니코가 해밀턴과 붙을 페이스가 되지 않아서 이지만, 그 경우는 어차피 의미 없는 이야기입니다.

 오스트리아 이후 메르세데스는 결코 이전같을 수 없을 겁니다. 공개적인 팀오더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예방조치가 이뤄져야 팀의 포인트를 날려먹는 일을 막을 수 있으니까요. 올해 타이틀도 메르세데스에겐 순항으로 보이지만, 우위가 영원하리란 법은 없으며, 그제서 질서를 회복하려고 해도 늦을 따름이니 대응은 빠를 수록 좋습니다. 물론 관객의 입장에선 팀오더가 좋을 이유는 거의 없지만 말이죠.

 메르세데스 팀 내 밸런스의 전환점이 오스트리아에서 찾아온 것은 기묘할 정도로 운명의 일치처럼 보입니다. 역사상 최악의 팀오더 논란을 일으킨 2002년 페라리의 팀오더가 일어난 곳도 오스트리아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팀오더의 주체였던 로스 브런은 주저없이 니코에게 해밀턴을 공격하지 말고 순위를 유지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와는 다르다고 말하던 토토가 결국 이런 처지에 놓인 걸 보고 로스 브런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게 틀림 없습니다.



메르세데스는 뒤늦게 브런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덧글

  • alainprost 2016/07/05 16:32 # 삭제 답글

    세나 프로스트 때와 마찬가지로 햄&버그 듀오도 같은거 같네요. 양보하는 놈이 지는 것은 마찬가지니... 팀오더가 이해는 되지만 레드불이나 페라리 꼴을 또 보기는 싫으니ㅠ
  • eggry 2016/07/06 19:20 #

    실력으로 확실하게 넘버 원투가 갈리면 별로 말도 안 나오겠지만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 이기려면 넘버투의 실력도 좋아야 하니 경쟁이 치열한 상황엔 팀 내분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데스티니
  • pong 2016/07/05 18:34 # 삭제 답글

    이긴 병신이 되어라 !
    카페타였나요
    첫 포뮬러 진출에 첫코너에 차를 부셔먹고도 칭찬을 받던 모습이 있었는대
    앞으로 경쟁자들은 니가 비켜줄거라 생각하지 않을것이라고

    니코의 각성이 늦지 않길 바랍니다.
    팀내 원투가 궅어져 경쟁없이 한명은 서포터가 되는 꼴은 보고싶지 않으니까요
  • eggry 2016/07/06 19:22 #

    그래도 결국 순수한 재능에서는 결국 니코가 밀리기 때문에 니코가 딴 팀 가는 게 낫다고 하는 칼럼들도 있긴 하죠. 미카 하키넨과 데이빗 쿨사드 같은 느낌이 드는데... 물론 둘은 현역 시절 결코 사이가 좋지 않았고 팀 내부적 문제도 있었지만 대단히 프로의식이 있어서 일은 또 잘 했다고도.
  • 9 2016/07/05 19:10 # 삭제 답글

    오늘 라우다옹 발 재밋는 기사가 떳군요. 생각보다 메르세데스 상태가 심각해보이는 ㅋ
  • eggry 2016/07/06 19:19 #

    솔직히 이제 둘 사이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ㅎㅎ 바쿠의 경우엔 사실 퀄리에 진 것보다는 자기가 실수해서 쳐박은 게 어지간히 화나지 않았을까 싶네요.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아서 그렇지 열받아서 다 부수고 헤집어 놓았다는 류의 얘기는 알론소나 슈마허도 있었죠.
  • 케빈 2016/07/06 19:14 # 삭제 답글

    '머신을 무기로 이용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지닌 해밀턴'...에서 해밀턴이라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가 과거 슈마허의 화려한 전과들을 연상시키는군요 ㅋ 슈마허의 만행은 성공한것도 있었고 실패한것도있었고 논쟁으로 흐지부지끝난사건들도 있었죠... 성공한 대표케이스는 데이몬힐을 2위로 밀어내고 챔피언이된 호주경기였을거고 실패한 대표케이스는 비르느브가 태클을 이겨내고 챔피언이 된 마지막경기일겁니다...ㅎ
  • eggry 2016/07/06 19:24 #

    슈마허의 전과를 연상시키지만 그래도 슈마허와 다른 점은 슈마허가 게임의 흐름을 바꾸기 위한 사보타지 행위로 구설수에 오른 반면 해밀턴은 전적으로 휠투휠에 집중된 행위를 한다는 점이죠. 슈마허는 자신을 게임을 컨트롤하는 사람으로 여기지만 해밀턴은 검투사라고 여기는 듯...

    둘의 공통점은 휠투휠이 목적일 땐 엄청나게 정교하고 상대방을 잘 예측하기 때문에 (니코의 경우처럼) 잘못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정도? 확실히 천재들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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