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I FPV, 처음으로 드론 사고 싶어졌다 by eggry











 드론계의 명실상부한 원탑이라고 할 수 있는 DJI에서 FPV 드론을 내놓았습니다. 이름은 매우 단촐한 DJI FPV. FPV는 First Person View로, 드론을 바깥에서 관찰하는 게 아니라 드론의 시야 그 자체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직관성과 이점 때문에 드론 레이스에서는 이미 표준적이었고, DIY로 만들어내는 게 하나의 문화로 확립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일반인이 쉽게 쓸 수 있게 패키징화, 자동화된 제품은 사실상 이게 처음이라 할 수 있죠.

 FPV의 장점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드론이 보는대로 고글로 보기 때문에, 조종할 때 관점에서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대학생 때 RC 비행기 동호회에 있었고, 플라이트 슈터나 시뮬레이터류에서 비행기의 조작과 거동에 대해서는 익숙함에도 컨트롤러를 들고 떨어져서 조종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도 그럴게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류는 1인칭이든 3인칭이든 비행기가 보는 쪽으로 시야가 맞춰져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RC 비행기는 비행기가 어딜 향하는지 보면서 조종해야 했습니다. 이걸 연습하기 위한 시뮬레이터도 따로 있었죠. 비행기는 저 멀리 가는데 제 시야는 땅에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조종해야 합니다. 결국 전 실제 RC 비행기 조종엔 숙달하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FPV는 전혀 다릅니다. 비디오 게임,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류에서 하는 것과 동일한 시점 감각을 가질 수 있죠. 문제는 FPV 드론이 접근성이 매우 낮았다는 거죠. DIY 해야했고, 아날로그 통신을 써서 영상 품질도 떨어졌고요. DJI에서 이걸 모두 해결해 제품화한 것입니다. 물론 완제품 드론 특유의 안전장치들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장애물 회피를 위한 버블이나, 즉시 조작자에게 귀환하는 버튼 같은 것들 말이죠.

 여태껏 드론에 관심이 없었던 건 일반 드론의 조종이 영 어색하다는 것 외에도 드론으로 뭘 해야할지 몰랐다는 것도 있습니다. 전 드론 조종 자체에 재미를 찾지는 못 했습니다. 물론 기계를 움직이는 건 재미있긴 하지만 무수한 법적 제약이 생긴 뒤에는 그걸 극복할 만한 메리트는 없었죠. 그나마 남은 매력은 드론 영상을 촬영하는 정도였습니다. 그정도론 썩 땡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FPV는 저에게 드론의 새 활용을 제공해줄 것 같습니다. 드론의 시점을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건 조종에서의 이점도 있지만, 본다는 그 자체에도 이점이 있습니다. 드론을 띄워서 경치를 구경하고, 다른 시점으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는 거죠. 물론 기존 드론도 녹화기능으로 나중에 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파일을 꺼내지 않고 보는 건 전혀 다른 일이죠.

 이제 이 제품으로는 여행지에 가서 기록을 남기는 게 아니라, 여행지를 체험하는데도 활용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게 여태껏 드론의 어떤 기능보다 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기능이네요. 바닷가나 산에 가서 위험을 피하면서 멀리서, 높이서 볼 수 있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장소들은 비행금지구역에도 대체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마 이 제품을 산다고 해도 FPV 드론의 원동력이었던 드론 레이스나 아크로바틱한 비행 같은 시도는 전혀 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사고 걱정은 아닙니다. DJI니까 안전장치가 잘 되어있겠죠.(물론 100%는 당연히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1인칭 시점이 되었다고 해도 드론과 제가 따로 움직인다는 건 변함 없기에, 아니 오히려 고글을 통해서 시야가 더 몰입되게 되었기에 멀미는 더 심하기만 할 거라는 점입니다. 게임은 괜찮은데 이런 건 멀미가 잘 나더군요.

 그러니 그냥 천천히 비행해서 경치 구경만 하겠지 싶습니다. 가격은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콤보 세트가 1299달러, 모션 컨트롤러에 추가배터리를 포함하면 200만이 넘게 됩니다. 드론 가격도 많이 내려온 상태라 비싼 가격이라 할 수도 있지만 FPV가 아닌 드론에는 아예 관심도 쓸모도 없으니, 200만원이란 비용은 터무니없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초기 결함이나 자금사정 같은 큰 탈이 없다면 올해 안에 구매할 확률 98%인 거 같군요.

니콘, 2021년에 플래그십 Z 시리즈가 나올 것 by eggry


Interview: Nikon - "A flagship Nikon Z series mirrorless camera can be expected within the year"(DPreview)

 DPreview와의 갑작스러운 인터뷰에서 니콘 간부가 플래그십 Z 시리즈가 올해 나올 거라고 발표했습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원래 CP+에 나올 내용인 거 같은데 온라인 전용 이벤트가 되면서 CP+에서 발표하기는 그만두고 대신에 인터뷰로 티징하기로 한 거 같군요. 전체 인터뷰에서 해당 부분입니다.

미러리스판 D6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플래그십 니콘 Z 시리즈 미러리스 카메라는 1년 안에 만날 수 있을 것이며, D6를 능가할 성능을 목표로 개발 중입니다. 프로들의 더욱 높아진 기준을 만족시킬 것입니다. 플래그십 모델은 새로 개발된 고해상도 스택 CMOS 센서와 함께 데뷔할 것입니다. 플래그십은 다양한 장르의 사진가들에게 중대한 기술적 점프임과 동시에, 우리 엔지니어들은 컨텐츠 제작자와 프로들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8K와 같은 강력한 동영상 기술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해당 묘사는 문자 그대로 소니 a1과 아주 비슷한 카메라처럼 들립니다. 니콘은 물론 어느 곳에서도 아직 a9에 견줄 만한 카메라를 내지 못했다는 걸 생각하면 이 점프는 놀라운 일이긴 합니다. 게다가 몇년 뒤도 아니고 1년 안(이라서 꼭 올해는 아니지만)에 나온다니 말이죠.

 새로 개발된 센서라고 하지만 니콘이 독자적으로 한번에 소니의 기술을 따라잡게 되었다고 생각하긴 어렵습니다. 오히려 저는 소니 a1 센서의 높은 개발비용과 그에 비해 제한된 수요 때문에 개발비 분담이나 추가 수요처가 필요했고 거기에 니콘이 가담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부품은 부품이고, 소프트웨어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이 카메라(Z9이든 Z1이든 뭐든)가 a1과 동등한 성능을 내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니콘 AF가 뒤쳐진 건 단순히 부품 성능이 뒤쳐져서는 아니었기 때문이죠.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난관이 상당할 것이고 경험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동영상 측면에서도 8K 내부처리는 니콘에게는 기대하기 쉽지 않은 사양입니다. 사실 현행모델의 4K RAW 출력도 다운그레이드 되어서 말이 나왔기도 합니다. 물론 새 프로세서가 나오기는 하겠지요. 단지 한번에 다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H.265가 안 된다거나 하는 정도일 수도 있겠지만요.

 캐논이 글로벌 셔터를 채택한 R1을 출시할 계획이라는 루머도 있는 상황이라, 올해는 풀프레이 미러리스의 톱3가 여러모로 스텝업 하는 모습이 될 거 같군요. 니콘이 a1 센서를 받게 되는 이유에는 캐논 R1을 억제하기 위해 적의 적은 우리편이라는 생각도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파나소닉이 남게 됩니다만 음... 니콘도 받았으니 파나소닉도 a1 센서를 써보길 기대할 수 있을까요? 니콘은 언제나 소니의 특별 고객이었고 파나소닉은 영원한 숙적이기에 어려워 보이긴 합니다.

페라리, 2023년 LMH 참전 발표 by eggry


 페라리가 F1 시즌 개막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2023년부터 LMH 규정으로 WEC에 참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사실 페라리는 지금도 GTE 규정으로 계속 내구레이스에 참가하고 있습니다만, 메뉴팩처러로써 GTE 클래스는 진정한 프레스티지라고 할 수 없죠.

 모터레이스의 꽃은 언제나 프로토타입이며, 실제로 르망/WEC 상위권은 프로토타입으로 석권되고 있습니다. 규정상 GTE 클래스가 종합 1위를 하는 게 불가능은 아니지만 성능차가 워낙 커서 사실 불가능한 얘기죠.

 사실 페라리는 수십년 전만 해도 르망과 F1을 모두 잡으려고 애쓰던 곳이었습니다. 영화로도 유명한 '포드 v 페라리'를 비롯해서, 50년대부터 페라리는 르망에 프로토타입으로 참가해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로토타입으로 레이스했던 건 1973년으로, 위 사진의 312 PB로 르망 2위를 한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F1에 집중하기 위해 스쿠데리아 페라리 스스로 엔트리하는 것은 그만두고, AF Corsa와 같은 밀접한 파트너십을 가진 팀에 GT 차량을 공동개발해 공급하는 형식으로 이뤄졌습니다. GT 프로그램 자체가 비용이 훨씬 적어서 부담이 없었기도 하고요.

 애스턴마틴, 콜벳 등 나름 이름있는 브랜드지만 프로토타입에 투자하기에는 기술력도 자금도 딸리는 회사들도 워크스팀으로 참가하고 있습니다. 포드GT는 60년대엔 프로토타입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그와 닮은 GT 카로 출전하고 있기도 하죠. 그만큼 르망 프로토타입은 단순히 퍼포먼스 브랜드라거나 그런 것과는 상관 없는, F1처럼 로드카와 별로 연관이 없는 영역의 일이었습니다.

 페라리가 르망 프로토타입에 참가한다는 건 역사를 생각할 때 대단한 의의긴 하지만, 사실 걱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애초에 르망 프로토타입을 왜 그만뒀냐면, F1과 동시에 진행하기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죠. 르망을 석권하던 60년대에는 F1이 지지부진했고, 반대로 F1이 잘 나갈 때는 르망이 부진하고 그런 식이었습니다. 수십년 참가해온 걸 큰 맘 먹고 떠난 이유도 F1에 집중하기 위해서였죠.

 현재 페라리가 F1에서 썩 잘하고 있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프로토타입 내구레이스 참가는 아무래도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도 제대로 못 하면서 둘을 하겠다고? 르망 프로토타입이 그렇다고 그렇게 녹록한 판이냐면 절대 그렇지도 않죠. 게다가 페라리의 내구레이스 역사가 과거의 영광이라면, 페라리가 상대해야 할 적수들은 모두들 그보다 더 최근에 성공을 구가한 이들입니다. 절대 쉬운 싸움일 수가 없지요.

 굳이 페라리가 이 힘든 판에 띄어들 이유를 찾자면, 로드카의 하이브리드화 되겠습니다. 라페라리를 시작으로 이미 하이브리드 하이퍼카를 내놓았고, 최근엔 SF90으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도 내놨습니다. 사실 F1도 하이브리드이긴 하지만, 르망/WEC 쪽이 자유도가 훨씬 높습니다.

 기술개발이든 홍보든 F1보다는 그쪽이 로드카와는 조금이나마 더 연관이 있죠. 하이브리드 구성의 자유도도 말할 것도 없고(일례로 F1 하이브리드는 AWD가 되지 않죠), 엔진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다운사이징 시대라고 해도 페라리가 4기통이 되는 건 상상하기 어렵죠. 배기량이 작더라도 적어도 6기통은 유지할테지요.

 페라리는 아직은 완전 전기화에는 유보적이니 하이브리드 개발과 홍보 관점에서는 납득은 됩니다. 그렇긴 하지만 이 클래스가 워낙 어떤 로드카를 만드나와는 별 연관이 없기도 해서(그랬다면 푸조는 절대 우승할 수 없는 팀이겠죠), 페라리가 토요타, 푸조에게 박살나는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만큼 각오와 자신이 있다는 얘기도 되겠지만요.



 어쨌든 LMH 규정의 전신인 LMP1에 토요타 밖에 남지 않았던데다, LMH도 막상 나오고 보니 LMP1이랑 별반 차이 없는, 로드카와 별 연관 없어보이는 모양새였기 때문에 과연 메뉴펙처러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걱정이었는데, 페라리 참전으로 이제 총 다섯 메뉴펙처러가 참가하게 될 예정입니다. LMH와 LMDh로 나늽니다만 같은 클래스로 레이스할 예정이고 동급 퍼포먼스를 가지도록 밸런스 조절이 될 예정이니...

 올해는 토요타 혼자입니다만 내년엔 푸조, 그 다음엔 포르쉐와 페라리가 연이어 참전합니다. 아우디는 아직 일정을 확정짓지 않았지만 LMDh 규정의 도입시기를 생각하면 23년 아니면 24년이겠죠. 23년 쯤에는 최근 가장 많은 참가였던 토요타 vs 아우디 vs 포르쉐를 능가하는 4~5 메뉴펙처러가 동시에 경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사실 르망 프로토타입이 이정도로 붐빈 건 역사상 처음이지 싶습니다. 게다가 모두 다수의 우승 경험이 있는 이들이니 얼마나 대단할런지 기대됩니다

맥라렌 아투라 발표, 맥라렌 2세대의 시작 by eggry


 맥라렌이 오랜 티징을 해왔던 차세대 모델, 아투라(Artura)를 발표했습니다. Artura는 Art와 Future의 합성어라고 하는군요. 말 그대로 맥라렌의 다음 세대의 미와 기술을 대표하는 차량이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사실 오랫동안 애태운것에 비해 나온 결과물은 겨우 이거야? 라는 게 당연한 감상일 듯 합니다. 외적으로나 성능 수치로써나 그렇게 특별한 구석이 없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은 별로 극적이지 않은, 또다른 맥라렌일 따름이고, 바디킷도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슈퍼카 기준으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성능 수치에서도, 671마력은 신형 슈퍼카로써는 그렇게 대단해 보이는 수치는 아닙니다.

 내세울 만한 신기술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두드러지는 수치를 보여주진 않지만 전기모터가 액시얼 플럭스 디자인이라거나, 저속이나 변속 중 '토크 채우기'를 해준다는 등 제어적으로도 발전된 면이 있습니다. 또 맥라렌 최초로 전자식 디퍼런셜도 갖고 있습니다.

 맥라렌 최초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이긴 합니다만, 하이브리드도 플러그인도 슈퍼카에서 별로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포르쉐918은 이미 2013년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였습니다.

 그때는 맥라렌의 세번째 로드카이자, 1세대(F1은 0세대라고 해야겠죠)의 두번째 모델인 P1이 나온 때였습니다. 그러니 아투라는 포르쉐보다 정확히 1세대 뒤쳐졌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시시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아투라의 대단한 점은 사실 그 '시시하다'는 부분입니다. 표면적으로 아투라는 어디 하나 특출나지 않습니다. 최초인 것도, 남들보다 뛰어난 수치도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차는 22만 5천 달러입니다. 단순 환율로 2억 5천만입니다. 물론 실제 수입가는 3억 5천만 쯤은 되겠죠. 아투라는 엔트리 슈퍼카입니다. 320Km/h의 최고속도를 가지며, 수량한정 없이 단종될 때까지 무한정 생산되는, 그 라인업 말입니다. 아투라의 경쟁상대는 SF90이 아니라 F8입니다.

 그렇게 관점을 바꿔보면 아투라의 중요함이 드러납니다. 포르쉐918은 한정 하이퍼카였습니다. 페라리 SF90은 플래그십 GT 하이퍼카입니다. 그리고 이전의 모든 하이브리드 맥라렌은? 역시나 수량한정에 가격은 10억이 훌쩍 넘는 플래그십이었습니다.

 아투라는 570S를 대체하는 맥라렌의 새 엔트리 모델입니다. 경쟁사에는 아예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인 엔트리 모델이 없습니다. 또한 이게 '겨우' 엔트리 모델이라는 것은 앞으로 맥라렌 2세대 모델이 얼마나 발전할지에 대해 기대감을 줍니다.

 맥라렌 1세대의 첫 모델인 MP4-12C에서 마지막 모델인 GT까지 얼마나 많은 향상과 변화가 있었나 생각하면, 2세대의 시작이자 가장 저렴한 모델로써는 충분한 수준 이상일 것입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페라리와 달리 맥라렌은 명백히 밑에서 위로 쌓아가는 방식을 보여왔습니다.



 눈길을 휘어잡는 드라마틱한 수치는 없지만, 아투라 또한 상당한 기술적 성과입니다. MP4-12C의 엔진과 카본 모노코크를 10년 동안 우려내어 써왔는데, 이번에 드디어 전부 일신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아직까지 썼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지만, 그 와중에도 다른 차라 할 만큼 변주를 보여주긴 했습니다.



 오래디 오래된 V8 트윈터보 엔진은 완전신형 V6 트윈터보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전체 671마력에서 전기모터는 92마력으로,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이정도 출력은 캠리 하이브리드 수준이니, 당연합니다. 플러그인 주행거리도 19마일(30Km)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아투라는 하이퍼카의 성능경쟁을 위해 하이브리드화한 모델이 아닙니다. 아투라는 엔트리 슈퍼카로써, 메이커의 탄소배출량 목표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아투라의 탄소배출량은 129g/km에 불과한데, 이는 130마력자리 닛산 캐시콰이 1.5리터 디젤과 동급이며, 570S의 절반입니다.

 물론 실제 아투라를 모는 사람이 캐시콰이 만큼만 배출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고속 크루징에서는 확연히 많을테지요. 하지만 도심에서는 또 슈퍼카 치고는 놀랍게 적기도 할 것입니다. 명백히 탄소배출 측정 테스트의 한계를 이용한 눈속임이지만, 필요한 대응이었고 실제 기여도 할 것입니다.

 또 전기차로 인해 급격히 인플레이션되고 있는 가속성능에서, 적어도 자존심이 구겨지지는 않도록 하는데도 도움을 주겠죠. 중간속도 이후의 가속은 1000마력급 전기차가 아닌 바에야 여전히 엔진과 변속기를 가진 슈퍼카가 우위를 갖고 있습니다. 전기모터가 조금만 런치를 도와준다면 체면을 지켜주기엔 충분할테죠.

 이런 성과를 내는 가운데 유럽 슈퍼카의 핵심인 경량화를 훼손시키지 않았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 합니다. 대체하게 되는 570S보다 겨우 43Kg 무거울 뿐입니다. 반면 출력은 100마력 가량 더 높습니다. 전기모터 덕분에 가속도도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맥라렌이 MP4-12C 다음으로 같은 엔진과 같은 모노코크를 이용해 내놓았던 차가 P1이라는 걸 생각하면, 아투라에서 어떤 말도 안되는 확장모델이 나오게 될지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현재의 양산 상위 라인업들은 점진적으로 아투라 기술을 확장한 신형들로 대체되겠지요.



 물론 20년대의 화두인 완전 전기차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맥라렌에 따르면 "2025년 이후"라고 합니다. 그때까지는 더 빠른 아투라, 꼬리가 긴 아투라, 의자3개 아투라 등등의 붕어빵 행진을 또 봐야할 거 같습니다.

레드불, 혼다 파워유닛을 2021년 이후에도 쓰기 위해 협력 by eggry


 혼다는 2021년을 마지막으로 F1에서 철수하기로 했습니다만, 문제는 혼다 파워유닛을 쓰는 워크스팀 레드불이었습니다. 새 엔진을 찾아야 하는데 페라리, 메르세데스 모두 우호적이지 않을테고 이미 이 문제는 르노와 결별할 때 한번 겪었던 일이기도 하죠. 온갖 더러운 꼴 보면서 갈라진 르노야 말할 것도 없고요.

 레드불은 맥라렌이 그 고생해서 다져놓은 혼다 파워유닛에 적당히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메르세데스보다 앞선다고까지 생각하진 않았지만 섀시 경쟁력으로 커버 가능하다고 말이죠. 파워유닛 개발도 수확체감의 법칙이 슬슬 작용하고 있으니 이정도면 해볼만 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혼다는 사정이 다르다는 것. 전기화가 빠르게 진행중인 가운데, F1의 하이브리드 기술에 더이상 투자할 R&D적 메리트도, 마케팅 이점도 없다고 생각하고 2021년을 마지막으로 철수를 발표했습니다.

 그 해결책으로 이번에 레드불과 혼다가 2021년 이후 파워유닛 계획에 대해 파트너십을 발표했습니다. 혼다는 여전히 21년을 마지막으로 철수합니다. 하지만 최근 FIA와 팀들은 비용절감 등을 이유로 22년 초부터 파워유닛 개발을 동결시키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게 됐습니다.

 그 말은 21년 말까지 개발될 혼다 파워유닛에 조금만 시간과 예산을 더 보탠다면 22년 레디로 시키고, 이후에는 신뢰성만 해결하면서 이용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이죠. 그래서 혼다는 21년에 개발을 완전히 손 놓지 않고, 22년 초까지 좀 더 연구개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후의 운영과 생산에 대해서는 레드불이 새로 설립하게 되는 '레드불 파워트레인 유한회사'에서 관리하게 될 것입니다. 개발이 동결될 것이므로 혼다가 제공하는 R&D 인력은 최소한으로만 남을 것이고, 레드불은 혼다 및 다른 공급처로부터 들어오는 부품을 직접 조립하거나 그랑프리 사이에 오버홀해서 신뢰성을 확보하는 등의 작업을 스스로 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로 보면 레드불이 자체 엔진을 만드는 건 아니고, '엔진 워크샵'을 운영하는 거라고 해야겠죠. 개발이 동결되면 혼다도 R&D에 신경을 꺼도 되고, 부품을 납품하고 유지보수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정도는 대금만 받는다면 아쉬울 게 없을 것입니다.

 물론 '엔진 워크샵'은 궁극적으로 레드불 독자엔진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긴 합니다만, 엔진 조립과 유지보수와 엔진 개발은 지구와 달 만큼 거리가 먼 일입니다. 아무리 로드카와 F1 기술이 거리가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론 그쪽의 경험과 기술이 확장, 변형되어서 구현된 것입니다.

 자동차 제조사가 아니라 엔진 개발 경험이 없는 레드불이 겨우 4년 정도로 엔진 제작자까지 되기에는 정말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테죠. 적어도 지금 당장이라도 엔진 인력 확보 뉴스가 줄줄이 나와야 맞아 떨어질 겁니다.

 적어도 앤디 코웰(최근 메르세데스를 떴는데, 호너는 일축하는군요.)이나 질 사이먼(슈마허 시대 페라리 엔진을 만들었죠), 마리오 일모어(메르세데스 파워유닛의 모태입니다) 같은 엔진 명인들이 지금 당장 투입되어야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일 것입니다. 물론 레드불이 정말 의지가 있다면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죠. 코스워스나 혼다 같은 곳의 도움을 받는다면 더욱더요.

 현실적으로는 레드불의 단기적인 대책에 그치겠지요. 새 엔진규정은 2025년에 등장할 예정이므로, 일단 레드불은 2024년까지는 솔루션을 확보한 셈입니다. F1에서 4년은 긴 기간입니다. 그 사이 메뉴팩처러 한두개 정도는 철수해도 이상하지 않죠. 메르세데스와 르노 워크스팀이 그때 존재할 가능성은 잘해야 반반입니다.

 이들은 워크스에서 철수해도 혼다보다는 엔진공급자로써는 남을 의향은 더 높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그땐 레드불이 다른 엔진의 워크스팀이 될 수도 있겠죠. 지금으로썬 레드불이 엔진이 없어서 21년까지만 F1을 한다거나, 아니면 엔진을 확보하려고 메르세데스/페라리/르노와 추잡한 언론플레이를 하는 모습은 없을 거라는 정도로 될 거 같습니다.

 실제 기술과 부품이 어디서 왔나와 무관하게, 22년부터는 혼다가 엔진공급자로 엔트리를 넣지 않기 때문에, 엔진 공급자는 레드불로 등록될 것입니다. 과거에도 실제 제작처와는 다른 엔진공급자 명이 쓰인 적이 있었죠. 또 레드불은 이 엔진을 다른 팀에 공급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자동차로 오는 실리콘밸리 by eggry


 현대기아-애플카 소동으로 애플카는 기정사실이나 다름없게 됐습니다. 이전글(현대차와 애플카 소동에 대한 생각)에도 썼지만 현대와 협상 결렬과는 무관하게 애플카는 어쨌든 진행되고 세상에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기존 메이커와의 협력은 어디까지나 여러 가능성 중 하나, 그것도 별로 기대하지 않는 희박한 가능성이었을 뿐이죠.

 테슬라 뒤를 이어 니오, 루시드, 리비안, 샤오펑 등 수많은 EV 스타트업이 벤처케피탈과 주식시장에서 돈을 끌어모으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사 애플도 끼어들 게 확실해졌습니다. 과연 테크기업들은 자동차 업계에서 해낼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은 약간 잘못되었거나, 혹은 편견으로 틀어진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잘 해낼 거라는데는(적어도 상업적으론)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실제로 중요한 질문은 그들이 얼마나 잘 할 것이냐? 그리고 변화하는 세상에 기존 메이커들이 어떻게 적응할 것이냐? 입니다.

 안전의식, 품질관리, 제조 노하우 등의 문제는 테슬라를 통해 많이 드러났습니다. 그 결론이 뭐냐고 하면 "그건 상관 없다"는 것입니다. 네, 그래도 팔렸습니다. 사람들은 오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 했지만 말이죠. 저런 이슈들이 무시할 만한 것이란 얘긴 아닙니다. 분명히 단점이나 문제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거나, 다른 장점이 더 좋다고 생각하면 상관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테크기업의 첨단 이미지와 속도를 좋아합니다. 아무리 다른 걸 문제 삼은들 상업적 성공을 저지할 수는 없을 겁니다. 테슬라에게 문제가 안 되었다면, 애플에게도 당연히 문제가 안 될 겁니다.

 정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것 역시 잠시 전진을 지연시킬 뿐입니다. 테크기업이 가장 잘 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게 문제라고 인식하고, 우선순위가 충분하다면 말이죠. 현재까지 테크기업이 이것이 '넥스트빅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중 그들의 손아귀를 피해갈 수 있었던 건 없습니다. 노키아는 지금 어디 있나요?

 그들이 자동차 업계에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는 걸 막기는 불가능한 희망 같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거기에 어떻게 적응할 것이냐는 거죠. 좋은 소식은, 애플이 노키아를 망하게 만드는 흐름을 만들어냈지만 모두가 그 흐름에 쓸려가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변화에 적응하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출세까지도 말이죠. 아이폰이 나오기 전 삼성은 노키아의 벽을 넘지 못 했습니다. 기술적으로 뒤쳐지거나 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미 공고해진 브랜드 충성도와 글로벌 파트너십을 극복하기에는 차별화를 해낼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폰이 나오고, 휴대폰 산업이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동안 노키아는 넘어졌고, 삼성은 재빠르게 앞서나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중국 기업들도 크게 약진할 수 있는 기회였지요. 같은 일이 자동차 업계에서도 일어날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자동차는 휴대폰보다도 더 기호를 많이 타며, 생태계 네트워크 효과가 약한 상품입니다. 다품종과 다양한 브랜드 공존의 여지가 더 큰 상품이죠. 애플이 경차나 미니밴을 만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톱3 기업이라도 이 시류에서 뒤쳐지면 노키아처럼 될 것이고, 어정쩡한 중위권인 기업들은 이 기회에 왕좌를 노릴 수 있게 되는 거죠. 또한 신흥 주자들은 글로벌 무대로 진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에 이건 휴대폰과 마찬가지로 중국 회사들이 되겠죠. 내연기관차들은 중국 밖으로 거의 진출하지 못 했지만, 전기차 패러다임에서는 기회를 노리고 칼을 갈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과 시나리오로 본다면, 사실 현대차는 세계적 자동차 기업들 중 어느 누구보다도 대비가 잘 된 편입니다. IT 화도 빠르고, 수직계열화는 물론 계열사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강력한 전통적/첨단 제조업 배경도 협력이나 공급망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됩니다. 게다가 자동차에 그치지 않고 로보틱스(보스턴다이나믹스)나 에어택시 같은 분야까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휴대폰 시장의 전례를 밟는다고 한다면, 현대차의 목적은 토요타, 폭스바겐, GM이 자동차계의 노키아가 되어 넘어진 동안에 삼성처럼 치고 나간다는 것일 겁니다. 그 과정에서 애플이나 테슬라가 시장의 중요한 플레이어로 정착하는 건 현대차에겐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잃을 게 많은 토요타나 폭스바겐 같은 회사에겐 악몽 같은 시나리오죠.

 물론 토요타, 폭스바겐, GM이라고 이런 미래를 모르고 있는 건 아닙니다. 사실 노키아도 미래는 알았습니다. 하지만 기득권을 가진 큰 회사는 종종 미래를 알고서도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제대로 대응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차는 그 경우에는 확실히 속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룡들이 현대차의 생각보다 잘 적응한다면, 서열 뒤집기는 잘 안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차피 올 기술혁신이라면, 조금 더 야심을 가져도 나쁠 것 없습니다. 현대보다 빅3에게 유리한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테크기업과의 협력 가능성입니다. 애플과는 누구도 잘 안 되겠지만, 구글 같은 회사랑 협력하기는 현대보다는 더 유리하죠.

 2020년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메이커는 망하거나, 아니면 선진국 시장에서 밀려나 후진국용 저가 내연기관 차량이나 팔아야 하는 신세가 될 겁니다. 그마저도 기후변화 정책의 변화에 따라 쉽지 않을 수도 있죠. 망하지 않아도 쪼그라들어 보잘것 없는 존재가 될 건 확실합니다. 적절한 파트너도 못 잡고, 본진도 굼뜨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겁니다. 실리콘밸리의 상어와 거기에 편승한 이들이 파이를 먹어 치울테니까요.

현대차와 애플카 소동에 대한 생각 by eggry


 약 한달 정도 IT, 자동차, 증권업계를 달궜던 현대자동차와 애플의 파트너십 소동은 대충 일단락 된 듯 합니다. 공시로 진행 중인 것 없다고 하는 것은 그냥 끝났다는 얘기의 다른 표현이나 다름 없죠. 물론 시작했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만, 하고 있었다고 시인한 것이나 마찬가지기도 합니다. 아예 없었다면 그냥 사실무근이라고 했었겠지요.


파트너 vs 하청?

 당초 현대-애플 루머가 나올 때 제가 생각했던 건, 현대가 폭스콘 같은 OEM 하려고 협상할 리는 없을 것이고 그럼 전자장비 플랫폼 쪽 협력이 아닐까- 였습니다. 이미 인포테인먼트와 차량제어를 맡을 수 있는 안드로이드 오토가 존재하고, 폴스타를 시작으로 GM, 포드가 도입을 확정지은 상황입니다.

 애플도 카플레이의 확장선상으로 그렇게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현대가 그걸 노리는 건 상당히 괜찮은 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경우엔 혹여 현대가 선정된다 해도 기간 독점적인 파트너일 뿐, 장차 다른 자동차 회사들로도 더 확대되었겠지요. 아이폰이 2등 통신사인 AT&T나 KT와 독점계약을 맺어 진출한 뒤 결국 모든 통신사로 확대된 것처럼요.

 하지만 이후 이어지는 뉴스들은 애플이 그것보다 많은 걸 원하고 있다는 게 조금씩 드러났습니다. 처음엔 기아의 조지아 공장을 이용하고 싶다 그래서, 그래 미국 생산으로 미국정부랑 국민한테 가산점도 얻고 세금 혜택도 받고 그러고 싶겠지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점점 그저 공장과 제조노하우만 이용하고 싶다는 쪽으로 나오더니, 결국 공시가 나오고 한달의 소란은 끝났습니다.

 일단 후기에 나온 루머들을 보면, 애플이 단순히 전자장비 플랫폼이 아니라 아예 애플 브랜드의 자동차를 생산해줄 업체를 찾고 있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 접근법이라면 현대차가 이걸 물어야 할 메리트는 별로 없고, 물지도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자체 브랜드가 있고 경영건전성에 문제가 없는 글로벌 기업이 폭스콘과 같은 길을 걸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죠. 10위권 기업들 대부분이 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접근법이었다면 애플은 당연히 싸가지 없게 굴었을 겁니다

 솔직히 애플도 별로 기대는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저 조바심에 미끼를 물 호구가 혹시 있을까 하는 생각에 탐색해본 것 뿐일테지요. 실제로 일주일 쯤 전에는 일본 기업을 포함해 6개 정도 회사와 대화 중이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간보기 자체가 싫었다면 그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게 엄연히 정상적인 협상의 틀 내라는 것도 잊진 말아야 합니다.


찝찝한 결말

 양자의 입장차가 현저하고, 심지어 양쪽 모두 별로 절박함이나 의지도 없었다고 한다면 결렬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허나 뉴스가 나온 모양새와 현대차의 몇가지 행동들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최초 유출이 현대차 관계자인 건 너무나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후 현대가 아니라 기아와 한다거나, 조지아 공장 등등 얘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적인 기업들 간의 협상 중 일어난 일이라고 보기엔 다분히 의도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네, 물론 이런 유출을 통해서 협상에 우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건 매우 보편적인 외교술입니다. 하지만 이런 신의를 져버리는 외교술에는 당연히 리스크가 동반됩니다.

 그리고 상대는 애플이죠. 협상이나 계약 유출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회사 말입니다. 애플이 싸가지가 없었을 수는 있지만, 애플의 행동방식과 원칙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기업을 상대하면서 의도적으로 유출시켰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두가지 뿐입니다. 현대차가 그냥 협상상대의 기본도 모르는 멍청이거나, 아니면 어차피 안 될 협상으로 소문 퍼뜨려서 주가나 띄워보자는 생각을 한 개자식이거나죠.

 이제와서 보면 아무래도 둘 중에서는 후자인 듯 싶습니다. 지난주 후반 현대차 임원들이 주식을 대거 매도한 게 공개된 걸 보면 사실 그냥 협상전술이 실수한 거라고 하더라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지요. 어차피 현실성 없는 협상이었다 하더라도, 그건 거기서 그쳤어야 했습니다. "우린 어차피 너희랑 안 될 거고, 그냥 소문 퍼뜨려서 돈이나 벌어 먹어야겠다"는 심각한 모럴해저드입니다. 게다가 그 와중에 제일 피해를 본 건 누구인가요? 애플도 아니고 소문에 현대차 주식 산 사람이겠죠.

 이제 현대차는 서류상으로는 예상된 결말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비난과 의심의 눈초리에 시달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과연 이런 짓을 하는 기업을 상대로-심지어 상대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비밀주의적인 회사입니다- 누가 제대로된 협상이나 파트너십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혹자는 갑질과 행패만 해온 습성이 그냥 그대로 드러났을 뿐이라고도 하더군요. 그렇게 틀린 얘긴 아닐 것입니다.

 현대차의 수준 이하의 행동과는 별개로, 현대차의 미래에 대해선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리 하나가 아니라 여럿을 태웠음직한 행동이긴 하지만, 현대차는 다른 초국적기업과 협력이 그다지 필요 없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차세대 자동차 기술에 다양하게 투자하고 있고, 수직계열화가 잘 되어 있으며, 자동차 외의 운송수단(로보틱스, 에어택시 등)에도 투자하는 등 현대차의 야심과 적극성에는 의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저 행동은 매우 프로답지 못 한 모습이라 정나미는 좀 떨어졌습니다.


애플카의 향방

 협상 타결 가능성에 얼마나 별 기대가 없었든 간에, 애플이 이제 사외로 팔을 뻗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이정도까지 가시화된 상황에 '프로젝트 타이탄' 때처럼 그냥 문 닫을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현대차와의 협상은 많은 가능성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봐야겠죠. 다른 모든 계획이 안 될 경우 언제나 마지막 계획은 남아 있습니다. 직접 하는 것 말이죠.

 아직은 모든 가능성이 다 닫혔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현대차와는 확실히 끝난 것 같습니다. 단순히 협상 결렬이 아니라 애플의 원한을 샀다고 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죠. 다른 유수 브랜드들 역시 현실성은 낮다고 보입니다. 어느 곳도 단순히 자동차의 폭스콘이 되려는 곳은 없을 겁니다. 그러는 것보다는 더 힘들다고 하더라도 스스로의 삶을 살겠다고 하겠죠.

 가장 현실성 높은 건 OEM 기업과 일하는 것입니다. 가장 유명한 회사로는 역시 마그나 슈타이어가 있습니다. 재밌게도 마그나 역시 EV 혁신에 맞춰서 최근 LG와 전기차 플랫폼 개발 협력을 맺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애플 기기에 디스플레이나 배터리 납품을 하는 것처럼, LG가 자동차에서도 공급자 관계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그나와 LG의 파트너십은 패러다임 쉬프트에 맞춰서 어차피 기존 파트너들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기에, 꼭 애플과 연결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원래 OEM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회사인 건 사실입니다. 현실적으로 가장 적당한 파트너이지만, 다른 회사들과 관행화된 계약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게 애플 입맛을 맞추지 못할 수는 있겠지요.

 또다른 가능성은 이와 비슷하지만 브랜드 자동차 메이커와 우회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토요타와 GM의 공동출자 공장이었던 NUMMI입니다. 물론 원조 NUMMI와는 목적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사업의 모델 측면에서 이런 조인트벤처 모델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이 방법에서는 또다시 토요타가 가장 가능성 높은 파트너입니다. 토요타는 테슬라에 지분 투자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진지한 메이저 사업으로 서포트 받기는 어렵지만 실험이나 대안의 정도로는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혼다나 닛산에는 별로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지나치게 스스로 한다는 자부심에 차있거나(혼다), 기존 파트너와도 불협화음 중인(닛산-르노) 회사에게는 기대하기 어렵죠.

 전통 자동차 기업은 운휴시설과 인력을 돌릴 수 있고, 또 미국공장이므로 세제혜택 같은 것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필요한 선에서라면 애플이 설비에 돈도 잘 써주겠지요. 애플 같은 테크기업에겐 가장 성가시고 수고가 드는 생산라인에서의 노하우나 트러블슈팅(테슬라가 아직도 고생 중인!)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R&D에서의 협력은 사실상 없을 것입니다. 일부 기성부품이 공동 이용되는 정도에 그치는 수준일테지요.

 또한 애플의 오랜 OEM 파트너인 폭스콘 역시 자동차 제조에 참여하고 싶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모든 가능성이 다 무산된다면 결국 마지막은 애플이 폭스콘에 현금을 때려 박아서 하는 것일테지요. OEM이긴 하되 이것이 실질적인 "직접 하는 것"일 것입니다. 애플은 절대 제조인력을 직고용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애플카는 어떤 물건이 될까

 애플카가 구체적으로 어떤 상품으로 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현재 기술의 한계, 기업 성격을 생각할 때 로보택시 같은 접근법은 아닐 걸로 생각합니다. 애플은 언제나 개인화를 중요시했으니까요. 소유욕은 애플 제품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주행보조기능은 중요한 포인트겠지만, 완전자율주행은 기대하지 않습니다.(첨언하자면 전 테슬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애플카는 사실 테슬라와 꽤 비슷한 제품이 될 듯 합니다. 첨단 IT 기술을 이용한 주행보조기능을 강조한 프리미엄 전기차 말이죠. 일단 테슬라보다는 애플 쪽이 더 프리미엄 지향이긴 할 겁니다. 단순히 소재나 마감 측면에서만으로도요. UX 면에서는 테슬라 만큼 급진적인 면을 보여줄까 싶긴 합니다. 컴퓨팅 디바이스에선 그랬지만 자동차에선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렇게 보면 그냥 사과마크 붙은 테슬라 같은 포지션이 되는데, 기술적으로는 반도체 기술과 라이다 기술의 우위를 활용해 테슬라 아웃퍼폼 하기를 노릴 듯 합니다. 비전 인식 기반의 한계와 애플의 축적된 데이터 부족을 저가화+고도화된 라이다로 빠르게 따라잡고 넘는다는 식으로 말이죠. 역시나 테슬라처럼 OTA와 머신러닝으로 강화하는 노선을 택할테지요.

 걱정하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할지 제일 궁금한 부분은 사실 물류와 유통입니다. 그동안 소형기기만 유통해온 애플로써는 어마어마한 물류 도전이 될 듯 합니다. 사실 제조보다 이게 더 큰 부분일 듯 한데요. 뻔히 예상 가능하듯 딜러 없이 온라인 직판이겠죠. 쇼핑몰에 들어간 경우가 많은 미국이면 몰라도 다른 나라 애플스토어엔 전시되기도 어려워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쇼룸이 없어도 팔릴 수 있다는 것도 테슬라가 보여줬죠?

 물론 많은 사람이 가지는 가장 큰 의문은 "대체 애플이 자동차를 만들어서 무슨 이득이 있지?" 라는 것일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라면 저는 자동차가 집과 직장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이유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사람이 납득하진 않겠죠. 하지만 일단 나온다면 저는 충분한 설득력과 문제 없는 세일즈를 보일 거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알지 못한다" 라는 잡스의 말처럼 말이죠.

 거의 확실한 점 하나는 처음에는 미국, 잘해야 캐나다까지만 런칭할 거란 것이겠죠. 한국 애플 팬보이들에겐 역대 최고 난이도의 직구 시도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아직 애플카 구매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일단 나와봐야죠. 하지만 테슬라와 비슷하다면 테슬라보다는 애플을 살 거 같다곤 생각합니다. 애플카 나올 때까지 한참 남았으니 그 전에 가솔린 AMG나 타보고 테슬라든 애플이든 현대 전기차든 생각해보면 딱 적당한 때이지 않을까요.

고스트 오브 쓰시마 by eggry


 PS5로 한 실질적 첫 게임은 '고스트 오브 쓰시마'(이하 고오쓰) 였습니다. 사실 엄밀히는 '아스트로 플레이룸'을 하기는 했지만 그걸 제대로된 게임이라고 하긴 애매한 면이 있으니... 정작 PS4 게임이고 하위호환에 부스트 패치 붙은 수준입니다만, 이 부스트 패치가 중요했기 때문에 작년 말에 구입하고 PS5로 하려고 미루고 있었습니다.

 PS5 패치 내용은 60프레임 언락으로, 기술적으로는 아주 단순하게 구현되어 있습니다. '고오쓰'는 PS4 프로에서 퀄리티 모드와 퍼포먼스 모드 옵션이 있습니다만, 둘 다 30프레임입니다. 퀄리티 모드는 해상도가 1800p 체커보딩인 대신에 프레임드랍이 있고, 퍼포먼스 모드는 1080p에 고정 프레임이었죠.

 PS5에선 퀄리티모드로 60프레임 고정이 되기 때문에 사실 퍼포먼스 모드는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옵션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이 이게 엑스박스 쪽의 세대를 심리스하게 넘어갈 수 있는 패치라기보다는 그냥 프레임 락을 풀고 약간 튜닝 해준 정도라는 인상을 줍니다. 어쨌든 PS5에서 퍼포먼스로 해봐야 1080p60이 될 뿐입니다! PS5에선 퀄리티 모드를 안 쓸 이유가 없죠.

 개인적으론 해상도도 더 오를 여지가 충분했다 싶은데, 타겟 해상도를 수정하는 것까지도 무리였던 모양입니다. 실제로 소니 퍼스트파티의 PS5 패치를 보면 대부분 퀄리티/퍼포먼스 모드가 있던 게 퀄리티 모드에서 60프레임 되게 해주는 정도에 그칩니다. 엑박 퍼스트파티 쪽은 시리즈X/S로 가면 새로운 해상도를 제공해주는 게 대부분인 것과는 차이가 있죠.

 더 높은 해상도가 아닌 게 아쉬운 건 해보면 금방 티가 납니다. '고오쓰'의 비주얼을 보면 바람에 나부끼는 수풀이 매우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런 물체는 체커보드 렌더링으로 깔끔하게 커버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덕분에 수풀류가 좀 지저분해지는 감이 있습니다. 반대로 역시 수풀이 그럭저럭 많은 편인 '어쌔신크리드 발할라'를 보면, 차세대에 맞게 해상도가 올라간 덕에 상당히 깔끔하죠.

 어째 바로 직전에 한 게 '발할라' 라서 비주얼 면에선 많이 비교가 됩니다. 일단 아트디렉션 자체가 다른 건 분명합니다만, 그래도 '고오쓰'는 퍼스트파티의 대표작 치고는 에셋 퀄리티가 좀 딸립니다. 텍스쳐라든가 모델링이라든가... '라오어2' 같은 거랑 비교하긴 좀 민망하죠. '발할라'와 비교해도 좀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대신에 이펙트는 호화스럽게 쓰고 있습니다. 파티클을 엄청 쓰고 있고, 바람에 날리는 수풀류 같은 것들도 괜찮습니다.

 에셋과 더불어 실망스러운 건 라이팅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여기서도 '발할라' 얘기가 나오게 되는데, 둘 다 오픈월드에 시간 변화가 있다는 점 때문에 그렇습니다. '발할라'에 비하면 빛의 변화에 의한 변화무쌍함이 상당히 단조롭게 느껴집니다. '고오쓰'는 그 시간대에 한가지 색이 지배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반면, '발할라'는 같은 시간대에도 그늘이냐, 햇빛 밭는 곳이냐, 숲이냐, 눈밭이냐에 따라 꽤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발할라'의 설원 라이팅은 상당히 인상적인데, '고오쓰'의 설원은 좀 썰렁합니다.

 물론 써커펀치가 유비소프트는 물론 너티독과 비교해도 규모도 작고 기술력도 예산도 딸리기 때문에 이해될 수 있는 차이입니다. 비교대상이 너무 높은 레벨이기는 하죠; 그래도 소니 퍼스트파티라서 조금 기대하긴 했습니다만, 제작사의 비주얼 스타일 자체가 디테일보다는 이펙트나 카툰스러운 비주얼을 지향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일부 화려한 채도가 빛을 발하는 연출에서는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제대로 일뽕에 취한 양인들이 만든 티가 납니다.

 기술적인 면 얘기하니 오픈월드 구현 쪽도 오늘날의 대작 오픈월드 게임에 비해서 엉성한 면이 보입니다. 오픈월드는 정말 그냥 큰 맵일 뿐이라서, 상호작용 하거나 딱히 스스로 돌아가는 세상 같은 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승마가 상당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마침 바로 전에 한 게 '발할라'다보니 더 비교됐습니다.

 일단 맵 스케일이랑 이동이 좀 이상합니다. 쓰시마 배경이라지만 끝에서 끝까지 게임의 거리계로 5km 정도 밖에 안 되는 거 같은데 또 너무 빨리 이동되면 안 되니까 말 이동속도를 느리게 만든 거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 말의 애니메이션은 거의 로데오 급으로 격렬하기 때문에 "열심히 달리는데 왜이리 느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오픈월드의 미흡함은 사실 한세대 전의 것이긴 하지만, 게임플레이에 지장을 주는 건 아니긴 해서 크게 개의친 않습니다.

 부차적으로, 쓰시마라는 배경이 딱히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저 몽골의 침략에다가 일본 본토와 달리 부담 없이 레벨디자인을 할 수 있어서 선택된 것이겠죠. 실제 쓰시마와는 전혀 다른, 과장되고 만화틱한 배경 구성에다가 지형이나 유적 같은 게 고증이 잘 된 것도 아니라서, '어쌔신크리드' 시리즈에서 느꼈던 "베네치아 가봐야지" "이스탄불 가봐야지" 같은 생각은 안 듭니다. 이스탄불 가니까 정말 게임에서 본 것 같은 모습이었더란 말이죠.

 오픈월드가 엉성한 대신에 전투 액션은 잘 갖춰져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AAA 오픈월드에서 의외로 부실한 부분인데(총이 중심인 게임이 아니라면), 넓은 맵과 레벨디자인/전투 메카닉을 심리스하게 조합하는 건 아직까지 충분한 경지엔 이르지 못 했다고 봅니다.

 '고오쓰'는 오픈월드 구현이 좀 어설픈 대신에, 일단 마을이나 성 같은 상호작용 지역으로 들어가면 (역시나) 한세대 전의 논오픈월드 게임 같은 짜임새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실제 플레이와 몰입이 집중되는 부분에서의 만족도는 '발할라' 같은 게임보다 낫습니다.

 전투 메카닉도 사실적인 건 아니지만 패링/회피/방어깨기/스킬류 등이 적당히 조합되어서 그럴싸한 느낌을 줍니다. 피니시 할 때 푸욱 써는 손맛도 괜찮은 편. 적은 초반 좀 지나면 계속 그놈이 그놈이라 좀 반복적이긴 한데, 인간 군대니까 별 수 없다 싶긴 합니다.

 다만 여기서도 제작사의 엉성함이 보여지는데, 건물이 밀집된 곳에서 적에게 포위되면 시야가 너무 확대된 형태라 주변 파악이 잘 안 되서 안 익숙한 초반에는 그야말로 돌림빵 당해서 끔살 당해버립니다. 뭐 익숙해지면 그런 상황을 피하게 되긴 합니다.

 오픈월드 등의 기술력은 그냥 넘어갈 부분, 게임플레이는 만족스러움이라면, 실망스러운 건 스토리 쪽이 되겠습니다. 메인스토리는 사무라이의 무사도 정신을 충격에 빠뜨리는 가차없는 몽골군을 상대로, 역시 절제를 버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카이 진과 지방 영주인 숙부의 갈등입니다만, 이 테마가 그렇게 집중이 안 되고 약간 산만합니다. 초반의 회상, 피날레 정도는 인상깊긴 한데 게임 대부분의 시간에는 존재감이 떨어집니다.

 적수인 코툰 칸은 사실 스토리에서 별로 중요한 역할은 아닙니다. 그냥 물리쳐야 할 적에다가 무자비한 적 정도로만 단순하게 묘사됩니다. 몽골군과 침략에 대한 얄팍한 증오심과 두려움으로 볼 때, 이 게임에 고려인들이 안 나온 게 정말 다행입니다. 고려인들 나왔으면 이런 류의 묘사로는 아마 근근웹에서는 혐한게임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몽골인들은 별로 안 좋아할 건 확실해 보이네요.

 오히려 실제로 흥미로웠던 스토리는 사이드 퀘스트들이었습니다. 주요 파트너들의 중요성과 스토리의 완성도를 생각할 때 아예 메인 스토리의 일부로 강제 포함시켰어야 할 거 같은데, 옵션인 게 의아합니다. 유나, 마사코, 이시카와, 류조의 이야기는 무사도에 대한 메인 테마보다 훨씬 흥미롭고, 시야도 다채롭습니다. 마사코의 복수귀 같은 처절함, 이시카와의 전적으로 존경하기는 어려운 인품, 류조의 열등감 같은 것들 말이죠.

 플레이타임은 메인 스토리와 퀘스트만 한다고 하면 25시간 정도로 적당했다 싶습니다. 사실 이것도 전 길다고 생각해서 20시간 정도면 좋을 거 같은데, '발할라'를 120시간 하고 나니까 이정도로도 그저 감사하네요. 코옵 DLC 모드가 있습니다만, 친구가 없어서 하지는 않았습니다.

후지필름, 1억 화소 보급형 중형 카메라 GFX 100S 발표 by eggry


 각각 SLR 스타일, RF 스타일을 의미하던 GFX 50S, 50R에서 이니셜이 빠진 GFX 100의 등장은 다소 혼란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세로그립 일체가 된 확연한 플래그십이기 때문에 S형도 R형도 없다는 의미인가? 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1억 화소 센서의 보급형 모델이 등장했고, 이는 GFX 50S의 후속모델로 100S라는 이름을 갖고 나오게 됐습니다.(이하 GFX 생략)

 100S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1억 화소 645D 센서입니다. 645D 중형 카메라에서 거의 유비쿼터스하게 쓰이고 있는 소니제 5000만 화소 센서는 사실 연식이 좀 오래되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135 판형의 5000~6000만 화소 카메라보다 나은 계조를 보여주긴 하지만, SNR이라든가 격차가 많이 좁혀졌고 특히 135의 더 밝은 렌즈의 이점을 생각하면 격차는 더 좁혀졌습니다. 니콘처럼 기본감도 ISO 64를 가진 모델은 거의 동격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죠.

 5000만 센서는 펜탁스 645Z에서 처음 쓰인 이래 핫셀블라드의 X1D, 그리고 디지털 시대에 필름 사이즈를 그대로 갖지 못한 V 시스템 카메라들에다 후지필름까지 소위 "1000만 이하의 접근성 좋은 중형 카메라"의 표준 센서였습니다. 물론 여전히 크롭 중형이라고 콕 짚어서 지적당하긴 하지만요. 디지털 중형의 가격혁신을 주도한 만큼 135 판형과 비교는 당연히 계속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화소수도 따라잡히고, 남은 이점들도 메리트가 줄어든데다 중형 특유의 퍼포먼스, 편의성 부족을 생각하면 센서의 재정비가 필요했습니다. 문제는 중형 카메라 메이커들 자체가 그렇게 수요가 많지 않아서 당연하다는 듯 신센서 개발이 더뎠다는 거지요. 결국 신형 1억 화소는 후지필름의 GFX 100이 나오고서야 등장했으며, 아직 펜탁스나 핫셀블라드에선 채택 모델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GFX 100도 1만 달러라는 가격표와 세로그립 일체형의 우람한 모습은 5000만급 모델들이 보여준 접근성과는 좀 다른 것이었죠. 그걸 해소하기 위해 2년의 세월을 거쳐 100S가 나왔습니다. 고화소 센서와 그걸 감당할 처리성능, 그리고 바디 손떨림 보정을 고려하면 소형화가 쉽지 않아 보였지만, 결과물은 인상적입니다.



 초대이자 기본형이라 할 수 있는 50S보다 더 작은 크기를 구현하는데 성공했을 뿐더러, 사양 다운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소형화로 가장 피해를 보리라 생각했던 손떨림 보정은 오히려 최대치가 0.5스탑 증가한 6스탑이 되었으며, 대부분의 렌즈에서 실사용 시 1스탑 정도 더 나은 효과를 보여줄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Sync IS를 도입하여 렌즈와 바디의 손떨림 보정이 함께 사용되어 강화된다고 합니다. 100의 손떨림 보정도 중형으로써 혁신이었는데 거기에 더해졌습니다.

 물론 물리법칙이 있는 이상 소형화를 위한 희생은 있겠죠. 일단 배터리가 800매 촬영에서 460매 촬영으로 줄었습니다. 중형 치곤 좋다고는 하나 퍼포먼스가 한계가 있는데다 1억 화소의 용량을 생각하면 460매도 부족한 양은 아닐 겁니다. 아직 460매 사양을 갖지 못한 135 카메라도 있으니까요.

 또다른 트레이드오프는 뷰파인더입니다. 우람한 몸집을 차지하던 뷰파인더는 100의 576만 화소 대신에 50S와 같은 376만 화소로 낮은 부품이 사용되었고, 또 크기도 50S의 0.85배보다 작은 0.77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익숙한 135 미러리스 기준으로는 여전히 충분히 크고 부족하지 않은 화소수입니다. 소형화에는 탈착기능과 틸트 기능을 없애고 일체형으로 만든 것도 일조했습니다.

 다른 소형화는 전반적인 기술 발전에 따른 소형화와 패키징 개선으로 나타났습니다. 50S의 실루엣을 보면 뷰파인더 못지 않게 액정 부분도 불툭 튀어나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SLR 타입 카메라에서 볼 법한 플렌지백 확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형상 같지만, 사실 G 마운트의 플렌지백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이건 순전히 당시 후지가 전자부품 소형화를 제대로 못 해서였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보통 카메라에 가까운 실루엣으로 줄어들어 부피가 많이 감소했습니다. 그 결과는 캐논 5D와 비슷한 크기의 중형 1억 화소 카메라입니다.

 그 외의 핵심사양은 동등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셔터속도, 연사속도, 동영상 사양 같은 것들 말이죠. 크기를 생각하면 동영상 연속촬영은 아마 발열 해소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100을 동영상 카메라로 고려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과열 테스트는 그다지 보지 못 했네요. 100S는 영상용으로 써볼 만한 크기, 무게이고, 폼팩터도 좀 더 불리하니 발열 얘기가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틸용으로썬 손색이 없습니다. 게다가 말했듯 손떨방은 오히려 개선됐고요.

 물론 제일 중요한 건 가격이겠죠. 6000달러로 책정되었으며, 3월에 출시됩니다. 동시기에 마침 소니 a1이 출시되는데 성능이 어마어마하지만 500달러 더 비쌉니다. 이제 정말 645D와 135가 가격이 크로스 되는 제품이 나온 셈이죠. 소비자들은 a1의 환상적인 퍼포먼스와 전천후성을 택할지, 아니면 100S의 엔트리 135에 버금가는 퍼포먼스에 더 큰 판형과 좋은 화질을 노릴지 고민할 만 합니다. 645D나 50S도 처음 나올 때 "프레스 DSLR 살 돈으로 중형 사기"가 포인트였지요.

 여튼 현재 사용 가능한 부품과 기술의 범주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밸런스로 나왔다 생각됩니다. 안그래도 135 미러리스 신제품들 가격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데 가격은 오히려 50S보다 500달러 내려서 135와 오버랩은 더 심해졌습니다. 소니 a1이야 퍼포먼스 격차가 너무 어마어마하다고 해도, 단순히 고화소, 고화질에 스냅을 놓치지 않을 적당한 수준의 퍼포먼스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쾌적하고 접근성 있는 중형에 솔깃할 듯 합니다.

소니,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 a1 발표 by eggry


 소니에서 새로운 알파 시리즈 카메라, a1을 발표했습니다. 풀프레임 미러리스 전 라인업의 역할을 통합시킬 역할인 듯 하군요. 기존에 숫자 올라가던 룰을 깨고 a1이란 이름을 한 건 All-in-One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

 일단 표면적인 사양은 고화소의 a9 처럼 보입니다. 5000만 화소에 30fps 연사가 가능하다고 하니, 제가 a9R을 상정하고 기대했던 사양(3600만 15fps)보다 훨씬 강력한 것입니다. 기존 사양은 비욘즈X 프로세서 정도로 생각했던 사양인데, a7S III에서 비욘즈XR이 나와서 화소수와 연사속도 향상이 가능했던 듯 합니다.

 새 센서는 5000만 화소인데, a7R III/IV 이후로 간만에 세대교체 된 기술이 적용된 듯 합니다. 고화소임에도 고감도 성능을 높게 만들었다고 하며, 다이나믹레인지도 15EV로, a7R 라인업의 평균치인 14.5EV보다도 높습니다. 고속기종의 단점 중 하나가 DR이나 SNR이 떨어지는 부분인데 그걸 해소했다면 고화소 유저인 저에겐 관심이 갈 부분입니다.

 글로벌셔터가 아니라 적층 DRAM 기반인 건 그대로라서, 젤로가 전혀 없는 구조는 아닙니다. 거기다 고화소인 걸 생각하면 더 불리한 조건인데 그동안 기술 발전을 때려박은 건지(사실 a9 II가 너무 옆그레이드였던 거지만;;) a9 II보다 1.5배 낫다고 하는군요. 뭐 나아졌다고 해도 a9 II도 거의 없어서 눈치채기는 어려울 거 같긴 합니다.

 그래도 셔터 매커니즘 면에서 발전은 있는데, 전자셔터에서 드디어! 플래시를 쓸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고속동조 조건에서 한정이겠지요. 또 기계셔터에 이어 전자셔터에서도 플리커 프리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안티 플리커는 셔터렉을 유발하니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지요.

 동영상 사양은 a7S III에서 짐작되었던 것의 확장판입니다. 4K120을 지원하며, 화소수 증가에 따라 8K30도 언락되었습니다. a7S III에서도 프로세싱 파워는 가능했지만 화소수가 부족해서 불가능했던 부분이죠. 8K30 동영상의 자세한 사양은 좀 더 기다려봐야 할 거 같긴 합니다.

 4K의 경우에 풀프레임 모드는 픽셀비닝으로 작동하는 듯 하고, 슈퍼35 모드에서는 5.8K 슈퍼샘플링으로 되는 듯 합니다. 4K30은 풀프레임 풀픽셀리드가 가능할 법도 한데(8K30이 되니) 자세한 프레임 별 동영상 사양은 확인해야 할 거 같습니다. 뭐 적어도 슈퍼35 4K60 슈퍼샘플링은 큰 문제 없을 거 같습니다.

 또한 a7S 시리즈가 아닌 기종으로는 처음으로 10비트 4:2:2 출력과 HEVC 녹화를 지원합니다. 이후 나올 하위기종(아마도 a7 IV)에서도 10비트는 지원될 가능성이 조금은 높아졌네요. 적어도 상위기종이 지원 안 하니 당연히 안 될 여지는 없어졌습니다.

 또 a9 계열(이라고 하긴 뭣하지만)에서 처음으로 S-Log가 들어갔네요. 사실 이 가격이면 당연히 들어가야 한다 싶긴 합니다. S-Cinetone도 들어갔다는군요. S-Cinetone은 왠지 이후 기종에 보편화될 거 같습니다. HDMI를 통한 RAW 비디오도 지원합니다.

 다만 당연하다는 듯 제약도 있습니다. 일단 8K30과 4K60 녹화시간은 최대 30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버히트 하지 않는 무제한"을 얘기했던 a7S III와는 확실히 다르죠. 4K120 언급이 없는 게 특이한데, 녹화시간 내지는 발열에 의한 제약이 더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더 고화소라서 당연히 젤로 억제는 더 뒤쳐질 듯 합니다.

 주변부 사양으로는 a7S III의 것이 그대로 왔습니다. 0.9배 배율에 944만 도트입니다. 이 뷰파인더는 화소수는 업계 최고이지만, 실제 체험은 아직 두고봐야겠습니다. 애초에 a7S III도 결국 라이브뷰 해상도 자체가 훨씬 못 미치기 때문에 캐논/니콘/파나소닉보다 유의미하게 나은 모습을 보이지 못 한다고 했기에, 이 녀석도 크게 기대는 안 합니다. 그래도 배율이 크니 기존 기종들보다는 시원시원하겠죠. 240fps를 지원하는 건 고속연사 기종으로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 외의 사양들도 a7S III에서 봤던 것들입니다. CFe 타입A, 새 메뉴와 터치 기능, 심지어 발열분산 구조까지도 그대로입니다. AF 측면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언급은 없습니다. 적층 DRAM 덕분에 a7S III보다는 좋겠지만, 기존 a9 시리즈보다 크게 뛰어날 거 같진 않습니다. CFe 타입A는 아쉬운 부분인데, SD 카드보다야 낫지만 이정도 고화소에 연사면 타입A는 이미 숨이 턱턱 막힐 수준입니다. 쩝...

 한가지 완전히 오리지널이라 할 만한 건 무손실 압축 RAW의 등장입니다. a7S III까지도 손실압축 RAW 아니면 무압축 RAW만 됐습니다. 고화소 기종인데 부담을 좀 덜어줄 듯 합니다. a7S III에서 이미 선보인 HEIF도 지원되고, HGL 기반의 HDR 동영상도 지원합니다.

 제품 성격은 사실 a9R인데 그동안 a9에서 이상하게 약했던 동영상 기능을 좀 더 강화해서 올인원 느낌으로 만들었네요. 사실 동영상 사양의 특징은 a7R 계열의 4K60/120, 8K30 버전업으로 진화한 거라서 여전히 a9R을 좀 화려하게 만든 거라고 생각합니다. a7S 유저의 대안이 되기엔 애초에 더 비싼데다 녹화시간, 발열, 젤로의 약점이 있어서 8K가 죽어도 필요한 경우 외에는 영상용으론 별로 인기는 없을 듯 합니다. 그냥 최상위기종으로 타협을 줄이려고 때려박은 정도.

 다만 호화사양인 만큼 가격은 무시무시합니다. 6500달러. 한국 출시가는 이정도면 비싸면 900만, 싸도 800만에서 천원 빼준 수준으로 나올 거 같네요. 그나마 환율이 내려서 망정이지... 출시는 3월입니다. 코로나 등으로 이래저래 문제가 많을텐데도 빠르게 나오는 편이네요. a7S III처럼 초기 공급은 좀 부족할 거 같습니다만, 어차피 급하지도 않으니 가후를 기다려 봅니다.

 이정도면 제가 기대했던 a9R 포지션의 상위호환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화소수는 기대보다 더 많고(4000만 이상을 원했지만 현실적으론 3600만 정도라도 만족할 참이었음) 연사속도도 15fps라도 만족할텐데 30fps고(쓰진 않을 겁니다만;) 무엇보다 고속연사기종의 주된 트레이드오프인 DR을 잘 방어해내서 제 딜브레이커를 피했습니다. 가격만 빠져주면 될 거 같군요.

ps.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a9 시리즈와 a7R 시리즈의 장래는 어떨지. 그냥 더 저화소인 고속연사랑 더 싼 고화소가 되나요? a7 IV가 화소수가 늘어날 가능성은 크게 올라갔다 싶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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