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논, EOS R3 발표 by eggry


 캐논의 떡밥 무성하던 R3가 드디어 발표됐습니다. 현시점에서 최종 발표된 모델로는 유일하게 세로그립 일체형이며, 곧이어 니콘 Z9이 뒤따를 예정입니다. 캐논과 니콘이 동시에 최상위 모델을 내놓지만, 둘의 포지션은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너무나 알기 쉽게도 캐논은 R1으로 이름짓지 않음으로써, 이 위가 있다는 걸 이미 시사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니콘은 최상위 넘버인 Z9을 부여함으로써, 소니 a1과 완전히 동등 레벨에서 대결할 것임을 시사합니다.

 캐논의 역사를 보면 3 넘버가 쓰인 적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소니에서 9 넘버가 쓰인 적이 거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캐논은 거의 늘 1과 5의 진골 성골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필름 시절 EOS-3가 처음이자 마지막 3라고 할 수 있으며, 이번 모델명도 EOS-3를 염두한 느낌입니다. 특히나 눈동자로 AF를 조작하는 부분은 그렇습니다.

 어쨌든 R1이 아직 선보이지 않은 시점에서는 R3가 캐논의 가장 고성능 카메라가 될 것입니다. 사양을 보면 R1이 올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더욱 드러납니다. R3는 겨우(?) 2400만 화소에 불과합니다. 오랫동안 플래그십 카메라는 퍼포먼스를 중시하여 화소에서는 그 밑의 모델보다 떨어지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니 a1을 시작으로 이 공식은 깨졌습니다. 발달된 센서 기술은 이제 더이상 화소수와 속도를 타협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물론 비싼 가격 치러야 하지만요. 이전엔 큰 판형이나 고화소에서 퍼포먼스를 얻는 게 불가능했지만 이젠 돈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게 크롭 판형의 몰락 원인 중 하나기도 합니다.

 캐논의 첫 이면조사 센서이자 적층센서인 R3는 5년 전에 나온 소니 a9과 같은 소소한 2400만 화소입니다. 캐논의 능력이 여기까지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온갖 사골센서에 대한 조롱에도 불구하고 캐논도 꾸준히 센서 성능을 향상시켜 오고 있습니다. R5/R6로 오면 소니 센서 대비 패널티는 0.5스탑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평입니다.

 화소수는 a9을(그리고 그 옆그레이드인 a9 II)를 연상시키지만, 세부스펙으로 들어가면 유사성은 거기에 그칩니다. R3는 a9의 20fps가 아니라 a1에 맞먹는 30fps 연사를 가집니다. 물론 a1의 화소수가 약 2배이므로, 사실은 절반의 속도입니다. 하지만 a9보다는 1.5배의 속도인 것입니다.

 스틸 화소수와 연사로는 그정도 차이지만, 동영상 성능으로 가면 R3의 프로세서는 a1급 혹은 그 이상일 수도 있다는 게 드러납니다. 6K60 RAW 비디오가 가능하며, 4K120/60도 거뜬히 해냅니다. a9의 동영상은 a7 III 수준에 그칩니다. 물론 화소수 때문에 8K는 불가능했지만, R5에 먼저 쓰인 프로세서 성능을 본다면 센서만 받쳐준다면 8K 동영상도 아무 문제 없을 것입니다.

 또한 동영상의 전반적인 체험도 R5보다 크게 나아질 듯 합니다. 8K 화소수의 부담이 덜어진 것도 있지만, R5의 교훈(혹은 의도적인 패널티)을 발판 삼아 R3는 섀시 측면에서 쿨링에 크게 신경쓴 듯 합니다. 이미 초기 테스트에서 R5와 달리 그리 쉽사리 오버히트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4K120/60을 좀 더 높은 온도에서 테스트한 모습은 아직 찾아보지 못 했지만요.

 R3는 그 자체로 6000달러짜리 R1 티저와 같습니다. 여기서 화소수를 2배로 늘리고, 8K 동영상(캐논의 야심을 생각하면 어쩌면 8K60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을 추가하면, 짜잔, R1이라 부르기 충분할 겁니다. 사실 a1의 사양에 세로그립 붙이고 캐논 로고만 달아도 R1의 이름에 손색이 없겠죠.

 물론 루머는 그 이상으로, a1이나 R3의 적층센서 수준이 아니라 글로벌셔터일 거라고 합니다. 그럼 동영상 스펙은 단순 화소수와 프레임 이상의 것이 됩니다. 1만 달러 이하에서 최초로 젤로프리인 풀프레임 하이브리드 카메라가 탄생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다시 R3로 돌아오자면, R3 자체는 분명히 좋은 카메라일 겁니다. R5에서 보여준 모습에 적층센서의 시너지가 들어간다면 분명히 a9보다는 한단계 높은 카메라일 수 밖에 없습니다.

 a1보다 조금 싼 가격임에도 화소수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스포츠 슈터은 여전히 술적 타협이 아니라 용량과 비용의 타협으로 너무 과한 화소수를 원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캐논의 세로그립 일체형 섀시는 조작성과 신뢰성 면에서 수십년 동안 검증되었습니다. 이건 a1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따라갈 수 없는 부분입니다.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렌즈 지원입니다. RF 렌즈는 FE 렌즈 만큼 다양하진 않지만 성능에서는 불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짧은 기간에 이미 놀랍도록 중요한 프로용 렌즈는 다 갖췄습니다. 놀라운 점은 모든 RF 렌즈가 R3의 30fps 연사에 대응한다는 점입니다.

 소니는 a9이 나올 때도 초기 렌즈는 20fps에 대응하지 않았고, a1이 나올 때 30fps에서 다시금 제약이 생겼습니다. 물론 RF 시스템이 나올 때부터 이미 소니가 하는 걸 보았으니 고속연사를 퓨처프루핑 하긴 했을 겁니다. 하지만 놀라운 게 뭔지 아십니까? 놀랍게도 적지 않은 EF 렌즈들도 30fps 연사에 대응합니다. 소니는? 어댑터 쓸 경우 30fps는 하나도 없지요.

 R3는 a1 만큼 센세이션하진 않을 겁니다. 분명히 이건 캐논판 a9+입니다. 5년 늦게 나온 비슷하지만 더 나은 카메라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사람들이 있고, 이걸로 부족한 사람들에겐 R1이 나올 겁니다.

 R5/R6는 이미 소니의 기득권에 적잖은 타격을 날렸습니다. R3는 그 자체는 물론 R1의 존재감도 캐논의 파이를 지켜내는데 기여하리라 생각합니다. 캐논에 대해서는 솔직히 우려할 때는 한참 지났다고 보입니다.

 이제는 니콘 Z9이 얼마나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일까 궁금하군요. 물론 파나소닉 팬으로써 파나소닉도 잘 해주면 좋겠지만...그저 구구절절한 희망사항들일 뿐이니 잘 하기만 바란다고 해두겠습니다.

ps.개인적으로 유일하게 불만스러운 사양은 CFe/SD 각 1개인 듀얼슬롯이네요. 이 등급이면 과감하게 CFe 듀얼을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R1은 그럴 것 같습니다. 타입B를 사용하는 게 a1 대비 R1의 큰 우위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a1이 타입A를 쓴 건 실수였습니다.

F1 2021 이탈리아 GP 결승 by eggry


 작년의 이변에 이어 올해도 이변. 간만에 챔피언십을 둘러싸고 대형사고가 발생했네요. 액션이 특별히 넘치진 않았지만 그래도 보고 자길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응원하는 드라이버가 이기지 않더라도 뭔가 신선한 일이 생기고 축하할 만할 때는 경기 내용과는 별개로 관심과 에너지가 생기는 거 같습니다.

 예선/스프린트 결과가 별로였던 메르세데스 듀오에겐 별로 안 좋았어야 하는 경기였고, 맥스에겐 무난한 폴투윈이었어야 하는 경기지만 전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이번주의 다크호스였던 맥라렌의 리카도가 맥스를 스타트에서 앞질렀고, 맥라렌-메르세데스의 직선빨을 맥스는 더 빠른 페이스로도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몬자이기에 가능한 모습이기도 했죠.

 그렇게 리카도를 피트스탑으로 잡으려고 머리 굴리던 중 정작 레드불/맥스는 피트스탑을 크게 망치고 말았습니다. 11초나 걸린 피트스탑을 끝내고 나오자 챔피언십 경쟁자인 해밀턴이 피트 출구에서 앞질러 가고 있었고, 맥스는 바로 어택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턴1에서는 해밀턴이 앞질렀지만, 턴2에서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맥스는 인을 노렸습니다. 그리고 쾅!!

 리플레이를 처음 봤을 때는 해밀턴이 공간을 주지 않은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했는데 스튜어드는 다르게 보고 맥스에게 다음 경기 3그리드 패널티를 줬습니다. 아무래도 지난번 해밀턴 실버스톤 사고 났을 때와 반대의 포지션 상황이라고 본 거 같습니다. 맥스가 인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해밀턴 앞으로 나간 적은 없기 때문에 공간을 줘야 할 의무가 없고, 들이밀은 게 잘못이라는 쪽으로 말이죠.

 그렇지만 실버스톤에선 맥스가 리타이어 했는데도 10초 패널티였던 걸 생각하면 리타이어 해버린 맥스에게 다음 경기 3그리드는 좀 많이 센 거 같긴 합니다. 뭐 리타이어 해버린 상대에게 타임패널티를 줄 수도 없기는 하지만... 다음 경기 타임 패널티를 주진 않으니까요. 그나저나 이번에도 정말 헤일로 덕분에 살았습니다. 맥스의 리어휠이 정확히 콕핏 위를 지나가서 헤일로 없었으면 바로 목 부러져서 죽었을 겁니다.

 일단 선두를 잡은 리카도는 피트스탑 순간을 빼고는 선두를 한번도 주지 않고 폴투윈으로 이어갔습니다. 해밀턴-맥스의 더블리타이어 후 노리스도 대단히 에너지가 넘쳤는데, 르클레르를 재빠르게 추월하고 리카도를 잡으러 따라갔습니다. 노리스로써도 우승 가능성이 이렇게 높았던 적이 없으니 의욕이 넘칠 만 했습니다. 게다가 노리스 쪽이 더 페이스가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잭 브라운은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11년만의 원투피니시 상황이지만 자칫하면 사고로 더블리타이어 할 수도 있었고, 뒤에 따라오는 페레즈나 보타스의 위협도 있었습니다. 노리스가 팀오더를 들을지 장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오더를 내리긴 해야 했습니다. 공격하지 말라고 했고 노리스는 의외로 순순히 수용했습니다. 맥라렌 원투에, 리카도의 마지막 랩 패스티스트랩까지 역대 최대의 1경기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노리스도 우승이 고픈 신흥 스타인 상황에 팀을 위해서 희생한 성숙함이 놀라웠고, 또 그럼에도 끝난 뒤 함께 기뻐해주는 모습은 보기 좋았습니다. 리카도는 당연하다는 듯 또 슈이를 했는데 이 더러운 짓은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지만... 잭 브라운이나 노리스나 어쨌든 좋은 날이니 응해주긴 했습니다.

 페라리가 그저 그런 성적을 낸 날에 하물며 오랜 숙적 맥라렌이 원투했으니 이탈리아 팬들로썬 관람하러 온 보람이 별로 없을 뻔도 했는데, 리카도가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손이라는 걸 살려서 이탈리아어로 소감과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분위기를 좀 살려줬습니다. 해밀턴과 맥스의 핵폭탄 사고에다가 맥라렌 원투까지 올 시즌에 꽤 의미를 남길 경기가 될 듯 합니다.

 해밀턴과 맥스가 모두 리타이어 하면서 WDC와 WCC 모두 1,2위는 별다른 변화가 없이 끝났습니다. 대신 맥라렌이 이번에 큰 포인트 획득으로 한동안 우위를 굳혀가나 했던 페라리를 크게 앞질렀습니다. 리카도도 한동안 침체되어 있던 WDC 순위를 많이 올렸지만, 아직은 페라리 듀오보다도 낮고 노리스보다는 확실히 낮습니다. 이제 슬슬 적응 끝내고 노리스 못지 않은 성적을 낼지가 관건이겠군요.

 다음 경기인 러시아는 메르세데스가 레드불보다 유리할 것 같은 트랙입니다. 또한 맥스의 패널티도 있으니 해밀턴으로썬 여름휴가 후 역전극을 벌일 가장 좋은 장소 되겠습니다. 물론 맥스는 여기서 기선제압해서 챔피언십 모멘텀을 굳히고 싶겠죠. 아직까지는 레드불-맥스가 더 유리한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약 바람이 바뀐다면 오늘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리코, GR 시리즈 첫 40mm 화각의 GR IIIx 발표 by eggry


 간만에 늘 나오는 후속작이나 뻔한 렌즈 사양이 아닌 제품입니다. GR 시리즈 최초로 40mm라는 표준대 화각을 갖춘 GR IIIx가 발표됐습니다. 리코의 고정식 렌즈 컴팩트 카메라인 GR 시리즈는 35mm 필름 시절부터 똑딱이 센서, 최근의 APS-C 센서에 이르기까지 늘 환산 28mm를 자랑해왔으니, 그야말로 수십년 만의 대격변(?)인 셈입니다. 실제로 35mm 이상의 고정렌즈 카메라는 타사에도 없습니다.

 물론 40mm f2.8이라는, 렌즈의 사양은 별로 대단할 게 없기는 GR III와 동일합니다. 다만 센서에 맞게 전용 설계된 침동식 렌즈의 화질은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GR 시리즈 특유의 휴대성과 민첩한 촬영, 돌출부 없이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디자인 등은 고스란히 가져가고 있습니다.

 40mm 화각이 변태화각이라는 말도 보이지만 이미 제 블로그에선 여러번 말했듯 40mm에는 상당히 오랜 표준화각으로써의 정당성과 역사가 있습니다. 50mm가 표준의 대표가 된 건 라이카의 기술적 선택과 SLR 카메라의 구조적 한계가 큰 이유이며, 다행히도 미러리스 시대에는 여러 40mm 렌즈가 나와서 사람들에게 다시 친숙한 화각이 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 렌즈로 가장 만능으로 찍을 수 있다고 하는 화각이 35mm라고 한다면, 28mm는 그보다 넓지만 너무 넓진 않아 왜곡이 심하지 않은 화각이고, 40mm는 그보다 좁아서 왜곡이 덜하고 표준 느낌이 나는 화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광각의 대표격인 24mm로도, 표준의 대표격인 50mm까지도 가지 않고 또한 35mm의 애매함을 대신 둘로 나눠서 좀 더 역할을 확실히 한 2인 1조 구성이 될 거 같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GR III가 나올 때만 해도 2400만 화소가 아직은 그렇게 구식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중형 5000만과 더불어 너무 오래된 센서가 됐다는 점입니다. 물론 APS-C 판형에선 달리 선택지가 없는 것도 현실이지만(후지 2800만은 다른데 안 팔리니), 조만간 APS-C 센서도 한번 세대교체가 될 거 같은 상황에 막차 같은 느낌은 어쩔 수 없습니다. 풀프레임도 하이엔드 라인업은 이제 5000만 클래스로 가서 화소가 반토막인 셈이니...

 물론 GR 시리즈의 미덕은 언제나 강력한 스펙이 아니라 적당한 스냅 카메라였으니까 그 정체성으로는 부족할 건 전혀 없지만요. 2400만 APS-C 센서와 고정식 단렌즈는 여전히 스마트폰 카메라와는 비교도 안 되는 화질을 선사할테지요. 루머로는 후지의 X-H2가 4000만 화소라는 설이 있어서, 후속기가 그정도 화소로 나온다면 아주 좋겠다 싶습니다.

 가격은 999달러가 될 듯 하며, 40mm 광학식 뷰파인더, 75mm 화각으로 바꿔주는 텔레컨버터 등 액세서리가 나옵니다. 28+40mm에 광각/망원컨버터를 조합하면 대충 단렌즈 4개로 투바디 굴리는 기분을 낼 수 있을 듯도 싶군요. 스냅용으로는 28mm보다 인기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현재 이 카테고리에 계속 업데이트 되는 건 후지의 X100 시리즈와 라이카의 Q 정도인데, 라이카에서 50mm가 나오면 아주 인기있겠다 싶지만, 어떨런지.

F1 2021 네덜란드 GP 결승 by eggry


 과거 F1 캘린더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가 수십년 사라졌다 맥스 베르스타펜의 인기에 힘입어 부활한 네덜란드 GP입니다. 장소도 늘 열리던 그곳 잔드보르트 서킷을 업데이트 해서 벌어졌습니다. 오래된 트랙이라서 최신 틸케 트랙에 비해 고속코너의 과격함이라든가 추월의 어려움 같은 게 확실히 보였습니다. 특히 결승을 제외한 모든 세션이 사고로 레드플래그가 나오는 모습에서 액션에 기대가 컸...습니다만, 이런 그냥 희망사항일 뿐이었네요.

 맥스의 우위가 어느정도 확고해 보이는 가운데 해밀턴의 P2 랩은 인상적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폴투윈 하는 맥스에게 해밀턴은 경기 내내 한번도 DRS 사정권에 들어가지 못 했습니다. 해밀턴이 정말 쥐어짜내서 맥스가 수십초 차이로 도망치지는 못 하도록 한 건 맞는데, 그정도로는 클래식 트랙에서는 어택 시도조차 가망 없는 페이스 차이였습니다.

 선두권이야 그러려니 하는데 그 외에도 순위변화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이전의 기대는 완전 헛거였습니다. 그나마 스타트랑 마지막 랩에서 알론소가 순위 올린 거나 베텔이 드리프트(?) 한 정도만이 볼거리였네요.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더 얘기할 것도 없습니다. 아마 가장 많이 본 건 그냥 맥스 팬들의 오렌지 연막탄이었던 거 같네요.

 챔피언십 리드는 우승에 힘입어 다시 맥스에게 돌아갔습니다. 실버스톤에서 한번 우승을 되찾긴 했지만 현재로썬 레드불 우위는 상반기 후반과 마찬가지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입니다. 해밀턴이 정상적인 경기로 최소 두번 연속 우승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해밀턴의 챔프 가능성은 계속 낮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물론 끝까지 싸울테고 가망이 없는 수준의 페이스 차이는 아닙니다마는...

 오늘 그나마 이벤트라면 우승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메르세데스가 해밀턴은 패스티스트랩 찍으려고 들이고, 보타스는 원래 원스탑으로 가려던 걸 마지막의 마지막에 투스탑으로 바꿔서 새 타이어를 준 건데, 보타스가 패스티스트랩을 찍으려 하지 말라는 지시를 무시하고 패스티스트랩을 도전한 것입니다. 물론 곧이어 해밀턴이 마지막랩을 패스티스트랩으로 되찾아 오긴 했지만, 해밀턴의 기회는 정말 한번 뿐이었어서 자칫하면 포인트 획득을 망칠 수도 있었습니다.

 메르세데스 계약 연장 안 된 거 티내냐고 농담으로 그랬는데 정말 바로 다음날 알파 로메오와 다년계약을 채결했다는 뉴스가 나왔네요. 메르세데스 쪽 대체는 아직 미발표지만 조지 러셀이 99.9% 확실하니깐 뭐 언제 발표나냐 뿐이겠습니다.

후지필름, GFX 50S II 및 G/X 마운트 렌즈 발표 by eggry


 후지필름이 어제 신제품을 대거 발표했습니다. 첫번째 타자는 루머로 많이 돌았던 GFX 50S II입니다. 최초의 G마운트 카메라였던 GFX 50S의 리프레시로, 이름이 말해주듯 신형 1억 화소가 아니라 구형 5000만 센서를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업그레이드 된 부분은 GFX 100S에서 이뤄졌던 프로세서, 인체공학, 필름시뮬레이션, 손떨림보정 등입니다.

 GFX 100S가 50S 1세대 대비 절감했던 소형화 부분과 그동안 업데이트된 수많은 필름시뮬레이션, 그리고 더 빠른 조작 등에서 이득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사라지는 것은 탈착식 EVF 같은 것이지만 그걸 그리워할 사람은 별로 없을 듯 싶습니다. GFX 50R II가 나오는 것도 기정사실처럼 보입니다.

 가장 내세우는 부분은 가격경쟁력으로, 4000달러로 중형 디지털 역사상 가장 저렴한 가격입니다. GFX 100S는 6000달러인데 2/3 가격입니다만, 이게 또 바겐세일이라고 하기에는 좀 많이 어폐가 있는 게 현실입니다. 주된 문제는 센서입니다. GFX 50S II에 쓰인 5000만 센서는 펜탁스 645Z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노령입니다.

 한때 자랑이던 다이나믹레인지도 이제는 비슷한 가격대의 소니 a7R IV나 니콘 Z7 II 같은 고화소 135 센서에 따라잡혔습니다. 노이즈 성능도 비슷한 수준이고, 렌즈도 더 어둡기 때문에 이제는 심도, SNR, DR에서 이득은 없으면서 퍼포먼스는 현저하게 느리게 되었습니다.

 구형센서는 위상차도 없고, 동체추적도 안 되고, 3fps 연사 밖에 안 되고, 센서 한계로 뷰파인더도 50fps가 한계입니다. 동영상은 여전히 라인스키핑 1080p에 그치고 젤로도 어마어마해서 폰보다도 딸릴 수준입니다.

 센서가 워낙 구형이기 때문에 중형으로써의 메리트는 거의 없는 수준입니다. 아마도 계조 측면에서는 약간 이득이 있긴 하겠지만요. GFX 100S가 실질적으로 중형의 베이스라인이 되어야 하며, 이 카메라는 성능, 화질, 가격, 생태계 면에서는 135 소형 카메라의 경쟁이 되지 못 합니다. 135 판형의 눈부신 발전에 11년만에 중형이 완전히 압도당한 것입니다.

 물론 후지카메라의 체험을 좋아하고, 중형의 계조를 원하고, GFX 100S까지는 필요 없다고 한다면 어쨌든 가장 저렴한 진입점을 만들어줬다는 의의는 있습니다. 다만 이 카메라로 중형을 시작하는 건 만족보다는 실망을 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고, 오히려 1억 화소 모델을 가진 기존 사용자들의 서브 모델 정도로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이 모델은 어디까지나 미끼상품에 가깝다고 생각하고(50R II가 나와도 마찬가지), 실제로는 GFX 100S가 가격이 얼마나 빨리 내려갈 거냐, 혹은 1억 화소의 5천 달러 이하 보급형이 추가로 나올 것이냐(GFX 100R?)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새 카메라에 맞춰 새 줌렌즈도 나왔습니다. GF35-70mmF4.5-5.6 WR은 기존의 32-64mm f4보다 조리개, 마감 등을 약간 깎은 대신 침동식으로 소형경량화를 추구했습니다. 또한 그동안 G마운트 표준의 단점이던 손떨림 보정이 없는 부분은 이제 최저가형에도 6.5스탑 손떨림 보정이 들어감으로써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실 GFX 50S II의 애매함 때문에 GFX 100S 유저들이 더 반길 듯합니다.



 새 렌즈 로드맵은 GF20-35mm(135 환산 약 16-28mm) 초광각 줌렌즈와 55mm(환산 약 44mm) f1.7, 그리고 틸트쉬프트 렌즈가 등장했습니다. 그동안 공백이던 초광각 부분이 줌으로 채워지는 게 일단 반갑고, 풀프레임과 심도 대결을 할 f1.7 렌즈가 추가된 것도 좋습니다.

 l그래봐야 f1.3 정도라서 f1.2가 점점 나오고 있는 135에는 여전히 안 되긴 하지만 어쨌든 중형 기종을 쓰면서 필요하면 심도를 얻을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틸트쉬프트는 정물이나 건물 촬영용으로, 상업촬영의 중요한 축이기 때문에 G 시스템의 상업영역 시장성을 높여주겠습니다.



 한편 X마운트 쪽은 렌즈 리뉴얼이 주로 등장했습니다. XF33mmF1.4 R LM WR과 XF23mmF1.4 R LM WR가 등장했습니다. 33mm f1.4 쪽은 최초의 X 렌즈였던 35mm f1.4 R의 대체형에 가깝다고 봐도 될 거 같습니다. 23mm 쪽은 기존 23mm f1.4 R의 개량형입니다. 화질 개선, 리니어 모터 채택 등이 이뤄져서 X 카메라의 성능 향상에 맞춰 조용하고 빠른 렌즈가 될 예정입니다.

 특히 XF35.4가 경통이 움직이는 징징모터 렌즈였기 때문에 XF33.4는 드디어 세대교체가 시작된다는 증거로 보입니다. 물론 금속 재질이 아니라든가, 크기가 확연히 커졌다든가 하는 100% 우위에 있지 않은 부분도 있긴 하지만 X-Pro1만 있던 시절과 달리 큰 렌즈를 쓰기 좋은 여건이 되었기 때문에 이젠 세대교체가 된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X마운트 로드맵에는 그 외에 18-120mm 슈퍼줌, 150-600mm 장망원줌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차세대 X 카메라는 적층형 X-Trans CMOS를 쓸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루머에 따르면 다음 카메라는 X-H2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X-T 시리즈에 비해 동영상 발열 등을 억제할 수 있도록 큰 크기를 가지면서 적층센서로 고속 스틸/비디오 촬영을 추구할 것 같습니다. 재밌는 점은 X-H2가 두종류가 나올 거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는 겁니다. 대체 무슨 소리람?

 사실 소니에 적층센서가 나온지 꽤 됐지만 여전히 스틸용으로만 이용되고 있습니다. a1의 경우엔 소니 카메라 치고는 젤로가 꽤 좋기는 하지만, a7S III보다 젤로가 딸리는 걸 보면 여전히 DRAM은 안 쓰는 것 같습니다. X-H2라면 비디오 쪽으로도 활용될 가능성을 기대해 봅니다. 그렇다면 거의 젤로 프리 동영상이 가능할 거 같습니다. 화소수는 3000만 정도로 올라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은 X-T30 II도 나오긴 했지만 바디 전면에 II 각인도 없을 정도로 그냥 프로세서 업그레이드 정도만 한 옆그레이드이기 때문에 따로 다루진 않겠습니다.

테슬라 AI 데이, 요점이 뭔가? by eggry


 한국 시간으로 어제 테슬라의 AI 데이가 있었습니다. 테슬라는 배터리 데이, 오토노머스 데이 등 비정기적이고 그때그때 주제를 갖다 붙인 이름의 컨퍼런스를 하고 있는데 가장 최근의 배터리 데이 때는 차세대 배터리 패키징과 그에 따른 단가 절감, 주행거리 향상 가능성을 얘기했습니다.

 배터리 데이 때도 잠재적 가능성만 보여줬지 실제 제품은 나오지 않았듯 AI 데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제품 발표 같은 것과는 거리가 있는 행사입니다. 물론 자신들의 기술향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테슬라 팬덤은 그들 스스로가 전도사가 되는 게 테슬라 특유의 마케팅 전술이라고 할 수 있긴 합니다.

 다만 배터리 데이는 앞으로 나올 자동차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반면, AI 데이는 그것과는 좀 결이 달랐습니다. 물론 FSD(Full Self Driving, 하지만 사실 완전자율주행이 아님) 기술의 발전에 대한 얘기가 나오긴 했지만 오히려 그냥 인트로에서 거의 지나가는 수준의 얘기였습니다. 다음 버전에서 어떻게 업그레이드 될 거라든가, 언제 릴리즈 되거나 국가가 확대될 거라든가 하는 얘기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 이후의 얘기들은 더욱 지금까지의 테슬라의 제품이나 행보와는 결을 달리합니다. 전부터 얘기하던 인공지능 학습용 슈퍼컴퓨터 Dojo(일본어로 도장)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근데 그 얘기가 도조로 인해 FSD가 어떻게 될까에 대한 것보다는, GDC나 WWDC, Build, I/O 컨퍼런스 같은데서 볼 법한 개발자의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그런 투명성과 기술적인 얘기들은 흥미롭고 좋습니다. D1 칩의 병렬화를 위한 노력도 인상 깊었습니다.

 문제는 이 내용들이 대체 뭘 위해 나온 거냐는 겁니다. 테슬라는 오픈소스 회사가 아닙니다. D1 칩이나 도조는 외부에 판매되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로는요. 그럼 단순히 몇 플롭이다 정도의 성능 이야기 외에 이런이런 처리와 프로세스를 우리가 한다는 개발자적인 내용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겁니다.

 아마도 이번 발표와 가장 비슷했던 건 최근의 엔비디아 발표일 겁니다. 실제로 하드웨어의 성격도, 응용도 매우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엔비디아는 그 칩과 카드, 혹은 서비스를 파는 회사입니다. 그걸 보는 개발자들이 오 이걸 사서 이렇게 쓸 수 있겠군- 이라고 생각하겠죠. 테슬라의 칩과 소프트웨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프레젠테이션으로 보여준 내용은 개발자들이 사들여서 쓸 수 없습니다.

 물론 개발자들이 테슬라 기술을 만질 방법이 한가지 있습니다. 테슬라에 입사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프레젠테이션 내용이 테슬라에 입사하게 만들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 어느 레벨인지는 이해하지 못 합니다만, 가령 테슬라가 엔비디아에 필적 혹은 그걸 초월하는 수준의 내용을 보여줬다고 합시다. 거기에 감동 받아서 좋아! 내가 테슬라에 들어가서 한 몫 거들어 주겠어- 라고 생각하는 건 음, 그런 발상은 그렇게 보편적일 것 같진 않습니다.

 테슬라의 프레젠테이션에 도전욕구를 느꼈다면, 사실 테슬라의 동료가 될 가능성보다는 오히려 거기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이나 경쟁회사에서 그걸 꺾는 게 더 보편적인 방향일 것입니다. 일론 머스크는 AI 데이가 "최고들이 합류하게 하도록 설득하는 것" 이라고 트위터로 행사 전부터 얘기했는데 솔직히 그냥 보통 구인채널을 써도 아무 상관 없을 일입니다.

 이런 형태의 기묘한 행사, 오픈소스도 아닌 회사가 개발자 컨퍼런스 포맷으로 발표를 한 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단은 테슬라의 팬덤을 이용한 간접적인 마케팅 전략이 있겠고, 그 외에는 현재 오토파일럿이 부주의한 사용으로 발생하는 사고들에 대해 조사가 이뤄지고 있으니 내용을 바꿔 원래의 더 직접적인 제품홍보가 축소되었거나일 수도 있겠죠.





 혼란스러움의 극한은 행사의 끝에 나온 테슬라 봇이었습니다. 테슬라 비전과 AI 기술을 이용해서 자율행동 가능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든다는 건데,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발표 처음에 나온 게 테슬라봇 옷을 입은 인간 댄서라는 점이 과연 진지한지 의문스럽게 만듭니다. 머스크는 분명히 내년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으니, 단순히 장난을 위한 농담은 아닙니다.



이게 실제로 나온 겁니다. 2시간 6분 10초를 보세요.

 물론 농담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현실성이, 특히 타임프레임에서 전혀 없다는 것이죠.(Don’t overthink it: Elon Musk’s Tesla Bot is a joke) 머스크의 타인과 동떨어진 시간감각을 고려하더라도 1년 안에 지금의 테슬라 기술로 자연스러운 휴머노이드 로봇이 나올 거라는 건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테슬라가 이런 컨셉을 연구하는 것 자체는 전혀 나쁘지 않습니다. 자동차 다음에는 인간형 기계라는 말은 타당합니다. 또한 테슬라가 자신하는 만큼 비전 기술과 AI에 자신이 있다면, 분명 로보틱스 분야에서도 진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로보틱스, 특히 휴머노이드 분야는 어려우면서도 (아직까진) 쓸모 없기로 악명 높습니다.

 테슬라가 기적적으로 외계기술급 물건을 내년에 드랍하든지, 아니면 내년에 나올 건 간신히 움직이는 더미 수준이고 수년에 걸쳐 개량되든지, 최악의 경우엔 그냥 베이퍼웨어로 영원히 남든지 셋 중 하나겠습니다. 물론 현실적인 예상은 2, 3, 1 순이겠지요. 휴머노이드 분야는 매우 큰 도전이고, 거기에 테슬라가 기여한다면 그건 좋은 일입니다. 제대로된 물건이냐 아니냐완 별개로 말이죠.

 하지만 상장기업으론 매우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테슬라는 막대한 현금을 태우면서 사업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테크 자이언트처럼 자원이 무한대에 가까운 회사는 전혀 아닙니다. 거기에는 시가총액과 별개로 테슬라는 여전히 그렇게 큰 회사가 아니라는 점도 있습니다. 공격적으로 공장과 차량 모델을 확장하는 것도 그 이유이지만, 사업 분야를 확장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이번 행사에서 테슬라는 자신들이 그저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인공지능 회사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애플 컴퓨터가 애플이 된 것처럼. 테슬라도 테슬라 모터스에서 테슬라가 됐죠. 저도 어느정도는 그런 관점으로 보고 있기는 했습니다. 다만 테슬라가 오늘 보여준 것과는 좀 다른 관점이었습니다.

 테슬라에서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저는 자율주행보다는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제조업분야에 매우 공격적으로 활용한다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기가프레스 같은 것이 대표적이죠. 그러니까 실리콘밸리 마인드로 제조업을 새로이 접근하는 회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종합 인공지능 회사는 그것과는 좀 다른 얘기입니다. 도조나 D1 칩은 엔비디아처럼 팔거나 서비스하지 않을 겁니다. 테슬라 봇은 약속에 전혀 못 미치는 상태로 나오든지 아니면 영영 나오지 않을 겁니다. 잘해봐야 보스턴다이내믹스처럼 십년에 걸쳐 연구개발만 하는 존재겠죠.

 테슬라가 알파벳 같은 공룡이라면 이런 취미 프로젝트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인류와 기술에의 되갚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당장 자동차 쪽에서도 출시 지연, 공장 확장이나 품질관리, 안전조사와 같은 과제들이 산적한 상황에 이런 주의산만한 짓을 하는 건 당면한 문제들을 잘 극복해낼 거라 하더라도 기업이나 경영자에게 별로 신뢰가 가는 모습은 아닙니다. 물론 저야 머스크가 언제나 재능과 별개로 별로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지만요.

 어쨌든 AI 데이는 테슬라 자동차나 FSD 업데이트와는 그다지 상관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외부 개발자들에겐 재밌는 볼거리를 주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어떤 자극이나 합류 동기가 될지는 별로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테슬라 봇은 완전히 주의력이 결핍된 모습이었습니다. 도조까진 그러려니 했는데 테슬라 봇 쯤 가니 내 차나 빨리 내놓으라는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 전기차 어딨어 머스크! 돈도 냈다고!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3.0+1.01 - 얘들아 집에 갈 시간이다 by eggry


 일본과의 관계 냉각화에 코로나19 까지 겹치면서 과연 언제 볼 수 있는 걸까 궁금했던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3.0+1.01(이하 신에바)가 의외의 기회로 생각보다 빨리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컨텐츠 확보에서 평소 그리 소극적인 수준은 아니라도 별로 과감하지도 않던 아마존이 통 크게 움직여서 아예 신극장판 전편을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로 서비스하기로 한 것입니다. 정작 TV판과 구 극장판은 넷플릭스 독점인데 제대로 쪼개지게 됐습니다.

 당초엔 일본은 제외로 발표됐지만 결국엔 일본도 포함되서 서비스 됐습니다.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은 일본 내 흥행 100억 엔 기록이었어서 순전히 기록 달성 쉽게 하려고 정보 지연 했다는 생각입니다. 구판과 달리 판권 문제가 단순하기 때문에 사실 일본 내 흥행 외에는 걸림돌이 전혀 없었습니다.

 디테일한 스포일러 없이 얘기하자면 결국에는 또다른 에바 최종화 리메이크였습니다. 악명 높은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제작비, 스케쥴 등의 이유로 기괴하게 만들어진 TV판 25, 26화의 해설/비주얼화 버전이었습니다. '신에바'는 같은 사건의 다른 표현은 아니지만, 에반게리온의 결말을 또 만들었다는 점에선 동일합니다. 결국 근본적인 지향점은 같다는 점도 리메이크의 한계라면 한계라고 할 수 있겠고...

 Q의 충격과 떡밥 이후 무수한 추측과 이론이 있었고 그 중 상당수는 실제로 '신에바'를 TV판/구극장판과 다른 사건으로 분리시키는 설정이기는 하지만, 그게 별로 다른 테마나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 했다는 점에서 과연 4편의 신극장판이 새로 선사해준 게 무엇이 있나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물론 TV판의 파격(?)이나, EoE의 과격함과는 다른 어른스러운 친절함이 있기는 합니다. 아주 친절하게 퇴장시켜주죠. 종국엔 팬까지 말입니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그냥 친절하고 따스할 뿐 궁극적으로는 이전과 같은 얘기였습니다. 물론 그것과 다른 걸 기대하는 게 맞는가 하면 그렇다고 하기도 그렇긴 한데 솔직히 프로젝트 시동 때는 파격적이면서도 납득할 만한 그랜드플랜이 있어서 다시 지휘봉을 잡은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안노가 했던 건 숙제의 남은 숙제를 뒷처리 한 거였네요. 엄연히 오리지널이 있고, 신극장판이 나온다고 해도 이전의 선택과 결말을 죽이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는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안노 히데아키는 모든 걸 뒤엎기 보다는 이전을 긍정하기로 했고, 결국 '신에바'는 EoE 이후에도 아직 떠나지 않은 팬들을 도닥여주며 극장 문 밖으로 나가게 하기로 했습니다.



'신에바' 보면서 떠오른 짤들

 작품 자체로만 본다면 플롯과 연출은 정말 지리멸렬해서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영화 한편 보면서 얼마나 많은 데자뷔가 떠올랐는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리고 애초에 작중에 하는 행동들은 전개에 거의 영향이 없는 그냥 서비스 액션씬에 불과합니다. 결국 실제 전개는 신지의 WE NEED TO TALK로 다 정리됩니다. 히데오 코지마가 연설식 스토리 전개로 비판 받았는데, '신에바'에서는 안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트위터에 '코지마가 안노보다 낫다'라고 말했는데, 그건 코지마가 적어도 했던 얘기를 또 하려고는 안 했다는 점에서였습니다. 계속 에바 만들라고 하는 거나 계속 메탈기어 만들라고 하는 거나 솔직히 메탈기어 쪽이 압력이 훨씬 심할텐데(전자는 팬만의 얘기지만, 후자는 주주와 상사까지 있음) 그 와중에 계속 다른 얘기 하려고 했던 게 놀랍긴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MGS2가 MGS1의 스토리를 죽이는 불상사가 있기는 했고, 안노가 가장 피하려고 했던 건 그것 같습니다. 의외로 MGS2가 MGS1의 스토리를 깎아버린데 비해서 반발이나 평판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는데 그건 게임플레이가 제일 중요한 게임이란 미디움의 특성 때문이겠죠. 애니메이션에서는 스토리가 절대적이고 그 후폭풍은 MGS2와 같은 수준이 아닐 것입니다.

 그건 이해합니다만 그래도 전 "다 계획이 있었구나" 라는 감상을 말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오길 바랬기에 좀 허탈했습니다. '신에바'가 너무 MGS4를 연상시키는 면이 많았다는 점도 MGS4가 나온지도 13년 됐는데 그정도로 밖에 못 했나 하는 얘기기도 했습니다. 뭐 안노가 MGS4 했다는 얘기는 없고 미디움도 다르지만, 시간의 흐름과 보편적인 발전이라는 점에서 말이죠.

 하여튼 어쨌든 끝났구나- 라는 감상은 더 우호적으로 본 분들과 동일하기는 합니다. 정말 "이만큼 했으니 이젠 더 에바 타령 하지마" 라고 이정도로 잘 구슬러 줬으면 왠만하면 솔직히 그냥 받아줘야죠. 여러번 했던 얘기지만 저는 TV판의 결말이 EoE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신에바'보다도 당연히 낫다고 생각합니다. 결말 자체만으로는 '신에바'가 두번째라고 하겠지만, EoE보다 나중에 나오고서 더 잘했다고는 못 하겠네요. 어쨌든 이제 정말 작별입니다.

ps1.어쨌든 저는 아스카를 더 좋아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역할은 정말 없네요. 가짜 레이보다 더 없다니...

ps2.프라임 비디오는 넷플릭스보다 기술력이 많이 딸려서 비트레이트가 더 높은데도 깍두기도 심하고, 서라운드 스펙도 오리지널 컨텐츠도 5.1채널이 대부분인 수준입니다. 오리지널은 돌비비전/애트모스가 절반은 되는 넷플릭스랑 비교하면 좀 많이 안습이죠. '신에바'야 극장판이래도 일본 애니라서 어차피 FHD에 5.1채널이면 충분해서 깍두기 외엔 큰 탈은 없었지만... 근데 요란한 액션에 비해 서라운드효과 중에서는 겐도가 뒤에서 말하는 거만 제일 기억나는 게 웃프군요.

탐론, 28-75mm f2.8 G2와 35-150mm f2-2.8 발표 by eggry


 탐론에서 E마운트용 신렌즈 2종의 개발을 발표했습니다. 개발발표긴 해도 그냥 출시 예고나 마찬가지죠. 단지 시점이 약간 늦을 뿐...

 첫번째 렌즈는 인기있는 표준줌 28-75mm f2.8의 2세대입니다. 2세대가 3년여만에 나오는 셈인데, 보통 메이저 렌즈 리뉴얼이 10년 안에 이뤄지는 경우가 거의 없는 걸 생각하면 신기한 일입니다. 미러리스 표준줌, 특히 E마운트는 시그마에서도 24-70/2.8과 28-70/2.8을 동시에 출격시키는 등 경쟁이 격화되고 있고, 소니에서도 24-70GM 마크2가 나온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만큼 주력제품의 경쟁력을 빠르게 보완하려는 생각인가 싶습니다.

 28-75의 장점이단 소형경량 컨셉은 여전히 유지하면서 광학계를 새로 설계해 화질을 향상시켰고, 경통 디자인과 질감을 개선시켰다고 합니다. 28-75의 최대 단점이 싸굴틱한 외관일 것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수준이 될지 궁금합니다. 장망원 라인업 정도 느낌이면 좋을 거 같은데요. 70-180부터 도입된 VXD 모터를 도입해 AF도 향상됐다고 합니다. VXD 모터는 소니 정도만 더 나은 물건이 있을 정도라 경쟁력에 도움이 될 듯 합니다. 특히 스테핑 모터인 시그마보다 유리한 부분이고, 동영상에선 더 차이가 생기겠습니다.

 최초의 G2이니 만큼 탐론 미러리스 렌즈에서 처음 등장하는 기능들도 있습니다. 여태껏 대채로 버튼이 없던 탐론 미러리스 렌즈인데, 이번엔 '포커스 셋'이란 버튼이 생겼습니다. 기본기능은 바디의 포커스 설정 기능으로 작동되는 것으로, 소니 렌즈와 동일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추가된 USB-C 포트를 통해서 펌웨어 업데이트는 물론 버튼에 독자 기능을 할당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AF/MF 전환이라든가, 초점링을 조리개링 기능으로 토글할 수 있는 기능, 포커스 프리셋(기록한 초점 위치로 한번에 이동하기. 풍경용으로 무한대에 쓰면 좋을 듯?), AB초점(말 그대로 A to B 부드럽게 초점 이동, 동영상용?) 등이 가능하다고. 또한 초점링의 방향 설정도 PC 연결로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전 렌즈가 카메라 바디를 통해서 펌업이 가능했는데 굳이 USB 포트를 직접 도입한 건 좀 유난스럽긴 합니다. 물론 위와 같은 커스텀 기능을 쓰려면 자체 포트든 독이든 필요하기는 했겠죠. 일설에 따르면 E마운트 자체가 오픈이기는 해도, 몇가지 고급기능을 쓰려면 로열티가 필요하다는데 그 중에 하나가 소니 바디를 통해서 펌웨어 업데이트를 하는 거라고도 합니다.

 참고로 여러 메이커 중에서 탐론과 자이스 만이 이 방식으로 펌업이 되는데(시그마, 삼양은 USB 독으로) 프로그램도 소니랑 같은 걸 쓰죠. 거저일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물론 PC 연결로 커스텀 하는 건 덤입니다. 미러리스로 오면서 핀조절을 위해 PC 연결 필요성은 거의 없어졌지만, 그래도 튜닝이 가능한 건 좋은 일입니다. 특히 망원렌즈류에선 더 그럴테고요. AB초점 같은 기능은 탐론이 이제 VXD 모터를 등에 업고 동영상에도 관심을 두겠다는 의미 같습니다.



 한편 화질개선이 어지간히 자신있던지 아직 크기, 무게 등 기본 사양도 발표되지 않은 상황에서 MTF 비교부터 공개했습니다. 1세대의 경우 광각에서 화질은 별 문제 없는 수준이었고, 망원은 으레 그렇듯 조금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2세대는 광각에서 30선을 크게 올렸고(하지만 방사와 동심의 차이가 커서 1세대보다 더 지저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망원의 경우에는 표준줌으로써 흠잡을 수 없는 수치를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소니/탐론/시그마의 1세대 제품들은 화각 범위에 따라 엎치락 뒤치락 하기는 해도 솔직히 전체적으로 거기서 거기 수준의 샤프니스라고 생각하는데(AF나 보케 같은 걸로 들어가면 좀 다르지만) 탐론 G2가 처음으로 한세대 높은 샤프니스를 보여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한편 루머의 소니 2세대 역시 탐론보단 크고 무거울테니 이정도는! 당연히 되고 그 외에 AF라든가 다른 이점들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24-70GM은 이미 처분한 상태라, 2세대의 출시를 눈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즘 소니 스타일 상 무게/크기도 16-35GM 정도로 작고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고요. 모터도 XD 리니어로 업그레이드 되긴 하겠지만, 기존의 SSM으로도 매우 좋았기 때문에 향상 체감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탐론 G2의 관건은 역시 가격이겠습니다. 소니 2세대야 못해도 250만에 심하면 300만도 넘을테지만, 시그마와 경쟁을 위해서는 화질이 좋아졌다고 해도 가격이 너무 오르진 않아야겠습니다. 아마도 탐론 1세대/시그마의 28mm부터 시작하는 놈들보다는 비싸고, 시그마의 24-70/2.8보다는 약간 싼 정도이지 않을까 합니다.

 화질이 시그마 두 제품보다 좋을 걸 감안해도 28mm짜리가 24mm랑 비슷하거나 비싸다면 관심을 별로 못 모으겠죠. 뭐 합리적인 포지셔닝으로 유명한 탐론이니까 알아서 잘 하리라 생각합니다. 1세대와 동일한 가격에 모든 면에서 향상되어 나온다면 히트를 이어가는 건 따논 당상이겠지만요.

 출시는 2021년 연내, 가격은 미정.



 그 다음으로 나온 렌즈는 다소 특이한 35-150mm f2-2.8입니다. 대충 인물용 올라운드 화각을 노리는 듯 한데, 배경을 포함한 상황 표현인 35mm부터 정말 땡겨서 찍는 135mm(최대 150mm지만)까지, 35-50-85-100-135를 한 렌즈로 퉁치겠다는 컨셉인 듯 합니다.

 사실 2019년에 캐논/니콘 DSLR용으로 35-150mm f2.8-4를 낸 적이 있고 나름 평판이 나쁘지 않았는데, 미러리스로 나오면서 밝기를 올려서 아예 제대로 작심한 것입니다. 밝기를 올린 건 바디 손떨림보정을 믿고 VC를 빼버려서 가능했지 싶습니다. 물론 미러리스식 광학도 도움이 됐겠지만요.

 당연히 최신 탐론 렌즈 답게 VXD 모터를 이용하며, 경통 디자인도 28-75G2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소재와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또한 망원영역을 커버하는 만큼 AF/MF에다 CUSTOM이라고 적힌 레버도 달려 있습니다. 포커스 셋 버튼으로 보이는 버튼도 존재.

 포커스 셋 버튼에 기능 할당은 28-75G2와 동일하다고 하며, 커스텀 버튼의 1,2,3을 통해서 재빠르게 기능을 스위칭할 수 있는 듯 합니다. 28-75G2에는 이 커스텀 레버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AF/MF 버튼까지 있으니 신기능을 PC 연결 없이 고스란히 다 쓸 수 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일단 마운트 크기 등으로 보기에 동사의 70-180mm f2.8보다는 한둘레 정도 더 큰 렌즈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70-180/2.8 자체가 f2.8 표준줌 정도의 크기였기 때문에 70-200/2.8 클래스의 크기나 무게가 되지는 않을테지요. 그 중간 정도 느낌이 될 거 같습니다. 무게는 1Kg 전후 정도?

 사양에서 관건은 과연 f2 밝기가 어디까지 유지될 거냐는 거인데, 36mm 되는 순간 바로 f2.4가 되어버리고 50mm에선 이미 f2.8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50mm까지 f2.4라도 유지한다면 의외의 보너스이고, f2라면 기적(?)이라 해도 될 듯 합니다. 85~150mm 영역에서 f2.8은 거의 당연한 얘기 같고 단렌즈 대비 넉넉한 조리개라 할 순 없지만 원채 망원이라 심도가 어느정도는 되는데다 렌즈교환이 필요 없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겠죠.

 사실 이런 화각/조리개를 변칙적으로 가져가는 컨셉은 삼성의 16-50mm f2-2.8 렌즈가 생각납니다. 그때 삼성은 언더독 입장에서 뭔가 좀 주목받을 짓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보는데, 탐론의 경우에는 화각까지 보면 그냥 니치 개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DSLR버전 나올 때도 "그럼 10-35mm f2-2.8 같은 것도 나오나?" "아니면 100-300mm f2-2.8 같은 건?" 생각했는데 짝이 맞는 광각/표준 렌즈는 결국 안 나왔네요. DSLR에선 어려움이 많았다 해도 미러리스에선 광각 설계가 유리하니까 한번 변태짓 해줬으면 좋겠다 싶습니다만, 어떨런지? 개인적으론 파나소닉 흉내내서 20-60mm f2.8-3.5 같은 것도 좋습니다마는...

F1 2021 헝가리 GP 결승 by eggry


 이사다 뭐다 경황이 없어서 뒤늦게 정리합니다. 벽 없는 모나코라 불리는, 별 일 없으면 그냥 지루하게 기차놀이만 하다 끝나는 헝가로링입니다. 하지만 그 별 일이 비교적 자주 생긴다는 게 특징. 이번주도 별 일이 생긴 주였고 결과도 대단히 기묘했습니다.

 경기는 두가지로 인해 뒤흔들렸습니다. 하나는 랩1에서의 사고. 보타스의 무리수로 연쇄사고가 생기면서 우르르 리타이어 했습니다. 상위권에서 페레즈와 르클레르가 즉시 사라졌을 뿐더러, 맥스는 살아남았지만 오른쪽 바지보드가 사실상 없는 상태로 제 성능을 낼 수 없는 차로 경기 내내 달려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휘말리지 않은 해밀턴이 아주 손쉽게 이겼어야 할 거 같지만, 여기서 또다른 이변은 날씨가 변했다는 것. 사고를 유발시켰던 젖은 노면은 리스타트를 기다리면서 점차 말라갔고, 결국 포메이션랩 중 모두가 피트로 들어가 드라이 타이어로 갈아 신기로 결정합니다. 그렇지 않았던 유일한 드라이버는 바로 해밀턴. 혼자 스타트 하는 기묘한 모습을 보였고 당연히 일단은 선두였지만 타이어 문제로 결국 많은 순위를 잃고 맙니다.

 이 대혼란 피트스탑 속에서 오콘이 1위로 나선 건 운이 좋았던 거지만, 그 이후도 운은 아니었습니다. 알핀의 성능이 중위권 중에서 좋다고 하기 힘들었고 상위권에서도 해밀턴이 일단 살아 남았던데다(올라오기 바빴지만) 사인츠는 물론, 중위권에서 알핀보다 성능이 좋은 애스턴마틴의 베텔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콘은 해밀턴이 뒤늦게 타이어를 갈러 들어가 선두를 차지한 뒤, 피트스탑 순서 문제로 잠시 알론소에게 1위를 내어준 두 경우 빼고는 순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경기 내내 같이 다닌 베텔이 결국 못 잡은 건 상당한 플레이였습니다. 알론소도 오콘처럼 트랙포지션에서 대박을 내진 못 했지만 역시 순위를 상당히 잘 지켜냈으며, 해밀턴을 10랩 이상 붙들고 있었던 것도 볼만했습니다.

 물론 해밀턴이 무전으로 불평하던대로, 약간 지저분한 디펜스도 있었지만 알론소가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해밀턴은 베텔, 오콘 근처에 가지 못 하고 마쳐야 했습니다. 피니시 할 때 격차가 3초 이내인 걸 보면 보통 중하위권처럼 2,3랩 만에 자리를 내줬다면 베텔과 오콘은 쉽사리 추월당했겠죠.

 한편 베텔은 마지막에 연료가 간당간당해 파크퍼미까지 못 오고 멈췄는데, 그에 따라 경기 후 제출해야 하는 연료샘플 1리터를 제공할 수 없어서 실격처리 당하고 말았습니다. 포디엄에서 샴페인까지 터뜨리고 결국 실격에 사인츠는 두번째로 포디엄에 안 올라가고 결국 3위를 차지했네요.

 중상위권의 대규모 리타이어와 혼란 가운데 또 재미를 본 팀은 알파타우리와 윌리엄스입니다. 두 팀 모두 더블포인트로 피니시했고 특히 윌리엄스로써는 더 감동적인 포인트 획득이겠습니다.

 해밀턴으로썬 타이어 실수만 없었으면 아주 쉬운 우승이었던 경기인데 맥스가 데미지로 포인트를 조금 밖에 얻지 못 했기 때문에 여름휴가로 가면서 소기의 성과는 얻고 갔습니다. WDC, WCC 모두 해밀턴/메르세데스가 맥스/레드불을 역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변이 아니었더라도 헝가로링에선 메르세데스가 페이스가 더 좋아보였던 걸 생각하면 레드불의 파죽지세가 다소 저지당한 듯 하며, 시즌 후반이 어찌될지는 짐작도 안 됩니다. 그나저나 경기 후 타이어 테스트에서 러셀이 메르세데스를 탄다는데, 이미 패독에 소문이 파다하긴 하지만 오늘 사고로 메르세데스와 보타스의 인연은 다들 끝났다고 인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귀멸의 칼날 by eggry


 당초 연재 중일 땐 그냥 이름이랑 몇몇 이미지 정도만 보다고 극장판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흥행기록을 깼다는 얘기와 초인기 소년만화 답지 않게 금방 완결 난다는 얘기에 완결 기다렸다가 봤습니다. 애니메이션은 하나도 안 봤고요, 만화판 보고 나니까 딱히 애니메이션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곧잘 들리는 얘기가 애니메이션 작화에 비해 원작이 구리다- 라는 건데 솔직히 전 처음부터 그림이 꽤 괜찮다고 생각했어서... 개그씬이야 좀 낙서처럼 그린 면들이 있긴 하지만, '진격의 거인'에 비하면 초반부터 훨씬 양호하고 안정적이었네요. 특히 흑백 맛을 꽤 잘 살린 판화를 연상시키는 컷들이 꽤 많이 나옵니다. 컬러가 아니라 우키에요라고까지 하긴 뭣하지만, '보석의 나라'에 이어서 고전화풍의 영향이란 점에서 인상 깊었네요.

 내용은 소년만화 치고도 상당히 단순하게 밀고 나가는데, 23권이란 길이도 이 장르로는 길지 않은 편이지만 그나마도 회상이나 백스토리 같은 부분들 제외하면 더 짧습니다. 최종보스가 엄청 일찍부터 지명되고 변신도 안 하고 흑막도 없고... 작가가 인물 뒷배경 설정에는 상당히 집착하는 모양인데 그런 거 치고는 도깨비라든가 먼치킨 최초의 검사 같은 부분은 그냥 얼렁뚱땅 넘어가네요.

 소년만화 치고는 네거티브 에너지가 꽤 강한 편인데, 귀살대는 복수귀에 가깝기 때문에 깊은 상처와 더불어 냉혹함도 겸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부정적 에너지를 승화시켜서 강해진다는 식이 많은데, 귀멸은 상당수 인물은 순수한 분노이고 복수를 완수하고 아주 시원하게 웃기도 합니다. 도깨비를 물리칠 수 있다면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각오에서 당연히 자살돌격적인 면들이 나오는데, 어린 나이대와 더불어 학도병 이미지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을 듯 합니다.

 단순명쾌한 이야기의 상당부분은 결국 귀살대와 도깨비의 주마등 비슷한 식으로 과거지사 풀이로 리드하는데, 도깨비 쪽의 사정은 미화나 변명 수준은 아니라 하더라도 너무 꼬박꼬박 넣어주긴 했습니다. 그래도 만화 자체가 중간보스들 중에서 하급(하현)은 초반 지나자마자 한번에 교통정리 하고 상현으로 하이패스 해서 다행인 듯.

 대놓고 천국과 지옥이 있고 죽은 자와 교감이 있어서 죽은 사람의 외침 같은 게 그냥 상상이 아니라 진짜라는 점이 특이. 기본적으로 그냥 양쪽 다 비극이기 때문에 슬픔이나 분노가 메인이고 포지티브 에너지가 주인 소년만화에서는 좀 신선하면서 자극적이긴 했습니다. 잔인한 장면이 꽤 많이 나오기도 했네요.

 다이쇼 시대 설정으로 말이 많았는데 사실 다이쇼여야 할 이유는 몇가지 미학적인 이유 뿐입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냥 패션을 중세나 에도 스타일보다는 신구가 섞인 시대로 하고 싶었고, 또 구시대의 흔적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던(몇몇 인물들의 미천하고 구시대적인 직업이나 생활상 같은) 때라는 정도입니다.

 사실 그렇게 따지면 막말이나 메이지였어도 어떻게든 맞출 수 있는 내용입니다만, 다이쇼를 택한 이유가 미학적인 것이라면 그 부분에서 당연히 벨에포크식 '우리네 좋았던 시절' 향수가 관여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국가나 정세적인 부분은 전혀라고 할 정도로 비쳐지지 않고, 도깨비와 귀살대라는 두 비밀결사만의 싸움이라서 그 이상으로 나가진 않지만서도...

 제일 좋아한 캐릭터는 토키토랑 시노부였습니다. 시노부는 그래도 자기 얘기를 확실하게 매듭 지은 거 같았는데 토키토는 후반부 비중이 좀 아쉬웠네요. 자기 에피소드 먼저 할당 받았다고 최종장에서는 그냥 대충 넘어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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