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푸스 한국의 카메라 사업 종료에 부처 by eggry


 카메라 업계의 끝없는 축소와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기어이 첫번째 희생이 나오고 말았군요. 올림푸스가 2020년 6월을 마지막으로 국내에서 카메라 판매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서비스는 법에 따라 몇년 더 이어질테고, 현미경, 의료기기 사업도 할테지만 카메라와 렌즈는 이걸로 끝입니다.

 물론 본사 차원에서 아예 디지털 이미징 사업을 접겠다고 한 것은 아니라 신제품들은 나올 겁니다. 이미 발표한 것 중 아직 안 나온 것들도 있고요. 하지만 한국 지사에서 수입하고 서비스하지 않는다면 이용은 현저히 어려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뭐 구매하기 번거로운 것부터, 앞으로 한글 메뉴가 없다든지 하는 것들까지 말이죠. 서비스 하려면 해외로 보내야 할테고요. 결국 한국의 올림푸스 카메라 사용자는 장기적으로 0으로 수렴할 수 밖에 없겠죠.

 한국에서 마이크로포서드는 올림푸스의 주도세가 강했기 때문에, 올림푸스의 사업 종료는 마이크로포서드 시스템에도 큰 타격입니다. 파나소닉은 별로 성실하게 수입을 해주지 않았으니 갑자기 과반의 선택지가 증발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시스템 기반이 약해지면 보따리상 근성인 파나소닉은 더 수입을 안 하겠죠.

 그나마 유튜브 시대라 영상용 고급기는 계속 들어오지 싶습니다만, G9/GH5 이하 급의 제품에 대해서는 앞으로 회의적이네요. 렌즈야 뭐 정말 보따리 근성으로 가져왔기에 별 상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수입을 안 할 이유를 더해준 건 분명합니다. 풀프레임과 프로캠이 있다는 게 그나마 사업의 활력을 지행해줄 요인일 듯 하네요. 보따리 맘을 알 수 없어서 예측성이 떨어지긴 합니다만, 사업 부담은 올림푸스보다 확실히 낮게 굴려왔습니다.

 첫 사례가 만들어졌으니, 다른 회사들도 뒤따를까 생각도 듭니다. 사실 카메라, 렌즈 팔아먹기 힘들다고 몇년 전부터 아우성이었는데 코로나19를 이유로 적당히 손을 땔 시점이라 생각도 됩니다. 특히나 지사가 아닌 일반 수입처들은 더 유혹이 있겠죠.

 개인적으로 다음 순위라고 하면 펜탁스나 리코가 제일 위태로워 보이네요. 지사가 아닌 세기가 수입하고 있기도 하고, 억지로 카메라 제품군을 유지하게 해줄 다른 제품도 별로 없으니까요. 같은 세기가 수입하는 시그마는 렌즈 공급에 끼워팔기 당하는 입장이라 괴작들만 나오던 시절에도 계속 나와줬고, L 마운트로 넘어간 지금은 어느때보다 상품성이 좋으니 시그마 만큼은 마이너 중에서 거의 최후의 최후까지 살아남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후지필름의 국내 시장 여건은 잘 모르겠는데, 이쪽도 올림푸스처럼 본사 직영 중심적이라서 지사의 의향은 크게 상관 없어 보이고 본사 생각은 알기 어렵습니다. 여건이 나빠지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상품성 면에서는 다른 마이너 브랜드에 비해서는 꾸준히 유지해오긴 했습니다. 마포가 사라지게 되면 크롭 시스템에서 독보적 존재라는 점도 있긴 할테고요. 이쪽 역시 중형이 있어서 파나소닉처럼 팔아먹을 게 이것저것 있어서 서로 밀고 당겨주는 모양새가 될 듯 합니다.

 올림푸스가 빠지면서 캐논, 니콘, 소니의 빅3 구도는 더욱 확고해질테지요. 물론 이 회사들조차 본사 사정까지 흔들린다면 어찌될까 싶긴 하지만, 소니나 캐논은 비즈니스 면에서 아직 할만한 상황이죠. 니콘은 몇년째 어렵긴 하지만 정체성 상 쉽사리 그만두진 않고 거의 사운을 건 시점까지 버티지 싶습니다. 올해야 코로나19에 올림픽 연기 때문에 어느 회사나 다 죽을 맛이겠긴 합니다마는... 위기를 기회로 캐논의 EOS R5가 이 시기에 줍줍을 노리는가 싶기도 합니다.

 올림푸스 건으로 이제 카메라 취미인 사람들은 고민거리가 꽤 늘게 생겼습니다. 그야 모기업이 카메라 사업을 그만둘 가능성은 계속 생각해 왔지만, 수입 단계에서 단절은 상대적으로 간과되었거든요. 일단 언급한 마이너 브랜드 중에서 시그마, 후지필름을 제외하고는 새로 투자하기에는 리스크가 매우 큰 상황입니다.

 제가 파나소닉의 UX와 디자인, 만듬새를 아주 좋아하지만 수입, 서비스의 지속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지금 상황에선 도저히 넘어갈 엄두가 안 나는 상황입니다. 사실 렌즈가 아직 적거나 비싼 건 그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입니다. 현재로썬 시장이 안정되고 예측성이 생기기 전까지는 기존 유저나 신규 유저나 주의를 많이 해야 할 때지 싶습니다. 물론 헐값에 나온 매물을 수집이나 입문용으로 쓰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뭐 2020년에 새로 크게 투자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싶긴 하지만, 혹여 신규 진입자가 있다고 하면 이 점을 확실히 염두하고 고르거나 추천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캐논, 소니가 제일 리스크가 낮겠고, 니콘, 시그마, 후지필름 정도는 코로나19 고비 정도는 넘길 수 있으리라 봅니다. 장기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어디까지나 수입의 얘기이고, 본사의 사업의지 면에서는 이 다섯 메이커는 당분간은 걱정 안 해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올림푸스 카메라는 E-30, E-P2, E-P3, E-M5, E-M1을 사용했습니다. E-30은 라이브뷰의 가능성을 알려줬고, E-M5는 미러리스도 메인 카메라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보여줬죠. 특히 E-M5는 처음 해외여행에 가져간 카메라라(터키 여행) 흔적도 많이 남겼습니다. 올림푸스의 디자인과 JPG 색감을 좋아했는데, 사골센서와 AF 개선이 지지부진한데 지쳐서 소니로 넘어왔습니다만, 이렇게 떠나가게 되는군요. 언젠가 소장이나 서브로라도 펜F 정도는 구해보고 싶습니다.

ps.이쯤 오니 결국 마지막 매니아들은 기술적 장단점이고 성능이고를 떠나서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버티고 남을 시스템으로 좋든 싫든 기울 수 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그 접근법으로 고비를 넘기고 끝까지 살아남은 게 바로 라이카죠. 드럽게 비싸지만 수십년 지나도 본사에서 얼마가 어떻게 들든 고쳐는 준다는 점에서... 과연 일본 메이커 중 이 접근법을 택할 첫 메이커는 어디일까요?

넷플릭스로 지브리 다시 보기(15) - 코쿠리코 언덕에서 by eggry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 고로의 두번째 작품 '코쿠리코 언덕에서'(이하 코쿠리코)입니다.


- '게드전기'로 악명을 날린 뒤 나온 고로 감독작 '코쿠리코'. '게드전기'는 너무 큰 짐이었던 모양인지 이번에는 상당히 소박한 내용을 선정했습니다. 원작 만화가 있는데 애니화 결정은 하야오의 애정 탓입니다.


- 1963년 요코하마 항구와 언덕을 배경으로,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둔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하는 내용입니다. 주인공 메르(이름이 우미(海)라서 프랑스어로 바다인 메르)는 한국전쟁의 보급선단, LST에 참가했다 기뢰에 죽은 아버지를 두고 있으며, '코쿠리코'라는 하숙집을 어머니가 유학 간 동안 할머니 감독 하에 대신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이 LST와 한국전쟁(일본에선 조선전쟁이라고 함)의 언급 때문에 불편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의미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세계대전 세대는 지나간 뒤이고, 전후부흥기의 고생과 위험을 대표하는 정도입니다. 물론 그게 남의 전쟁에 팔아먹어 부흥을 이룬 것이지만, LST 자체가 패전과 평화헌법으로 공식적으로 참전할 수 없게 된 상황에 미국의 요구로 간접적 지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라 일본 현대사에서는 꽤 민감한 소재라고 합니다.

 당연히 미국 주도적으로 만들어진 평화헌법과 무장해제가 제일 먼저겠고, 그 와중에 인접국에서 국제전쟁이 벌어지자 일본의 조력을 어떤 형태로든 필요로 하지만 군사력을 발휘할 수는 없게 만들어 놓은 상황에서의 꼼수 같은 것들도 말이죠. 전후 일본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좋든 나쁘든 인식시키게 함과 더불어, 한국전쟁이 순전히 남의 집 전쟁만은 아니며, 무엇보다 평화헌법 하에서 일본의 직간접적 군사활동에 대해서도 논란을 촉발시키는 근간이 됩니다.

 뭐 '코쿠리코' 자체는 이 주제에 대해서 정치외교적으로 크게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전후부흥 속에 잊혀져가는 상처와 옛것이 작품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데, 메르의 아버지와 LST는 그 전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부녀지간 정도이지만, 카자마의 출생의 비밀(?), 카자마의 아버지, 그리고 나중에 나오는 두 아버지의 친구까지 나와서 옛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대로 돌아오면,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옛것을 일신하려는 운동이 동아리 건물 철거로 이어지게 됩니다. 학생들은 당연히 저항운동을 하는데, 신문도 만들고, 경영자를 찾아가기도 하고, 스스로 청소를 실시해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든가 합니다. 사실 동아리 건물 사건은 너무 단조로운 얘기라는 생각도 듭니다. 딱히 위기 같은 건 없고 젊음과 노력에 쉽사리 탄복하는 식이라서요.


- 동아리 건물 '카르티에 라탕'은 메이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로 학생들의 무계획적인 이용으로 엉망에 노후화까지 되어 철거될 위기에 처합니다. 던전과도 같은 그 모습은 오늘날에도 교토대학 기숙사 '요시다료'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2019. 11. 22.-29. 일본 칸사이 단풍 여행기 9부 - 교토대학 요시다료) 거기도 얼마나 갈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래된 기숙사, 동아리 건물, 학생 자치 같은 키워드는 학생운동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물론 거리에서 시위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순하게 거세된 것이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죠. 60년대 학생운동은 당연히 대학생이 주류였습니다만, 중고등학생들도 그런 사회분위기에 휩쓸리거나, 선망이나 모방 차원에서 학교나 지역사회에서의 운동이나 대립은 꽤 흔했다고 합니다. '빙과'에서도 당시 학생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죠.

 고등학생의 저항이라 해봐야 동아리나 학교축제 문제 정도에 그치긴 합니다만, 당시 사회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60년대 학생운동이 실패해 그 중고교생들의 선배들이 현실에 타협하게 되면서, 중고생들도 당연히 활력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야 아직도 학생회의 권력 뭐 그런 코믹한 묘사가 나오지만 실제 학생회는 학교의 괴뢰일 뿐이며, 학교축제는 학생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당근 정도로 전락하게 된 현실입니다.


- 새로운 시대를 맞아 옛 상처와 옛것에 대해 생각한다는 점에서 2011년에 나온 이 작품의 소재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것입니다. 2011년 대지진과 2020년(이젠 21년이지만) 도쿄 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말이죠. 물론 2011년 개봉작이니 당시에는 대지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 했을 겁니다. 일본의 50년대에 해당되는 건 90~2000년대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장기불황으로 힘들었다는 점에서...

 도쿄 올림픽은 어느정도 일치되는 부분입니다. 새 시대의 막을 여는 행사이기도 하지만, 새 것에 대한 생각이 너무 앞선 나머지 옛것을 잃어버리고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죠. 뭐 64년 올림픽에 비하면 20년 올림픽은 주거지 철거 등과 같은 대규모 사회변동은 일으키지 않았던데다, 당장 올림픽이 새 시대의 막을 열기나 할지 걱정해야 하기는 합니다마는.

 지금과 그때의 병렬성이란 측면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스토리텔링이 영 미적지근해서 별로 잘 풀어가지는 못 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소재와 주제의식 자체가 일본인 외에는 거의 이해 불가능할 것이라서... 그나마 사전지식이 있는 한국인들도 조선전쟁 자꾸 말해서 기분 나쁘다+남의 전쟁으로 돈 벌었다 라는 생각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으니; 그래서 해외흥행은 뭐 애초에 기대 안 한 거 같긴 합니다.


- 실제 배경이 명확해서 익숙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모토마치를 달리는 노면전차 같은 것들은 지금은 없어진 풍경입니다만, 아직도 있는 풍경들도 볼 수 있습니다. 도쿄에 갔다가 밤에 돌아올 때 야마시타 공원을 걷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금도 있는 히카와마루 호, 요코하마 마린 타워, 심지어 호텔 뉴 그랜드의 간판까지 배경에 나옵니다.

 호텔 뉴 그랜드 간판이 제일 놀랐던 거였는데 정말 지금도 똑같거든요. 다른 두 랜드마크야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요. 찾아보니 호텔 개업이 무려 1927년이라고 합니다. 그럼 그 간판이 지금도 그대로인 게 신기하진 않네요. 히카와마루 호야 개항기 정기선이었고, 요코하마 마린타워만 1961년 개업으로 가장 신문물입니다.

 그 외에 나오는 곳으로는 사쿠라기초 역이 나오는데, 당시엔 도쿄로 가려면 여기까지 나가야 했을 겁니다. 지금은 야마시타/주가카이에서 시부야, 이케부쿠로까지도 갈 수 있지만요. 언덕 위에 있고 항구가 잘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코쿠리코 장은 서양관이 많이 있는 야마테의 언덕에 있을 듯 합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공원에 지브리 최초의 무대 명판이 걸려있다고 합니다.(링크)


- 전반적으로 그냥 시대랑 소재가 다른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느낌입니다만, '귀를 기울이면'도 약간 미적지근했다고 생각하지만 '코쿠리코'는 그것보다 조금 더 밍숭맹숭합니다. 출생의 비밀도 좀 그렇고(작중 대사를 빌리자면 막장 드라마 같은;) 동아리 건물 사건도 너무 휘릭인 거 같고...

 뭐 미야자키 고로로써는 '귀를 기울이면' 열화판 정도라도 분투한 것이지 않나 싶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정도 재주는 된다면 다음번은 그럭저럭 평작은 되지 않을까 싶기도? 고로도 지브리도 하야오의 (진짜) 은퇴 후에는 장래가 불투명합니다마는.


- 아버지인 하야오와 관계는 아직도 좋다고 말하긴 어려운 듯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타협하고 보조를 맞춰가고 있는 듯 합니다. 개봉 전 다큐멘터리에서 하야오, 고로, 토시오의 미묘하고 긴장된 분위기가 작품보다 훨씬 재밌다는 얘기도 있고 실제로 그럴 듯 합니다만...

 성질 더러운 하야오도 이제 늙었고, 고로도 내놓은 자식 수준은 아니라 부자관계를 회복,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서로 있는 듯 합니다. 당장 하야오가 엄청 좋아했다는 원작 애니화를 고로가 맡는데 반대하지 않은 것만 해도. 연을 끊지라도 않는 한 혈육의 정은 어쩔 수 없는 건지.

탐론 70-180mm f2.8 Di III VXD 소니 FE용 구매 by eggry


 태어나서 두번째 탐론 렌즈. 첫번째는 17-50mm f2.8이었는데 그게 제 최초의 렌즈교환식 렌즈였죠. 소니 A 마운트용을 썼습니다. 이후 탐론과는 별로 인연이 없었습니다. 가성비는 좋지만 마감이 싸굴틱하다든가, 모터 소리가 씨끄럽다든가 하는 이유였네요.

 공전의 히트를 친 소니 FE용 28-75mm f2.8도 표준줌을 중시하는 저로써는 마감 등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AF 신뢰성 문제도 있었고요. 대체로 괜찮지만 표준줌에는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이벤트, 스포츠용) 휴대성을 포기하고 소니 24-70GM을 썼습니다. 17-28mm f2.8은 16-35GM에 비해 화각면에서 활용성이 너무 광각으로만 치우쳐져 있어서 역시 패스됐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70-180mm f2.8은 다릅니다. 여행에 망원렌즈를 쓰고 싶다는 희망은 계속 있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소니에서 나온 제품들은 다 적절하지 못 했죠. AF 등을 이유로 가격, 휴대성의 불리함을 감수하고라도 퍼스트파티 렌즈를 추구하는 입장이지만, 이것 만큼은 제 주된 용도(여행)에서 감당하기에 적당한 게 없었습니다.

 70-200GM은 화질과 AF에서 아쉬움을 느끼지만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크기와 무게죠; 일부 가방은 분리하지 않고는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아예 리치를 늘리잔 생각에 시도한 100-400GM은 무게는 더 가벼우나 더 두텁다는 게 가방에서 꺼내고 넣는데 번거로웠고, 이너줌이 아닌 게 가방에서 꺼낼 때 이래저래 걸리적거렸습니다. 어쨌든 눈꼽만큼 가볍다고 해도 무겁긴 매찬가지입니다.

 70-200G나 70-300G는 휴대성은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광각, 표준이 GM인데 f4나 가변조리개인 건 '끕'이 너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70-300G는 화질 면에서 300mm의 추가화각이 별로 메리트가 없다고 느꼈다는 것도 있고요. 물론 물량이 너무 없어서 가성비도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도 한몫 했습니다. 결국 70-200G냐 70-200GM이냐로 압축하긴 했는데, 들고다니느라 짜증나면 안되니 70-200G로 타협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탐론에서 70-180/2.8이 나왔죠. 기존 탐론 렌즈들과 마찬가지로 화각을 비표준으로 가져가는 식으로 휴대성을 강조했는데, 이번엔 그 변태화각의 디메리트가 더 적었다고 봅니다. 28-75/2.8은 폰에서도 익숙한 24mm가 없다는 게 컸고, 17-28/2.8은 광각단, 망원단 모두 모자라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망원에서 180mm와 200mm의 차이는 그렇게 큰 게 아닙니다. 거의 발 한두걸음 정도의 문제죠.

 또 기대를 높인 건 신형 VXD 모터입니다. 탐론은 모터를 너무 복잡하게 내놓고 있는데, 여튼 VXD는 뭐 탐론 70주년을 기념해서 어쩌고 저쩌고 말이 많습니다만, 간단히 말하자면 탐론 최초의 초음파 리니어 모터입니다. 이는 소니에서 DDSSM에 해당하는 모터입니다. 소니의 망원렌즈는 DDSSM이나 그 윗급인 XD 리니어모터 채택이 꽤 늦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나온 70-200G, 70-300G, 70-200GM이나 100-400GM에는 쓰이지 못 했습니다. 다 구식 SSM이죠.

 그런데 저 네 렌즈 중에서 70-200GM만 AF 속도와 정확도 면에서 타격을 받았습니다; 70-200G나 70-300G야 소구경이라 그렇다 쳐도 100-400GM은 빠르고 좋은데 70-200GM은 아니란 게 여간 불만이 아닐 수 없었죠. 참고로 정확도 얘기는 저는 그다지 체감하지 못 했습니다만, 유튜버 Jared Polin(관련 영상)을 포함해서 후핀이 발생해서 100% 믿을 수 없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습니다. 모터 성능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고 생각하고요.

 여튼 VXD 모터는 기술적으로는 소니 70-200GM보다 더 진보된 모터입니다. 탐론에서 가장 고성능인 모터이기도 하고, 소니 XD 리니어모터보다는 떨어지지만 어쨌든 렌즈업계 전체를 봐도 최상위급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기술적으로 70-200GM보다 AF 면에서 더 좋을 조건을 갖춘 셈입니다. 70-200GM이 속도와 정확도 면에서 유감이 있다고 했죠? 탐론 기존 렌즈들이 그랬습니다. 같은 이유로 모터 때문이었죠.(물론 구식 SSM이라도 표준대의 소니 렌즈들은 별 문제가 없습니다. 100-400GM도 문제 없고;;)

 물론 약점도 있습니다. 탐론 렌즈 특유의 싸굴틱한 마감은 소형경량화를 추구하면서 DSLR 때보다도 현저히 안 좋아졌습니다;; 스크래치도 잘 나고 뭐 이래저래... 디자인 자체도 별로고요. 흰색 프린팅 글자는 너무 대충이라서 중국산 짭퉁이 생각날 정도입니다.

 광각, 표준에선 문제가 안 됐지만 70-180/2.8에선 문제가 되는 부분은 렌즈 손떨림 보정이 없다는 거겠죠. 물론 최신 소니 카메라들은 바디에 손떨림 보정이 있습니다만, 망원은 렌즈 쪽 효과가 더 좋다는 게 중론이고 같이 쓰면 더 좋다는 쪽이죠. 하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망원이 더 좋긴 하지만 200mm 영역 쯤 가면 렌즈가 더 좋겠지만 문제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소니 골수유저들은(전 아님) A 마운트 시절에 70-200를 바디 손떨방으로 그냥 썼단 말입니다!

 어쨌든 그런 저의 고민을 해소해줄 렌즈인지라 사진 기자재 예약판매는 흑우잡기란 걸 알면서도 샀습니다. 여행 갈 일도 없는데 굳이 서두른 이유는 코로나19 문제로 생산과 물류에 제약이 있을 거란 점과 히트를 직감해서 가격이 금방 내려가지 않을 거라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도착했네요.

이어지는 내용

사인츠는 페라리로, 리카도는 맥라렌으로, 르노의 한자리는? by eggry


베텔, 2020년을 마지막으로 페라리를 떠난다

 베텔의 페라리와 협상 불발 후 이래저래 머리를 굴렸는데 개인적으론 별로 재미 없는 결말이 나왔네요. 페라리가 아직 르클레르 넘버1 체제에 몰빵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제 생각 이상으로 르클레르에 신뢰를 건 모양입니다. 사인츠는 페라리와 2년 계약, 리카도는 맥라렌과 1년 계약입니다.

 사인츠의 선택은 분명히 서포팅 롤입니다. 르클레르를 위협할 걸로 생각되는 드라이버가 전혀 아니죠. 메르세데스의 보타스를 참고한 거 같기도 하고, 뭐 페라리 스스로의 슈마허-바리켈로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물론 르클레르가 아직 해밀턴이나 슈마허가 아니라는 게 이렇게 가진 않을 거 같다고 생각한 이유였지만,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사인츠로써는 커리어 상에 이보다 나은 선택지는 없긴 합니다. 맥스에 밀려 레드불 승진이 불발된 주니어 드라이버들은 대부분 F1에서 중하위권 팀이나 간신히 전전하다가 타 카테고리로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WEC에서 토요타를 탄 세바스티앙 부에미 정도가 그나마 성공적인 드라이버였죠. 사인츠는 르노, 맥라렌에서 입지를 굽힌 뒤 절호의 기회에 페라리로 올라 탔습니다.

 페라리에서 사인츠가 월드챔피언이 되거나 이전보다 격이 다른 드라이빙을 보여줄 거라 기대하진 않습니다. 그보다는 르노, 맥라렌에서 보여준 안정적인 드라이빙이 주목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건 보타스가 메르세데스에서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인츠는 또 바리켈로보다도 덜 격정적인 캐릭터로 보입니다.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적다는 거죠. 물론 페라리도 바뀌어서 노골적인 순위바꾸기 팀오더는 내지 않기는 합니다.

 사인츠는 어차피 중위권에 전전할 거 아니면 이게 최선의 커리어이긴 합니다. 페라리 넘버2는 결코 달가운 자리는 아니지만,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줄 경우 톱팀으로 빌드업을 준비하는 중위권 팀의 러브콜을 받고 넘버1이 될 여지도 있습니다. 물론 페라리 넘버2 자체도 톱이 아닌 드라이버에게 우승 기회를 어느정도 준다는 점은 있죠. 어쨌든 페라리도 이전 같진 않아서 바리켈로 같이 쭉정이처럼 버려지진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인츠가 떠나면서 빈 자리는 다니엘 리카도가 빠르게 낚아챘습니다. 페라리가 사인츠를 노리는 게 분명해진 시점에서 맥라렌은 이미 사전 접촉중이던 선택지들 중 골라냈을 겁니다. 맥라렌으로써도 리카도로써도 모두 최선의 선택입니다. 해밀턴/르클레르/맥스 톱3를 제외하고 가장 경쟁력 있는 드라이버이며, 메르세데스/페라리/레드불 톱3를 제외하고 가장 전망 있는 팀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로 기업들이 크게 타격 받은 상황에, 르노의 F1 프로젝트 의지는 심히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까지 고려하면 철수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입니다. 맥라렌은 절대 F1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이고, 르노보다 진전이 빠른 상황이며, 내년에는 메르세데스 파워유닛으로 갈아타기까지 할 생각입니다.

 현재로썬 리카도의 선택은 스톱갭처럼 보입니다. 1년 계약만 한 게 그렇죠. 메르세데스나 페라리 어딘가 자리가 날 기회를 노리는 듯 합니다. 물론 페라리가 2년 동안 듀오를 확정지었고, 메르세데스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베텔의 급작스런 결렬처럼 뭐가 일어날지 모르니 말입니다. 아니면 맥라렌-메르세데스 재결합이 얼마나 잘 하나 보고 결정할 수도 있겠죠.

 페라리 시트가 번개같이 매워졌기 때문에 메르세데스의 결정도 거의 뻔해 보입니다. 해밀턴-베텔 듀오의 가능성을 낮게 보기 때문에, 해밀턴과 보타스 모두 계약 연장을 하거나, 아니면 해밀턴과 베텔 둘 중 하나가 은퇴하는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물론 해밀턴의 은퇴 의지는 베텔보다는 낮아 보이기 때문에 베텔의 은퇴가 더 가능성 높아 보입니다. 가족과의 시간에 대한 욕구도 더 많이 표출하기도 했고요.

 자 그럼 이제 남은 건 르노의 한자리입니다만, 알론소의 복귀에 대한 이상한 기대감과 공기가 나돌고 있습니다. 정황이래봐야 얼마 전 르노가 월페이퍼 뿌리면서 알론소와 영광의 시절 사진이 있었고, 알론소와 르노가 거기에 호의적인 몇마디를 주고 받은 정도이긴 합니다만, 르노가 정말 F1 프로젝트를 지속할 의지가 있다면 왕년의 베테랑을 팀빌딩에 활용하는 것도 말은 되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르노가 알론소에게 상응할 만한 돈을 줄 각오가 있느냐, 그리고 알론소가 겨우 한물 간 팀의 리빌딩용 베테랑으로 F1에 복귀할 의사가 있느냐인데, 둘 다 별로 말이 안 되어 보이죠. 만약 기적적으로 알론소가 르노에 복귀한다면, 그건 이미 1,2년 뒤의 계획까지 다 확정된 후의 얘기일 겁니다.

 맥라렌과 첫번째 결별 후에 이미 페라리와 비공개 3년 후 계약(키미 조기 은퇴시키고 2년으로 당겼죠)을 확정짓고, 르노에서 시간 보낸 것처럼요. 그 경우에는 알론소도 르노에 높은 페이를 바라지는 않을 겁니다.(2008, 2009년도 그랬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그때 알론소야 슈마허 은퇴 후 모두의 완소(론 데니스 빼고) 였으니 가능한 얘기였고 지금은 글쎄요...

 이 시나리오의 또다른 한계는 최소한 1,2년은 르노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때는 아무리 톱팀이라도 알론소의 나이가 너무 많지 않나 합니다. 그때 메르세데스 수준의 준비된 머신에 탄다면야 F1은 충분히 챔피언이 될 수 있지만, 페라리가 르클레르-사인츠로 2년 잡고, 레드불은 가망 없는 상황에선 메르세데스와 2022년 시트 양해각서라도 채결하지 않은 이상은 너무 동화 같은 얘기일 따름이군요.

베텔, 2020년을 마지막으로 페라리를 떠난다 by eggry


 코로나19로 2020 시즌이 계속 연기되는 와중에 뜬금없는 실리 시즌 개막입니다. 빅팀의 드라이버들 중 최초로 베텔의 거취가 확정(혹은 미확정?) 되었습니다. 본래 2020년까지였던 3년 계약을 마지막으로 페라리와 연장하지 않기로 발표한 것입니다. 양자는 이것이 상호 동의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로써 베텔도 알론소처럼 페라리 챔프의 꿈을 실현하지 못 하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기존 드라이버의 거취를 밝히기 전에 다른 드라이버와 계약 해버린다거나(알론소와 계약연장을 하지 않기로 발표하지 않고 바로 베텔 계약이 발표되었죠), 아니면 기존 팀과 연장 발표 대신에 다른 팀과의 계약 발표가 나온다든가 하는 식이 보통이기 때문에 드라이버의 거취도 팀의 후임자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의 발표는 이례적이기는 합니다.

 물론 페라리가 하는 일이 늘 그렇듯, 후임자는 내정된 것이나 다름 없을 거라고 생각은 합니다. 베텔도 거취가 정해지지 않은 이상 페라리 계약을 그냥 차버릴 일은 없기 때문에 결국 상대 측의 엠바고 때문에 이런 이상한 형태의 발표가 되었을 뿐이라 생각합니다.

 페라리가 그래도 어느정도 경쟁력 있는 머신을 만들고 있고, 이보다 낫다고 할 만한 팀이 레드불, 메르세데스 뿐이기 때문에 가능성의 폭은 매우 좁습니다. 레드불로 복귀할 가망은 거의 제로입니다. 그렇다면 메르세데스입니다만, 현재 메르세데스는 두 드라이버 모두 2020년 계약 종료 상태이지만 연장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해밀턴의 대체냐 보타스의 대체냐 문제가 되겠지만, 아무래도 해밀턴 쪽의 가망이 높겠죠. 페라리가 베텔의 후임자로 노릴 상대라면 보타스는 분명히 아닐테니 말입니다.(르클레르는 아직 확실한 넘버2를 둘 정도 입지는 아니죠) 최고의 흥행 시나리오는 뭐 베텔과 해밀턴의 스와핑이 되겠습니다만, 과연 해밀턴이 그런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야 타이틀 수도 이제 하나만 더 하면 미하엘 슈마허와 타이인 수준이고, 노릴 만한 기록은 1) 슈마허와 타이 혹은 능가하는 타이틀 수 2) 페라리와 타이틀 두가지 뿐입니다. 페라리에서 이 둘을 동시에 노리는 게 해밀턴이 F1 최고의 기록 보유자가 될 마지막 고지이긴 합니다만, 해밀턴이 저 목표, 특히 페라리 챔피언에 얼마나 의미를 둘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해밀턴도 페라리 챔프에 관심을 보이긴 했는데 그게 가망 있다고 생각하느냐가 문제겠죠. 해밀턴이 페라리 챔프가 가망 있다 생각한다면 베텔도 그래야하기도 하고요. 베텔은 그간의 고생으로 정나미가 떨어졌지만 해밀턴은 설득할 정도의 자료를 페라리가 보였을 수도 있긴 하겠지요. 알론소가 떠나고 베텔이 왔던 것처럼요. 더군다나 알론소, 베텔이 실패한 업적을 이룬다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당연히 다른 가능성도 있긴 합니다. 페라리가 노릴 만한 다른 톱드라이버라고 하면 현재 그리드에서는 리카도 정도 뿐입니다. 베텔은 떠나고, 해밀턴은 아니고, 맥스는 계약이 있으니... 맥스 계약 파기 가능성도 있지만, 맥스는 아직 페라리에 가기에는 딱히 (성능) 메리트를 못 느낄 듯 합니다. 또다른 흥미로운 가능성은 알론소의 기적적인 복귀이지만, 알론소 팬인 저로써도 F1 복귀는 너무 꿈 같은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지요.

 해밀턴과 스와핑이 아니라면 메르세데스가 해밀턴/베텔의 드림팀을 꾸린다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노린다는 얘기가 됩니다만, 토토가 과연 그럴 강심장인진 모르겠습니다. 해밀턴-니코의 대결에도 충분히 수명이 짧아지는 거 같았기에 니코보다 더 강단있는 베텔은 무리라 생각하지만... 사실이면 스와핑 못지 않게 재미있는 시나리오긴 합니다.

 어쨌든 베텔의 선택지는 더 간단해 보입니다. 메르세데스로 가거나, 아니면 F1에서 은퇴하거나겠죠. 솔직히 페라리 쪽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 생각하지만 많은 드라이버들은 지금 여기저기 열심히 전화 돌리고 있을 거 같습니다.

넷플릭스로 지브리 다시 보기(14) - 바람이 분다 by eggry


 미야자키 작을 세번 건너뛰고서 간만의 미야자키 작 감상. 문제작(?) '바람이 분다'입니다.


- 제로센, 즉 제로 전투기의 개발자였던 호리코시 지로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으로 당연히 한국에서는 논란이 많았습니다. 딱히 제국주의나 침략에 대해서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양심의 가책 같은 걸 기대했다면 거기에서도 부족함을 느낄테지요. 사실 전시를 다룬 작품 대부분은 이런 포지션인데, 그냥 눈을 돌리려는 거일 수도 있고 꺼리는 거일 수도 있지만 찬양고무적이지 않은 이상은 필요 이상의 비난은 피하려 합니다. '바람이 분다'도 그정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 일본이 파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시사는 독일인 카스토프의 입을 빌려 지적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지로는 그 미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듯 하면서도, 반박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막고 싶다고 열의를 가지지도 않습니다. 지로나 동창생인 혼조에게 비행기 개발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방편일 따름입니다만, 전쟁도구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고 변명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초지일관은 놀라운 수준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결과가 좋지 않을 거란 걸 명확히 알고 있지만 거기에 반발심은 물론, 애국적 열의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남의 일, 혹은 만들어진 물건의 사용처나 결과에는 무관심한 장인과 같은 모습입니다. 사실 전쟁 중 일본인 중 일정수준 교육수준을 가진 사람들의 관점은 대개 이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미국보다 작고 뒤떨어져 있다.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한없이 희박하다. 하지만 결정하는 건 나(국민)이 아니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며, 할 일을 할 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것 자체가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인상을 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패전의 경험이 지로를 바꾸거나 깨닫게 하진 않습니다. 예상한 결과였으니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이런 다음에는 반복되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국민들이 정치활동을 해야한다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정말 그때의 현상과 모습 그대로일 뿐입니다. 특고나 독일의 모습도 그저 담담히 그려질 뿐, 여기서 뭘 생각할지는 오롯이 시청자의 몫입니다.

 '이 세상의 한 구석에'를 봤을 때도 그런 면이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아~ 끝났다 끝났어") 전시 일본 국민이라고 하면 보통 카미카제, 옥쇄 정신으로 완전히 세뇌되었다는 식으로 흔히 생각됩니다만, 실제로는 전세가 기울어가고 있다는 것과 미국을 상대로 이긴다는 건 현실성 없어 보인다는 정도는 자각이 없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왜 그만두자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가? 전쟁은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고, 일어났으니 소임은 다하자는 생각 밖에 못 하는가? 그게 일본인들이(덴노를 포함해) 세계대전의 경험에서 찾아야 할 가장 큰 질문일테지만, 이 작품들도 거기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진 않습니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서 좀 더 적극적이어봐야 지루한 좌파의 부채의식 같은 취급 받을 거라곤 생각합니다만.


- 제로센 개발자의 이야기다보니 제국주의가 논란의 화두가 된 듯 하지만 사실 작중에서는 저렇듯이 비중이 그다지 없습니다. 실제 내러티브의 절반은 기술력이 떨어지는 일본에서 전투기를 만드는 이런저런 고난이 약간 국뽕다큐 같은 식으로 그려집니다. 선진국 기술자들 어께 너머로 보고 배웠다, 패기로 이겨냈다 같은 '프로젝트X'류의 관점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식의 프로는 익숙하겠죠. 거북선 모형으로 조선 수주했다느니 같은...

 다른 절반은 지로와 나호코의 로맨스입니다. 사실 전투기 개발 이야기는 후반부에 가면 약간 툭 끊어지기 때문에, 로맨스 스토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로 가면 뭐 시한부 삶을 사는 아내의 내조 같은 느낌이 되기는 합니다. 개인적으로 로맨스 파트는 그렇게 와닿지 않았네요.


- 지로의 연인 나호코는 실존인물인 지로의 아내와 이름도, 병력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사실 로맨스 부분은 호리 타츠오의 자전적 소설 '바람이 분다'에 더 가깝습니다. 호리 타츠오의 아내도 결핵으로 요절했기에... 이름 나호코는 호리 타츠오의 다른 소설 '나오코'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의 호리코시 지로'는 '호리코시 지로'와 '호리 타츠오'를 섞어서 만든 제3의 인물입니다. 그러니 실제 제로센 개발과 호리코시에 대한 얘기를 하기에도 썩 맞지 않게 되어버립니다.


- 그럼 이 제3의 '호리코시 지로'는 누구에 가깝느냐고 하면, 뭐 미야자키 하야오 되겠습니다. 비행기가 좋아서 견딜 수 없는, 하지만 전쟁 도구로써 비행기에서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모순에 대해서 말이죠. '붉은 돼지'도 그런 식의 이야기였습니다만, 그때는 미야자키의 욕구표출에 가까웠고, 그의 모순에 대한 건 시청자의 해석이었습니다. '바람이 분다'에 와서는, 미야자키 본인도 그런 점을 의식하고 인정하기로 한 듯 합니다. 그래서 '바람이 분다'는 가장 엄밀히는 미야자키의 자전입니다.

 물론 인정한다고 해서 그게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거나 그런 식은 아닙니다. 호리코시 지로나 카프로니 백작이나 미야자키 하야오나, 그들은 선택을 했습니다. 떳떳하지만은 않고, 바라던 결과는 아니지만, 예상했던 결과입니다. 거기에 죄책감 같은 건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하고 싶은 건 원없이 했다- 라는 건 카프로니 백작이라면 할 법한 말이지만, 호리코시 지로=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런 만족감은 보이지 않습니다.

 해온 것에 달성감도 있고, 후회도 있으며, 자신의 행위가 안 좋은 결과의 일부가 되긴 했지만 자신이 전투기를 만들어서 그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기는 솔직히 어렵기는 할 것입니다. 전쟁은 자신들이 어쩔 도리 없이 일어나는 일이고, 자신이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 만들었겠지요. 그렇다고 자신의 재능이 비극을 키우거나 줄이는데 기여했다는 식으로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어차피 누군가 할 일이라면 차라리 내가-도는 아니긴 합니다. 뭐 이 작품의 전반적인 스탠스가 그런 식이기는 합니다.

 정말 비행기(애니메이션) 만드는 게 하고 싶은 일이었고, 마침 재능이 있어 역할을 맡았고, 의도와 무관하게 공과 실이 있었을 따름이라는 것이 미야자키의 자신에 대한 변호겠지요. '바람이 분다'의 일본의 흥망은 지브리의 흥망 그 자체와도 같습니다. 미야자키가 아무리 재능 있더라도 결국 지브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건 막지 못 했습니다.

 "바람이 분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는 인용은 결국 거대한 흐름에 떠밀렸을 따름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작중의 호시지로나 미야자키나,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되돌아 보거나 후회하지는 않지만... 솔직히 자기 재능을 발휘해온 일에 그러기를 기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은 합니다. 적어도 피해가 있었다는 건 인식하고 있고, 뻔뻔하게 의기양양하거나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으니 할 말은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았다- 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습니다만, 거기서 당당함도, 변명도, 부끄러움도 딱히 느끼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저 이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이었고, 이런 결과가 나왔을 뿐, 삶이란 대개 그런 것이라는 얘기겠죠. 그게 불만족스럽다면 거기엔 충분히 비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뭐 그런 무기력감에는 딱히 비판하고 싶은 의욕도 생기지 않습니다만.

 그런 면에서 보면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 대로 한 것이지만 패기와 자부심이 넘치는 "난 하고 싶은 대로 했다, 너도 하고 싶은대로 해라" 라는 메시지가 엿보였던 '신고지라'와는 꽤나 다르기는 합니다. 안노는 미야자키보다는 자기가 살아온 걸로 젊은이들을 북돋을 만 하다고 생각하는 듯 하군요.


- 작품은 대부분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물론 이건 현실, 이건 꿈이라고 분류해내기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꿈은 아무리 봐도 꿈 같이 생겼으니까요. 하지만 꿈과 현실은 자연스럽게, 징조 없이 오가며 그런 감각은 현실의 일부도 꿈 같이 느끼게 만듭니다. 사랑과 비행기에 바친 청춘이 결국 죽음과 패망으로 마무리되는 10년의 일장춘몽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런 묘한 느낌 때문에 작중에 독일과 일본을 비판하는 캐릭터로 나오는 카스토프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환상일 뿐인가? 하는 착각까지 들게 합니다. 그의 묘한 눈(그저 벽안 묘사일 뿐입니다만, 클로즈업은 드물기에 생소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풀만 줄창 퍼먹는 행동 같은 것들은 카스토프가 사실 호리코시의 양심이 형상화된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물론 그와 연루된 것을 심문하러 온 듯 특고가 나타나는 거라거나, 제3자가 끼여 대화하는 상황이 있다든가 하는 걸 보면 실존하는 게 분명하지만... 그런 기묘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게 이 작품의 꿈과 현실의 모호한 감각입니다.


- 제로센 개발은 실제로 별로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초기에 서양의 항공기술을 따라잡으려는 부분에서만 열의 있는 모습이 보이고, 실제 제로센 개발에 들어가서는 단편적으로 훅 지나가서 바로 패전의 모습이 펼쳐질 뿐입니다. 군국주의와 양심의 문제에 대해 뭐라 할 일말의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듯 한데, 애초에 그걸 다루려는 얘기가 아니라는 건 이해하지만 너무 급작스럽긴 합니다. 후반은 한 10~20분 정도 더 있어야 매끄럽다 싶네요.


- 전투기 엔진과 바람을 가르는 효과음, 그리고 초반을 압도하는 지진의 효과음은 일반적인 효과음 녹음이 아니라 사람 입으로 냈습니다. 쿠웅~ 부웅~ 부르르르르~ 같은 소리들인데, 여타 애니메이션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줍니다. 비트박스나 원주민의 가락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지진이나 전투기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인 듯한 기분도 들게 합니다. 보편적으로 수용할 만한 형식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시도였고, 작품의 몽환적 느낌을 가미하는데도 일조했습니다.


- 호리코시의 성우는 안노 히데아키가 맡은 걸로도 유명했습니다. 제작 중 둘이 일할 때 비행기 모형으로 부웅~ 하는 거 같은 짤도 나왔고요;; 연기를 잘 했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만, 호리코시란 캐릭터 자체가 너무 초지일관이기 때문에 뭐 이정도 연기로도 큰 문제는 없었다 생각합니다. 사실 나이나 외모에 비해서는 너무 젠틀한 목소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 '바람이 분다'로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의 이야기는 이제 끝났습니다. 이것은 한 노인의 옛날 얘기일 따름입니다. 여기서 뭔가 얻을 수도 있고, 감정적으로 만족스럽거나 불만스러울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미야자키가 어떤 강한 뜻을 가지고 전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들어주거나 말거나, 자기 얘기를 안 하고는 못 배겼던 것 뿐입니다.(노인의 이야기란 그런 것이죠) 그가 실제로 후대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진짜 은퇴작이 될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가 되겠지요.

넷플릭스로 지브리 다시 보기(13) -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by eggry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작인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이하 폼포코)입니다.


- 타카하타의 극장판 필모그래피 중에서 가장 흥행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실 타카하타의 작품은 대중성이 좀 미묘한 것들이 있었죠. 겉보기로만 하자면 '반딧불의 묘'처럼 확실히 음침한 것은 별로 없지만, 그의 작품은 모두 씁쓸한 면모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거 없이 천진난만한 면인 건 '이웃집 야마다군' 정도인데, 정작 흥행은 제일 바닥이었던... '폼포코'는 실제로 상당하 우울한 스토리가 됨에도, 동물이 주인공이란 것과 시종일관 쾌활한 너구리의 모습 덕분인지 대흥행 했습니다. 일본에선 '라이온킹'보다 잘 나갔고 당시까지 자국산 영화 흥행 1위였다고.


- 원제는 헤이세이 너구리 합전 폼포코(平成狸合戦ぽんぽこ)입니다만, 사실 시대는 헤이세이가 아닙니다. 1966년 시작된 타마 뉴타운 사업이 배경으로, 실제로는 쇼와 후기가 배경이죠. 개봉 년도는 헤이세이지만서도... 타마 뉴타운은 고도성장기 수도권의 인구증가에 대응하기 만들어진 일본 최대의 신도시 계획으로 지금도 상당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단지'라고 불리는 한국의 구식 아파트와 같은 주거건물이 대거 건설되었으며, 대학, 연구시설 등도 들어왔습니다.

지금은 단지 자체가 고도성장기의 한물 간 주거형태 취급이고 도시 자체도 오래되어서(입주는 1971년) 처음 지어질 때부터 살다가 늙은 사람들+낮은 집세와 좁은 집이 괜찮은 노인들 합쳐서 실버타운처럼 되고 있긴 합니다. 시대로 보자면 전후부흥기인 '이웃집 토토로'에서 그려진 동네가 이런 단지로 개발되게 되고, 실제 헤이세이의 한물 간 단지의 모습은 '귀를 기울이면'에서 묘사됩니다.


- '폼포코'는 크게 두가지 이야기가 내외로 흘러갑니다. 겉으로는 너구리들이 삶의 터전을 보호하려고 인간과 싸운다는, 자연보호 이야기. 하지만 너구리들의 활동은 전공투와 나리타 공항 건설반대 운동과 겹쳐 있습니다. 시대적으로도 그 시기이기도 하고, 사실 너구리들이 자기들이 치고 박거나 인간으로 둔갑하고 건설현장 진입을 막는 모습은 당시 시위대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헬멧 쓰고 각목 들고 마스크 쓰고...

둔갑술을 주로 이용해서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역사의 결말을 알고 있듯, 너구리들의 결말도 다름이 없습니다. 속세에 미련을 버리고 숨어들거나, 세태에 어쩔 수 없이 몸을 맡기거나, 아니면 끝까지 과격저항을 하다가 사라지거나 말이죠. 물론 그 와중에도 둔갑술도 쓰지 않고 너구리의 본성을 지키는 소수가 남기는 하지만 말이죠. 전공투도 대부분은 사회에 순응하는 것으로 기울었지만, 풀뿌리와 정식 정치운동으로 가려는 일파, 과격운동으로 종지부를 찍은 일파 등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죠.


-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는 면모는 도시화, 산업화로 일본인 고유의 정신을 상실하게 되는 면일 듯 싶습니다. 시코쿠에선 너구리 요술이 먹혀들어 사람들이 존경과 두려움을 안고 개발을 중단하였다고 하지만, 도쿄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요괴대작전도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그냥 게릴라 퍼레이드 정도로만 생각하며 실제로 이에 편승해 자신들의 깜짝 이벤트라고 주장하는 테마파크 사장의 말이 먹혀들게 됩니다.

도쿄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 게 동물이나 신령의 원혼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법 자체를 잊게 된 것입니다. 대규모 개발에 이끌려 지방에서 올라온 인부들은 너구리들의 트릭에 벌 받는다며 떠나거나 겁 먹지만 도쿄 사람과 중앙 미디어는 헛것을 본 것 뿐이라 일갈하거나, 재밌는 구경 했다고 생각할 뿐이지요. 신토는 본디 자연에의 경외심에서 출발하는 것이나, 오늘날에는 그냥 동전 던지고 복 비는 정도의 인식 밖에 없는 것으로 바뀐 것처럼 말입니다.


- 너구리가 둔갑술에 불알 주머니를 많이 활용하는데... 그럼 암컷은 어떡하란 말인가;;


- 타카하타의 이후 작품을 생각나게 하는 컷이 약간 있습니다. 중세 갑옷을 입은 사무라이라거나, 하늘에서 내려와 혼을 거두어 가는 부처라거나... '카구야 공주 이야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이때부터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타카하타의 지브리 최고작이라면 전 '추억은 방울방울'을 꼽을 거 같긴 한데 역시 '폼포코'가 제일 대중적인 거 같긴 합니다.

메트로 삼부작 클리어 by eggry


 백만년 전에 사뒀던 '메트로 리덕스' 세트에 게임패스로 풀린 '메트로 엑소더스'까지 세 작품을 클리어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핑계고 원래부터 어차피 집에서 게임, 영화만 봤으니 그냥 핑계거리일 뿐이죠; 게임패스의 '메트로 엑소더스'가 내려가기 전에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세 타이틀 모두 엑박원으로 했는데 체험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메트로 리덕스 두 작품은 엑박원 초기에 나온 거라서 900p로 돌아갑니다. 원래 60프레임 게임이기도 하고 부스트모드는 작동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60프레임이 나오기는 하지만 해상도가 지금 기준으로 워낙 낮아서 많이 안습입니다. 물론 처음 나왔던 360 버전보다야 당연히 좋겠지만 말이죠. 시리즈 X가 나오면 1080p 이하인 구작들 강제 4배 해상도 해준다는데 그럼 1800p 나와서 좀 볼만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둘 생각은 없으니...

 에셋 퀄리티가 전세대라는 것과, 엑박원 초기 게임이라 해상도가 낮다는 거 빼고는 시각적으로는 만족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주로 아트적인 부분이죠. 우크라이나 제작사인데, 동유럽 쪽 게임들이 기술적으로는 야심찬데 비해서 능력은 좀 문제가 있어서 발적화로 유명하긴 합니다.(PC용은 개적화를 역활용해 오히려 벤치마크용으로 꽤 활약하기도;;) 아트적으로도 사실 섬세함보다는 거친 면이 강한데, 포스트아포칼립스 배경이다보니 그런 게 자연스럽기도 했습니다.

 메트로 소설은 안 봤는데 핵전쟁 후 지하철을 도시국가화 해서 생활하는 세계관도 재밌긴 합니다. 원래 모스크바 지하철은 핵전쟁 쉘터를 겸하도록 만들어졌으니 말이죠. 물론 사실성을 따지자면 그정도 어마어마한 방사능 농도에서는 지하 쉘터도 무사하기 어렵고(폭발에선 살아남게 해주더라도), 돌연변이들이 이렇게 제대로된 생물인 괴물이 되거나 하진 않겠지만, 어디까지나 상상력의 범위니까... 공산당, 제4제국, 상류부유층 같은 세력 구분도 약간 도식화되긴 했어도 흥미로웠습니다.

 게임플레이는 비서구권 게임 답게 마감 면에서 조금 아쉬운 면이 있기는 합니다. 아이템 주으려면 제대로 조준을 해야한다거나 같은 것들 말이죠. 사격도 아주 쾌적하진 않은데, 애초에 자원이 넉넉하지 않다는 개념이라 큰 문제는 안 됐네요.

 다만 근거리 타격 판정은 계속 불만이긴 했습니다. 달라붙어서 맞을 때 샷건이 너무 잘 빗나가더군요;; 이건 '메트로 엑소더스'까지도 그대로였습니다. 난이도는 낮게 했고 자원 출현도 스파르탄으로 해서 쾌적하게 진행했습니다. 서바이벌 버전은 게임 자체의 불친절함과 더불어 너무 힘들 거 같아서...

 처음 메트로에 대해 알았을 때 약간 세미오픈월드에 불친절한 가이드, 목표 같은 걸로 고통스러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거의 콜오브듀티와 같은 레벨 구성이고요, 조금 왔다갔다 하거나 우회로의 선택지 같은 게 없진 않지만 전반적으로 일자구성이라 헤매지 않아도 됐습니다. 자유도보다는 스토리 중심 전개라 그런 것도 있긴 합니다. '메트로 2033'과 '메트로 라스트라이트'는 스토리와 목적의 방향성이 꽤 확고합니다.

 하지만 내러티브 면에서는 좋은 평을 하기 힘듭니다. 분명 스토리는 매력적인 면이 있었다고 봅니다. '검은 존재들'을 중심으로 한 첫 두 작품은 단순 포스트아포칼립스 생존물이 아니라 좀 더 SF 적인 생각할 거리와 철학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게임이 이를 충분히 다루지 못 하고 있고, 엔딩을 결정하는 카르마 시스템이 기준도 설명도 제대로 되지 않아 그냥 막 하면 99% 배드엔딩이란 게 문제였습니다.(결국 둘 다 막 했더니 배드엔딩 봄)

 '검은 존재들' 스토리가 좀 더 꾸준히 설명되고 카르마 시스템이 일관성을 가졌다면 결말이 와닿았을텐데, '메트로 2033'은 후반까지 거의 흔적도 없다가 그냥 핵미사일 날려버리는 인간지상주의자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배드엔딩이 '메트로 라스트 라이트'로 이어지는 엔딩이라서 덜 억울하긴 했네요.

 '메트로 라스트 라이트'도 배드엔딩을 봤는데 이건 엔딩이 스토리에 큰 영향을 주는 건 아니긴 했습니다. '검은 존재들'과의 관계란 측면에서도 '메트로 2033'보다 본편 스토리에서 충실히 보여주고 있기에, 내러티브 면에서는 '라스트 라이트'의 손을 들어주고 싶네요. 원작 2033 소설도 배드엔딩 쪽이라고 하고, 리뎀션 스토리라는 점에서 '라스트 라이트'가 괜찮았습니다.

 '메트로 엑소더스'는 앞 두 작품과는 다른 접근법을 합니다. 거의 선형적이던 레벨디자인이 몇몇 강제진행에 가까운 파트를 빼고는 대부분 넓은 맵에서 이뤄집니다. 물론 이것도 눈속임이긴 해서, 실제로는 순서대로 찾아가야 하고, 옵션 퀘스트 같은 것도 거의 없긴 합니다. 기껏해야 크래프팅 자원이나 장비 업그레이드 찾는 정도 외에는 넓은 맵은 '광활한 바깥 세상'의 인상을 주는 눈속임에 가깝습니다.

 물론 눈속임이라곤 해도 그동안 좁아터진 지하철에만 쳐박혀 있다 바깥 세상으로 나오니 시각적 만족도가 장난 아닙니다. 게임 자체도 완전히 현세대 게임으로 나온데다, 엑박원X에 제대로 대응하기 때문에 해상도도 높습니다. 엑박 컨퍼런스에서 선보인 게임이기도 했어서 지원은 제대로 했을 겁니다. 여러 계절이 나오는데 특히 추운 풍경의 만족도가 아주 높았습니다. TV 밖으로도 얼어붙은 서늘함과 날카로움이 느껴질 정도.

 게임플레이는 총알을 바로 주는 게 아니라 크래프팅으로 총기, 탄약을 관리해야 하는 점 빼고는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무기, 사격, 액션은 거의 그대로. 맵이 넓어 보인다고 해도 실제 전투나 적의 구성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메트로 바깥 세상이란 개념 때문에 직접 제조해지 살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 전작의 무기등급 금총알은 안 나옵니다. 최후의 혈전에 문자그대로 돈을 쏴서 적을 쓰러뜨리는 느낌 만큼은 이번엔 얻을 수 없었네요.

 그리고 현세대용으로 비주얼 중심으로 만들다보니 리마스터인 앞 두 작품과 달리 30프레임인 게 게임을 상당히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콜옵 만큼 빠른 액션을 요구하는 게임이 아니라 플레이에 지장은 없었지만 그래픽은 딸려도 전작을 60프레임 하고 최신작을 30프레임으로 하니 갑자기 엄청 둔해지는 느낌. 프레임이 아니라도 전체적인 걸음 같은 것들도 더 둔하기는 했습니다. 뭐 1시간 쯤 지나니 익숙해졌지만요.

 '메트로 엑소더스'에서 아쉬운 점은 시리즈 중에서 스토리성이 제일 약하다는 게 되겠습니다. 사실 스토리텔링이란 면만 본다면 카르마 시스템과 '검은 존재들'이 뭔지도 모르다가 그냥 배드엔딩 맞는 '메트로 2033'보다는 낫긴 한데, 스토리의 방향성이 좀 약합니다. 중간 기착지들은 허탕 치는 느낌이 강해서요. 그래도 메트로 바깥의 핵전쟁 후 세계는 세계관 확장의 가능성은 줬습니다. 계속 나올진 모르겠지만요.

 '메트로 엑소더스'는 시리즈 최초로 공식 한글화 됐는데 한글화 상태는 영 좋지 않습니다. 기차의 브릿지를 '다리'라고 계속 번역하며, 전작의 중요한 존재인 '검은 존재들'이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번역된 거라거나;; 뭐 임무 이해하는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긴 한데요, 번역 상태가 많이 아쉬웠네요. 그래도 대화 번역의 수준은 '기어즈 5'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하는데, 존댓말 반말이 오락가락 하진 않았습니다.

 이 시리즈를 하면서 계속 떠오른 게임은 '콜오브듀티: 블랙옵스'였습니다. 역사적 키치함 같은 부분도 있고, 메트로도 약간은 특수목적을 가진 행동을 한다는 느낌인 것도 있고요. 뭣보다 둘 다 초자연현상이랄지 환각이랄지 착각이랄지, 그런 부분이 게임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블랙옵스'에서는 세뇌였고 '메트로'에서는 '검은 존재들'의 초능력이나 방사능 오염이지만요.

 여튼 저 개인으로썬 '콜오브듀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약간 크래프팅과 서바이벌, 잠입 요소가 곁들여진 정도 게임으로 플레이 했습니다. 비서구권 게임 답게 아이디어나 세계관 면에서 신선함도 있었고요. 난이도를 높게 안 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편의성 부족이나 레벨디자인 문제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요즘 게임에 쓸 신경이 부족한지라 서바이벌 난이도 같은 건 할 생각도 못 했네요.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13부(끝) - 나가노 젠코지, 귀국 by eggry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0부 - 여행 개요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1부 - 도쿄 도착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2부 - 패트레이버 30주년 전, 아후리 라멘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3부 -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시부야 스카이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4부 - 츠키지 시장, 츠키지 혼간지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5부 - 카와사키 다이시, 울려라! 유포니엄 정기 연주회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6부 - 에치고유자와 도착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7부 - 유자와 고원, 새쫒기 행사, 온천료칸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8부 - 카루이자와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9부 - 마츠모토 도착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10부 - 마츠모토 성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11부 - 마츠모토 시립 박물관, 카이치 학교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12부 - 지고쿠다니 원숭이 공원
2020. 1. 11.-18. 도쿄, 니가타, 나가노 여행기 13부(끝) - 나가노 젠코지, 귀국

 여행 마지막 날. 오후는 거의 공항 가기+귀국에 다 보내기 때문에 일정은 오전 뿐입니다. 호텔을 체크아웃 하고 나가노 역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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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츠모토의 아침. 원숭이 공원 앨범만 고화질로 보려면 플리커를 봐주세요.(Jigokudani Snow Monkey Park, Nagano,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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